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05.25. 평화재단 리더십아카데미 동문회, 통일의병학교 워크샵
“한국이 세계 문명의 중심이 된다면”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오전에는 파주에서 열린 평화재단 평화·여성리더십아카데미 동문들을 위해 즉문즉설을 하고, 오후에는 평화재단에서 통일의병학교 1기 수료생들을 위해 강의를 했습니다.

평화재단에서는 남한 사회 전체를 포용하고 남북통일을 이뤄낼 통합의 리더십을 가진 리더 그룹을 양성하기 위해 평화·여성리더십아카데미를 열었습니다. 지금은 평화·여성리더십아카데미를 종료했지만, 아카데미를 수료한 800여 명은 지금까지 일 년에 두 차례 스님과 함께 하는 동문행사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파주시 통일대교 앞에 도착하자 헌병대원이 검문을 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민간통제구역이라 한 명 한 명 신분증을 제출한 후 출입증을 받고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임진각에서 20분만 가면 개성이지만, 마음대로 오갈 수가 없습니다. 분단의 현실을 느끼며 캠프 그리브스 유스호스텔에 도착했습니다. 강당에 가보니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오늘 참가자 중 신분증을 깜빡 잊고 가져오지 않은 사람이 있어 통일대교를 넘어오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오늘 동문회에는 120여 명의 평화·여성 리더십아카데미 동문들과 그 가족, 지인이 참여했습니다. 10시가 넘어 하늘색 티셔츠를 맞춰 입은 사람들이 밝은 얼굴로 들어왔습니다. 사전 의식과 동문 대표의 인사말은 간단하게 줄이고 바로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지난겨울, 송년회에 만나고 벌써 6개월이 지났습니다. 잘 지내셨어요?”

“네!”

“오늘 우리가 이 곳에 오는 데 어떤 나라의 국경보다 엄격한 과정을 거쳐 왔습니다. 옛날에는 이 곳에 아예 들어오지도 못했고, 요즘은 조금 평화로워져서 들어올 수는 있게 됐어요. 유럽에 가보면 국경 자체가 아예 없고, 동남아시아의 나라들도 국경에 막대기 하나 세워놓은 정도지 이렇게 철조망을 치고 검문검색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여기 사니까 당연히 그런 줄 아는데 세계를 다녀보면 이런 경우는 지구 상에 진짜 몇 안 돼요. 우리는 평화롭게 사는 것 같지만 이렇게 늘 전쟁의 위협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오전에는 저와 인생문제, 세상 문제를 두고 자유롭게 대화를 하고, 오후에는 분단의 아픔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을 둘러본다고 합니다. 아픈 여행이 되겠네요. 아픈 여행이 꼭 슬픈 것만은 아닙니다.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는 길이 아직은 험난하지만 저는 이제 마지막 고비를 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 이제 누구든지 질문을 해보세요.”

스님은 _“여러분과 가까이 가서 이야기하겠습니다.”_라며 단상에서 내려왔습니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손을 들고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통일에 대한 질문이 가장 많았습니다. 어린이가 북한에 대해 질문하기도 했습니다. 어린이, 청소년들도 스님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그중 청소년들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는 질문자와의 대화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청소년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주는 방법

“저는 행사를 기획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곳 DMZ에 있는 캠프 그리브스를 기점으로 해서 초중고 학생들 대상으로 1박 2일이나 2박 3일 기간으로 평화를 주제로 한 행사를 제안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근처에 낯선 곳을 둘러보는 것도 좋지만 학생들에게 DMZ와 평화에 대한 가치를 메시지로 전달하고 싶습니다. 여기에 대한 스님의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저도 젊을 때는 많은 것을 가르쳐 주려고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래서 말이 많았습니다. 금강경 법문을 한다면 지금은 10분 동안 할 얘기를 그때는 30분씩 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제가 뭘 가르쳐 주려고 했던 것이 ‘듣는 사람들에게 과연 도움이 됐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어요. 사람은 다 자기가 듣고 싶은 것 밖에 안 듣기 마련이거든요. 즉문즉설은 이런 고민에서 나온 강연 방식이에요.

