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7.2. 해외 순회강연(9) 홍콩
“정체성이 혼란스럽다는 딸을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요?”

먼저 옥수수 1만 톤 모금이 달성된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 말씀을 전하며 스님의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 영상은 해외 순회 강연 중인 법륜 스님이 옥수수 1만 톤 모금 달성 소식을 전해 듣고 지난 6월30일 방콕에서 촬영한 것입니다.

새벽 4시 30분, 스님은 오늘도 어김없이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어느 곳에서든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새벽예불과 천일결사 기도입니다.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바로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소문대로 출근시간 호찌민 시의 교통체증은 심했습니다. 오토바이 부대가 거대한 물결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느릿느릿 가는 차 안에서 베트남을 잠시나마 느껴보았습니다.

호찌민에서 비행기를 타고 2시간 30분이 지나자 저 멀리 홍콩섬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공항에는 자원봉사자들이 마중 나와 있었습니다.

공항에서 홍콩 시내로 들어오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숙소에 도착하니 홍콩 상공회 강기석 회장님과 필리핀 jts 부대표 이규초 님이 마중 나와 있었습니다. 강기석 님은 홍콩에 스님을 초청하고 싶어서 1년 전부터 스님의 일정을 파악하여 강연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5년 만에 홍콩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규초 님은 어제 홍콩에 도착해서 강연 준비를 함께 했습니다.

스님은 두 분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급히 처리해야 할 업무를 하다가 바로 오늘 강연장인 홍콩대학교로 출발했습니다. 홍콩대학교 교수 이정재 님이 장소를 섭외해주어 큰 강당에서 강연을 할 수 있었습니다.

홍콩에는 한인 교민이 만여 명 거주한다고 합니다. 단기 거주자와 유학생까지 합하면 훨씬 더 많을 거라고 합니다. 홍콩으로 유학 온 한국인은 천이백여 명 정도라고 합니다. 꽤 많은 한국인들이 사는 홍콩에 5년 만에 다시 강연을 하게 되어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은 무척 기뻐했습니다.

홍콩대학교에 들어서니 자원봉사자들이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은 “고맙습니다”라며 합장했습니다.

강연을 하기 전 오늘 강연이 열릴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들과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홍콩대학교 강당을 섭외해주신 이재정 님은 2014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열린 즉문즉설 강연에 참석했다고 합니다. 그때는 학생이었는데, 지금은 교수가 되었습니다. 옥타 홍콩 지회장 나정주 님은 스님의 책을 중국어로 출판하고, 즉문즉설 영상을 중국어로도 번역해서 올리고 싶다고 했습니다.

7시가 되자 3백여 명이 모인 가운데 즉문즉설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행복전도사 법륜스님의 행복한 대화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오늘 강연은 홍콩 한인 상공회 초청으로 열렸습니다. 먼저 홍콩 한인 상공회 강기석 회장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오늘 강연을 1년 전부터 기획하고 6개월간 준비했습니다. 법륜스님을 모시고 함께 행복한 시간을 갖게 되어 기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마음을 쉴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 강연을 위해 애써준 많은 봉사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어서 스님이 연단 앞으로 나왔습니다. 박수와 환호가 길게 이어졌습니다.

“상공회 강기석 회장님이 특별히 초청해주셔서 오늘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회장님을 위해 다시 한번 박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저기 띠를 두르고 강연을 진행하시는 분들은 모두 자원봉사를 하는 분들입니다. 자원봉사자들에게도 박수 부탁드립니다.” (모두 박수)

질문을 신청한 사람이 13명이나 되어 스님은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바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쉴 틈 없이 질문을 받았지만 총 8명과 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그중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딸을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모르겠다는 아버지의 질문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정체성이 혼란스럽다는 딸을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요?

“저는 세계화 시대에 맞춰서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살고 있습니다. 뉴질랜드에서 막내딸을 낳고 키우다가 중간에 한국에 가서 6개월 살고, 마카오에서 6개월 살고, 다시 뉴질랜드로 갔다가 지금은 다시 마카오에서 살고 있습니다. 어느 날 막내딸이 학교에서 자기 인생에 대해 적은 글을 보게 됐어요.

