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두북 농사 울력, ‘행복한 대화’ 동작문화원 편
아버지가 흑인과 결혼하는 걸 반대 합니다

새벽 5시,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로 함께 아침을 열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30분 정도 휴식 하니 주변이 환하게 밝아 왔습니다. 스님은

“오늘 아침 기온이 확 떨어졌다. 날이 따뜻할 거라 생각해서 국화 싹이 난 곳에 비닐을 걷었다가 얼어 죽을 것 같아 밤에 나가 덮었다. 3월까지는 덮어둬야겠다.”

꽃샘추위에 국화 여린 싹이 밤새 얼어 죽을까봐 염려를 하셨나 봅니다. 부직포 천을 길게 덮어 둔 국화 밭이 보였습니다. 어제 계획한 대로, 화장실 옆 그늘진 돌을 골라내고 곱게 체에 거른 퇴비 더미 속에 돌도 골라내기로 하였습니다. 호미로 흙을 뒤집으니 하얗게 흙에 성에가 끼어 꽃샘추위를 실감하였습니다.

“오늘 씨 뿌리려고 했는데 지금 뿌려서는 안 되겠구나. 지금은 돌 골라내고 퇴비를 더 넣자.”

날씨로 인하여 계획을 조금 수정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돌 고르는 작업을 할 동안 스님은 씨감자 농사를 지으려고 빌려둔 밭을 둘러보았습니다. 스님이 돌아오자 모종 화분에 부엽토와 퇴비를 섞어 흙을 수북이 담아두었습니다. 날씨가 좀 따뜻해지면 이 화분에 씨앗을 키워 조금 자라면 땅에 옮겨 심는다 하였습니다.

오늘은 서울 동작문화원에서 ‘행복한 대화’가 있는 날이라 오전 작업으로 마감하고 일찌감치 나섰습니다. 경주 반월성에도 잠깐 들러 청년들 경주순례에 사용할만한 너른 공간으로 어디가 좋을지 답사도 해야 했습니다.

향교 앞에 차를 세워 두고 내물왕릉을 거쳐 반월성으로 올라갔습니다. 산수유나무에 노랗게 꽃이 펴서 봄이 왔음을 알렸지만 꽃샘바람이 매섭게 불어 콧물을 훌쩍거렸습니다. 스님은

“월성과 부처님 당시 사위성이 반월 모양으로 거의 같은 모습이라고 할 수 있지. 월성은 1500년 전에, 사위성은 2500년 전의 왕궁인데도 사위성이 훨씬 큰 셈이야.”

신라 옛 왕궁 터에서 부처님 당시를 그리는 스님의 뒤를 따라 자박자박 걸어 보았습니다.

300여 명의 청년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도 나누고 산책도 하고 놀 수도 있는 공간을 찾아보자니 바람이 적고 따뜻한 공간이 좋겠다 싶었습니다. 강을 끼고 계단식처럼 되어 있는 공간은 바람도 잦고 양지바르고 조용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도 통일암이 제격인데 거리가 멀어 고려를 해봐야 해서 이곳저곳 다양하게 살펴 본 것으로 답사를 마무리하고 서둘러 서울로 차를 달렸습니다.

네 시 반쯤 서초동 정토회관에 도착하여 간단히 저녁 공양을 한 뒤, 6시에 동작문화원으로 출발하였습니다. 500여 명의 참석자들이 1, 2층에 빼곡히 좌석을 메웠습니다. 스님은 행복학교 개설의 취지와 오늘 ‘행복한 대화’의 취지에 대해 여는 인사로 설명을 하고 미리 작성한 질문지를 뽑아 ‘행복한 대화’를 시작하였습니다.

모두 여덟 명이 질문하였는데 여기서는 외국에 살면서 친구관계와 아버지와의 인식 차이로 고민하고 있는 젊은 여성과 스님의 대화를 싣습니다.

“저는 지금 외국생활을 하고 있어요. 제 친구들이 있는데 저는 그들을 100퍼센트 믿을 수 있고, 제 마음을 다 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다가 제가 낯선 사람과의 싸움에 휘말리게 되어서 사고를 당했어요. 그런데 제가 믿었던 그 친구들이 저를 도와주지 않았어요. 저는 마음에 상처를 많이 받았는데, 그 친구들은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저를 대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그 친구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고, 가끔 울화가 치밀기도 해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다 괜찮은가 보다. 그럼 나만 괜찮으면 되겠구나. 결국 내가 문제인가?’ 싶기도 해요.”

