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2.21. 용성연수원 건립계획 설명회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역사에서 묻혀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전북 장수 죽림정사에서 열린 용성연수원 건립계획 설명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어제 서울에서 늦게까지 업무를 본 스님은 오늘 아침 장수로 출발하였습니다.

죽림정사는 용성스님의 탄생지에 세운 사찰입니다. 용성 스님(1864~1940)은 불교의 지성화·대중화·생활화 운동을 전개하는 등 현대 한국 불교의 기초를 닦은 근대 한국불교의 중흥조이십니다. 또, 1919년 기미 3·1독립선언 민족대표 33인 중 불교계를 대표해서 서명하셨고, 그 이후 평생을 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독립운동가이십니다.

장수군과 (사)백용성조사기념사업회는 이 곳에 용성 스님의 삶과 사상을 기리고 역사, 통일 교육의 장이 될 연수원을 건립하기로 하였고 의회의 승인만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오늘 사업설명회는 지역 주민들에게 용성연수원 건립의 취지와 기대효과를 설명하는 자리입니다.

10시쯤 도착한 스님은 행사 전 장수군수 장영수 님과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안 그래도 연수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좋은 제안을 해주셔서 정말 뜻이 맞는구나 생각했습니다.”

“저도 저 혼자 생각인가 했는데 받아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용성연수원의 건립계획 설명회는 죽림정사 내 교육관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장수군수와 장수군 의장, 전북 도의원, 마을 이장, 주민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용성연수원 건립에 대한 사업설명이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장수군수 장영수 님은 인사말에서 “오늘 이 자리는 연수원 건립 시 물빛공원 이용에 따른 주민들의 양해와 협조를 구하고 의견수렴을 통해 발전 기반을 다지는 자리입니다. 용성연수원 건립은 장수군민들의 역사의식 향상과 지역경제 활성화의 물꼬가 되어 장수군이 나날이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장수군의회 의장 김종문 님은 “그동안 물빛공원에 관광객 유치에 어려움을 겪은 것도 사실입니다. 이번 사업이 장수군 발전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라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대한 기대를 밝혔습니다.

전라북도 도의원 박용근 님은 “용성연수원을 통해 전불교계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 와서 수양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인사말을 하였습니다.

희망찬 분위기 속에서 법륜스님이 환영사를 하였습니다. 스님은 ‘독립운동가 백용성 조사’와 용성연수원을 건립하는 취지에 대해 자세히 말해주었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같이 대화하고 싶은 주제는 두 가지입니다. 이곳 죽림정사는 독립운동가 백용성 조사님께서 태어나신 곳이에요. 그래서 첫째, 백용성 조사님의 정신을 어떻게 우리가 국민운동으로 넓힐 것인가, 장수의 자랑으로서 백용성 조사를 어떻게 홍보할 것인가 하는 주제에 대해 얘기하고자 합니다. 둘째, 이곳 장수군에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서 물빛 공원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주제입니다.

먼저 백용성 조사님이 어떤 분인가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이 분을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이 분이 실제 기여하신 바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사이에는 너무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불교라고 하는 종교의 테두리 안에서 보면, 현재 대한민국 스님의 절반이 용성 스님의 제자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조계종에서 종정을 역임하신 분 중 서너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용성 문하 사람들입니다. 그만큼 불교계 내에서 중요한 위치를 갖고 있습니다.

이 분의 많은 제자들이 화엄사, 범어사, 해인사, 쌍계사, 신흥사 등에서 정진을 하고 있습니다. 불교계에 잘 알려진 성철스님 같은 분도 이 분의 손상좌(제자의 제자)이지만, 용성 스님보다는 성철 스님이 더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용성 조사님이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그 제자들이 제대로 알리지 못한 측면도 있지만, 이 분이 살았던 시대가 소위 일제시대라고 하는 암울한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이 분이 독립운동을 하지 않고 불교 활동만 했으면 한국의 부처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유명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 분은 독립운동을 굉장히 적극적으로 했습니다. 독립운동이 바로 이 분의 업적이 덜 알려지게 된 원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일본은 이 분이 하시던 일이라면 전부 강제 해산시키고 압수했습니다. 돌아가실 때 누울 방 하나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제가 탄압을 했습니다.

일본의 혹독한 탄압을 받으니까,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많은 피해를 입었고, 스님의 많은 제자들도 이 분을 멀리했습니다. 당시 제자들의 대부분이 일제에 굴복했는데 지금 용성 스님의 독립운동을 자꾸 떠받들면 ‘당신은 그때 뭐했습니까’ 하는 질문이 돌아오니까, 가능하면 용성 스님의 독립운동 경력을 안 드러 내게 되었어요. 이런 점들이 이 분의 업적이 세상에 덜 알려진 이유입니다.

