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7. 04. 02 공동체 봄나들이 둘째 날, 백일출가 봄나들이 첫째 날
일상에서 수행하는 마음

새벽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아 기온이 뚝 떨어졌습니다. 어제의 햇빛이 사실이었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추위를 느끼는 새벽입니다. 역시 기온차가 심한 ‘봄’입니다.

스님은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마치자마자 한쪽에 수북이 자라 기다리고 있는 원추리를 캤습니다. ‘아이고, 춥다, 추워. 손가락이 언다.’를 연발하며 행자님들과 원추리를 캐서 모아보니 한 대야 정도가 되었습니다. 스님은 “봄이니 봄나물 맛은 봐야하지 않겠나.” 하며 문경, 서울 공동체 식구들에게 맛보이고 싶었지만 모자란 양입니다. 오전 농사일을 하는 탑곡 수련원에 가서 더 캐기로 하였습니다.

아침 공양을 하고 탑곡 수련원에 모두 모였습니다. 팀별로 역할 분담을 하였습니다. 세 개 팀은 멀칭을 하고 두 개 팀은 봄나물을 캤습니다. 스님은 우선 원추리를 캘 수 있도록 잡풀과 넝쿨을 제거해 주었습니다.

둑 사면에 햇빛이 잘 드는 쪽, 원추리가 거의 군락을 이루어 자라고 있었습니다. 넝쿨 아래에 소복이 자라서 스님이 낫으로 넝쿨을 제거해 주니 원추리 초록 잎이 잔디처럼 드러났습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소쿠리에 원추리, 쑥, 냉이를 캤습니다. 서로 이야기 하느라 소쿠리에 나물이 담기는 속도가 늦어도 상관없이 햇살을 쬐며 즐겁게 하였습니다.



곳곳마다 자리를 잡고 앉아 나물을 캐자, 스님은 웃밭에 가보았습니다. 멀칭 하느라 세 개 팀이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한 팀에 여섯 명이 모여서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세 명씩 팀을 이루면 효율적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살펴보니, 멀칭용 비닐이 세 개만 준비되어서 그리 된 것이었습니다.

스님은 한 사람은 앞에서 비닐을 끌어주고 한 사람은 비닐을 밀착시키고, 앞에 가는 두 사람은 1차로 가볍게 흙을 덮어 주고, 뒤에 두 사람은 흙덮기를 마무리 해 주는 역할로 해 보자고 제안하여 팀 정비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해 보니 진행이 훨씬 빨리 되었습니다. 하다 보니 옆 고랑의 팀과 경쟁 아닌 경쟁이 되어 착착 진행되었습니다.

긴 골, 짧은 골을 찾아가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 보니 너른 밭을 모두 마무리 하게 되었습니다. 스님도 함께 힘을 보태 땀을 흠뻑 흘렸습니다.

어느새 아침 찬 기온이 모두 가시고 따뜻한 햇빛이 가득하였습니다.


점심 공양 시간이 되어 모두 두북 수련원에 모였습니다. 오랜만에 문경과 서울 공동체 성원들이 모여 소심경을 함께 하며 공양하였습니다.

아침에 캔 원추리와 냉이가 반찬으로 나왔습니다. 스님은

“봄이니 봄나물 맛은 봐야겠다 싶어서 일부러 원추리와 냉이를 캤어요. 맛이 어때요? 여러분은 봄나물보다 다른 반찬이 더 좋은가 봐요.”(대중 웃음)

나물에 익숙하지 않은 행자님들은 아무래도 쓴 맛 나는 봄나물에 젓가락이 덜 가는가 봅니다.

점심 공양을 끝으로 문경, 서울 공동체 성원들은 각자 서울과 문경으로 돌아가고 오늘은 백일출가생들과 수련 때문에 함께하지 못한 법사님들, 상근자들이 오게 됩니다. 다음 사람들이 올 수 있도록 조금 서둘러서 일정을 끝내야 해서 대청소와 차량 배정 등의 안내 전에 스님은 이틀의 일정을 정리하는 말씀을 하였습니다.

