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9.11 북미 순회강연 (7) 미국 오스틴(Austin)
“경제력 없는 아들을 계속 도와주는 엄마가 속상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텍사스주의 주도인 오스틴(Austin)에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있는 날입니다.

스님은 내년 일정을 짜느라 어젯밤에는 거의 밤을 새우신 것 같습니다. 수행팀은 오전 4시 각자 방에서 108배와 명상을 하고 하루를 열었습니다. 기도 후에 이향희 님이 준비한 아침으로 식사를 하고 6시에 휴스턴으로 출발하기로 하였습니다.

휴스턴 출발 전에 이두라 총무님과 이향희 님 가족이 스님에게 삼배로 인사하였습니다. 스님도 매번 달라스를 방문하면 숙소와 음식을 제공하는 이향희 님에게 감사 인사를 하였습니다.

오스틴으로 가는 길에 텍사스의 남쪽에 위치한 휴스턴에 들러 백승신 님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중간에 잠시 홈디포(Home Depot)에 들러 농기구를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달라스에서 4시간 거리인 휴스턴 이윤주 님의 댁에 도착하니 백승신 님과 따님 유니스(Eunice) 님이 먼저 와서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백승신 님은 부모님의 유산으로 물려받은 토지를 정토회에 무상으로 기증하여 작년에 정토회로부터 특별상을 수상하였는데 건강이 좋지 않아 스님이 직접 방문하여 특별상을 시상하였습니다. 모두들 큰 박수로 감사 인사를 표했습니다.

2017년 휴스턴에 허리케인 하비가 와서 그때 휴스턴 지역에 침수 피해와 더불어 큰 피해가 있었습니다. 특히 한인들의 피해도 커서 한인회에서 수재를 입은 한인들을 돕기 위해 모금 운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스님이 휴스턴을 방문하여 강연 중에 그 소식을 듣고 한인회에 후원을 하였는데 그 소식이 지역신문에 났었다고 합니다. 이에 백승신 님은 공익을 위해 토지가 사용되기를 바라면서 불교단체에 토지를 기증할 생각을 하고 있다가 스님의 기사를 보고 정토 법회에 참석하여 토지를 기증할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 인연으로 작년에 정토회에서 특별상을 수상하였지만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 텍사스를 방문한 스님이 직접 상패와 부상을 가져와 전달했습니다.

백승신 님은 스님이 찾아온 것을 무척 기뻐했습니다. 따님은 30년 전에 한국을 방문한 것이 마지막이라고 합니다. 스님은 “건강이 좋아져서 의사가 비행기 여행을 해도 좋다고 하면 한국을 꼭 방문하라” 라고 하면서 백승신 님의 건강을 기원해 주었습니다.

함께 점심 식사도 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후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하고 오스틴으로 출발했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오스틴(Austin)은 텍사스 주의 주도이며, 처음부터 텍사스 공화국의 수도로 삼을 목적으로 건설된 계획도시입니다. 광역 오스틴의 인구는 약 2백만 명 정도이며, 오스틴 시 인구는 약 1백만 명 정도입니다. 이 중 유학생을 포함한 한인 동포의 수는 약 1만 명 정도로 추정합니다. 오스틴 지역에는 수백 개의 제조업 공장들이 자리 잡고 있으며, 전자 제품과 첨단기술 산업의 중심지로서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장을 비롯한 많은 정보통신업체들이 들어서 있는 실리콘 힐스(Silicon Hills)입니다. 애플, IBM, 인텔, 구글,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3M 등 수많은 기업들의 지사가 오스틴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미국의 컴퓨터 회사인 델 컴퓨터와 미국의 식자재 회사인 월푸드마켓도 오스틴에 본사를 두고 있습니다. 텍사스 대학교 및 여러 대학교들이 많아 텍사스 주의 주요 도시 중 가장 진보적인 도시로 주민들의 학력 수준도 높은 편입니다. 주 전체는 공화당 지지율이 높은데 이 도시는 민주당 지지율이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스님은 이번에 네 번째로 오스틴을 방문했습니다. 2014년 세계 100강 이후로 5년 만입니다. 휴스턴에서 2시간 30분 정도 걸려 오스틴 북쪽에 위치한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의 숙소에서 간단하게 이른 저녁식사를 하고 스님은 잠시 원고 교정 업무를 본 뒤 오늘 강연이 열리는 오스틴 한인회관으로 출발하였습니다.

