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8.10.24 수행법회 생방송, 전주 농촌진흥청 초청강연, 행복한대화(12) 목포
“아들이 밥 먹고 게임만 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아침 일찍 평화재단에서 회의를 한 후, 오전에는 서초법당에서 수행법회 생방송 강의를 하고, 오후에는 전주에 있는 농촌진흥청에서 초청 강연을 한 뒤, 저녁에는 목포에서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매주 수요일 전국 정토법당에서는 수행법회가 진행됩니다. 수행법회는 정토회 회원들이 스님의 법문을 듣고 마음 나누기를 하며 수행자의 관점을 배우는 시간입니다. 지금까지 대중들은 스크린으로 스님을 만나곤 했는데, 이번달부터는 한달에 한번씩 스님이 직접 법문을 하고 전국으로 생중계를 하기로 했습니다.

“정토행자는 믿는 자, 즉 ‘신자’가 아니고, 닦는 자, 즉 ‘수행자’입니다. 이것이 정토행자의 정체성입니다. 그럼 믿는 자는 무엇이고 닦는 자는 무엇일까요?”

스님은 먼저 정토행자의 정체성은 수행자라고 강조하면서 신자와 수행자의 차이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괴로울 때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괴롭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게 도와주는 어떤 존재가 있으면 된다’ 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신자의 관점입니다.

그러나 수행자는 괴로울 때 ‘왜 괴로운가?’ 하고 살펴봅니다. 조금만 정신 차리고 보면 현실에서 내가 원하는 건 다 이루어질 수가 없어요.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해서 한국에 사는 오천만 명이 다 대통령이 될 순 없잖아요. 그런데도 ‘하나님, 부처님, 도와주세요’ 한다고 이루어지나요? 그런 능력 있는 존재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설령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이것이 모순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이루어질 수도 있고,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것이 이루어지면 다행이고,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시 하면 됩니다. 다시 해보면 되는 것이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앉아서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는 거예요. 넘어졌으면 일어나면 되지 앉아서 울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왜 괴로울까요? 내가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져야 된다는 생각에 집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왜 이런 집착이 생길까요?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이런 세상의 이치를 알게 되면 우리는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괴로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이런 이치를 알아도 나도 모르게 넘어질 수 있어요. 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앉아서 울게 되고 누군가가 손을 잡아서 일으켜 세워주기를 원합니다. 왜 그럴까요? 지금까지 살아온 어리석은 삶의 습관이 몸과 마음에 베어있기 때문입니다. 정신을 딱 차리고 벌떡 일어나면 되는데 정신을 안 차리고 있으면 원래 옛날부터 해오던 방식으로 하게 되죠.

그래서 첫째, 정신을 좀 차리고 있어야 됩니다. 멍청하게 있으면 옛날 습관대로 휩쓸려 가버립니다. 정신을 좀 차리고 있으면 옛날엔 그렇게 했지만 지금부터는 ‘어’ 하고 울려다가 금방 일어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일 중요한 것이 ‘알아차림’입니다. 지금 상태에 깨어있어야 합니다. 원리로 따지면 정신만 차리면 되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 정신을 놓으니까 알아차리는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 이렇게 연습 하는 것을 ‘닦는다’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어리석은 자는 신자의 길을 가지만 지혜로운 자는 닦는 길을 갑니다. 두 개의 길은 반대의 길이 아니에요. 닦는 길에는 믿는 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토행자는 신자보다는 한 단계 더 높은 수행자의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수행자들이 모여서 함께 하는 법회이기 때문에 ‘수행법회’라고 하는 겁니다.

각자는 행복할 수 있게 수행을 하고, 함께 힘을 모아서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도 하고, 환경을 보존하는 일도 하고, 평화를 지키는 일도 하고,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일도 하고 있는 곳이 정토회입니다.”