“수행정진을 일상 속에서 해야 합니다. 형식이 아니라 꾸준히 정진하는 것이 일상의 중심을 잡도록 해야 합니다. 일상 수행을 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어요.

일상 속에서 자기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 감정이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 감정에 빠지지 않도록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삶을 가볍게 해야 합니다. 삶이 어렵고 무거운 것이 아니라 생각이 어렵게 하고 무겁게 하는 것입니다.

사는 것이 가장 쉬워요. 삶은 쉽고 생각은 어렵습니다.

매일 아침 기도 하면서 자기가 잡고 있는 무거움을 해소하고 주말에는 이렇게 도반들과 이야기도 나누면서 행복하게 사세요.”

매일 하는 아침 기도가 나를 가볍게 해 주는 힘이었다는 것, 힘이 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저마다 하면서 1박 2일, 짧은 공동체 봄나들이 일정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스님은 백일출가생들과 법사님들이 오실 동안 곳곳에 새로 나고 있는 싹들과 새로 만든 온실 화분들을 정비하였습니다. 빈 화분은 흙을 다시 뒤엎어서 각종 씨앗을 심었습니다. 또, 선주 법사님이 지리산 수련원에서 가져다 줄 모종을 심을 화분도 마련해 두었습니다. 온실 속에서 실험하고 있는 감자가 싹을 무럭무럭 키우고 있었습니다.

저녁 즈음, 묘덕 법사님이 먼저 도착하였습니다. 조금 후에 부산울산지역 활동가이신 보살님께서도 가족과 함께 스님께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지난 번 경황이 없던 상 중에 정토행자들이 조용히 일을 도와주는 것을 보고 가족들이 감동해서 꼭 인사드리고 싶다고 하여 찾아왔다 하였습니다. 스님은 보살님이 무엇보다 마음의 슬픔을 빨리 회복하게 되어 다행이라 격려하고 멀리 배웅하였습니다.

백일출가생들과 법사님이 모두 도착하여 저녁 시간에 스님께 법문을 요청하였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의 핵심을 쉽게 설명하였습니다.

연기법, 붓다의 핵심 가르침

“부처님 가르침의 요지가 무엇일까요? ‘연기법(緣起法)’이라고 말합니다. 좀 쉬운 말로는 ‘인연법(因緣法)’이라고 말해요. 그걸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은 인연과보다’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괴로움을 겪습니다. 여러분들 모두 살면서 괴롭잖아요. 이 괴로움은 자신의 ‘무지(無知) - 알지 못함, 어리석음’으로부터 비롯됩니다. 무엇에 대해서 어리석고 무엇을 알지 못한다는 뜻일까요? 인연법을 알지 못한다는 거예요. 인연법을 알지 못하는 무지 때문에 괴로움이 생겨납니다. 그러면 인연법이라는 게 뭐냐? 이 세상이 움직이고 변화하는 원리입니다.

외부적 조건과 내부적 조건

내일 여러분과 같이 아침에 남산을 산책하면서 진달래를 보게 될 텐데, 햇빛이 많이 비치는 남사면 양지바른 곳에는 진달래꽃이 벌써 활짝 폈습니다. 그런데 서쪽이나 북쪽 면에 있는 진달래는 아직 꽃이 활짝 피지 못하고 봉오리 상태예요. 이렇게 일조량이 어떠냐에 따라서 피기도 하고 피지 않기도 합니다.

그런데 남사면에 있는 다수가 꽃이 폈는데 개중 몇몇은 아직 피지 않고 봉오리 상태로 있어요. 또 북사면에 있는 것도 대다수가 아직 피지 않았는데 몇 개는 활짝 피어 있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어요.