강연장에 도착하니 주차장에서부터 봉사자들이 반갑게 스님을 맞이했습니다. 스님도 봉사자들에게 반갑게 인사하였습니다.

저녁 7시에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강연에는 100여 명이 참가하였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식사는 하고 오셨습니까?”

“예”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유튜브 다 보고 계세요?”

“예”

“법륜 스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따라온 사람 손들어보세요. 이런 사람들은 조심해야 돼요. 요즘은 누가 가자고 하더라도 그냥 따라 가면 안 돼요. (모두 웃음)

즉문즉설을 어떻게 하는지 다 아시지요? 강의를 하는 게 아니고, 여러분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는 이런저런 어려움과 의문들을 얘기하면 그것을 소재로 대화를 하는 것이 즉문즉설입니다.

이렇게 대화를 하다 보면 ‘어, 별거 아니네’, ‘어, 그럴 수도 있네’ 이렇게 자각을 하게 돼요. 제가 ‘이러면 안 된다, 저래야 한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어, 내가 화냈잖아! 내가 흥분했잖아!’ 이렇게 스스로 자신의 어리석음을 알아차리는 방식입니다. 이것을 ‘자각’이라고 해요. 즉, 스스로 깨우친다는 뜻입니다.

자각을 하게 되면 삶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아이들이 아무리 야단을 쳐도 말을 안 듣다가 ‘어, 이렇게 하면 내가 손해잖아’ 이렇게 스스로 알게 되면 아이가 변합니다. 옛날이야기를 보면 망나니인데 갑자기 바뀌어서 개과천선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개과천선을 했다면 그 원인이 뭘까요? 바로 자각입니다. 자각을 하게 되면 변화가 생기는 거예요.

제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게 아니고 대화를 나누다가 본인이 스스로 자각을 하는 대화입니다. 이런 대화를 ‘법담’이라고 합니다. 영어로는 ‘Dharma Talk’, ‘법의 대화', 이것이 즉문즉설입니다. 그러니까 질문하는 사람도 뭘 생각해서 하는 게 아니고, 저도 뭘 가르칠까 준비할 필요도 없고, 친구가 친구에게 얘기하듯이 편안하게 얘기하는 겁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첫째,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솔직하게 얘기해야 돼요. 속이고 얘기하면 즉문즉설이 안 됩니다. 둘째, 남의 얘기를 하는 것은 도움이 안 됩니다. ‘요즘 공부도 안 하고 말도 안 듣는 아이에게 좋은 말 좀 해주세요’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자기 이야기를 해야 됩니다. 자, 그럼 시작해봅니다.”

오늘 참가자 중에 유튜브를 보지 않는다고 손을 든 사람이 두 명밖에 없었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즉문즉설 강연에 익숙하기 때문에 스님은 바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6명의 질문자가 스님과 대화를 주고받았습니다. 그중에서 하나의 질문과 대화 내용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자기 얘기만 하라고 하셨는데, 저는 어머님 이야기예요. 저희 어머니는 팔순이 넘으셨고, 큰아들인 오빠는 이제 환갑이 넘었어요. 그런데 오빠가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아이 둘을 두고 이혼을 했어요. 그 이후로는 아이들도 못 봤고요. 오빠는 경제적으로 능력이 없어서 어머니의 도움을 지금까지 받고 살고 있습니다. 아버님은 아프셔서 어머니가 아버님을 한 10년 정도 병간호를 하시고 아버님은 6년 전에 별세를 하셨어요.

