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6.8.29 행자대학원 9기 졸업식
“왜 마음공부를 해야 하나요? 수행을 하면 어떤 이익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정토회 행자대학원 9기 졸업식이 열리는 날입니다. 스님은 행자대학원 3년 과정을 무사히 수료한 9기 졸업생 11명을 위해 기념법문을 한 후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아침 7시부터 문경 정토수련원 명상원에서는 결사행자의 ‘포살과 자자’ 모임이 있었습니다. 어제는 주로 회의를 했고, 오늘 오전에는 도반들과 함께 40계본에 따라서 참회하고 탁마하는 ‘포살과 자자’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자자’는 하안거를 마칠 때 수행자들이 서로 자신의 허물을 고백하고 참회하여 다른 수행자들에게서 훈계를 받는 불가의 오랜 전통입니다. 정토회는 결사행자에 한해서만 1년에 한두 차례씩 자자를 열어오고 있습니다. 오전 내내 자자를 한 후 마음이 청정해진 결사행자들은 스님과 함께 활짝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 자자를 마친 결사행자들

 

특히 이번에는 신규 결사행자가 되신 분들도 함께 해서 더욱 뜻깊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신규로 결사행자가 되신 분들만 따로 챙겨서 기념사진을 한 번 더 찍어주었습니다. 

 


▲ 신규 결사행자들

 

점심식사 후 오후 2시 30분부터는 문경 정토수련원 대웅전에서 행자대학원 9기 졸업식이 열렸습니다. 오늘 졸업식에는 백일출가 28기 행자님들을 비롯해 법사단, 문경 정토수련원의 상주 대중들이 모두 함께 자리해서 더욱 열렬한 마음으로 축하를 해주었습니다. 

 


 

먼저 졸업식을 시작하기에 앞서 경과보고가 있었습니다. 행자대학원 9기는 2013년 9월 13명이 입재하여 1학년 1학기와 2학기를 ‘생태적인 삶과 공동체 운영’이라는 학기목표에 따라 문경에서 농사, 공양, 퇴비팀으로 나눠 자연과 순환하는 삶을 경험하였습니다. 2학년 1학기는 ‘NGO 활동을 통한 사회 실천가로서의 지도력 함양’을 목표로 평화재단, JTS 등에서 통일, 환경, 복지 분야의 사회 문제를 경험하였습니다. 2학년 2학기와 3학년 1학기는 ‘질병, 문맹 퇴치를 통한 국제 구호 활동’을 목표로 인도JTS와 필리핀JTS에서 제3세계 국제구호활동을 실습하였습니다. 3학년 2학기는 문경에서 ‘원력 보살의 삶을 통한 미래 문명을 이끌 지도자 교양’을 목표로 공부하였습니다. 이렇게 3년 동안 열심히 수행정진하여 오늘 10명이 졸업하고, 1명이 명예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행자대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법사단 대표 묘수 법사님의 인사말씀이 있었습니다. 법사님은 졸업이라는 결실을 맺기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음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 법사단 대표 묘수 법사님

 

“많은 분들의 배려가 있었기에 오늘이 있었던 것 같아요. 행자님들의 마음이 한없이 흔들릴 때마다 여러 법사님들이 출발할 때의 마음을 잘 잡아주셨고요. 또 백일마다 새로 들어오는 행자님들의 초롱초롱한 초발심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의 도움 덕분에 3년 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9기 행대생들을 보면서는 여러 가지 꽃들이 모여 하나의 화단을 이룬다는 경전 속 이야기가 정말로 실현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끝까지 함께해 준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음은 정토수련원 원장 유수 스님의 축하 인사가 이어졌습니다. 

 


▲ 정토수련원 원장 유수 스님

 

“흔히 100일 기도를 하면 자기를 알게 되고, 3년 기도를 하면 자기 업을 소멸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 경험으로 보면 100일 기도를 하면 타인이 나를 좀 많이 알게 되고요. 물론 나도 나를 알게 되지만 뼛속 깊이 나를 알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그러나 3년 기도를 하면 자타가 함께 아는 내 업식을 알 수가 있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 다음 3년이야말로 내 업식을 소멸할 수 있는 기회인 겁니다. 오늘은 그 출발인 거예요.(모두 웃음) 많은 우여곡절 끝에 오늘까지 오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 말씀 드립니다.”

