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2.14. 정초 정회원 순회법회(9) 서울 제주
“봉사하는 것이 부담스럽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서울제주지부 정회원을 대상으로 마지막 정초 정회원 순회법회가 열렸습니다.

오전 여덟 시 반, 졸업을 앞둔 13기 행자 대학원생과 인도에서 갓 돌아온 14기 행자 대학원생, 인도 출국을 앞둔 15기 행자 대학원생이 스님과 시간을 가졌습니다.

“인도에서 여름 나려면 굉장히 더운데, 괜찮겠어요?”

스님은 먼저 출국을 앞둔 행자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처음에 가면 온갖 문제가 눈에 들어올 거예요.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과 다르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이건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내 업식 때문에 생기는 문제예요. 그렇기 때문에 첫 백일은 문제의식만 느끼지 문제를 제기하면 안 돼요. ‘내 마음이 이렇게 일어나는구나’만 보고 바깥으로 네가 문제라고 말을 하면 안 돼요. 그러나 공책에다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을 다 적어놨다가 100일쯤 지나서 메모해놓은 것을 다시 살펴보세요. 백일이 지나도 문제라고 생각되는 건 정말 개선해야 할 점이에요.”

스님은 인도에서 일과 수행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알려준 후 직접 인도에서 살고 온 행자들에게는 1년 동안 무엇을 개선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리고 13기 행자들에게 졸업 수련으로 5일간 동행하며 무엇을 느꼈는지 들어보고 질문도 받았습니다. 박은혜, 한혜련 행자는 솔직하게 느낀 점을 나누었습니다. 또 정토회에서 수행공동체 생활을 하는 것은 좋지만 연애하고 싶은 마음이 여전히 남아있어 어떻게 다스리면 좋을지 물었습니다.

중생의 길, 수행자의 길

“수행자는 자기 하나가 온전히 독립해야 합니다. 그런데 중생은 누군가에게 늘 의지해서 살아가는 존재예요. 우리가 지향하는 삶은 수행자의 삶이고, 보살의 삶이에요. 보살은 내가 남에게 의지처가 되어주는 존재예요.

그런데 공동체 내에서 연애를 하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공동체의 구성원이 같이 모여서 회의를 하면 회의하는 자세는 자기 소신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회의가 끝나면 몇몇이 따로 이야기를 하지 않아야 합니다. 필요하면 공식적으로 다시 회의를 해야 해요. 그런데 두 사람이 연애를 하면 둘만 따로 이야기를 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공동체의 구성원 중에 패가 형성되어 공동체의 공정성이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연애를 해도 승가가 유지되려면 둘이 따로 이야기를 하지 않고 둘만 뜻을 맞추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건 현실적으로 어렵지요.

그리고 자기 남자나 자기 여자에 대해 누군가 비판을 하면 내가 기분이 나빠져요. 그래서 둘이 패를 형성하게 돼요. 그러면 공동체 구성원이 될 수 없어요. 다른 사람이 보기에 좋은 일이 아니잖아요. 연애를 해도 이런 것을 벗어날 연애를 할 수준이 되느냐가 중요해요. 그렇게 되면 원칙적으로는 연애를 해도 됩니다. 그런데 제가 정토회에서 여러 경우를 지켜봤지만 그걸 벗어난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그러니 수행 중에는 연애가 수행의 장애가 되는 것이에요. 어린아이에게 칼을 가지고 놀지 말라고 하는 것은 칼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어린아이 수준에서는 칼을 가지고 있으면 그만큼 위험하기 때문이잖아요.

만약 정토회 내에서 연애를 하려면, 연애하던 상대가 오늘 나와 헤어지고 내일 다른 사람을 만나도 아무렇지도 않는 수준은 돼야 해요.

연애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걸 부정하는 게 아니라, 욕구에 끄달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그 순간에는 좋지만 나중에 보면 수행에 장애가 돼요. 제가 해외 강연을 다닐 때 호텔에서 잔다면 그 순간은 좋겠죠. 그러나 하룻밤 자는 일은 중요한 일이 아닌데 거기 끄달리면 수행자로서 내 삶에, 남의 모범이 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아요. 먹고 싶은 것을 먹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욕구에 끄달리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우리가 중생의 귀의처가 될 수 있겠어요.

수행자에 대한 법문을 5일을 들었는데도 감동이 없고 자기 관점 정리가 안됐다면 수행이 진척되기가 쉽지 않아요. ‘내 삶을 이렇게 살아야겠구나. 인생은 여러 갈래가 있지만 나는 수행자로서 이렇게 살아야겠다’는게 정립이 돼야 합니다.”

