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6.22. 유럽지구 정토행자대회 2일째
“갈등이 심해지니까 이 곳을 떠나고 싶어요”

안녕하세요. 유럽지구 정토행자대회 2일째 아침이 밝았습니다. 스님은 대중이 일어나기 전 강당으로 내려와서 명상을 했습니다.

곧이어 대중이 일어나 다 함께 아침 예불을 했습니다. 비록 청소년수련원이지만 이렇게 함께 예불을 하니 이곳이 바로 청정한 수행도량입니다. 예불을 마치고 아침식사를 했습니다. 아침식사는 어제의 희멀건 야채죽에 이어 오늘은 콩나물김치죽이었습니다. 이번 행자 대회 콘셉트는 다이어트라고 합니다. 참가자들은 ‘적게 먹어야 졸지 않는다. 적게 먹고 깨어서 열심히 토론하라는 뜻인가 보다’며 감사히 먹었습니다.

어제에 비해 바람이 한결 시원하고 햇살이 따사롭습니다. 산책하기 정말 좋은 날입니다. 산책을 가기 전 마당에 모여 어렸을 때 하던 땅밟기 게임도 했습니다. 스님과 대중은 어릴 적으로 돌아간 듯 즐거워했습니다.

맨 앞에 가던 스님은 길을 가는데 나뭇가지가 튀어나와 있으면 나뭇가지를 뒤로 젖혀두었습니다. 뒤따라 오는 대중에게 나무가 부딪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스님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배려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산책 후 돌아와서 바로 선주 법사님이 수행 법회 개편안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대중은 발표를 들은 후 모둠별로 흩어져서 유럽지구에 개편된 수행 법회를 어떻게 적용할지 열띤 토론을 했습니다.

유럽지구는 독일 뒤셀도르프 법회를 제외하고 격주로 법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유럽은 정회원도 많지 않은 상태에서 사람들이 아침부터 멀리서부터 기차를 타고 법회에 오는데 정회원 보고회, 포살법회 등을 하느라 일반회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그러자 선주 법사님이 해외에서 지속적으로 유튜브 법문과 차별화된 법문을 달라고 요구해서 수행 법회를 개편하게 되었다고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유럽 정토행자들은 ‘내 발등 내가 찍었다’고 하며 다들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맘껏 웃고, 맘껏 토론하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온라인으로 1주, 오프라인으로 1주라도 해서 매주 법회를 해보겠다는 등 다양한 의견을 듣고 스님은 다음과 같이 제안했습니다.

“발표 잘 들었습니다. 어떤 일을 할 때 본질이 무엇인지 꿰뚫어야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지 혹은 융통성 있게 처리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습니다.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하면 원칙을 고수해야 할 부분에 융통성을 발휘해서 본질을 흐리게 하고, 융통성 있게 해도 될 일에 원칙을 고수하여 경직스러워 보입니다. 본질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것이 중도사상이에요. 부처님의 가르침은 항상 가장 바른 길 정도, 즉 중도입니다. 금강경 식으로 표현하면 무유 정법, 정함이 있는 것이 없다고 합니다. 원칙과 융통성은 늘 함께 움직이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적용할 때는 근본정신을 알고 적용해야 합니다. 근본정신을 모르면 주객이 전도됩니다. ”

우리가 어떤 원칙을 가지고 일을 처리해야 하는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어려울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스님은 수행법회를 개편한 이유에 대해서도 보충해서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동안 누구나 법회에 올 수 있었습니다. 즉문즉설은 늦게 와도 괜찮고 생활에 적합하고 교리 내용을 몰라도 된다는 장점이 있어서 정기법회의 법문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포교 차원에서는 즉문즉설이 호응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즉문즉설은 유튜브로도 볼 수 있으니 법당에 와서는 다른 것을 듣고 싶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그리고 오래된 회원들에게 즉문즉설이 도움은 되기는 하나 수행자들이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심화과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포교용으로는 유튜브를 듣게 하고, 교육용으로는 불교대학을 입학하게 하고, 정토회는 수행을 지향하는 수행공동체이니 정기법회는 수행자용으로 하자하여 수행 법회를 개편하게 되었습니다.”