 

오늘이야말로 다시 출발하는 것이라는 말씀에 9기 졸업생들은 한바탕 크게 웃었습니다. 

 


▲ 행자대학원 9기 졸업생 11명

 

이어서 졸업생 이진옥 행자님의 소감문 발표가 있었습니다. 행자님은 소감문을 읽던 중 스님과 대중들의 은혜를 언급하는 대목에서 끝내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 소감문을 읽고 있는 9기 졸업생 이진옥님


“많은 기대로 출발했지만 입재와 동시에 잘 모르는 일들이 쏟아지고, 도반들이 미워지기 시작하고, 몸은 피곤하고, 먹고 싶은 것은 계속 올라오고, 내가 도대체 뭐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습관처럼 뻗어나가던 생각들은 매일 저녁 법륜 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3년의 시간을 거치면서 처음에는 납득이 가지 않던 도반들의 얘기가 점점 수긍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치켜들었던 마음이 조금씩 숙여지고, 그렇게 숙여진 마음으로 세상을 바로보니 세상의 은혜가 보였습니다. 이렇게 숨쉬고 있는 이 순간이 얼마나 감사한지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졸업수련에서 ‘3년 동안 집에 가지 않고 잘 살아주어서 고맙다’는 법륜 스님의 말씀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저희가 오히려 더 감사합니다. 스님의 가르침 잘 따르며 살겠습니다. 무엇보다 3년 간 저희를 지켜봐주신 대중 여러분 감사합니다.(눈물)

 

오늘은 저희들이 약속한 3년을 마무리하는 날입니다. 하지만 이 끝은 새로운 시작임을 압니다. 스승님과 대중들로부터 받은 은혜를 세상 속으로 널리 회향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행자님의 눈물에 모두가 큰 박수로 공감과 격려의 마음을 보냈습니다. 

 

눈물이 핑 도는 가슴 뭉클한 순간을 뒤로하고 후배 행자대학원생들의 축하 공연이 펼쳐졌습니다. 후배 행자대학원생들은 선배들을 졸업시키는 마음을 노래 가사로 표현해서 한껏 졸업식의 흥을 돋우워 주었습니다. 

 


▲ 후배 행자대학원생들의 축하 공연

 

“시간이 벌써 3년 지났죠. 이 길을 걸어줘서 정말 고마워 ♬

오늘은 정말 좋은 날이네요. 9기가 졸업하는 날이니까요 

저희들도 9기 선배님들을 보며 많이 행복했어요 ♬

함께 걸어간 시간들 너무나 소중했어요

한 때는 업식에 끄달렸죠. 그러나 이제는 내 인생도 웃겠죠 ♬

다함께 행복하게 살아야죠. 이대로도 괜찮아요.” 

 

노래 마지막에 글자를 한자씩 펼쳐들자 9기 졸업생들은 눈시울을 붉히며 큰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다음은 지난 3년 동안 바른 가르침으로 지도해 준 법륜 스님에게 9기 졸업생들이 감사의 마음을 담아 꽃다발과 선물을 전달했습니다. 선물로는 농사일을 하실 때 사용하라고 팔토시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스님은 “농사일 할 때 꼭 필요했는데 잘 됐다”고 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선물을 받았습니다. 

 


▲ 선물 전달식

 

이어서 법륜 스님에게 청법가와 삼배를 올린 후 졸업기념법문을 청해 들었습니다. 스님은 누군가의 종이 되는 삶이 아닌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하면서 행복을 자신의 가장 큰 경쟁력으로 삼고 살아갈 것을 당부했습니다. 

 


 

“오늘 정토회 행자대학원 제9기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박영민, 송우진, 강영희, 오정심, 홍민지, 심애남, 이진옥, 김미정, 박시현, 정유진, 김정선. 한 분 한 분 다 소중한 분들입니다.