‘말하는 사람이 하고 싶은 얘기를 하지 말고, 듣는 사람이 듣고 싶은 얘기를 하자. 듣는 사람이 듣고 싶은 얘기를 소재로 해서 그 사이에 말하고 싶은 얘기를 조금씩 양념으로 쳐 넣는 방식이 좋지 않겠나. 너무 전달할 메시지를 생각하면 강사는 만족할지 몰라도 과연 교육 효과가 날까?’

하지만 학생들이 노는 것을 좋아한다고 모닥불 피워놓고 계속 놀기만 한다면 남는 것이 없잖습니까? 그래서 질문자의 고민을 이해는 하는데, 오히려 이렇게 연구해 보시면 좋겠어요.

‘아이들이 듣고 싶은 얘기 속에 메시지를 어떻게 넣을 것인가?’

어떤 메시지를 주면 좋겠다고 단답으로 말하기는 좀 어렵습니다. 지금 청소년들은 분단이 된 뒤에 태어나서 자랐잖아요? 여러분들은 분단을 경험하지 않았어도 어머니 아버지가 분단 세대였기 때문에 그분들의 얘기를 들으며 분단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는데, 요즘 청소년들은 그런 경험조차 없어서 거의 분단의 아픔을 몰라요. 얘기를 해 줘도 생소하게 듣습니다. 외국인이 와서 여기 철조망 앞에 서 있는 심정이나 우리 아이들의 심정이나 마찬가지일 거예요. 안타깝지만 그것을 고려해서 최소한의 메시지를 전해야 오히려 아이들에게 호응이 오지, 우리 세대가 생각하는 메시지를 넣으면 약간 부작용이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자꾸 과거의 아픔을 들춰내서 아이들을 아프게 하기보다는, 미래의 희망을 심어주는 메시지를 주는 게 더 좋습니다. DMZ는 분단이라는 큰 아픔의 현장이기도 하지만, 미래를 내다보면 생태보존이라고 하는 새로운 가치가 있는 곳입니다. 분단 문제가 해결되면 이곳에 평화 공원이라고 하는 새로운 가치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그런 데서 우리의 아픔을 그냥 상처로 남기지 말고, 아픔이 오히려 거름이 되어서 미래 희망의 밑받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연구해서 가볍게 담아보는 것이 어떨까 싶어요.

‘같은 민족이니까 통일하자’, ‘죽어도 통일이다’ 이런 메시지로는 젊은 세대의 호응을 얻기가 좀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통일을 포기하면 안 되지만, 정치적인 통일을 너무 강조해도 안 됩니다. 분단은 우리에게 굉장한 비극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통일은 현재 우리의 정체된 경제성장 국면에서 새로운 돌파구이고 축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남북한 경제 협력은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남북이 협력하면 북한은 새로운 소비재 생산 기지가 될 수 있어요. 그럴 때 우리는 한 번 더 경제 성장을 할 수 있어요.