가볍게 질문을 했던 행자는 진지한 표정이 되어 법문에 집중했습니다. 법문을 다 듣고 “첫대목에 중생은 의지하는 존재라는 말씀에 철렁했어요. 내가 의지처를 찾고 있었더라고요. 의지심을 끊고 의지처가 되야겠어요.”라며 소감을 전해주었습니다.

약 한 시간 동안 행자들과 시간을 가진 후 스님은 곧바로 평화재단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1시까지는 3.1 운동 100주년 기념 토론회 준비회의가 있었습니다.

행사 장소 답사 결과, 프로그램 준비 상황, 발표문 내용 점검 등 행사 전반의 실무에 대해 평화재단 실무자들과 의논했습니다.

회의를 마친 후 간단히 점심을 먹고 다시 서울제주지부 정초 법회가 열리는 서초 법당으로 이동했습니다.

서초 법당에는 이미 도착하여 정초 법회에서 발표할 퍼포먼스를 연습하는 사람들로 북적북적하고 분주했습니다. 오후 2시가 되자 묘덕 법사님의 인사말로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마지막 정회원 정초 법회를 서울제주지부에서 하게 되어 좋습니다. 올해는 9차 천일결사의 마지막 해이기도 하니 법당의 주인이라는 마음을 내어주시고, 함께 목표를 성취하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어서 오늘 함께 자리한 법사님들과 참가자 소개가 있었습니다. 각 정토회 별 소개를 하며 선보인 퍼포먼스 가운데 노원 법당의 아기 상어 노래에 맞춘 게걸음 춤이 참석한 정회원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멀리 제주도에서 온 3분은 퍼포먼스를 하기도 전에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정회원 소개가 끝나고 스님의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은 정회원들에게 _“설은 잘 쉬었습니까?”_하고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스님은 정초에 정회원 법회를 하는 취지를 말씀하시고 정회원의 자세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정토회의 정회원은 복을 비는 신자가 아니고, 자기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서 행복으로 나아가는 수행자입니다. 왜 정회원들끼리만 모이는지, 정회원이 어떤 사람인지, 제가 매년 정초마다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잘 못 알아듣는 거 같아요. 요즘은 인도 사람하고 한국 사람하고 비슷한가 이런 생각도 합니다. 제가 인도에 가서도 30년째 같은 얘기를 하고 있거든요. (모두 웃음)

‘자꾸 나를 위해서 뭘 해 달라고 하지 말고, 마을과 학생들을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할거냐 이걸 좀 생각하고 요청해봐라.’
인도 청년들에게 항상 이렇게 얘기하거든요. 코흘리개 때부터 시작해서 자녀를 두 세 명 가진 지금까지, 말할 때 그때뿐이지 일 년 지나서 다시 만나보면 아무런 변화가 없고 똑같습니다. 그런데 한 20년이 넘어가면서 조금 변화가 왔어요. 요즘은 회의할 때 물어보면 ‘유치원생을 위해서 뭐가 필요합니다’, ‘초등학생을 위해서 뭐가 필요합니다’, ‘병원을 위해서 뭐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건의를 조금 해요. 예전에는 그런 것들을 말하라고 해도 ‘나한테 뭐가 필요합니다’ 늘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인도 사람들도 20년 이상 똑같은 얘기를 하니까 변화가 왔어요.

물론 한국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뭐가 필요하다는 얘기는 거의 안 해요. 정토회 회원만 하더라도 보시를 했으면 했지 뭘 달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복을 비는 것은 아직 끝이 안 나는 것 같아요. 정회원은 어떤 사람인지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얘기를 한 것 같은데도 그렇습니다. 매년 정초마다 전국을 다니며 얘기한 게 올해로 9번째입니다. 그래도 질문하는 것을 보면, 언제 그런 법문을 들었는지 전혀 기억이 없는 것 같아요. ‘법당 운영에 대해서나 정회원 모임에 대해서 개선할 것이 있으면 제안하세요’ 이렇게 얘기해도, 손을 들고 묻는 것은 남편이 어쩌고, 애들이 어쩌고, 하는 얘기들이에요.” (모두 웃음)

스님은 계속 법문을 이어갔습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괴로운 것은 능력보다 욕망이 크기 때문이며, 종교가 발생하게 된 계기와 부처님이 출가하고 깨달음을 얻는 과정까지 실감 나게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수행공동체인 정토회를 잘 가꾸기 위해 청정하고 화합해야 할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한 시간여 동안 정회원들에게 수행자로서의 관점을 잡아준 후 스님은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총 4분이 질문할 수 있었습니다.

