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6.9.19 해외 즉문즉설 강연(15) 휴스턴(Houston)
“한국 사람은 다들 똑똑한데 서로 협력을 못하는 게 답답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2016년 해외 즉문즉설 15번째 강연이 미국 텍사스 주의 가장 큰 도시인 휴스턴(Houston)에서 열렸습니다. 

 

어제 달라스에서 강연을 마친 후 한용우님 가족의 집에서 하룻밤을 머문 스님은 새벽 5시에 한용우님 가족과 함께 108배와 명상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아침 8시에 출발을 하기로 해서 함께 기도와 명상으로 여유있는 아침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침 식사를 마친 후 8시에 달라스를 출발하여 약 400km를 4시간 동안 차를 타고 달려 12시 무렵에 휴스턴에 도착했습니다. 

 


 


▲ 달라스에서 휴스턴으로 가는 45번 고속도로 

 

휴스턴 도심에 들어서자 스카이라인을 이루고 있는 다운타운이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휴스턴은 1900년대 초반에 텍사스 동부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 도시가 급격히 발전하기 시작했는데, 석유화학 공업의 중심지로서 미국 석유회사들 30여 개가 휴스턴에 본사를 두고 있다고 합니다. 

 


▲ 휴스턴의 다운타운

 

순환도로를 타고 휴스턴의 다운타운을 한바퀴 둘러본 후 오늘 머물 숙소인 휴스턴 정토열린법회 임선희님의 집에 도착해 짐을 풀었습니다. 임선희님을 비롯해 휴스턴 열린법회 담당자인 이원자님이 미리 도착해 스님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세 분은 스님에게 삼배로 인사를 올린 후 스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 휴스턴 열린법회 임선희, 이원자님과 함께

 

점심 식사를 마치고 휴식을 취한 후 강연이 열리는 휴스턴 한인회관으로 향했습니다. 한인회관 입구에는 어깨띠를 한 봉사자들이 환한 웃음으로 교민들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 휴스턴 한인회관

 

저녁 7시가 되어 스님이 무대 위로 오르자 열렬한 환호와 박수와 함께 즉문즉설 강연이 시작됐습니다. 스님은 휴스턴의 무더운 날씨와 얼마 전 북한 두만강변에서 발생한 홍수 피해 소식을 전하며 이상 기후 현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즉문즉설의 취지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 나서 곧바로 질문을 받았습니다. 

 


 

총 7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휴스턴에 이민을 온 지 26년 된 50대 남성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개개인은 똑똑한데 뭉쳐서 합심하는 힘이 없어서 발전이 없는 것 같다며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습니다. 

 


 

“저는 스님의 법문을 매일 듣고 있으면서 매주 교회에도 나갑니다. 교회 사람들에게 오늘 스님 법문을 들으러 가자고 수 차례 얘기했지만 코방귀도 안 뀌더라고요. 26년 전에 이곳에 처음 왔을 때는 다른 교회에 부흥회 한다고 하면 목사님이 가보라고 하기도 하고 서로 돕는 분위기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아무리 훌륭한 목사님이 와도 부흥회에 가보라는 목사님도 없고, 게다가 법륜 스님처럼 훌륭한 분이 와서 좋은 강연을 한다고 하면 더더욱 못가게 합니다. 

 

예전에는 차이나타운이나 코리아타운이나 별 차이가 없었는데 지금은 백 배 이상 차이가 납니다. 제가 생각할 때는 한국 사람이 뭉쳐지지 않고 서로 협력을 못 해서 그러는 것 같습니다. 종교인들이 이런 역할을 잘 해줘야 하는데 오히려 종교인들이 더 문제가 많습니다. 교회에서는 불교를 사이비로 생각하고 교류도 안합니다. 스님 말씀도 좋으면 듣고, 목사님 말씀도 좋으면 서로 들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어떻게 해야 한인 사회가 이러한 분열을 극복하고 강하게 될 수 있을까요? 한국 사람들은 자기만 잘났다고 하고 서로에게 절대 칭찬을 안 해주거든요.”  

 

“질문자는 지금 한인 사회에 대해서 칭찬을 했어요? 비난을 했어요?”

 

“비난을 좀 했죠.”

 

“그것이 바로 한국 사람의 특징입니다.”(청중 웃음) 

 


 

“비난이라기보다는 안타까워서요.”