 

여러분들이 지난 3년 동안 백일출가도 하고 정진도 했는데, 왜 이런 수행의 시간을 가진 것일까요? 옛날 선지식들도 출가를 하면 대부분 여러분들이 지금 하고 있는 백일출가와 같은 생활을 3년간 했습니다. 3년간 절에 와서 머슴살이 하듯이 행자생활을 잘 하고 나면 ‘그래, 출가할 만하다’라고 해서 머리를 깎습니다. 머리를 깎고 나서 수행을 시작하는 게 아니라 머리를 기른 채 수행이 어느 정도 되면 그 다음에 머리를 깎았어요. 그래서 머리를 깎는 것을 ‘득도’, 즉 ‘도를 얻었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승랍을 따질 때도 ‘득도한 지 얼마나 됐느냐?’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요즘 스님들의 생활에는 맞지 않습니다. 요즘은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된 뒤에 수행을 하지만 옛날에는 머리를 기른 채 작업복을 입고 일을 하면서 마음공부를 했어요. 그래서 어느 정도 ‘입지’가 선 다음에, 다시 말해 마음이 어느 정도 자기중심이 섰다고 하면 그 때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됩니다. 그래서 스님이 된 뒤에 인격이 흐트러지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습니다. 입지가 선 사람들이 스님이 됐기 때문입니다. 이런 좋은 제도가 지금은 없어졌어요. 절에 들어와서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금방 스님이 되기 때문에 아직 왔다갔다 흔들리는 마음을 가진 채 승복을 입고 다니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스님들이 때론 부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요. 그래서 ‘스님들이 왜 저러나?’ 하는 소리도 듣게 됐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고 티를 내면서 생활하는 게 아니라 그저 보통 사람처럼 머리를 기르고 이 일 저 일 하면서 마음공부를 했잖아요. 오늘 3년이 됐다고 하는 것은 옛날로 치면 ‘이제 스님이 될 수 있겠는가?’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준비가 됐으면 오늘 삭발식을 다 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야 합니다.”(모두 큰 웃음)

 

준비가 됐으면 삭발식을 하자는 스님의 얘기에 모두들 빵 하고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이어서 졸업생 행자님들은 3년 간의 수행 생활을 통해 공통의 과제로 느끼게 된 것을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마음대로 하려는 성질이 강하고, 바라는 것도 많아요. 남에게 잘 보이고 싶고,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이 큽니다. 어떻게 해야 이런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스님은 이에 대해 대답하면서 왜 우리가 행복하지 못한지 그 이유를 짚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졸업 이후 어떻게 수행을 해야 지속가능한 행복에 이를 수 있는지 강조했습니다. 

 

“왜 우리는 행복하지 못할까요? 첫째,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려는 게 강하기 때문입니다. 먹고 싶을 때 먹어야 하고, 자고 싶을 때 자야 하고, 하고 싶을 때 해야 해요. 이렇게 하고 싶다는 걸 못 버리고 움켜쥐고 있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행복을 얻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는 지금 그걸 움켜쥐고 그게 뜻대로 안 된다고 악을 쓴단 말이에요.

 


 

둘째, 바라는 게 많기 때문입니다. 높은 지위, 인기, 돈을 원해요. 이런 걸 원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노력해서 얻으려고 하지 않고 공짜로 주어지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욕심을 부리니까 현실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으니 괴롭죠. 

 

셋째, 남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고 칭찬받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칭찬을 안 해주고 잘 안 봐주니까 괴로워져요. 칭찬받고 싶다는 건 그 사람에게 노예가 된다는 거예요. 강아지가 주인에게 잘 보이려고 꼬리 흔드는 것과 같아요. 주인이 되지 못한다는 겁니다.

 

우리는 늘 이런 문제에 묶여 삽니다. ‘내 뜻대로 하고 싶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고 싶다, 잘나고 싶다, 잘 보이고 싶다’ 여기에 묶여서 인생을 살기 때문에 남이 볼 때는 좋아보일지 몰라도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이 다 속박 받는 삶을 살면서 괴로워하는 거예요.

 

부처님은 이런 속박 받는 삶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유로운 삶, 행복한 삶, 당당한 삶의 경지에 이르셨습니다. 그리고 본인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다 그렇게 될 수 있다고 하면서 그 길을 우리에게 제시하셨어요.