스님은 발표를 들으면서 해외에서 정기법회를 수행법회로 운영하는 것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일주일에 2번 하는 법회는 일반법회로 즉문즉설을 듣고, 나머지 주는 정회원들만 따로 하게 되면 정회원은 매주 법회를 하고 일반인은 격주로 법회를 하게 되니 어려움이 조금 줄어들 것 같다고 얘기하면서 다양한 의견을 주면서 실험해보라고 의견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스님은 _“대중이 많이 온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닙니다. 내실이 탄탄히 이루어지지지 않으면 오히려 언제 허물어질지 모릅니다. 정회원은 공동체의 결속과 우리 자신들의 공부를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중요합니다”_라고 하면서 정회원을 위한 수행 법문을 들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해외의 사정에 맞게 애정을 담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한국에서부터 스님의 일정은 빈틈이 없고, 해외에서도 매일매일 비행기를 타거나 기차를 타고 나라를 옮겨 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럽 행자 대회에서는 하루 종일 유럽의 행자들과 함께 하면서 하루에 몇 번씩 법문을 하다 보니 스님의 목소리도 거의 나오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끝까지 질문에 답변을 해주신 스님에게 감사의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어 바로 정회원들의 포살법회를 했습니다. 유럽지역에서는 정회원들의 포살법회가 거의 없어서 대부분 포살법회를 처음 해보는 것 같았습니다. 스님은 자상하게 포살의 방법과 취지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포살

“여러분은 포살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으니 포살 법회의 취지와 방법을 설명하고 포살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수행자에게는 두 개의 그룹이 있습니다. 하나는 출가수행자 그룹이고 다른 하나는 재가 수행자 그룹입니다. 출가 수행자를 남자와 여자로 나눠서 비구, 비구니라 부르고 재가 수행자를 남자와 여자로 나눠서 우바새, 우바이라고 부릅니다.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이렇게 네 종류의 수행자를 사부대중이라고 합니다.

재가 수행자는 세상에 살면서 직업도 갖고 결혼도 하면서 수행 정진하는 사람입니다. 반면, 출가 수행자는 세속의 직업과 가정, 지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수행과 전법에 전념하는 사람입니다.

출가 수행자 중에 20세 이하의 미성년자는 사미, 사미니라고 부르며 이들은 10가지 지켜야 할 계율인 사미십계를 받습니다. 성인이 돼서 비구, 비구니가 되면 비구는 250개 계율이 있고, 비구니는 348가지 계율이 있습니다. 재가 수행자는 두 가지 계율이 있습니다. 오계가 있고, 팔계가 있습니다. 재가 수행자가 되는 첫 번째 계율은 오계가 됩니다. 어느 정도 정진을 해서 ‘내가 비록 몸은 재가에 있지만 출가 수행자와 다름없이 살아가겠다’ 이럴 때 받는 게 팔계입니다.

오계의 첫 번째는 어떤 문제를 풀 때 폭력적으로 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있어도 남을 때리거나 죽여서는 안 됩니다. 정토회 안에서 어떤 문제와 갈등이 생길 때 폭력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계율에 어긋나는 거예요.

두 번째, 내 이익을 위해서 남에게 손해 끼치는 것을 추구해서는 안 돼요. 그래서 정토회 안에서 어떤 세속적 이익을 추구하는 행동을 못하게 돼 있습니다. 투자 유치를 한다든지, 보험을 권유한다든지, 물건을 판다든지, 이런 걸 못하게 하는 이유는 수행자들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정토회가 종교 집단의 신자 그룹이면 신자 사이에 서로 소개도 해주고 장사도하고 물건도 사고팔도록 도와줘도 되는데 수행자 그룹이라고 정의돼 있기 때문에 금지하는 거예요. 남의 물건이나 돈을 강제로 뺏거나 몰래 가져가서는 안 됩니다.

세 번째, 내가 즐겁고자 남을 괴롭혀서는 안 됩니다. 이게 성추행이나 성폭행은 안 된다는 거예요. 만약에 이런 일이 있으면 더 이상 수행자 그룹이 아니에요. 이게 아니라도 이 안에서 안 되는 것이 아내가 있는 사람이나 남편이 있는 사람과 연애를 하는 것은 안 됩니다. 왜냐하면 연애하는 두 사람은 뜻이 맞지만 결과적으로 상대방의 아내나 남편에게 괴로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 말로도 남을 괴롭혀서는 안 됩니다. 언어에 욕설이 섞여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다섯 번째, 술이나 마약 등에 취해서는 안 됩니다. 술을 안 먹으면 제일 좋지만 맥주 한 잔 먹는 걸 문제 삼는 건 아니에요. 맥주를 먹고 약간 취기가 돌아서 욕설과 성추행을 하면 다른 계율에 어긋날 수 있습니다. 말이 많다든지 약간 맑은 정신을 유지하지 못하고 취기가 있으면 계율에 어긋납니다. 그러니 술을 마시는 건 좋은데 마시고 취해서 남을 괴롭혀서는 안 됩니다. 적어도 수행자라면 다섯 가지 계율을 꼭 지켜야 합니다.

정토회에서는 오계에 몇 가지 계율을 추가했습니다. 예를 들면, ‘남을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는 계율도 추가된 거예요. 남을 미워하게 되면 욕설이 나오기 쉽고, 폭력이 나오기 쉬워요. 그래서 기본적인 다섯 개에다가 각각 약간씩 변형된 걸 넣어서 12가지로 해서 우리가 계율을 잡았습니다.

