스님의하루

2019.5.31 INEB 주왕산 나들이, 문경공동체 대중과 만남
"노동이 곧 놀이가 되고, 수행이 되려면"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정토회를 방문한 INEB(국제참여불교네트워크) 동남아 스님들과 오전에는 두북 수련원에서 대화를 나누고, 오후에는 농장과 주왕산을 안내했습니다. 저녁에는 문경 정토수련원의 대중과 함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오늘도 새벽 5시에 예불과 기도를 드렸습니다. 정토행자들은 한 시간 동안 새벽예불을 한 후 108배와 명상을 했고, INEB 스님들은 테라바다 방식으로 명상을 했습니다. 그런데 스리랑카에서 온 스님은 함께 108배를 해보기도 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아침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어제 다녀 온 운문사와 비구니 제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어제는 어떤 곳이 가장 좋았어요?”

“운문사요.”

자연스럽게 스님은 비구니 제도와 관련하여 어제 못 다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바이샬리에 비구니 사찰을 짓는다면

“제가 한국의 비구니 스님들에게 바이샬리에 비구니 절을 지으면 좋겠다고 여러 번 요청을 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동남아 여성들에게 비구니 계를 주면 테라밧다에서도 부처님께서 그 장소에서 비구니계를 주신 걸 지금 다시 하니까 반대가 적을 것이라고 이야기해 주었어요. 바이샬리에서 비구니가 처음으로 출가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거기가 바로 여성해방운동의 효시라는 점입니다. 최초의 여성해방운동이 일어난 곳이 바이샬리입니다.”

슐략 박사님도 스님의 의견에 적극 공감하며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제가 달라이 라마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남자들이 지금까지 여성들을 착취해살아 왔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우리가 여성을 더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렇게 말했더니 달라이 라마께서 ‘그러면 우리가 뭘 할 수 있겠냐?’ 물어봤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음 환생을 여자로 하면 되겠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모두 웃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스님이 계속 말을 이어갔습니다.

“제가 바이샬리에 비구니 절을 지어줄 수는 있는데, 제가 해주면 원래 비구니가 생겨났던 정신에 어긋나게 돼요. 그래서 비구니들이 직접 해야 한다고 여러 번 요청했던 거예요. 제가 못 해서 안 하는 게 아닙니다. 여성 출가자들이 스스로 카필라바스투에서 바이샬리까지 걸어와서 출가를 했듯이 오늘날도 비구니들이 스스로 해야 합니다.”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한 비구니 스님이 정토회는 비구니 상가를 구성하고 있는지 질문을 했습니다.

“정토회 안에 비구니 상가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정토회는 스님과 스님 아닌 것의 차별도 이미 없기 때문에 비구니는 전혀 문제가 안 됩니다. 정토회 내부에서는 이미 스님과 신자 사이의 차별을 없애고 모두 멤버로 통일을 했습니다.

이곳 공동체에 들어와 사는 사람들은 출가한 것과 똑같습니다. 모두 집을 나와서 공동체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스님이 되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합니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스님이 되면 대우를 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스님이 되는 것이 아니라 수행자가 되도록 하였습니다. 공동체 안에 들어온 사람들은 출가한 스님들보다도 계율을 더 잘지키며 생활을 합니다. 여기서는 어떤 것도 강제하지 않고 자유롭게 선택합니다. 대신 자기가 선택한 것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식사를 마치고도 꽤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비구니 제도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 이야기가 길었네요. 설거지 하실 분, 두 사람 자원해주세요.”

비구 스님 한 분, 비구니 스님 한 분이 얼른 손을 들었습니다.

“설거지를 직접 해보면 좋은 점이 있습니다. 그릇을 깨끗이 닦아 먹어야 설거지하기가 쉽다는 것을 직접 체험으로 느낄 수 있어요. 근데 저기 저 선생님처럼 깨끗이 안 먹으면 설거지하기가 어렵습니다.” (모두 웃음)

하얀 접시 가운데 양념이 묻어 얼룩덜룩한 접시를 보며 다함께 웃었습니다.

법륜스님의 후계자는 누구입니까?

