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8.10.20 정토불교대학 경주 남산 순례(1)
“불편한 마음을 알아차려도 더 불편해져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정토불교대학 입학생들과 함께 경주 남산 순례를 하는 날입니다. 모두 이번 가을에 입학한 정토불교대학 학생들입니다. 오늘 순례에는 인천 경기서부, 충청, 대구경북, 부산 울산, 경남 지역의 120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정토회에서는 법사단도 모두 참석해 각 골짜기마다 안내를 맡았습니다.

스님은 오전 8시에 경주 남산으로 향했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가을 하늘에 공기도 쾌청했습니다.

삼릉을 출발하여 삼불사, 지마왕릉, 포석정, 창림사지, 당간지주를 지나 산길을 잠시 올랐다가 부처골 감실 불상을 지나 통일전까지 약 12km를 걸었는데요. 경주 남산의 서남쪽과 북쪽 기슭을 빙 돌아서 동쪽 기슭까지 걸은 셈입니다.




가을 녘 남산 기슭의 풍경은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열리고 들판에 벼가 황금빛으로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통일암 너른 터에 도착한 스님은 준비해온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스님은 함께 온 행자님에게 _“도시락 싸왔느냐?”고 물어보면서 “내가 먹을 걸 스스로 준비해오지 않으면 남에게 민폐가 된다”_라고 강조했습니다.

대중들보다 1시간 일찍 식사를 마친 후 막 도착한 정토불교대학 학생들을 반갑게 맞이하며 한 명 한 명에게 악수를 건넸습니다. 약 1시간 동안 무려 1000여 명과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경남 지부만 늦게 내려와 악수를 못한 채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대중들이 식사를 모두 마칠 때까지 기다리면서 장기자랑 시간을 가졌습니다. 춤과 노래 실력을 뽐내는 대중들을 보니 정말 소풍을 온 것 같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식사가 모두 끝나자 즉문즉설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솔숲 아래에서 그야말로 야단법석이 펼쳐진 것입니다.

“공부할 만해요?”

불교대학에 다닌 지 이제 6주가 된 학생들이었습니다. 스님은 먼저 “불교대학을 다니고 나서 사는 게 좀 편해진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 고 했습니다. 대부분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이 공부를 시작했으니까 끝날 때까지 다녀야 됩니다. 다닐수록 깊은 맛이 있거든요. 처음에는 대부분 좋았다가 중간에 ‘그만둘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려움을 겪게 돼요.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끝까지 다니길 잘했다’ 하게 될 거예요. 그러니 이왕 시작한 것은 끝까지 떨어지지 않고 붙어있어야 돼요. 알았지요?”

“예.”

“부처님은 종교와 철학을 뛰어넘어서 고뇌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새로운 길을 찾아냈습니다. 그것이 바로 ‘수행’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배우고 있는 건 종교로서의 불교가 아니라 수행으로서의 불교예요. 우리 모두 행복하게 살아보자는 의미에서 불교대학을 운영하는 것이지 여러분들더러 불교 신자가 되라고 운영하는 게 아닙니다. 이 공부를 하셔서 무지를 깨우치고 행복해지시라는 거예요.”

또 스님은 불교대학 교과과정인 ‘실천적 불교사상’, ‘부처님의 일생’, ‘근본 교리’, ‘불교의 변천사’를 왜 배워야 하는지, 그리고 각 과목을 깊이 체험할 수 있는 정토회의 프로그램을 안내했습니다. “실천적 불교사상은 깨달음의 장, 부처님의 일생은 인도 성지순례, 근본 교리는 명상수련, 불교의 변천사는 경전반을 통해 더 깊이 공부할 수 있다”라고 하면서 “불교대학을 기본으로 정토회의 모든 프로그램은 한 사람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자, 한 달 반 정도 공부하셨다고 했는데, 여러분들이 공부하는 동안 저는 그 화면 속에 갇혀있느라 좀 답답했어요. 그래서 저도 오늘 이렇게 화면 밖으로 나왔습니다. (모두 웃음) 이렇게 여러분들과 따뜻하게 손도 잡아보고, 얼굴도 마주 볼 수 있어서 좋네요.”