이걸 설명해 보자면, 똑같은 조건에서도 나무의 종자에 따라서 빨리 피는 게 있고 늦게 피는 게 있습니다. 또, 똑같은 종자라도 남쪽 면에서 자라느냐 북쪽 면에서 자라느냐에 따라서 꽃이 빨리 피기도 하고 늦게 피기도 해요. 이건 진달래만 그런 게 아니라 벚꽃도 그렇고 목련도 그렇고 밤나무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습니다.

개인의 특성, 인(因) 그리고 외부 환경 연(緣)

똑같은 조건에서 서로 다른 것은 그 개체의 성질 차이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똑같은 조건에 있지만 어떤 사람은 괴롭고 어떤 사람은 안 괴로운 것은 각 개인의 마음, 즉 개인의 성질 때문에 그래요. 그런데 같은 사람인데도 이런 환경에 가면 행복하고 저런 환경에 가면 괴롭다면 그 환경 탓, 즉 조건 탓입니다. 북사면에 있는 것은 아직 꽃이 안 피고 남사면에 있는 것은 꽃이 피는 것과 같아요.

이러한 개개의 특성을 ‘인(因)’이라 하고, 주어진 조건이나 환경을 ‘연(緣)’이라고 합니다. 인연이 만나서 과보(果報)가 생겨난다, 즉 결과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씨앗이 있다 하더라도 천장에 매달려 있거나, 불에 떨어지거나, 건조한 데 있거나, 너무 추운 데 있으면 싹이 나지 않습니다. 유인무연(有因無緣) - 비록 인이 있다 하더라도 연이 없으면 과보가 생겨나지 않습니다. 반대로 무인유연(無因有緣) - 즉, 아무리 좋은 밭을 마련했다 하더라도,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싹이 트지 않아요. 인이 없으면 연이 있다 하더라도 과보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유인유연(有因有緣) - 씨앗도 있고 밭도 있어야 마침내 싹이 틉니다. 인연이 만나야, 즉 인연이 지어져야 과보가 생긴다는 이야기예요.

그럴 때 ‘씨앗이 좋으면 반드시 수확이 좋다’ 혹은 ‘밭이 좋으면 반드시 수확이 좋다’ 이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인연이 만나야하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같은 밭이라면 씨앗이 좋을수록 수확이 많다’, ‘같은 씨앗이라면 밭을 잘 가꿀수록 수확이 많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씨앗이 좋을수록 무조건 수확이 많다는 게 아니라 ‘수확이 많을 확률이 높아진다’라고 할 수 있고, ‘밭을 잘 가꿀수록 수확이 많을 확률이 높아진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거예요.

인만 강조해서도, 연만 강조해서도 안 되는 법칙

다시 말해, 인연법은 기계론적인 법칙이 아니에요. 무조건 착한 일을 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착한 일을 하면 좋은 일이 생길 확률이 높다는 겁니다.

착한 일을 해도 나쁜 과보가 생길 수도 있고, 착한 일을 해서 좋은 과보가 생길 수도 있어요. 나쁜 일을 하면 나쁜 과보가 생길 수도 있고, 나쁜 일을 했는데도 좋은 과보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인연의 원리에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좋은 일을 하면 좋은 과보가 생길 확률이 높다’, ‘나쁜 일을 하면 나쁜 결과가 일어날 확률이 높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인연과보를 무시하거나 인과율을 기계론적으로 받아들이면 오류가 생긴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현상을 관찰하면서 편견을 갖고 치우치기가 쉽습니다. 콩 100알을 자갈밭에다 뿌렸는데 98알은 죽고 2알이 살았다면 그걸 가지고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봐라, 살 놈은 자갈밭에 뿌려도 산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죠. 이번에는 콩 100알을 기름진 밭에 뿌렸어요. 그래도 2알이 죽었어요. ‘봐라, 아무리 좋은 조건이라도 죽을 놈은 죽는다.’ 사물을 이렇게 볼 수가 있다는 거예요. 이렇게 살고 죽는 것을 개인에게 달려 있다고 보는 것은 ‘인’을 너무 강조하는 자세입니다.