남북한이 경제 협력을 하게 되면, 북한은 앞으로 10여 년 간 연간 10~20퍼센트 성장이 가능하고, 남한은 연간 4~5퍼센트 성장까지 가능할 거예요. 그런데 현재의 분단 상태로 계속 가게 되면 연간 2퍼센트 밑으로 성장률이 떨어집니다. 문재인 정부 끝날 때 2퍼센트 성장만 해도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잘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에요. 경제 성장률이 포물선으로 쭉 올라가다가 이제 정상에 도달했기 때문에 막판에 가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우리만 겪은 것도 아니고, 일본도 겪었고, 유럽도 겪었고, 모든 선진국이 겪은 일입니다. 일본은 20세기 초기에는 이 위기를 한국과 만주 침략으로 극복하려다 실패했고, 미국은 멕시코와의 전쟁을 통해 서부 개척을 하면서 제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겁니다. 미국은 여러 번 그런 위기를 겪었는데도 계속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땅이 크고 개발할 곳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북한과 협력을 하게 되면 새로운 투자처를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을 국민들이 잘 살려내야 하는데, 과거의 감정에 사로잡혀서 미래의 희망을 못 보고 있는 겁니다. 남북 협력은 북한에게는 이익도 되지만 동시에 위기이기도 합니다. 체제 유지 측면에서는 남한에 흡수될 수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북한의 그런 우려를 상당히 배려해가면서 이 문제를 접근해야 됩니다. 너무 성급하게 접근하면 북한이 고슴도치처럼 움츠러 들어가 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통일 문제는 용의주도하게 해결해나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정치권에서 여야가 이것을 너무 정쟁으로 삼지 말아야 하고, 국민들의 의사 통합을 이뤄나가는 절차가 필요해요. 그러나 지금은 권력 투쟁이 정치의 핵심 이슈가 되어 있기 때문에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텃밭 농사를 지어 보니 벌레가 너무 많아서 살충제가 쓰고 싶어요. 스님도 농사를 짓는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농약을 안 쓰고 농사를 지으시나요?
  • 환경 문제의 심각함을 느끼고 쓰레기를 줄이려고 하지만, 플라스틱을 줄이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스님께서 북한에 다녀왔다고 하셨는데, 어디 어디 다녀오셨나요?
  • 곧 통일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북한에 경제개발이 필요한데, 대자본이 들어가서 망쳐버릴까 봐 걱정됩니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힘으로 친환경적이고 신문명의 모델이 될 수 있도록 북한을 개발하면 좋겠는데 스님은 북한개발에 대한 구체적인 구상이 있으신가요?
  • 졸혼, 죽기 전에 미리 하는 장례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한국에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데 통일이 되면 인구문제가 해결될 것 같습니다. 통일에 대한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점심 식사시간이 되어 스님은 동문들에게 “개인생활도 중요하지만 국가 미래 비전을 생각하며 여러분의 재능을 잘 활용하면 좋겠습니다.”라는 말로 즉문즉설을 마쳤습니다. 참가자들은 큰 박수로 강연을 해 준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식당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스님은 2시까지 평화재단에 도착해야 해서 점심을 먹자마자 참가자들과 인사를 나눈 뒤 서울로 출발했습니다.

한편, 평화재단에서는 오전부터 통일의병학교 워크숍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지난 4월부터 서울과 부산에서 통일의병학교를 이수한 26명이 참가했습니다. 평화재단에 도착하니 용성조사님의 독립운동사를 담은 영상을 보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통일의병학교 제1기 수료생들에게 통일의병 임명장을 수여했습니다. 한 명, 한 명 임명장을 수여하고 기념사진도 촬영했습니다.

“귀하를 새로운 100년을 여는 통일의병으로 임명합니다.”

임명장을 모두 받은 뒤 새로운 통일의병들은 씩씩하게 통일의병의 다짐을 낭독했습니다.

“통일의병은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내가 통일의 주인임을 자각하고, 주권자로서 한반도 평화와 협력시대, 통일코리아를 건설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행동할 것을 다짐합니다.

하나, 분단과 냉전체제를 해체하고 평화와 협력시대를 만들겠습니다.
하나, …”

“다짐한 대로 해야 돼요.”(모두 웃음)

스님이 한 마디 하자 의병들은 기분 좋게 웃었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통일의병이 가야 할 길과 마음가짐’에 대해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영상으로만 만났던 스님이 단상에 오르자 참가자들은 뜨겁게 환영했습니다.

“통일의병이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미래의 희망을 만드는 종착지가 아니라 첫발입니다. 이 첫발을 디뎌야 통일 한국이 중심이 되어서 한반도가 더 이상 4대 강국의 갈등 지대가 아닌 평화 지대가 될 수 있게 만들어나갈 수 있어요.