불교대학생들은 영상으로 스님의 법문을 듣다 보니 궁금한 점을 물을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는데, 오늘은 그동안 공부하면서 들었던 의문, 인생살이에서 겪는 고충들에 대해 스님에게 마음껏 물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부터는 질문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질문을 하기 전에 반드시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조건이 있습니다.” (모두 웃음)

오늘은 질문 전에 노래를 한 소절씩 부르고 질문을 하도록 했습니다. 노래를 부를 용기를 가진 일곱 사람이 질문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총 7명이 질문할 기회를 얻었는데요. 그중에서 불편한 마음을 알아차리고 멈추는 방법에 대한 질문과 스님의 답변이 청중의 공감을 많이 얻었습니다.

“스님께서 감정이 올라오면 알아차리고 바라보라고 하셨는데, 그래서 감정이 올라오면 ‘내가 짜증이 나는구나. 불안하구나’ 이렇게 감정을 스스로 알아차리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럴수록 점점 불안한 마음, 짜증 나는 마음이 더 확실해지는 것 같습니다. 다만 알아차리기만 하는 게 잘 안 되는데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 넘어지려고 하면 핸들을 어떻게 틀어야 될까요? 자전거가 왼쪽으로 넘어가려고 하면 핸들을 왼쪽으로 틀고, 오른쪽으로 넘어지려고 하면 핸들을 오른쪽으로 틀어서 균형을 잡아야 해요. 이렇게 배웠는데 막상 자전거를 타면 자전거가 왼쪽으로 넘어가려고 하면 반사적으로 오른쪽으로 틀게 됩니다. 자기도 모르게 핸들을 오른쪽으로 트니까 자꾸 넘어지는 거예요. 그러나 연습을 계속하면 오른쪽으로 기울어지면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기울어지면 왼쪽으로 기울여서 균형을 잡게 됩니다.

이 때 질문자가 ‘오른쪽으로 기울어지면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기울어지면 왼쪽으로 기울여서 균형을 잡으라고 배웠는데 저는 왼쪽으로 넘어지려고 하면 오른쪽으로 핸들을 틀려고 합니다’라고 물으면, 제가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요? (모두 웃음)

원리를 모르면 ‘네가 오른쪽으로 틀어서 그렇지 않니, 왼쪽으로 틀어봐라 균형이 잡히지’ 하고 가르쳐 주겠는데, 이미 가르쳐 줬는데 자꾸 ‘저는 오른쪽으로 틉니다’ 하면 제가 할 말은 뭘까요?

‘연습을 더 해라.’ (모두 웃음)

제 법문 한 마디 듣고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이 싹 없어질 수 있을까요? 자전거를 어떻게 타면 된다고 가르쳐주면 그날부터 자전거를 바로 타는 사람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계속 넘어지고, 넘어지고, 넘어지고, 넘어진단 말이에요. 그런데 두 번 넘어지고 세 번 넘어지고 네 번 넘어지는 과정에서 자기도 모르게 왼쪽으로 한 번 틀 때가 있어요. 그때는 안 넘어지겠죠. ‘어, 되네?’ 이러다가 또 자기도 모르게 오른쪽으로 탁 틀어서 탁 넘어져요. 이렇게 되풀이하면서 조금씩 되는 거예요.

화를 참으면 스트레스를 받아요. 화를 내면 성질 더럽다는 비난과 과보를 받습니다. 참으면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세 번 참았다가 터지고, 터지면 과보를 받고 비난을 받으니까 또 참고, 참다가 또 터집니다. 터지고 후회하고 다시 참아요. 참다가 다시 터지고 또 후회하고 또 참아요. 이게 계속 되풀이되는 거예요.