설거지를 마치고 8시부터 두북 정토수련원 강당에 둘러앉았습니다. 스님은 먼저 북한에 다녀온 이야기를 들려준 후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스리랑카에서 온 비구 스님이 어제 법륜 스님이 운문사에서 비구니 스님들과 맞절을 한 것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어제 운문사에서 법륜 스님이 비구니 스님들에게 서로 절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국에서는 비구, 비구니 스님들이 맞절을 하나요? 스님만 개인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인가요?”

“소수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님이 그렇게 맞절을 하시면, 다른 비구 스님들이 어떻게 보는지요? 저도 스리랑카로 돌아가면 그렇게 맞절을 하고 싶은데, 승단이나 사회에서 비난할 것 같아요.”

“네. 한국 사회는 스리랑카 사회보다 훨씬 개방적인 것 같습니다. 물론 한국에서도 전통적인 관습에 젖어서 비구니 스님들한테 절을 받기만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그것이 바람직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비구니 스님에게만 맞절하는 게 아니라 재가자들에게도 똑같이 맞절을 합니다. 그들이 하면 나도 합니다. 절은 서로를 존경하는 인사라고 생각합니다. 한 손으로 악수를 할 수는 없잖아요.”

재가자들에게도 절을 한다고 하니 동남아 스님들은 더욱 놀라워하는 표정이었습니다.

대화 중에 스님은 ‘행복학교’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설명을 듣고 나서 술락 박사님이 한 마디 했습니다.

“정말 훌륭한 활동입니다. 행복학교를 국제적인 모델로 만드실 계획도 있나요?”

“네, 그렇게 계획하고 있습니다. 국적과 관계없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법륜 스님이 돌아가시면 정토회를 계속 이어갈 후계자를 훈련시키셨습니까?”

술락 박사님은 심각한 표정으로 세계 각국에서 훌륭한 지도자에 의해 일어났던 불교 운동이 다음 후계자에 의해 망했던 사례들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정토회는 지금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소개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정토회에서 제가 가진 영향력이 큰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정토회는 대중이 합의한 의사결정 방식으로 움직이지 스님의 개인적인 권한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현재 정토회 안에는 세 가지 기구가 있습니다. 첫째, 대중에 의해 선출된 사람들에 의해 의사를 결정하는 대의원회가 있습니다. 둘째, 결정된 의사를 집행하는 행정부와 같은 역할을 하는 행정처가 있습니다. 셋째, 행정부를 감사하는 법사단이 있습니다. 법사단이 정토회의 운영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습니다. 이분들은 깨달음의 장과 같은 수련이나 연수 교육을 진행합니다. 현재 모든 행정 임원들은 다 선출로 이루어집니다.

슐락 박사님께서 질문하셨듯이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느냐?’ 와 ‘그것이 어떻게 지속 가능하도록 하느냐?’가 지금 정토회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정토회가 지속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많은 장치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단체가 크면 위험도 커집니다. 붓다께서 돌아가실 때 ‘다음 지도자는 누구를 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붓다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주인이기 때문에 다음 지도자라고 정해진 사람이 상가를 운영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그런 상가를 어떻게 만들 거냐에 대한 문제입니다. 우리도 똑같이 그런 위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바로 그런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겁니다. 이것을 어떻게 극복할 거냐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입니다. 좋은 지적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떤 것을 새로 만들기도 어렵지만 그것을 유지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발적으로 이 문제에 동의하고 활동해 나가도록 훈련시키는 겁니다.

정토회의 특징은, 첫째, 기복적인 요소는 일체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종교적인 요소를 거의 없애나가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정토회의 정체성은 철학도 아니고 종교도 아니고 ‘수행’입니다. 둘째, 멤버십(회원)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필요에 의해서 만든 행정적인 지위 외에는 특별히 신비로운 지위 같은 것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셋째, 교육에서는 과학적인 이치에 대해 공부하는 걸 중요시합니다. 정토회는 신비주의를 배격합니다. 신비라는 것은 무지에서 생깁니다. 무지를 깨우쳐주고 지혜를 얻게 해준 붓다의 삶을 닮으려고 합니다.

슐락 박사님을 비롯해서 모든 분들이 정토회의 부정적인 부분과 지속 가능하지 않는 부분들을 발견하신다면 기꺼이 지적을 해 주셔서 정토회가 지속 가능한 수행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저희는 정토회를 완성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실험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실험해보고 수정하며 끊임없이 발전해가고 있는 중입니다.”