그러나 발해 멸망 이후 지난 1000년 동안은 민족사가 축소되고 우리의 영토가 한반도에 갇히면서 외세의 침공을 거듭 받아야 했습니다. 어느덧 약소국으로 전락하고, 심리가 위축되면서 자꾸 큰 나라에 기대고, 자주적으로 자기 결정을 못하는 오랜 습성이 생기게 되었어요. 그래서 감히 세계 문명의 중심이 된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런 꿈을 꿀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이루어지고 안 이루어지고는 우리가 해봐야 알겠지만, 달성 여부에 상관없이 우리는 지금 그런 꿈을 꿀 수 있는 조건에 놓여 있게 되었습니다. 통일의병의 목표는 소극적으로는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내는 것이고, 적극적으로는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루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평화와 통일을 딛고 아시아 시대를 맞이할 뿐만 아니라 그 아시아 시대의 중심 국가가 되자는 꿈을 갖고 있는 사람이 바로 통일의병입니다. 그러니 통일의병이 된 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아셨으면 좋겠어요.

오늘도 오전에 평화‧여성리더십아카데미 동문, 가족들과 파주에서 즉문즉설을 했는데 어떤 분이 요즘 청소년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주면 좋겠냐고 질문을 했습니다.

어떤 가치를 심어주려고 하면 듣는 사람이 피곤해요.(모두 웃음) 오늘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서 막 이야기하면 졸릴 거예요. 통일의병으로서 궁금한 게 있으면, 마음껏 물어보세요. 뷔페식으로 하다 보면 밥상이 제대로 차려지지 않을 때가 있던데 그래도 자기 먹고 싶은 대로 먹는 게 최고예요.”(모두 웃음)

처음에는 머뭇거리던 의병들은 앞 다투어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통일에 대한 질문이 가장 많았습니다. 그중 통일 이후의 대한민국이 세계 문명의 중심이 되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에 대해 물은 질문자와 스님의 대화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세계 문명의 중심이 될 통일코리아

“스님께서는 항상 우리나라가 동아시아 문명의 중심이 되어야 하고, 더 나아가서 세계 문명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사실 이런 개념은 제가 스님께만 들어본 얘기이거든요. 보통 선진국이 어떤 나라인지는 많이 들어서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달라질지 충분히 상상이 되는데 문명의 중심이 된다는 개념은 좀 추상적으로 느껴지고, 그럼 실제로 우리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가 상상이 안 됩니다.”

“문명의 중심이 되려면 창조력이 있어야 합니다. 유럽이 세계 문명의 중심으로 부상한 시기가 지금으로부터 한 400년 전입니다. 이 시기에 우리가 알고 있는 중요한 발명이 모두 유럽에서 나왔습니다. 나침반, 화약, 활판 인쇄술은 근대 3대 발명품이라고 보통 말하죠. 물론 아시아에서 화약을 먼저 만들었고, 우리나라가 금속 활자를 세계 최초로 만들었지만, 그것이 상용화된 것은 유럽이 먼저였습니다. 우리는 일부 만들어서 쓰긴 했지만 일반 생활 문화로까지는 발전이 안 됐거든요.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증기 기관을 발명한 것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그 전에는 유기체를 갖고 힘을 썼습니다. 사람의 힘만 쓰다가 말이나 소, 코끼리의 힘, 바람의 힘 이런 것을 썼는데, 증기 기관이라는 것이 나온 겁니다. 이것을 계기로 유럽은 근대 과학 기술을 많이 발명해 냈습니다. 그러나 유럽은 각국이 경쟁하고 싸우는 과정에서 많은 파괴를 했습니다. 파괴하는 중에도 계속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서 또 일어나고 또 일어나고 했던 겁니다. 전쟁하면서 계속 신무기를 만들어 냈던 거예요. 그러다 보니 유럽이 세계 문명의 중심이 된 겁니다.