다음으로 수행 도량이라는 곳은 조용해야 해요. 우리는 조용한 곳을 절간 같다고 하잖아요. 이처럼 수행 도량은 차분한 마음이 유지되도록 조용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깔끔해야 합니다. 세 번째로는 정리정돈이 잘 돼 있고 질서가 유지돼야 해요. 법당에서 고함을 지르고 떠들면 안 되는 건 마음이 흥분되지 않고 차분해져서 고요하도록 하는 겁니다. 물건들도 정리 정돈이 잘 돼 있어야 합니다.

그다음에 검소한 생활을 유지하면서 깔끔해야 합니다. 움직일 때 밥을 먹든, 뭘 하든지 앞에 앉아라, 뒤에 서라, 앞으로 댕겨라 이런 말을 안 해도 오는 순서대로 조용히 앞에서 착착 앉아야 해요. 사진을 찍는다면 키 큰 사람은 뒤로 가고 작은 사람은 앞으로 온다든지 하고, 앞에 사람은 앉아주고 중간 사람은 무릎을 구부려주고 뒤에 사람은 선다든지 해야 해요. 꼭 말을 하지 않더라도 자리에 앉을 때는 오는 순서대로 앉는다든지, 안쪽부터 앉아서 중간에 자리를 비우면 안 됩니다. 이처럼 자연스럽게 질서가 지켜져야 합니다. 수행자 그룹에서 이런 행동들은 깨어있다는 반증입니다. 깨어있으니까 큰 소리가 날 일이 없고, 깨어있으니까 흐트러질 일이 없고, 깨어있으니까 질서가 유지되는 거예요. 군대처럼 훈련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저절로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되는 거예요. 하나가 더 있다면 우리가 환경운동을 하니까 음식을 버려서는 안 되는 계율이 추가가 되어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팔재계라는 것이 있습니다. 오계에 세 가지 계율을 더해서 여덟 가지 계율이에요. 아직 여러분이 팔재계를 받을 상태는 아니에요 서원 행자 이상이 되면 팔재계를 받을 수준이 됩니다. 그 세 가지 중 첫째는 꽃을 꽂지 말라. 요즘 말로 하면 꾸미지 말라는 거예요. 화장을 한다던지 장신구를 단다던지 뭐 이렇게 아름답게 하기 위해 모양을 내는 것은 안돼요.

두 번째, 노래하고 춤추지 말라. 심리가 흥분되어 있는 상태로 즐거움을 추구하지 말라는 뜻이에요. 수행자는 늘 평정심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높은 평상에 앉지 말라. 이건 인도 문화에서 오는 건데 교만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목에 힘주고, 앞자리에 앉으려고 하지 말라는 거예요. 수행자가 되려면 교만하거나 사치해서는 안됩니다. 항상 검소하게 살고 겸손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출가수행자는 하루 한 끼를 먹어야 하는데, 재가 수행자는 한 끼 먹는다는 규정을 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때 아닌 때 먹지 않는다’는 계율이 있어요. 음식을 탐하면 안 됩니다. 다시 말하면 먹고 입고 생활하는 것을 소박하게 하고 헐떡거리지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같은 계율을 지키는 수행자로서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겁니다. 참회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내가 계율을 어기면 스스로 매일 정진을 하면서 ‘아, 내가 이걸 놓쳤구나’하고 돌아보는 것을 ‘참회’라고 합니다. 둘째, 내가 스스로 참회를 해도 도반들은 모르잖아요. 그런데 상대의 마음속에 ‘아, 수행자라면서 계를 어기네’라는 의혹이 있어도 이야기를 하면 갈등관계가 되니까 이야기를 잘 안 합니다. 우리는 자기 수행하러 왔지 남을 지적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대중 앞에서 ‘내가 내 잘못을 알고 있다’하고 드러내어 고백하는 게 ‘포살’이에요. 그럼 대중은 ‘저분이 자기 행위에 대해서 알고 있구나’ 이렇게 이해할 수 있어요.

셋째, 참회와 포살은 내가 계를 어긴 것을 알아차려야 할 수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계를 어길 수도 있어요. 그럴 경우에 내가 도반에게 청하는 거예요.

‘저의 모습을 보고 듣고 하면서 허물이 있다면 저를 위해서 지적해주십시오.’
‘어느 때에 이렇게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이게 자자라는 거예요. 이렇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에 포살은 한 사람이 계율 하나를 읽으면 그 계율을 어긴 사람은 모두 참회를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잠잠히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원칙인데 대중이 많아서 그렇게 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약간 변형을 했습니다. 제가 계율을 하나씩 읽어갈 겁니다. 어떤 계율을 어겼다면 그 계율을 읽을 때 일어나 3배를 합니다. 계율을 어기지 않은 사람은 잠잠히 그냥 있으면 돼요. 이렇게 해서 끝나고 그룹별로 나눠서 자기가 체크한 걸로 포살을 그때 합니다. 나누기라고 하는데 사실 그게 포살이에요. 그러면 지금부터 포살을 하겠습니다.”

