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11.21 김장 1일째, 행복한 대화(22) 부산 사하구
“딸이 사이비 종교에 빠져 있어서 걱정입니다.”

안녕하세요. 오늘과 내일은 김장을 하는 날입니다. 하루 종일 김장 준비를 한 후 저녁에는 부산 사하구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아침 일찍 배추를 뽑기를 위해 밭으로 향했습니다.

햇살을 받은 싱싱한 배추가 한껏 푸른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스님과 행자님들은 고랑을 따라 한 줄씩 맡아 배추를 뽑기 시작했습니다. 한 사람이 배추를 뽑아서 고랑에 눕혀 놓으면, 다른 한 사람이 바구니에 배추를 담아 트럭에 실었습니다.

“배추가 얼었네. 좀 녹고 나서 뽑읍시다.”

간밤에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서 배추가 얼어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이라 아직 녹지 않고 잎이 차갑고 딱딱했습니다.

스님의 제안에 따라 모두 배추 뽑기를 멈추고 밭 정리를 시작했습니다. 옆 고랑에는 가지, 오이, 호박을 수확하고 나서 말라버린 줄기들이 지주대와 그물망에 얼기설기 엉켜 있었습니다.

지주대는 내년에 다시 사용할 수 있게 길이 별로 모았습니다. 줄기들을 받치는 데 사용한 노끈 역시 돌돌 말아서 내년에 다시 사용할 수 있게 정리했습니다.

스님은 지주대를 철거하고 크기 별로 모으는 일을 했습니다. 땅에 박을 때 굽어진 부분은 망치질을 해서 다시 바르게 폈습니다.


해가 높이 떠서 햇살이 밭 전체를 따뜻하게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얼어있던 배추도 이제 거의 녹았습니다.

“자, 이제 배추 뽑읍시다.”

다시 원래대로 한 고랑씩 맡아서 배추를 뽑고 나르기 시작했습니다. 배추가 좀 시들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싱싱하고 푸르렀습니다.

“배추 알이 제법 찼네.”

농부의 마음이 가장 기쁠 때가 이 순간일 겁니다. 배추를 뽑는 스님의 입에서 콧노래가 흘러나옵니다.

함께 일하는 행자님에게 스님은 북한에서 김장을 하는 방법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북한은 밭에서 배추를 뽑으면 집으로 안 가져오고, 그 자리에서 비닐봉지에 넣고 소금을 절여서 구덩이에 묻어 둔데요. 내년 봄에 배추를 내어 양념을 쳐서 먹는다는군요."

배추를 뽑으면서 이야기꽃이 핍니다. 간간이 웃음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순식간에 배추를 모두 수확했습니다. 트럭에 쌓고 나니 한 트럭 가득 찼습니다. 3백 포기가 넘었습니다.

배추 옆에는 갓도 잘 자라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다 함께 갓을 수확했습니다. 갓을 뽑자 말자 스님은 곧바로 칼을 사용해 손질까지 마쳤습니다.


배추와 갓을 트럭에 싣고 밭을 내려왔습니다. 이제 배추를 가지런히 쌓은 후 하나씩 소금물에 담갔다가 재어 놓을 차례입니다.

점심때가 한참 지났습니다. 그래도 트럭에서 배추를 내려 한 켠에 쌓아놓고 점심을 후루룩 먹었습니다. 식사 후 바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요즘은 오후 4시만 넘어가도 해가 산에 가려 추워지기 때문에 다들 손놀림이 빨라졌습니다. 스님은 배추를 반으로 자르고, 소금이 들어갈 수 있게 칼집을 내어놓는 일을 했습니다.

“이야, 배추 좋다!”

스님 옆에서는 행자님들이 배추를 소금물에 담갔다가 다시 소금에 절이는 일을 했습니다.


배추를 다 자르고 행자님들이 배추를 소금에 절이는 사이 스님은 다시 밭으로 올라갔습니다. 밭에는 배추를 뽑으며 손질한 상한 잎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아직 싱싱하고 깨끗한 잎들은 따로 골라두었습니다. 나머지 상한 잎들은 깨끗이 모아 치웠습니다.

따로 골라둔 배춧잎은 동네에 소 키우는 집에 가져다주었습니다. 배춧잎을 보자 소들이 아주 좋아했습니다.

