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7. 04. 19 행복한 대화 - 충남학생교육문화원 편
인생 고민, 명쾌하게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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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아침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마치고 조찬 회의로 하루를 시작하였습니다. 회의를 마진 11시, 태국에서 슐락 시바락사(Sulak Sivaraksa) 박사님과 INEB(국제참여불교네트워크)의 사무국장인 무(Mou) 님이 평화재단으로 방문하여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슐락 박사님은 태국의 불교사상가이자 사회비평가로서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 가운데 한 분이시고, 1989년 INEB 설립을 주도하신 분이기도 합니다. 박사님은 한국의 불교 단체가 주최하는 '불교, 평화를 말하다'라는 대화마당에 기조연설을 하러 오셨는데, 스님과는 20년이 넘는 오랜 인연으로 공식 일정 전에 일부러 스님을 만나러 오셨습니다.



선물로 가지고 온 책을 전해주시는 슐락 박사님과 스님. 태국어판 깨달음과 한글판 깨달음
▲ 선물로 가지고 온 책을 전해주시는 슐락 박사님과 스님. 태국어판 깨달음과 한글판 깨달음

슐락 박사님은 이번에 INEB에서 출간한 스님의 <깨달음> 책의 태국어판을 선물로 전해 주셨습니다. 스님도 올해 84세이신 박사님께서 건강하게 해외 일정을 가질 수 있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면서 조촐하게 마련한 선물을 전하였습니다. 점심 공양 시간이 되어 평화재단에서 소박한 한식 밥상을 대접하였는데 어제 스님이 두북에서 직접 딴 엄나무 순과 갖가지 봄나물을 맛 보여드렸습니다. 두 분은 불교의 사회 참여와 사회 변화에 대한 역할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의논하기도 하였습니다.

슐락 박사님과 무 님과의 뜻 깊은 시간 이후에도 스님은 평화재단을 방문하신 손님맞이에 분주히 시간을 보내고 오후 5시가 되어 천안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천안 충남학생교육문화원의 소극장에서 마련된 오늘의 ‘행복한 대화’는 아담한 공간이라 청중과 스님과의 대화가 집중되었습니다.
모두 여덟 명의 질문자와 스님의 대화가 있었는데 그 중에 ‘인생의 고민에 대한 결정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을 실어봅니다.

“사람은 살면서 많은 갈등과 걱정, 고민을 하잖아요. 지금처럼 이렇게 질문해서 나름의 해결 방법을 찾을 수도 있겠는데요. 스님은 많은 사람들이 질문하면 어떤 질문에도 명쾌한 해답을 내려주시잖아요. 맞는 해답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요.”(모두 웃음)

“꼭 그 말을 해야 해요?”(모두 큰 웃음)

“아, 죄송합니다.”(질문자 웃음)

“사실, 그 말이 맞아요. 저는 대화할 때 맞는 답을 말하는 게 아니니까요.”

“죄송해요.(모두 웃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다름 아니라 살면서 많은 고민을 하고 사람들의 고민을 들을 수도 있을 텐데 스님처럼 명쾌한 답을 내리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스님처럼 명쾌하게 답을 하며 살 수 있을까요?”

“자기 문제예요, 남의 문제예요?”

“둘 다에요. 제 문제가 많겠죠.”

“내 문제라면 어떤 결론을 내도 괜찮아요.”

“...”(질문자 이해 못하고 침묵)

“어떻게 해도 괜찮아요. 아무 차이가 없어요. 예를 들어서 ‘내가 어떤 여자와 결혼을 하고 싶다’ 이럴 때 이 여자가 내 마음에 8, 90퍼센트 들면 망설일까요? 망설이지 않겠죠. 결혼한다고 결론이 쉽게 나기 때문에 저한테 안 물어요. 또 이 여자가 마음에 1, 20퍼센트밖에 안 든다고 해도 망설이지 않습니다. 안 한다고 이미 결론을 내리니까요.
그러면 저한테 묻는다는 건 ‘할까, 말까’ 고민한다는 뜻이에요. ‘할까, 말까’ 고민한다는 것은 하는 게 좋은 쪽이 48퍼센트쯤, 안 하는 게 좋은 쪽이 52퍼센트쯤 되었다가, 하룻밤 자고 나면 하는 쪽이 52퍼센트쯤이고 안 하는 쪽이 48퍼센트쯤 된다는 거예요. 이럴 때 스님한테 묻는다는 거예요. 이해가 되세요?”

