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8.11.22. (저녁) 행복한 대화(25) 울산
“죽어서도 남편을 만나고 싶지 않아요.”

오전에 부산 사하구에서 강연을 마치고 울산으로 달려온 스님은 저녁 7시부터 울산 시민들을 위해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강연이 열린 울산시청 대강당은 1시간 전부터 만석이 되었습니다. 첫눈이 온다는 소설(小雪) 답게 찬바람에 코끝이 맵싸했지만 강연장은 시작 전부터 1000여 명의 시민들이 뿜어내는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여분으로 마련한 500석의 시민홀까지 꽉 찼습니다. 스님은 강연에 앞서 시장님과 차담을 나눈 후, 시장님과 함께 먼저 시민홀에 들러 자리가 부족하여 영상으로 강연을 들어야 하는 시민들에게 양해를 구했습니다.

이어 대강당에 입장한 스님은 청중들과 눈인사를 나누었고, 방청객들은 스님을 보자 환호하며 큰 박수로 반겼습니다. 곧이어 시장님의 인사 말씀이 있은 후 스님이 연단에 섰습니다.

본격적으로 즉문즉설이 시작되자 총 9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 죽어서도 남편을 만나기 싫다는 마지막 질문자와 스님의 대화를 소개합니다.

남편을 죽어서도 다시 만나기 싫습니다.

질문자는 한숨을 쉬며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결혼생활 30년 동안 불행하게 살았어요. 제가 사랑하는 마음에서 사람 하나만 보고 결혼을 했는데요. 그런데 남편이 너무 줏대가 없는 거예요. 부모도 중요하지만 결혼을 하면 아내와 자식이 우선인데 남편은 그런 생각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도 저는 남편이 고부 갈등으로 괴로워할까 봐 조용히 살았는데 제 마음에 한만 쌓였습니다.

거기다 남편은 친구 좋아하고, 술도 많이 먹다 보니 애들은 잠자는 모습만 보고 출근을 하는 생활이 계속됐습니다.....”

질문자는 남편과 시어머니로부터 받은 마음의 상처를 한참 동안 이야기했습니다.

“이러다가 오늘 밤늦게까지 질문자 인생 이야기를 듣다가 시간 다 보내겠어요. 상황은 알았으니 요점만 말해보세요.”

“네 그러다가 남편과는 완전 원수가 됐어요. 그리고 남편은 술을 너무 많이 먹다가 간경화로 죽은 지 한 5년 됐습니다.”

“벌써 죽었어요?”

“네” (청중 웃음)

“옛날 얘기를 뭘 그리 오래 해요.”

“죄송합니다. 그런데 남편이 죽는 당시에 막내가 아직 어렸는데 이 사람이 애들 걱정은 안 하고 연세가 많으신 자기 아버지 걱정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다음 생이 있으면 그런 남편은 죽어도 다시는 안 만나고 싶어요. 저승에 지나가다가 봐도 아는 척도 안 하고 싶어요.

그런데 스님 법문 중에서 이생에 나쁜 인연은 전생에도 나쁜 인연이었고, 또 다음 생에도 나쁜 인연이 된다고 들었거든요. 다음 생에 남편을 만나지 않기 위해서 기도도 열심히 하고 절에도 열심히 다니고 싶어요.” (청중 박장대소)

“알았어요. 제가 남편을 다시는 만나지 않을 방법을 알려주면 그대로 하겠어요?”

“네”

“정말요?”

“내가 또 물어보는 이유는 안 할 것 같아서 그래요.” (청중 웃음)

“저뿐만 아니라 애들도 아빠에 대한 기억도 안 좋고 직장도 잘 못 다니고 있어서 애들을 위해서 108배를 하고 있거든요.”

“무슨 108배를 해서 다리 고생만 시키고 그래요. 제가 방법을 가르쳐 드릴 테니까 그대로 하겠어요?”

“네 합니다.”

“정말로요?”

“네”

악연을 푸는 법

“그러면 오늘부터 절하면서 이렇게 얘기하세요.

‘당신은 훌륭한 사람입니다. 제가 성질이 더러워서 당신 고생 많이 시켜서 당신이 이렇게 저보다 먼저 가게 됐네요. 죄송합니다. 다음 생에 만나면 제가 잘할게요.’

이렇게 기도해야 돼요. 그러면 안 만나요.”