“‘내가 문제인가?’가 아니라 ‘내가 문제다’예요.(모두 웃음) 질문자는 100퍼센트 ‘믿을 수 있는 친구, 마음을 다 줄 수 있는 친구’라고 했는데 이 세상에 그런 친구는 없어요. 질문자가 그렇게 ‘100퍼센트 믿을 수 있는 친구’라는 잘못된 생각을 했기 때문에 ‘1퍼센트 정도는 못 믿겠다’ 싶을 때 ‘그건 친구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린 거예요. 그래도 그 사람들은 99퍼센트짜리 친구인데 말이에요. 다른 데 가봐야 그만한 친구는 없어요. 그러니까 이 문제는 질문자가 100퍼센트를 고집해서 생긴 문제예요. 여기 금반지가 있는 걸 보고
‘순금이냐?’
‘순금은 아니고 99퍼센트 금이다.’
‘그럼 가짜네.’
이렇게 결론을 내리는 것과 같은 거예요. 그런데 99퍼센트면 순금에 가까워요, 안 가까워요?”

“가까워요.”

“그런데 99퍼센트 금을 가짜라며 버릴 거예요? 그러니까 질문자가 100퍼센트를 고집하니까 1% 때문에 가짜라고 불만을 갖는 건데, 질문자는 막상 그것을 버리고 나면 나중에 아까워하게 될 거예요. 어디 가서 99%짜리를 찾기도 쉽지 않으니까요. (질문자 계속 흐느낌) 어떻게 할래요? 질문자는 100%가 아니고 99%라서 상처를 입었는데, 사실 99%만 되도 굉장한 건 줄 알고 그냥 가지고 있을래요? 아니면 100%가 아니니까 갖다버릴래요?”

“갖고 싶은데, 마음에 약간 화가 올라와요.”

“화가 올라오는 건 그 친구 때문이에요? 질문자가 100%라는 잘못된 생각을 했기 때문이에요?”

“제가 잘못된 생각을 했기 때문이에요.”

“만약 질문자가 결혼을 하게 된다면 질문자의 남편은 100% 믿을 수 있는 사람일까요? 그저 남보다는 조금 더 믿을 만한 사람일까요?”(모두 웃음)

“남보다 조금 더 믿을 만한 사람이겠지요.”

“예. 그러니까 ‘남보다 조금 더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해야지 ‘100퍼센트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건 잘못된 생각이에요. 이 세상에 100퍼센트라는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질에도 100퍼센트라는 건 존재하지 않아요. 소위 ‘퍼펙트 perfect’라는 건 없습니다.

보통 우리가 ‘1미터’라고 말하지만 실제 1미터가 존재합니까? 99.99미터거나 100.001미터를 우리가 편의상 1미터라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확히 말하자면 ‘비교적 1미터에 가까운’이라고 해야 됩니다. 이런 걸 수학에서는 ‘근사치’라고 하지요. 그리고 예를 들어 ‘좋은 일을 하면 100퍼센트 좋은 일이 생긴다.’ 이런 걸 ‘기계론적 인과율’이라고 하는데,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러면 내가 상대를 칭찬했을 때 상대가 나를 칭찬할 확률이 높을까요? 내가 상대를 비난했을 때 상대가 나를 칭찬할 확률이 높을까요?”

“제가 상대를 칭찬했을 때요.”

“그런데 내가 상대를 칭찬한다고 상대도 반드시 나를 칭찬합니까?”

“아니요.”

“예. 그런데 지금 질문자는 그렇게 오해하고 있잖아요. ‘내가 너를 칭찬하면 너도 반드시 나를 칭찬해야 된다. 내가 너를 믿으니 너도 반드시 나를 믿어야 된다.’ 그건 잘못된 생각이에요. 이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내가 상대를 믿으면 내가 상대를 안 믿을 때보다 상대도 나를 믿을 확률이 조금 더 높아질 뿐이고, 내가 상대에게 좋은 말을 하면 내가 상대를 비난했을 때보다는 상대도 나에 대해 좋은 말을 할 확률이 조금 더 높을 뿐이에요. 우리가 인생을 살 때 확률이 높은 쪽으로 가야 할까요, 낮은 쪽으로 가야 할까요?”

