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정토회 서초법당에는 구언련 님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있는듯 없는듯 열심히 봉사하시는 분이라는 소문이 자자한 분이라고 합니다. 구언련 님은 어떤 자세로 봉사와 수행에 임하는지 궁금하여 서초법당 희망리포터가 취재에 나섰습니다.

94년, <깨달음의 장>에서 처음으로 정토를 만나다.

구언련 님이 처음 정토회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94년 <깨달음의 장> 참가부터였다고 합니다. 당시 구언련 님의 마음 속에는 어떤 아픔이 있었는데 그 아픔을 해소하고자 <깨달음의 장>에 참가했다고 합니다. 지금이야 <깨달음의 장>이 여러 군데서 여러 차례 열리기도 하지만 그 당시에는 한참만에 한 번씩만 열렸다고 합니다.

<깨달음의 장>에서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아픔을 꺼내어 보고 난 후부터는 예전보다는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때에는 마음이 가벼워져서 좋다는 느낌이 있었을 뿐. 정토회에 다녀 봐야겠다는 마음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낸 후에 다시 정토회와 인연이 이어졌습니다.

4-4차 천일결사 기도 입재식에서 다시 만난 정토회

모든 것은 시절인연이 있다고 하던가요. 94년 당시에는 회향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저 내 마음이 얼른 가벼워지길 바랐던 시절이었지만 4-4차 천일결사 입재식 때부터는 이제부터는 무엇인가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인연이 닿은 곳은 바로 공양간이었습니다. 공양간은 아시다시피 일도 많고 잔신경도 많이 쓰이는 곳입니다. 매일, 매 끼니마다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곧바로 티가 나는 곳이죠. 봉사의 종합 예술이라고도 불리는 곳입니다. 특히나 서초법당 공양간은 100 인분 이상의 공양을 지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참 바쁩니다. 일손이 많이 필요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지요.

구언련 님은 이런 공양간에서 첫 봉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쉽지 않은 일도 많이 있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고 합니다. 그때 마음을 구언련 님은 이렇게 되새깁니다.

“그땐 공양간 봉사를 한다는 생각도 따로 없었어요. 법당에 나오면 참 마음이 편안하고 좋았어요. 이런 것 저런 것 따질 생각도 없었던 것 같네요.”

5차 천일결사부터 공양팀장이 되다. 그리고 남편의 반대.

공양간에서 꾸준히 봉사한 덕에 5차 천일결사 때부터는 공양팀장이 되어서 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봉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마음도 많이 닦게 되었고요. 그때 그때 다가오는 상황에 지혜롭게 대처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봉사를 하던 때에 남편의 반대가 시작되었습니다.

남편은 어째서 종교에 자꾸 빠지려고 하느냐며 아주 적극적으로 반대를 했다고 합니다. 남편의 반대가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구언련 님의 마음 속에는, ‘이렇게 그냥 물러나면 내가 갈 곳이 없다. 공양간 봉사를 끝까지 책임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내 마음을 여기서 포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합니다.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그저 하루 하루 버티는 날들의 연속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버티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결국 힘든 시간이 오래 흘러가면서 버티는 것도 한계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결국 공양간 팀장 소임을 내려놓겠다고 마음 먹고 자재법사님께 말씀드렸다고 합니다. 이런 저런 사정이 있어서 이제 그만해야겠다고 말씀 드렸더니 자재법사님께서, “그럼 본인이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세요. 괴로워하면서까지 봉사하시면 좋지 않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자, 마음에 얹혀 있던 괴로운 마음이 해소되면서 비로소 가벼운 마음으로 봉사에 임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마음에 대해 구언련 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그런 괴로움이 봉사에 대한 바른 시선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남편의 반대 때문에 항상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했고 늘 시간에 쫓기고 있었죠. 지금이야 남편이 말리지 않지만 그때는 참 많이 힘들었었네요.”

7차 천일결사 이후, 이제 행복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 어느덧 7차 천일결사가 되었습니다. 늘 하는 봉사였지만 7차부터는 구언련 님의 마음 한편에 분명한 깨달음이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깨달음은 바로 ‘내가 나 자신의 행복을 직접 선택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의무감에 봉사하는 게 아닌, 어떤 일을 맡든 내가 온전하게 나 스스로 선택 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 왔다고 합니다.

이런 깨달음이 마음에 일어났을 때 즈음. 그토록 반대하던 남편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남편이 살아온 삶을 생각해 보았을 때, 남편은 법당에 자꾸만 나가는 나를 반대할 수 밖에 없었겠다는 깨달음이 마음에 불현듯 떠올랐다고나 할까요. 남편을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런 깨달음이 온 뒤로 남편의 태도가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그전까지는 목소리와 억양이 아주 날카로웠는데 남편을 이해하게 된 이후부터는 남편의 목소리도 차분하고 부드럽게 바뀌었다고 합니다. 내가 상대를 이해하는 마음을 내니 상대의 태도가 바뀐다니. 어쩌면 상식적으로는 이해 되기 힘든 일일지 모르지만,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온다는 부처님 말씀이 그대로 드러나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지금은 어느덧 9차 천일결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구언련 님이 정토회와 인연을 맺고 부처님 법 공부를 하게 된 것도 어느새 23년 째가 되었습니다. 지난 8차 천일결사부터는 서초법당 지장부에 소속되어 천도재 등의 ‘재’ 담당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영가와 유족들께 봉사하는 일이라 매우 진지하고 엄중한 일입니다. 그간 오랜 세월 봉사해온 힘이 발휘되는 소임이라고 할만 합니다.

정토회 후배들에게 봉사와 관련하여 도움이 될 만한 한마디를 부탁드렸더니 이런 말씀을 전해줍니다.

“마음의 이치를 깨닫기 위해 법문을 빼놓지않고 듣는 것도 참 중요하고 매일 매일 염불하며 기도하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이지만, 저는 봉사를 통해서 마음 공부를 하는 것이 공부와 회향을 동시에 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이를 위하는 것이 곧 나를 위하는 것임을 알게 되니까요.”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밝게 웃는 구언련 님의 얼굴이 참으로 맑고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봉사를 하다 보면 처음 해보는 일이라서 물러서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도 있고 함께 봉사하는 도반이 미워져서 속상할 때도 있고 무작정 쉬고 싶을 때도 있는데 구언련 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희망리포터 마음에도 새로운 희망이 생겼습니다. 보살도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고 있는 일 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상 서울정토회 서초법당 희망리포터였습니다.

봉축법요식 준비를 하는 구언련 보살. 바쁘게 재를 준비하는 사이에 희망리포터의 촬영 요청에 응했습니다.▲ 봉축법요식 준비를 하는 구언련 보살. 바쁘게 재를 준비하는 사이에 희망리포터의 촬영 요청에 응했습니다.

글_오지훈 희망리포터(서울정토회 서초법당)
편집_권지연 (서울제주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