스님은 이 외에도 수행법회 후에는 반드시 도반들과 마음나누기를 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정토회에서는 수행법회를 일반 즉문즉설과 달리 수행자의 정체성을 더욱 강화할 수 있도록 개편해서 운영할 예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무리 바빠도 한 달에 한 번은 직접 생방송으로 수행법회를 하겠다” 고 덧붙이면서 매주 수행법회에 꼭 참석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서초법당에서 수행법회 법문을 마친 후 농촌진흥청 초청 강연을 하기 위해 곧바로 전주로 이동했습니다. 농촌진흥청 강당은 오후 3시가 되자 2층까지 관객들이 꽉 차 약 800여 명이 자리했습니다.

농촌진흥청
▲ 농촌진흥청

전주 농촌진흥청 이규성 차장님의 인사말씀에 이어서 스님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스님은 “북한에 생산량이 많은 씨감자를 공급하려는 계획이 있고, 필리핀 민다나오에서는 가난한 주민들의 자립을 위해 농업기술교육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면서 “이런 활동들이 농촌진흥청과 관련이 있기에 이번 초청에 응하게 되었다” 고 소개하면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총 8명이 질문을 했는데요. 그 중에서 게임만 하는 아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아버지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스무 살 먹은 아들 녀석이 있는데요. 아내는 서울에서 직장 다니고 있고, 저와 아들은 지방에서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밥 먹고 게임만 합니다. 밤새도록 게임만 하고 한 두시 돼서 자는데 학교는 안 빠지고 잘 갑니다. 아들과 꾸준히 무언가를 함께 하면서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 방안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아들이 하다가 포기한 목록을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탁구, 학원, 글쓰기, 음악, 미술입니다.” (청중 웃음)

“아드님이 신체적으로 건강합니까?”

“예, 건강합니다.”

“아들이 같이 살면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것을 절반 정도 분담합니까?”

“네, 빨래도 개고, 청소도 하고, 밥도 하고, 반찬도 합니다.” (청중 웃음)

“훌륭한 아드님입니다. 아드님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여러분들 고등학교 때로 돌아가서 생각해 봅니다. 10월 말 월말고사에 수학 점수를 평상시에 80점 맞다가 60점을 맞으면 그 때는 정말 속상했을 겁니다. 그런데 학교 다닐 때 시험 점수 좀 못 나온 일이 30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잖아요. 점수나 등수가 좀 변했다고 내 인생이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아예 공부를 안 하거나 완전히 죽기 살기로 한다면 차이가 좀 나겠지만 10등 15등 사이를 오르고 내린 그 정도는 사실 우리 인생에 아무런 차이가 없어요.

제가 15년 전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난민을 돕기 위해 한 3년 간 활동을 했는데, 거기서 어느날 밤에 초라한 숙소에서 침낭 깔고 잔 것과 고급호텔에서 잔 것이 그날 저녁에는 차이가 엄청나게 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아무런 차이가 안 나요. 여러분들 나이가 앞으로 80세, 90세가 되었을 때 돌아보면 50세, 60세 때 직장에서 청장을 했든 차장을 했든 과장을 했든 그게 그렇게 중요할까요? 눈 감을 때 예전 어느 날 저녁에 쌀밥 먹었나 보리밥 먹었나 그게 중요할 것 같아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청중웃음)

눈 감을 때의 관점을 일상 속에서 지닐 수 있으면 사실 사는데 특별할 일이 없어요. 매 순간 그때의 상황을 따지면 죽을 때까지 괴롭게 살아야 해요. 아빠와 아들 단 둘이 같이 살 일이 많지 않잖아요. 조금 있으면 따로 떨어져 살아야 해요. 아들의 추억 속에 아빠 얘기를 듣고 공부를 좀 더 했던 것이 기억에 더 남을까요? 어떤 일이 있어도 아빠가 자기를 이해해주고, 게임도 좀 같이 해주었던 것이 기억에 남을까요?

‘게임하느라 힘들지? 주스나 좀 먹고 해라’ 이렇게 얘기해줬던 것이 30년 지나서 아빠가 돌아가신 뒤에 무덤 앞에 앉았을 때 더 기억에 남습니다. 여러분들은 아이들을 위해서 야단친다고 하지만, 야단을 치면 아이들에게 정신적으로 거의 도움이 안 되고 상처만 남습니다. 자기 욕심과 집착으로 야단치는 거면서 마치 아이를 위해서 한다고 착각을 하는 겁니다. 이렇게 착각을 하기 때문에 인생이 고달파지는 겁니다.

