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2.15 정토불교대학생 격려 법문 촬영, 전국 법사단 회의, 결사행자 회의
“좌절하고 절망하는 사람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에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오전에 평화재단에서 회의를 하고 이비인후과를 다녀온 후 불교대학 중감점검 촬영을 하고 오후부터는 법사단 회의와 결사 행자 회의를 하였습니다.

스님은 어제를 마지막으로 8일간 매일 전국 8개 도시를 돌며 정초 정회원 법회를 마쳤습니다. 8일간의 강행군을 마치니 오늘 아침 목이 붓고 눈이 잘 떠지지 않았습니다. 눈발이 흩날리는 이른 아침, 평화재단에서 회의를 마치고 이비인후과를 찾았습니다.

이비인후과에서 치료를 받고 다시 서초정토법당으로 와서 작년 가을 입학한 불교대학생을 위한 법문을 촬영했습니다.

학생들은 4과목 중 '실천적 불교사상'과 '부처님의 일생' 2과목을 마친 상태입니다. 스님은 불교대학 중간 과정에 이른 학생들에게 수행을 어떻게 연습하는지 다시 한번 알려주고, 현재 어떻게 공부하고 있는지 돌아보고 앞으로 수행을 열심히 하도록 독려했습니다.

“불교에 대해 지식적으로는 아직 잘 몰라도, 불교대학 입학한 후 내가 좀 더 행복하고 자유로워졌다고 느끼신다면 불교대학 공부를 잘하신 거예요. 교리에 대해서 아는 게 많아졌다고 하더라도, 6개월 동안 괴로움이 소멸되는 데 진척이 별로 없었거나 입학할 때와 마찬가지라면 학습 효과가 없는 거예요. 이런 기준으로 지난 6개월 동안의 불교대학 공부를 평가해야 합니다.

불교대학에 입학한 후 얼마나 더 자유롭고 행복해졌는가

왜냐하면 정토불교대학은 ‘어떻게 하면 우리가 괴로운 삶에서 벗어나서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괴로워하는 중생을 괴로움이 없는 부처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새로 개편된 불교대학 교과과정에서는 예전보다 법문 시간이 줄고, 여러분들이 실제로 경험하고 체험하는 시간이 많도록 배정되었습니다.

첫째, 법문을 듣고 나서 무엇을 느꼈는지 마음 나누기를 하는 시간이 있죠. 여러분들의 소감을 들어보면, 마음 나누기가 제일 좋았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마음 나누기 때문에 제일 힘들다는 의견도 그만큼 많습니다. 마음 나누기를 두고 정반대의 의견을 보여요. 아무리 좋은 법문이라도 나한테 다가올 때는 지식으로 다가옵니다. 부처님이 그랬다, 누가 그랬다, 이런 얘기들은 내 문제가 아니에요. 그래서 법문을 자기화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마음 나누기를 하는 거예요. 법문을 들으면서 내 마음은 어땠는지 살핌으로 인해 지식으로써의 법문이 아니라 내 마음을 움직이는 법문이 되는 겁니다.

둘째, 수행이 단박에 되면 우리가 수행을 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수행을 한다는 건 지금 안 된다는 뜻이에요. 어떤 일을 할 때 잘 안 되니까 연습을 하는 거 아니에요? 되면 뭣 때문에 연습을 하겠어요. 그러니 안 된다고 낙담할 필요가 없어요. 안 되니까 연습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 안 된다고 항상 안 되느냐? 아닙니다. 가끔 될 때가 있어요. 가끔 되는 걸 보고 ‘아, 되네’ 하면서 나가는 거예요. 그러면 이제 되니까 그만둬야 할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아직은 안 될 때가 더 많기 때문에 우리는 꾸준히 연습을 해나가야 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여러분들의 삶이 조금씩 바뀌어 나갑니다.

여러분들은 ‘6개월 지났는데 아직은 모르겠어요’라고 하시겠죠. 보통은 수행을 꾸준히 하면 100일쯤 지나면 자기가 자기 모습을 알 수 있어요.