이제는 어머니 남은 생이 얼마 안 남으셨으니 마음 편하게 사셨으면 좋겠는데 오빠에 대한 걱정으로 집안이 편할 날이 없어요. 게다가 성실하지 못한 오빠는 집에도 잘 안 들어오고, 경제적으로 계속 어머니한테 기대서 삽니다. 어떻게 하면 어머니가 남은 여생을 좀 편안히 사실 수 있을까요? 아무리 위로를 해드리고 설득을 해도 어머니가 오빠에 대한 욕심을 못 내려놓으세요. 어머니가 50년 넘게 불교신자이시니 스님께서 말씀을 해주시면 훨씬 더 마음을 편안히 갖고 남은 생을 좀 마감하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오늘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시작할 때부터 남의 얘기하지 말라고 했죠?” (모두 웃음)

“근데 저희 집은 딸이 셋인데요 오빠에 대한 걱정으로 저희 딸 셋까지 온통 동원이 되가지고 엄마 쫓아다니느라 바쁘게 살아요. 그래서...”

“그럼 제가 한번 물어볼 테니 질문자가 대답을 해봐요. 질문자에게 애가 둘이 있다고 해봐요. 한 애는 장애아예요. 자기가 보니까 그 아이는 자립을 못하기 때문에 신경을 많이 써야 돼요. 그런데 다른 아이는 공부도 잘하고 성장해서 잘 살아요. 그런데 이 잘 사는 아이가 볼 때는 엄마가 이 장애아 형제 때문에 너무 고생을 많이 하는 것 같아 보여서 ‘엄마, 이제 얘는 놔두고 좀 편안하게 사세요’ 하고 편안히 잘 사시라고 매달 돈을 1000불 줬어요. 그럼 질문자는 그걸 갖고 어디 여행 다니고 맛있는 거 먹는 게 더 편해요? 장애 아이가 먹고사는데 쓰도록 주는 게 더 편해요?”

“스님, 그런데요. (모두 웃음) 일단은 그렇게 하고 있어요. 엄마가 오빠한테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에 저희 딸 셋이 불만은 없어요.”

“아니, 다른 사람 얘기 말고 자기 얘기를 해봐요.”

“제가 엄마라면 장애를 가진 아들한테 주죠. 그런데 저희 엄마는 오빠한테 돈을 다 주시고 저희들 딸 셋한테 하늘이 무너질 듯이 걱정을 하세요. 아들한테 돈을 주시고 저희한테 걱정을 하세요.”

“그러니까 질문자가 생각할 때는 엄마가 연세도 많으시니 이제는 아들 걱정 좀 안 하면 좋을 것 같죠. 그래서 엄마에게 ‘이제 편하게 사세요’ 하면서 돈도 드리고 관심도 가지는 거겠죠. 그런데 엄마 입장에서는 딸들이 그런다고 아무 걱정 안 하고 여행 다니며 맛있는 거 먹는 게 편할까요, 아니면 큰 아들을 경제적으로 좀 도와주는 게 편할까요?”

“도와주시고 편안하지 않으시니까 문제예요.”

“엄마는 놔두고 자기 얘기하라니까 계속 엄마 얘기만 하고 있네요. 질문자 같으면 어느 쪽이 더 편하겠어요?”

“장애아이라면... 그런데”

“자기 얘기만 하면 되는데 자꾸 이렇게 말을 하는 건 내가 엄마에 대해서 걱정하는 게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거예요?”

“아니, 제가 엄마라면 저는 그 아들한테 퍼주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아요.”

“그래요”

“어쩔 수 없잖아요. 아들이 그렇게 태어난걸 어떻게 해요. 그렇게 생겨먹은 걸요. 제가 경제력이 있어서 내 아들이 어쨌든 내 힘을 빌어서라도 저렇게 잘 살고 있으면 저는 편할 것 같긴 해요.”