‘나는 뉴질랜드에서 태어났는데 부모님은 한국 사람입니다. 나는 지금 마카오에 살고 있고, 친구들은 영어를 하기도 하고, 중국어를 하기도 합니다. 집에 가면 부모님은 한국어를 합니다. 그래서 나는 영어, 한국어, 중국어, 광둥어를 할 줄 압니다. 하지만 뭘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언어가 없어요. 나는 과연 누구일까요.’

아이가 쓴 이 글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아빠로서 아이를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요?”

“그게 너의 정체성이라고 말해주면 되죠.”

스님의 첫마디에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한국인 부모를 두고 한국에서 태어나서 한국에서 자라야 정체성을 갖게 되나요? 한국에서 태어났는데, 시민권은 호주 시민권을 갖고 있고, 살기는 뉴질랜드에 산다면, 이것은 정체성이 아닌가요? 이것은 정체성의 기준이 무엇이냐에 대한 문제입니다.

옛날에는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는 곳을 옮기기 어려웠습니다. 대부분 태어난 지역에서 평생 살았어요. 그것을 기초로 정체성이 생긴 거죠. 부모님이 한국인이고, 한국에서 태어나고, 한국말을 하고, 한국에서 사는 것을 한국인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했어요. 부모가 중국 사람이고, 중국에서 태어나고, 중국에서 살고, 중국말을 해야 중국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19세기부터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면서 인구 이동이 증가했습니다. 그래서 태어난 곳과 사는 곳이 다른 사람, 즉 태어난 나라와 지금 살고 있는 나라가 다른 사람들이 많이 생기게 됐습니다. 거기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국적이 다른 경우도 많이 생겼어요. 태어난 곳, 자란 곳, 지금 사는 곳, 국적이 다 다른 경우도 많아요. 공항에서 출입국 심사 카드를 쓸 때도 국적, 태어난 곳, 거주지를 각각 써야 하잖아요. 저도 처음에는 이것도 한국, 저것도 한국이라 똑같은 것을 여러 번 묻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해외를 다녀 보니까 태어난 곳, 거주지, 국적이 다른 사람이 엄청 많더라고요. 이렇게 세상이 변했습니다. 더 이상 국적과 거주지, 태어난 곳이 같은 것만이 그 사람의 정체성이 아니에요. 다 다른 것도 정체성입니다.

예전에는 거주 이전이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에 국적과 거주지가 같은 사람이 대다수였습니다. 지금도 이동하는 사람이 늘었다 해도 아직 소수이다 보니까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게 되는 겁니다. 이것을 정체성이 없는 것처럼 인식하기 쉬운데, 태어난 곳과 사는 곳이 다른 것도 나의 정체성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다양성이 정체성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물을 인식할 때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사물을 인식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어떤 것은 보는 것으로, 어떤 것은 소리로, 어떤 것은 냄새로, 어떤 것은 맛으로, 어떤 것은 감촉으로, 어떤 것은 생각으로 사물을 인식합니다. 만약 귀가 안 들린다면, 또 냄새를 잘 못 맡는다면, 눈의 역할이 커집니다. 사람은 눈으로 사물의 90% 이상을 인식합니다. 사람은 다른 동물보다 귀나 코의 기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에요. 눈이 워낙 정확하기 때문에 다른 기능을 사용하지 않다 보니 그 기능이 축소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눈을 다쳐서 안 보인다면 당연히 귀와 손의 기능이 발달하게 됩니다.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은 눈이 보이는 사람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소리를 듣고 판단합니다. 지팡이로 바닥을 톡톡 두드려서 그 소리만 듣고도 앞에 무엇이 있는지 구분해서 갈 수가 있어요. 또 그런 분들이 직업으로 마사지를 많이 하는 이유는 손의 감각이 굉장히 발달했기 때문입니다. 손으로 만져 보기만 해도 몸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겁니다. 이런 것처럼 이제는 다양성이 정체성입니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한국에서 자랐다면, 한국말을 잘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잖아요. 영국에서 태어나서 영국에서 자랐다면, 당연히 영어를 잘하겠죠. 그런데 한국에서 태어나서 10살까지 살다가 영국에 가서 살았다면 어떨까요? 한국 사람보다 한국말이 당연히 서툴 수밖에 없겠죠. 그런데도 한국말을 한국 사람처럼 하겠다는 것은 욕심인 거예요. 한국에서 30년 살아온 사람과 어릴 때 10년밖에 살지 않은 사람이 똑같이 한국말을 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한국에서 10년을 산 후 영국에서 20년을 산 사람이 영국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30년을 살아온 사람처럼 영어를 잘할 수는 없는 거예요. 이런 사람은 정체성을 이렇게 가져야 합니다.

