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전주지회
내 인색함에게

광주전라지부 전주지회에서 익산 모둠장 소임을 하는 김경순입니다. 아들이 군대 가면서 정토회 수행을 시작했으니까 이제 8년 다 되어갑니다. 매일 정진이야 하지만 어디 소개할 만한 특별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래도 이왕에 기회가 되었으니 한 사람의 정토행자로서 요즘 무엇을 수행과제로 삼고 정진하는지, 그게 잘되는지 안 되는지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2023년 전주지회의 날(오른쪽 김경순 님)
▲ 2023년 전주지회의 날(오른쪽 김경순 님)

수행과제 하나, 아들

아들이 또래보다 좀 느립니다. 말도 느리고, 생각도 느립니다. 느리다는 표현 말고는 달리 묘사할 방법이 없습니다. 발달에 무슨 큰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데 다른 친구들과 감정적 소통에서 어려움을 겪고, 친밀감의 표현을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심리적 문제가 있었습니다. 어린 아들을 데리고 서울로 병원에 다니느라 마음을 많이 썼습니다.

아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늘 불안하고, 대화하다 보면 걱정을 빙자해서 스멀스멀 화도 올라오는 것이 아들에게 영향을 주지 않았을 리 없습니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부족한 부분을 가르치려고 들었습니다. 그런 아들이 입대하자 걱정이 가슴을 뚫고 나올 것만 같았습니다. ‘우리 아들 군대 적응 잘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할 곳이 필요했습니다.

2023년 부처님오신날 정토미륵사에서(맨 오른쪽 김경순 님)
▲ 2023년 부처님오신날 정토미륵사에서(맨 오른쪽 김경순 님)

집 근처 건물 3층에 정토회 법당이 있었습니다. 두세 번 찾아가도 문이 잠겨있었습니다. 벽에 쓰인 스님 소개만 읽다 돌아오곤 했습니다. 안 되겠기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간절했습니다.

당시 법당 총무는 제가 만난 첫 번째 정토회 수행자였습니다. 저 한 사람을 위해 평일 새벽에 문을 열어주었고, “저도 같이 하죠.”라면서 매일 저와 함께 기도했습니다. 덕분에 눈보라를 맞으면서도 감사히 법당에 다녔습니다.

수행과제 둘, 남편

당시 남편이 제가 새벽기도 나가는 걸 못마땅해했습니다. 나중에 정토회 봉사를 시작했을 때도 반대를 많이 했습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의처증인가?’ 생각할 만도 하지만, 아마 외로웠을 것입니다. 그는 시골 사람인데, 초등학생 시절부터 부모의 기대와 질책 속에 도시로 나와 혼자 살았습니다. 아이가 감당하기 어려운 트라우마가 되었을 것이고, 실제로 남편은 어린 시절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2022년 12월 나눔의 장(앞줄 맨 왼쪽 김경순 님)
▲ 2022년 12월 나눔의 장(앞줄 맨 왼쪽 김경순 님)

저는 대학 다닐 때 노동운동을 했습니다. 청년들에게 정의에 대한 갈망이 있던 시대였습니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은 정의로운 일이지만, 젊은이가 정의를 지키려면 다소 드세야 했습니다. 그리고 채워지지 않는 갈망과 싸워야 했습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면 좋을텐데, ‘내가 이렇게 살면 누군가 나를 사랑해 주겠지.’ 생각했습니다. 결국 마음이 채워지지 않아 도망치고 싶어질 무렵, 남편을 만났습니다.

당시에는 ‘어떤 남자가 나를 감당하겠나’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제가 좀 센데 괜찮겠어요?”라는 물음에 “문제없다.”고 한마디로 답하는 상남자였습니다. 물론 멋지게 생기기도 했습니다.

결혼하고 보니 과연 남편은 나보다 더 드셌습니다. 고집이며 성질이며 도저히 이겨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거칠었고, 저를 집 밖으로 못 나가게 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물질적으로는 잘해줬지만, 소통이 잘 안됐습니다.