 

“비난이라기보다 비판을 하신거지요. 우리는 자꾸 자기 생각을 가지고 비판하기 때문에 분열이 가속화 되는 겁니다. 우리는 비판하기보다는 이해를 해야 합니다. 

 

처음에 한국 이민자가 소수였을 때는 한국 사람끼리 경쟁하는 것이 아니었잖아요. 미국 사람하고 경쟁하니까 한국 사람들이 힘을 합쳤겠지만, 지금은 식당을 하나 열어도 한국 사람끼리 경쟁해야 하고 교회를 열어도 한국 신도를 두고 경쟁해야 합니다. 교회를 열 때 한국 사람은 못 오게 하고 미국 사람만 상대로 선교한다면, 한국 선교사끼리 서로 협력 하겠지요. 그런데 한국 사람을 상대로 선교해서 교회를 키워야하니 경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주일에 나오는 헌금으로 교회 임대료도 내야하고 본인 월급도 받아야 하는데, 만약 저쪽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면 사람들이 그쪽으로 다 가버리면 헌금이 적어져서 임대료도 못 냅니다. 원래는 선교하는 게 목적이었는데 선교를 하려니까 교회가 있어야 하고, 교회를 유지하려니까 돈이 있어야 하고, 돈은 신자들의 헌금에서 나오니까 신자들이 많이 오는 것이 곧 교회를 유지하는 핵심이 되어버린 거죠. 결국 장사하려고 시작한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장사하는 사람이 가게를 유지하는 것과 같은 꼴이 되어 버렸단 말입니다. 이게 ‘전도몽상’입니다.  

 


 

이것은 교민 사회가 자기 영역을 개척하는 방식에서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세탁소를 하다가 혼자서 도저히 못하니까 동생을 데려와서 일을 시켰어요. 한국 사람은 똑똑하잖아요. 동생이 가만히 보니 형이 자기한테는 월급만 겨우 주니까 티격태격하다가 본인이 직접 세탁소를 차리겠다고 나가버려요. 그런데 본인도 미국에 와서 해 본 것이 세탁소 밖에 없으니 세탁소를 다시 차릴 수밖에 없고, 멀리 가면 손님이 없으니 형의 세탁소 주변에 차릴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다보니 형제 사이에 원수가 되고, 친구 사이에도 원수가 됩니다. 또 본인도 장사를 해야 하니까 사람을 데려다 쓸 수밖에 없고, 그 사람도 2~3년 후에 나가서 또 하나 동종업을 차리게 되는 현상이 반복되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서로를 불신하게 된 측면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을 잘 살리면 긍정적인 측면도 많아요. 세탁소를 운영할 때 아예 처음부터 사람을 데려올 때 ‘우리 가게에서 2년만 일해라. 그리고 나선 너도 독립해라’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 사람이 독립하면 함께 세탁소 조합을 만들어서 공동으로 영역을 확대하는 쪽으로 협력하면 큰 힘을 발휘할 수가 있죠. 그런데 우리 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교육이 안 되어 있습니다. 교육이 안 되어 있으니 교민 수가 늘어날 때 경쟁적인 측면만 강조가 되는 겁니다. 

 

반면에 중국 사람들은 건물을 하나 사더라도 사람을 모아서 여섯 명이서 큰 빌딩을 공동 구매합니다. 한국 사람은 두 명이 돈을 모아서 같이 건물을 사면, 두 명이 다 사장 명함을 만들어서 제 소유라고 하면서 싸우거든요. 그런데 중국 사람은 여섯 명이 샀더라도 한 사람한테 관리를 위임하고 다른 사람들은 빠집니다. 이렇게 계속 협력해서 확대시켜 나갑니다. 첫째, 이렇게 한국인과 중국인은 사는 방식의 문화 차이에서 오는 부분이 있습니다. 

 


 

둘째, 환경의 변화로 중국 경제가 성장하면서 중국 사람들이 소비시장을 장악해가고 있는 영향이 큽니다. 19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미국에서 한국 교민사회가 확장된 것은 교민들이 열심히 일한 것도 있지만 한국의 경제가 성장하면서 품질 좋은 신발, 가발 등 여러 가지 좋은 물건이 생산되었고 교민들이 그 물건을 미국에 가져와서 팔면서 유리했던 측면이 큽니다. 그런데 이제는 중국 경제가 성장하고, 한국산 소비재 가격은 높아지니 미국 소비시장을 중국 제품이 대체하게 되었어요. 그러니 미국 안에서 한국인들이 하던 역할을 중국인들이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또 중국인과 중국 제품은 그 규모가 한국보다 열 배가 넘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것을 계속 유지하려 하면 경쟁이 안 됩니다. 