그걸 모방해서 새롭게 문명의 중심이 된 곳이 미국입니다. 당시 아시아는 아직 모방하는 수준도 못 됐습니다. 유럽인들의 일부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모방을 했습니다. 미국이 모방을 해서 양적으로 유럽을 능가했다 해도 아직 문명의 중심이 된 것은 아니었어요. 지금 중국이 미국보다 GDP가 커진다고 해도 중국이 문명의 중심은 아닌 것과 같아요. 모방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서부 개척을 하면서 창조력이 일어나기 시작했어요. 미국 동부와 서부의 거리가 유럽 전체보다 훨씬 더 멀어요. 독일과 프랑스는 말을 타고 달리면 잠깐이에요. 그러나 미국은 동부와 서부가 너무 거리가 머니까 서로 연락을 하기 위해 전신 기술을 발명합니다. 먼저 전기를 발명하고, 그다음에 자동차를 발명하고, 그리고 비행기를 발명합니다. 미국에 비해 근거리 생활을 하는 유럽에서는 이런 발명이 나오기 어려웠어요. 그 요구나 필요성이 굉장히 떨어지니까요. 그런데 미국은 서부 개척을 통해 영토가 넓어지니 이런 요구가 높아졌고, 그로 인해 여러 가지 발명을 하게 된 겁니다. 그렇게 문명의 중심은 20세기에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갔습니다. 결정적으로 유럽에서 마감을 찍고 미국으로 옮겨 간 계기는 2차 세계 대전이라고 볼 수 있죠.

미국을 모방해서 일본도 발전했고, 한국도 발전했고, 지금 중국도 발전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 미국이 쇄락하느니 어쩌니 해도 새로운 것은 아직 다 미국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나 애플, 구글, 아마존은 전부 미국 회사이지 않습니까. 회사 규모는 중국의 알리바바가 더 크다고 해도 다 모방이잖아요. 모방은 문명의 중심이 아니에요. 문명의 중심이 되려면 창조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K-POP은 미국에서 배워온 게 아니라 우리들이 만들어 낸 거예요. 이게 창조입니다. 아시아 국가에서 자기 나라 전통을 독특하게 지켜온 나라는 있지만, 인류가 공유할만한 어떤 것을 창조해서 전 세계가 향유하고 있는 것은 아직 없습니다. 스마트폰은 미국에서 만들었지만 전 세계가 공유하잖아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미국에서 만들었지만 전 세계가 공유하고 있고, 비행기도 미국에서 만들었지만 전 세계 사람들이 타잖아요. 그러나 갠지스 강에서 목욕하는 문화는 인도에서 나온 문화인데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인도 사람밖에 안 하잖아요. 다른 나라 사람들이 안 따라 하지 않습니까.(모두 웃음)

그런데 지금 K-POP은 한국에서 나왔는데 전 세계에서 열광을 하고 있죠. 지금 BTS의 음악은 전 세계가 공유를 하고 있잖아요. 이런 게 창조력입니다. 꼭 과학기술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든 철학이든 사상이든 관계없어요. 만약에 한국에서 일어난 환경 운동이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면 이것은 창조력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환경 운동은 외국에서 배워왔지, 우리가 시작해서 세계로 퍼트린 것은 아니잖아요. 만약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다른 나라의 목사나 신부나 사람들도 배우고 공유하려 한다면, 이건 한국에서 나와서 세계로 확산된 창조력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제가 즉문즉설을 어디 가서 배워온 것이 아니거든요. 이렇게 문명의 중심이 되려면 창조력이 있어야 합니다.

양적인 변화가 먼저 오고, 질적인 변화는 그다음에 옵니다. 양적으로는 이미 동아시아가 세계 문명의 중심에 근접했습니다. 한국, 일본, 중국의 GDP를 합하면, 유럽 전체 또는 미국, 캐나다, 멕시코를 합한 것과 거의 덩치가 비슷합니다. 양으로만 봤을 때는 동아시아가 이미 세계 3대 문명으로 진입한 거예요. 조금만 시간이 더 지나면 양으로는 아시아가 곧 미국을 능가하고 제일 선두에 설 겁니다. 그런데 세계 문명의 중심이 되기에는 아직 창조력이 부족합니다. 창조력이 생겨나면 문명의 중심이 동아시아로 이동하게 될 겁니다. 저는 그 기간을 한 세기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양이 커졌다고 해서 중국이 금방 미국을 능가한다는 것은 어림도 없습니다. 창조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양이 커지다 보면 질적 변화도 일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중국은 덩치가 커도 현재까지로 봐서는 창의력이 없습니다. 일본은 철저하게 모방이고 자기 나라 것을 고수하는 경향이 큽니다. 우리나라는 우리 것을 잘 고수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는데, 일본은 자기 전통을 잘 고수합니다. 또 모방은 잘하지만 창조력은 없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질적 변화가 일어나기는 좀 어렵습니다.

