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8.10.26. 평화재단 원로 나들이 2일째
“한반도 평화를 위해 애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평화재단 원로 나들이 2일째를 맞아 불국사, 석굴암을 안내하고, 수운 최제우 선생의 유적지를 돌아보고 저녁에는 경주고등학교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스님은 어제 원로 분들을 대접하고 남은 반찬으로 아침을 먹었습니다. 아침을 먹은 뒤 어제 원로 분들이 묵은 호텔로 출발하였습니다. 아침 인사를 나누고 함께 버스를 타고 불국사로 출발하였습니다.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비는 오지 않고 구름만 끼어 돌아다니기에 편한 날씨였습니다.

원로님들에게 불국사는 수학여행 때나 가본 곳이었습니다. 불국사 일주문 앞에서 안내를 시작했습니다. 대부분 타 종교인들이어서 스님은 창건설화, 규모, 역사, 인도의 세계관을 반영한 설계까지 여느 때 보다 자세하게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라는 일주문을 지나, 신들이 지키고 있는 천왕문을 지났습니다.

“신들의 세계를 지나야 부처의 세계로 갈 수 있다는 구상입니다.”

오전 8시가 넘은 이른 시간이라 관광객은 적고, 깨끗이 쓸어진 흙길 위로 낙엽이 흩뿌려져 있었습니다. 청운백운교 앞 나무 아래에서 스님은 ‘구품연지’에 대한 설명을 했습니다.

“이 절을 지을 당시에는 우리가 서 있는 이 곳이 연못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연못에 연꽃을 심었다고 해요. 불교 설화에는 극락세계에서 태어날 때 연꽃 봉오리 속에서 태어난다고 나와 있습니다.

누구든지 극락에 태어나고 싶다면, 죽기 전에 10번만 간절히 기도하면 다 태어날 수 있다고 불교에서는 말합니다. 극락에 태어나기는 다 태어나는데 이 생에서 그 사람이 한 수행의 정도에 따라 달리 태어나요. 아주 맑은 정신인 사람은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넘어가듯이 즉시 극락에 태어납니다. 이것이 1품이에요. 이런 식으로 상에서 다시 상중하, 중에서 다시 상중하, 하에서 다시 상중하로 나누어 총 9등급으로 나누어 태어나는데, 이것을 ‘9품’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이곳 이름이 ‘구품 연지’입니다.

1품은 즉시, 2품은 반나절, 3품은 하루, 4품은 3일, 5품은 일주일, 6품은 3주일 만에 태어납니다. 그리고 7품이 보통 사람에 해당해요. 자기 이익을 위해 남 손해도 끼치고, 배고프면 남의 물건을 훔치기도 하는 보통 사람은 49일 만에 극락에 갑니다. 8품은 의도적으로 나쁜 짓을 한 사람이 속해요. 대표적인 것이 절에 와서 남이 보시한 돈을 빼돌린 사람입니다. 스님, 목사, 신부는 8등급에 해당될 확률이 높습니다. 신자보다 극락에 갈 확률이 떨어집니다. (모두 웃음)

8품은 극락에 가긴 가는데 지옥에 한 발 담갔다가 간다고 하고요. 9품은 극악무도한 사람입니다. 부모를 죽였거나 불상을 파괴했거나 부처의 몸에 상처를 내는,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악행을 저지른 사람이 속해요. 이 사람도 극락에 가긴 가는데 지옥에 푹 담겨졌다가 가게 됩니다. 어쨌든 8,9품도 지옥에 가기는 가야 하지만 그들도 극락에 가게 됩니다. 구품 중생이라는 말은 결국 모든 중생이라는 뜻입니다.”

쭉 설명을 듣던 목사님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극락을 가는 거예요? 이상하네.” (모두 웃음)

“아니, 목사님 혼자만 가시려고요?” (모두 웃음)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유쾌하게 웃었습니다. 스님은 청운백운교와 자하문, 정토회의 설립 아이디어를 준 축대, 연화칠보교와 안양문까지 설명하고 경내로 들어갔습니다.

“저하고 안 오시면 절에 올 일이 뭐가 있으시겠습니까?”

목사님, 주교님, 교령님께는 특별히 불교의 사물에 대해서도 설명했습니다.

사물은 네 가지 타악기로 지옥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범종, 짐승을 제도하기 위한 법고, 새와 공중을 떠도는 영혼을 제도하기 위한 운판, 물고기들을 제도하기 위한 목어입니다. 평소 자연과 동식물을 사랑하는 목사님은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오르막길을 둘러 올라 경내로 들어갔습니다. 자하문에서 청운백운교를 내려다보고 석가탑, 다보탑에 대해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경전의 내용을 구현하여 지은 탑, 정형탑과 이형탑의 차이, 석가탑에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된 사건이 눈에 보이듯 펼쳐졌습니다. 한참을 듣다 목사님이 진지하게 물어보셨습니다.