모두들 경건하게 포살법회를 해보았습니다.

포살법회가 끝나고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뒤셀도르프에서 이상호 님 부부와 서신선 님 부부가 스님을 찾아오셨습니다. 두 분은 독일 정토회 초기 멤버로 이제 나이가 팔순을 넘었습니다. 두 분은 아직 정정하여 스님을 만났으니 기분이 좋다고 이제 다시 돌아가도 좋다고 하시면서 활짝 웃으셨습니다.

점심공양이 준비되어있지 않아 물어보니 피자가 배달되어 올 거라 합니다. 스님이 피자를 주문했다고 하였습니다.

“하도 허기가 진다고 해서 피자를 주문했어요.”

모두들 배고팠던 첫 날을 생각하고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점심 식사 후에는 스님이 5월 3일부터 5월 7일까지 북한을 다녀온 것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스님이 찍어온 영상을 통해 애육원 아이들의 재롱도 보고, 옥수수가 지원되는 모습도 직접 확인하니 반갑고 좋았습니다. 우리가 낸 후원금이 옥수수 빵과 옥수수 국수가 되어 아이들의 입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참 감동이었습니다.

방북 보고회를 마치고 나서 5분 정도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 분은 한국 정부가 왜 값싼 옥수수가 아닌 비싼 쌀을 지원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물었습니다.

정부에서는 왜 비싼 쌀을 지원하나요?

“며칠 전 한국 정부가 북한에 쌀 5만 톤을 지원하는데 1,270억 원이 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JTS에서는 옥수수 1만 톤을 지원하는데 40억 원 정도 든다고 들었습니다. 한국 정부도 값싼 옥수수를 대량으로 지원하면 될 텐데 왜 1,270억이나 들여서 비싼 쌀을 지원하나요?”

“이 쌀은 3년 동안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정부미로서 방출할 때 국제시세로는 톤당 450불, 우리 돈으로 54만 원입니다. 그런데 이 쌀을 농민들에게 구입할 때는 톤당 254만을 지불하고 방출할 때는 54만 원을 받습니다. 그 차액 톤당 200만 원은 양곡관리기금이라고 해서 정부예산으로 지원합니다.

사람들이 이것을 잘못 이해하면 ‘옥수수는 톤당 40만 원이면 되는데, 왜 톤당 254만 원이나 주고 사야 하는 비싼 쌀을 지원하느냐?’ 이렇게 오해할 수 있습니다. 비싼 쌀을 지원하는 게 아닙니다. 한국 정부가 주겠다는 쌀은 3년 묵은쌀이라서 맛이 떨어집니다. 우리나라는 쌀 공급이 과잉입니다. 과잉 생산된 쌀을 창고에 보관하는 경비만도 1년에 4000억 원이 든다고 합니다. 그래서 북한에 오래 묵은쌀을 지원하는 것이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이득입니다. 다른 곡식은 모자란데 쌀은 남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지원하는 1,270억 중에 270억은 남북교류협력기금에서 쌀값으로 지불하고, 1000억은 양곡관리기금에서 지불하는 거예요. 이 돈은 북한에 지원 안 해도 지원되는 돈이에요. 그래서 쌀 5만 톤의 실제 방출가는 270억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구입가로 발표하니 굉장한 오해가 생기는 겁니다.”

“이왕 지원하는 건데 3년이 지난 사료용 쌀을 북한에 지원하게 되면 북한에서 기분이 나쁘지 않을까요?”

“3년 묵었다고 해서 못 먹는 쌀은 아닙니다. 벼를 찧어서 3개월 내지 6개월이 지나면 맛이 없어지고 벌레가 생기지만, 찧지 않고 벼로 보관하면 10년을 보관해도 괜찮습니다. 오래 묵었기 때문에 찰기가 떨어져서 맛이 떨어질 뿐이지 영양학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래서 보관은 벼로 보관하고 먹을 때는 쌀로 찧습니다. 벼는 오래 보관해도 큰 문제가 없어요.”

스님은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서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무리한 일정으로 스님 목소리도 갈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종일 일정 속에 스님 법문이 하루에도 몇 번씩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타지에서 고군분투하면서 전법을 하고 있는 우리들을 다정스레 포용해주는 듯 즐겁게 함께 해주었습니다.

이어서 유럽지구에서 정회원 활성화 방안에 대한 모둠 토론을 하였습니다. 모둠 토론을 한 후 모둠 발표를 모두 들으시고 스님은 다음과 같이 정리 말씀을 했습니다.