화를 참을 거냐, 화를 낼 거냐에 초점을 두면 안 돼요. 그걸 중심에 두는 건 수행이 아니에요. 모든 사람이 이미 그렇게 하고 있어요. 그렇게 참는 건 저절로 되기 때문에 연습할 필요가 없어요. 한번 화내고 회사에서 짤리면 다음 회사에 가서는 조심을 하게 돼요. 살면서 이런 손실을 자꾸 당하기 때문에 저절로 참아집니다. 그러나 참는 압력이 너무 세면 저절로 터지고, 참았다가 터지는 것이 계속 되풀이돼요. 이게 윤회입니다.

부처님이 발견한 새로운 길은 화가 일어날 때 ‘화가 나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겁니다. 화를 참을 거냐, 낼 거냐 하는 것은 의지의 문제예요. 수행은 의지가 아닙니다. 수행은 각오하고 결심하고 노력하는 게 아니고 알아차리는 거예요. 화가 일어날 때 ‘어, 화가 나네’ 하고 알아차려도 화가 확 일어나 터질 수 있어요. 놓치면 후회하는 게 아니라 ‘아, 내가 놓쳐버렸구나’ 이렇게 연습하고 또 연습하면 됩니다. 100번 연습해서 되는 사람이 있고, 1000번 연습해서 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니 연습할 일만 남았습니다.”

연습할 일만 남았다는 얘기에 마음이 홀가분해졌습니다. 이 외에도 이와 같은 질문이 더 있었습니다.

  • 소승 불교는 무엇인지, 또 스님들은 금욕주의의 길을 가는 것 같은데 왜 그런가요?
  • 인생은 꿈과 같은데 왜 열심히 살아야 하나요? 또 자본주의 속에 살아가는 것 자체가 누군가를 착취하는 구조인데, 우리가 어떻게 선업을 쌓으며 살 수 있나요?
  • 깨달음의 장을 가고 싶은데 70세라 못 갑니다. 명상수련을 마친 사람은 깨달음의 장 나이 제한을 없애면 안 될까요?
  • 친정 부모님이 남동생에게만 유산을 상속해줘서 박탈감이 듭니다. 이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올해 교통사고로 죽을 뻔하고, 아들이 회사에서 왕따를 당한 후 환청이 들린다고 하고, 자해를 했습니다. 시어머니는 굿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사주 공부를 해보니 아들이 굉장히 약한 사주라 불안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스님은 각 질문마다 어떻게 관점을 가져야 행복할 수 있을지 답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질문자에게는 스님의 대답이 냉정하게 들렸을지 모른다”며 “일상생활 속에서 어떻게 수행을 해나가야 하는지 다시 한번 정리하면서 대화를 마쳤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성인이 되십시오’, ‘남편 또는 아내에게 무조건 복종하십시오’, ‘부모한테는 무조건 효도하십시오’ 하면서 성인이 되라고 가르쳤습니까? 아니면 ‘자기 일은 스스로 좀 영리하게 챙기십시오’라고 가르쳤습니까?”

”성인이 되라고요.”

“그렇게 들었어요? 아니에요. 즉문즉설을 잘 들어보세요. 결과적으로는 성인처럼 하는 게 되는데, 그렇게 성인처럼 하는 게 누구한테 이익이라고요?”

“자기 자신한테요.”

“불교 공부를 했다면 좀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제가 속된 말로 ‘좀 영리하게 살라’고 말했는데, 그걸 제대로 말하자면 ‘지혜롭게 살라’는 겁니다. 감정적으로 살면 순간순간 기분은 좀 풀릴지 몰라도 결국 손실을 보게 됩니다. 화나는 감정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지혜로 풀어야지 감정으로 풀 게 아닙니다.