 

부처님 당시의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부잣집 젊은이 서른 명이 애인을 한 명씩 데리고 맛있는 음식을 잔뜩 마련해서 봄놀이를 갔어요. 공원에서 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면서 파티를 즐겼습니다. 한참 놀다가 술에 취해서 애인끼리 껴안고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떠보니까 자기들의 귀한 보석이 모두 없어진 거예요. 팔찌며 목걸이며 돈 가방이며 모조리 없어졌어요. 어떻게 된 건지 알아보았더니 보석과 함께 여자 한 명이 없어졌어요. 여자를 데려왔던 친구에게 ‘네 애인이 없다. 어떻게 된 거냐?’ 하니까 다른 친구들은 다 진짜 자기 애인을 데려왔는데 이 친구는 애인이 없어서 유녀를 애인 삼아 데려왔던 거예요. 그 유녀가 다들 잠든 틈을 타서 보석을 모두 훔쳐서 도망가버린 겁니다.

 

서른 명의 젊은이들은 성질이 나서 다함께 그 여자를 잡으려고 막 쫓아갔어요. 가다보니까 아무도 없는 숲속에 한 수행자가 나무 밑에 떡 앉아 있는 거예요. 이 수행자가 부처님이었어요. 젊은이들은 저 사람이 뭘 봤겠지 싶어서 물었어요.

 

‘여보시오, 방금 어떤 여자가 이리로 도망가는 걸 못 봤소?’

‘왜 그러시오?’

‘그 여자가 우리들의 보석을 다 가지고 도망을 갔소. 그러니 어디로 갔는지 빨리 말해주시오.’

 

그러자 부처님이 그 젊은이들을 물끄러미 보더니 이렇게 물었어요.

 

‘여보게들, 잃어버린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이 중요한가? 잃어버린 보석을 찾는 것이 중요한가?’

‘그야 잃어버린 보석보다는 잃어버린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지요.’

 

이 청년들이 그렇게 술 마시고 놀아도 지혜가 좀 있었는지 이렇게 대답을 했어요. 보석보다 자기가 중요하다는 걸 안 것만 해도 굉장하잖아요. 

 

‘그렇다면 여기 앉아보게.’

 

이렇게 해서 부처님이 설법을 하셨어요. 그 설법을 듣고 이 사람들이 마치 악몽을 꾸다 깬 것처럼 눈이 떠진 거예요. 

 

‘부처님, 저희도 출가하겠습니다. 제자로 받아들여 주소서’

 

청년들이 청하니까 부처님이 이렇게 한 마디로 받아들여 출가를 허락했습니다.

 

‘오라, 비구여.’

 

여러분들에게도 제가 지금 법문을 하면서 ‘오라, 비구여’라고 하는 겁니다.(모두 큰 웃음) 

 


 

이렇게 해서 서른 명이 한꺼번에 스님이 된 이야기가 있어요. 이 청년들의 모습을 보면 오늘날 사회하고 비슷합니다. 요즘 한국 사회나 미국 사회나 유럽 사회의 젊은이들은 옛날로 치면 다 부잣집 젊은이에 속해요.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에 아무런 구애 없이 자란 사람들이잖아요. 여러분들만 해도 부모가 부자든 가난하든 다들 집에 형제가 한 명 혹은 두 명 일거예요. 그러면 지금 한국 사회에서 엄마 아빠가 무슨 일을 하든 여러분들 하나 정도 키우는 데는 문제가 없어요. 분유도 좋은 거 사 먹이고, 기저귀도 좋은 거 채우고, 아프다고 하면 금방 병원에 데려가고, 옛날로 치면 왕자나 공주가 하나도 부럽지 않도록 여러분들을 다 애지중지하며 키웠어요. 초등학교 보내고, 중학교 보내고, 고등학교 보내고, 자기가 가기 싫어서 안 갔으면 몰라도 다 대학까지 보내줬어요. 옛날에 부잣집 아이들이 그러듯 여러분들은 하나도 힘 안 들이고 부모의 뒷받침을 받아서 자라고 학교도 갔습니다.