부모가 해야 할 역할은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다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이가 성적 때문에 고민할 때 등을 두드려 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엄마도 네 나이 때 그런 고민을 했는데, 인생을 오래 살고 보니까 성적 좀 오르고 내리는 것은 별로 안 중요하더라. 엄마가 오늘 맛있는 거 사줄 테니 나가자. 갔다 와서 심기일전해서 다음에 잘 하면 되잖아.’ (청중 박수)

여러분들은 쓸데없는 데는 엄청나게 에너지를 쏟으며, 자기도 괴롭고, 애들한테도 상처를 주는, 바보 같은 인생을 살 때가 많습니다. 아이들을 상담해보면 대부분 상처를 부모한테 받아요. 아이들의 성격은 대부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거예요. 부모가 짜증내고 성질낸 것을 닮아서 아이들도 성질내고 짜증내는 거예요. 그런 어리석은 삶을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이가 아예 아무것도 안 하면 좀 문제이지만, 아이가 밥도 하고 빨래도 한다면 아빠가 밥도 하고 빨래도 가끔 해주고 하세요. 실제로 삶을 사는 데는 밥이나 빨래를 잘 하는 것이 중요한 거예요. 생활을 자기 책임 하에 사는 사람을 만나야 삶이 편하지,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공부를 잘하는 것은 사는데 아무 도움이 안 돼요. 같이 사는데 있어서는 요리 솜씨가 도움이 되지 잘 생긴 게 도움 되요? (청중 웃음)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생활을 하는데 자기 직분을 다 한다면, 그 아이는 훌륭한 아들이에요. 다른 것들은 좀 소소하게 못해도 괜찮아요. 게임 좀 많이 한다고 뭐가 문제가 있어요. 옛날에 제가 자랄 때는 애들이 모두 만화방에 가 있어서 엄마가 가서 멱살을 잡고 끌고 오고 난리가 났는데, 제 친구들 중에 만화방에 가서 야단맞았던 애들 모두 다 결혼하고 애들 잘 낳고 살고 있어요.

지금은 밥 먹고 살 만한 시기이기 때문에 옛날과 달라요. 너무 아이를 억압하지 마세요. 게임하는 것이 조금 심하다 싶으면 고치는 것을 도와줄 수는 있어요. ‘하지 마라!’ 이렇게 하면 잘 안 고쳐져요. 회사 가지 말고 아이와 컴퓨터 게임을 계속 같이 하는 거예요. 아이가 학교에 가려고 하면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학교 가지 마라. 아빠도 직장 안 간다. 게임 해보니 진짜 재미있네.’
‘직장 안 가면 어떻게 먹고 살아.’
‘먹고 살 것이 걱정이 되니?’
‘아빠가 직장은 갔으면 좋겠어.’

고치려면 이렇게 해야 해요. 이렇게까지 할 생각이 없으면 고치려고 해서는 안돼요. 잘못했다고 종아리 때리면 그게 다 상처가 돼요, 아이들은 ‘100을 잘못했는데 맞은 건 500이다’ 라고 생각을 해서 억울한 거예요. 그래서 옛날 분들은 애들이 잘못하면 애들 보고 회초리를 가져오라고 해서 애들에게 엄마 종아리를 때리라고 하죠.

‘엄마, 왜 그래?’
‘내가 너를 잘못 가르쳐서 네가 이렇게 되었다. 너는 미성년자니까 네 잘못은 엄마 책임이다. 그러니 엄마를 다섯 대 때려라.’

이렇게 해서 아이가 감동을 해야 변화가 오는 겁니다. 감동을 해야 변화가 오지 의식으로 결심을 한다고 해서 절대로 바뀌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자기 성질은 못 바꾸는 거 알면서 남의 것은 자꾸 바꾸려고 그래요. 그래서 예수님이 이런 말을 하신 거에요.

