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7.10.22. 경주 남산순례(2)
"딸이 학교를 안 다니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아침 기도를 마치고 날이 밝아지기를 기다려 스님은 텃밭을 잠시 둘러보고 손보았습니다.

작년 겨울, 한 철을 보낸 국화 뿌리를 땅 속에 묻어 두었는데 겨울을 이겨내고 봄, 여름을 잘 보낸 국화가 한창 꽃을 피워 텃밭을 풍성하게 장식해주고 있었습니다. 봄에 싹을 피우지 못하는 것 같아 궁금했는데 노란 국화꽃, 진분홍 국화꽃이 가득한 것을 보니 뿌듯합니다. 늘어진 국화꽃대를 끈으로 묶어주고 정돈하니 마음이 화사해집니다. 또, 엊그제 고구마뿌리를 걷어내고 소똥을 섞어 잘 갈아엎어둔 곳에는 마늘을 심을 수 있도록 멀칭하였습니다.

이곳저곳 손 보다보니 8시 5분, 스님은 경주 남산으로 출발하기 위해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오늘도 어제에 이어 가을불교대학 경주남산순례가 있습니다. 최말순 보살님이 싸 주신 점심 도시락과 문수팀 행자님들이 가져온 사과 두 개를 간식으로 넣었습니다. 회색 구름이 빠르게 지나가며 빗방울이 잠깐 지나가 비닐 비옷도 넣었습니다.

어제는 용장골에서 이영재로 넘어가서 통일암 숲속 너른 마당으로 갔는데 오늘은 새갓골에서 이영재를 지나 통일암으로 가기로 하였습니다. 어제보다 30분은 긴 코스입니다.
새갓골 입구에 난 억새가 가을 분위기를 한층 돋우어주었습니다.

약간 경사진 길을 30여 분 걸어올라 열암곡 석조여래 좌상 앞에 도착하였습니다.

스님은 먼저 누워 계신 마애불에 서서 삼배를 드리고 석조여래좌상 앞에 호계합장으로 예를 올렸습니다.
전쟁 위기에 놓인 한반도에 평화의 기운이 찾아올 수 있도록 간절한 마음을 전하고 계신 듯 했습니다.

골짜기를 따라 한참 올라 봉화대를 지나 바위산 위에 오르니 몸을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바람이 심하게 불었습니다. 탁 트인 주변을 내려다보니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저 아래 칠불암에서 참배 중인 가을 불교대학 학생들도 보였습니다.


어제보다 30분이나 더 긴 코스라 이후부터는 좀 더 빠른 걸음으로 서둘렀더니 11시에 통일암 숲속 너른 마당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싸온 도시락으로 서둘러 점심 공양을 하고 속속이 도착하는 가을불교대학 남산순례팀을 맞이하였습니다. 다리가 아파 터덜터덜 걷다 맞이하는 스님을 보고 웃는 얼굴이 되는 불교대학생, 먼저 도착하여 점심을 먹다 다시 입구로 찾아와 인사 나누는 청년 불교대학생, 유투브로만 만나다 실제로 뵈니 반갑다는 인사를 전하는 불교대학생 등 많은 사람들의 밝은 얼굴이 좋아보였습니다.

몸이 불편해서 산행을 못하시는 분들도 각 코스에서 일행이 출발한 후 조금 일찍 숲속 너른터로 이동을 하였습니다.

어제와 달리 숲속 너른터는 바람이 제법 세게 불어서 찬 기운을 머금고 있었습니다만, 이내 각 코스별로 답사를 마치고 오는 각 지역의 가을 불교대학 학생들의 온기로 조금씩 따뜻함을 채워갔습니다. 그리고 맛나게 준비한 점심을 나눠먹으면서 스님이 진행하시는 장기자랑을 즐기다보니 이내 점심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생각보다 괜찮은 날씨죠?”