“예를 들어서, 저기 아저씨가 계시는데, 연세든 아버님이 한국에 계신다고 해봐요. 시골에 가보니까 겨울에 춥게 해서 주무시고, 먹을 것도 빈약 하서 돈을 매달 500불씩 보내면서 ‘이거 아끼지 말고 먹는 것 좀 사 드시고 불도 좀 충분히 때서 따뜻하게 사세요’ 했어요. 그런데 1년 후에 가보니 사는 게 똑같아요. 방도 춥고, 돈도 없어요. 그래서 보내준 돈 다 어떻게 하셨냐고 물으니까 그 돈을 모아놨다가 망나니 손자한테 다 줘버렸다는 거예요. 화가 나나요, 안 나나요? 내가 조카 주려고 돈 보낸 건 아니잖아요. 아버님 쓰시라고 돈을 보냈죠. 그런데 문제는 아버님은 그 돈 갖고 자기가 맛있는 거 사 먹고 불을 따뜻하게 때는 것보다는 취직도 못한 저 손자 도와주는 게 더 좋은 거예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보기에는 아버님이 따뜻한 방에서 주무시고, 맛있는 음식 드시고, 손자 걱정 안 하는 게 중요하지만, 아버님에게는 손자를 어떻게든 자리 잡게 해주는 것이 더 원하는 일이라는 거예요. 그걸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엄마가 오빠 도와주는 게 마음이 편안하시면, 딸들한테 돈을 줘야 한다는 걱정을 안 하시면 되잖아요.”

“아들이 어려우니 도와주기는 해야 되고, 그렇다고 계속 도와줄 수는 없으니 짜증도 나고, 그래서 딸을 보면 너희 오빠 때문에 못 살겠다고 불평을 하고, 또 아들을 보면 도와주고, 그게 인간이에요.”

“그러면 저희가 그냥 엄마가 속상하신 거 들어드리는 방법밖에 없겠네요.”

“당연하죠. 그걸 이제 알았어요?”

“저는 엄마 이야기 들을 때 스트레스를 엄청 많이 받아요.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돼요? 그건 제 문제인가요?”

“그래요. 처음부터 그렇게 물었어야죠. (모두 웃음) 엄마가 질문자를 낳아서 키워줬으니 그 정도는 받아야죠.

사람이란 게 그렇잖아요. 예를 들면 밥을 다 차려놓고 밥 먹으라 하는데 애가 밥을 안 먹어요. 그러면 엄마가 뭐라고 해요? ‘너 안 먹을 거야? 안 먹으면 치운다?’ 그래도 얘가 꼼짝도 안 해서 치워버렸어요. 그런데 나중에 애가 밥 달라고 하면 어떻게 해요?”

“안 줘요.”

“애한테 ‘먹으라 할 땐 안 먹고 이게 또 달라 그런다. 안 차려줘!’ 이렇게 야단을 쳐놓고는 또 냉장고에서 반찬 꺼내서 차려준단 말이에요. 또 차려주는 것, 그게 엄마예요. 옆에 있는 사람이 볼 때는 아예 야단을 치지 말고 차려주든지, 야단을 치려면 차려주지를 말든지 하면 되는데, 왜 야단을 치고 또 차려주는데요?

한 할머니가 자기 딸 욕을 엄청나게 합니다. ‘나이가 들었는데 시집을 가지도 않고, 직장도 제대로 안 다니고, 방청소도 제대로 안 하고...’ 하면서 막 저한테 딸의 흉을 본단 말이에요. 흉을 다 보고 나서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스님, 어디 좋은 총각 하나 소개해 주세요.’ (모두 웃음)

그런데 남이 욕하는 것도 아니고 제 엄마가 욕하는 처녀를 내가 어디다 소개해 줍니까? 남이 보고 문제라고 그러면 또 다른 면이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제 엄마가 봐도 문제인 처녀를 어디다 소개해줘요? 그런데도 좋은 총각을 찾아 달래요. 이게 사람의 심리예요.

