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7.10.23. 애광원 가을 나들이
애광원 장애인들과 함께 한 쌍계사 나들이

오늘은 애광원 장애인들과 함께 가을 나들이를 하는 날입니다.

애광원은 거제도에 있는 지적장애인 거주.교육 시설로, 2003년 태풍 매미가 덮쳤을 때 무너진 시설물들을 정토회가 나서서 복구하면서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때 애광원에 지속적인 지원을 약속한 이후 매해 1년에 두 차례씩 봄 가을 나들이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오늘 함께 하는 분들은 경증 장애인들로, 활동이 어느정도 가능하고 의사소통도 상대적으로 수월한 분들입니다. 애광원에서는 장애인들을 거기 거주하는 분들이라는 의미로 거주인이라고 부른답니다.

오전 9시 무렵 하동 쌍계사에 스님 일행이 도착하였습니다. 스님은 답사 삼아 먼저 쌍계사에 올라가 둘러보고 오신 후 애광원 식구들을 기다렸습니다.

10시 반이 되자 애광원 거주인과 교사들을 태운 대형 버스 두 대가 쌍계사 아래 주차장에 들어섰습니다. 스님은 버스 승하차 문 앞에 기다리고 계시다가 차에서 내리는 거주인 및 교사들과 일일이 손을 잡고 인사하였습니다. 10년이 넘게 이어져온 나들이 행사로 낯이 익었는지 거주인 중에는 먼저 다가와 알은 체를 하며 스님을 끌어안거나 어깨동무를 하면서 좋아하는 이들도 보였습니다. 나들이에 들떠 다들 어찌나 표정이 밝은지 가을햇살이 얼굴에서 반짝반짝 부서져 내리는 듯 했습니다.

차에서 내리는 이들 중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휠체어에 올라타는 할머니가 있었는데 애광원 원장님이라고 했습니다. 스님은 원장님과 마치 오랜만에 만난 오누이처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원장님은 올해 92세로 지난 60년간 고아들과 장애인들을 돌보셨다고 합니다.

오늘 정토회 봉사자들은 거주인들과 일대일로 짝을 맺어 안내하기로 준비하였습니다. 버스에서 사람이 내릴 때마다 기다리고 있던 봉사자들이 자기 짝을 찾아 인사를 나눕니다. 오늘 하루 동안 같이 손잡고 같이 걷고 같이 밥도 먹을 친구들입니다.

모두가 버스를 내리고 자리가 정돈되자 진행자가 서두를 뗐습니다.

“여러분, 하늘 한번 보세요. 옆에 짝지 한번 보세요. 심호흡 한번 하세요.”

하늘은 투명하게 파랗고 짝지는 함박웃음, 숨을 크게 들이쉬니 그윽한 나무냄새가 깊게 들어왔습니다.

“오늘 이렇게 좋은 날 함께 나들이 시작합니다.”

모두들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하며 좋아합니다. 이제 마이크가 스님에게 넘어갔습니다.

“내 얼굴 알아보겠어요?”

거주인들은 신이 나서, 네, 크게 대답합니다.

스님은 덕택에 오랜만에 쌍계사에 와보게 되었다며, 오늘 하루 절구경도 하고 점심 먹고 노래자랑도 하자고 말씀하십니다. 이번에도 네, 하는 힘찬 대답. 어느 답사, 어느 나들이보다 호응이 좋습니다.

쌍계사 입구를 지나 얼마 가지 않아 큰 계곡이 나타납니다. 보이는 나무들도 우람하니 수백 년은 되어 보입니다. 일행은 사찰안내도 앞에 멈추었습니다. 스님의 설명이 시작되었습니다.

“쌍계사는 맨 처음 신라 삼법스님이 세웠어요. 삼법스님이 중국 유학 중 꿈에 “육조혜능 대사의 머리를 가져다가 ‘눈 속에 꽃이 피어있는 곳’에 모셔라.” 하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육조혜능은 생전에 해동에 있는 어떤 사람이 내 목을 가져가리라고 예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삼법스님이 머리를 가져와서 전국을 다니다가 지리산에 와보니 눈 속에 칡꽃이 핀 곳이 있었는데 그게 현재의 금당 자리입니다. 금당은 남향이라 햇볕을 잘 받는 곳이지요.