“그런데 스님,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자세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많이 있죠.”

“설명 없이 들으면 아무것도 모르고 가겠어요. 이전에 온 적도 있지만 오늘에서야 정말 왔다 갔다고 할 수 있겠네요.”

원로님들은 책이나 인터넷에서도 알 수 없었던 내용을 알게 됐다며 기뻐하였습니다. 대웅전 기단에 검은 자국은 임진왜란 때 불타면서 그을린 자국이었습니다. 설명 없이 들었다면 관심을 가지기도 어렵고, 봐도 잘 몰랐을 겁니다.

“부처는 자기가 자기를 이긴 자를 뜻합니다. 자기의 욕망과 자기의 감정을 이긴 자이기 때문에 큰 영웅, 대웅이라고 하고, 그런 부처님을 모신 곳이기 때문에 대웅전이라고 합니다.”

대웅전, 석등, 대웅전 처마, 페르시아 양식으로 지어진 기둥, 무설전, 관음전, 극락전, 비로전, 사리탑, 나한전, 극락전, 당간지주까지 스님의 설명과 함께 모든 곳을 꼼꼼히 보고 불국사를 나왔습니다.

담소를 나누며 숲길을 걸어 나와 버스를 타고 석굴암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스님은 버스 안에서도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박 목사님은 불국사에 초등학교 때 와보고 오늘 처음 오셨다고요? 그러면 오늘 본전 건졌습니다.” (웃음)

박종화 목사님은 “오래된 새길을 만난 기분”이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익숙하고 유명한 곳이지만 그 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스님은 어제 이야기한 황룡사와 경주 남산, 오늘 본 불국사에 대해 다시 비교하며 설명을 이어갑니다.

“황룡사와 불국사는 경주 남산과 많이 다릅니다. 황룡사는 왕족 사찰, 불국사는 귀족 사찰이었다고 볼 수 있는 반면, 경주 남산은 민중들의 신앙지였으니까요. 저도 젊을 때는 늘 남산을 중요시하고 민중적 신앙을 중요시했어요. 그런데 국가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황룡사와 같은 국가적 신앙도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라를 통일한다든지, 평화를 지킨다든지 하는 건 민중이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국가가 해야 할 발원도 역시 필요한 것 같아요.

지배자의 이익만을 취할 때 그 국가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 이런 측면에서 국민 행복이라는 주제에서는 민중 신앙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국가 발전이란 측면에서는 황룡사, 불국사 이런 곳도 정말 필요한 거 같아요. 다만 거대 불사나 거대 성전 같은 건 우리가 반성을 해야 될 문제겠죠. 그러나 이것도 관광이란 측면에서는 또 달리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만리장성을 축조하고 진시왕릉을 만들면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그게 다 현재 중국 관광지의 중심이잖아요. 참 역사를 어떻다고 평가하기가 쉬운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이번 나들이는 황룡사와 불국사, 남산을 통합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오후에는 통도사에 들러 안내를 해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천도교 교령님과 최상용 교수님을 배려하여 수운 최제우 선생의 유적지를 들러보기로 일정을 바꾸었습니다. 최제우 선생은 천도교의 교주이시고, 최 교수님의 직계 선조이기도 합니다.

“오후에 통도사 가는 것보다는 어제 최상용 교수님도 얘기하고 교령님도 계시고 해서 오히려 서울 올라가는 길에 최제우 선생 생가가 있는데 그곳을 잠시 방문해서 용담정도 한 번 보고 가겠습니다.

최제우 선생님은 경주 용담정에서 수도해서 깨달음을 얻었는데 여기서 법을 설하다가 잡혀서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깨닫기는 동쪽에서 깨달았는데 동쪽에서 법을 펴기가 어려워서 전라도로 가셨어요. 아마 전라도가 그때부터 진보적이었나 봐요. 법을 펴기도 하고, 숨기도 해야 해서 찾아간 곳이 바로 남원 교룡 산성 안에 있는 덕밀암이라고 하는 절입니다. 그 덕밀암에는 혜월 화상이라고 하는 아주 유명한 고승이 있었습니다. 그 고승이 머무는 은적당이라는 곳에 방이 두 개 있었는데, 하나는 고승이 쓰고, 옆에 최제우 선생이 머물도록 배려해서 거기서 천도교의 주요한 경전을 쓰셨습니다.