그리고 용성 스님은 독립운동을 비밀리에 많이 했습니다. 승려로써 독립운동을 했기 때문에 총칼을 들 수는 없지 않습니까. 대부분 숨어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았고, 모아진 독립운동 자금은 비밀리에 상해 임시정부와 독립군 단체에 보냈습니다. 또 독립운동가를 양성해서 몰래 보내주는 일도 하셨어요. 3.1독립선언서에 불교계를 대표해서 서명을 했기 때문에, 어디를 가도 일제가 늘 옆에 따라다녔습니다.

옛날에 전라도에 만석꾼 부자가 많았다는 거 다 아시죠?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모금도 했지만, 주로 만석꾼들의 지원을 받아서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특히 전라도 운봉에 사는 만석꾼 임동수 선생의 후원을 받아서 상해 임시정부에 계속 자금을 보냈습니다. 소문이 나서 발각되지 않게 하려고 금광을 운영한다면서 돈을 투자하는 척했다가 나중에 망했다고 하면서 자금을 마련한 적도 있었습니다.

또 용성스님은 고종 황제를 면담하고 그분의 밀지를 받아 해인사 대장경 불사를 하면서 상궁을 통해 황실의 내탕금도 지원받았습니다. 상궁은 요즘으로 말하면 청와대 비서관들이라고 볼 수 있어요. 이 돈을 갖고 북간도 명월촌에 700백 정보 되는 땅을 두 군데 샀습니다. 7백 정보면 대략 210만 평 정도 됩니다. 그곳에서 독립군의 가족들이 농사짓고 살면서 모은 돈으로 다시 독립군을 지원했습니다.

이런 활동들을 모두 몰래몰래 했기 때문에 역사적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만약 용성 스님이 해방 후에 돌아가셨다면 ‘내가 어떤 일을 했다’라고 말할 수 있었을 텐데, 해방되기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또 제자들은 다 독립운동 때문에 스승을 멀리했기 때문에 용성 스님의 행적이 완전히 묻혀 버렸어요. 용성 조사와 가까이 지내신 분들도 해방 후에 그 사실들을 드러내기 어려웠습니다. 용성 조사는 상해 임시정부에도 자금을 지원을 했지만, 중국에서 무장 투쟁을 하는 분들에게도 자금을 지원했는데, 이들은 대부분 중국 공산당과 관계가 있었어요. 해방 후 남북이 갈라져서 이념 대립을 하게 되었기 때문에 이런 사실들을 또 숨겨야 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용성 조사님의 행적은 점점 묻히게 되었습니다.

이곳 죽림정사 불사를 하신 저희 스승이신 불심 도문 큰스님께서 용성 조사님을 알리는 운동을 정말 외롭게 하신 덕분에 그나마 이 정도라도 우리가 알 수 있게 된 겁니다. 도문 큰스님은 용성 조사님의 손상좌입니다. 그 스승인 동헌 스님은 용성 조사를 모시고 끝까지 독립운동을 하신 제자 분이고요. 이렇게 3대에 걸쳐 용성 조사님의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하신 분이 도문 큰스님입니다.

또한 도문 큰스님은 임동수 선생의 증손자입니다. 운봉 만석꾼인 임동수 선생은 용성 스님과 각별한 친구이면서 재가 신자였고, 후원자이면서 독립운동 동지였습니다. 임동수 선생은 독립운동 지원과 활동으로 인해 결국 만석이 다 없어지고 집안이 망해버렸습니다. 역사를 보면 이런 불행한 일이 참 많습니다. 전라도에 임동수 선생이 있었다면 경상도에는 경주 최부자가 있었습니다.

이런 시대를 거치면서 용성 조사께서 하셨던 위대한 업적은 대부분 묻혀있는 상태입니다. 3.1운동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불교계 대표로 서명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으나, 그분이 하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이번에 3.1운동 100주년을 기해서 2월 27일 서울에서 용성 스님의 묻혀진 진실을 백 년 만에 드러내는 발표를 합니다. 용성 스님의 행적은 앞으로 역사적 고증도 필요하고 연구가 굉장히 되어야 합니다. 만약 그 진실이 다 밝혀진다면, 용성 조사님은 국부로 추앙받을 만한 분이에요.