2023년 JTS 연말거리모금활동(앞줄 가운데 김경순 님)
▲ 2023년 JTS 연말거리모금활동(앞줄 가운데 김경순 님)

수행과제 셋, 분별심

손아래 동서가 있는데 욕심이 많습니다. 시어머니가 이것저것 잘 챙겨주시는 데도 자꾸 하나씩 더 가져갑니다. 된장, 고추장, 콩, 고춧가루 등 전부 더 달라고 했습니다. ‘뭘 저렇게 더 달라고 하지’ 하는 마음으로 자꾸 보니까 미웠습니다.

저는 평생 절약했습니다. 결혼 전에는 직장생활을 하지 않았으니 모아둔 것이 없고, 결혼 후에 모을 만한 게 있으면 아들 병원비로 다 나가니 누굴 도울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시동생이 선을 본다는데 옷 한 벌 해 입으라고 용돈도 못 건넬 정도였습니다. 저는 그런데도 시어머니 것을 욕심내지 않으니 ‘내가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심이 대단했습니다. 친구였던 이가 직장 상사가 되니 사사건건 부딪쳤습니다. 역시 저는 옳고 그 친구가 틀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서로 ‘제발 좀 직장에서 안 봤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사이가 틀어졌습니다.

2022년 3월 정토불교대학 실천활동(오른쪽에서 두번째 김경순 님)
▲ 2022년 3월 정토불교대학 실천활동(오른쪽에서 두번째 김경순 님)

사실과 감정을 나누어 말하기

이 수행과제를 두고 제가 평소에 어떻게 수행하는지, 특히 무엇이 나아졌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직도 온통 아들 생각뿐인 걸 보면 집착의 끝은 멀지만, 그럴수록 더 수행해 보려고 합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아들의 말이 어딘가 제 맘에 걸려서 결국 화가 납니다. 화 난 상태로 말하면 아들은 제 ‘화’만 듣고 제가 전하려던 사실이나 내용은 듣지 못합니다. 그래서 먼저 ‘화’와 ‘짜증’을 ‘사실’과 분리해서 알아차리려고 노력합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전달해야지, 감정이 따라붙는 것을 그냥 내버려두면 곧 휩싸이고 맙니다.

구체적으로는 아들에게 말을 건넬 때, ‘내가 지금 하려는 말은 사실인가, 내 감정인가’를 생각합니다. 덕분에 아들과 사이가 꽤 좋아졌지만, 이 부분은 평생의 수행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2023년 어린이날 JTS 거리홍보활동(오른쪽에서 세 번째 김경순 님)
▲ 2023년 어린이날 JTS 거리홍보활동(오른쪽에서 세 번째 김경순 님)

보시하기

정토회를 만나고 나서 저의 분별심이 의외로 모두 같은 원인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인색함’이었습니다. 욕심이 많은 동서를 두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법사님에게 말했더니 “동서가 욕심내는 그것을 너도 가지고 싶어서 그런 것 아니냐. 당신 안에 인색함이 있어서 그런 거다.”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절묘한 통찰에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경제적으로 부족해서 늘 누구와 나눌 게 없다고 여기기 때문에, 더 가지려고 전전긍긍하는 사람을 보면 분별심이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저를 미워하는 꼴입니다.

뭘 얼마나 가졌든, 가진 것이 많든 적든, 가진 것을 내놓아야 자유로워집니다. 타인에게 도움을 주어야 마음이 넉넉해집니다. 주어야 할 때 움츠리면 좁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시어머니에게 “어머니 저는 많이 안 줘도 돼요. 제 것도 다 동서 주세요.”라고 마음을 냈습니다. 돈을 보시한 것도 아니고 마음을 보시했을 뿐인데 통이 커진 것만 같습니다.

2022년 청년 경전대학 진행자회의(맨 아랫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김경순 님)
▲ 2022년 청년 경전대학 진행자회의(맨 아랫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김경순 님)

마침 시어머니가 아팠는데 제 얇은 주머니를 들여다보니 푼돈을 모아 둔 것이 있었습니다. 꺼내어 주며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이거 얼마 안 되지만 어머니 병원비로 드리고 마음껏 치료받으시게 하자.” 남편이 암에 걸렸을 때도 “걱정 말고 치료받아. 돈은 내가 어떻게든 마련해서 고칠 테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은 가족들의 마음을 여유롭게 했지만, 누구보다 제 마음을 자유롭게 했습니다.

