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7. 04. 27 행복한 대화 - 안양아트센터 관악홀 편
나는 한 포기의 풀이다

스님은 아침 7시 반, 종교인모임으로 오늘의 일과를 시작하였습니다. 종교인모임에서는 현재 대선 분위기 속에 놓쳐서는 안 될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이후 연이어 손님이 찾아오셔서 손님맞이에 분주하다가 오후 1시, 통일특위에서 사업논의 차 스님께 의견을 구하는 자리를 요청하였습니다.

오후 4시에는 해외에 계신 정토행자를 위한 부처님 오신 날 기념 법문을 녹화하는 일정을 가졌습니다.

법문 녹화 후, 저녁 공양을 간단히 마친 스님은 엊그제 막 도착한 전기차를 타고 안양 아트홀로 출발하였습니다. 전기로 운용되는 차라서 발진에 사용되는 배기통도, 배기가스도 없이 조용하게 달렸습니다. 아직 충전 시간이 길고 충전소가 한정되어 있어 전기차를 쓰려면 충전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안양 아트센터에 도착하니 안양지역 행복학교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홍보와 안내를 하느라 잔치 분위기였습니다. 스님은 로비에서 안내와 홍보를 하고 있는 행복학교 학생과 선생님들을 격려하고 바로 입장하였습니다.

오늘은 남의 눈치를 많이 본다는 질문자와 스님의 대화를 실어보려 합니다. 비교적 짧게 대화가 이루어졌지만 이런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남의 눈치를 자꾸 봅니다. 제가 관심 갖지 않는 사람의 눈치를 살피지는 않지만, 친한 사람이나 애착을 갖고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눈치를 많이 보게 됩니다. 연인이나 친구와 함께 있을 때도 그들의 기분에 신경 쓰고 염려합니다. 상대방이 좋아할 만한 선택을 해서 제 계획과는 다른 일을 하게 되기도 하고, 그럴 때는 허무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고 나면 마음이 괴로워지고 혼자 있고 싶어집니다. 단체 밖에 있을 때에는 단체에 속하고 싶어 하고, 막상 그 안에 들어가면 누가 억지로 가둔 것도 아닌데 눈치를 보며 답답해합니다. 저는 어떻게 수행해야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나는 한 포기의 풀이다'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는 것은 그들에게 잘 보이려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다 즉, 예쁘다는 소리 듣고 싶고, 착하다는 소리 듣고 싶고, 잘한다는 소리, 좋아한다는 소리 등을 듣고 싶어서 그래요.

그렇지만 한 포기의 풀은 누가 보든, 안 보든 아무 상관하지 않고, 설령 사람이 밟고 지나가도 아무런 상관을 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안 봐도 그냥 꽃 피울 때가 되면 꽃 피우고 그 자리에 그냥 있어요. 꼭 누가 봐주어야만 꽃을 피우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늘 ‘나 좀 봐주세요. 나 좀 예쁘다고 해주세요. 나 좀 사랑한다고 해주세요. 나 좀 잘한다고 해주세요.’ 이런 바람을 가지고 있으니까 다른 사람의 시선의 노예가 되는 거예요. 스스로 남들의 노예가 되기를 자청한 겁니다. 그래서 속박을 받고 사는 거예요. 자기가 스스로 노예가 되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 어쩔 수 없어요.

이제 노예가 되고 싶지 않다면 ‘나는 한 포기 풀입니다’ 하는 자세로 살면 됩니다. ‘나는 한 포기 풀이다, 남이 나를 보든 말든 상관없다, 칭찬을 하든 비난을 하든 나와는 상관없다, 그건 그들의 인생이고 나는 내 인생이 있다’ 이렇게 관점을 가지면 괜찮아집니다.

질문자가 ‘어떻게 수행하면 될까요?’하고 물으니까 그에 대한 스님의 대답은 ‘나는 한 포기의 풀이다’하고 반복적인 암시를 주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잘 안 되더라도 반복적으로 암시를 주면 조금씩 편안해질 거예요.

