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7. 05. 10 광주교육대학교 풍향문화관
이제 우리 모두의 대통령입니다

아침 7시부터 평화재단에서 회의 일정이 있어 스님은 평화재단에서 일과를 시작하였습니다. 오후 3시 경, 미팅과 회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광주로 출발하였습니다.

붉은 철쭉과 양귀비 꽃이 가득 피어있어 인상적인 광주교육대학교 풍향문화관에서 열리는 오늘 ‘행복한 대화’ 는 청년 주최의 강연이었지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7시 반에 시작하여 10시 가까이까지 대화가 진행되었는데,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데 식욕을 어떻게 조절할 수 있는지,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데 생각대로 잘 풀리지 않아 어떻게 하면 되는지, 재수까지 하며 대학에 왔는데 대학생활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친언니의 결혼상대자가 나이가 많고 환경이 좋지 않아 부모님이 반대하는데 동생으로서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등 아홉 개의 대화가 오갔습니다.

그 중에 대통령 당선 후, 투표 결과에 대한 질문이 있어 간단히 스님 말씀을 소개하고 다음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스님께서 찍으신 분이 당선되셨는지 궁금해요.”(모두 웃음)

“노코멘트예요. (청중 웃음) 꼭 비밀이라서가 아니라, 누구를 찍든 그 선택에는 각기 다른 의미가 있기 때문이에요.

누구를 찍었든, 즉 당선자를 찍었든 다른 후보를 찍었든 당선자를 우리의 대통령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거에 의한 결과를 수용할 줄 알아야 민주주의가 가능합니다.

물론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는 것이 더 민주적인 제도이긴 합니다. 그래서 1차에서는 자기 소신대로 투표를 하고, 결선에서는 ‘적어도 저 사람이 되어선 안 되겠다’는 뜻을 반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지요. 결선투표제는 우선 1차 투표에서는 누구나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에게 표를 주는 소신투표를 하고, 결선에 오른 후보 중 누가 더 나을지, 혹은 누가 되어서는 안 될 지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현재 프랑스의 경우 이런 결선투표제를 통해 대통령 선거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제도적인 보완도 필요하지만, 현재 가지고 있는 제도 속에서라도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은 ‘공정한 절차를 통해 뽑힌 사람을 우리의 대표로 인정하는 기반 위에’ 가능해집니다. 즉, 내가 찍은 후보가 당선되면 선거를 잘한 것이고,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지 않으면 우리의 대통령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내가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우리가 동의한 시스템에서 뽑힌 사람은 대한민국의 대통령, 우리 모두의 대통령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찍지 않은 당선자는 내 대통령이 아니다’는 것은 민주주의적인 사고가 아닙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공정한 절차를 통해 선출된 사람을 우리의 대표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도입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당선된 사람도 이 제도가 시사하는 바를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당선된 사람은 자기를 지지한 사람의 대통령일 뿐만 아니라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의 대통령이기도 합니다. 이번에 당선자의 득표율이 41.1%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거의 60%에 가까운 사람들은 당선자를 지지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즉, 국민의 다수는 당선자를 지지하지 않은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 내가 발표한 공약만 시행한다면 한 정파의 대통령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 모두의 대통령은 아닙니다.

당선자는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 되어야 합니다.
민주적인 절차를 걸쳐서 당선된 사람은 나를 지지한 사람들의 대통령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나를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의 대통령도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비록 내가 약속한 공약이 아니더라도, 다른 후보들이 내놓은 공약 중 국민들의 다수가 지지하는 공약이 있다면 기꺼이 시행해야 합니다.

그러니 지금 당선인도 민주당 내에서만 내각을 구성하면 정파주의에 빠지게 될 위험이 높습니다. 통합을 위한다면, 비록 당선인은 민주당 출신이지만 국민의당,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정의당에도 전공을 고려하여 주무부처 장관 등 인사를 할 때 적절히 배분하고, 국정 운영 전반에 있어서도 늘 5당이 함께 의논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국정 운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중앙 정부의 정책은 늘 5당 대표와 함께 의논하여 풀어나가는 자세가 필요하고, 지방 정책은 늘 지방 시도 단체장들과 의논하여 지역적인 이슈를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만약 대통령이 이렇게 국정을 운영해 나간다면 득표율이 어떻게 되든 우리나라의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선거 운동에서 본인이 내건 공약만 추진한다거나, 자기가 속한 정당에 소속된 사람만으로 내각을 구성한다거나, 자기의 지지자들이 원하는 정책만 시행한다면 1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반대세력들이 발목을 잡기 시작하고 3년이 지나면 레임덕에 걸려 지난 정부의 과오를 되풀이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난 정부는 국회의 과반이 넘는 의석수를 가지고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소통의 부재로 정책들을 제대로 추진할 수 없었습니다. 이번 정부는 119석을 가지고 있으니 여건이 지난 정부보다 더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겼으니 우리의 뜻대로 하겠다’라기 보다 ‘전 국민의 대통령,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의 역할을 하겠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약하면, 국민은 내가 지지했든 지지하지 않았든 선출된 대통령을 우리 모두의 대통령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대통령은 나를 지지했든, 지지하지 않았든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 되어야 합니다. 선거 전에는 치열한 경쟁을 하더라도 선거가 끝나면 바로 이 관점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선거를 통한 대의민주주의를 할 준비가 된 국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런 자세가 갖추어 지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를 시행할 기반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니 선거 당일까지는 누구를 찍느냐가 중요하지만, 선거 다음날부터는 당선자가 우리 모두의 대통령이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스님께 물어봐 주었으면 했던 질문이었다고, 알고 싶었던 내용이라며 강연이 끝나고 청중 중의 한 분이 이야기 하였습니다.