‘나는 이럴 때 짜증을 많이 내는구나’

‘나는 말할 때 감정을 싣고 얘기하는구나’

‘나는 의사 표현을 못하고 속으로만 꿍해서 있구나’

이렇게 자기 상태가 점검이 돼요. 여러분들이 공부를 한 지 6개월 됐기 때문에, 게으르지 않고 꾸준히 했다면 대부분 ‘내 모습이 이렇구나’ 하고 발견했을 거예요. 나의 업식, 나의 까르마, 나의 감정, 나의 마음, 이런 내면적인 습관들을 내가 알아가는 것이 수행입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나에 대해서 잘 알아요. 주변에서는 ‘저 인간 성질 더러워’, ‘저 인간 욕심 많아’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데, 정작 본인한테 물어보면 ‘내가 왜?’, ‘내가 어떤데?’, ‘내가 뭐가 욕심이 많아?’ 이럴 정도로 본인만 모르고 있어요. 이렇게 남은 다 아는데 자기만 모르는 사람이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에요.

내가 나를 알 때 일어나는 좋은 과보

그런데 꾸준히 정진하면 ‘아, 내가 욕심이 많구나’, ‘내가 주장이 강하구나’, ‘내가 짜증이 많구나’, ‘내가 좀 냉정하구나’ 이런 걸 알게 됩니다. 내가 나를 잘 알고 있으면, 남들이 나보고 ‘너 욕심 많다’ 이렇게 얘기해도 ‘그래. 내가 욕심이 좀 있지’라고 할 수 있게 됩니다. ‘너는 자기주장이 강해’ 이렇게 말해도 ‘그래, 내가 나를 봐도 자기주장이 좀 있는 것 같아’라고 할 수 있게 돼요. 그러면 욕심이 있고 주장이 있고 짜증이 있는 상태에서도 남들과 크게 갈등하지 않고 살 수 있어요. 왜냐하면 문제를 제기하면 수긍을 해버리니까요. 이것이 내가 나를 알 때 일어나는 좋은 과보입니다.

여기서 조금 더 정진해 나가면 상대방이 어떤 얘기를 해도 짜증이 안 일어날 수 있습니다. 어떤 얘기를 할 때 내가 짜증이 난다는 것을 미리 알기 때문에 그 얘기를 할 때 딱 깨어있을 수가 있어요. 그러면 짜증이 안 일어나게 됩니다. 예전에는 누가 신경질을 내면 나도 화를 벌컥 냈는데, 부처님처럼 상대방의 짜증을 보고 ‘저 사람이 힘들구나’ 할 수 있기 때문에 화가 안 나고 위로하는 말이 나오게 됩니다.

그런 경지로 나아가면 다른 사람들이 나보고 ‘너는 어떻게 화를 안 내느냐?’라고 묻습니다.

‘나도 화가 나긴 해.’

‘아니, 화 안 내던데.’

‘나도 화가 나는데, 알아차리고 안 낼 때가 있어서 그렇게 보이는 거야. 나도 화가 나.’

이렇게 말하면 ‘너 참 겸손하다’ 이런 말까지 듣게 되는 거예요. (모두 웃음) 내 속에 어떤 감정이 일어나지만 내가 그걸 미리 알아차리고 제어하는 거예요. 아직 내가 칭찬받을 수준이 안 된다는 걸 스스로 잘 알기 때문에 사실대로 말하는 건데 남들은 겸손하다고 칭찬하는 겁니다.

그런데 남들이 다 아는 내 모습을 나만 모르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런 사람들을 ‘범부 중생’이라고 합니다. 남이 아는 만큼 나도 나를 아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런 사람들을 ‘현인’이라고 합니다. 남들은 나를 모르는데 나는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런 사람들을 ‘성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나 자신을 알아가면 점점 성인의 경지로 나아가게 되는 거예요.

법문을 자기화하는 과정이 꼭 필요합니다

법문만 듣는다고 수행이 되는 게 아닙니다. 도반들과 마음 나누기를 해서 알아차림을 자기화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 정도만 해도 훌륭하지만, 더 나아가 집과 회사에서 계속 연습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러면 알아차림의 자기화 과정이 훨씬 깊어집니다.