 

그런데 우리 세대는 그렇지 않았어요. 우리는 초등학교 졸업하면 중학교는 자기가 알아서 가야 했어요. 학비도 자기가 벌고 학교도 자기가 선택했어요. 누가 도와줘서 한 게 아니에요. 그렇게 보면 우리 세대는 가난한 집 아들딸에 속하고 여러분들은 다 부잣집 아들딸에 속합니다. 그러니 저는 출가할 일이 없지만 여러분들은 다 출가를 해야 하는 거예요.(모두 웃음)

 

어쨌든 옛날에 비하면 여러분들은 다 부잣집 아들딸인 셈입니다. 인도 천민 마을 아이들에게 여러분은 세상 부러울 게 없는 사람들이에요. 비행기표값을 백만 원씩 내어가면서 인도에 봉사하러 오는 사람들이니까요. 그 아이들에게는 그 돈이 10년은 살 돈이거든요. 심지어 돈 벌러 오는 것도 아니고 봉사하러 그 돈을 내고 비행기 타고 오는 사람들인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부모의 보호처인 그 좋은 집을 두고 여기에 왜 왔어요?(모두 큰 웃음) 

 


 

여러분들이 집을 나왔다는 것은 왕궁을 두고 나온 셈이에요. 왜 왕궁을 두고 나왔을까요? 인도 아이들이 여러분을 보면 ‘그런 집에서 괴로울 일이 뭐가 있나’ 하지만 여러분들은 다들 사는 게 힘들어서 여기 온 거잖아요. 그런데 왜 힘든지 생각해봤어요? 밥을 못 먹어서 힘들었어요? 옷을 못 입어서 힘들었어요? 잠을 못 자서 힘들었어요? 학교를 안 보내줘서 힘들었어요? 그런 것도 아닌데 힘들었잖아요. 그러니 무엇으로 이 병을 치유할 수 있겠어요? 

 

그러니 오늘 우리들의 번뇌는 바로 부처님의 문제의식과 같은 거예요. 부처님이 왕궁에서 생활했다고 해도 따져보면 요즘 우리들 수준 정도였을 거예요. 주위에 굶어죽는 사람이 워낙 많은 사회이다 보니까 그런 생활이 더욱 굉장해 보였던 거죠. 그 시절에 아무리 비단옷을 입었다 하더라도 지금 우리가 입는 옷만큼 좋을까요? 그 시절에 아무리 왕궁을 아름답게 꾸몄다 해도 요즘 에어컨 있는 집보다 나을까요? 그때는 에어컨도 없고 아이스크림도 없었어요.(모두 웃음)

 

부처님의 문제의식은 어쩌면 오늘날 현대인들이 갖는 문제의식과 같기 때문에 부처님의 법이야말로 오늘날 우리들이 고뇌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해답이 되는 거예요. 부처님과 우리가 같은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졸업하게 되면, 집에 가는 걸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집에 가기를 원할 필요도 없어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지금 집에 가면 어떻게 될까요? 다가오는 추석에 집에 가면 맛있는 음식도 해놓고, 결혼한 언니도 오고, 조카도 오고, 동생도 와서 다 어울려 놀겠죠. 다들 결혼생활 힘들다, 직장생활 힘들다 하는데 여러분들은 얼굴이 밝을까요?(모두 웃음) 

 

다른 사람들은 술 마시고 밥 먹느라 정신이 없을 때 나는 조금만 먹고 일어나서 다른 사람들 먹으라고 음식도 해주고, 가족들 잘 수 있게 이부자리도 깔아주고, 방청소도 하고, 이렇게 될까요? 