‘제 눈에 대들보는 못 보고, 남의 눈의 티끌만 본다.’

바꾸려면 이렇게 접근하고, 그게 어렵다면 아이를 이해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나도 좋고 아이도 스트레스를 안 받아요. 아이가 스무 살이 넘었으면 자기 인생은 자기가 살도록 해야 합니다. 제가 출가해서 절에 있을 때 어머니가 오셔서 저의 스승님께 항의하셨어요. ‘애를 고등학교라도 졸업하고 데려가야지 어떻게 학교 다니는 아이를 데려가느냐?’ 이렇게요. 그 때 어머니가 항의를 한다고 해서 제가 어머니를 따라 집에 갔으면, 저는 지금 여기에 있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자식이라 하더라도 남의 인생에 그렇게 간섭하면 안 돼요. 저는 부모의 간섭이 적었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같은 부모 만났으면 제가 오늘 이 자리에 못 서 있을 거예요.”

이 외에도 많은 질문이 있었지만, 대부분 심각한 질문보다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사례들을 질문해 함께 박수치고 웃으며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약속한 2시간이 지나고 5시가 되자 스님은 서둘러 저녁 강연이 열리는 목포로 향했습니다. 강연이 열린 전남도청 김대중강당은 7시가 되자 600여 명이 참석해 스님은 큰 박수로 맞이했습니다.

강연에 앞서 목포 지역의 행복도에 대해 조사한 결과가 발표되었는데요. 목포 지역 시민들의 가장 큰 고민은 경기 침체와 실업률이었습니다.

즉문즉설이 시작되자 총 11명이 질문했습니다. 다양한 질문들이 있어서 지루할 틈 없이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아들의 채무를 대신 해결해야 하는 일로 힘들어하는 어머니의 질문과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저는 무절제한 생활을 하는 26살 아들과 22살 며느리의 채무를 갚아주고 있는데, 깨진 독에 물 붓는 마음이어서 더 가슴이 아프고 답답합니다. 자립심을 키우지 못하게 독을 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되고요. 애들 부부와 잘 지내고 싶은데 너무나 제가 살아온 생활과는 다른 생활을 하는 것이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그 아들 하나 밖에 없는데 고등학교 때 사고를 쳐서 결혼을 일찍 시킬 수밖에 없었어요. 지금껏 그 아들 하나만 바라보고 살았는데 지금 빚이 많아요. 그런데 갚아 주면 또 사채를 쓸 것 같고, 아기도 있는데 지금 너무 걱정됩니다. 며느리도 아기를 사랑으로 키워야 되는데 항상 교육적이지 못한 말만 아기한테 하고 아기와 놀아주는 것을 못 봤어요. 그런 상태를 보니 가슴이 너무 아파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질문자는 울먹이며 질문을 마쳤습니다.

“그건 울 일이 아니에요. 아들이 사십인데 아직 결혼을 못해서 고민인 할머니가 들으면 ‘아들이 장가가서 아이까지 낳았는데 그게 뭐가 걱정이에요’ 라고 하실 거 같아요. 아무 일도 아니에요.

조선시대 때는 남자 나이 16살일 때 모두 장가를 갔었어요. 아드님은 18살에 장가를 갔으니 3살이나 늦게 간 거네요. 그건 사고도 아니고 아무 일도 아니에요. 그걸 사고라고 생각하면 안돼요.

‘우리 아들은 효자라서 일찍 장가를 갔다.’

이렇게 생각을 해야죠. 일찍 장가를 갔으니 이제 아들 장가보낼 걱정은 없잖아요. 자식이 스무 살이 넘으면 부모의 역할은 다 한 것입니다. 길가는 사람도 도와줄 판에 내가 형편이 돼서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주는 것은 자유예요. 그러나 부모의 의무는 끝난 겁니다.