“높은 쪽이요.”

“예.‘질문자는 외국에 살아서 그런지 ‘퍼펙트 perfect, 100퍼센트’를 생각하나 본데, 인생이 그렇지가 않아요. 그런 잘못된 생각 때문에 지금 질문자에게 문제가 생긴 거예요. 그래도 질문자는 동네 깡패보다는 그 친구들을 조금 더 믿잖아요? 그렇지요?”

“예.”

“그래요. ‘그래도 다른 사람들보다는 그 친구들이 조금 낫다’고 생각하세요.”

“감사합니다, 스님.”

“그렇다면 질문자는 그 친구들을 버릴래요? 그래도 다른 사람들보다는 조금 나으니까 그냥 가지고 있을래요?”

“가지고 있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그래요.”

“말씀 감사합니다, 그런데 스님, 여기 저희 아버지도 와계시거든요.”

“그런데요?”

“저는 지금 프랑스 파리에 살고 있는데,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흑인이랑 결혼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저희 아버지는 ‘흑인이랑은 안 된다’는 거예요.(모두 웃음) 저희 아버지 생각이 너무 잘못되지 않았어요, 스님?”(모두 웃음)

“누가 잘못됐다는 거예요?”

“저희 아버지요.(모두 웃음)

“아버지 생각이 잘못된 거예요, 아버지의 생각이 질문자랑 다른 거예요?”

“다른 거죠.”

“다른데 왜 잘못 됐다고 해요? 자, 여기 계신 청중들 중에 연세가 50세 이상인 분들은 제 질문을 잘 듣고 손을 들어서 의견을 표시해 주세요.

자기 딸이 흑인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할 때 찬성할 분은 손을 들어보세요.(모두 웃음) 하나, 둘, 셋, 넷, 다섯, 이 많은 분들 중에 다섯 분밖에 안 계시네요. 자, 이번에는 질문자가 대답해 보세요. 아버지 생각이 잘못 됐어요, 아니면 아버지 생각이 보편적인 생각이에요?”(모두 웃음)

“보편적이긴 한데, 편협해요.”

“보통 소수의 의견을 편협하다 그래요, 다수의 의견을 편협하다 그래요?(모두 웃음) 질문자는 태극기부대로 가야 되겠어요.(모두 박장대소) 지금 여론조사하면 국민의 75퍼센트가 탄핵을 찬성하고, 15퍼센트가 반대한다고 나오지요?”

“예.”(청중들)

“그런데 반대한다는 15퍼센트도 꽤 많은 숫자예요. 5,000만 인구 중에 15퍼센트면 750만 명이니까 적은 수는 아니에요. 그런데 15퍼센트가 75퍼센트한테 ‘소수다. 편협하다’고 하면 그건 옳은 표현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질문자와 아버지의 생각이 다른 것을 두고 질문자가 ‘아버지의 생각이 잘못됐다. 틀렸다’고 하면, 질문자야말로 편협한 사고를 하는 거예요. 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러나 질문자가 아버지의 노예나 종은 아니니까 아버지가 하라는 대로 할 필요는 없어요. 질문자가 선택해서 살면 됩니다. 그러나 ‘아버지 생각이 틀렸다’는 건 굉장히 위험한 생각입니다.

질문자의 첫 번째 질문과 두 번째 질문을 모두 들어보니까 질문자는 자기 생각과 다른 건 ‘틀렸다’고 나오네요?(모두 웃음) 그런데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타인의 의사를 존중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나라인데, 질문자는 프랑스에 산다면서 어떻게 그렇게 편협한 생각을 갖게 되었는지 모르겠어요.(모두 웃음) 평범한 한국인 부모들은 인종차별을 떠나서, 다시 말해서 흑인이냐, 백인이냐를 떠나서 만약 자녀가 일본인과 결혼을 한다고 해도 찬성이 많을까요, 반대가 많을까요?”