자기화하는 과정이 잘 되었는지 알려면, 도반들과 마음 나누기를 해보면 돼요. 어떤 도반은 불교대학 시간에 배운 걸 실생활에서 굉장히 연습을 많이 해서 확 변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어떤 도반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아무런 변화가 없기도 해요. 꾸준히 자기의 마음을 알아차리면 스스로에게 변화가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나에게 변화가 일어나서 열 번 중에 한두 번만 짜증을 안 낸다면, 아직 남들이 나의 변화를 몰라봅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여덟 번은 짜증을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열 번 짜증을 내나, 지금 여덟 번 짜증을 내나 남들은 눈치채지 못합니다. 그래서 ‘절에 다녀도 성질머리는 똑같다’ 이런 소리를 듣게 돼요. 그런 와중에도 꾸준히 정진하면 가끔은 내가 나를 알아차리고 경계에 팔리지 않는 나를 발견하게 돼요. 이렇게 꾸준히 연습하면, 열 번 내던 짜증을 다섯 번쯤 내게 되고, 결국에는 짜증을 안 내게 되는 거예요. 이 정도 수준이 되면 ‘너 요새 짜증이 좀 줄었다’ 이런 얘기를 들을 정도로 남들도 나의 변화를 알아보게 됩니다. 이렇게 되려면 3년 정도의 연습 기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처럼 이렇게 매일 연습하면서 불교대학을 다니면, 1년만 해도 변화가 일어날 수 있어요. 이 좋은 공부를 왜 안 하려고 해요?

돈 버는 것은 아무리 해봐야 나를 행복하게 하지 않습니다. 설령 돈을 벌어서 기분이 좋았다고 하지만 지내놓고 보면 그건 잠시예요. 그러나 이 수행은 자기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기 때문에 자꾸 연습하게 되면 설령 아이가 시험에 떨어졌다 해도 그 순간 좀 안 좋을 뿐 금방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어요. 병원에서 암이라는 진단이 나와도 빙긋이 웃을 수 있어요. 상황이 어떻게 되든 거기에 끌려가지 않는 사람으로 점점 변하게 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그러면 내가 괴로울 일이 없을 것이다.’

이게 중생심이에요. 비유하자면, 이 방에 세균이 하나도 없는 무균 상태를 만듦으로 해서 내가 건강하게 사는 방식을 추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이 방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만 실현 가능합니다. 밖에 나가면 바로 병이 들어요. 세균도 있고 미생물도 있고 바이러스도 있지만, 내가 면역력이 있어서 병에 걸리지 않는 상태, 이게 진정한 건강입니다.

그러면 진정한 행복은 어떤 걸까요? 이 사람은 욕을 하고, 저 사람은 짜증을 내고, 또 다른 사람은 욕심을 내고, 이런 사람들 속에서도 내가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웃으면서 봐낼 수 있는 것이에요. 또 필요하면 그런 사람들을 변화시키기도 하는 게 진정한 자유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어야 한다는 집착 때문에 괴롭다

아무도 나를 비난 안 하고, 내 칭찬만 하고, 내가 말하면 사람들이 다 따라주고, 남편도 말썽 안 피우고, 아이도 말썽 안 피우고, 돈도 잘 벌리고, 그래서 요즘 내가 행복하다면, 무균 상태의 병동에서 살고 있는 환자와 같은 겁니다. 그건 진정한 행복이 아니에요. 이런저런 일이 있더라도 웃으면서 살아갈 수 있어야 진짜 행복한 거예요.

운전하는 사람이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혼자 주차하고, 혼자 주행하고, 혼자 좌회전을 하고, 혼자 우회전을 하는 게 운전을 잘하는 게 아니잖아요. 앞에 가던 차가 급정거를 하고, 다른 차가 끼어 들어오기도 하는 상황 속에서도 차를 잘 몰아야 그게 진짜 운전을 잘하는 거잖아요. 그것처럼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유로워지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수행을 하는 겁니다.

