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거제법당
주어진 대로 가볍게

언제나 밝은 얼굴로 따뜻하게 사람을 맞이하며, 내려오는 소임은 “네”하고 가볍게 받는 손경숙 님. 부총무 소임도 그렇게 가볍게 받고 빠삭하게 시작했지만, 시작하자마자 난관에 부딪혔다고 합니다. 그 뒤로도 굵직한 행사와 사건들로 어려움이 뒤따랐다는데요,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는지 함께 들어보겠습니다.

집착과 걱정

저는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어릴 때 풍족하진 못했지만, 막내인 저는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할 뻔했지만, 부모님이 등록금을 간신히 마련해서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가난한 생활이었지만,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다만, ‘연세가 많은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독립해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정도로, 저는 긍정적이고 착한 아이였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소개로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딸과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한 살 빨리 들어가서 다른 친구들에게 치일까 봐 걱정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겨울 방학식 날, 아들이 학원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오던 중 골목길에서 차 사고를 당했습니다. 다리 골절로 아들은 한동안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다리의 흉터를 바라볼 때마다 ‘학원을 안 보냈으면 사고가 안 났을 텐데, 학원을 뭐 하려고 보냈을까?’하고 많이 자책했습니다.

한반도 평화축제에서(오른쪽)
▲ 한반도 평화축제에서(오른쪽)

아들이 초등학교 5, 6학년 때에는, 저는 아들의 친구들 문제로 불안했습니다. 어느 날 전화를 받았는데, 아들의 친구가 “돈 가지고 나와!”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아들이 소풍 때 받은 용돈을 다른 아이에게 빼앗긴 것을, 다른 아이의 엄마한테 전해 들었습니다. 그 뒤로도 아들이 나쁜 친구와 어울리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아들을 바라볼 때마다 저의 마음은 늘 불안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아들에 대한 사랑과 집착 때문에 어느새 아들을, 엄마를 걱정하게 만드는 아이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나의 스승, 아들

그러던 중, 2015년 10월 16일 거제 청소년수련관에서 열린 법륜스님의 희망 강연에 참석했습니다. 법륜스님께 책 사인을 받으러 가서 ‘사랑합니다’라고 적어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스님은 “내가 사랑하나? 네가 사랑하지.”라고 했습니다. 그 말에 주위 사람들이 웃었고, 저는 쑥스럽고 창피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그 말이 내내 제 머리에 맴돌았습니다. 이어서, 미루어 두었던 정토불교대학 입학을 2016년 봄에 했습니다.

첫 불교대학 법문에서 들은 ‘양동이’와 ‘색안경’이 제 뇌리에 꽂혔습니다. 남편의 퉁명스러운 말투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저를 위하는 행동과 말을 해주지 않는 것 때문에 남편에게 섭섭할 때가 많았습니다. 법문을 듣고, ‘남편을 탓할 게 없구나. 그동안 내가 색안경을 끼고 남편을 바라봤구나.’하고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남편의 성격을 바꿀 수 없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이렇게 좋은 사람, 착한 사람을 내가 원하는 대로 안 해준다고 탓하며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를 깨우쳐주는 법문이 너무나 좋고 고마웠습니다.

불교대학 졸업식에서(맨 오른쪽)
▲ 불교대학 졸업식에서(맨 오른쪽)

그동안 저의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자, ‘법문을 하나라도 놓치면 안 되겠다’라고 결심했습니다. 법문을 통해, 엄마가 불안하면 아이 마음이 불안해지고, 엄마 마음이 편안하면 아이도 편안하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예전에는 아이 걱정과 자책으로 밤에 잠을 못 이루며 괴로워했는데, 지금은 밤잠을 편안하게 잡니다. 그래도 이따금 조바심이 나서 아들에게 잔소리하는 것을 보면, 아직도 집착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나 봅니다. 좀 더 저의 마음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공부를 해야겠습니다. 이렇게 아들은 저를 공부시켜 주는 스승입니다.

나의 무지

저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착하게 살고 있어서, 아무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정토회에 다니면서, 그 생각은 저의 무지였음을 발견했습니다. 인도 성지순례에 갔을 때, 같은 조원끼리 한 방에 붙어 있는 침대에서 자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같은 조의 조원이 제가 없는 자리에서, 제가 본인을 바닥에서 자라고 했다고 말해서 분위기가 이상해졌습니다. 저는 단지 그 자리는 제 도반과 제가 맡아놓은 자리라고 그 사람에게 말했을 뿐이었습니다. 다행히 저와 같은 법당에 다니는 도반이 오해라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저는 분명 그렇게 말을 하지 않았는데,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왜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지 어이가 없었습니다.