혜월 화상이 최제우 선생님이 천도교 동학의 교전을 쓰는데 많은 도움을 주셨기도 했고, 두 분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많은 대화를 하시기도 했습니다. 최제우 선생이 그곳을 떠나 경주에 다시 돌아왔다가 결국 체포돼서 순교를 하셨는데, 혜월 화상은 최제우 선생을 숨겨줬다는 죄목으로 정부로부터 승려직이 박탈이 됐어요. 그리고 그 절을 벗어나지 못하는 가택 연금 처벌을 받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저의 스승의 스승이신 용성 스님께서 14살에 꿈에서 부처님을 보고 덕밀암을 찾아갔다고 해요. 그래서 그 혜월 화상을 만나서 거기서 공부를 하셨습니다. 혜월 화상은 승적이 없으니까 용성 스님은 해인사로 가서 승적을 받으셨어요. 그렇지만 가르침은 혜월 화상에게서 다 받았습니다.

그래서 덕밀암 은적당은 소위 동학 개벽의 문이 열린 곳입니다. 거기서 동학이 시작되었고, 또 그곳은 용성스님이 출가한 절이기도 합니다. 또 천도교 입장에서는 교주가 은거한 곳이고, 주요 교전이 쓰여진 곳이어서 교령님과 제가 앞으로 그곳을 복원하려고 합니다.

혜월 화상의 제자가 용성 스님이고, 최제우 선생님의 손 제자가 손병희 선생이에요. 용성 스님과 손병희 선생님은 3.1 독립운동의 준비를 함께 하셨어요. 교령님과 저는 시민운동을 하면서 처음 만났지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니까 스승으로부터 그런 인연이 있었던 겁니다. 오늘 여기 계시는 분들과 함께 이제는 통일을 이뤄나가야 할 과제가 남았네요.”

역사적으로 깊은 인연이었습니다. 그리고 스님은 이번 나들이를 하게 된 이유와 함께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 분들, 원장님 이하 평화재단 지도위원 분들께서 지난 10여 년 간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많은 애를 써주셨습니다. 우리의 노력이 영향을 주었던 주지 않았든 간에 결과적으로 한반도 평화에 있어서 올해 성과가 좀 나지 않았습니까. 어르신들께서 지난 20년 전 북한동포 돕기부터 시작해 함께해 온 공로들이 모여서 오늘 이런 국가적인 기적이 일어난 거 아닌가 싶습니다.

여러분들께서 많은 애를 쓰셨고, 사모님들께서도 후원하신다고 애를 쓰셨으니까, 이쯤에서 1박 2일 좀 휴식을 하고, 또 새로운 마음으로 해야 되지 않겠느냐 해서 이런 자리가 마련됐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한결같이 함께해주신 것에 대한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자리를 마련한 거니까 전혀 부담 갖지 마시고 편안한 마음으로 함께 해주세요.

사모님들께서는 잘 모르시겠지만 저희가 모여서 무슨 저희들의 이익을 도모한 것은 하나도 없어요. 어떤 보상도 없이 전부 자원봉사로 뜻을 맞춰서 20년 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여기 계시는 분들은 제일 짧은 사람이 한 15년 되었고, 김명혁 목사님은 20년이 훨씬 넘게 함께 해주시고 계십니다.

아직 완성은 안 됐지만 그래도 전쟁 위기는 좀 극복이 됐으니까 이 사실만으로도 저희들로서는 참 기쁜 일이에요. 누구 한 명만의 공로는 아니고 여러분들이 다 함께 해주셔서 가능했습니다.”

석굴암 주차장에 차를 대고 흙길을 함께 걸었습니다. 차도 지나갈 수 있지만, 차도 걸어서 갈 정도로 아름다운 길이라고 합니다. 단풍이 들어 한층 더 아름다웠습니다.

10여 분을 걸어 석굴암 앞에 도착했습니다. 부식을 막기 위해 입장이 금지되어 유리벽을 통하여만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석굴암은 신라 선조들의 지혜로 1200여 년 동안 습기 없이 잘 조절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일제가 석굴암을 시멘트로 보수하고 석굴암 밑에 흐르는 감로수를 차단하여 내부에 습기가 차게 되었다고 합니다. 안내도 앞에서 미리 스님의 설명을 듣고 석굴암을 감상했습니다.

유리벽을 통해 본 석굴암의 모습도 대단했습니다. 사진도 찍지 못하게 하여 아쉬워하는 목사님에게 스님은 사진이라도 특별히 구해드리기로 했습니다.

맑은 날엔 바다까지 보인다는 툭 트인 전경도 감상하고 길 따라 다시 주차장으로 나왔습니다. 오가는 길에 시민들, 견학 온 어린이들이 스님에게 반갑게 인사합니다.

석굴암 산문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는데, 목사님께서 재밌는 이야기로 웃겨주겠다고 하십니다.