‘너희들은 영어밖에 할 줄 모르지? 너희들은 한국말밖에 모르지? 난 두 개 언어를 다 할 줄 안다.’

이것이 이 사람의 정체성이에요. ‘한국 사람보다 한국말을 못 한다’라고 생각하면 안 되고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영국 사람들 중에서 한국말을 나만큼 할 수 있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한국 사람들 중에서 영어를 나만큼 할 수 있는 사람 나와 보라고 해!’

관점을 이렇게 가지면 스스로가 굉장히 우월해지는 겁니다. 존재 자체는 열등한 것도 없고, 우월한 것도 없어요. 그러나 비교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우월감이 생기기도 하고, 열등감이 생기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어느 정도 자라다가 호주에 가서 산 사람이 한국말을 한국 사람하고 비교하고, 영어를 호주 사람하고 비교하니까 당연히 열등감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겁니다. 한국말은 호주 사람하고 비교하고, 영어는 한국 사람하고 비교하면, 나는 한국말도 호주 사람보다 잘하고, 영어도 한국 사람보다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열등감은 욕심에 사로잡혀서 비교를 잘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이에요.

아이를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지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아이들이 갖는 열등의식이나 정체성 혼란은 이사를 다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에요. 부모가 그것을 열등하게 생각하고 두려워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도 열등의식이 생기게 되는 거예요. 집이 가난하다고 해서 아이들에게 열등의식이 생기는 것이 아니고, 엄마가 가난한 것에 대해서 늘 움츠려 들어 있으면 그걸 보고 자란 아이들도 가난에 대해 열등의식이 생기게 되는 겁니다.

남편 없이 아이를 키웠다고 해서 아이에게 열등의식이 생기는 것이 아니에요. 엄마가 남편 없이 사는 것에 대해 늘 부족함을 느끼고 살기 때문에 아이도 아빠라는 존재가 없다는 것에 대해 부족함을 느끼게 되는 겁니다. 결혼은 하기 싫고, 아이는 갖고 싶고, 그래서 정자은행에 가서 인공 수정을 해서 아이를 낳았다면, 이 여성은 아이를 키우고 살면서 남편이 없음에 대해서 부족함을 전혀 안 느낍니다. 지금 프랑스에는 이런 여성들이 많아요. 그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아무 문제가 없어요. 아이가 ‘아빠는 어디 있어?’라고 물으면 ‘아빠가 왜 필요하니? 엄마가 너한테 부족하니? 뭐가 부족한지 말해봐’ 이렇게 말해야 하는데, 엄마가 기가 죽어서 스스로 열등의식을 갖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도 열등의식이 생기는 겁니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아이를 자꾸 나무라면 아이는 기가 죽을 수밖에 없어요. 자기 엄마와 아빠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하는 아이가 어떻게 자존감이 있겠어요? 천하가 인정을 안 해줘도 엄마는 ‘괜찮아!’ 이렇게 얘기해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가 자존감을 가질 수 있어요. 옛날부터 이런 말이 있어요. 소는 호랑이한테 잡혀 먹히잖아요. 그런데 사람이 소의 고삐를 딱 쥐고 호랑이한테 같이 대응을 하면 소가 이긴다고 해요.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해서 사람이 소를 버리고 도망가면, 소도 호랑이한테 잡아먹힙니다. 그런데 사람이 소의 고삐를 딱 잡고 같이 대응하면, 소가 뿔로 호랑이를 잡습니다. 부모도 자식을 이런 자세로 대하는 게 필요합니다.