 

옛날에는 아침에 혼자서는 못 일어나고 밥을 다 해놔야 겨우 일어났었는데, 이제는 집에 가면 자기가 먼저 일어나서 아침밥 딱 차려놓고 ‘어머니, 식사하세요’ 이렇게 말하고 설거지도 딱 해놓는 겁니다. 언니가 결혼생활 못해서 힘들다 할 때 상담도 해주면, 말로는 ‘너가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구나’ 이러면서도 나중에는 ‘아이고, 쟤는 이제 걱정 안 해도 되겠다’ 하면서 걱정을 딱 그만둡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괴로우면 여러분에게 찾아오게 됩니다. 그게 가족 교화예요. 집에 가서 정토회가 어떻고 저떻고 이야기한다고 교화가 되는 게 아니에요. 음식을 걸신들린 듯이 먹고, 막 퍼져서 자다가 일어나서는 ‘우리 정토회가 어쩌고 저쩌고’ 해봐야 아무 도움도 안 된다는 이야기예요.(모두 웃음)

 

이제 3년 공부 했으니 이번 추석에 집에 보내서 테스트를 해봐야겠어요.(모두 웃음) 집에 갔다가 돌아올 때 언니가 따라오고 조카가 따라오는지 어디 한번 봅시다.(모두 박수) 

 


 

이런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 우리는 먹는 것도 너희보다 못하고, 입는 것도 못하고, 자는 것도 못하고, 다 못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유와 행복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나보다도 더 행복하게 사는 사람 있으면 어디 한 번 나와 봐라’ 이렇게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해요.

 

수행이라는 것은 내 인생을 누구한테 의지하는 게 아니라 내 인생을 내가 사는 거예요. 남이 칭찬한다고, 남이 무엇을 해준다고, 남이 어떻게 한다고 거기에 휘청거리는 게 아니라 내 인생은 내가 사는 거예요. 이제는 부모님한테 요구할 것도 없고, 하느님한테 요구할 것도 없고, 부처님한테 요구할 것도 없어요. 지난 3년 동안 내가 어떻게 마음을 가지면 좀 더 자유로워지고 행복해질 수 있는지 좀 알게 되었잖아요. 

 

이제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야 합니다. 이 세상사람 대부분이 자기 인생도 제대로 못 살아서 도와달라며 아우성이니까 좀 도와주라는 거예요. 이렇게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사람이 보살이에요. 물론 나는 내 인생을 책임지고요. 이 세상 사람 대부분이 자기 인생을 자기가 책임 못 지고 남보고 도와달라고 하는 중생인데, 그 중생의 요구에 수순해서 좀 도와주라는 겁니다.

 

도와주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의 길이 있어요. 하나는 자기 인생을 자기가 주인 돼서 살도록 이 좋은 법을 전하는 ‘전법’입니다. 또 하나는 당장 밥 달라면 밥을 주고, 의지처가 되어 달라면 의지처가 되어주는 방법이에요. 인도의 천민 마을에는 당장 밥이 없으니까 밥을 주고, 학교가 없으니 학교를 지어주고, 병원이 없으니 병원을 지어주고 도와주는 거예요. 그런데 한국은 그런 정도는 아니에요. 말로는 ‘밥 달라, 옷 달라’ 하지만 그게 옷 주고 밥 준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에요. 이미 옷도 있고 밥도 있는데도 괴롭다며 난리니까요. 그래서 이 좋은 법을 전하고 깨우쳐줘서 그도 나처럼 행복하게 살도록 하자는 겁니다.

 

이제는 우리가 세상에 좀 보탬이 되는, 남에게 보탬이 되는 인생을 살아봅시다. 남에게 보탬이 되는 인생을 살면 심리적으로 보람이라는 게 생깁니다. ‘아, 참 보람 있는 일을 했다. 그거 참 잘했다.’ 이런 뿌듯한 마음이 생겨요. 

 

반대로 남한테서 뭘 얻을 때 그 순간은 기분이 좋지요. 이건 욕구에 따른 거니까요. 그런데 그걸 계속 얻어보면 마냥 좋은 게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어떤 사람에게서 매달 백만 원씩 얻는다고 생각해보세요. 처음에는 기분이 좋지만, 그 사람에게 매달 돈을 얻는 걸 10년 쯤 계속하다 보면 그 사람한테 심리적으로 위축이 되고 그 사람 눈치를 보게 돼요. 자기도 모르게 그 사람한테 종이 되는 거예요.