“얘기 잘 들었습니다. 원칙적인 얘기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오늘 보니 해외 정토회를 보고 수행자의 모임이라고 하는 것은 과분한 것 같습니다. 머리를 기르고 있는데 수행자 자격을 주니 과부하가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은 소수의 사람들이 수행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수행자가 된다는 관점에서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전 인생을 수행에 다 투여하는 방식이 아니고도 수행자가 될 수 있는 것을 테스트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에 열려있었는데 닫힌 것이 2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여자도 출가수행자가 될 수 있다는 비구니 제도가 열렸는데 500년 이후에 닫혔습니다. 또 하나는 재가 수행자의 길이 닫혔습니다. 우리가 이것도 부처님 당시처럼 몸은 재가에 두더라도 수행자 그룹으로 복원하려는 것입니다. 수행자라고 하면 수행자다운 몸과 마음을 가져야 수행자입니다. 인생의 주목적을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출세하는 것도 아니라 해탈과 열반에 두는 것이 수행자입니다. 그리고 불교의 목표는 깨달음이 아닙니다. 목표를 깨달음이라고 하니까 자꾸 환상이 생기는 거예요. 목표는 해탈과 열반입니다. 해탈과 열반에 이르는 방법이 깨달음이에요. 무지를 깨치면 해탈과 열반에 도달할 수 있는 거예요. 그 깨침의 길로 가는 데 있어서는 고정된 길이 없고, 그 조건에서 가장 맞는 길이어야한다는 것이 중도입니다.

그 길을 가는 데는 각자의 처지에 따라서 방식을 달리 합니다. 출가해서 온전히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있고 재가에 있으면서 점진적으로 가는 것도 있습니다. 대승불교에서 상가라는 것은 수행자의 모임입니다.

테라밧다에서는 재가신자가 수행자 그룹을 후원하는 것이므로 출가 오중만이 상가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대승에는 상가의 구성원이 사부 대중입니다. 대승은 상가를 보살승으로 구성합니다. 그래서 출가 여부는 상관이 없습니다.

정토회에서는 ‘무엇으로 상가를 구성할 것인가. 완전히 출가한 한 사람인 실무자로 정토회의 지도부를 구성할 것인가, 대중으로 지도부를 구성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었습니다. 전문가 그룹으로 상가를 구성하면 운영이 효율적입니다. 그러나 어렵지만 부처님 당시처럼 구현해 보자고 하여 '대중 주체’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첫 창립 때부터 목표로 정했습니다. 초기 상가는 저와 출가한 대중들 그 당시 전문가 그룹으로만 상가를 구성했습니다. 상가를 총회라는 이름으로 구성했습니다. 점점 그 구성원에 재가 그룹도 참가 구성원이 되었는데 수행자를 지향해야 참가 구성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상가 구성원이 발심 행자입니다. 발심 행자란 인생의 목표가 부처되는 것이라 밝힌 사람입니다. 그런데 정토회에 이 목표를 안 가진 사람도 자꾸 들어오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 목표만 가진 사람만 모으기로 했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자꾸 오게 되니까 잘못하면 종교집단으로 전락할 수 있겠다 싶어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대중을 수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하여 정회원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정회원은 정토회원 중에서 자발적으로 자기 정체성을 수행자라고 밝힌 사람들입니다.

정회원과 일반회원과의 차이는 의무입니다. 수행자라고 하는 정회원은 수행을 의무적으로 해야 합니다. 또 보시, 봉사도 해야 합니다. 그래도 수행자라는 이름을 가지려면 최소한 한 달에 하루는 봉사를 해야 합니다. 1주일에 2시간, 4주에 8시간은 해야 합니다. 또, 수입의 일부를 의무로 보시를 해야 해요. 그리고 하루에 한 시간은 수행을 해야 합니다. 그냥 정토회원은 신자로서 기분 내킬 대로 수행을 하면 됩니다. 그런 사람은 이름을 수행자라고 붙일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정토회에 소속감을 가지고 참여하다 기분이 나빠지면 언제든지 안 나와도 됩니다. 그러나 정회원은 싫어도 의무를 해야 합니다. 정회원은 부담스럽다는 사람은 여기서 얘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인생의 목표와 자기 정체성을 수행자로 정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정회원입니다.”

스님은 정회원의 의미에 대해 명확하게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러나 법당 운영에 있어서는 정회원/비정회원은 구분하지 않고 모두 참여하도록 하되, 전체 차원에서는 정회원이 모여서 정회원 대회를 열면 됩니다. 두 번째, 부처님 당시에 해탈과 열반으로 가는 길에 있어 세속적인 일체 차별을 없앴습니다. 수행자 그룹이기 때문에 상가에 원칙에 따라 평등을 유지해야 합니다. 봉건제 신분사회라도 출가해서 상가 수행자 그룹에는 하인이라는 시스템이 없도록 했습니다. 종으로 있다 상가에 들어오더라도 하인이 아나라 주체 멤버입니다. 그래서 귀족인 아난다와 천민인 우파리가 함께 들어와서 상가의 멤버였습니다. 그래서 상가에 들어와서는 신분의 차별이 없어요. 사장과 종업원이라 하더라도 정토회에서는 동등한 회원입니다.