창조가 일어나려면 철학도 있어야 되고, 과거에 발달된 문명의 DNA도 갖고 있어야 해요. 역사를 모르면 한국이 갑자기 이렇게 발전한 것 같지만, 한국 사람이 창조력을 보이는 이유는 발달된 배달나라, 고조선 등고대 문명의 DNA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라가 당나라와 비교해 덩치는 매우 작았지만 신라방을 통해 신라의 문화가 당나라에 유행하는 일이 벌어졌었고, 고려도 나라는 작았지만 청자, 금속활자, 팔만대장경을 만든 걸 보면 고도로 발달한 문명을 갖고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초기에 한글을 창제할 때까지만 해도 굉장히 앞서 있었어요. 여러 가지 면에서 발달된 문명의 DNA를 우리 민족이 갖고 있었던 겁니다. 이런 문화유산과 지금 우리의 노력이 결합해서 오늘날 발전을 이룩한 것이지 그런 문화유산 없이 열심히 노력만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에요.

그런 면에서 일본은 고도로 발달된 문명을 가졌던 옛날의 DNA가 좀 부족하다고 볼 수 있죠. 많은 사람들이 이민을 오면 문화가 섞이면서 변화가 일어나기도 하는데, 일본은 굉장히 폐쇄된 사회입니다. 그래서 해외 유학생도 많지 않아요. 미국은 서로 다른 전통을 가진 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이민을 와서 세운 나라잖아요. 독일,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 여러 나라 사람들이 들어와서 융합이 된 거예요.

중국은 가능성은 있습니다. 중국은 원래부터 독자적 정체성을 가진 여러 민족이 섞여 있었어요. 그래서 중국에는 옛날부터 창조가 여러 번 일어났습니다. 당나라 문명이 전통적인 중국 문명이 아닙니다. 당나라 문명은 불교와 서역 문명이 들어와서 중국 전통 문명과 융합이 되어서 새롭게 창조된 문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은 덩치가 크니까 창조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현재 창조력에 있어서는 제가 보기에는 한국이 좀 앞선 편입니다. 양으로는 중국이 여러 배 앞섰지만 창조력은 그렇지 않아요. 일본이나 중국 하나만으로 문명의 중심이 되기는 어려운데, 패권 경쟁을 하기 때문에 협력이 안 되고 있어요.

한반도가 계속 남북으로 분열이 되어 있으면,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의 패권 경쟁에 있어서 그 하부 구조로 전락합니다. 만약 한반도가 통일이 되어서 그 패권 경쟁에서 평화를 가져오는 중심 역할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한반도 때문에 동아시아가 평화를 지켜내고 협력하는 구조로 갈 수가 있는 거예요. 이렇게 경쟁을 하면서도 협력하는 구조가 되어야 창조가 일어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세계 문명의 중심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문명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우리에게 기회가 왔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도 우리 국민들이 이 기회의 창을 보고 헌신할 생각이 아직 없는 거예요. 소위 말해서 ‘먼저 나가서 뭐 하면 정 맞는다’ 하는 정서가 아직 많은 것 같아요. ‘뒤에서 가만히 눈치껏 살아라’ 이런 의식이 우리에게 팽배해 있습니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그런 식으로 가르치잖아요. 제가 고등학교 때 서울에 수학여행을 가는데 선생님이 이렇게 가르쳤어요.