 


 

자기 인생을 자기가 책임지는 것, 이게 수행이에요. 그리고 남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인생을 사는 것, 이게 보살이에요. 그래서 대승 수행자는 자기 인생을 자기가 책임지는 ‘상구보리’를 하고, 남의 인생에 조금이라도 도움 되는 ‘하화중생’을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전쟁이 없도록 만들면 전쟁으로 인한 엄청난 피해와 난민들 행렬 같은 것을 막을 수 있어요. 빈부 격차를 좀 줄여주면 열등의식 속에 사는 많은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다운 세상으로, 정의로운 세상으로 만드는 일을 우리가 함께 해야 합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내 인생도 제대로 살고 남의 인생에도 도움이 되는 삶을 사는 게 좋아요? 아니면 자기 인생도 하나 못 살아가지고 맨날 이 사람 원망하고 저 사람 원망하면서 ‘이것 도와달라, 저것 도와달라’ 구걸하며 사는 게 좋아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나 같으면 쌀밥 먹고 거지 되느니 보리밥 먹고 주인 되는 게 낫겠다. 나 같으면 비단옷 입고 거지 하는 것보다는 무명옷 입고 주인 되는 게 낫겠다. 나 같으면 기와집에 살면서 종 노릇 하느니 초가집에 살면서 주인 노릇 하는 게 낫겠다. 나 같으면 남의 머슴살이 하면서 주인집 논 백 마지기 경작하느니 내 논 열 마지기 자작농 하는 게 낫겠다.’

 

이게 어떤 인생을 살 거냐는 거예요. 대기업에 취직해서 고개도 못 들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종노릇 하면서 300만원 받는 게 낫겠어요? 장애인들 도와주는 일 하면서 150만원 받는 게 낫겠어요? 저라면 150만원 받고 남 도와주면서 내가 인사 듣는 쪽을 선택하겠어요. 이게 인생관이에요. 여러분들이 이제 어떤 인생을 살 거냐,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가, 이게 중요합니다. 

 

그런 데서 이번에 행자대학원을 졸업한 여러분들이 자신을 가만히 돌아보길 바랍니다. 전에는 유수 스님이 3년만 지나면 환골탈태할 수 있다며 유혹했던 말에 빠져서 지금까지 살았다고 할 수 있어요. ‘3년 되면 뭐가 바뀌겠지’ 했는데, 3년이 지난 지금 ‘속았나’ 싶은데 오늘 또 유수 스님이 3년 더 지나야 뭐가 변한다고 하죠?(모두 큰 웃음) 

 

그 낚싯밥을 또 물 것이냐, ‘에이’ 하고 도망갈 것이냐 하는 문제가 아니에요. 이제는 내가 내 인생을 어떻게 살거냐 하는 문제가 되어야 합니다. 법륜 스님도 생각하지 말고, 유수 스님도 생각하지 말고, 이제는 ‘내 인생을 내가 어떻게 살 거냐?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가?’를 생각해야 해요. 

 


 

세상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사실 산다는 게 별 거 아니에요. 길가에 핀 한 포기 풀과 같아요. 칭찬해본들 풀이 좋아하지 않아요. 밟아 봐도 싫어하지 않아요. ‘너야 밟든지 칭찬하든지 너 알아서 해라. 밟으면 지나간 뒤 일어서면 되지’ 이런 식으로 대지에 뿌리를 박고 당당하게 살아가잖아요. 야생화가 사람들이 봐주면 피고, 안 봐준다고 안 피나요? 야생화가 자신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즐기듯이 우리 인생이 별 거 아니라고 알면 이제는 옛날처럼 구걸 안 하고 살 수가 있어요. 결과적으로 그게 당당한 인생이에요. 

 

그래서 부처님이 늘 뭐라고 했어요? ‘나의 제자 수행자들아, 교만하지 말고 겸손해라. 비굴하지 말고 당당해라.’ 수행자는 교만해서는 안 돼요, 겸손해야 합니다. 비굴해서는 안 돼요, 당당해야 합니다.”

