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8.10.16 연화회 가을 나들이 2일째
“스님, 늙지 마세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연화회 나들이 이틀째입니다. 어젯밤 호텔에서 묵으신 노보살님들은 호텔에서 아침을 드셨습니다. 노보살님들은 서로를 보며 ‘아이구. 좋은 데서 자더니 얼굴이 좋아졌어.’ 라며 아침 인사를 했습니다.

노보살님들은 아침을 먹고 불국사로 출발했습니다. 가는 길마다 단풍이 들어 예뻤습니다. 불국사에 도착한 스님은 노보살님들과 인사를 나눈 뒤 안내도를 보며 불국사의 창건설화와 독특한 가람배치에 대해 설명해주었습니다.

“천천히 가겠습니다.”

오늘도 스님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천천히’입니다. 스님은 먼저 휘적휘적 가시더니 휠체어가 다니는 길을 둘러보고 알려줍니다. 일주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가니 단풍 든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와. 저 앞을 보세요. 나뭇잎도 보살님들처럼 울긋불긋 단풍이 들었네요. 단풍이 드니 더 예쁘지요?”

“네” (모두 웃음)

활짝 웃으시는 노보살님들의 얼굴이 단풍보다 더 고와 보입니다. 사천왕문으로 가는 계단이 가파르자 스님은 계단이 높다며 노보살님들께 주의를 드립니다. 국보인 청운교, 백운교 앞 나무 아래 앉기 좋은 자리에 스님이 멈췄습니다.

“자, 여기 쭉 앉으세요. 보살님들 깔개 깔아드리세요.”

봉사자들이 미리 준비해 온 깔개를 깔아드렸습니다. 스님은 석가탑을 세운 백제의 석공 아사달과 아사녀의 설화, 청운교와 백운교의 의미, 경사가 있는 불리한 점을 멋지게 활용한 건축술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주었습니다.

“이 곳은 경사가 있으니까 경사 부분을 축대로 쌓고 그 위에 법당을 지었어요. 앞에 보이는 이 다리는 청운교. 백운교라고 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청운의 꿈을 품는다’라는 말 들어보셨죠? 젊을 때는 돈을 벌고, 유명해지고... 그런 것들이 중요하죠. 그런데 나이 들어 보면 다 의미가 별로 없잖아요. 그런 것이 ‘백운’이에요. 흰 구름처럼 여기는 것이죠. 그래서 부처의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청운을 지나고 백운을 지나야 하는 겁니다. 이 계단은 모두 33개입니다.”

나이 들어보면 돈 벌고 유명해지는 것들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말에 노보살님들이 고개를 끄덕끄덕 했습니다. 스님은 일 년에 몇 차례씩 다양한 사람들에게 불국사 안내를 해주시는데, 같은 설명이라도 그때 그때 그 사람에게 맞춘 설명이라 매번 새롭습니다.

“정토회에서 중요한 건 요 앞에 보이는 축대를 쌓는 법입니다. 맨 밑에는 다듬지 않은 자연석으로 쌓았어요. 자연석도 큰 돌만 사용하지 않고, 작은 돌도 사용했어요. 이것은 중생계를 상징합니다. 마음이 넓은 사람도 있고 좁은 사람도 있고, 부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는 온갖 종류의 사람이 있는 세계지요.

그 위에 두 번째 층은 보살의 세계입니다. 보살의 세계에서는 모든 사람이 다 깨달을 필요 없이 보살이 중간, 중간에 역할을 잘 하면 중생들도 다 부처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는 세계예요. 모든 돌을 다 깎아서 쌓는 것이 아니라 기둥만 반듯하게 깎아서 정기적으로 세우고 기둥 사이의 돌은 그냥 끼워버리면 다 깎아서 넣은 것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는 뜻을 담고 있어요.

저 기둥들이 보살을 상징하고, 저 사이에 낀 돌들은 중생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저 돌들은 그냥 일반 중생은 안 되고 적어도 한 면은 붓다를 닮아야 돼요. 그래서 앞면은 모두 평평합니다. 앞면만 깎은 돌이 아니고 한쪽은 평평한 돌을 주워 딱딱 끼워 맞춘 거예요.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정토회가 만든 것이 ‘모자이크 붓다’ 예요. 우리가 전부 다 부처가 되는 것은 무리이니까 한 측면만이라도 부처와 같은 역할을 하자. 한 사람, 한 사람은 부족하더라도 정토회 전체는 부처님이 하는 일을 하자는 거죠. 그러니 여러분이 뭘 하더라도 한 면은 부처의 역할을 해야 해요. 또 다른 말로 하면 기둥이 정회원이라면, 기둥 사이의 돌은 일반회원이라고 볼 수 있고, 기둥이 법사라면 기둥 사이의 돌은 정회원들이라고 볼 수 있어요. 우리 모두는 이렇게 조화를 이룰 수 있어요.