 

일본 사람들이 하던 것을 우리가 가져왔을 때 일본 사람들은 그동안 하던 것을 버리고 다른 품목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품목을 계속 붙잡고 있기 때문에 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끼리 경쟁을 하게 되고, 인건비나 여러 가지 조건 때문에 중국 사람을 이길 수가 없게 된 겁니다. 그러니 한국 사람들이 팔던 제품을 중국 사람들이 값싸게 들여와서 팔 때에는 우리는 품목 이전을 해줘야하는 거예요.

 

한국 사람은 한 달 수입이 5천불이 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기준이 높은 반면에 중국 사람은 한 달에 1천불만 벌어도 된다고 생각하니까 우선 인건비에서 경쟁이 될 수가 없어서 그 사람들이 시장을 장악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예를 들어 뉴욕 플러싱 지역도 코리아타운이었는데 중국 사람들이 장악해서 차이나타운이 되어버리니까 한국 사람들은 밀려나게 됐거든요. 휴스턴만 그런 것이 아니라 미국 전역이 다 그렇습니다. 

 

한국 사람의 특징은 개인기가 뛰어납니다. 개인기가 뛰어나니까 여기서도 빨리 개척하잖아요. 그런데 사람이 재주가 많으면 빠른 성장의 효과는 있지만 협력하는 자세가 떨어집니다. 그래서 장기적으로는 밀리지요. 그런 특징이 있기 때문에 한국 사람을 중국 사람처럼 고치려고 하면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사찰이 교회 흉내를 내려고 하면 잘 안 됩니다. 여기도 교회는 많은데 절은 별로 없잖아요. 그러면서 절은 계속 교회를 부러워해요. ‘교회는 크고, 유치원도 있고, 한글학교도 있잖아’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런데 교회는 좋든 나쁘든 십일조를 내기 때문에 신도 10명만 모으면 유지는 할 수가 있어요. 그런데 절에 다니는 사람들은 십일조를 안 내거든요. 부러우면 돈을 내면 되는데 부러워만하고 돈은 안낸다는 겁니다.(청중 웃음) 

 


 

그러면서 스님한테 ‘왜 절에서는 한글학교를 안 하냐?’ 자꾸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옳지 않아요. 절에 다니면서는 ‘아이고, 교회가 크면 뭘 하나. 우리는 십일조를 내고 싶으면 내고, 내기 싫으면 안 내도 되니 참 좋다.’ 이렇게 자기가 속한 곳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그 특징이 살아날 수 있도록 사물을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또 한국 사람들은 자기를 알아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살아보면 돈을 많이 벌어도 누가 알아주는 사람이 없잖아요. 지위가 조금 높아도 누가 알아주는 사람이 없잖아요. 한국처럼 작은 나라에서는 자기가 바짝 일을 하면 거기서 빛날 수가 있어요. 그러면 금방 사람들이 알아주지요. 그런데 이 넓은 세상에 오니까 아무리 서울대를 나와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누가 알아줬으면 하는 ‘고파병’ 때문에 교회에 나가면 장로를 해서라도 알아달라고 하고, 한인회 회장을 해서라도 알아달라고 하고, 평통 자문위원이라도 해서 알아달라고 하면서 나 좀 봐달라고 다들 아우성입니다. 그러다 보니 뭐든지 다 치열해진 겁니다. 또 사람의 심리가 작더라도 뱀 머리하는 게 용 꼬리 하는 것보다 낫잖아요. 그래서 교회를 두 개 만들든지, 절을 두 개 만들든지, 회사를 두 개 만들어서 서로 사장을 하려고 하는 겁니다. 

 

미국에 왔으면 미국의 토양에 맞게 삶의 방식을 바꿔야하는데 개울에 있던 고기가 큰 바다에 와서도 자꾸 개울 식으로 살려하기 때문에 지금 말씀하시는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스님 말씀대로 남의 마음을 바꾸기는 어렵고 내 마음을 바꾸는 것이 더 쉬운 게 맞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예전에는 이렇게 많지가 않았는데 지금은 휴스턴에만 교회가 50개 넘습니다. 10명만 모여도 목사님을 모실 정도예요. 그런데 이렇게 목사님이 많아지면 교민 사회가 좋아져야 할텐데 더욱더 힘들게 만드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목사님을 모셔오면 목사님이 여기서 살 수 있게끔 서포트를 해야 하는데, 그걸 감당하려면 얼마나 힘듭니까.”