물론 아이들이 내 말을 잘 듣고, 공부도 잘하고, 남편도 착실하다면 정말 좋겠죠. 그게 좋은 줄 나도 알고 너도 알고 다 알아요. 그런데 이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괴롭게 살 수밖에 없어요.

‘이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면 좋지만, 원래 될 수가 없는 거야. 그래서 되는 것도 있고, 안 되는 것도 있는 거야. 안 되면 또 도전하면 돼. 그래도 안 되면 포기하면 돼.’

관점을 이렇게 가지고 있으면 안 됐을 때 괴롭지가 않습니다. 다시 도전하고 싶다면 ‘지난번에 이런 방식으로 해서 안 됐으니 이번에는 이렇게 해보자’ 이렇게 연구해서 다시 하면 됩니다. ‘뭐, 굳이 그거 안 해도 돼’ 하는 생각이 들면 그만하면 되는 거예요.

내가 원하는 대로 되어야 한다고 집착하기 때문에 안 됐을 때 괴로움이 생기는 겁니다. 안 됐기 때문에 괴로움이 생기는 게 아니라 집착을 하고 있기 때문에 괴로움이 생기는 거예요. 집착하지 않으면 안 돼도 괴롭지 않습니다. 안 됐으면 연구해서 다시 하면 되죠. 그래도 안 되면 그만두면 되죠. 집착을 놓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안 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집착을 놓았기 때문에 괴로움이 없고, 괴로움이 없기 때문에 여러 번 도전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죠? 그러면 연습을 해야 돼요. 피아노를 잘 치고 싶으면 피아노 치는 연습을 해야 되고, 공을 잘 차고 싶으면 공 차는 연습을 해야 되고, 높은 산에 올라서 멀리 보려면 다리가 아파도 산을 올라가야 되는 거예요. 그런 노력을 안 하고 결과만 있기를 원한다면 그게 바로 욕심입니다. 내가 어떤 것을 원하면 그것을 얻기 위해 노력을 하면 돼요.

좌절하고 절망하는 사람은 욕심이 많은 사람

그런데 중생은 노력은 안 하고 자꾸 결과만 얻으려고 해요. 이런 어리석음을 경전에서는 ‘1층 없는 3층 집을 원한다’ 이렇게 비유하고 있어요. 어떤 장자가 길을 가다가 3층 누각을 봤어요. 3층 누각에 올라가 보니 전망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집에 와서 사람들에게 3층 누각을 지을 수 있느냐고 물어봤어요. 지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3층 누각을 짓기로 하고 얼마 지나서 어떻게 됐나 싶어 공사 현장에 갔더니 1층을 짓고 있어요. 그러자 대뜸 ‘3층을 원했는데 왜 1층을 짓느냐?’ 나무랐습니다. 일을 하던 인부가 ‘1층을 지어야 3층을 짓죠’라고 하니 ‘무슨 소리냐? 내가 언제 1층, 2층 지어달라 그랬냐? 3층 지어달라 그랬지’라고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1층을 짓고 2층을 지어야 3층이 있죠. 1, 2층 없는 3층은 없잖아요. 산을 한 발 한 발 올라가야 정상에 올라갈 수 있죠. 올라가는 과정이 없이 곧바로 정상에 갈 수가 없는 거잖아요. 그것처럼 이런 수행 없이 해탈과 열반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러니 어렵더라도 꾸준히 수행을 해야 되는 거예요.

‘100일만 지나면 내 모습을 내가 안다고 했는데, 왜 나는 100일이 지났는데 내 모습을 모르지?’

이런 생각이 든다면, 과정은 무시하고 결과만 바라고 있기 때문이에요. 좌절하고 절망하고 포기하는 사람은 욕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이럴 때는 뒤를 돌아봐야 됩니다. 뒤를 돌아보면, 출발할 때에 비해서 그래도 많이 왔습니다.

‘예전에는 열 번이면 열 번 다 짜증을 냈는데, 요즘은 한두 번 짜증을 안 내기도 하는구나. 아, 변화가 가능하구나. 나도 될 때가 있네!’