보살의 세계 위에 부처의 세계가 있습니다. 땅이 고르지 않아 축대를 쌓고 계단을 만들게 되었지만, 계단은 계단대로, 축대는 축대대로 부처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하도록 쌓았어요. 옛날 사람들의 지혜가 참 대단하죠. 돌을 하나 쌓아도 그냥 안 쌓았습니다.

자, 그럼 조금 쉬셨죠? 천천히 올라가겠습니다. 위에 가서도 계단에 앉아서 설명 듣겠습니다.”

오르막길을 천천히 올라 경내로 들어섰습니다. 석가탑과 다보탑 아래 노보살님들이 앉자 스님은 법화경을 구현한 아름다운 다보탑,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된 석가탑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자, 이제 대웅전으로 가볼까요? 다리가 아프시더라도 대웅전에서 삼배는 하고 갑시다.”

90세 넘은 보살님이 눈이 어두워 보시함 입구를 찾지 못하자 스님이 함께 넣어주었습니다. 모든 노보살님들이 삼배를 마치고 앉자 대웅전의 불상, 천장, 바닥을 하나하나 같이 보며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스님은 노보살님들께 좀 더 쉬고 갈지 물어보았습니다. 노보살님들은 앉았다 일어서며 ‘아이구, 힘들어’ 하면서도 “바로 가자” 며 발길을 옮겼습니다.

무설전, 비로전, 극락전과 안양문, 연화교와 칠보교를 찬찬히 둘러보고 불국사를 나왔습니다.

스님은 가는 곳마다 그곳에 얽힌 설화와 의미들을 재미있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질문도 하고 메모도 하며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노보살님들의 모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제가 원래 빨리빨리 다니는 사람인데, 가을에 이렇게 보살님들 덕택에 천천히 둘러보니 좋으네요.”

스님도 이 가을을 만끽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준비한 봉사자에게 _“다음번엔 1인용 깔개와 가벼운 의자를 준비해서 불편함이 없도록 해야겠다”_라고 하였습니다. 작은 불편함도 소홀히 하지 않는 모습을 다시 한번 배웁니다.

버스에 노보살님들이 올라타고, 스님은 기사님에게 두북으로 돌아가는 길에 대왕암에 들러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노보살님들을 앞에 태우고 스님은 맨 뒷자리에 앉아 바다로 향했습니다. 뒷자리로 갈수록 멀미 나기가 쉽고, 버스에서 내릴 때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감포에 도착할 무렵 스님은 차창 밖으로 보이는 대종천과 감은사지에 대해 설명해주었습니다.

“자, 오른쪽에 보이는 강이 대종천입니다. 왜구가 황룡사의 대종을 싣고 간 강이라고 해서 대종천입니다. 그런데 대종을 싣고 가다가 이 감포 앞바다에 빠뜨렸다고 해요...”

스님의 설명이 끝나고 곧 차 안에서도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평소 멀리 나가기 어려우신 보살님들에게 바다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도 어제, 오늘 많이 걸으신 보살님들을 염려하여 _“피곤한 분은 타고 계세요. 차에서도 다 보이죠?”_라고 했지만 모든 분이 내리셨습니다. 차가 서기도 전에 일어나시는 보살님들께 스님은 차가 움직이니 앉아계시라고 하고 완전히 정차 후에 내리시도록 했습니다.

스님은 대왕암 사진 앞에서 대왕암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주었습니다.

“저기 앞에 보이는 바위가 대왕암이에요. 이 바위는 옛날부터 대왕암이라고 불러서 이름이 대왕암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삼국유사에 신라 문무왕의 뼈를 화장해서 바위에 묻었다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바위를 조사해 보니 이 바위가 바로 문무대왕의 뼈를 묻은 곳이었어요. 얼른 보면 그냥 자연 바위 같은데 십자로 물이 들락날락할 수 있도록 정으로 쪼아서 수로를 만든 거였어요. 가운데는 동그랗게 만들어서 뼈를 묻고 큰 돌로 덮었습니다.