 

“힘들더라도 본인들이 좋아서 모시는 거잖아요. 질문자 보고 돈 달라는 소리도 안 하는데 왜 그렇게 신경을 써요?”

 

“저만 신경을 쓰는 게 아니라 다른 교인들도 다 신경이 쓰는 것 같은데요.” 

 

“다른 교인들은 별로 신경을 안 써요.”(모두 웃음) 

 

“그렇다면 제가 생각을 잘못한 것이고요.” 

 

“여러분들은 자꾸 ‘스님이 왜 저러나’, ‘목사님이 왜 저러나’ 그러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겁니다. 절에서 가르치는 것,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한 번 생각해 보셔야 해요. 

 

사람들이 교회나 절에 가서 사람들이 기도하는 내용이 뭐예요? ‘우리 아들 좋은 대학에 넣어주세요’ 이런 것들이잖아요. 만약 이런 기도를 들어주려면 하나님이나 부처님이 성적이 안 되는 아이를 좋은 대학에 넣어줘야 하는데, 그러려면 정원 외에 한 명을 더 넣어 주든지 아니면 성적이 되는 아이를 하나 빼고 그 아이를 넣어줘야 하잖아요. 결국 하나님이나 부처님이 부정입학 시켜주는 존재가 되는 것 아닙니까. 세상에서는 이런 부정입학을 금지하고 있고, 하더라도 몰래 하는데, 아직 종교만 이런 부정입학을 공개적으로 선전하잖아요. 지금의 종교가 이렇습니다. 이렇게 부정입학을 시켜준다고 해야 교회나 절에 다니는 재미가 있지 저처럼 ‘공부를 잘 해야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기도를 많이 한다고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아무도 절에 안 올 거잖아요. (모두 웃음)

 


 

종교의 99%가 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끌어 모으는데, 그 종교의 지도자가 정직하고 성실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얘기에요. 목사님이나 스님이 잘못된 게 아니라 질문자가 지금 세상을 잘못 보고 있다는 겁니다. 세상도 공정한 경쟁을 추구하는데 오히려 종교가 불공정한 경쟁을 부추기는 지금의 형국에서 무조건 그분들의 잘못만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겁니다. 왜냐하면 스님이나 목사님은 대중의 요구에 부응해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니까요.

 

이런 현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질문자의 바람대로 통합을 하려면 말로만 ‘통합해라’라고 해서는 오히려 분열만 가속됩니다. 그들의 처지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만이 통합이 가능합니다. 즉 질문자부터 교회의 운영을 위해 헌금도 하고, 법륜 스님의 강연을 거부하는 목사님들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만이 통합이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죽인 자들을 향해서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하신 것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부터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저 목사나 스님을 비난하기만 하면 우리도 분열을 일으키는 수많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교회를 다닌지 40년이 되었습니다. 집사가 된 이후에도 습관적으로만 교회에 나가고 있는데, 그렇다고 교회에 안 나가면 죄를 짓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합니다.”

 

“교회에 나가면 꼴 보기 싫지만, 그렇다고 안 나가면 불편하기 때문에 교회에 나간다고 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질문자는 누구를 위해서 교회에 나가는 건가요?”

 

“음... 그건 저를 위해서 나가는 거죠.”

 

"그러니 그냥 조용히 교회에 나가시면 됩니다.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나가는 것이니까요.”

 

“나름대로 조용히 다니고 있는데 불의를 보면 마냥 참을 수만은 없게 돼요. 그리고 저는 오히려 제가 믿음이 더 굳건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왜냐하면 장로님처럼 소위 믿음이 좋다는 분들은 고집이 너무 세어 보여요. 외골수에 가깝게 느껴집니다. 외부에서 보기에도 저같은 사람들이 오히려 고집이 세지 않는 것 같습니다.”

 

“믿음이 있기 때문에 고집이 센 거에요.” (청중 웃음)

 

“정말 그런가요?”