좌절한 사람은 이렇게 뒤를 돌아보면서 다시 자기를 긍정해야 됩니다.

좌절하는 사람은 뒤를 보세요

또 어떤 사람은 수행이 좀 된다고 ‘이제 안 해도 되겠다. 이만하면 됐지 내가 스님이 가?’ 이렇게 생각하고 안주합니다. 안주하는 사람은 앞을 봐야 돼요. 열 번 중 한 번 됐다고 좋아할 게 아니라 ‘아직 아홉 번은 안 되지 않느냐. 꾸준히 연습을 더 해보자’라고 마음을 먹고 부지런히 정진을 해야 합니다.

안주하는 사람은 앞을 보세요

포기한 사람에게는 다시 격려를 하기 위해서, 안주하는 사람에게는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도록 하기 위해서 오늘 이렇게 법문을 합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아직은 멀어요. 그러니 꾸준히 정진해나갔으면 합니다. 우선 불교대학만 하더라도 앞으로 6개월이 더 남았습니다. 6개월 동안 정진을 꾸준히 하시면, 불교대학을 졸업할 때 지금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겁니다. 가족들에게서 ‘당신, 참 정토불교대학에 잘 갔다. 시간 투자한 만큼 효과가 있네’ 이런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겁니다.

지금 시기가 여러분들이 포기하거나 안주할 만한 때예요. 안주하는 사람에게는 ‘안 돼, 다시 일어나!’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포기하는 사람에게는 ‘그만두지 말고, 다시 시도해봐!’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다시 한번 마음을 크게 내시기 바랍니다. 고지가 바로 저기에 있다는 자세로 꾸준히 정진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열심히 하세요.”

“네.”

오늘 격려 법문을 듣고 많은 학생들이 안주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다시 수행을 이어나가면 좋겠습니다.

스님은 또 나누기, 절, 과제를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도 상세히 설명해주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불교대학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오후에는 평화재단에서 전국 법사단 회의와 결사 행자 대회가 이어졌습니다. 오후 1시 반부터 밤 9시까지 긴 회의였습니다.

법사단 회의는 해외 파견 중이거나 병가 중인 법사님들을 제외하고 40여 명의 법사단이 모두 모여 정토회의 다양한 사업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게 진행될 수 있도록 점검하고 논의하는 자리입니다.

특히 얼마 전 20여 년 만에 수행 법회 개편이 이루어졌는데요. 이번 회의에서는 수행 법회가 수행자들을 위한 법회가 될 수 있도록 개선해 나가자는데 마음을 모으고, 각 내용을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중 수행 법회 시간 중에 포살을 개최하는 것에 대하여 많은 토론이 있었습니다.

포살은 계율을 지킬 것을 약속한 수행자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자신이 계율을 어긴 사항에 대해 대중에게 드러내어 참회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에 대해 스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행 법회는 정회원의 신심을 강화하고 교육하는 장으로 마련되면 좋겠어요. 수행자들이 정기적으로 모이는 법회이기 때문에 수행자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시간이 되어야 해요. 특히 포살은 승단의 청정과 화합을 유지하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토회의 승가 구성원인 정회원은 모두 포살의 참석 대상이 되어야 해요.”

이 외에도 정토회가 수행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해서 어떤 점들이 더욱 보완되고 준비되어야 하는지 다양한 안건을 주제로 이야기 나눌 수 있었습니다.

내일은 정토회 경전반 졸업식이 충주 호암체육관에서 하루 종일 있을 예정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전체댓글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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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데오

‘"이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면 좋지만, 원래 될 수가 없는 거야. 그래서 되는 것도 있고, 안 되는 것도 있는 거야. 안 되면 또 도전하면 돼. 그래도 안 되면 포기하면 돼.’" 감사합니다.~~^^

2020-02-09 07:56:15

무지랭이

고맙습니다_()_

2019-02-28 16:35:15

김민혜

감사합니다... 스님????

2019-02-21 01:4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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