좋은 날씨는 아닌데, 비오는 것보다는 나은 날씨라 하시며 수행자로써 현상을 바라보는 자세로 불교대학에서 배우는 과정을 풀어내는 법문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가을불교대학 학생들과 함께 즉문즉설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중 한 가지 질문을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파주 법당에서 왔습니다. 딸이 지금 15살이라 중학교 2학년인데 제적 처리를 하고 학교를 안 다니고 있어요. 본인이 도저히 학교 생활을 못 하겠다고 해서 1학년 때도 많이 싸웠고 자살 소동도 있었기에 ‘그러면 그냥 네가 편한 대로 해라’ 하고 내버려두었습니다. 그런데 직장에 갔다가 들어오면 인터넷 같은 것만 하고 있어요. 학교는 어떡할 거냐고 물어보니 검정고시를 보겠다고 하고 자기 나름대로 배우고 있다고 하는데, 그냥 놔둬야 하는지 아니면 좋은 방법으로 학교를 다시 다닐 수 있게끔 다시 얘기를 해야 하는지 고민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고등학교 1학년, 2학년짜리가 학교를 안 간다고 하면 이걸 좋다거나 나쁘다는 관점에서 보면 안 돼요. 그러나 그만한 또래의 다수 아이들과 비교해 볼 때는 비정상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비정상적인 데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특별한 경우예요. 에컨대 저는 고등학교를 1학년 말에 절에 들어갔어요. 이건 분명히 비정상적인 경우죠. 그런데 문제아는 아니에요. 그렇지만 비정상적인 건 맞아요.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겠죠? 비정상적이라고 해서 무조건 잘못됐다고 보시면 안 돼요. 부처님도 비정상적이잖아요. 결혼해서 애까지 하나 낳아 놓고 집을 나가버렸으니까요. 이런 건 다 비정상적인데, 비정상적이라고 해서 다 문제는 아니라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자식을 잘 관찰해 보셔야 해요.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 하는 내 고정관점을 버리고 애를 가만히 관찰해 보고 대화를 나눠 보니 아이가 자기 나름대로 어떤 목표가 있어서 일반 시스템을 따르는 것을 낭비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비정상적이긴 해도 문제아는 아니에요. 그러면 얘기를 해 볼 수 있겠죠.

‘네가 그걸 하고 싶다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보편적인 길로 가지 않고 그런 비정상적인 길로 가면 굉장히 세상 살기가 어렵다. 다수가 가는 대로 쭉 따라가야지, 따로 빠져서 다른 길로 가면 굉장히 살기가 어려우니까 어지간하면 그냥 정상적인 길을 따라가면서 네 목표를 달성해 보면 어떻겠니?’

이렇게 해 봤을 때 ‘오케이’ 하는 사람도 있고 아니면 ‘나는 그런 건 그다지 필요 없다’ 고 하면 그냥 자기 원하는 대로 보내주면 돼요. 그걸 부모의 욕심으로 이렇게 억지로 밀어붙이면 안 돼요.

아이와 싸우면 아이의 심리가 억압이 됩니다. 하자는 대로 내버려두면 버릇이 나빠져서 아이한테도 나빠지고 나한테도 나빠져요. 그렇다고 그걸 야단을 치면 나도 성질이 나고, 애도 심리적 억압이 돼요. 그러니 절대로 싸울 필요는 없습니다. 무슨 얘기든지 다 들어주고, 일리가 있으면 일리가 있다 하고, 내가 해줄 능력이 안 되거나 해줄 의향이 없는 것은 ‘엄마는 그 길을 원하지 않아. 네가 가는 건 네 자유지만 나는 그런 데는 지원해주고 싶지가 않다’ 이렇게 분명히 말하면 돼요.

그런데 두 번째, 아이가 하루 종일 집에 있는데 여러 가지 상태로 살펴봤을 때 진짜 뭘 연구하는 게 아니라면 우울증이라든지 어떤 병일 가능성이 있잖아요. 그러면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야 돼요. 물론 아이가 안 가겠다고 하겠지만 그래도 ‘그래, 네가 학교 안 가는 건 엄마가 받아들일 테니까 의사 선생님께 이상 없는지 진찰은 받아보자. 의사 선생님께서 이상 없다고 하면 학교 안 가도 좋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대신에 일단 체크는 해보자’ 이렇게 달래서 데려가야 해요. 이렇게 체크해서 병증이 발견되면 치료를 하면 되고, 병증이 없다면 놔두면 돼요. 이렇게 원리에 따라서 결정을 하면 된다, 이 말이에요.”

“병원에는 원래 다니고 있어요. 2~3년 째 다니는데 약을 먹다가도 좀 괜찮아지면 안 먹어요. 지금도 제가 너무 잔소리를 한다 싶으면 ‘아, 오늘은 뭘 해서 엄마를 좀 괴롭힐까’ 이런 궁리를 해요. 또 친구들하고의 관계도 살펴보면 대화를 하긴 하는데 자기 말로는 애들이 자기랑 안 통한다고 얘기해요.”

