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7. 04. 28
‘노 땡큐’ 입니다

새벽 4시 반, 도량석 소리가 서초동 회관에 조용히 울려 퍼집니다. 깊이 잠들었던 대중들이 잠에서 깨어나 법복을 갖춰 입고 법당에 모였습니다. 스님도 예를 갖추어 가사 장삼을 수하고 법당에 내려와 부처님 앞에 두 손을 모았습니다. 대중들과 함께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하였습니다. 스님은 기도를 마치고 아침 일찍 일과를 시작하였습니다.
오후 2시가 다 되어 재단에서의 미팅 일정이 마무리 되었고, 스님은 두북으로 출발하였습니다.
내려가는 차 안에서 신문 기사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주거공간은 공유하고 각자 생활을 해나가는 주거 공동체도 있고, 함께 살면서 동일한 수입원을 통해 공동으로 살아가는 공동체도 있는 등 현재의 삶을 보완하고자 만들어지는 다양한 공동체의 모습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행자님이 스님께 질문하였습니다.

“그렇게 같이 사는 과정에서 갈등이 생기는데 그런 갈등을 과정이라고 받아들이면 될까요? 갈등이 있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닌데 그렇다고 갈등이 계속 되는 걸 나아지는 과정이라고 생각만 하는 것도 막연하거든요.”

“갈등이 있는 현실은 현실로 받아들이되, 그 갈등의 상황이 똑같이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변화 발전해서 나아가야 한다고 할 수 있지. 그러려면 갈등이 생겼을 때 원인을 잘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지.”

공동체로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어서 이야기 꺼리가 많았습니다. 차가 막혀 정체되기도 했지만 두북에 가서 해야 할 일 등도 계획하며 지루한 줄 몰랐습니다.

오늘은 어제 안양 아트센터에서 있었던 ‘행복한 대화’ 중 한 사례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제가 중도 실명한 지 17년 됐지만 정말 즐겁게 잘 살고 있어요. 그런데 가끔 지나가다가 도와주시려는 분들 때문에 당황할 때가 많아요. 저는 앞을 못 보지만 설거지며 빨래며 전부 혼자 할 수 있거든요. 길도 항상 가는 길만 다니니까 알아서 혼자 잘 가는데, 제가 불편해 보인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도와주신다며 저의 팔이나 등을 잡으세요. 도와주시려는 건 아는데, 제가 기분이 좋은 날이나 평상시 같으면 괜찮지만 어떤 날은 그렇게 잡는 게 너무 싫거든요. 그럴 땐 버럭버럭 화가 나지만(질문자 웃음) 그렇게 화를 내면 저 하나 때문에 시각장애인 전체가 이상하다는 소릴 듣게 될까 봐 참을 때도 많습니다. 그럴 때 그냥 화내도 될까요?”(청중 웃음)

“질문자를 위해서 도와주려고 손을 잡았는데 화를 벌컥 내면 상대가 어떻게 생각할까요?”

“기분 안 좋겠죠.”

“그냥 기분 안 좋은 정도가 아니겠죠. ‘이 사람이 미쳤나?’ 이러겠죠.”(모두 큰 웃음)

“그렇죠, 미친놈이죠.”(질문자 웃음)

“‘미쳤나? 내가 도와줬는데도 화를 내?’ 이럴 거예요. 그런 사람들은 앞 질문자처럼 남한테 잘 보이고 싶은 사람들을 도와주지, 왜 지금 질문자 같이 도움이 필요 없다는데 도와주는지 모르겠어요.”(모두 큰 웃음)

“그러니까요. 안 도와줬으면 좋겠어요.”(질문자 웃음)

“그래요. 다들 잘 들어보세요. 이 분 얘기가 대표적이잖아요. 그러니까 사람이 남을 도와주는 것도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 자기를 위해서라는 거예요.
사람들은 다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합니다. 이렇게 도와주고 싶은 것도 자기 기분대로 하고, 안 도와주는 것도 자기 기분대로 해요. 도움이 필요하다고 해도 자기가 내키지 않으면 안 도와주고, 도움이 필요 없다고 해도 자기가 내키면 돕는 거예요.
그러니까 앞 질문자처럼 ‘날 좋게 봐주세요’ 이러는 게 어리석다는 거예요. 왜 그럴까요? 그 사람들은 내가 좋게 봐 달라 한다고 좋게 봐주고 나쁘게 봐 달라 한다고 나쁘게 봐주는 사람들이 아니니까요. 인간이라는 게 원래 자기가 기분 좋으면 좋게 봐주고 자기가 기분 나쁘면 나쁘게 봐요. 그러니까 그 사람에 대해서 내가 간섭할 필요가 없어요. 그 사람은 그 사람 기분대로 하는 거예요.
제가 오늘 ‘저를 잘 봐주세요’ 한다고 여러분들이 저를 잘 봐주는 게 아니에요. 오늘 강연을 듣고 어떻게 느끼는지는 각자의 몫이라는 거예요. 똑같은 강연을 듣고 나가면서도 ‘야, 오늘 법륜 스님 강의 듣고 감동했다’ 이런 사람도 있고, ‘스님이 부부관계나 자식관계 얘기나 내내 하고, 뭐 그런 스님이 다 있어!’ 이러고 나가는 사람도 있어요. ‘아이고, 스님이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아주 바른 견해를 갖고 계시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고, ‘무슨 스님이 정치인도 아닌데 내내 사회 얘기를 하느냐’ 이렇게 얘기하고 가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그러니 제가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 그건 그 사람의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그걸 신경 쓰면 제가 타인의 노예가 되는 거예요.

