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진주법당
점점 잃어가는 시력, 마음의 눈을 뜬 나는 행복한 수행자입니다-조정숙 님 수행 이야기

진주정토회 진주법당에는 작은 체구, 적은 말수에 정향이 은은하게 배어 나오는 도반님이 있습니다. 나누고 베풀기를 좋아하는 따뜻한 분입니다. 시각에 장애가 있는 가운데서도 수행과 모둠활동에 꾸준히 임하십니다. 불대 졸업 후 경전반 집전 소임부터 봄불대 집전 소임, 금요일 24시간 릴레이 통일기도 참여까지 봉사와 수행에 본보기가 되어주시는 조정숙 님. 빠르지도 뜨겁지도 않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멈추지 않고 봉사하고 수행하는 조정숙 님의 수행담을 들어봤습니다.

JTS홍보중. 오른쪽이 조정숙 님
▲ JTS홍보중. 오른쪽이 조정숙 님

예상치 못한 일을 만났습니다

저는 2012년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희귀성 난치병을 진단받은 시각장애인입니다. 현대 의학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한 병으로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편식으로 인한 야맹증으로 밤에 다니기가 불편했었는데, 최근에는 보는 시야가 좁아져 무언가에 부딪히는 일이 자주 생겨 이상하다 생각하던 중이었습니다. 개그맨 이동우 씨의 기사를 읽고 왠지 초기 증상이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개월을 망설인 끝에 혹시나 하는 불안한 마음과 아니겠지 하는 기대하는 마음으로 병원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제 예상은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처음 진단을 받았을 때는 남편 걱정부터 되었습니다. 남편이 얼마나 상심이 클까 하고. 그래서 오히려 현실을 인정하고 다 받아들인 것처럼 담담하게 행동했습니다. 하지만 혼자 있을 땐 내 상황에 대한 여러 생각에 사로잡혀 많이도 울었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내가 전생이 무슨 죄를 지었길래’ 라는 생각이 들고 시시때때로 억울함과 화가 올라왔습니다. 어느 날은 아들이 공부하는 척하며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엄마 눈 멀면 좋겠다. 네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 라며 애꿎은 아들의 마음을 아프게도 했습니다. 미안함과 우울감이 반복되어 점점 절망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아랫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조정숙 님.
▲ 아랫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조정숙 님.

그러던 중 평소 알고 지내던 김미향 님의 소개로 마하도서관에서 하는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접했습니다. 그 길로 어쩌면 스님이라면 나에게 현명한 답을 주시지 않을까 기대하며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처음엔 일반적인 절 건물도 아니고 스님이 계시면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것도 아니어서 반쯤은 사이비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가지고 불교대학 수업을 들었습니다. 또한 막연히 알고 있던 불교는 부처님을 믿으면 복 받고 모든 일이 잘 된다는 기복신앙이었는데 정토회는 수행해라, 참회해라, 자신을 들여다봐라 하면서 자꾸 저를 드러내 보라고 하니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스님의 법문을 듣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좋았고 차차 여러 욕심을 내려놓으면서 내 병을 받아들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하고 있던 공부방도 아이들의 연필 글씨를 알아보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눈의 피로도도 높아져 정리했습니다.

조카들을 품에 안게 되었습니다

불성실한 불대생이었지만 이왕 시작했으니 경전반까지 공부해 보자는 마음으로 경전반을 다니고 있을 때였습니다. 평소 부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시동생 부부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한 달 전에도 이혼하겠다던 시동생 부부를 온 식구가 겨우 진정시켜놓았던 참이었습니다. 시어머니로부터 동서가 집을 나갔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다시 올 수도 있으니 좀 기다려보자 했지만, 시어머님은 어떻게 해야 하냐, 전화를 안 받는다, 연락해 봐라, 애들을 시동생이 어떻게 키울지 걱정이다, 한번 가 봤느냐며 수시로 전화하셨습니다. 조금 지켜보자고 해도 시어머님은 저희가 이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바라셨습니다.