이 외에도 동남아 스님들은 적극적으로 질문을 했습니다. 특히 첫째 날 맛보기로 안내한 깨달음의 장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 깨달음의 장이 인상 깊었습니다. 깨달음의 장에서 무엇을 하신건가요? 저에게 직접 질문하신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질문을 해보면서 제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 깨달음의 장을 아이들도 할 수 있습니까? 한국인들만 대상으로 해서 진행되고 있습니까? 외국어로도 진행되고 있습니까?
  • 깨달음의 장을 이수한 사람들은 그 이후에 어떻게 수행지도를 하시나요?

한국불교 또는 대승불교와 정토회의 차이점에 대해 궁금해 하기도 했습니다.

  • 태국이나 캄보디아 등 테라바다의 전통에서는, 마을 가까이에 있는 사원에서는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사원이 있고, 마을과 멀리 떨어진 사원은 치유를 위해서 있는 사원이 있는데, 마찬가지인지요?
  • 제가 대승불교의 절에 온 건 처음인데요. 여기서 일어나는 모든 게 신선합니다. 아침에 108배를 시도했는데요. 정토회에서 하는 아침 기도가 대승불교의 전통인지, 새로운 것인지 궁금합니다.
  • 요즘 불교에는 관심이 없어도 명상에는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국의 젊은이들도 그런가요?

수행에 대한 질문도 있었습니다.

  • 법륜 스님은 단순한 삶을 살지만 자비심과 내면적인 힘을 갖고 계십니다. 저는 깨닫기 위해 어떻게 수행하면 될까요? 또 생각에 깨어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 수행을 통해 관계에서 일어나는 갈등도 풀 수 있나요?

북한에 대한 질문도 있었습니다.

  •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에 어떤 강점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남한이 갖고 있는 약점은 무엇일까요?

점심식사를 하기 전에 스님이 농사짓는 곳을 둘러보고 오려고 했지만 이야기가 길어져서 점심을 먹고 난 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한 후 짐을 다 챙겨 두북 정토수련원을 떠났습니다. 맛있는 식사를 해주었던 바라지분들이 나와 떠나는 버스를 향해 인사를 했습니다. INEB 스님들은 합장하며 감사를 표했습니다.

버스에서 내리자 넓은 논밭이 펼쳐졌습니다. 풍경이 너무 아름답다며 스님들은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올해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한 비닐하우스를 찾아 갔습니다. 한 달 전에 심은 고추가 벌써 무릎 위까지 자라서 고추가 벌써 손가락만한 크기로 열려 있었습니다.

모두 비닐하우스 안에 모이자 스님이 농사일을 시작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농장을 운영하는 이유

“현재 정토회의 목표는 먹는 것을 자급자족하는 것입니다. 모든 작물을 유기농으로 생산하려고 합니다. 현재 농장을 시작한 지 2~3년 밖에 안 됩니다. 첫 번째 목표는 공동체 안에서 먹을 걸 자체 생산하는 것이고, 두 번째 목표는 저희가 생산한 농산물을 모든 정토회 멤버들이 구입해서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현재는 땅을 한 군데에 많이 못 구해서 여러 군데로 나눠져 있긴 합니다. 이 마을에서 8km 떨어진 곳에도 조그마한 농장과 수련원이 있습니다. 이 마을에도 21,000 제곱미터 크기의 논과 밭이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한국 사회가 주4일 근무제로 바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주3일이 휴일이 됩니다. 사람들은 3일 동안 무엇을 하며 지내게 될까요? 소비적으로 보내게 된다면 돈을 버는 건 적고 쓰는 게 많아집니다. 미래 산업에서 돈이 적게 들고 집에서 즐길 수 있는 게 바로 게임입니다. 앞으로 게임 산업이 많이 늘어날 겁니다. 그러나 게임은 중독성이 있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3일 동안 웰빙도 하고, 명상도 하고, 농사일도 하도록, 이 세 가지를 같이 할 수 있는 센터를 만들려고 합니다. 명상을 앉아서만 하는 게 아니라 노동을 하면서 명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지금 개발 중이에요. 여기서 일한 사람들에게 일한 만큼의 마일리지를 줘서 이곳에서 생산한 음식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먹을 건 자기가 생산하게 되는 겁니다.