여러분들이 어릴 때 엄마가 주는 젖도 먹고, 엄마가 해주는 밥도 먹고 자랐기 때문에 엄마에게 애정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엄마가 야단을 치면 또 상처가 생겨요. 그러니까 엄마가 준 상처를 생각하면 보기 싫고, 또 엄마에게 든 정을 생각하면 또 불쌍하고, 그래서 여러분이 늘 멀리 떨어져 있으면 ‘아이고, 우리 엄마 어떡하나’ 하고 걱정합니다. 그 상처는 잊고 정만 생각해서 그렇게 해요. 그래 놓고 엄마 집에 가서는 하루도 못 견디고 싸워서 성질을 내고 ‘다시는 안 온다’ 그럽니다. 그리고 자기 집에 와서 또 엄마를 그리워해요. 이게 인간이다, 중생이다, 이 말이에요.

다른 말로 하면 자기 엄마가 부처가 아닌 이상은 그게 보통 사람 수준이에요. 특별히 나쁜 사람도 아니고, 문제 있는 사람도 아니고, 보통 사람이에요. 엄마는 아들 도와주고 걱정하듯이, 질문자도 똑같이 엄마한테 잘해주고 엄마를 걱정하는 겁니다. 그러니 ‘그 엄마에 그 딸이다’ 이 말이에요. (모두 웃음)

‘엄마가 오빠한테 해주기는 해 주고 걱정은 안 했으면 좋겠다’, ‘엄마가 오빠에게 돈을 주든지 안주든지 걱정은 안 했으면 좋겠다’ 하듯이 자기도 엄마 걱정을 안 하는 게 좋아요. 질문자가 ‘오빠가 어떻게 하든 엄마는 걱정 안 했으면 좋겠다’ 하고 원하듯이, 저도 ‘엄마가 어떻게 하든 질문자도 걱정을 안 했으면 좋겠다’라고 조언을 드리고 싶어요.”

“그렇게 안 돼요.” (모두 웃음)

“질문자가 안 되면 엄마도 안 되는 거예요.”

“그러네요, 정말 그러네요.”

“여기서 핵심은 ‘엄마가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 하는 건 엄마 문제가 아니고 사실 자기 문제라는 거예요. 엄마가 어떻게 하든, 엄마가 오빠 욕을 하던, 엄마가 오빠를 도와주든, 그건 엄마의 인생이기 때문에 그런 엄마를 그냥 편안하게 볼 수 있어야 해요. 그걸 못 보는 질문자가 문제죠.

오빠가 어릴 때부터 늘 말썽을 피웠기 때문에, 엄마 입장에서는 한쪽으로는 말썽을 피우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지만, 다른 한쪽으로는 적응 못하는 게 불쌍한 겁니다. 그 둘 사이에서 엄마는 계속 스트레스받고, 불쌍하게 여겨서 도와주고, 이런 것을 반복하는 거예요. 이걸 고칠 수가 없어요. 질문자도 그런 엄마를 보고 또 계속 스트레스받고 불평하고, 스트레스받고 불평하고, 이걸 고칠 수가 없듯이요. 질문자는 스님을 만났으니까, ‘이게 윤회구나’ 하고 그런 엄마를 편안하게 보는 게 해탈로 가는 길이에요. 이제 편안하게 볼 수 있겠어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말귀는 알아들었어요?”

“말귀는 알아들었습니다. 노력하겠습니다.”

“노력하면 안 돼요. 노력한다는 말은 안 된다는 말이죠. 그냥 ‘아, 그렇구나’ 하고 끝이 나야 돼요. 안 될 때는 그때 가서 안 되더라도 ‘아, 스님 말 듣고 보니 그렇게 하면 되겠군요’ 하면서 ‘간단하네!’ 이렇게 결론이 나야 실마리가 보이죠. 노력하겠다는 말은 벌써 ‘나는 안 되겠다’ 하는 겁니다.”