쌍계사는 나중에 임진왜란 때 거의 불탔어요. 스님들인 승병들이 왜군과 맞서 싸우다보니까 왜군들이 절을 다 불태웠거든요. 임진왜란 후 벽암스님이 절을 재건했는데 이번에는 터가 넓은 서향으로 앉혔어요. 그래서 현재의 주요 건물들은 대부분 서쪽을 보고 있습니다.”

스님은 어느 때보다 쉽고 단순하게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설명이 끝나자 일행은 다시 걸어 일주문 앞에 이르렀습니다. 스님이 ‘절에 들어가는 첫 번째 문, 일주문’ 이라고 하자, 달리 시키지 않았는데도 다들 ‘일주문’ 하고 따라합니다. 조금 후에는 ‘금강역사를 모신 곳, 금강문’ 그리고 무시무시한 ‘사천왕상이 모셔진, 천왕문’을 지났습니다.

“옛날 인도 사람들은 세상의 중심에 수미산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수미산의 중턱에서 동서남북 사방을 지키는 분들이 사천왕이에요.”

이제 일행은 진감국사비로 향합니다. 뒤쳐지는 사람이 없도록 천천히 걷기도 하지만, 짝이 지어져서인지 90여 명 되는 사람들이 낙오되거나 흩어지지 않고 질서 있게 움직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역사 자료로 유명한 비가 네 개 있는데 진감국사비는 그 중 하나로, 국보예요. 먼저 비 받침은 거북이입니다. 거북이가 오래 살기 때문에, 비석이 오래 가라고 거북이 형상으로 받침을 합니다. 비 머리는 용 조각입니다. 비신은 비문이 새겨진 판인데, 저 글을 신라의 최치원이 썼어요.”

우와~ 고개를 끄덕끄덕. 봉사자들에게도 공부가 되는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대웅전 앞에 모여 섰습니다.

“대웅전이라는 건 부처님을 모신 곳으로, 큰 영웅이라는 의미에서 대웅전이라고 해요. 쌍계사 대웅전은 나라에서 지정한 보물이에요. 저 안에 부처님상도 보물, 그 뒤에 걸린 탱화도 보물이에요. 쌍계사에는 보물이 많아요. 부처님 세분 중 가운데는 석가모니 부처님, 왼쪽은 극락 세계에 계시는 아미타 부처님, 오른쪽은 모든 병을 다 낫게 해준다는 약사여래 부처님이에요.”

일행은 이어 대웅전 오른쪽에 있는 마애불을 지나고 지장보살이 모셔진 명부전을 지나고 화엄전을 지납니다. 쌍계사 화엄전은 경전 목판이 보관돼 있는데, 해인사 다음으로 많다고 합니다. 화엄전 지나 뒤편으로는 삼성각이 있습니다. 산신각, 칠성각, 독성각을 합쳐 삼성각이 되었다고 하는데, 산신이 다른 곳과 달리 할아버지가 아니라. 할머니라고 스님이 말씀하시자 저마다 할머니를 보려고 기웃기웃 합니다.

삼성각까지 보고나니 이제는 내려가는 길입니다. 내려가는 계단 옆으로 코스모스가 색색이 예쁘게 피었습니다. 몇 명이 스님과 사진을 찍으니 너도나도 찍겠다고 하여 모두가 돌아가며 코스모스를 배경으로 즐겁게 사진을 찍었습니다.

절 구경을 잘 했으니 이제는 점심을 먹을 시간입니다. 일행은 올라갈 때처럼 짝과 손을 잡고 산을 내려와 차에 올라탑니다. 점심이 차려진 식당으로 향하는 길, 식사를 마치고 섬진강변의 송림공원으로 향하는 길이 모두 맑고 한적해서 가슴이 트이는 듯합니다.