‘빨간 불이라고 멈추거나 파란 불이라고 싹 지나가고 그러다가는 차에 치어 죽는다. 빨간 불 파란 불 그런 거 너무 따지지 말고, 사람들이 많이 건너거든 중간에 따라가거라.’(모두 웃음)

우리는 이렇게 정의로운 관점에 서서 지속적으로 어떤 일을 추진하는 것이 좀 약해요. 워낙 고난을 많이 겪어서 그렇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그런 고난을 덜 겪어서 저항적인 관점에서는 유약한 면이 있는 반면에, 창조적인 관점에서는 오히려 유리하다고 볼 수 있어요. 기성세대는 저항하고 살아남는 것에는 아주 강한데, 눈치보고 살기 때문에 창조적인 면이 없어요. 모방에 아주 귀재들이에요.(모두 웃음)

그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나라 대기업도 미래가 아주 밝다고 볼 수가 없습니다. 저 정도 자본이 되면 창조적인 영역에 많이 투자하고, 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있도록 기업 문화를 열어줘야 창조가 나오는데, 그렇게 안 하기 때문입니다. 구글과 같은 기업에 가보면 굉장히 자유롭게 일할 수 있도록 열어놓고 있거든요.

일본 사회도 딱 짜여진 사회이기 때문에 모방에 아주 강합니다. 그런데 창조가 필요한 시대에는 일본이 대응을 잘 못해요. 그래서 문명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일본이 미래에 큰 문명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안 봅니다. 한국은 지금 굉장히 혼란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잘 보면 가능성이 좀 보이는 나라입니다. 겉으로 보면 한국은 혼란스러워서 죽도 밥도 안 될 것 같은데, 아직 역동성이 좀 있습니다. 70대 할아버지가 독재 타도를 외치면서 깃발을 들고 싸우는 것도 사실은 굉장한 역동성이에요. 어떻게 보면 꼴통이지만 어떻게 보면 굉장한 역동성입니다. 노인들이 이런 예는 전 세계에 없을 거예요.(모두 웃음)

보수 세력이 독재 타도와 헌법 수호를 외치는 것은 굉장히 긍정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적어도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전 국민적 합의가 완전히 이루어졌습니다. ‘독재는 안 된다’ 하는 합의가 이제 완전히 이루어졌어요. 독재 타도가 한 정치 집단의 전유물이었잖아요. 이제 전 국민의 보편적 가치가 되었다는 긍정적 요소도 있는 거예요. ‘저런 인간들이 무슨 독재를 논하나’ 이렇게 볼 수도 있지만, 모든 사람이 독재 타도를 얘기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보면 긍정적입니다.

문명의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창의력만 있다고 되는 것은 아니에요. 양도 어느 정도 담보를 해줘야 창의력이 나와요. 우리는 창의력은 가능성이 있는데 양은 담보가 안 됩니다. 문명의 중심이 되려면 이 정도 규모로는 안 됩니다. 양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여러 나라와 협력을 해야 합니다.

양은 협력을 해서 담보를 하고, 창조의 성장 동력은 우리가 만들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세계 문명의 중심이 될 수 있어요. 그런 꿈을 그려볼 수가 있습니다. 허황된 꿈이 아니라 여러 요소를 감안해서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예요. 꼭 그렇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한 번 도전해 볼만한 요소가 있다는 겁니다. 미래학자들도 이렇게 예측하고 있어요. 얼마 전 기사로도 나왔는데, 세계 3대 투자가 중 한 명인 짐 로저스가 ‘최고의 투자처로 북한을 주목해야 한다' 라고 말했습니다. 통일 한국이 되면 정말 그렇게 될 겁니다.

그러나 분단된 상태로는 이런 꿈을 꿀 수가 없어요. 어떤 것을 적대하고 있는 상황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창의력이 안 생겨요. 창의력은 그걸 극복해야 생겨나거든요. 일본은 이미 가능성이 없습니다. 지금은 괜찮지만 앞으로 30년 미래를 내다보면 일본 사회 전체가 늙어가는 중이라고 평가할 수 있어요. 한국에도 늙어가는 요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역동성이 있어요. 미국도 굉장히 늙어가는 요소가 많지만, 상당 기간 세계의 중심에 설 수 있다고 보는 이유는 아직 창조는 다 미국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연극이나 음악 등 문화 예술 분야에서는 한국에서 창조력이 굉장히 많이 나오고 있어요. 얼마 전 방송 작가들과 얘기해보니까 새로운 소재로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미국 빼고 세계에 몇 군데 없대요. 일본은 아예 없고요. 넷플릭스의 최대 투자처가 미국을 제외하고는 한국이라고 해요. 넷플릭스는 아예 한국에 있는 작가들을 돈을 주고 사버린다고 하거든요.