상가는 신분사회에서도 신분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신라, 고려시대에는 상가 안에 신분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위대한 학승, 율승이라고는 할 수 있지만 부처님 같은 수행자라고 할 수 있는 분은 원효대사 같은 분입니다. 알려진 분 중에 종교지도자는 있지만 수행자는 없습니다. 수행자는 봉건제의 신분제 시스템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월급을 받고 노동을 합니다. 요즘 모든 절에는 일을 하고 월급을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신분제 사회에서 절에 하인을 두는 것과 같습니다. 부처님은 하인을 안 가지고 어떻게 살아갔을까? 부처님은 사는 방식을 바꿨습니다. 걸식으로 하인이 필요 없어졌습니다. 부잣집 아들이라 하더라도 수행자가 되려고 하면 이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붓다의 인격을 훌륭한 종교지도자와 비교하는 사람은 붓다를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붓다는 이미 신분사회에서 신분을 벗어났습니다.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를 벗어났다 하는 것보다 100배는 더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수행자 그룹이 되려면 수행자가 되어야 합니다. 상가를 구성하려면 일을 나누어서 하고 돈을 내야 합니다. 보시와 봉사는 수행자 그룹으로 존립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예요. 정토회에 서비스해 줄 사람은 따로 없습니다. 도반만 있어요. 그래서 역할만 나눠서 할 뿐입니다.

수행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보시와 봉사가 자동적으로 안 붙을 수 없습니다. 수행자가 되려면 수행을 해야 하고 멤버가 되려면 봉사와 보시를 해야 합니다. 전적으로 들어와서 24시간 출가수행자의 경우 보시의 의무가 없습니다. 인생의 모든 시간을 봉사하고 있기 때입니다.”

스님은 정회원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더불어 우리가 왜 우리가 왜 정회원을 지향하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이어 바로 총 9명이 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어려운 점을 스님께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 한 사람의 질문을 들으면서 현지에서 수행자로서 활동가로서의 어려움이 곳곳에 묻어났습니다. 스님도 애정을 가지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애정 어린 답변을 했습니다. 그중 도반과의 갈등으로 힘든 분과의 대화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저만 없어지면 갈등이 해결될까요?

“저는 분별심입니다.(웃음) 작년에 스님께서 이렇게 법명을 지어주셨어요.”

“분별심이라고요?” (모두 웃음)

“네. 제가 지금 정신 상태도, 몸 상태도 너무 피곤하고 안 좋아서 제가 횡설수설할 수 있어요.”

“네.”

“저는 총무님 하고 갈등이 굉장히 심합니다. 불대 담당 때부터 갈등이 시작됐고 불대 담당이 끝나는 시점에 갈등이 폭발했습니다. 그 이후에 제가 정토회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은 정회원이지만 아무런 소임이 없는 상태로 1년을 지내고 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도반들도 다 저를 싫어하더라고요. 어느 순간에 제가 왕따가 돼 있었습니다. 저는 그래도 ‘상관없다, 나는 경전 공부를 하려고 왔으니 내 공부만 하면 된다. 차라리 잘됐다, 공부하면서 봉사하느니 차라리 내 공부만 하고 편하게 살아야겠다’라고 생각하며 경전반 수업을 듣고 있었어요.

최근에 저를 싫어하는 두 도반과 같이 경전반 수업을 듣고 나누기에서 두 분이 수업을 듣는 모습에서 불편함이 올라왔다고 얘기했습니다. 진지한 자세로 강의를 들으셨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두 분이 그날로 경전반을 그만두셨습니다. 그 일이 있기 전에는 갈등의 원인이 무엇이든지 나는 상관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는데, 그때 이후로 이건 좀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무엇이 아니라는 거예요? 내가 나를 돌아보고 나를 고쳐야 되겠다는 거예요, 아니면 정토회의 운영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거예요?”

“저는 정토회를 정토회답게, 도반들이 수행적 관점을 지켜가면서 생활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조언을 해줬는데 그게 오히려 도반들과 갈등을 일으켰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화가 나는 것에 대해서도 ‘내 잘못이 아니다. 당신들이 잘못했기 때문이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친동생도 저에게 지적하는 내용 중에 하나가 제가 공감할 줄 모른다는 거예요. 다른 사람이 화가 나면 ‘네가 지금 화가 났구나’고 공감해주는 말 한 마디면 끝나는데 거기에 대고 ‘그게 왜 화가 날 일이냐?’며 따지기 때문에 동생도 저에게 화가 난다고 몇 번 얘기했거든요.