“시민들이 법륜 스님한테는 다 인사를 하는데 나한테는 안 해.” (모두 웃음)

목사님이 솔직하고 장난스럽게 이야기하자 모두 웃으며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석굴암까지 둘러보고 다시 두북 정토수련원으로 돌아가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어제에 이어 맛난 식사가 준비되어있습니다. 오늘도 식사 전에 목사님께서 기도를 해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3.1 운동을 일으켰던 선배님들처럼 우리의 배경과 우리의 종교까지 초월해서 나라를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 저희들이 부족하지만 평화를 이루고 통일을 이루어가길 기도드립니다.

우리의 조그마한 모임이 앞으로 3.1 운동 100주년을 맞으며 북녘 동포까지 끌어안고 서로 울 수 있는 그런 은혜까지 허락해주시고, 아시아의 선망이 되는 대한민국이 될 수 있도록 은혜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다 함께) “아멘.”

원로님들이 시골 음식을 맛보고선 “40년 만에 맛보는 음식이다.”, “5성급 호텔보다 낫다” 며 기뻐하자 스님은 “있는 솜씨, 없는 솜씨 다 냈다” 며 웃었습니다.

“두북에 내려오는 걸 정기적으로 하면 좋겠네요.”

“나도 그 얘길 하고 싶었어요.”

.

.

.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담소를 나누고 이번엔 수운 최제우 선생이 깨달음을 얻은 용담정과 생가로 향했습니다. 버스로 가는 길에 천도교 전 교령님이신 박남수 교령님과, 경주 최 씨의 후손인 최상용 교수님께 설명을 들었습니다. 교령님은 설명할 기회가 주어진 것에 기뻐하며 자세히 안내해 주셨습니다.

용담정으로 오르는 길은 울긋불긋 단풍이 우거지고, 계곡물소리가 세찼습니다. 스님이 목사님에게 또 농담을 합니다.

“예수님은 3년 만에, 최제우 선생은 4년 만에 돌아가셨는데, 우리는 너무 오래 살아 틀려먹었어요. 목사님.” (모두 웃음)

산 길을 따라 20분 정도 오르니 용담정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박남수 전 교령님이 계속해서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 선생의 일화와 사상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낮 속에 밤이 있고, 밤 속에 낮이 있습니다. 내 속에 당신이 있고, 당신 속에 내가 있습니다. 천도교에서는 모든 만물의 근원이 내 마음속에 있다고 봅니다.”

최제우 선생의 생가까지 둘러보고 이제 헤어질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저녁에 경주고등학교에서 즉문즉설 강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1박 2일의 시간이 어떠했는지 원로님들의 소감을 한 분 한 분 들어보았습니다.

“우리는 다르지만 아름답다! 3.1 운동 때 모였던 종교가 함께 한 여행, 살아있는 다른 것이 모이니 훨씬 아름답구나.”

“21세기 인류를 향한 새로운 메시지는 오늘 이 버스에서 나온 것 같아요. 이 자그마한 버스에서 우리는 종교 통합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힘이 국민 통합으로 나아가길.”

“일정을 변경하고 천도교 성지를 찾아갔는데, 아무리 똑똑한 리더도 참가자들의 마음을 읽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어요. 일정을 변경하는 법륜 스님의 모습에서 더 신뢰를...”

“이제 종교인 모임에는 절대 빠지고 싶지 않습니다.(웃음)”

“친밀하게 교제하고, 즐겁게 놀고, 한반도의 통일도 기도하고, 아주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황룡사는 전 국민이 성금을 모아서라도 복원해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하게 들었어요. 황룡사 복원이 국민의 마음을 모으고, 국력을 모으는 과정이 되길...”

“종교는 비록 다르지만 우리는 하나이구나. 우리들 마음속에는 불심도 있고, 천도교의 하눌님도 있고, 하나님의 영도 깃들어 있구나, 그래서 모두가 통할 수 있구나!”

함께 만든 사람들
김미정 이준길

전체댓글 14

0/200

정지나

모두가 같은 \"얼\"에서 우리는 평하를 위해
천천히 걸어갑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2018-11-06 03:47:15

명조

한반도 평화의 시작이 이렇게 비롯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의 발원과 수고로 이제 첫발이 내딛어진 것에 감사하며, 항상 스승님과 법, 부처님께 감사하나이다

2018-11-04 08:31:16

정명

“부처는 자기가 자기를 이긴 자를 뜻합니다. 자기의 욕망과 자기의 감정을 이긴 자이기 때문에 큰 영웅, 대웅이라고 하고, 그런 부처님을 모신 곳이기 때문에 대웅전이라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2018-10-30 20:43:51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