“잘 안 될 것 같기는 해요…” (모두 웃음)

“여기서 스님한테 할 수 있겠다고 해도 현실에 부닥치면 안 될 가능성이 있는데, 아직 부닥치기도 전에 ‘잘 될까?’ 하면 잘 될까요?”

“진짜 노력하려고요.”

“노력할 게 없다니까요. 그냥 ‘엄마는 저런 인생을 사시는구나. 나는 저런 엄마를 닮으면 안 되겠다’ 이렇게 생각해야 돼요.”

“네.”

“그래야 고락의 윤회에서 해탈할 수 있어요. 그 엄마에 그 딸인데, 되겠어요?”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스님께 잘하겠다고 말씀을 못 드리는 게 제가 딸이다 보니까 애처롭잖아요.”

“딸이다 보니까 안 되는데, 엄마는 아들에게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더 안 되시겠죠.”

“질문자도 안 되는데 엄마는 어떻게 잘 되겠어요? 질문자가 그게 되어도 엄마는 안 될 가능성이 있어요. 우선 본인이 그렇게 해보고 되면 그렇게 하라고 조언을 할 수 있는데, 지금은 본인도 안 되니까 엄마가 되는지 안 되는지 말할 수 없지요. 우선 내가 이게 되나 안 되나 연습을 해봐요. 질문자가 되면 엄마도 될 수 있는데, 질문자가 안 되면 엄마는 아예 안 된다고 봐야 돼요.”

“네.”

스님과 질문자의 대화를 듣고 있던 청중 한분이 조언을 해줄려고 대화에 끼어들려고 하였습니다. 스님이 "그럼 얘기 한번 해보세요" 라고 하니 청중석에서 웃음이 터집니다.

한 사람이 "할아버지에게 용돈을 드렸으면 용돈을 받은 할아버지는 그 돈을 손자에게 줄 수 있는거죠. 그건 받는 사람 재량이에요" 라고 끼어들어 조언하자 스님이 "그런 이야기는 제가 해야지요" 라고 말해 모두 웃음 바다에 빠졌습니다. 이런 일은 또 없었던듯 합니다. 청중석에서는 웃음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아이고, 오늘은 선생이 많네요. 저는 사표를 내야 되겠어요.”

오늘은 첫 질문부터 마지막 질문까지 시종일관 재미있고 유쾌하면서도 집중된 분위기 속에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위에 소개된 첫 번째 질문에서는 유래 없이 청중이 일어나서 질문자에게 조언을 하는 돌발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스님을 친숙해하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이외에도 다음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 이웃과 소통하며 잘 지내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웃과 불편하지 않고 소통하며 잘 지낼 수 있을까요?
  • 저는 불교 집안에서 태어나서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저는 부처님도 좋고, 예수님도 좋습니다. 이게 정상인가요?
  • 나이가 좀 있는 아티스트입니다. 예술 활동을 하다가 올해 갑자기 슬럼프가 왔습니다. 슬럼프를 극복하는 스님만의 독특한 방법이 있는지요?
  • 스님의 건강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합니다. 건강비결은 무엇인가요?
  • 어려운 육아 문제, 부모 문제까지 어떤 고민을 들어도 막힘이 없습니다. 스님의 해박한 지혜는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합니다.

끝으로 스님은 이렇게 오늘 강연을 마쳤습니다.

“제가 달라스 올 때 비행기가 늦게 왔어요. 이때 불평을 한다고 비행기가 빨리 오는 게 아니잖아요. 불평해서 빨리 오면 제가 불평을 엄청나게 할 거예요. 그런데 어차피 늦는 거 숙소도 정해져 있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불편이 없는 건 아니에요. 저도 제 습관이 있으니까 불편할 때가 있지만 불편이 그렇게 괴로울 정도는 아니에요. 그럼 어떻게 하면 좀 극복이 될까요? 편안하게 살면 극복이 될까요, 고생을 많이 하면 극복이 될까요?”