아들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부족하다, 느리다’ 생각한 것도 제 마음이 인색하여 사실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들은 이제 서른이 되어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잘 살아가고 있는데, 제 마음은 한 뼘도 자라지 않고 아들의 어린 시절에 머물러 여전히 좁디좁습니다.

소일거리를 미루는 게으름도 결국 인색함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집 안 청소 같은 작은 일에 시간을 쓰는 게 아까워서 겨우 1분, 2분의 시간도 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미루려는 업식이 고개를 들 때마다 의식적으로 “저거 1분밖에 안 걸려.”, “저거 2분밖에 안 걸려.”라고 말합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바로바로 됩니다. 사소한 것에 걸리지 않으니 부지런해지고, 마음이 넓어진 기분도 듭니다.

2024년 3월 발심행자 수계식(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 김경순 님)
▲ 2024년 3월 발심행자 수계식(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 김경순 님)

갈증의 뿌리

수행담을 마치며 제 인색함이 어디서 왔을까 가만히 돌아봅니다. 그 뿌리에는 외로움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여름, 엄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작은아버지가 리어카에 엄마를 싣고 택시가 들어오는 신작로까지 내달렸습니다. 엄마가 뜨거울까봐 제가 우산을 씌워주었습니다.

엄마는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습니다. 9살 터울의 큰 언니를 엄마처럼 따르며 사랑을 갈구했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모자란다고 느껴서 더 받고 싶은’ 그 마음은, 가진 것을 기꺼이 내주지 못하는 인색함으로 꽃을 피웠습니다.

하지만 업식의 뿌리를 알아차리면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재차 모둠장 소임을 맡아 부담이 있지만, 연초부터 3백배를 하고 있습니다. 하겠다고 마음을 내면, 유유히 빈자리를 메워가는 물처럼 마음이 넓어져 어느덧 제 모자람이 채워지리라 믿습니다.

2024년 4월 정토미륵사 연등달기 봉사에서 익산 모둠 도반들과(맨 오른쪽 김경순 님)
▲ 2024년 4월 정토미륵사 연등달기 봉사에서 익산 모둠 도반들과(맨 오른쪽 김경순 님)


김경순 님은 업식을 발견하면 그 뿌리가 어딘지 찾아보고, 원을 세워 정진했습니다. 개선이 되는지 지켜보고, 잘 개선이 되지 않으면 무엇이 문제인지도 잘 파악했습니다. 이렇게 수행자라면 개인의 수행과제를 찾아야 하고, 매일 정진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물론 배워도 잘되지 않지만 모르면 아예 안 되니까, 저처럼 ‘뭘 가지고 수행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 큰 모범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뷰_홍윤미 희망리포터(인천경기서부지부 부천지회)
글과 편집_이승준(광주전라지부 전주지회)

전체댓글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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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남

공동정진시간이나 약속에 딱 맞추려다 조금씩 늦습니다. 게으름이거나 시간을 아끼는 마음인 줄 알았는데 이 글을 읽으며 인색함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유있게 시간에 마음을 내어 보겠습니다.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4-04-29 07:28:10

엄경희

알아차리며자신을늘돌아보는모습이멋지십니다.나도늘깨어알아차리는연습해보겠다는의지를심게해주십니다.감사합니다

2024-04-24 07:00:54

김남희

평소의 내 고민을 잘 해결해 주셨습니다. 감동입니다.
내가 지금 하려는 말이 사실인지 내 감정인지 살피고,
내 인색함에서 비롯된 분별, 집안 일이나 직장의 공동의 일에 몇 분의 시간도 쓰기 아까워 하는 인색함이 있는지 잘 살피겠습니다. 몇 분이면 끝낼 수 있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웃으며 잘 쓰이겠습니다.

2024-04-22 08: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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