아이들의 열등의식은 어릴 때 생깁니다. 부모가 자신의 삶에 대해서 열등의식을 느끼고 움츠려 들면 아이에게 영향을 줍니다.

‘요즘 같이 이 좋은 세상에 한국에서 태어나서 한국에서만 살면 얼마나 불쌍하니? 너는 굉장히 좋은 거야! 태어난 곳은 뉴질랜드이고, 국적은 한국이고, 살기는 마카오에서 살고, 이렇게 세 가지를 갖고 있으니까 얼마나 좋니? 괜찮아!’

아이에게 이렇게 격려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남편이 다혈질이에요. 아이들에게 잘해주다가도 화를 내고 소리를 질러요.
  • 이유 없이 불안합니다. 불안한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 딸이 세 살입니다. 딸 친구와 엄마가 잘못된 행동을 해서 따라 배울까 봐 걱정돼요.
  • 고등학교 1학년입니다. 아버지를 따라 전학을 많이 다녔습니다. 친구를 사귀는데 어려움은 없지만 진정한 친구가 없어요.
  • 대학생입니다. 연애중독에 걸린 것 같아요.
  • 요즘 뉴스 보기가 두려워요. 어느 날부터 자식이 부모를, 부모가 자식을, 아내가 남편을, 남편이 아내를 죽이는 사건을 매일 접하고 있습니다. 평범한 시민인 제가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화 내내 웃음이 넘쳐났습니다. 청중은 배꼽이 빠질 것 같이 크게 웃었습니다. 눈 깜짝 할 사이에 두 시간이 지났습니다.

“아이고, 열심히 했는데 아직 5명이 남았네요. 죄송합니다. 그럼 질문하신 분들의 소감을 들어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질문자들의 소감을 들어보았습니다.

“기쁩니다. 어떤 삶을 살더라도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한 발 물러나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것을 인정하고 나를 조금 더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인생에 정답은 없습니다.”
“저희 사회가 더 건전한 사회가 되도록, 저 자신부터 좀 더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청중은 질문자가 깨달은 이야기에 공감하고 기뻐하며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홍콩에서 열린 강연이라 그런지 스님은 강연을 마치며 폭동과 혁명의 차이를 언급했습니다. 진정한 혁명은 무엇인지 한국의 촛불 혁명을 예로 들자 청중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아직도 세상에는 많은 모순이 있는 것이 사실이에요. 한국 사회도 아직 많은 모순이 있지만, 옛날보다는 많이 좋아졌어요. 부정적으로만 보면 ‘헬 조선’이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그러나 먼저 긍정적인 관점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긍정적인 바탕 위에 비판적으로 봐야 ‘개선’을 할 수 있습니다.

남북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단은 우리에게 굉장한 아픔이고 비극이었어요. 그런데 지금 시점에서도 여전히 불행인지 따져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에요. 국가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포물선을 그리며 필연적으로 정체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유럽이 그 과정을 먼저 겪었어요. 일본도 가파르게 성장하다가 20년 전부터 정체 국면을 못 벗어나고 있습니다. 한국도 뒤따라서 성장하다가 지금은 정체 국면에 접어들었어요. 이렇게 국가가 성장을 멈추었을 때 과거에는 주로 다른 나라를 침략해서 정체 국면을 뚫었습니다. 100년 전 일본은 한국과 만주를 침략했고, 미국도 멕시코를 침략해서 서부 개척을 출구로 삼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다른 나라를 침략할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한국은 ‘북한 개발’이 하나의 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정치적인 통일을 하느냐는 그다음 문제예요. 북한 개발을 할 수 있으면 경제 성장의 출구를 마련할 수 있을 텐데, 지금 가장 큰 걸림돌이 평화 문제입니다. 평화 문제만 먼저 해결되어도 20여 년 동안 먹고살 수 있는 일거리가 생겨날 거예요. 그래서 북한 개발에 드는 비용은 투자 비용으로 계산해야 합니다.