  • 경전반 담당입니다. 학생들과 마음이 잘 맞아 수업이 끝나고 독서모임을 시작했습니다. 법당에서 우려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불교대학 개편 후 나누기할 때 주제가 제한되어 진솔한 고민을 듣기 어렵습니다.
  • 시내에 있는 법당을 운영하니, 여러 단위에서 공간을 많이 사용합니다. 운영비 지출이 많은데 사용료를 받아도 될까요?
  • 이제 정회원 모집을 공개적으로 광고해야 하지 않을까요?

답답한 표정으로 질문을 시작한 질문자들은 시간이 갈수록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스님은 법회를 마무리하며 서울제주지부의 정초 법회 참여율이 낮은 것을 짚으며, 수행자로서 의무와 책임을 다할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법회를 마치고 서울제주지부 사무국장 김경례 님의 인사말이 있었습니다. “저는 정토회에 들어와서 운명을 바꾼 사람입니다. 마음이 가난했는데 마음이 부자가 되었습니다.”라며 얼마 전 아들의 결혼에 문제가 생겨도 마음이 편안했던 경험을 생생히 이야기하며 다른 사람에게도 이런 불법의 인연을 맺어주자고 하였습니다.

새해인사로 스님에게 삼배를 드리려고 하니, 스님은 “아이고, 인사를 얼마나 받는지 모른다.”며 벌떡 일어나 대중들은 앉은 채로 삼배를 했습니다. 각 정토회 별로 단체 촬영을 끝내고 모두 둥글게 서서 손을 잡고 지난 1년간 열심히 활동한 영상을 보면서 함께 노래 불렀습니다. 수행자에게 가장 큰 재산은 수행자로서 관점을 잡는 것일 겁니다. 한 해 재산을 두둑히 마련한 대중들은 손에는 서초 법당에서 마련한 떡을 쥐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법당은 다시 저녁 법회를 준비하는 봉사자들로 분주했습니다. 청소를 하고 가지런히 방석을 깔았습니다.

저녁 7시 30분, 200여 명이 법당을 가득 메운 가운데 먼저 서울제주지부를 담당하는 법사님을 소개하고 이어 각 정토회 별 퍼포먼스를 시작했습니다. 공동체 실무자들의 '보약 같은 공동체'라는 흥겨운 노래와 춤을 시작으로 최근 인기 드라마 스카이캐슬을 패러디한 서울정토회의 정토 캐슬 퍼포먼스까지 재치 있는 발표로 유쾌했는데요. “정회원 1등급을 만들기 위해 저를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하는 대사는 많은 재미와 웃음을 선사했습니다.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의 법문은 더욱 유쾌했습니다. 지난 8일간 정초 법회에서 있었던 사례와 함께 스님은 수행자로서 당당하고 겸손하되, 자신과 도반을 아끼라고 거듭 강조하였습니다. 수행자에 대한 자세한 법문 후 총 4명이 스님에게 질문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중 정회원들이 봉사를 하지 않으려고 해서 고민이라는 분의 질문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정토회에 많은 분들이 봉사를 하고 있지만, 뭔가 책임을 맡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내가 오고 싶을 때 온다’ 이렇게 생각해서 일일 봉사자는 많지만, 책임감을 갖고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봉사는 잘 안 맡으려고 합니다. 저만 보면 봉사를 시킬까 봐 도망가기도 하고요. 저는 ‘정회원이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데, 회원들은 ‘나는 그런 거 못한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겠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정회원은 한 달에 아홉 시간만 봉사하면 된다’라는 이야기 말고, 정회원들이 좀 더 지속성 있게 책임감을 갖고 역할을 맡을 수 있도록 수행적 관점에서 말씀 부탁드립니다.”

“부처님은 출가하시기 전에 세속에 있을 때는 여러 시종을 두고 사셨습니다. 말을 전문적으로 관리해주는 마부도 있었고, 잠잘 때 이불 깔아주는 하인도 있었고, 종류별로 시종을 두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수행자가 되고 나서는 그런 사람을 두지 않고 사셨습니다. 당시 사회는 계급 차별이 있는 신분사회였지만, 부처님은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아난존자가 시봉을 했지만 하인으로서 한 게 아니고, 수행자로서 시봉을 했습니다. 같은 수행자로서 나이 든 사람을 옆에서 도운 겁니다.

계급 차별을 당연하게 여겼던 당시, 부처님께서는 사회제도를 초월해 있었습니다. 당시에 부처님께서 여자를 차별했다거나, 천민을 차별했다거나, 종을 데리고 살았다는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부처님을 정말 존경하는 겁니다.