 

“고집이 센 것과 믿음이 강한 것은 일치해요. 자기만이 옳다고 믿기 때문에 고집이 셀 수밖에 없습니다. 질문자는 남들은 다 틀렸다고 생각하면서 본인은 참고 있는 거에요. 남들 보고 틀렸다고 자꾸 하지 마세요. 그냥 ‘저 사람은 저렇게 믿고 있구나’라고 이해하면 되는 겁니다. 그들은 틀렸다고 자꾸 생각하니까 스트레스를 받고 화가 나는 거에요.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믿고 살아갈 뿐입니다. 물론 질문자가 볼 때 바람직하지 않다 싶으면 얘기는 할 수 있겠지만, 본인이 옳다고 주장하지는 말라는 겁니다. 그들이 볼 때는 오히려 질문자가 믿음이 없고, 고집도 세다고 할 거에요. 왜냐하면 질문자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으니까요. 질문자가 그들을 보고 고집이 세다고 하는 건 그들이 질문자의 말을 듣지 않기 때문인데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질문자가 고집이 무척 센 겁니다. 

 

 

그래서 서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옳다 그르다 판단하지 말고 이해해야 돼요. 믿음, 사상, 이념, 종교, 신앙은 개인의 자유입니다. 헌법에도 분명히 명시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믿음에 대해 옳다 그르다 판단하게 되면 불화만 생겨요. 믿음에 대해서는 ‘틀렸다’, ‘잘못됐다’라고 말을 할 필요가 없어요.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질문자가 좀 더 편안해 질 겁니다.”

 

“네, 그렇게 해보겠습니다.”

 

“질문자도 40년 동안 신앙생활을 한 사람으로서 예수님을 본받아 그들에 대해서 너그럽게 마음을 내어 보세요. ‘세상 사는 게 힘들어서 저러는구나’ 하고 힘들어하는 목사님에게 밥 한끼 대접하고 헌금도 주세요.” 

 

“네, 잘 알겠습니다.”(모두 박수)

 


 

“혹시 ‘게는 가재 편’ 이라고 제가 절이나 교회를 두둔한다고 하실 수도 있는데, 저는 목사편도 아니고 스님편도 아닙니다. 목사나 스님도 나와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됩니다. 그러면 특별히 존경할 일도 없고, 특별히 비난할 일도 없어집니다. 

 

여러분들은 그분들이 자기와는 다른 사람, 즉 높은 사람이라고 정해놓고 대하기에 존경했다가 비난했다가 하는 것입니다. 목사든 스님이든 그냥 똑같은 사람일 뿐입니다. 남자든 여자든 같은 사람이듯이 그냥 똑같이 보면 됩니다. 우상을 가지고 사니까 기대했다가 욕했다가 하는 겁니다.”

 

스님과의 오랜 문답 끝에 질문자의 굳어있는 표정도 점점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청중들도 박수를 보내며 공감을 표했습니다. 

 

길게 문답이 오고가는 가운데 질문한 남성분은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했습니다. 무언가 깨달은 듯 얼굴이 밝아지며 스님에게 감사 인사를 하자 청중들도 격려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 외에도 6명이 더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니 약속한 2시간 30분이 다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우리가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기대감이 너무 높기 때문이라고 강조하면서 강연을 마쳤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든 절에 다니든, 남자든 여자든, 미국에 살든 한국에 살든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욕심이 많기 때문에, 기대가 높아서 집착을 하기 때문에, 자기 생각을 고집하기 때문에 등등의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는 행복하게 살지 못합니다. 

 


 

그러니 기대를 너무 높게 갖지 마세요. 기대가 높으니까 실망하게 됩니다. 아이들을 양육하는 것도 그저 사고 없이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것만 해도 감사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세월호 사고로 아이를 잃은 가족들이 ‘아이들 교육 잘 시키려고 돈 버느라 바빠서 정작 아이들하고 따뜻한 밥 한 끼 제대로 함께 못 먹어보고, 얘기도 한번 제대로 못 나누었다’라고 하면서 후회를 많이 했습니다. 이것은 다른 부모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었습니다. 아이들이 아침에 가방 메고 학교에 가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저녁에 집에 무사히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마음이 들게 해주었으니까요. 