교통사고가 나서 죽을 뻔했다면, 그걸 ‘재수가 없다’라고 생각하는 게 과연 자신에게 좋을까요? 오히려 ‘교통사고가 났는데도 죽지 않고 살았다’ 이렇게 생각하면 산 기념으로 한 턱 낼 수도 있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보시는 조금 하면서 부처님께 해 달라는 건 많잖아요. 원하는 게 안 이루어지면 ‘기도해봐야 소용없다’ 하면서 신앙에 회의를 품잖아요.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오늘도 안 죽고 살았네. 부처님 덕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매일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그 감사한 마음으로 보시를 해 보세요. 그게 ‘무주상보시’입니다.

그래서 스님의 즉문즉설도 다 공짜입니다. 제가 강사료 몇 푼 받고 가서 강의해 주면, 그럴 때 저는 노동을 하는 게 되고, 여러분들은 저한테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는 게 됩니다. 이런 것을 거래라고 합니다. 이런 거래는 복이 안 됩니다. 그러나 저는 아무 조건 없이 상대한테 베풀고, 상대는 또 저한테 고맙다고 하면, 서로 복이 됩니다. 세상살이가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자원봉사하는 것은 다 복 짓는 일이에요. 법문을 듣고 나서 ‘나도 세상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해야겠다’ 하고 자원봉사를 하면 그게 복 짓는 일이 되는 거예요. ‘복 주세요’ 하는 건 구걸이에요. 그건 오히려 복을 감하는 일이에요.

이런 것처럼 불교 공부는 지금까지 우리가 배웠던 공부와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공부예요. 앞으로 인류에게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는 공부입니다. 그러니 회사 다니느라 피곤하고 힘들더라도 공부를 꾸준히 해야 합니다. 고비를 넘기면서 하셔야 돼요. 삶이 굉장히 어려운 것 같지만 관점을 조금만 달리해서 보면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에요.

토끼나 다람쥐도 알아서 잘 사는데 사람이 못 살 이유가 뭐 있어요? 못 산다면 그 이유는 빌기 때문이에요. 토끼나 다람쥐도 하나님한테 안 빌고 알아서 사는데, 사람은 자꾸 빌기 때문에 살기가 어려운 거예요. 자립이라는 게 다른 게 아니에요. 토끼나 다람쥐처럼 내 삶을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사는 것이 자립이에요. 자립이 바로 수행이에요.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수행자는 자신의 정신질환마저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괴로움이라는 병을 스스로 치유해서 괴로움이 없도록 하는 게 수행이에요.

일단 토끼만큼만 되도록 하는 것, 즉 자립하는 게 소승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토끼보다는 조금 더 나아야 되지 않겠어요? 토끼는 남한테 의지도 안 하지만 남한테 도움도 안 주잖아요.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삶을 살자는 것이 대승입니다. 소승만 해도 괜찮습니다. 소승이라고 비난할 일은 아니에요. 그러나 우리는 대승의 길을 가려고 하니까 남한테 조금 도움이 되자는 겁니다.

아내나 남편을 잘 만나서 내가 덕 좀 보려고 해야 되겠어요, 아니면 누구든 나를 만나 ‘덕 좀 봤다’ 할 수 있게 좀 베풀어야 되겠어요?”

“베풀어야 돼요.”

“자식이라면 부모가 ‘우리 아들, 딸 낳길 잘했다’ 하는 소리를 들어야 하고, 부모가 되었으면 아이들이 ‘우리 부모님 덕분에 우리가 잘 자랄 수 있었다’ 하는 소리는 들어야 하고, 아내가 되었으면 남편한테 ‘내가 마누라는 잘 만났다’ 하는 소리는 들어야 되고, 남편이 되었으면 아내로부터 ‘내가 남자 하나는 잘 만났다’ 하는 소리는 들어야 되지 않을까요? 인간관계를 맺을 때 ‘그 사람 만나서 내가 덕 좀 봤다’ 하는 소리 정도는 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먼저 자립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남을 조금 돕겠다는 마음도 내세요. 아시겠죠?”

“네!”

2시간 동안 열정을 다해 지혜를 알려준 스님에게 대중들은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럼 염불사로 이동하겠습니다. 동네 꽃 밟지 말고, 과일 따지 말고요.”