질문자도 그렇게 ‘하지 마라’라고 하면 그건 다른 사람의 인생에 간섭하는 거예요. 질문자가 하지 말라고 하는데 상대가 그렇게 하면 질문자가 기분이 나쁠 거예요.
앞 질문자는 ‘잘 봐주세요, 사랑해 주세요’ 이러니까 자기가 힘들었어요. 앞 질문자와 정 반대지만 질문자 역시 마찬가지예요. 질문자가 시각장애인이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옆 사람이 보면 뭔가 좀 불안해 보일 거 아니에요?”

“네.”

“그래서 자기가 마음이 불안하니까 도와주려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건 그 사람 마음이에요. 정작 내가 꼭 필요할 때는 내가 꼭 필요한지 몰라요. 그러니까 그 사람은 자기 눈에 띄면 돕고, 자기 눈에 안 띄면 도움이 필요해도 안 도와요. ‘도움이 필요 없다’라고 해도 자기가 보기에 도움이 필요한 것 같다고 느끼면 돕는 거예요. 이게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질문자도 앞 질문자와 정 반대 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똑같이 타인의 인생에 간섭하는 거예요. ‘도와달랄 때 도와주지, 도와달라고 하지 않는데 왜 도와주나? 지금은 도움 필요 없어!’ 이러고 화를 내잖아요. 돕고 싶으면 돕고 돕기 싫으면 안 돕는 건 그 사람의 자유예요.

이럴 때 서양 사람은 뭐라고 해요? 커피 같은 걸 줄 때, 자기가 마시고 싶으면 ‘땡큐’라고 하고, 마시기 싫으면 ‘노, 땡큐’라고 해요. 그게 참 좋은 말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싫어요!’라고 하지요. 친절을 베풀었는데 ‘싫어요!’ 이러면 좀 기분 나쁘잖아요. ‘노, 땡큐’라고 하면 ‘고맙습니다만 저는 필요 없습니다’ 이런 뜻이잖아요. 그러니 질문자도 그럴 때는 항상 ‘노, 땡큐’ 그러면 돼요.”

“도와주시려는 분이 저를 잡을 때마다 제가 항상 얘기해요. ‘아, 고맙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잡으면 놀라니까 잡을 때는 한번만 물어봐 주세요’라고요.”

“아이고, 그 사람이 늘 내 옆에 있는 사람이라면 다음부터야 그렇게 하겠죠.(청중 웃음) 길 가는 사람이 그러는데 질문자가 그렇게 일일이 설명을 해야 하잖아요. ‘노, 땡큐’ 하면 되죠.”(청중 웃음)

“‘노, 땡큐. 잡지 마세요!’ 이렇게요?”

“아니, ‘잡지 마세요!’ 하지 말고 ‘노, 땡큐’ 하면 돼요. ‘노, 땡큐’ 이러면 요즘은 아주 어르신들이 아닌 이상 다 알아들어요.”(청중 웃음, 박수)

“알겠습니다.”(질문자 웃음)

“알았죠? 뭐라고 하라고요?”

“네, ‘노, 땡큐.’ 좋은 말이네요.”

“그래요, ‘노, 땡큐’ 하세요.”

“감사합니다.”(질문자 웃음, 청중 박수)

함께 만든 사람들
임혜진 손명희 정란희 조태준

전체댓글 10

0/200

고경희

도움 필요하면 안해주고, 안필요하면 해주는 사람이 진짜 싫고 밉기까지 했는데~ 사실은 나도 그러고 있었습니다. 노 땡큐~좋은말이어용^^

2017-07-07 16:04:42

김옥경

싫어요보다는노댕큐가훨씬더부더럽네요.스님말씀새기며살겠습니다

2017-07-06 22:10:48

임무진

상대를 위한다고 하는 행동도 사실은 다 자기 마음 편하차고 하는 행동임을 알아차립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상을 짓지 말라는 말씀 되새깁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봅니다.

2017-05-08 10:56:07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