이 비닐하우스에는 고추를 심었어요. 유기농을 하면 풀이 자라기 때문에 풀이 나는 걸 막기 위해서 지금 이렇게 땅을 천으로 다 덮어 놓았어요. 유기농 재배라 일이 많습니다. 약을 안 치기 때문에 벌레가 못 들어오게 곳곳에 모기장 같은 그물이 쳐져 있습니다. 저 건너편으로 논이 많이 보이죠. 저게 쌀이에요. 들판에 있는 큰 논에서 쌀이 자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산 밑에서는 감자, 옥수수, 콩, 고구마, 여러 채소들을 키우고 있어요. 이 비닐하우스는 여름에 너무 더우면 안 되기 때문에 팬을 설치해서 온도 조절을 할 수 있게 했어요. 이곳은 버려져 있던 비닐하우스였는데 저희가 다시 활용해서 올해 처음 농사를 시작한 거예요.”

동남아 스님들은 비닐하우스 안에 설치된 다양한 장비들에 높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스님이 이야기하는 비전에 대해서도 크게 공감했습니다.

주왕산,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

밭을 나와 청송 주왕산 국립공원으로 향했습니다. 입구에 있는 주차장에 버스를 세우고 걸어가야 했습니다. 작은 차로 연로하신 술락 박사님을 입구까지 모시려고 했는데, 외부 차량은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스님은 안타까워하며 걸어가다 국립공원에 안에 있는 식당 차는 들어올 수 있는 것을 보고 아저씨에게 부탁했습니다.

“아저씨, 노인 한 분만 절 입구까지 태워주실 수 있어요?”

아저씨는 흔쾌하게 태워주겠다고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멀리 주왕산이 보이는 푸른 길을 따라 20여 분 걸으니 대전사가 나왔습니다. 대전사 앞에서 스님은 주왕산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이 곳은 경치가 좋은데 길이 아주 평평합니다. 그래서 노인들이 걷기 좋습니다. 술락 박사님과 요 박사님이 걸을 수 있는 곳을 골랐습니다. 이 곳에는 총 세 개의 폭포가 있는데, 첫 번째 폭포까지 거리가 2km입니다. 저희들은 첫 번째 폭포까지 다녀올 겁니다. 박사님들은 천천히 오실 수 있는 만큼만 오시면 돼요.”

“나도 스님 따라 갈 거예요.” (모두 웃음)

70대 요 박사님이 호기롭게 말하자 함께 웃었습니다. 두 분은 정말 첫 번째 폭포까지 왔습니다. 휠체어를 탄 술락 박사님은 스님을 앞질러 가기도 했습니다.

“내가 늙긴 늙었나 봐요. 내 앞을 가로질러 가는 사람은 없었는데.” (웃음)

스님은 동남아 스님들의 느린 걸음을 배려하며 천천히 걸었습니다.


INEB 스님들은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며 푸른 숲길을 걸어 첫 번째 폭포인 용추폭포까지 다다랐습니다. 안내판에 ‘천상과 세속의 경계’라고 적혀있었습니다. 가뭄이라 물은 적었지만, 과연 아름다운 풍경이었습니다. INEB 스님들의 밝은 미소 위로 따뜻한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이 스쳤습니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즉문즉설

주왕산을 나와 버스를 타고 문경수련원으로 출발했습니다. 고단한 표정의 동남아 스님들을 보며 스님이 웃으며 말을 건냅니다.

“힘들어요?”

“No!” (모두 웃음)

INEB 스님들은 크게 대답하며 웃었습니다.

“피곤한 사람은 주무시고, 질문 있는 사람은 질문하세요.”

한 비구니 스님은 법륜 스님과 빡빡한 일정을 3일 보내고 나서 든 소감이라며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스님은 정말 바쁘시고, 또 하루 종일 말을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에너지가 넘치시나요?”

“농사를 지어보면 훨씬 더 힘듭니다. 이 세상에 많은 노동자와 농민들은 저보다 훨씬 더 힘든 조건에서 하루 종일 일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저는 힘들지 않습니다.”