아들이 어떻게 살든지 내 역할은 끝났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질문자가 자꾸 아들을 신경 쓰는 것은 스님도 어쩔 수가 없어요. 돌멩이를 들었는데 지렁이가 꾸물거리는 것을 보고 ‘지렁이가 불쌍해요’ 라고 하거나, 다람쥐가 뛰어가는 것을 보고 ‘저 작은 다람쥐가 겨울에 도토리나 제대로 먹는지 너무 불쌍해요’ 라고 걱정하는 것은 자유지만, 이런 걱정은 꼭 할 필요가 없는 거잖아요. 안 해도 되는 걱정을 지금 하고 있는 겁니다.

아이가 빚을 지든 게임을 하든 밥을 먹든지 말든지 그건 질문자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남의 가정 일에 이웃집 할머니가 간섭하는 것과 같습니다. 도와주고 싶으면 도와주세요. 그러나 지금 질문자는 안 해도 될 걱정을 하고 있다는 거에요. 마치 지렁이와 다람쥐를 걱정하듯이 하고 있기 때문에 걱정을 하고 싶으면 하라는 겁니다.

만약 ‘내가 이렇게 울고 살 필요가 없다’, ‘나도 행복하게 살아야겠다’ 싶으면 그런 걱정을 안 하면 되는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한 집에 살아요, 따로 살아요?”

“따로 살아요.”

“왜 담 넘어 남의 집을 보고 걱정하는 거예요? 살든지 헤어지든지 본인이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 헤어져도 아이를 데려 오면 안 돼요. 아이는 자기 엄마 손에서 크고 싶지 할머니 손에서 크고 싶지 않아요. 한마디로 신경 꺼라 이 말입니다.”

“네.”

“아들이기는 하지만 스무 살이 넘었기 때문에 ‘내 역할은 끝났고, 아들 집은 하나의 독립된 가정을 이룬 남의 집이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남편 분 계세요 아니면 혼자 살아요? “

“사별한지 3개월 됐어요.”

“남자가 필요하면 다른 남자를 구하세요. 내 남자 없다고 젊은 남자를 내 남자처럼 자꾸 간섭하지 말고요. 거기는 다른 여자가 있다니까요. 왜 한 남자한테 두 여자가 같이 살려고 그래요. 외로우면 새로운 남자친구를 구하지 젊은 남자한테는 신경 끄세요. (청중 웃음)

오늘 이 강의를 통해서 딱 끊어야 됩니다. 채무를 갚아주고 안 갚아주고 이런 생각도 하지 마세요. 와서 막 울고 해도 ’엄마는 내 할 일 끝났으니 너네 알아서 살아라’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아들이 죽는다고 해도 ‘그냥 살아라’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딱 이렇게 끊어야 인생이 행복해집니다. 아들 얘기에 끌려 다니면 평생 종노릇을 해야 됩니다. 본인과 상관없는 일이니까 남의 집 얘기 그만하고 딱 끊으세요. ‘아들 보고 우는 것은 지렁이 보고 우는 것과 똑같구나’ 이렇게 생각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청중 박수)

강연이 끝나고 질문했던 분에게 다가가 스님의 답변을 들은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각오는 했지만 역시나 세게 말씀하시네요. 혼나서라도 깨우칠 수 있어 다행입니다. 후련합니다. 많이 우울했었는데 오랜만에 웃었습니다.”

울음 섞인 목소리로 질문하던 때와는 완전히 다르게 환해진 얼굴입니다. 덩달아 마음이 함께 환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강연을 마친 스님은 책사인회, 봉사자와 단체 사진 촬영을 함께 한 후 밤새 길을 달려 서울로 향했습니다. 내일부터는 1박2일 동안 경주에서 평화재단 원로 분들을 모시고 가을 나들이를 다녀올 예정입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이훈희 김순자 이미라 주옥진 김윤진

전체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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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나

가을 나들이 ~~~감사합니다 꾸벅^^

2018-11-04 15:35:34

정명

“정토행자는 믿는 자, 즉 ‘신자’가 아니고, 닦는 자, 즉 ‘수행자’입니다. 이것이 정토행자의 정체성입니다. \" 감사합니다.~~^^

2018-10-28 22:50:46

이기사

정토회가 잘 되기를_()_

2018-10-27 21: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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