“...”

기도문을 받은 질문자는 한숨만 내쉬었습니다.

“그것 봐요. 대답을 안 하잖아요. 이래서 제가 미리 물어본 거예요.”

“이생에 이렇게 살아온 것도 분해서 자다 가도 한 번씩 벌떡벌떡 일어나는데, 정말 죽어도 훌륭하다는 말은 못 하겠어요.”

“그러면 질문자 성질대로 하고 다음 생에 또 만나세요. 남편을 안 만나고 싶으면 이렇게 해서 인연의 끈을 풀어야 해요. 인연의 끈을 풀지 않으면 아무리 만나기 싫어도 저절로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당신은 훌륭한 분입니다. 제가 부족해서 당신 마음고생 많이 시켰습니다. 죄송합니다. 혹시 다음에 내가 당신 만나게 되면 그때는 제가 잘할게요.’ 이렇게 기도를 하면 인연의 끈이 풀려요.”

그래도 질문자는 한숨만 내쉬었습니다.

“저렇게 고집이 센데 어떡하겠어요. 그래서 제가 세 번 네 번 물어봤잖아요. 그런데 하겠다고 그러고는 안 한다고 하시네요.”

“죄송합니다.”

“마이크 쥐고 제 말 따라 해 봐요.”

‘당신은 훌륭합니다.’

“ …”

질문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다음 생에 안 만나려면 이렇게 해야 돼요.”

“다음 생에 만나면 제가 그 원수를 확 다 갚을 겁니다.” (청중 웃음)

“그러면 자식들이 잘 안됩니다. 이번에 남편 문제를 물으러 왔다가 다음에는 또 자식들 때문에 물으러 올 거예요. 마음에 한이 세게 맺혔어요. 세게 맺혔기 때문에 이렇게 세게 해야 풀립니다.”

질문자는 말없이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따라 해 봐요. 이왕에 왔는데 풀고 가야죠.”

청중들은 질문자가 용기를 낼 수 있도록 큰 박수를 쳤지만 질문자는 오열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그냥 끝내 버릴 수도 있는데, 이왕에 질문한 김에 풀고 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질문자는 눈물을 흘리며 말을 이어갔습니다.

“평생을 그 사람한테 기죽고 살았는데요.”

“그러니까 이렇게 하면 풀린다니까요. 따라 해 봐요. 그럼 오늘 빈말이라도 말로만 한 번 따라 해 봐요. 마이크 잡고 자, 한 번 해 봐요”

스님은 포기하지 않았고, 청중들도 다시 한번 큰 박수로 질문자를 응원했습니다.

“자 한 번 따라 해 봐요. 당신은 훌륭한 분입니다.”

마침내 질문자가 울먹이며 스님을 따라 했습니다.

“당신은 훌륭한 분입니다.” (청중 박수)

“제가 부족했습니다.”

“(울먹이며) 제가 부족했습니다.”

“당신 속 많이 썩였습니다.”

“당신 속 많이 썩였습니다.”

“다음 생에 만나면 제가 잘해 드릴게요.”

“다음 생에 만나면 잘하겠습니다.”

한 마디, 한 마디 다 따라한 질문자에게 청중들은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네 이렇게 기도하면 남편을 다시는 안 만나요. 한이 싹 풀어져 버려요. 그리고 애들도 좋아지고요. 알았죠.”

눈물을 철철 흘리던 질문자는 자식이 좋아진다는 말에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이제 애들은 잘 될까요?”

“잘 돼요. 문제는 이렇게 하느냐 안 하느냐가 문제예요. 이렇게 하면 훌륭한 아빠를 둔 애들이기 때문에 애들이 잘 돼요. 그런데 ‘그 인간 다음 생에 꼴도 보기도 싫다’하면 나쁜 인간의 자식들이기 때문에 씨가 안 좋아서 아이들이 잘 안 되게 돼 있어요. 그래서 제가 씨를 좀 개선해 주는 거예요.” (청중 웃음과 큰 박수)

“감사합니다.”

질문자의 얼굴에는 여전히 눈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안도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지금 제가 말하는 도리를 조금이라도 짐작이 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제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저기 한 분 있어요. (청중 웃음) 마음의 응어리를 어떻게 푸는지 이해하셨어요?”