해가 저물 무렵 배추를 소금에 절이는 일을 모두 마무리했습니다. 내일 아침 일찍 배추를 다시 씻기로 하고 스님은 저녁 강연을 하기 위해 부산으로 출발했습니다.

저녁 7시가 다 되어 강연이 열리는 부산 사하구청에 도착했습니다. 준비된 600석이 일찌감치 만석이 되었고, 늦게 온 사람들은 서서 강연을 들었습니다.

강연장으로 올라가는 길, 스님은 강연 실무를 맡은 봉사자에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내가 강연하러 오기 싫은 날이야. 오전에 배추 뽑고, 오후에 절이고, 그러다가 허겁지겁 강연하러 왔거든. 오늘 같은 날은 일을 계속해야 하는데...” (웃음)

저녁 7시가 되자 뜨거운 박수갈채 속에서 스님이 무대 위로 걸어 나왔습니다.

“박수 그만 치세요. 자리가 좁아서 서 계신 분들은 불편하시겠네요. 그런데 자기들만 서 있는 게 아니라 저도 서 있어요. 서서 듣는 게 쉬워요? 서서 얘기하는 게 쉬워요?”

“서서 듣는 것이요.”

“그래서 제가 별로 미안하지는 않습니다. (웃음) 저녁은 드셨어요? 안 먹은 사람 손들어보세요.”

“집에 가서 드세요.” (모두 웃음)

“저녁 한 끼 안 먹으면 건강에 좋다는 거 알아요? 오늘은 육신을 위한 저녁은 굶고, 마음의 행복을 얻는 저녁을 함께 먹도록 합시다.”

질문을 최대한 많이 받기 위해 스님은 거두절미하고 바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11명이 스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 사이비 종교에 빠진 딸 때문에 걱정하는 어머니의 질문과 스님의 대화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사이비 종교에 빠진 딸이 걱정이에요

“딸이 작년에 수능을 마치고 나서 교회를 다닌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회에서 사이비라고 분류된 종교였어요. 그래서 딸을 잘 설득해서 그 교회에 안 다니기로 약속을 받았어요. 그걸로 마무리된 줄 알았는데, 올해 10월 중순에 제가 우연히 딸 핸드폰을 보고 아이가 계속 거기에 다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딸이 거짓말을 하면서 계속 그곳에 다니고, 심지어 늦게 귀가를 할 때도 많아서 걱정이 됩니다. 사회적으로 고발 프로그램이나 다큐멘터리에도 많이 나온 종교이기 때문에, 위험한 일이 많이 생기는 그곳을 계속 다니는 아이가 걱정이 됩니다. 아이가 위험한 곳에 다니는 것도 걱정이지만, 아이의 말을 믿을 수 없어서 자꾸 묻게 되고 의심을 하는 제 모습을 봅니다. 어떤 마음으로 아이를 대해야 할지 스님께 여쭙고 싶습니다.”

“세상에서 사이비라고 부른다고 해서 반드시 사이비는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가 다니는 종교에 대해서 몇 가지 물어보겠습니다. 가끔 보면 사람을 죽이거나 때리는 종교가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잖아요. 첫째, 아이가 맞고 오거나 남을 때리거나 죽이거나 이런 것이 문제가 되는 곳에 다닙니까?”

“아니오. 그런 건 없었습니다.”

“둘째, 남의 물건을 뺐거나 훔치는 그런 것이 그 종교에서 말썽이 되고 있어요?”

“그런 문제는 없습니다.”

“어떤 종교는 재를 지내야 한다고 하면서 집에서 돈을 엄청나게 가져오라고 하잖아요. 그렇게 재산 상 손실이 지금 생기고 있습니까?”

“많이는 아니고 자기 용돈을 좀 갖다 주는 것 같습니다.”

“자기 용돈을 자기가 쓰는 것은 손실이라고 볼 수 없죠. 셋째, 그 종교에 성폭행이나 성추행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까? 사이비라고 하면 그런 문제가 많이 일어나잖아요.”

“네,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질문자가 조사를 잘해봐야겠네요. 넷째. 그 종교에 가면 사람들이 사기를 치거나 거짓말을 많이 합니까?”