 

이렇게 기대를 낮추면 우리는 늘 만족할 수 있어요. 기대가 높으면 아무리 좋은 세상이 와도 불만이 생깁니다. 여러분들은 천국에 대한 기대가 높기 때문에 정작 천국에 가면 불만투성이일 수 있어요. 오히려 지옥에 가면 살 만할 겁니다. 지옥은 워낙 어렵고 힘들다고 미리 알기 때문에 각오를 하고 가기 때문입니다.(청중 웃음) 

 

그래서 저는 인도성지순례를 가는 참가자들에게 엄청나게 겁을 줍니다. 그곳에 가면 밥도 직접 해서 먹어야 하고, 숙소에서는 침낭 깔고 자야 하니까 각오를 한 사람만 오라고요. 그렇게 가면 열악한 상황인데도 고생인줄 모르고 ‘스님, 언제쯤 고생합니까?’ 하고 도리어 묻습니다.(청중 웃음) 

 

순례가 끝나고 나면 모두들 좋았다고 하면서 왜 그렇게 겁을 주었냐며 웃습니다. 정말 고생을 했는데도 오히려 불만이 없어요. 그래서 객관적 조건을 개선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기대가 우리 자신의 행복을 좌우합니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잘나가던 사람이 미국에 유학을 온 경우에는 적응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오히려 막노동 하다가 온 사람이 더 적응을 잘해요. 한국에서야 서울대 졸업장이 중요하지만 미국에서는 상관이 없거든요. ‘한국에서는 내가 무엇 무엇을 했는데’ 하는 생각을 갖고 있으면 미국 사회에 적응하기가 어려워요. 

 

미국에 오셨으면 한국적인 것을 너무 고집하지 마세요. 최선을 다하되 무언가 되려고 하는 마음은 버리시는 게 좋습니다. 행복하게 살려고 미국에 왔잖아요. 느긋하게 사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다시 한 번 드리고 싶습니다.”

 

다양한 질문에 대해 열정적으로 강연을 해 준 스님에게 청중들 모두가 박수갈채로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이어서 무대 위에서는 책사인회과 곧바로 열렸습니다. 많은 분들이 길게 줄을 서서 사인을 받았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편지로 써서 전달하는 사람, 스님과 인증샷을 찍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람, 마지막에 다시 줄을 서서 자신의 이름을 써달라고 부탁하는 사람 등 스님을 만난 기쁨을 표현하려는 각양각색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은 오늘 강연을 준비한 휴스턴 정토열린법회 회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휴스턴 열린법회는 주2회 수요일 오전 10시, 일요일 오후 2시에 열리고 있습니다. (문의 : (551) 795-5064 / houstonjungto@gmail.com)

 


▲ 휴스턴 열린법회 회원들 

 

마지막으로 강연 총괄을 맡은 박경원님, 휴스턴 열린법회 담당자 이원자님, 숙소와 식사를 제공해준 임선희님과 함께 한 번 더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박경원님은 텍사스 지역에서 처음으로 열린법회를 시작하면서 달라스, 휴스턴, 오스틴에서도 법회가 열릴 수 있게 기초를 마련해 준 분입니다. 

 


▲ 휴스턴 열린법회 임선희님, 열린법회 책임자 이원자님, 강연 총괄을 맡은 박경원님

 

스님은 강연을 준비해 준 한 명 한 명에게 악수를 건네며 감사 인사를 한 후 강연장을 나왔습니다. 

 

오늘밤은 임선희님의 집에서 묵기로 했습니다. 스님은 임선희님의 집에 도착해 가족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담소를 나누다가 휴식을 취했습니다. 

 


▲ 숙소와 식사를 제공해 준 임선희님 가족과 함께

 

내일은 새벽 6시에 숙소를 출발해 아침 8시 40분 비행기로 휴스턴 공항을 출발해 9시 40분에 오렌지카운티 공항에 도착합니다. 오렌지카운티에서는 저녁 7시에 할히데이인 부에나 팍(Buena Park)에서 해외 즉문즉설 강연 16번째 강연이 열릴 예정입니다.  

 

※ 2017년 1월에 진행되는 '인도 성지순례' 참가자 접수가 지금 진행 중입니다.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인도의 10대 성지를 내 발로 직접 밟아보고 그 감흥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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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27

0/200

이형주

좋은가르침 늘 깨달음을주시네요 고맙습니다!

2016-10-02 09:49:01

장미경

고맙습니다.

2016-09-25 14:04:46

호봉봉님아

감사할뿐!!
스님은 무슨질문을해도 척척알아듣기쉽게
얘기해주십니다
늘 \'오늘은 머라고 답변하실까 \'
기대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2016-09-24 13:3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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