스님의 한줄 답변에 질문을 한 비구니 스님은 더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습니다. 버스 안 질문은 문경수련원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됐습니다.

“스님은 아주 자비로우신데, 어떻게 하면 자비로운 마음을 키울 수 있습니까?”

“같이 안 살아봐서 그래요. 같이 살아보면 단점이 많아요. 특별한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웃음)

저는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면 갈등은 생기지 않아요. 자비심의 근원은 ‘이해’라고 생각합니다.”

노동과 놀이, 수행을 일치시키는 새로운 실험, 농사

오늘 유기농 농장을 방문한 것에 대한 질문도 나왔습니다. 스님은 왜 정토회가 농사를 짓는지 그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오늘 유기농 농장을 방문해서 참 좋았습니다. 한국에서는 1960년부터 신토불이 운동이 일어났다고 들었는데, 스님께서 농사를 짓는 이유와 관계가 있나요?”

“저희가 농사를 짓는 이유는 꼭 신토불이 때문만은 아닙니다. 현재 우리의 삶은 노동과 놀이 그리고 수행이 분리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 노동과, 놀이, 수행을 일치시키려고 합니다. 진정한 노동의 해방은 노동 시간을 줄이거나 대가를 늘이는 것이 아니라 노동이 놀이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것이 노동이고 어떤 것이 놀이일까요? 한 장소에서 똑같이 춤을 추고 있는데, 무대 위에서 추는 사람은 노동을 하고 있고, 무대 밑에서 추는 사람은 놀고 있습니다. 무대 위에 있는 사람은 돈을 받고 춤을 추고, 무대 밑에 있는 사람은 돈을 내고 춤을 추는 차이 밖에 없습니다. 돈을 받고 춤을 추는 사람은 춤이 목적이 아니라 돈이 목적입니다. 춤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입니다. 그럴 때 이것을 노동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돈을 내고 춤을 춘다는 것은 춤이 목적입니다. 내가 춤을 추고 싶어서 추는 게 놀이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춤을 추는 게 노동입니다. 돈을 아무리 많이 받아도 춤이 수단이 되면, 그것은 노동이 됩니다. 돈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자발적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되면, 그것은 놀이가 됩니다. 그래서 정토회는 노동과 놀이를 일치시키는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명상을 한다면, 누군가는 음식을 만들어주거나 청소를 해주거나 그 건물을 지어줘야 합니다. 명상 자체는 좋지만 누군가의 희생 위에 존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소비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명상도 생산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립이 되는 방식으로 명상을 해야 합니다.

노동이라는 것은 생산이고, 놀이라는 것은 즐거움이고, 명상 또는 수행은 마음의 평화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세 가지를 일치시키려고 합니다. 생산도 하고 즐거움도 가지면서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겁니다. 청소를 할 때 즐겁게 청소를 할뿐만 아니라 청소하는 자신의 동작에 깨어 있어서 마음의 평화까지 유지할 수 있다면, 이것은 세 가지가 일치하는 것입니다. 이런 노동을 ‘노동 선(禪)’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노동 선(禪)은 어떤 욕망을 갖고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게 아니에요. 부처님께서 생산 활동을 하지 말라고 한 것은 소유하지 말라는 뜻이지 일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소유는 하지 않되 생산은 하자는 겁니다. 이것이 정토회가 농사를 짓는 첫 번째 이유에요. 왜냐하면 정토회는 수행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수행이 근본이에요. 수행에 도움이 되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이 정토회입니다. 그래서 생산적인 수행을 하자는 의미로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둘째, 농사는 환경 운동입니다.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맑은 공기, 맑은 물, 맑은 음식, 이 세 가지가 제일 중요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먹는 음식은 오염이 됐거나 유전자 조작 식품이거나 여러 가지 문제로 안전한 먹거리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먹을 걸 자기가 생산하면 농약을 과다하게 치거나 하며 오염을 시키지 않습니다. 그런 이유에서 먹거리 오염 문제는 농산물이 상품으로 존재하는 한 해결되기가 어려워요. 왜냐하면 농사를 짓는 사람도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먹기 위해서 자기가 생산한다면 오염을 시킬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자급자족은 안전한 먹거리 확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자기가 생산 할 때 가장 안전합니다.