“고생을 많이 하면요.”

“네, 고생을 많이 하면 이런 것이 별로 크게 문제가 안 됩니다. 예를 들면 아프가니스탄 같은 위험한 곳에 가서 먼지투성이에 물도 없고 세수도 일주일씩 못하면서 살아본 경험이 있으면, 또 필리핀 민다나오 같은 데 가서 밀림 속에서 원주민들과 같이 지내면서 학교 지어본 경험이 있으면, 미국이나 한국에서 사람들이 다 불편하다고 해도 저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한국에서 다들 덥다고 하는데 인도에서 48도 기온에서 살다 보면 38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너무 편리를 좇기 때문에 힘든 거예요. 그래서 일 년에 몇 차례는 배낭 메고 텐트 가지고 나가서 자연도 좀 보고 며칠 굶어도 보면 밥 한 끼 먹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따뜻한 방이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느끼게 되고 불평이 적어져요. 불평을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요. 세계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가 어디예요? 미국이라고 할 수 있죠?”

“맞아요.”

“그런데 경제적으로 지금 어렵다고 제일 아우성치는 나라가 어디예요? 미국입니다. 자기 나라 경제가 어렵다고 남의 나라 탓하고 못살게 구는 나라가 어디예요? (모두 웃음)

왜 웃어요? 제일 잘 사는 나라가 제일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아우성치고 있어요. ‘네 탓이다, 네 탓이다' 하면서 전 세계를 시끄럽게 하는 것도 미국이에요. 그러니 앞으로 GDP가 열 배 더 올라간다고 해결이 안 돼요.

부처님은 가난하고 못 살아서 이런 법을 찾으신 게 아니라 왕자로 태어나서 편안하게 살았잖아요. 그런데도 인생의 고뇌가 있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부처님을 보고 ‘저 정도면 무슨 괴로움이 있겠는가’ 이러는데 본인은 괴로운 거예요. 그래서 ‘인생이 도대체 뭔가?’ 이걸 연구하기 시작하셨어요. 그래서 요즘 사람들의 고민과 딱 들어맞아요.

먹고 입고 자는 게 다 갖추어지고 사회적 지위도 있고 인기도 있는데 인생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거예요. 지위가 높은 것으로 해결이 됐으면 대통령 정도 됐으면 괴로운 일이 없어야 되잖아요. 지금 감옥에 있는 두 전 대통령들은 괴로울까요, 안 괴로울까요? 돈이 많으면 인생문제가 괴로울 일이 없어야 되잖아요. 그럼 인기 연예인들은 안 괴로울까요? 더 괴롭기 때문에 여러분들보다 훨씬 자살률이 높은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너무 없어도 안 되지만 돈도 이 정도로 있고, 인기도 이 정도로 있고, 지위도 이 정도로 있는 게 큰 복인 줄 아셔야 돼요. (모두 박수)

이 정도로 있으니까 오늘 이 자리에 법문 들으러 왔지요. 여기 돈이 많은 사람이 왔나요? 지위가 높은 사람도 안 오고, 인기 있는 사람도 안 왔어요. 그렇다고 하루하루 벌어서 먹고사는 사람은 바빠서 올 수 있나요? 없어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이 정도로 사는 것은 남 눈치 볼 것도 별로 없고, 청문회 나갈 일도 없고(모두 웃음), 이게 좋은 줄 알아야 돼요.

남편한테 돈 못 번다고 뭐라 하고, ‘조금 더 건강해야지’, ‘조금 더 지위를 높아야지’ 하는데 여러분 남편이 지금보다 인물이 더 잘났고, 돈도 더 벌고, 인기도 더 좋고, 지위도 더 높으면, 다른 사고가 생길까요, 안 생길까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재앙을 부른다는 거예요. 지금 여기에서 더 낫기를 바라면 지금은 좋은 것 같지만 나중에 재앙이 됩니다.