산길을 내려온 대중들은 염불사 앞에 모여 경주 남산 순례를 마무리하는 회향식을 가졌습니다. 스님은 참석한 대중들을 위해 축원을 해준 후 염불사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이 절 이름이 염불사예요. 삼국유사에 보면, 여기 한 스님이 계시면서 염불을 했는데 그 소리가 서라벌 시내까지 다 울려 퍼졌대요. 염불소리가 너무 간절하니까 그 소리를 듣는 서라벌 사람이 다 감동했던 것을 그렇게 표현했겠지요. 그렇게 간절하게 염불을 했기 때문에 여기서 기도한 사람들은 소원성취를 했다고 전해집니다. 제가 기복을 부추기는 건 아니고요. 역사에 그렇게 기록이 돼있다는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이왕 만사형통한다는 염불사에 왔으니까 스님도 빌 일이 하나 있어요. (모두 웃음)

제가 최근에 급하게 빈 건, 첫째, 한반도에 전쟁이 안 나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작년에 전쟁 위기가 고조되는 걸 보고, 하나님, 부처님, 온갖 천신을 다 불러서 빌었습니다. 둘째, 1990년 중반에 북한에서 굶어 죽는 사람들이 많다고 할 때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몰라요. 제 힘으로 살릴 수 있으면 안 빌 텐데, 제 힘으로 다 못 살리니까 좀 빌었어요.

여러분들은 기도하면서 소원을 좀 빌었습니까? 빌 게 없었죠? (모두 웃음) 굳이 빌 게 있다면 ‘로힝야 난민들이 좀 잘 살게 해 주면 좋겠다’ 하거나 ‘전쟁이 안 났으면 좋겠다’ 하고 빌어주시면 좋겠어요. 그런 문제는 사람의 힘만으로는 좀 해결하기가 어려우까요.

그런데 자녀가 결혼하는 문제는 사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잖아요. 그런 건 안 빌어도 돼요. 여러분들은 학교 시험 치는 것도 빌고, 결혼도 빌고, 사업도 빌고, 취직도 빌고 그러던데, 그 모습을 가만히 보면 저는 ‘그럼 자기네들은 뭘 하겠다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들이랑 같이 살 사람은 아들이 선택하면 되지 그게 왜 부처님한테 빌 일이예요?

우리는 먼저 자립해서 살아야 합니다. ‘상구보리(上求菩提)’는 자립하라는 얘기이고, ‘하화중생(下化衆生’)은 남의 삶에 조금 도움이 되라는 얘기예요. 그래서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 이웃과 세상에 잘 쓰이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수고해준 법사님, 스텝을 위해 다 함께 박수를 쳤습니다. 이제 막 수행의 길에 들어선 불교대학 학생들을 아끼고 독려하는 스님과 법사님, 선배 도반들의 마음이 느껴지는 하루였습니다.

염불사지 앞에는 석탑 두 개가 나란히 세워져 있는데, 그 앞에서 각 지역별로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경남지부가 오전에 제일 늦게 내려왔기 때문에 벌칙으로 제일 늦게 사진을 찍겠습니다.”

학생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경남지부 학생들은 오전에 늦게 내려와서 악수를 못하고 갔으니 남아서 악수를 하고 가라는 의미였습니다. 스님의 숨을 뜻을 알고는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경남지부 학생들과 악수를 한 후 스님은 두북 수련원으로 이동해 법사님들과 함께 늦은 밤까지 회의를 했습니다.

내일은 서울 제주, 강원 경기동부, 광주전라지부 정토불교대학 입학생들과 함께 경주 남산 순례를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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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주행

모든분 고생하셨습니다.
저도 그곳에 갔었는데 염불사 인지는 몰랐어요.ㅎ
또 가고 싶어요.^^

2018-11-03 20:03:35

수정

감사합니다~

2018-10-29 10:02:05

정지나

감사합니다~^^

2018-10-29 09: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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