저는 어떤 직업을 갖든 모든 사람은 하루에 2시간씩 노동을 하거나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대통령이라면 청와대 안에 밭을 만들어서 아침에 일어나서 최소 2시간은 일을 하고 나서 다른 직무를 봐야 합니다. 판사든 공무원이든 교수든 직업에 관계없이 이렇게 한다면 세상은 조금 더 달라질 겁니다. 우리가 아무리 정신적인 활동을 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자연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흙을 만지고 그 생명들 속에 있어야 육체와 정신이 건강해집니다.”

INEB 스님들은 휴게소에서 차를 마시거나 간단한 요기를 한 후 문경수련원으로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같은 부처님의 제자입니다

저녁 8시부터는 1시간 30분 가량 문경수련원에 상주하는 대중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문경 공동체 대중은 먼저 INEB 스님들에게 삼배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이어서 서로 궁금한 것을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공동체 상주 대중이 INEB 스님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테라밧다는 개인의 수행이 중심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INEB는 각 나라에서 사회 실천을 하는 사람들의 네트워크입니다. 그렇게 사회 변화에 참여하는 활동을 하면 기존 불교로부터 저항을 받지 않으시나요?"

INEB 스님들 중에 한 분이 손을 들고 대답했습니다.

“저희들은 사회를 위해서 자비를 실천하라고 배웁니다.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아 떠나라. 고통 받는 사람들의 이익과 안락을 위해, 세상을 사랑하기 위해 둘이 가지 말고 혼자서 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정토회와 테라밧다가 많이 닮았다고 느꼈습니다. 헤어진 가족을 다시 만난 것 같습니다.”

이어서 INEB 스님들도 공동체 대중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습니다.

“이곳의 모든 분들이 자원봉사하는 분들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정말 성심껏 일을 하시는데 어떻게 그런 마음을 낼 수 있나요?”

“부처님 법을 배워서 제가 행복해졌기 때문에 그 행복을 그냥 주위에 나누는 것입니다. 그냥 하는 것이지 어떤 노력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빈그릇 운동에 대한 질문도 나왔습니다.

“접시를 닦아먹는 빈그릇 운동은 정토회만 하는 것인가요, 한국 사회 전체가 하는 것인가요?”

“정토회에서 시작했고, 사회에 조금씩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많은 영감을 받았어요. 저희나라에 돌아가면 시민사회단체들과 이 운동을 실천하고 싶습니다.” (모두 박수)

태국에서 온 비구니 스님은 특별히 여성수행자들에게 질문이 있다고 했습니다.

“특별히 여성분들에게 질문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법륜 스님을 보고 나도 열심히 수행을 해서 저런 분이 되어야겠다는 목표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가장 최근에 공동체에 입재한 행자님이 웃으며 대답을 했습니다.

“저는 법륜 스님과 같은 공동체 소속이라는 것이 자랑스럽고 좋습니다.”

스님은 INEB 스님들과 공동체 대중의 대화 모습을 지금까지 가만히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행자님의 이야기가 끝나기 무섭게 법륜 스님이 한 마디 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추종자 밖에 안 돼요. (모두 웃음) 오전에 술락 박사님께서 태국이나 스리랑카의 훌륭한 단체가 망한 사례를 이야기하면서 정토회도 법륜 스님이 죽으면 망하는 것이 아니냐고 물어보셨어요. 자, 법사님들 한번 이야기해보세요. 정말로 그럴 것 같아요?”

묘덕 법사님이 손을 들고 일어나 답변했습니다.

“저희는 그것을 대비하기 위해 한 명이 아니라 대중에 의해 단체가 운영되도록 구조를 갖췄습니다.”

무변심 법사님도 일어서서 평소의 생각을 이야기했습니다.

“저도 어떻게 될지 궁금합니다. 그렇지만 이 길을 갈 겁니다. 법륜 스님께서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단지 행해 가면 됩니다. 그래서 걱정하지 않습니다.”

대답을 듣고 다른 스님이 또 질문을 했습니다.

“법륜 스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후계자를 정해야 법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정토회에는 비구계를 받으신 분이 법륜스님 밖에 안 계신 것 같습니다. 더 이상 법을 계승할 사람이 없습니까?”