“반대가 많아요.”(청중들)

"부모 입장에서는 기독교신자라면 같은 기독교신자끼리, 불교신자라면 같은 불교신자끼리 결혼했으면 좋겠고, 일본인이나 중국인보다는 같은 한국인이랑 결혼했으면 좋겠고, 외국인 중에서도 흑인이나 백인보다는 같은 동양인이랑 결혼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거예요.(모두 웃음) 부모들은 자녀들의 안정된 삶을 바라는 존재들이니까 그러는 거지, 꼭 흑인이나 백인을 차별해서 그러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질문자는 ‘아버지는 그런 한국사회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라고 존중해야지, 아버지의 생각을 바꾸려고 하면 안 됩니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살 필요는 없어요. 질문자는 질문자의 신념대로 살되 아버지가 반대하더라도 ‘예, 아버지 마음은 알겠습니다’ 하고 받아들이고, 만약 질문자가 흑인과 결혼하게 되더라도 ‘아버지의 생각과 다른 결혼을 하게 되어서 미안합니다. 그러나 아버지, 사람은 다 똑같습니다. 외양은 이미지일 뿐이에요. 흑인 중에도 훌륭한 사람이 참 많습니다’라고 말하면 됩니다.”

“질문자의 아버지: 그 흑인 청년이 훌륭한지, 아닌지 모르잖습니까."

“그거야 저도 모르죠.(모두 웃음) 질문자는 프랑스에서 사니까 잘 알 텐데, 프랑스나 유럽에는 전체 인구 중에 흑인 인구가 꽤 비중을 차지하지요?”

“예.”

“또 흑인들이 학계나 스포츠계나 예술계에 많이 진출해 있지요?”

“예."

“질문자는 그런 곳에 산 경험이 있고, 아버지는 흑인 얼굴도 보기 어려운 한국에서 살고 있어서 환경이 서로 다른데다가 질문자의 아버지가 부처님이나 예수님도 아닌데,(모두 웃음) 질문자의 견해에 아버지가 부처님이나 예수님처럼 다 동의해 주기를 바라면 안 되지요.

기껏 프랑스까지 유학 보내놓으니까 겨우 한다는 소리가 ‘아버지는 편협하다. 아버지 생각은 틀렸다’고 하네요.(모두 웃음)

자, 우리는 피부빛깔이나 종교, 또는 성별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동시에 사람마다 다른 기호도 존중해야 합니다. 즉 그가 남자를 좋아하든 여자를 좋아하든, 그가 일본사람을 좋아하든 흑인을 좋아하든, 그의 취향은 취향대로 존중해야 합니다.

만약 아버지가 ‘흑인은 나쁘다’고 하면 그건 문제가 되겠지만 ‘흑인이 싫다’는 그 사람의 기호나 취향까지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 것까지 우리가 통제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예를 들어 ‘한식은 좋고, 프랑스 음식은 나쁘다’고 하면 문제가 되겠지만 ‘나는 프랑스 음식보다는 한식이 더 입맛에 맞다’고 하면 그건 ‘옳다, 그르다’로 판단할 수 없는 거예요. 알았지요?”

“예,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모두 박수)

질문자가 가볍게 인사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웃음 가득한 얼굴이 한껏 자연스럽고 편안해보였습니다.

‘행복한 대화’를 모두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다시 ‘북한에 보낼 씨감자’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1000개의 씨감자를 구입하여 500개는 문경정토수련원에서, 400개는 두북 수련원에서, 혹은 100개는 직접 재배해서 실험을 해보자. 지난 번 것은 싹이 트지 않는 것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어떨지. 충분히 실험을 해 보고 북한에 지원해줘야 하거든. 그런데 감자는 모래땅에서 잘 되는데 이번에 빌린 밭은 붉은 밭이라, 어떨까 모르겠다.”

스님은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실험을 해서 일반 감자보다 바이러스 감염율이 적고 수확율이 높은 씨감자를 북한에 지원해 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게 느껴졌습니다.

불야성을 이루는 서울 도심에서 원을 이야기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일은 참 행복한 것 같습니다.

함께 만드는 사람들
임혜진 정란희 손명희 조태준

전체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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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긴

스님의 혜안에 오늘도 깨달음을 얻고 갑니다

2022-11-02 20:49:20

ㅇㅇ

난 부자들이 싫다

2019-05-16 23:23:37

이홍교

와..정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너무 소중합니다.♡

2017-03-16 19:5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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