동서가 돌아오지 않아 며칠 후 시동생 집에 가보았습니다. 술을 먹었는지 추레한 시동생의 모습과, 뭣도 모르고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어지럽혀진 방은 실타래처럼 얽힌 관계들을 보고 있는 듯 아득했습니다. 가정불화와 경제문제로 자살뉴스가 한참 나오던 터라 무기력해 보이는 시동생이 나쁜 생각이라도 해서 안 좋은 일이라도 저지르면 어쩌지 하는 걱정에 덜컥 아이들을 키워 주겠으니 주변 정리도 하고 다시 열심히 살아보라고 하였습니다. 이전부터 명절에 가끔 만난 열 다섯 살 큰 조카는 말도 없고 방에서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시동생 부부의 싸움이 커질 땐 큰조카를 며칠 데리고 있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맡겠다는 생각이 든 건 큰조카의 어둡고 슬픈 눈망울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처음에는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큰조카는 컴퓨터와 핸드폰으로만 시간을 보내며 다른 일은 무관심하였고, 7살, 4살이던 작은 조카들은 기본 생활 습관이 엉망인 천둥벌거숭이들이었습니다. 일주일에 이틀씩 오는 시동생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남편과 사이가 좋았던 저는 큰조카가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얻고 우리 가정에 속해지기를 기대했습니다. 아이에게 이야기를 해보기도 하고 따뜻하게 이것저것 챙겨보고 이도 저도 안 되어 야단도 쳐보았지만 아이는 점점 더 말이 없어지고 멀어지고 겉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시동생에게 아이의 심리상담을 권유해 보기도 했지만 아무 문제가 없다는 식의 반응에 전 조금씩 화가 났습니다. 지금이라도 상담을 받으면 좋아질 텐데, 나와 의논을 하면 얼마든지 방법을 알려줄 수 있는데 아무것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 큰조카가 미워지고 나도 점점 지치기 시작했습니다. 작은조카들은 작은조카들대로 어린 나이에 엄마와 떨어져 얼마나 힘들겠나 잘해줘야겠다 생각이 들다가도, 기본이 안 되어 있어 늘 내 손이 가야 하는 매일 매일의 크고 작은 일들과, 어느 부분이고 그 애들 맘에 들지 않으면 바락바락 악을 쓰고 고집을 피우는 통에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한편으론 사랑받으려 행동하는 것이 눈에 보였습니다. 그런데도 큰조카에 대한 미움이 어린 조카들에게로 향해졌고 사랑받으려 애쓰는 어설픈 표정들을 차갑게 외면했습니다. 아직 어리디 어린 아이들에게 마음 주지 않는 저를 보면서 스스로도 힘들었습니다.

봄불대생들과 함께 한 수행 맛보기. 맨뒷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조정숙님.
▲ 봄불대생들과 함께 한 수행 맛보기. 맨뒷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조정숙님.

드디어 나의 진짜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즈음에 처음으로 천일결사 입재식에 가게 되었습니다. 눈이 불편하다 보니 사람이 많거나 낯선 장소를 잘 가지 않으려는 저에게 이지연 도반님이 자신이 도와줄 테니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처음 입재식 갔다 오는 길에는 감동을 받아 나도 바뀔 수 있겠다, 앞으로 아침에 일어나 기도 열심히 해야지 하고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고3 아들과 조카들을 건사하며 새벽에 일찍 일어나 하는 수행은 며칠 가지 못했고 마음의 짐만 지며 100일을 보냈습니다. 몸이 힘든 것도 힘든 거지만 마음이 힘든 나날이었습니다. 아이들을 언제까지 맡고 있어야 할 지 기약도 없고 시동생과 큰조카와는 소통이 안 되니 하루하루가 더디게 늘어졌습니다.