그런데 남들한테 잘 보여서 뭐하려고 해요?”

“…잘 모르겠어요.” (질문자 웃음)

“잘 모르면서 왜 잘 보이려고 해요?”

“…” (질문자 웃음)

“내가 ‘잘 봐주세요’ 한다고 상대방이 잘 봐줄까요, 잘 봐주고 안 봐주고는 그들의 몫일까요?”

“네, 그건 그들의 마음입니다.”

“잘 봐주고 안 봐주고는 그들의 마음인데, 왜 그걸 굳이 간섭하려고 할까요?”

“사랑받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지금 사랑받을 일을 하고 있어요? (질문자와 청중 웃음) 사랑을 받으려면 사랑받을 일을 해야지, 그냥 ‘사랑해주세요’ 한다고 사랑해주는 게 아니잖아요.
그리고 또 사랑은 받아서 뭐해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도 받고 싶습니다.” (질문자 웃음)

“그건 ‘사랑고파병’에 걸려서 그래요. (질문자와 청중 웃음) 아마 어릴 때 어머니의 사랑을 충분하게 받지 못해서 그럴 거예요. 어머니가 질문자를 키울 때 많이 바빴어요?”

“네, 생활도 바쁘셨고, 또 어머니 본인도 사랑을 받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어머니도 많이 외로워하셨어요.”

“그 어머니에 그 딸이네요. (질문자 웃음) ‘사랑을 받고 싶다’는 것은 ‘나는 남의 노예가 되고 싶다’는 것과 같습니다.
기쁨은 남에게 사랑받는 데 있을까요, 내가 남을 사랑하는 데 있을까요?”

“…”

“기쁨은 내가 남을 사랑하는 데 있습니다. 내가 꽃을 예뻐하는 마음을 내면 내가 좋아요, 꽃이 좋아요?”

“네, 내가 좋습니다.”

“내가 ‘이야, 저 산 참 아름답다’고 하면 내가 좋아요, 산이 좋아요?”

“네, 내가 좋아요.”

“그런데 질문자는 지금 거꾸로 하고 있는 거예요. ‘산아, 나 좀 좋아해줘. 꽃아, 나 좀 예뻐해줘.’ 라고 하고 있어요. 그런데도 상대가 그렇게 안 해주니까 지금 힘든 거예요.”

“자기가 어머니를 사랑해주고, 친구를 사랑해주면 돼요. 그런데 지금은 우선 사랑은 안 하는데 사랑을 받으려고 하는, 공짜로 먹으려는 마음이 있어요. 그리고 두 번째는 ‘내가 너를 사랑하니 너도 나를 사랑하라’는 장사하는 심리가 있어요. 나는 너를 사랑하는데, 너는 왜 나를 사랑하지 않니 하고 상거래의 관점에서 접근하니까 늘 장사에 밑진 것 같이 느껴집니다. ‘나는 열만큼 사랑했는데 받기는 다섯 밖에 못 받았다’ 이렇게 늘 속으로 셈을 하고 사는 거예요.

그러니 행복해지려면 다만 사랑하세요. 한 번 따라해 보세요.

다만 사랑하라”

“다만 사랑하라.”

“네, 거래하지 말고, 장사하지 말고, 다만 사랑하세요. ‘내가 너 좋아하니 너도 나 좋아하고, 내가 너 사랑하니 너도 나 사랑해’ 이렇게 계산하지 말고 그냥 ‘나 너 좋아, 나 너 사랑해, 너 참 예쁘네.’ 이렇게 마음을 내면 그 마음을 내는 사람이 행복해집니다. 지금은 이걸 거꾸로 하고 있으니까 행복하지 않은 거예요.
행복해지려면 사랑 받으려고 해야 해요, 사랑하려고 해야 해요?”

“사랑하려고…”

“네, 사랑하려고 해야 합니다. 사랑받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이 행복입니다.