또 다른 일도 있었습니다. 법당 도반과 저는 둘이서만 계속 같이 다녀서, 조원 모두가 물품을 들고 날라야 한다는 것을 며칠 동안 전혀 몰랐습니다. 다른 조원이 말해줘서 알게 되었을 때, 부조장에게 진짜 몰라서 그랬다며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꼭 말을 해야 하나요?"라는 싸늘한 말을 들은 순간, 저는 마음을 닫아버렸습니다. ‘나 같으면 나눠서 하자고 말했을 텐데’와 ‘내가 옳다’는 생각에 분별심이 올라왔습니다. 돌이켜보니, 저는 평소에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일도 일어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려고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상대방 처지에서는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인도 성지순례에서(맨 왼쪽)
▲ 인도 성지순례에서(맨 왼쪽)

위기를 통한 성장

2019년 3월 꽃샘추위가 있던 날, 남편은 술을 마시는지 늦은 시간에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화가 나서 찾으러 나갔다가, 제 몸이 안 좋은 상태라 ‘당연히 오겠지’라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일어나보니 남편은 그때까지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설마 무슨 일은 없겠지’라고 생각하며 저는 사시 기도하러 나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던 중, 남편의 회사에서 남편이 아직 출근하지 않았다는 전화를 받고서야 불안한 마음으로 지구대에 신고했습니다. 바로 그때 응급실에서 지구대로 연락을 했습니다. 응급실로 달려 가보니 남편은 온몸을 떨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괴로웠던지 하도 발을 비벼서 양말에 구멍이 나 있었습니다. 2m 아래의 돌바닥으로 떨어져 머리 오른쪽 부위가 골절되어 수술해야 했습니다. 남편이 죽었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니, 남편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그 전날 신고를 해야 했는데, ‘설마 무슨 일이야 있을까’라며 안일하고 어리석게 생각했습니다.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일은 하고, 하고 싶어도 하면 안 되는 일은 멈추어야 했어.’하고 되뇌었습니다.

남편은 수술을 받았고, 천만다행으로 뇌 쪽에는 아주 조금 출혈이 있을 뿐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정진을 끝낸 뒤, 남편이 사고 당시 입었던 옷과 양말을 정리하다 주저앉아서 펑펑 소리 내 울었습니다. 남편이 얼마나 힘들고 아팠을까를 생각하니, 저절로 ‘내가 미쳤지’라고 자책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펑펑 울고 나니, 오히려 더 담담해졌습니다. 일은 이미 일어났고, 남편이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생각했습니다. 순리대로 받아들이고, 아이들 앞에서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부처님 법 만나서 마음 근육이 크게 자라고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남편이 수술을 받을 때도 담담했습니다.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겼을 때는 남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예뻐 보였고, 살아있는 것만으로 고마웠습니다. 남편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한 달 동안, 미안한 마음보다는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남편을 간호할 수 있었습니다. 함께 걱정해주고 챙겨주는 도반 또한, 저에게 큰 힘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다 해결해줄 것이라고 믿으며 담담하게 생활하는 한편, 힘든 이 일만 지나면 어떤 소임이 와도 가볍게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수술이 잘 되어 남편은 한 달 만에 퇴원했고, 생각보다 빨리 회사에 복직했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에(맨 오른쪽)
▲ 부처님 오신 날에(맨 오른쪽)

소임의 무게

처음 부총무 소임을 시작할 때는 남편이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인연 따라서 온 소임을 가볍고 시원스럽게 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10차 천일결사1 기간이 온라인 체제로 바뀔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인연 따라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막상 해보니 모둠을 구성하는 것부터 힘들었습니다. 모둠 구성을 해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모두 원하는 것이 달랐기에 모둠장을 세우고 모둠원을 나누는 일도 어려웠습니다.