각 분야에서 이런 요소들을 한국이 갖고 있어요. 부정적인 요소도 많지만, 긍정적인 요소도 많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이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최근 북한에 다녀오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최근 북한의 실상이 어떤지 알고 싶습니다.
  • 현재 한국 정치가 돌아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언제 통일을 하고 동아시아의 선두주자가 될지 걱정됩니다. 지금 저희 의병들이 무엇을 해야 할까요?
  • 2002년부터 계속 선거에 나갔지만, 계속 당선이 안 됐습니다. 어떻게 당선이 될 수 있을까요?

각자 궁금한 것을 물었지만, 결과적으로 짜임새 있고 종합적인 통일 강의였습니다. 참가자들도 무척 집중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새롭게 통일의병이 된 날이니, 그 눈빛이 더욱 진지해 보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통일의병이 가야 할 길을 정리하며, 이웃나라와 함께 하는 열린 자세를 가질 것을 강조했습니다.

“통일에만 그치면 안 돼요. 한반도의 평화를 주변국과 같이 나누어야 합니다. 한반도의 발전이 일본, 중국 등 주변국의 번영을 가져오도록 그 이익을 함께 나누려고 하는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자기 중심성은 있지만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해요. 그래서 우리는 동아시아의 번영과 발전을 함께 추구해야 합니다. 이것을 기반으로 해야 우리가 세계 문명의 중심 국가로 발전할 수 있지 우리만 열심히 하는 것은 잘못된 전략입니다.

독일 통일도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독일 통일에 대한 주변국의 두려움이 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독일은 ‘EU 안의 독일이 되지, 독일을 위한 독일이 되지 않겠다’ 하는 약속을 확실히 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주변국들이 독일의 통일을 받아들인 겁니다. 그 후 실제로 독일은 EU 안의 어려운 나라들을 돕는 자세를 지금도 꾸준히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점점 더 EU의 중심 국가가 되어가고 있어요. 독일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유럽의 꿈을 통해 지금 독일의 꿈을 실현해가고 있는 거예요.

이런 것처럼 우리도 한국의 꿈만 추구하지 말고 아시아의 꿈을 이뤄나가면서 그 속에서 우리의 꿈을 실현해나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폐쇄적인 민족주의가 아니라 이웃 나라와 함께 가는 열린 민족주의를 갖는 통일의병이 되면 좋겠어요.

한 세대만 지나도 여러분들은 자신도 모르게 역사의 선구자가 되어있을 겁니다. 여러분은 자기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고 있어요. 3.1 운동할 때 태극기 만들고 인쇄한 사람들이 그때는 그 일의 중요성을 잘 몰랐을지 모르지만 나중에 다 독립유공자가 되어 있듯이 여러분도 그럴 겁니다. 감사합니다.”

강의를 마친 스님에게 큰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이어서 오후 5시부터는 평화재단을 찾아온 손님과 회의를 하고, 6시가 넘어서 문경 수련원으로 출발했습니다. 내일 새벽 6시부터 정토 경전반 학생들을 위한 특강이 있기 때문입니다.

문경에 도착하니 캄캄한 어둠이 내린 가운데 연등이 밝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전체댓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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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여러 봉사자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_^

2019-06-15 00:41:42

마중물

스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내가 어캐 이런 소중한 말씀을 듣고사는지 감격스런데 이 내용을 확장시키지
못하니 갑갑함도 생깁니다 어쩌컨 미래에 대해 큰 그림을 그려볼수 있도록 희망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2019-06-08 19:32:17

정지나

위축되고 웅크려지고...그래도 괜찮습니다
이렇게 오늘도 살아있어 눈뜨고 다시,시작입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2019-06-05 04:3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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