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진주법당
심 봉사 “청아!” 하고 눈 뜨듯이 나를 보다-진주법당 세 자매 이야기 (둘째 이순영 님 수행담)

남편과 결혼한 지 23년, 결혼 당시 대기업에 다니는 사내 커플이었다. 우리의 사랑은 불타올랐고 이른 나이였지만 결혼을 하였다. 대기업이라 사내 아파트가 제공되어 가정을 이루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결혼 후 3,4년이 지났을 때 남편은 대기업에 다님에도 불구하고 모아둔 돈은커녕 결혼자금까지도 온통 빚으로 시작한 것을 알았다. 하지만 이제라도 알뜰히 하여 갚으면 된다고 생각하였지만, 남편의 씀씀이는 고쳐지지 않았다. 또 회사 노무 관련 일을 시작하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접대를 하고 접대를 받는 연장 선상의 업무가 늘어났다. 회사에서 지원되는 돈으로는 모자라 개인 돈이 들어가고 나도 모르는 대출과 빌린 돈으로 인해 생활이 어려워졌다. 그 무렵 회사의 노조 관련 업무에 차질이 생겨 회사를 그만두게 될 상황이었는데 나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나는 생활에 보탬이 되고자 직장 일을 시작한 상태였다 .

남편이 회사를 그만둔 첫날, 휴가라 하기에 그렇게 믿고 있었는데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었는데 어떻게 된 일이냐고.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그 무렵 힘들어 하는 남편을 보고 있었던 터라 이해하려고 하였다. 그 사람의 힘듦이 맘에 더 걸렸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 사람이었기에 그 누구도 원망할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최소한의 짐과 방 한 칸 구할 돈만을 가지고 정들었던 제2의 고향을 떠나야 했다. 아이들은 갑자기 떠나는 친구들과 학교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울먹였다. 맘이 아팠지만 우리 가족은 다시 일어나야 했다.

지리산 수련원에서
▲ 지리산 수련원에서

언니가 있는 진주로 이사 와서 형부와 일하기도 하고 노동일을 하기도 하였다. 남편은 살이 20킬로나 빠지고, 거기다 대기업에 다녔던 ‘나’ 라는 존재를 쉽게 놓지 못해서 세상을 비관하며 부정적인 사람으로 변해갔다. 생활고로 힘듦보다 변해 가는 남편을 보기가 더 힘들었다. 남편은 일을 하는 날보다 노는 날이 더 많았다. 이런 동생을 옆에서 여러모로 도와주며 묵묵히 지켜보던 언니와 형부에게 짐만을 안겨 주어 미안하고 미안한 날들이 계속되었다.

아이들에게 부모로서 제대로 된 환경을 제공해 주지도 못하고 학원비 밀려 전전긍긍하던 어느 날 시어머니께서 병원에 입원하였다고 연락이 왔다. 남편은 맏이였지만 그렇게 자상한 아들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머님 병간호는 본인이 하겠다 했다. 대구까지 갈 차비도 없는 우리 집 상황에서 시어머니는 남편이 아니어도 간호할 사람이 있었다. 아이들을 위해 힘들어 죽을 지경인 나를 위해 가는 것을 반대하였으나 남편은 한사코 갔다. 나는 힘든 우리를 버렸다는 생각과 무책임한 남편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남편의 대구행은 회피라고 생각되었고 그런 남편이 너무도 싫었다.

우여곡절을 겪고 시간이 흘러 남편은 다시 대기업의 경력을 인정받는 회사에 나가게 되었다. 그후 어느 정도의 직위도 가지게 되었지만, 남편과 문제가 생기면 나는 그때의 일들과 연결하여 화가 나고 남편을 더 미워하기도 하였다. ‘남편은 개인적이 기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남편이 집에 있는 시간과 가족들이 모두 있는 상황에서는 나는 꼼짝을 못한다. 사랑이라 여기고 살아온 세월이 23년이다.’
내 마음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괴로움 속에서 언니의 권유로 불교대학에 입학하고 불법을 만났다. 입재식을 경험하고 나는 백일기도에 동참했다. 수행문과 참회문은 가슴에 파고들었고, ‘모든 것이 나에게서 나아가 나에게로 돌아옴을 알아’라는 글귀가 가슴을 후벼 팠다. 시간이 흐르자 마음은 가벼워지기 시작했고, 매일매일 수행할 수 있음에 행복했다. 정토회 프로그램의 하나인 1557차 ‘깨달음의 장’에 가게 되었다. 무아, 무소유, 무아집을 체험하며 나도 몰랐던 집착을 내려놓게 되었으니 심 봉사가 “청아” 하고 눈뜰 때 이런 느낌이었을까?

내가 나를 볼 수 있는 혜안이 -아주 조금, 예전에 비하면 큰 변화이지만- 생겼고, 내가 남편과 아이들과 대립선상에 서지 않게 되었다. 아이들은 아이들로, 남편은 남편으로 볼 뿐이지, 나의 전부가 아님을 깨달았다. 내가 옳다는 한 생각을 내려놓음으로써 일순간 마음이 고요해졌다. 이런 마음이라면 죽음도 무섭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법륜스님께 드려야 함이 순서이겠으나 선주법사님께 먼저 감사 인사를 드린다.

8-9차 입재식에서 세 자매
▲ 8-9차 입재식에서 세 자매

내가 지은 행은 언젠가 나에게로 돌아옴을 깨달아 진정한 나로 돌아온 듯하다. 그런데 수많은 과보 중에 자식이란 업이 나에게 제일 큰 과보로 돌아왔다. 바쁘게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했다. 열심히 산 이유는 가족들 아이들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 생각하니 결국은 나 자신 때문에 열심히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나름의 내 방식대로 잘 키운다고 키웠는데 작은아이가 엄마에 대한 원망을 했다. 그 원망을 듣고서야 나를 위해 열심히 살았음이 느껴졌다. 아이가 깨달음을 줬다.

이 원망은 모두 내 과보에서 비롯된 듯하다. 지난날 아이의 힘듦을 읽지도 알아주지도 못했다. 아이의 말대로 내가 아이에게 듣고 싶은 말은 들어야 했던, 그래서 아이가 더 힘들었을 지난 시간이 돌아봐진다.

아이가 상처가 된 것을 몰랐던 지난날을 참회하며 아이와 내가 하나 되어 상처가 아물 수 있도록 수행 정진할 것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는 존재의 상호연관성을 깨우쳐 주는 ‘연기법’을 가슴에 새겨 어디에서든 잘 쓰이는 내가 되겠습니다.

글_이순영 (진주정토회 진주법당)
편집_목인숙 (경남지부)

진주법당 세 자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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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점이었던 신혼에서 애교 100점 여우 되기까지<진주법당 세 자매 이야기③ 막내 이은영 님 수행담>

전체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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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한숙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2016-10-21 23:04:08

공덕장 손명진

막내 이은영 보살님의 수행담 보고
다시 찾습니다~ 세자매님의 멋진 행진!!
많이 배우고 배웁니다~
고맙습니다~

2016-10-21 06:16:18

선덕행

원망은 모든 내 과보에서 비롯됨을. 고맙습니다 ()

2016-10-20 00:3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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