‘이 과보의 원인이 인에 있다’ 이렇게 인만을 강조해서 보는 거예요. 종교가 이렇게 치우치기 쉽습니다. 대부분의 종교는 모든 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기 쉬워요. ‘다 네가 잘못해서 그렇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다른 시각도 있어요. ‘콩 100알을 기름진 밭에 뿌리면 98알이 싹이 트고, 자갈밭에 뿌리면 2알밖에 싹이 트지 않으니 기름진 밭이 96알의 생존 확률을 높여준다. 그러니 이 환경이 얼마나 중요하냐? 따라서 밭의 상태가 수확을 결정한다.’ 라고 한다면, 이건 밭을 너무나 강조하는 태도예요. 이게 사회과학이고 사회운동이에요. 모든 게 다 우리 사회의 모순, 사회적인 문제 때문에 발생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사회운동은 ‘연’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종교는 ‘인’을 지나치게 강조해요.

그러나 실제는 어떨까요? 인연과보, 다시 말해 인과 연이 같이 작용해서 생겨난 거예요. 그럴 떄 우리는 개개인이 수행 정진하는 것과 우리 사회의 조건을 개선하는 것, 다시 말해 좋은 씨앗을 고르는 것과 밭을 잘 가꾸는 것이 함께 가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같은 사회조건에 살면서도, 이렇게 같은 문경에 살면서도 어떤 사람은 즐겁고 행복하게 살고 어떤 사람은 괴롭고 힘들게 사는 것은 문경 수련원 탓이 아니라 개인의 문제라는 거예요.(청중 웃음) 그런데 이 수련원 환경을 개선하면 수련원에 사는 다수가 조금 더 행복해진다고 말할 수 있죠. 즉 모든 게 다 개인 탓만도 아닙니다. 개인이 느끼는 것은 개인 탓이지만 전체적으로 평가했을 때 보이는 변화에는 환경 탓도 있어요.

한국 사회의 인과 연

대한민국의 국민 행복도가 세계 117위라고 합니다. GDP는 세계 13위고 1인당 GDP는 세계 28위인데 행복도는 117위예요. 여기에는 대한민국 국민성, 사람들의 문제도 있습니다. 성격이 조급하거나, 욕심이 많거나, 고집이 센 것 같은 요소가 행복도를 떨어뜨려요.

그러면 다 국민성 때문에 불행할까요? 아니에요.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조건 때문이기도 합니다. 경제적으로만 봤을 때는 괜찮은 사회지만 그 사회 안의 질적 조건, 사회적인 조건을 보면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 데 장애가 되는 조건, 행복할 수 없는 조건을 가지고 있어요.

한국 사회는 우선 불평등합니다. 절대 빈곤은 해소됐는데 상대적 빈곤은 지나치게 크죠. 불평등이 심하면 불만이 커질 수 있습니다.

또 한국 사회는 불공정해요. 우리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니까 경쟁을 하는데 그 경쟁이 공정할 때 패자가 승복하게 되지요. 그런데 경쟁이 불공정하기 때문에 불만이 많아요.

또 한국 사회는 불안전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헤어질 때 하는 인사말이 항상 ‘조심해라’입니다. 차 조심, 사람 조심, 늘 ‘조심해라, 조심해라’ 이래요.(청중 웃음) 그만큼 불안전하다는 겁니다. 특히 안보 불안, 다시 말해 전쟁의 위험이 상존합니다.

이런 것들이 한국 국민이 행복하지 못한 원인이 됩니다. 그래서 좀 더 공정한 사회를 만들고, 좀 더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 좀 더 안전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든다면 전체 국민의 행복도가 높아집니다. 그런데 사회를 그렇게 만든다고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한 것은 아니에요. 역시 개인이 자기 욕심을 버리고 자기 고집을 버리면 훨씬 더 행복해질 수 있어요. 그래서 ‘인연과보’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 원리에 무지하기 때문에 괴로운 거예요. 이 원리에 밝으면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가 있습니다.