“거짓말은 많이 합니다. 전도를 한다고 하면서 무슨 프로그램이나 동아리를 만들어서 친구들을 그쪽으로 데려갑니다.”

“그건 전도를 하는 방법이지 거짓말은 아닙니다. 엄마한테 거기에 안 간다고 해놓고 다니는 것도 큰 문제는 아니에요. 제가 묻는 거짓말은 어떤 사기를 쳐서 돈을 횡령하거나 이런 걸 말하는 거예요.”

“그런 일은 없습니다.”

“다섯째, 그 종교에 다니는 사람들이 술을 많이 먹고 주정을 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다섯 가지에 해당이 없으면 어떤 것을 하든 문제가 안 됩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브라만교라는 종교가 있었습니다. 부처님도 새로운 가르침을 얘기할 때 기존 브라만교의 잘못된 점을 지적했을까요, 순종했을까요?”

“지적했습니다.”

“그래서 브라만교에서 볼 때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사이비였습니다. 우리는 태국에서 믿는 불교를 소승불교라고 부르는데, 그 사람들이 볼 때는 대승불교가 사이비입니다. 우리는 소승이라고 하지만, 그 사람들은 대승불교를 비불설이라고 합니다. 즉, 부처님 말씀이 아닌 것을 부처님 말씀이라고 사기 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대승불교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유대교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도 사이비였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잖아요. 개신교도 가톨릭에서 보면 처음에는 사이비였습니다.

저는 질문자의 딸이 믿는 그 종교가 옳다 그르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기존 종교와 다른 어떤 새로운 것이 나오면 대부분 기존 종교에서는 그것을 사이비라고 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사이비냐 아니냐를 너무 따질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그 종교가 지지를 받아서 세력이 커지면 그것이 또 나중에 주류가 됩니다.

그런데 범법 행위를 하는 종교가 있습니다. 사람을 죽이거나 돈을 갈취하거나 성을 갈취하는 종교는 사이비 종교를 넘어서서 범죄 행위입니다. 질문자의 딸이 범죄를 저지르는 종교 집단에 가 있느냐 아니냐를 살펴야 합니다. 사이비냐 아니냐를 따지지 말고요.

지금 여러 가지 신흥 종교 중에는 사람을 죽이는 것도 있잖아요. 한두 명이 그 종교는 어떻다고 비난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 종교 안에서 성을 착취하는 행위가 일반적으로 행해지느냐 이런 것을 살펴봐야 합니다. 그런 범죄 행위가 없다면 헌법에 명시되어 있듯이 종교의 자유를 인정해야 합니다. 아무리 내 딸이라도 스무 살이 넘었으면 성인이기 때문에 종교의 자유를 인정해야 합니다. 아무리 엄마가 불교 신자라 하더라도 자기 딸을 강제로 교회에 다니지 못하게 할 수는 없어요. 권유는 할 수 있지만요.

딸이 그 교회에 다니도록 놔두라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질문자가 딸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고 있는데, 이것은 걱정을 해야 할 사안이 아니라 아이와 대화를 해야 할 사안입니다. 대화를 할 때도 딸이 그 종교에 다니지 않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대화를 하면 안 됩니다. 딸이 거기에 빠질 때는 자기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을 거예요. 마음이 허전하든지, 약간 정신적으로 우울증이 있든지요. 마음에 허전함이 있는데 그 종교가 그것을 채워주니까 다니는 겁니다.

요즘 젊은 청년들에게 ‘곧 종말이 와서 새로운 천국이 열린다’ 하는 메시지가 쉽게 먹혀드는 이유가 뭘까요? 취직이 안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취직이 안 되고 있는데, 이런 얘기를 딱 들으니까 취직할 필요가 없어지는 거예요. 공부 열심히 해서 서울대에 가고, 대기업에 취직하고, 고시에 합격하는 사람들이 하나도 안 부러운 거예요. 지금까지는 그 사람들이 갖고 있는 지위나 돈이나 학벌이나 그런 것을 따라가려니까 까마득했는데, 그 종교에서 하는 얘기를 딱 들으니까 이제 곧 종말이 오고 나는 천국에 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출세를 한 저 인간들은 다 지옥에 간다고 하니까 혹하는 거예요. (모두 웃음)

그래서 딸의 입장에서는 그런 종교에 충분히 관심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오히려 아이의 마음을 이렇게 이해해 보세요.