지난번에 수련을 했는데, 제가 ‘저 하나 없으면 정토회가 편안해지겠네요’라고 말했어요. 그런데 도반들이 아무 말도 안 하시더라고요.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는데 이번 경전반에서 도반 두 명이 그만두면서 정말로 저 한 명만 없으면 정토회가 편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분들이 법회에도 안 나오고 밴드에 나누기도 안 하는 게 다 제 탓인 거 같습니다. 저 하나만 그만두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 같습니다. 저 하나 없이도 정토회는 잘 굴러가고 잘 진행되더라고요.”

“질문자는 지금 수행적 관점을 놓치고 있어요. 제가 늘 얘기하잖아요. 여기 칼이 하나 있는데 이 칼은 흉기도 아니고 도구도 아니에요. 칼을 요리하는 데 쓰면 유용한 도구가 되고, 사람을 찌르는데 쓰면 흉기가 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나에게 적용해야지 남에게 적용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질문자는 자꾸 부처님의 가르침을 남에게 적용하는 거예요. 부처님의 가르침은 늘 나에게 적용해서 내가 화가 날 때, ‘이게 화날 일인가?’ 이렇게 살펴야 하는데 남에게 적용해서 ‘네가 그게 화날 일이야?’ 이렇게 얘기하면 그건 상대방에게 흉기가 되는 거예요. 질문자는 전혀 부처님 법하고 안 맞는 삶을 살고 있어요. 질문자는 부처님 법을 스스로에게 실천하지 않고, 남에게 적용하며 흉기로 쓰고 있어요. 부처님 법은 항상 나에게만 적용해야 하는 거예요.

예를 들면 ‘때 아닌 때 먹지 않는다’는 계율은 나에게 적용해야 하거든요. 다른 사람에게 ‘왜 때 아닌 때 밥을 먹니?’ 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정토회에서 때 아닌 때에 먹지 말라고 하지 않았어? 정토회에 캔 가져오지 말라고 하지 않았어? 캔을 왜 가져오니?’ 질문자는 이런 스타일이에요. 자기에게 적용시켜야 할 일을 지금 거꾸로 타인에게 적용하고 있는 거예요. 캔을 안 가져오는 건 내가 지켜야 할 일이죠.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면 시비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포살이라는 게 있잖아요. 정토회 활동을 함께 하며 도반들의 행동을 보니 의심이 생기는 거예요. 정토회에서는 일회용품을 안 쓰기로 했는데 자꾸 쓰는 도반을 보고 ‘너 왜 일회용품을 안 쓰기로 했는데 쓰니?’ 이렇게 말하면 안 돼요. 이건 시비심이에요. 그때도 내가 불편하면 안 되는 거예요. 내가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고, 도반님. 우리 일회용 안 쓰기로 돼 있는데 어쩔 수 없이 쓰셨나요?’ 이런 식으로 부드럽게 얘기를 하든지 아니면 말을 안 해야 해요. 계율을 어긴 것은 그 사람의 문제이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포살을 하는 이유는 도반 간에 의혹을 풀어주기 위해서예요. 포살을 하면서 ‘제가 이번에 일회용을 썼습니다. 안 쓰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또 썼어요’ 그러면 ‘저 사람은 알고는 있는데 잘 안 고쳐지구나’ 이렇게 상대방을 이해하는 거예요. 그리고 본인이 도반들에게 요청을 합니다. ‘제가 뭘 고쳤으면 좋겠습니까? 저를 위해서 지적해주세요’ 이렇게 본인이 청 했을 때만 상대방을 위해서 말할 수 있는 거예요. 그때 ‘제가 보기에 일회용을 자주 쓰시는 거 같던데 계율에 어긋난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며 문제를 제기하면 됩니다.

질문자가 근본적으로 관점이 안 잡히니까 ‘나 하나만 정토회에 안 나오면 되겠네’라고 생각을 하는데 이런 게 세속적인 생각이에요. ‘우리 이혼하면 되겠네’ 이거 하고 똑같은 거예요. ‘내가 이걸 놓쳤구나’ 하고 깨닫고 다녀야죠.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잘 다니면 되겠네. 나만 정토회 안 나오면 되겠네’ 이런 생각은 수행자적 관점이 아니에요. 내 뜻대로 안 되니까 외면하는 거예요.

그래서 질문자는 첫째, 자기가 자기의 문제를 탁 깨달아서 항상 자기에게 적용해야 해요. 특히 질문자는 모든 걸 자기에게 적용해야 해요. ‘올해 1년은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계율을 나에게만 적용하지 남에게 적용하지 말자.’ 이렇게 해서 목표를 정하고 자기를 고쳐나가야 해요.