 

스님의 감로와 같은 법문에 9기 졸업생들과 대중들은 큰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특히 9기 졸업생 중 한 분은 명예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행자대학원 과정 중에 병환이 찾아와서 항암 치료를 받느라 학기를 모두 이수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졸업식만큼은 함께 자리해서 명예 졸업장을 수여하기로 한 것입니다. 스님은 투병 중인 행자님을 위해 특별히 격려 말씀을 더 해주었습니다. 

 

“병을 낫게 하겠다 이런 생각을 하지 마세요. ‘하루를 살아도 좋고, 이틀을 살아도 좋다. 수행자가 뭐 그런 데 집착하느냐?’ 이렇게 태평하게 살아야 행복하게 살아요. ‘언제 병이 낫지?’ 이러면 늘 조마조마하다가 죽어요. 오래 사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이차돈은 22살에 죽었는데 행자님은 22살 넘었죠?(모두 웃음) 

 


 

예수님은 33살에 죽었는데 33살은 넘었어요? 예수님보다 많이 살았으니 괜찮아요. 걱정할 것 없어요. 마음을 수행자답게 턱 놓고 살아야지, 세상 사람들처럼 병에 전전긍긍하면 안 돼요. 

 

항암 치료를 받고 있으니까 통증은 좀 힘들긴 하겠지만 그런 것에 연연하면 초라해 보이잖아요. 의사가 놀랄 정도로 행복하게 사세요. 내일 죽는다고 해도 ‘아이고, 내일요? 그러면 아직 하루나 남았네요! 초로 계산하면 이게 얼마야’ 하면서 태평하게 지내세요. 그래야 나는 죽지만 그 의사는 나를 보고 불법에 귀의하게 되는 거예요.(모두 웃음) 

 


 

그런 당당함이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병을 안고도 졸업식에 참석한 행자님을 위해서 박수 한 번 부탁드립니다.”(모두 큰 박수)

 

병환을 앓고 있는 행자님의 어머니도 함께 졸업식에 참석했는데, 스님의 격려 말씀에 어머님은 흐느껴 우시며 감동의 눈물을 보였습니다. 

 

이어서 졸업장 수여식이 열렸습니다. 졸업생 11명은 한 명씩 앞으로 나와 스님으로부터 졸업장을 수여 받은 후 꽃 한 송이도 함께 선물로 받았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법사님들과 대중들은 뜨거운 박수갈채로 졸업을 축하해 주었습니다.

 


▲ 졸업장 수여식

 

그동안 대중들의 배려와 보살핌으로 무사히 졸업하게 되었는데요. 마지막으로 졸업장을 받은 행자님들은 삼배로 대중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대중들은 큰 박수를 보내며 기쁜 마음으로 삼배를 받았습니다. 

 


▲ 보살펴준 대중들에게 삼배를 하는 졸업생들

 

졸업식의 하이라이트는 사진 촬영이죠. 마지막으로 기념사진 촬영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3년 동안 정성껏 가르침을 준 법사님들과 함께 한 컷을 찍은 후 이어서 한 명씩 개별로 법륜 스님과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또 밖으로 나가서 졸업식에 참여한 대중들 모두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 바른 가르침을 주신 법사님들과 함께

 

졸업식을 마친 후 스님은 곧이어 법사단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법사단 회의 후 서울로 출발해 밤 10시가 다 되어 정토회관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내일(8월30일)부터 9월3일까지 5일 동안은 앞으로 한달 간 해외 순회 법회를 떠나기 때문에 사회 인사분들과 연이어 미팅을 갖거나 평화재단에서 실무자들과 계속해서 회의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5일 동안 스님의 하루는 잠시 쉬어가도록 하겠습니다. 9월4일 정토회 제8차 천일결사 10차 백일기도 입재식 소식과 함께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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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륜 스님의 쉽고 명쾌한 강의를 통해 불교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정토불교대학'이 가을 학기 신입생을 모집합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전체댓글 43

0/200

장향숙

스님 감사합니다
저희곁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6-10-11 11:42:04

현실과이상

스님법문에 영적인 파워가 팍팍 느껴집니다 ㅎ.

2016-10-01 17:44:10

감사

스님, 항상 감사합니다. 부처님의 말씀대로 스님의 말씀대로 당당하게 살겠습니다.

2016-09-07 11: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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