미국 선거에서도 젊었을 때 요트 타고 어떤 배우하고 놀고 사진 찍혀서 대통령 후보 그만둔 사람도 있었고, 돈 적게 쓰려고 불법 체류자를 가정부로 썼다가 나중에 그게 문제가 되어서 탈락한 사람도 있었잖아요. 그래서 지금 좋은 게 나중에도 반드시 좋다고 할 수가 없어요. 자기 인생이 지금 좋은 줄 알아야지 자꾸 남을 보고 부러워하는 것은 자기 인생을 괴롭히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든지 괴로워하면서 살 필요는 없어요. 저는 이렇게 돌아다녀도 괴로워하지는 않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보다는 낫잖아요. 저는 혼자 사는데 여러분들은 둘이 살면서 좋은 집 가지고 좋은 차 가지고 살면서 그렇게 꼭 괴롭게 살 이유가 있을까요? 이렇게 관점을 바꿔야 해요.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사실은 별 거 아니에요.

예를 들면 부모 재산이 없으면 형제간에 싸울 일이 없어요. 부모 재산이 있으면 형제간에 갈등이 생겨요. 형제가 나빠서 그런 게 아니라 재산 때문에 그래요. 그러니까 여러분들 죽기 전에 절대로 재산 남기지 마세요. 남는 게 있으면 법륜 스님에게 주세요. 그러면 제가 아주 유용하게 배고픈 사람들에게 잘 쓸 거예요. 그러니 부모님이 가난하다고 원망하면 안 돼요. 꼭 재산이 많은 게 좋다고 볼 수가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지금, 여기, 나’ 이 세 가지가 중요합니다. 지금, 여기, 나에 깨어 있어야 하고, 지금이 좋은 줄 알아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강연에는 멀리 킬린에서 참석한 분들도 있었고, 샌안토니오에서 와서 자원봉사한 분들도 있었습니다. 모든 참가자들은 2시간 동안 열정적으로 웃음과 해학이 넘치는 강연을 해준 스님에게 큰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오늘 강연은 호응도 높았고 청중과 질문자와 스님의 호흡이 조화를 이룬 덕분에 마치 즐거운 콘서트에 참가하고 온 느낌입니다. 강연장에는 한국인과 함께 온 외국인들도 몇몇 보였습니다. 위에 소개된 질문을 한 분에게 오늘 강연이 어땠는지 물어보니 “속이 시원해졌다”라고 하였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스님은 참가자들과 악수하며 인사하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책을 구입해 와서 스님에게 사인을 받고 셀카를 찍기도 하였습니다.

자원봉사자들과 단체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스님은 다들 수고 많았다고 감사인사를 했습니다.

특히 샌디에이고 법당에 다니다가 오스틴으로 이사 와서 이번 강연을 총괄한 윤회선 님은 처음 총괄을 해서 긴장하였지만 행사가 성공리에 마쳐 좋다고 하였습니다. 스님은 주차 봉사를 하고 나중에 들어온 남자 봉사자들과는 따로 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원래 오스틴은 비가 자주 오지 않는데 스님이 방문한 오늘은 반가운 비가 몇 차례 내렸다고 하면서 다들 좋아하였습니다.

봉사자들과 묘덕 법사님이 나누기를 하는 동안 스님은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숙소에 도착하니 평소보다 이른 시간입니다. 한국은 추석 연휴이지만 타향에서 스님의 강연은 조용하지만 힘차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내일은 새벽 4시 30분에 오스틴 국제공항으로 출발하기로 하였습니다. 오스틴에서 조지아 주 애틀랜타까지 비행기로 이동한 뒤 다시 애틀랜타에서 자동차로 이동하여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에서 즉문즉설 강연이 열릴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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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나

지금,여기 그리고 나
감사합니다 꾸벅^^

2019-11-05 06:06:04

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여러 봉사자님들과 참가자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_^

2019-10-03 22:58:33

강희란

스님말씀을
아침영양제로힘을얻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9-09-16 05:5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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