‘아, 아이가 현실 사회에서 좀 좌절이 있었구나.’

이렇게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대화하는 것이 필요해요. 그런 얘기가 먹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뭔가 현실을 뚫고 나갈 힘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입니다. 잘 나가는 사람들을 부러워만 하고 있었는데, 부러워하는 그 사람들은 앞으로 지옥에 가게 되고, 자기는 오히려 이 기회를 타고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하니까 혹하는 거예요.

딸은 강압에 의해 그 교회에 다니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그 종교를 법적으로 처벌할 수도 없어요. 예를 들어 몸이 아파서 온갖 병원에 다 가봤는데도 안 나았어요. 그래서 용한 무당이 굿을 하면 낫는다 해서 굿을 했어요. 그런데도 몸이 안 나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무당을 고발한다고 해서 사기죄가 성립될까요? 안 됩니다. 본인이 선택을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질문자가 딸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면, 성인이 된 딸의 선택을 존중해야 합니다. 그런 후 딸과 대화를 하는 게 필요합니다. 딸이 천국 가는 얘기에 혹해 있다면, 그건 불자들이 ‘어느 절에 가서 기도를 하면 한 가지 소원은 성취된다’라고 믿는 것과 같은 겁니다.

아이가 공부는 못 하지만 대학은 좋은 곳에 보내고 싶다면, 엄마의 심정에서는 절에 가서 빌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쌀을 매고 올라가서 싹싹 빌고 오는 거예요. 이런 이유 때문에 사람들이 종교를 찾는 거예요. 누구나 다 내 아이는 좋은 대학에 가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 잘 안 되다 보니 저런 거구나’

이렇게 아이를 이해하고 대화를 나눠야지, ‘너는 무조건 틀렸다, 그만둬라’ 이렇게 접근하면 딸의 입장에서는 엄마와 얘기를 나눌 수가 없는 거예요. 엄마하고 얘기해봐야 시끄럽기만 하니까 아이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 이성 친구를 사귄다고 엄마한테 얘기하면, 주로 엄마가 격려를 해주나요? 야단을 치나요?”

“야단을 칩니다.”

“야단을 칠 것을 뻔히 알기 때문에 아이가 엄마한테 거짓말을 하는 거예요. 아이가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엄마가 아이의 뜻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친구 사귀었니? 어떤 친구인데?’ 이렇게 상담도 해주고, 축하도 해주면, 아이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엄마와 이렇게 대화가 안 되고, 격려도 안 해주고, 야단만 치니까 당연히 거짓말을 하지요. 그러니 질문자가 자꾸 딸을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있는 겁니다. 자기가 낳아서 자기가 키웠는데, 딸이 하는 짓은 다 엄마를 닮지 않았을까요? 딸이 하는 짓을 보면 엄마도 딸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러니 딸을 못 믿고 욕하는 것은 결국 자기를 욕하는 거예요.

자기 아이에 대한 신뢰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그 교회에 다니면서 스스로 모순을 느꼈을 때 다시 엄마한테 돌아올 확률이 높습니다. 종말이 온다는 그 날이 지나갔는데도 종말이 안 오면 모순을 느끼게 될 겁니다. 만약 그 종교의 교주가 영생한다고 했는데 갑자기 죽어버리면 좌절이 될 겁니다. 그럴 때 오히려 엄마가 등을 두드려주고 격려해주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계기가 생기는 겁니다.

물론 부모가 아이에게 ‘너 계속 거기에 다니면 내가 죽을 것이다’라고 협박을 하거나 강제적인 방법을 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종교에서는 대부분 그런 경우에 대비해서 면역 주사를 이미 다 놓아두었습니다. 독감 예방 주사처럼요.