두 번째, 그게 지금 사람들과 갈등이 있는 곳에서 도저히 안 고쳐지면 다른 곳으로 옮겨보세요. 1년만 다른 정토회로 이적하든지 아니면 온라인으로 옮기든지 하세요. 질문자가 업식을 고치려는데 잘 안 돼서 자꾸 남을 불편하게 하니까 ‘아, 그러면 내가 정토회에 안 나오면 되겠네’라고 생각할 게 아니에요. 정토회 도반들에게 ‘제 문제가 자각은 되는데 잘 안 고쳐져서 여러분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 제가 이적을 해서 1년간 노력을 해보겠습니다’라고 이야기해보세요. 그러면 도반들이 ‘괜찮아요. 우리도 우리 업식을 잘 못 고쳐요. 그냥 붙어 있어요’라고 하면 도반들이 괜찮다니까 붙어있으면 돼요.

그런데 다른 사람이 질문자가 옮기는 것을 속 시원해하면 도반들을 위해서 다른 곳으로 옮기면 돼요. 아무도 안 말린다 그랬잖아요. 그러면 질문자가 다른 정토회에 다니면서 개선해서 다시 복귀하면 돼요. 우리는 공식적으로 법당을 옮기는 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부처님 법을 자꾸 남에게 적용하지 마세요. 그 사람들도 눈 달렸고 귀 달렸고 자기 생각이 다 있어요. 자기들이 알아서 부족한 건 부족한 대로 해요. 질문자가 지적할 건 하나도 없어야 해요. 우리 도반들이 조금씩 부족하더라도 모두 다 얼마나 귀한 사람들이에요? 이 어려운 타지에 와서 자기 살기도 바쁜데 자기 생활도 하면서 봉사도 하잖아요. 물론 저도 부족하고 그들도 부족해요. 부족한 사람끼리 모여서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는데 질문자가 자꾸 거기에 문제를 제기하면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부모가 자식에게 밥해주고 공부시켜줘도 자식은 잔소리 듣기 싫다고 집을 뛰쳐나와서 문경에서 백일 출가하며 속된 말로 개고생 하잖아요. 그래도 잔소리 안 하는 거 때문에 여기 붙어살지, 집에 안 들어가려고 한단 말이에요. 잔소리라는 게 그만큼 사람한테 나쁜 영향을 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질문자에게 분별심 생기면 계속 절을 하고, 문제 제기는 남에게 하지 말고 자기에게만 하세요. 입이 잘 안 붙어있고 말이 자꾸 나오고 불편하면 적을 옮겨서 한 1년간 다녀보세요.”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나의 전공과는 좀 다른 의료봉사를 가게 되었는데 어떤 마음가짐으로 가야 할까요?
  • 해외에서는 불교대학이 2년 과정이라 사람들이 하기 어려운데, 학기제 도입이 가능할까요?
    지금까지는 격주 법회라 격주로 공간을 빌려서 임대로가 저렴했는데 앞으로 매주 법회를 하려고 하니 임대료가 걱정이에요.
  • 5년 후에 미국인 남편과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독일에서 계속 살고 싶어요.
  • 포살법회 때 놓치고 참회를 못했는데 나중에 생각이 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 외국인과 한국인이 같이 영어자막 법문을 들으면 나누기는 영어로 해야 하나요, 한국어로 해야 하나요?
  • 총무 소임을 내려놓은 후 선임자로서 후임을 위해 어느 정도까지 도와주어야 할까요?

어느덧 시간은 9시 30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이 마지막 밤이고 밝은 훤하게 밝아 있습니다. 스님과 함께 둘러앉아 노래도 부르고 그동안 어려움도 같이 공유하고 왁자지껄하게 웃고 손뼉 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11시 가 넘어서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1분 스피치를 하기 위해 둥그렇게 둘러앉아 노래 부를 사람은 노래를, 얘기할 사람은 얘기를 하면서 즐겁고 유쾌한 둘째 날 밤이 깊어갑니다. 한 분 한 분의 얘기가 감동스럽습니다. 2009년 첫 해외 정토행자를 연지 10년 만에 그때보다 더 많은 분들이 유럽지구 정토행자에 있다는 것도 감격스럽습니다.

1분 스피치를 하면서 눈시울을 붉히는 분, 웃다 울다를 반복하지만 이것이 바로 기적을 만들어 가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한 분 한 분의 얘기가 지금 있는 자리에서 작은 붓다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모습에 감동이 절로 됩니다. 밤이 깊어가지만 밝도 아직 환하고 감동의 여운에 잠이 쉬이 들지 않습니다.

북한은 지금 춘궁기 보릿고개로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습니다. 감자를 수확하는 7월까지 북한의 아이들은 먹을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보내는 옥수수 1만 톤은 북한 아이들이 보릿고개를 넘기는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에 함께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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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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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여러 봉사자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_^

2019-07-24 21:20:25

박선영

속으로 겉으로 분별심 낸것 깊이 참회합니다. 부처님 말씀은 오직 나에게만 적용하겠습니다. 글을 읽으며 제가 했던 온갖 분별들이 떠올라 부끄럽고 죄송했습니다. _()_

2019-07-01 15:46:02

산나무

읽는것만으로도 감동입니다

2019-06-26 22: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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