다음으로 한 청년의 질문을 소개합니다.

“저는 요즘 너무 큰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부모님께 말씀드리면 ‘너무 큰 꿈을 꾸기보다 현실에 만족하고 살아라’라는 조언을 하십니다. 제가 가진 꿈과 제가 놓인 현실과의 괴리도 커서 고민이 많이 됩니다.”

“이 자리에서 밝혀도 되는 꿈인가요?”

“남자로 태어나서 국가에 이바지하는 삶이 보람된 삶이 아닌가 생각하고, 어렸을 때부터 고구려, 발해 등 우리나라의 찬란한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많이 갖고 살아왔습니다. 그 결과 전공도 역사교육을 선택하였고, 현재 하고 있는 일도 국가 경제에 이바지 하고 있는데요…”

“그냥 솔직하게 이야기 해봐요, 정치를 하고 싶다는 얘기예요? (청중 웃음)”

“정치를 하고 싶다기 보다는…”

“공무원을 하고 싶은 거예요, 정치를 하고 싶은 거예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정치도 하고 싶습니다.”

“정치를 왜 ‘기회가 되면’ 해요? 당장 내일부터 사는 동네에서 사람들이 필요한 일을 거들고, 기초자치단체위원에서 출발해서 나중에 구청장도 되고, 시의원도 되고, 하나씩 올라가서 나중에 국회의원까지 되면 되죠.”

“지금 생각으로는 정치가 되었든, 기업가로서의 역할을 하든, 크게는 국가의 경제에 이바지하고 싶은데…”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는 길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지금 주어진 조건에서 성실하게 사는 것이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는 것이에요.”

“네, 그런데 저는 조금 더 크게…”

“더 크게 어떻게요?(청중 웃음)
질문자는 가만히 앉아서 국회의원이 되거나 가만히 앉아서 기업체 사장이 되기를 원하는 거예요?”

“아닙니다. 지금도 준비를 조금씩 하고 있는데, 가령 경영학 공부를 하기도 하고…”

“그런데 ‘국회의원이 되고 싶다’거나 ‘광주 시장이 되고 싶다’고 한다고 해서 꿈이 큰 게 아니에요.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해서 꿈이 큰 것도 아니고, ‘기업을 하나 일구어서 회장이 되겠다’고 해서 꿈이 큰 것도 아니에요. 꿈은 그냥 꿈일 뿐이지, 꿈에는 크고 작은 게 없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하면서도, 대통령이 되기 위한 길을 가지 않고 그냥 앉아서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한다면 그것은 헛된 꿈입니다. 그런 걸 욕심이라고 해요.

좋은 의미에서의 꿈은 원(願)이라고 합니다. 내가 가진 꿈이 좋은 의미에서의 원(願)인지, 아니면 헛된 욕심인지는 그것이 안 되었을 때 내 마음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바가 안 되었을 때 괴로우면 그것은 욕심입니다. 그런데 원하는 바가 되지 않아도 괴롭지 않고 그것을 경험삼아 어떻게 하면 될지를 연구해나가면 그것은 원입니다.

둘 다 안 되기는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하면 괴롭고 어떻게 하면 안 괴로울까요? 가령 자전거를 탄다면, 처음 배우는 사람은 한 열 번쯤은 넘어져야 자전거를 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처음 타는 사람이 세 번 정도 넘어진 다음 ‘아무래도 자전거가 안 좋은가봐’라고 하거나 ‘아무래도 나는 자전거 타는 데 소질이 없나봐’라며 주저앉아 울면 이건 욕심입니다. 열 번 넘어질 만큼의 노력을 해야 하는데, 두세 번하고 공짜로 먹으려하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넘어지면 일어나서 ‘어떻게 하다가 넘어졌지? 아, 이렇게 하니까 넘어지는구나. 다음에는 다르게 해봐야지’하고, 넘어지면 일어나고 넘어지면 또 일어나를 반복하며 계속 연구하면 우선 연구하기 때문에 괴로울 틈이 없습니다. 그리고 안 되어도 그저 다른 방도를 찾을 뿐이니 괴롭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원을 가진 사람은 그 과정에서 실력이 계속 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능력이 계속 커지는 거예요.