신분 사회였던 신라시대에는 절이 지어지면 왕이 두 가지를 줬습니다. 하나는 땅이고, 하나는 종입니다. 수행자들이 나무 밑에서 살거나 자기들이 밥을 해 먹고 산 게 아닙니다. 사찰에 종이 얼마나 많았으면 사노가 있었겠어요. 그 사람들이 밥하고 청소해주면, 스님들은 떡 앉아서 참선하고 경전 공부하고 그랬습니다. 부처님 당시 기준으로 보면 수행자가 아니었던 겁니다. 오늘날 대학에서 박사 학위 딴 사람들처럼 학자였던 겁니다.

신라시대나 고려시대의 스님들은 학자로서는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러나 아무리 유명한 의상조사나 자장율사라 하더라도 수행자로서 스스로 자립해서 살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알지 못해서 그렇지 수행자의 길을 걸었던 사람들이 많이 있겠죠. 신분사회에서도 수행자의 길을 걸었다고 볼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원효대사입니다. 원효대사는 비록 불사음계를 어겼다는 측면이 있지만, 자기 삶을 자기가 자립해서 살았습니다. 노비를 두고 기존 절에서 기득권을 누리며 산 건 아니에요. 그런데 원효대사도 젊을 때 학문을 공부하고 이름을 날릴 때는 그렇게 살았어요.

조선 시대에 와서는 승려들이 좀 수행자다운 면모가 생겼어요. 정부가 강제로 탄압을 하고 신분을 노비로 전락을 시키는 바람에 자기 밑에 시종을 둘 수 없게 만들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승려들이 거꾸로 누구 밑에 살게 됐습니다. 이렇게 500년을 탄압했기 때문에 삶의 모습으로 볼 때는 오히려 수행자의 모습을 갖게 됐습니다.

그러면 봉건제 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바뀐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그때는 신분에 의해서 노동을 제공했다면, 지금은 자본에 의해서 노동을 제공합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다 돈을 받고 일하잖습니까. 옛날 같으면 종이라고 정해진 신분 때문에 노동을 제공했다면, 지금은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돈 때문에 노동을 제공합니다. 제가 만약에 운전기사나 공양주를 고용했다면,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저를 훌륭한 스님이다 뭐다 불러도 그 공양주 입장에서는 제가 사장이 됩니다. 운전기사 입장에서는 제가 사장입니다. 가게 주인하고 똑같습니다.

그러면 자본주의 사회는 영원할까요? 신분사회, 봉건사회가 영원하지 않듯이 자본주의 사회도 영원하지 않겠지요. 세월이 흘러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사회에서 오늘을 돌아본다면, 지금 사회에서 수행자라 불렸던 사람들은 다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갇혀 산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수행공동체 정토회를 지향하기 때문에 그런 자본주의 시스템을 안 받아들이고 지금 수행자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 거예요. 자본주의 안에 있으면서 자본주의 시스템에 물들지 않고 살려고 하다 보니 좀 비효율적이긴 합니다. 그러나 그건 현재 사회 시스템 입장에서 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을 수행자들의 모임으로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여러분들과 같은 수행자들이 여기 와서 봉사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달리 길이 없어요. 여러분들이 봉사하기 싫다고 하시면 그냥 노동자를 고용해서 일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면 수행공동체는 포기하고 종교 집단으로 가야 됩니다. 그럼 여러분들은 승보의 자격이 없어요. 수행자라는 이름을 붙이면 안 됩니다. 삶을 그렇게 안 사는데 어떻게 수행자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까.

부처님 당시에는 수행공동체 안에 들어오면 모두가 평등했습니다. 그 사람이 브라만이든, 크샤트리아든, 수드라든, 계급에 관계없이 평등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세상에는 4개의 강이 있지만 바다에 가면 하나가 되듯이, 밖에서는 4개의 계급이 있지만 내 법 안에서는 하나다.’

여러분들이 밖에서는 사장이든지 회장이든지 종업원이든지 점원이든지 하겠지만, 그건 바깥세상 얘기이고, 수행공동체 안에 딱 들어오면 이 안에 있는 동안에는 다 평등한 수행자예요. 만약 어떤 사람이 정토회 회원이 아닌데 운전기사 역할로 자기 회사의 사장을 따라와서 법당 뒤에 앉아 있다가 사장의 신발을 내주면서 따라다닌다면, 그 사장은 정토회 회원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회사에서 그렇게 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이 문 안에 들어오면 그런 직위에 따른 대우는 없습니다. 그래야 수행자입니다.