두 번째 천일결사 때 내 꼬라지를 알려면 100일을 기도해야 하고 하루 쉬면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말씀을 듣고 새로운 마음으로 참회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스님이 진주 희망강연에 오셨을 때는 질문자가 되어보기도 했습니다. 제 상황을 다 들으신 스님께서 "넌 지금 착한 게 아니고 모자란다."고 하시니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네가 애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밥 해주고 빨래해주는 것밖에 없다."고도 하셨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이해되지 않는 스님 말씀을 되새겨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착하게 사는 것이 왜 나쁘지? 저 애들이 예쁘지 않은데 어떻게 계속 키우지? 내가 안 키워도 되나? 그럼 난 나쁜 사람인가?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질문하면서 기도하였습니다. 저 애들을 사랑하게 해 달라고, 저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좀 가볍게 해 달라고, 저에게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전 저의 선택이 옳았다고 믿었습니다. 조카들을 키우면서 어떤 보상을 받을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 시동생과 동서의 생활방식이 잘못되었으므로 저와 살면서 시동생의 생각이 바뀌고 조카들이 저의 교육방식에 무조건 따라와 주기만을 바랐습니다. 제가 이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며 내 능력을 과신했습니다. ‘사람이 바뀌는 것이 가장 힘든데 내가 그걸 바라고 있구나. 나는 무주상보시를 물질적인 것으로만 해석하고 가장 하기 힘든 업식 바꾸기를 요구하면서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화내고 있구나.’ 하며 나를 보았습니다. ‘나는 저 어린 것들에게 화내는 속 좁은 사람에 불과하구나.’ 바늘 구멍 하나 들어갈 마음조차 내지 못하는 어리석은 저를 인정하였습니다. 내가 세상을 볼 수 있는 시간 동안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해 살고 싶다는 이기적인 저도 보았습니다. 기도를 통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기가 힘들었습니다.

봄불대생들과 함께한 수행맛보기.아랫줄 왼쪽 두번째가 조정숙님.
▲ 봄불대생들과 함께한 수행맛보기.아랫줄 왼쪽 두번째가 조정숙님.

어떠한 상황에서도 행복해지겠습니다

아직 불안함도 억울함도 다 없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전처럼 불쑥불쑥 화가 올라오지는 않습니다. 내가 전생에 죄를 지어서가 아니고 그냥 누구에게나 일어날 일이 단지 나에게 일어났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집 아들들은 사춘기가 지나면 말수도 적고 부모님과 외출하는 것도 꺼린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 아들은 학교생활 이야기도 시시콜콜 잘하고 가족 외출 때는 저와 팔짱 끼고 다니려고 아빠와 다투기도 합니다. 부엌 일을 하고 있으면 살며시 다가와 백허그도 합니다. 고맙고 든든한 아들입니다. 봄불대 공양간에서 봉사하시는 김미향 님의 도움과 법당 안팎에서 항상 저를 챙겨주는 이지연 님의 도움으로 편안하게 봄 불대 집전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빨리 알아보지 못해 인사를 안 한다는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제 사정을 아시는 분들은 먼저 저에게 반갑다고 인사를 건네주십니다. 에너지 절약으로 불을 잘 켜지 않는 정토법당이지만 제가 가면 우리 총무님은 곳곳에 불을 켜 주시며 제가 불편하지 않게 배려해 주십니다.

현재는 시동생이 2년간 육아휴직을 하여 우리 집 근처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좋은 아빠가 되어 상처받은 아이들의 마음이 치유되기를 기도합니다. 기도를 하다 보니 참회할 것도 고마운 것도 사랑할 것도 많았습니다. 점점 할 수 없는 것이 많은 시간들이 다가오지만 아직은 볼 수 있고 내 손으로 하는 일이 많음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점점 잃어가는 시력이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해야 한다는 스님 말씀 새기며 오늘도 행복하기 위해 열심히 기도합니다. 행복과 긍정적인 생각이라는 수행의 선물을 받고 있는 저는 행복한 수행자입니다.

글_조정숙 님(진주법당)
정리_하상선 희망리포터(진주정토회 진주법당)
편집_목인숙(경남지부)

[걸림없는 자유, 지금 시작하세요! 정토불교대학]
온라인 접수마감 : 2017. 8. 27. (일)

▶정토불교대학 홈페이지

전체댓글 12

0/200

^^^^

눈물나네요 ㅠ힘내시고 부디 부처님의 가피로 시력이 회복되시길 빌겠습니다

2017-08-22 23:26:34

수미왕 이은영

가늘고 긴~~그러나 아주 튼튼한..
여린듯 여린듯 아주 강한..
조정숙보살님은 그런 분입니다.
항상 지켜보면 한걸음 한걸음이 감동입니다.
작은 체구에 강한 울림을 가진 당신은 아름답습니다.

2017-08-19 00:31:30

실상행

나를 알아가고, 나의 너의 있는 그래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행복의 길을 가는 수행자의 모습 아름답습니다.

2017-08-18 18:30:45

전체 댓글 보기

정토행자의 하루 ‘진주법당’의 다른 게시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