그러니 처음 계획한 일이 되고 안 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안 되었을 때 괴로우면 욕심이고, 괴롭지 않으면 원입니다. 질문자의 표현을 빌리면, 안 되었을 때 괴로우면 헛된 꿈이고, 괴롭지 않으면 목표를 추구하는 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야 된다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꿈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그게 안 된다고 해서 한탄하고 괴로워하거나, 김정은을 욕하거나, 일본 아베 수상을 욕하거나, 미국 트럼프 대통령을 욕하거나, 박근혜 전 대통령을 욕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세상에 주어진 변수들인데, 그러한 조건 속에서도 어떻게 해야 통일에 가까워질 수 있겠는가를 연구합니다.

제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을 바꿀 수는 없고, 북한의 김정은을 바꿀 수도 없고, 일본의 아베 수상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지난 정부와 같은 정부가 들어서면 전쟁을 유발할 위험이 있는데 이 문제를 평화적으로 풀 수 있는 사람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선출하면 그래도 조금은 나아질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그에 상응하는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노력하는 거예요. 그런 과정에서는 괴로울 여가가 없습니다. 이번에는 이렇게 해보고 만약 잘 안되면 다음에는 또 누가하면 잘 할지를 보고 다음 선택을 해나가야겠죠. 이렇게 연구를 해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은 저에게 원이에요. 이렇게 원을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는 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고, 설령 이루어지지 않아도 그 과정에서 성과가 쌓이고 다음 세대가 그 운동을 이어나갈 수 있기 때문에 실패가 아닙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도 당시 정부와 언론에서는 북한의 사주를 받은 폭도라고 왜곡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올바른 사실을 밝히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꾸준한 노력을 통해, 그리고 많은 희생을 통해 30년 후 결국 ‘민주화운동’으로 재규정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광주 시민들은 지역 감정이라는 비판을 들으면서도 어떻게든 민주 정부를 세우려고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청중 박수)

이 모든 일들은 가만히 앉아 있어서 되는 게 아닙니다. 많은 노력과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반면 우리가 성취한 것은 우리의 노력에 상응하는 만큼만 주어진 측면도 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최근 역사에서 아쉬운 점도 많은데, 더 나아지지 않은 것은 더 큰 노력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즉,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예요. 지금 이만큼이라도 오게 된 것은 이만큼 올 수 있을 정도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더 나아지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있다면, 그건 또 그 자리에 안주하고 더 나아갈 만큼의 노력은 없었기 때문이에요.

이런 측면에서 질문자는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꿈 때문에 고민이 된다는 걸 봐서는 욕심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니 부모님이 보시기에 헛된 꿈을 가지고 있는 것 같으니까 평범하게 현재에 만족하고 살라는 조언을 하시는 거예요. 그건 헛된 꿈은 버리라는 뜻이에요. 아까도 말했지만 대통령이 되겠다고 해서 헛된 꿈이 아닙니다. 그에 필요한 노력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헛됨의 여부가 결정됩니다. 그러니 꿈에는 크고 작음이 없습니다. 다만 꿈을 실천하기 위해서 노력하면 원(願)이 되고, 꿈만 있을 뿐 노력하지 않으면 욕심이 됩니다.

그러니 욕심은 버리고 원(願)은 가지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크고 작음은 없습니다.”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홉 명의 질문자와 대화를 모두 마치자 밤 10시가 가까웠습니다. 스님은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던 청중에게 인사를 전하고 무대에서 내려왔습니다.
로비에서 사인회를 하고 강연 준비에 애쓴 청년들을 격려하고 서둘러 두북으로 출발하였습니다.

광주에서 두북까지 밤 고속도로를 열심히 달렸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임혜진 손명희 정란희 조태준

전체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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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

아무래도 이번 대통령도 국민의 대통령은 아닌듯싶습니다.

2019-04-18 22:54:45

고경희

수용할줄 알아야 민주주의가 가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정말 그런것 같습니다. 집에서도^^

2017-06-19 02:49:20

정말 좋으신 말씀입니다. 민주주의사회에서 선거를 통해 결정된 것을 반드시 인정하고 받아드려야지요. 저도 같은생각을 했습니다. 5명의 후보가 함께 일한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요.. 그런데 또 당마다 자기소리를 내고 자존심 대결 서로 헐뜯기를 하려하니 참 답답합니다ㅠ

2017-05-14 22:5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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