법당 부총무는 도반만 챙기면 된다고 들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1년 동안 불사, 법당 이사, 법당 청소, 개원 법회, 초파일 행사 등 굵직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모두 처음으로 겪는 일들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멍해 있던 때가 많았습니다. 다행히, 10차 천일결사부터 각 행사 소임자가 행사를 맡아 진행하는 구조로 변했고, 소임자들이 모두 알아서 잘 진행해줘서 별 어려움 없이 잘 해낼 수 있었습니다. 모두 도반들 덕분입니다.

그런 와중에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으로 교육을 받아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소임자의 부재로 제가 행복한 회의 소임자 교육을 받았습니다. 컴퓨터의 화면에서 모르는 사람의 얼굴을 보며 회의하는 것은 새로운 경험으로 힘들었습니다. 낯선 사람과 만나는 것도 힘들었지만, 온라인으로 회의하는 것 자체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잘하지 못하더라도 그냥 넘어가고, 또 그냥 넘어가고 하니 자연스럽게 극복했습니다. 극복하고 싶어서 애써서 노력하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면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적응한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인연 따라 쓰일 뿐

지난 1년 동안 부총무 소임을 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은 도반을 챙기고 일을 조율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과 이렇게 많이 부딪힌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습니다. 말 한마디에도 도반들과의 사이가 틀어졌습니다. 부총무는 사람 사이의 일을 조율하는 역할임을 알지만, 도반들의 마음을 받아주고 다독여 주는 것이 맘처럼 잘되지 않았습니다. 관계를 해치지 않고 일을 진행한다는 것이 참 힘들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도반이 소임을 갑자기 그만두었을 때도 ‘한다고 했으면 해야지’라며 분별심이 올라왔습니다. 특히 ‘내가 그래도 법당 총무인데’라며 ‘나’라는 것에 집착할 때 분별심이 많이 생겼습니다. ‘나라고 할 것이 없다, 길에 난 들풀처럼 살라’는 스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때그때의 인연 따라 쓰일 뿐임을 떠올렸습니다. 제 생각과 의견을 고집하면 평정심을 잃었습니다. ‘일어난 사실 그것만 바라만 봐야지, 일어난 사건에 내 생각을 고집하니 분별하는 마음이 일어나는구나.’하고 깨닫고 있습니다.

불사이전 백일정진기도 회향식에서(앞줄 가운데)
▲ 불사이전 백일정진기도 회향식에서(앞줄 가운데)

부총무 소임을 맡는 동안, 자책하고 뒤로 물러서고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제가 이전보다 더 퇴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종일 노트북을 보며 일에 빠진 저에게 아들이 “엄마는 노트북으로 진행하는 정토회 일이 재미있어?”라고 질문했습니다. 몇 초 후, “재밌지는 않지만 보람 있어”라고 말했더니, 아들은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엄마가 하는 일을 아들이 인정하고 묵묵히 받아들여 준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들의 무언의 응원에 힘입어서, ‘잘해야 한다’라는 생각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관점으로 바꿔봅니다. 아직은 그게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오늘도 가볍게 수행합니다. 그렇게, 얼마 남지 않은 소임을 끝까지 잘 마무리하겠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제 생활은 오르락내리락하면서도 크게 들뜨지 않았고, 설령 들떠도 다시 돌이킬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부처님 법을 만난 덕분이었습니다. 제가 부처님 법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운 인생을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정토 행자로서 부처님 법을 놓지 않고 부지런히 수행 정진하여 더 자유롭고 행복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주어진 대로 묵묵히 하고, 괴로우면 한 생각 돌이켜 다시 관점을 잡는 손경숙 님의 한결같은 모습이 아른거립니다. 자유롭고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아름다운 수행자, 손경숙 님을 응원합니다. 저 역시 그 길을 함께 가기를 소원합니다.

글_박경진 희망리포터(진주정토회 거제법당)
편집_성지연(서초정토회 서초법당)


  1. 천일결사 정토회는 개인의 행복과 정토세상 실현을 위해 1993년 3월 만일결사를 시작. 3년을 정진하면 개인의 의식 흐름이 바뀌고, 30년(만일)을 정진하면 한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으로 3년(천일) 단위로 천일결사 정진을 이어오고 있음.  

전체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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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숙

잘하려하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
역시 소임이 복입니다
수고많으셨어요

2021-03-23 13:24:03

실상화

한생각 돌이키는법을 배우고
자유롭게 사는법을 공부하는
행복한 수행자님 짱입니다
사랑합니다^^♡^^

2021-03-23 10:47:46

견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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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3 09:3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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