‘천국에 가려면 그냥 가지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중간에 몇 번은 시험에 들게 된다. 그 첫 번째 시험이 가장 가까운 가족으로부터 온다. 그것을 통과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이렇게 면역 주사를 다 맞았어요. 그래서 엄마가 문제 제기를 하면 할수록 딸은 시험에 들었다고 여기기 때문에 어떻게 극복할까를 더 연구합니다. 아무리 엄마가 죽는다고 해도 ‘조금만 넘어가면 이기겠구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 종교만 그런 것이 아니라, 고래로부터 그 방법을 써왔습니다. 그러니 질문자가 딸을 강압적으로 다루면 다룰수록 자신의 신앙을 더 강하게 믿도록 만듭니다. 기독교뿐만 아니라 많은 종교가 엄청난 탄압 속에서 그렇게 살아남았습니다. 그런 면역 주사 없이 어떻게 탄압 국면에서 살아남았겠어요.

조선 말기에 천주교를 박해할 때도 천주교 신자들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사형을 시키는데도 ‘그래, 우리 천국에 가서 보자’ 이렇게 하고 죽었습니다. 그런데 죽인다고 해결이 되겠어요? 안 됩니다. 조선 말기에 가톨릭은 죽어 마땅한 사이비였습니다. 왜냐하면 부모 제사를 거부했기 때문에 짐승보다 못한 인간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질문자가 너무 경직되게 접근하고 있어요. 세상의 풍문만 듣고 접근하지 말고, 지혜롭게 접근하면 좋겠어요. 북한에서는 남한 사회를 지지하면 다 반동이 됩니다. 남한에서도 북한을 지지하면 빨갱이 소리를 듣게 될 수 있어요. 이것이 우리가 사는 현실입니다. 여러분들이 조금 깨어 있다면, 세상을 조금 더 넓게 봐야 합니다. 나는 비록 남한에 살지만 북한 사람들의 입장도 좀 이해하고, 나는 비록 절에 다니지만 기독교의 믿음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어요.

딸이 믿는 종교가 어느 종교인지는 모르겠는데, 저는 그 종교가 좋다 나쁘다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딸과 만날 때 어떤 마음으로 만나야 되는지에 대해 얘기하는 거예요. ‘너 틀렸다’ 이런 선입견을 갖고 만나지 말고, 딸의 생각을 존중하면서 만나라는 겁니다. 그래야 딸과 대화를 나눌 수 있어요.”

“네, 감사합니다.” (모두 박수)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과학자가 되려고 과학고를 가려고 했는데 불합격했습니다. 너무 당황스러워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 아내가 8년째 집에서 아이만 키우고 있습니다. 아내가 힘들어서 내년 3월에 둘째 아이를 어린이집을 보내자고 하는데 아직 만 25개월이에요. 저는 만 3살이 지나서 어린이집을 보내면 좋겠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작년에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고 대인기피증이 와서 집에만 있어요. 너무 답답해요. 이대로 놔둬야 할까요?
  • 외모나 능력이 좋은 사람보다 지혜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제 나이가 사십이 넘었는데 아직 혼자 살고 있어요. 너무 욕심이 많아서 그런 걸까요? 혼자 살아야 할까요?
  • 조카며느리가 저를 막 대합니다. 작은 형님이 그걸 부추깁니다. 조카며느리가 버릇이 없고 저를 만만하게 봐서 화병이 생겼어요.
  • 37살 아들이 제가 한 마디 하면 밥도 안 먹고 문을 잠그고 방에만 있어요. 1년에 한 번 꼴로 그렇게 행동할 때마다 너무 힘듭니다.
  • 자식에게 장애가 있어요. 엄마가 죄를 지어서 그런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업장 소멸을 할 수 있을까요?
  • 저는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다 보니 해결됐어요. (모두 박수)
  • 저는 내향적 성향인데, 제가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은 다 외향적이에요. 인간관계를 맺기 힘든데 제 성격이 문제일까요?

대화를 모두 마치고 스님은 질문자들에게 한 줄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모두 홀가분해진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긴가민가했는데 확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스님 말씀 듣고 보니 우리 영감이 진짜 좋네요.”
“욕심 때문에 결과가 그렇게 됐네요.”
“병원에 가보겠습니다.”
“아들을 이제 가만히 내버려 두겠습니다.” (모두 박수)

딸이 사이비 종교에 빠져서 걱정이었던 어머니는 이렇게 소감을 말했습니다.

“딸이 아팠을 때 같이 있어주지 못한 것에 대해 서운함을 느꼈겠구나 알게 되었고, 앞으로 딸과 얘기를 많이 해보겠습니다.”