내가 뭘 하다가 안 되면 ‘이거 해주세요, 저거 해주세요, 이거 도와주세요, 저거 도와주세요’ 하는 게 종교가 아니에요. 우리가 말하는 것은 기복 종교, 복을 비는 종교가 아닙니다.

붓다의 가르침은 무지를 깨우치고 지혜로워져서 자신을 자유롭게, 또 행복하게 만드는 가르침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그런 공부를 해나가고 있는 중이에요. 그래서 스스로 수행 해보겠다고 들어와 놓고도 문경 수련원 탓했다가(청중 웃음) 또, 자기를 탓했다가, 또 남을 탓했다가 하며 왔다 갔다 하는 중이에요. 우왕좌왕하는 중입니다. 아직 연습이 덜 되어서 그래요.

나의 인과 연, 체험을 통해서 가꾸어야

그런 원리를 알아서 꾸준히 수행을 통한 체험을 해야 합니다.

오늘 스님의 설명을 듣고 ‘모든 게 인연과보야!’ 이런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그 원리를 자기의 삶 속에서 체험해야 합니다. 농사를 지어도 그렇고, 산에 가서 꽃을 봐도 그렇고, 사람을 봐도 그래요. 모든 것이 다 인연과보의 법칙에 의해서 운행됩니다.

그래서 항상 우리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해나가야 합니다. 각자 자기 개인을 가다듬어 각성을 해서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하도록 하고, 또 한편으로는 내가 사는 이 가정환경과 사회환경을 개선해서 사람이 사는 데 좀 더 편리하고 행복하도록 가꾸어가야 합니다.”

스님은 법문을 마친 후, 질문을 받기 전에 ‘장기자랑 준비를 해 왔느냐, 장끼를 먼저 발휘해보라’ 하며 다소 집중되고 무거운 분위기를 풀어주었습니다. 발랄한 백일출가 행자님들은 평소에 준비해 두었던 것이 있는 듯, 스님 앞을 무대 삼아 차례로 등장하며 일순간 분위기를 웃음바다로 바꾸었습니다.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가운데 몇몇 행자님들이 질문하였습니다.

매일 아침 예불 시간에 반야심경을 독송하는데 그 뜻도 모른다는 행자님, 무상과 무아가 무슨 뜻인지 묻는 행자님, <스님의 하루>에 보면 ‘통일 감자’ 이야기가 나오는데 ‘통일 감자’라는 감자가 따로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는 행자님, 상근하고 싶기도 하고 회향하고 싶기도 한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행자님 등 스님은 상세하게 행자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천천히 답해주었습니다.

밤이 깊어 스님은 내일 있을 남산 산책 일정도 있으니 편히 쉬라고 하고 시간을 마쳤습니다. 일정을 마무리 한 뒤, 스님은 법사님들과 모임을 가지며 두런 두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내일은 백일 출가 행자님과 함께 하는 남산 산책이 있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임혜진 손명희 정란희 조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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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중물

스님말씀에 백퍼 동의합니다
이러한 통찰힘이 그저 놀랍습니다
이리해 저는 가톨릭서 불법을 공부을 공부합니다
스님과인연 감사할뿐입니다

2017-04-07 08:47:59

고명주

그저 감사 합니다?
풋풋한 행자님들 장기자랑도 보고 싶구요 ㅎㅎ?

2017-04-06 00:21:27

임무진

아침 기도를 통해 가벼운 삶을 살아갑니다. 삶은 쉽고 생각이 어렵다는 말씀도 와닿습니다. 인연과보의 법칙을 이해해 안으로는 꾸준한 정진으로 나를 살피고, 밖으로는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도록 여러 활동에 참여합니다. 고맙습니다.

2017-04-05 16:5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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