“(청중) 네”

“그 인간은 이미 죽었는데 내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야 돼요, 안 풀어야 돼요?”

“(청중) 풀어야 돼요.”

“이 응어리를 갖고 있으면 나만 손해예요. 나쁜 인간하고 30년 살았다면 억울하죠. 그런데 좋은 인간하고 30년 살았으면 나도 괜찮아져요. 남편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괜찮은 여자가 되려면, 남편이 괜찮아야 30년 같이 살아온 나도 괜찮은 사람이잖아요. 남편이 짐승 같은 놈이면 내가 짐승 옆에 붙어서 30년 살았다는 거잖아요. 이건 나 자신을 너무 초라하게 만드는 거예요. 그리고 내 아이까지도 짐승의 자식이 되는 겁니다. 그건 우리 아이의 자존감을 없애는 거예요. 이건 바보 같은 짓이에요.”

“(청중) 네”

큰 박수와 함께 질문자는 자리에 앉았습니다. 질문자가 마음을 돌이키는 과정을 지켜보며 청중들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죽어도 남편에게 좋은 말을 못 하겠다며 차라리 원수로 만나 원한을 갚겠다는 악심에 탄식하며 안타까워 한 청중은 “괜찮아요, 해보세요, 용기를 내세요”라며 진심으로 응원해주었습니다. 그런데도 마음을 내지 못하던 질문자는 그러면 자식이 안 된다는 스님의 말씀에 한동안 눈물을 철철철 흘리다가 결국 마음을 돌이켰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질문자에게 스님의 답변을 듣고 난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답답한 마음이 해결되어 너무 상쾌합니다.”

눈물과 함께 응어리가 풀어졌는지 질문자는 정말 밝은 얼굴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 이혼에 대한 확고한 생각을 굳혔는데도 막상 이혼을 하려 하니 지난 세월에 대한 자책과 억울함으로 괴롭습니다.
  • 원자력 계통의 직장에 다니는 남동생과 어머니가 원자력 재가동 청원 글에 찬성 댓글을 부탁했는데, 저는 원전 반대 운동을 해왔기 때문에 거절했습니다. 제 소신과 어긋나는 것을 부탁하는 동생과 어머니가 밉습니다.
  • 고3 여고생인데 일대일 대화는 괜찮은데 단체로 얘기하는 것은 불편합니다. 다수 앞에서 당당하게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세요.
  • 23살 미혼모입니다. 혼자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요?
  • 19세 여고생인데요, 사주나 점을 보면 사람의 운명을 알 수 있나요?
  • 30살 아들과 따로 살고 있는데, 혹시나 아들이 고통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 괴롭습니다.
  • 이혼 후 방치된 아이들을 돕는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데, 비양육자들을 사회적으로 창피를 당하도록 했더니 비난도 따릅니다. 아이들을 위한 것인데 합법적으로만 해야 할까요?
  • 다방면에 관심이 많아서 가정에는 소홀하게 되고 아내는 불만이 많습니다. 저도 후회가 될 때가 있는데,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까요?

오늘 강연에서는 스님이 참 유머가 있으시다며 박장대소하는 분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자를 안타까워하며 탄식하고 응원하고 힘을 실어주는 청중이 많았습니다. 격려의 말로 그리고 박수로 마음을 전하기도 하였습니다. 강연장을 나가는 분에게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법륜 스님이 이렇게 재미있는 분인지 몰랐네요. 어쩜 그리 즐겁게 말씀하시며 정곡을 찌르시는지 속이 후련하고 덩달아 제 고민도 해결되었습니다.”

역시 즉문즉설은 질문자, 스님, 방청객이 하나가 될 때 감동과 재미가 더해지는 것 같습니다.

강연을 마친 스님은 봉사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한 후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두북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두북에서 잠시 눈을 붙인 후 새벽 3시에 서울로 향했습니다.

내일 서울에서는 아침 7시부터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이 있을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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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나

내 존재에 대한 나에 모습은 내가 생각하고 행하는
모습 그대로이다 그저 있는 그대로 살필 뿐
감사합니다 꾸벅^^

2018-12-15 08:48:23

규원

감사합니다. 제마음도 후련해지네요~^^

2018-12-11 10:03:12

한승희

스님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사셔서 좋은 세상 만들어주세요
항상 감사드립니다

2018-12-11 08: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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