그러자 스님이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딸에게 해야 할까요? 딸의 얘기를 내가 많이 들어줘야 할까요?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딸에게 해준다고 딸 붙들어놓고 얘기할 것 같네요. 그러지 마세요. 딸의 얘기를 내가 들어줘야 해요. 딸이 할 말이 없다고 하면 나는 얘기를 안 해야 합니다. 즉문즉설도 여러분의 얘기를 들어주잖아요.”

“네. 감사합니다.”

강연을 마치며 스님은 지금 이대로도 우리는 행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지금 이대로도 우리는 엄청난 행복을 누리고 있어요

“오늘 얘기를 들어보니까, 아들이 과학고 입학시험에 떨어진 엄마, 본인이 시험에 떨어진 학생, 결혼 못한 처녀, 영감이 퇴직해서 집에만 있는 사람, 아들이 방에 처박혀 살아서 고민인 사람, 아들이 장애가 있는 사람, 본인이 장애가 있는 사람, 온갖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네.”

“그러면 이 사람들은 불행하게 살아야 됩니까? 이 사람들도 행복하게 살아야 됩니까?”

“행복하게 살아야 돼요.”

“이 사람들도 행복하게 살아야 된다면, 여러분도 다 행복해야 되지 않을까요?”

“네.”

“그런데 여러분들은 무슨 핑계를 대서든 불행하고 싶은 사람들인 것 같아요.

‘저는 애가 이래서 불행합니다’

‘저는 남편이 이래서 불행합니다’

이렇게 무슨 이유를 붙여서라도 불행하고 싶어 합니다. 불행이 그렇게 좋아요?”

“아니요.”

“제가 보기엔 여러분이 불행을 너무 사랑하는 것 같아요. 자꾸 자기를 불행하다고 합리화시키지 마세요. 가진 돈이 없다고 불행해하지 마세요. 건강한 것만 해도 행복입니다. 병원에 가보면 건강한 것만 해도 큰 행복이라는 것을 금방 깨달을 수 있어요.

눈이 어두워 보세요. 눈만 보여도 행복합니다. 다리를 다쳐서 휠체어를 타고 다녀보면, 산에 두 발로 올라가는 것만 해도 엄청나게 행복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어요. 남편이 이래서 문제고 저래서 문제라고 불평을 하지만, 남편이 아파 누워서 똥오줌 한 번 받아내 봐요. 남편이 자기가 알아서 술 먹고, 자기가 알아서 똥 누고 다니는 것만 해도 엄청나게 좋은 일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어요. (모두 박수)

이렇게 따져보면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을 지금 우리는 누리고 있습니다. 100개에 99개는 다 행복할 조건입니다. 한두 개가 약간 불편할 뿐이에요. 그 불편한 한 두 개를 계속 문제 삼아서 인생 전체를 불행하게 만드는 겁니다. 내일부터는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이렇게 외쳐보세요.

‘오늘도 살았네!’

이런 기쁜 마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모두 박수)

강연장을 나온 스님은 강연을 준비한 행복학교 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책 사인회는 하지 않고, 봉사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부산을 출발했습니다.

“고마워요.”

오늘은 행복학교에서 준비한 2019년 마지막 즉문즉설 강연이었습니다. 밖으로 나오니 겨울이 왔음을 실감할 정도로 바람이 차가웠습니다.

내일은 아침 일찍부터 김장을 다시 시작할 예정입니다. 오전 내내 김장을 한 후 오후에는 서울로 이동하여 대학생 소셜클럽 2강 역사관 강의를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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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여러 봉사자님들과 참가자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_^

2019-12-28 21:24:23

정지나

불행할수 밖에 없는 이유를 나도 모르게 찾는
나를 봅니다 움추려 들지만 움추려 들고있는나를
다시, 그런 나를 봅니다
그리고 한발 한발 앞으로 걸어갑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2019-12-01 07:24:03

정지나

불행할수 밖에 없는 이유를 나도 모르게 찾는
나를 봅니다 움추려 들지만 움추려 들고있는나를
다시, 그런 나를 봅니다
그리고 한발 한발 앞으로 걸어갑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2019-12-01 07: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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