문무대왕은 죽을 때 ‘내가 동해바다의 용이 되어 왜구를 막겠다’라고 유언을 남겼어요. 어떻게 축생이 되려 하느냐는 질문에 문무대왕은 나라만 지킬 수 있다면 축생이 되면 어떠냐고 했다고 해요.”

한 노보살님은 스님의 온갖 가르침을 다 들었지만 구십 평생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신기해하고 기뻐하셨습니다. 도반들과 손잡고 도란도란 바다를 구경하는 노보살님들의 모습이 정겹습니다. 바다를 배경으로 다 같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한 보살님이 “팔십 밑으로 젊은 사람은 다 앉아라” 하자 하하호호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한 편 두북 수련원에서는 맛있고 정성스러운 점심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수련원으로 돌아온 노보살님과 스님은 마지막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은 없지. 근데 이 시간 가는 게 너무 아깝습니더...”

식사를 맛있게 마친 자행 노스님은 기쁜 마음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꽤 오랫동안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니 벌써 그리운 마음이 드셨나봅니다. 스님은 노보살님들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가르침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내년에 또 만나면 우리 다 만날 수 있을까요?”

“내년에 다 만나면 좋지요. 그런데 그게 집착이에요.”

또 스님은 정토회의 근황, 인도 JTS, 필리핀 JTS의 근황도 알려주었습니다. 필리핀 사업장의 이야기를 듣다 70대 보살님이 “이 늙은 사람도 가도 돼요?” 묻자 스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물론이지요. 새벽 예불하고, 정진하고, 발우공양은 하셔야 돼요. 그래도 연세가 있으시니까 낮에는 노시면 되고요. 텃밭이 있으니 가꾸셔도 되고요.”

나이가 더 지긋한 80대 보살님들은 옆에서 “젊으니 좋다. 좋아” 하며 부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한참 재미나게 이야기를 나누다 한 보살님이 간곡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님, 늙지 마세요.”

“늙고 죽는 거는 진시황, 부처님도 해결하지 못한 일인데. 늙으면 늙는 대로, 죽으면 죽는 대로 그렇게 살아야죠.”

“스님 안 계시면 큰일 나요.”

“저 없어도 정토회는 까딱없어요. 제가 죽어도 까딱없어야 제가 잘 산거죠. 정토회는 이제 대중들과 법사들이 의논해서 잘 하고 있어요. 저는 요새 돌아다니면서 외부 강연만 하고 있어요. 30년 전에 아무 뿌리 없을 때도 했는데 이 정도 일궈놓았는데 젊은 사람들이 왜 못하겠어요. 우리가 비원 포교원에서 시작할 때 누가 있었어요? 그렇게 시작한 게 벌써 33년 됐네요. 저는 이제 땅에 거름이 돼서 나무나 하나 잘 키워야죠.” (웃음)

지금이야 정토회가 세상에 많이 알려져서 누구나 거부감 없이 찾아오는 곳이 되었지만 30년 전에는 10평 남짓한 허름한 공간에 비닐하우스에서 수련하던 시절에 정토회를 찾아와 스님 법문을 듣는다는 것은 보통 신심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스님이 노보살님들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이유가 어렴풋이 짐작이 가기도 했습니다.

이제 정말 헤어질 시간이 되었습니다.

“자, 그럼 화장실 다녀오셔서 천천히 버스 타세요. 제가 같이 타고 가면서 재롱을 계속 떨면 좋겠는데 저는 오늘 성동구에서 강연이 있어요. 섭섭하게 생각지 마시고 조심히 올라가세요.”

“스님, 정말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서울, 청주, 문경, 부산, 각자 사는 곳으로 향해야 할 시간, 노보살님들은 마지막으로 서로 포옹을 하고 손을 맞잡으며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스님도 보살님들을 끝까지 배웅하고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저녁 7시부터는 서울 성동구에서 시민들과 함께하는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다음 이야기에 계속...

전체댓글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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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릿느릿

감사합니다....

2023-08-21 10:01:24

양계수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30년간 함께 해 와던 세월이 소리없이 감구지회感舊之懷입니다...

2020-03-20 23:38:52

이옥희

감동~~
눈물나요
스님 짱~~
말이필요 없어요~~^*^

2020-03-20 19: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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