용성 조사께서는 ‘대한제국 부흥 운동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수립 운동을 해야 한다’라고 하시면서 오늘날의 대한민국 국호를 주장하신 분입니다. 3.1운동 때 태극기를 들면 일본이 잡아가니까 반도기를 들자는 주장이 나왔었는데, 용성 조사께서는 태극기의 의미를 설명하시면서 태극기를 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셨습니다. 또 윤봉길 의사를 김구 선생에게 보내서 세상을 놀라게 하고 빛나게 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용성 조사님을 그냥 불교계 승려라고만 생각하지 마세요. 오늘날 대한민국을 있게 한 뿌리라고 할 만큼 중요한 분이시니 여러분도 자랑스럽게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용성 스님의 이런 독립정신을 청소년들에게 선양을 하려면 교육 시설이 있어야 합니다. 이곳에 도문 큰스님이 애를 쓰셔서 기념관을 지었는데, 이것만 갖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시설도 매우 열악합니다. 지금도 너무 추워서 제 말이 귀에 안 들어오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곳에 연수원이 꼭 필요합니다.

그런데 마침 장수군에서 물빛공원을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이 없겠냐고 연락이 왔습니다. 연수원이 건립되면 물빛공원도 훨씬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어요. ‘연수원을 지었는데 사람이 안 오면 어떡하느냐’ 이런 걱정을 하시는데요. 거기에는 제가 조금 기여를 하겠습니다. 제가 어느 도시에서 강연을 하면 1000명 정도는 찾아옵니다. 2박 3일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용성 사상에 대한 강의와 제 강의를 하나씩 넣어 신청을 받으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을 겁니다. 또 물빛공원에서 환경 교육의 장도 연다면 이곳이 좀 더 활성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스님의 환영사가 끝나고 백용성 조사에 대한 동영상을 보았습니다. 스님의 설명을 듣고 보니, 더욱 실감 나게 다가왔습니다. 지금껏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 마을 주민들은 탄식을 하며 보기도 하였습니다.

이어서 도시개발 생활연구소 정세영 님이 용성연수원 건립 기획안 발표하였습니다. 물빛 공원은 각종 생태 테마 시설을 갖추었지만, 그간 관광객이 저조하였는데요. 발표에서 건립 목표와 운영방안뿐 아니라 연간 방문객 유치계획과 물빛공원 활용방안까지 제시하였습니다. 설계도까지 설명한 후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역주민들 몇 분이 손을 들었습니다. 지역주민들은 ‘물빛 공원 입구 청소, 흙으로 된 둘레길, 물이 흐르는 연수원 외벽, 죽림정사와 물빛공원 사이 다리 설치’ 등을 제안하였습니다. 또 연수원 운영에 대한 우려를 표하기도 하였습니다.

행정적인 것은 장수군수 님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받았고, 연수원 운영에 대해서는 스님이 답했습니다.

“저희 정토회는 환경을 굉장히 중요시합니다. 정토회에는 휴지도 없고, 일회용품을 엄격하게 사용하지 않고 있어요. 또 대규모로 행사를 할 경우, 음식을 하면 폐수가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저희들은 다 도시락을 싸옵니다. 이렇게 훈련이 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서 연수를 해도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또 저는 평생 자립경제를 해왔습니다. 연수원 건립이 확정되면, 시설은 시, 군에서 하더라도 관리는 정토회에서 전부 자원봉사로 관리할 것입니다. 정토회는 자원봉사 시스템이 전국적으로 조직되어 있어요. 연수원을 지어놓고 계속 관리비가 드는 것은 저도 국가적 차원의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스님의 답변에 대중들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질의응답을 마지막으로 설명회가 끝나고 햇살 아래 다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 죽림정사에서는 맛난 점심을 준비해주었습니다. 대중들은 용성연수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비빔밥을 먹었습니다.


스님도 함께 식사를 하고 손님들을 배웅한 후 다시 서울로 이동하였습니다. 서울에 도착한 스님은 평화재단 실무자들과 밤늦게까지 3.1 운동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 준비회의를 하였습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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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데오

"장수군과 (사)백용성조사기념사업회는 이 곳에 용성 스님의 삶과 사상을 기리고 역사, 통일 교육의 장이 될 연수원을 건립하기로 하였고 의회의 승인만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감사합니다.~~^^

2020-02-23 06:24:36

지나가던이

감사합니다. 눈물이 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합니다. 몸 건강하시고 행복한 하루 되시기를...

2019-05-24 20:42:30

세명화

이름도 몰랐던 용성조사님에 대해 스님 덕분에 자세하게 알게 됩니다ㆍ 이런분이 이제껏 조명되지 못한것이 안타깝지만 지금이라도 남북한 평화기류에 맞춰 이렇게 재조명되서 다행입니다ㆍ

2019-02-27 14:5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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