그래서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들은 북한이 동아시아에 남은 마지막 투자 지역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물론 투자에는 약간의 투기성이 있습니다. 너무 단기적으로만 보면 투기가 되기 쉽지만, 길게 보면 북한은 아주 좋은 투자처입니다. 투자를 하려면 먼저 기반을 조성해야 하듯이 남북관계에서도 평화라는 기반을 먼저 조성해야 북한에 안정적으로 투자할 수 있어요. 그래서 지금 우여곡절을 겪고 있는 겁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가 어떤 사물을 볼 때도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면 안 됩니다. 자기 성격을 바꾸려고 할 때도 본질을 알고 출발해야 해요. 원래 성질은 잘 안 바뀝니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에요. 바꿀 수 있지만 무척 어려운 거예요. 그래서 자기 성질을 바꾸고 싶다면, 바꾸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출발해야 합니다. 바꾸기가 어려우니까 포기하고 성질대로 살아라는 뜻이 아니에요. 성질대로 살아서 그 과보를 받든 지, 그것이 싫다면 성질을 바꾸기 위해 더 큰 힘을 가해야 한다는 겁니다. 부처님의 6년 고행에서 보듯이 죽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옛 선사들은 팔을 자르기도 하고, 죽음을 겁내지 않았다고 하는 거예요. 이렇게 죽을 각오를 하는 것을 ‘대결정심’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인생을 살면서 죽을 각오를 하기가 쉽지 않아요. 자기를 바꾸겠다고 해놓고도 힘들면 금방 ‘내가 이렇게 까지 해서 바꿀 필요가 있나, 그냥 살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에게 늘 ‘그냥 성질대로 사세요’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죽을 각오를 할 정도는 아니지만 자신을 바꾸고는 싶다면 꾸준히 해야 합니다. 한 번에 3000배는 못하더라도 108배를 매일 10년 하는 거예요. 이렇게 꾸준히 하면 자신을 바꿀 수 있습니다.

부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방법은 이를 악물고 하라는 것이 아니에요. 중생의 근기에 맞게 꾸준히 하라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돌아가실 때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해라.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바위를 정으로 깨부수듯이 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낙숫물이 한 방울씩 똑똑똑 떨어지듯이 하라고 하셨어요. 낙숫물도 수만 년을 떨어지면 바위에 구멍이 뚫립니다. 꾸준히 하면 변화가 옵니다.

사회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번 바짝 하고 마는 것은 ‘폭동’이에요. 폭동으로 사회변화를 가져올 수는 없습니다. 한국의 촛불 혁명이 가장 대표적인 예예요. 한국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은 과격하지 않았어요. 소풍 나온 것처럼 가벼웠지만 대중이 많이 모여서 오래 동안 했기 때문에 변화가 일어난 겁니다. 지금까지 계속 끌고 왔으면 변화가 더 크게 일어났을 거예요. 정권이 바뀌고 나서 ‘앞으로는 잘하겠지’ 하고 내버려 두니까 또 원래대로 패를 갈라 싸우는 쪽으로 되돌아간 겁니다. 원래대로 돌아간 것 같지만, 또 자세히 보면 조금씩 좋아지고 있어요. 우리 인생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꾸준히 정진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누구나 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어요.”

강연 후 책 사인회까지 마친 뒤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 스님은 강연을 준비해주신 봉사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강연장 밖으로 나오니 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하나의 빗방울은 작지만, 빗방울이 모여 대지를 적십니다. 빗방울 같은 여러 사람들의 정성이 모여 오늘도 강연을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숙소로 돌아온 스님은 한국에서 급하게 업무 요청이 와서 업무를 보고 11시가 다 되어서 늦은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홍콩에는 지난 몇 주간 중국이 요구하는 '범죄인 인도 법안’ 일명 송환법 철회를 외치는 대규모 집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밤이 되어 잠잠한 거리에 자유를 향한 목소리가 새어 나오는 듯합니다.

내일은 상해에서 즉문즉설 강연이 열립니다. 상해에서 소식 전하겠습니다.

전체댓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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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여러 봉사자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_^

2019-08-02 21:08:52

은주

스님 감사히 들었습니다 ~ 좋은 말씀 이렇게 정리해 주시니 좋습니다..

2019-07-30 15:21:54

정지나

어디든 어느곳이든 고민과 아픔은 같네요
그래도 난 행복할 권리가 있다
감사합니다 꾸벅^^

2019-07-28 21:3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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