“그런데 의사가 ‘약간 정신적으로 치료를 요한다’ 이런 진단을 내린 거예요?”

“그건 아닌데 너무 머릿속에 든 게 많대요. 제 나이에 맞지 않게 너무 책도 많이 보고, 가상 세계라고 하는 곳에 살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굉장히 능력이 많다고.......”

“그러니까 치료를 요하는 거예요? 아니면 내버려둬도 된대요?”

“치료를 요할 정도는 아니래요.”

“내버려 둬도 된다고요? 그럼 놔두세요.(모두 웃음) 그런 건 전문의의 처방에 따라야 합니다. 지금 정도의 상태여서 ‘치료까지 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하면 그냥 놔두면 돼요. 놔두고 아이가 검정고시를 하겠다고 하면 ‘그럼 해라’ 이러면 됩니다.

공부 안 한다고 또 성질내면 안 돼요. ‘한다 해놓고 왜 안하느냐!’ 이렇게 접근하면 안 돼요. 한다고 하면 ‘오케이, 한 번 해 보자’ 이러면 되고, 안 한다고 하면 ‘오케이, 그럼 학교 안 갈래?’ 이렇게 말해 보세요. 학교도 안 하고 검정고시도 안 한다면 ‘그럼 직장을 가야 하는데, 직장을 다닐래?’ 이렇게 물어 보세요. 그것도 싫다며 방콕 하겠다고 하면 만 18살, 즉 20살까지는 일단 보호해야 되니까 보호해 주세요. 20살을 넘으면 대문 밖으로 내보내고 문을 닫아버려도 아무 이상이 없어요.(모두 웃음) 그런데 질문자의 아이는 아직 중학교 2학년이니까 그러면 안 돼요.

그러니까 그건 의사의 처방을 따르고, 의사가 특별한 문제가 없다고 하면 발작을 일으키거나 하는 심각한 상태가 아닌 이상 아이의 인권을 존중해야 하기 때문에 그냥 두고 지켜보시면 돼요.(모두 박수)”

즉문즉설을 마치고 회향식을 하기 위해 염불사지로 향했습니다. 염불사에서 염불을 하면 경주 전지역에 염불소리가 들린다고 하여 염불사라 이름 지었다고 합니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가운데에서도 흐트러짐 없이 질서정연하게 이동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바람이 불고 간간히 비까지 흩날렸습니다. 이렇게 추운 날씨로 회향식을 마무리할 수 있을까 염려되기도 하였으나 악천후도 관음정근으로 시작된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막지는 못했습니다. 다행히 더 이상 비는 내리지 않았고 스님이 이 땅에 다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불보살과 천지신명님께 축원을 했습니다. 모든 불대생들이 한 마음이 되어 엄숙함이 감돌았습니다. 어느 때보다 위기상황인 우리나라에 어떠한 경우에도 전쟁은 일어나지 않아야 하며 지도자들의 순간적인 판단착오로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회향식을 마친 후 지부별로 탑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남산 순례의 길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스님은 남산순례를 마치자 두북 수련원에서 손님을 만난 후 오늘 법사님 중 한 분이 60번째 생일이라 조촐한 저녁을 법사님들과 함께하며 어제 못 다한 법사단 회의를 가졌습니다. 내일은 지체부자유자 분들과 함께 가을 소풍을 가는 날입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임혜진(글, 사진) 윤용희(글) 이유빈(편집)

전체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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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바다

보편적이 아니라고 무조건 문제인 것은 아니다. 병은 치료하고 인권은 존중한다. 어린이는 보호해주고, 성인이 되면 내보내면 된다. 명쾌하고 단순합니다. 내 기준으로 이것 저것을 엮어서 스스로 꼼짝 못하도록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금 돌아봅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2017-10-27 22:27:28

정지나

내 의견으로 이래라 저래라가 아니라 명확한 나에 의사표현을 하고 그것에 대한 책임은
상대가 할 수 있는 시간과 자유를 줘야한다고 이해가 되네요. 감사합니다^^

2017-10-27 10:26:14

일 상

비정상적인 것은 전부 문제라는 고정관념 버리겠습니다.

2017-10-25 23:3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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