송림공원은 섬진강을 길게 끼고 있는 솔밭 공원입니다. 이미 오래 전에 방풍림으로 조성된 듯 소나무들이 모두 우람하고 듬직합니다. 솔밭이 시작되는 입구 쪽 강변에서 오늘을 기념하는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햇살이 밝은데다 강물에 햇빛이 반사되어 눈이 부셨지만 하나 둘 김치, 신호에 모두들 활짝 웃었습니다.

솔밭을 걸으면서 노래가 시작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절로 노래가 나오는 날씨에 절로 노래가 나오는 길입니다. 스님이 옆에 걷던 사람에게 안내 마이크를 내어주시니 마이크에 대고 신나게 노래를 합니다. 무슨 노래지? 할 무렵 샤방샤방! 발음은 어눌해도 박자만큼은 멋들어지게 ‘샤방샤방’을 외칩니다. 마이크가 또 다른 사람에게 건네지며 이어지는 옹달샘, 소양강. 스님이 잠깐 쉬어가자고 한 벤치 앞에 멈추니 서로 노래를 하려고 스님 앞에 몰려섭니다.

내 나이가 어때서, 나의 살던 고향. 누군가는 손뼉을 치고 누군가는 흥에 겨워 춤을 춥니다. 노래를 부른 이는 사람들의 박수를 받고는 부끄러운 듯 웃습니다.

진행자의 안내에 따라 자리를 조금 옮겨 본격적으로 자리를 깔고 놀이시간을 가졌습니다. 장구 장단에 맞춰 민요를 함께 부르고 음악을 틀어주니 앞으로 나와 춤을 추는데 저마다 몸짓에 개성이 넘칩니다.

흥겨운 놀이 시간이 끝나자 스님께서 마무리 인사를 하시고는 애광원 선생님들에게 선물로 책을, 원장님께 책과 시설 건립기금을 전달하였습니다.

원장님은 스님께 부다페스트 장애인 단체에서 만들었다며 기념품과 초콜릿을 선물하였습니다. 이어 원장님이 인사말씀을 하였습니다.

“정토회가 이 나라에 있어 대한민국이 잘 살아갑니다. 이 운동이 계속 퍼져나가기를 나는 매일 기도합니다. 앞으로도 이 나라를 위해 정토회 정신으로 살아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자리에 와서 마음이 깨끗해졌어요. 우리 친구들 말은 잘 못해도 모두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새 정이 들었는지 돌아가는 길 내내 거주인 몇 명이 스님을 끌어안고 잡고 걸어갑니다.

“스님, 내년에도 꼭 오세요.”

애광원 나들이를 마치고 저녁 7시가 넘어서 서울 사무실에 도착하니 김윤미 활동가가 스님께 인사를 드리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난 1년간 인도JTS 수자타아카데미를 담당했던 김윤미 활동가는 한국에서 한 달간 교육과 수련을 마치고 내일 다시 인도로 출국할 예정입니다. 스님은 인도에 가서 챙겨야 할 일들을 조목조목 말씀해주었습니다.

대화 속에서 웃음꽃이 핀 것도 잠시, 회의 준비가 다 되었으니 오시라는 연락을 받고 불사회의장소로 이동했습니다.

불사추진 상황을 점검하고 대중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마련된 시간. 전체적인 브리핑을 듣고 60여명의 대중들은 의견을 끊임없이 쏟아냈습니다. 불사팀은 그 의견들을 수렴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회의는 예정된 시간을 3시간이나 넘겨, 새벽 1시가 훌쩍 넘어서야 끝이 났습니다. 숙소로 향한 계단을 천천히 오르는 스님의 발걸음을 따라 걸으면서 오늘 하루도 최선을 다한 스승님의 뒷모습에 머리가 저절로 숙여집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이정민 (글) 정영숙 (사진)

전체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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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나

감사합니다.^^

2017-10-30 08:50:40

큰바다

오늘도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에서 저를 돌아봅니다. 감사합니다.

2017-10-28 22:12:52

이덕기

스님께서 늘 말씀하시는 '누구나 다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를 보게 됩니다. 내가 더 긍정적으로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해봅니다.

2017-10-28 17:2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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