봉사를 하지 않는 수행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봉사를 하지 않는 정토회 회원이 되겠다’ 이 생각은 잘못된 겁니다. ‘스님, 그러다 사람 다 떨어지면 어떻게 해요’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할 수 없습니다. 봉사를 안 하겠다는 사람은 정토회에서는 그냥 일반 회원으로 있든지, 아니면 다른 절로 가시면 됩니다. 수행자가 많으면 좋지만, 숫자를 늘리는 것이 우리의 목적은 아닙니다.”

이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죽고 싶어 하는 친구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 젊은 나이에 공동체에 사는 것이 쉽지 않고 하는 일도 사무실에서 행정 지원하는 일을 하니 답답합니다.
  • 3년간 행자 교육을 받으며 몇 가지 개선했으면 좋겠습니다. 정근과 희사를 3번 반복하는 것은 시간낭비인 것 같습니다. 법복을 입고 벗는 것이 불편한데 개선하면 좋겠습니다. 두북 어르신 잔치는 왜 두북 인근 마을 어르신들만 대상으로 하나요?

마지막으로 법문에 핵심에 대해서 다시 한번 짚어주었습니다.

“여러분들, 이번 법문의 핵심은 뭐라고요?

‘나는 수행자다. 나는 소중한 사람이다. 우리 도반은 소중한 사람이다’.

이걸 꼭 명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정토회가 잘 운영되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스님만 믿고 있으면 안 됩니다. 수행공동체인 정토회가 오래 유지되도록 우리 모두가 다 아끼고 사랑해야 됩니다. 아끼고 사랑한다는 건 함께 가꾸어 나가는 겁니다. 문제가 있다면 지적을 해서 해명을 듣고, 의혹이 있으면 문제를 제기해서 의혹을 풀고, 이렇게 해나가야 됩니다. 지난번 문경에서 어떤 젊은 행자님이 저한테 이런 문제 제기를 했어요.

‘사과를 씻고 있었는데, 어떤 분이 와서 좀 괜찮은 사과만 골라서 ‘이건 스님 드려야 된다’라고 몇 개 빼가는 바람에 나머지 사과들을 행자들이 먹었습니다. 좋은 것은 스님을 주고, 우리는 나머지를 먹게 하는 것은 평등해야 한다는 스님의 가르침에 안 맞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이렇게 답변을 했습니다

‘행자님의 말이 맞습니다. 그런데 스님이 그렇게 하라고 시켰으면 문제이지만, 자기들이 뭘 씻다가 ‘이건 스님 드려야지’ 하고 빼는 것은 좀 다르게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것이 정말 불평등일까요?’

그러나 우리는 이런 문제 제기를 계속 받아야 되고, 해야 됩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연령이나 남녀나 이런 관습에 젖어서 불평등에 무감각하게 보냈기 때문에, 늘 문제 제기를 받아들이는 자세로 살아야 됩니다. 어른들이 볼 때는 ‘애들이 버릇없이 무슨 그런 문제 제기를 하느냐’ 얘기할지 모르지만, 젊은 사람 눈에는 이런 것들이 다 문제로 보이는 거예요.

우리는 수행자이기 때문에 조금 더 조심해서 살아야 됩니다. 부처님의 위대함은 나무 밑에서 자고, 버려진 옷을 주워 입고, 걸식을 하고 사셨으니까 이런 문제제기를 받지 않으셨어요.”

질문하겠다고 손을 든 사람들이 모두 질문하고 나니 11시가 가까워져 있었습니다. 스님은 가장 먼 지역부터 사진 촬영을 하도록 했습니다. 13기 행자 대학원생들은 오늘로서 졸업 수련을 마치며 스님에게 인사를 드렸습니다. 스님은 부지런히 정진할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법회를 마치고 몇 분에게 소감을 물어봤더니 “수행자로서의 마음가짐을 다질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좋았다”며 밝게 웃습니다. 늦은 밤, 몸은 고되도 마음은 충만해진 시간이었습니다. 이로써 2019년 정초 정회원 순회법회가 끝이 났습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전체댓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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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데오

“수행자로서의 마음가짐을 다질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좋았다” 감사합니다.~~^^

2020-02-08 19:29:22

이지은

의지처를 찾고있구나. 정신이 번쩍듭니다.
관점을 놓쳤구나.
감사합니다.

2019-02-17 23:21:40

무지랭이

정토회가 온누리에 뿌리를 잘내리기를 기원합니다_()_

2019-02-17 18:5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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