자광법사님도 일어나 설명을 보충했습니다.

“1988년에 법륜 스님과 함께 활동하는 몇 명이 모여 정토회를 설립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똑똑한 몇 명이 사회를 이끈다는 것이 통념이었습니다. 그런데 저희들은 미래 사회에는 누가 리더인가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그 결과 앞으로는 한 사람이 아니라 깨어있는 대중의 힘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1996년부터 ‘정토회는 대중이 주인’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처음에는 정토회 대중도 ‘우리는 단지 스님 법문이 좋고, 보시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라며 반대했습니다. 처음 10년 동안 진전이 없었어요. 하지만 저희들이 북한동포돕기 운동, 빈그릇운동 등을 하면서 대중이 참여하는 일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예전보다는 훨씬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고, 지금은 대중에 의해 정토회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제도적으로는 민주주의의 삼권분립을 차용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법사님들은 모두 정토회는 대중이 주인이 되어 운영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스님도 있고, 더욱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스님도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질문을 주고받자, 술락 박사님이 정토회의 젊은 수행자들이 공부를 잘 할 수 있게 축원을 하고 싶다고 제안했습니다. 술락 박사님의 제안으로 INEB 스님들이 다 함께 테라밧다 방식으로 축원을 해주었습니다.

“자비롭게, 행복하게, 겸손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불법승 삼보가 여러분에게 가피를 내리기를 바랍니다.”

문경 공동체 대중은 합장하며 감사의 마음을 표했습니다.

스님은 오늘 만남을 마무리하며 마하야나와 테라밧다를 넘어 같은 부처님의 제자로서 서로 배우며 살자고 이야기했습니다.

“오늘 좋은 만남이었습니다. 대화를 들어보니 여러분이 테라밧다와 마하야나의 관계에 대해 약간의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마하야나(대승불교)에서는 테라밧다(근본불교)를 히아야나(소승불교)라고 부를 정도로 낮은 수준으로 보고 있습니다. 마하야나에서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테라밧다는 자기 혼자만 열반에 들려고 하지만 마하야나는 많은 사람을 구제한다. 그러니 마하야나가 더 훌륭하다.’

방금 질문 중에 ‘테라밧다 스님들이 사회적인 참여를 하면 마하야나가 아닌가’라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사회 참여를 하느냐, 안 하느냐가 테라밧다와 마하야나를 나누는 기준이 아닙니다. 지금은 테라밧다가 마하야나보다 대중과 더욱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마하야나에서는 중생을 구제한다는 말만 있지 실제로는 아무 것도 하는 게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언어에 속으면 안 됩니다. (모두 웃음)

또한 테라밧다에도 마하야나에 대한 약간의 오해가 있습니다. 테라밧다에서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마하야나는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이비 불교다.’

우리는 같은 부처님의 제자입니다. 인도에서도 두 불교가 다 있었습니다. 테라밧다는 인도의 남쪽으로 내려가서 전통을 지켜가고 있고, 마하야나는 인도의 북쪽으로 가서 중국, 한국, 일본으로 전파되었습니다. 서로 전통이 다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같은 부처님의 제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의 전통 속에서 배울 점들을 함께 찾아갔으면 합니다,”

사홍서원으로 문경공동체 대중과 만나는 시간을 끝냈습니다. INEB 스님들이 방석을 들고 뒷정리를 하려고 했습니다. 문경수련원 대중들은 웃으며 자신들이 정리하겠다고 방석을 받아들었습니다.

내일 스님은 청주에서 행복학교 참가자들에게 즉문즉설 강연을 한 후 INEB 스님들과의 대화를 계속 이어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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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인

스승님의 뜻 새로운 삶의 길에 물들고 있습니다.
무언가 가슴을 울립니다.
행복하고자 이길에 들어선지 8년
내가 행복하고 전법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뚜렷한 깨달음을 잡을 수 있을 듯 합니다.
시작 ~~첫걸음은 뛴 것 같습니다.
보람됩니다.
공부하고 연구하겠습니다. 실천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성불하십시오.

2020-01-23 21:47:29

김정화

고맙습니다 덕분입니다

2019-11-12 07:43:26

김정화

고맙습니다 덕분입니다

2019-11-12 07:4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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