우리가 사랑한다고 하지만 미움이 생기는 것은 사랑한 만큼 사랑 받으려고 하는 장사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에요. ‘내가 너 사랑하니 너도 나 사랑해라, 내가 너 이만큼 사랑하니 너도 나 이만큼 사랑해라’ 하고 거래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제 질문자도 그만 사랑에 껄떡거리고 (질문자와 청중 웃음) 자꾸 사랑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내 것을 남에게 줘 보세요. ‘나 너 사랑해, 나 너 좋아, 너 참 잘하네’ 이렇게 칭찬해주고 사랑해주면 자기가 행복해집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봉사를 하고 있는데 봉사활동을 할 때도 비슷한 마음이 듭니다.”

“봉사할 때도 ‘나 봉사한다, 그러니 나 좀 칭찬해줘’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그래요. (질문자와 청중 웃음)

스님은 저런 사람이 가까이 오면 겁나요. (모두 웃음) 저런 사람은 ‘스님~’ 이러면서 다가오는데 제가 못 듣거나 다른 일 때문에 대답을 못 해주면 곧장 입이 삐져나옵니다. (청중 웃음) 그리고는 돌아서서 ‘뭐 저런 게 다 있어’ 이러고 가요. (질문자와 청중 웃음)

책 사인을 할 때도 웃으면서 와서 ‘스님, 사인 좀 해주세요. 제 이름도 써주세요’ 그러는데 제가 ‘내 이름은 내가 쓸 테니, 네 이름은 네가 써라’ (청중 큰 웃음) 이러면 입이 쭉 나오고, ‘같이 사진 찍어요’ 하는데 같이 안 찍어주면 삐치고 그래요. (질문자와 청중 웃음) 그래서 저는 좋다는 사람 오면 ‘아이고, 원수 되겠다’ 싶어서 겁나요. (청중 웃음)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는 원수 된 적이 없어요. 나무와도 원수 된 적이 없고, 풀과도 원수 된 적이 없고, 산과 원수 된 적이 없는데, ‘스님 좋아요’하고 오는 사람하고는 원수가 됩니다. 그만큼 기대가, 그리고 자기도 좋아해달라는 요구가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누가 ‘스님 좋아요’ 하고 다가오면 ‘나는 원수 되기 싫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아요. (청중 웃음) 그러니 질문자도 누가 자기를 좋다고 하면 몸서리치는 자세를 좀 가져 봐요.” (질문자와 청중 웃음)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청중 박수)

질문하신 분만의 고민이 아니라 누구나 순간순간 가질 수 있는 마음이라 ‘나는 한 포기의 풀이다’는 스님의 말씀이 많은 사람들에게 기도문처럼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책 사인회를 로비에서 가졌습니다. 줄이 길게 이어져 꽤 오래 사인회가 이어졌습니다. 엄마와 함께 온 대여섯 살쯤 된 남자아이가 “할아버지라고 부르면 안 되나요?”하며 “할아버지한테 뽀뽀해드리고 싶은데.” 하였습니다. 아이들이 스님께 느끼는 친근감이 해맑아 보였습니다.

강연장이 서초동에서 가깝기도 했고, 전기차가 빠르게 달리기도 해서 다른 날보다 회관에 일찍 도착했습니다. 연일 쉴 틈 없는 일정에 스님이 조금이라도 빨리 쉴 수 있으면 좋을 텐데요.

함께 만든 사람들
임혜진 손명희 정란희 조태준

전체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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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희

저도 누가 저 좋다면 몸서리가~^^ 나중에 분별내어서^^ 근데 저도 그래요. 잘삐지고~ 다만 사랑하라~ 노예가 아닌장사가 아닌~사랑하며 살렵니다~

2017-06-14 19:03:28

임무진

저는 그저 길가에 핀 풀 한포기와 같습니다. 대단할 것도 모자랄 것도 없습니다. 단지 존재 그 자체일 뿐입니다. 그리고 공짜로 먹으려는 마음, 장사하려는 마음이 있음을 알아차립니다. 받기보다는 베풀려는 마음을 냅니다.

2017-05-08 10:03:43

조수진

스님.좋은말씀 감사합니다.

2017-05-01 21:5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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