“예!”(청중 대답)

“그런데 이런 경우, 저는 크게 보면 52 대 48은 양쪽 다 별 차이가 없다는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여러분은 1퍼센트라도 좀 더 나은 걸 찾으려니 머리가 아프고 결론이 안 나는데, 제가 보기에는 망설일 때는 크게 봐서 둘에 별 차이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결론을 내려도 사실상 큰 차이가 없어요.

그러면 왜 망설일까요? 결과에 대한 책임을 안 지려고 해서 그래요. 무책임성 때문에 망설이는 거예요. 50대 50이니까 하면 ‘안 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생기고, 안 하면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생기겠죠. 그러니까 어느 쪽을 선택했든 후회하게 돼요.
했으면 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안 했으면 안 한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해요. 돈을 빌렸으면 갚으면 되고, 갚기 싫으면 안 빌리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망설인다는 건 ‘빌리고 안 갚는 법’을 자꾸 생각한다는 뜻이에요. 그게 바로 ‘무책임성’입니다.

여러분들이 조금 더 인생을 살아보고 경험해보면 ‘아, 그건 이러나저러나 별 차이가 없다’ 하는 걸 알 수 있어요. 예를 들어서 여러분들이 중학교나 고등학교 다닐 때 평소 80점 나오던 수학 성적이 4월 월말고사에서 65점 나왔다면 학생 입장에서는 실망이 크겠죠. 그런데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의 삶을 돌아보세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중학교 2학년 때 월말고사 수학성적이 65점 나왔든 80점 나왔든 지금 자기 인생에 큰 차이가 있나요? 아무 차이가 없어요. ‘20점 나오던 사람이 100점 나왔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열 번, 내리 6년을 나왔다’ 이러면 조금 차이가 있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한 번의 월말고사 성적이 조금 잘 나오고 못 나온 것 정도는 전체 자기 인생 속에서 보면 아무 차이가 없어요. 대학 입학시험 떨어져서 재수할 때는 1년이나 차이나니까 엄청난 차이처럼 느껴지지만, 한 30년 살고 나서 돌아보면 그 1년 재수한 건 별 차이 안 나요.

그래서 망설일 필요가 없어요. 선택을 망설이는 것은 선택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책임을 안 지려는 마음 때문에 그래요. 그러니까 지은 인연의 과보를 달게 받아야 해요. 지은 인연에는 과보가 따르는데, 그걸 기꺼이 받아야 해요. 선택에 따라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에요.

예컨대 혼자 살기를 선택했다면 거기에 따르는 좋은 점이 있겠죠. 그러나 거기에는 나쁜 점도 있어요. 같이 살기로 결론을 내면 거기에 따르는 좋은 점이 있겠죠. 그러나 반드시 거기에는 같이 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 혼자 살 때는 생각 못 했던 많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걸 기꺼이 받아들여야 해요. 그걸 안 받아들이면 같이 살다가도 못 살겠다고 헤어지고, 헤어지고 나면 외로우니까 또 사람이 필요해서 사귀고, 같이 살면 다시 귀찮아져서 헤어지는 걸 반복하게 돼요. 이런 걸 ‘방황’이라고 하고, ‘가출’이라고 해요. 왔다 갔다 윤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사실은 어느 쪽을 선택하든 아무 걱정 없어요. 걱정은 무책임성, 즉 책임지기 싫어하는 것 때문에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무슨 질문을 해도 스님은 아무 걱정을 안 해요.(청중 웃음) 왜 그럴까요? 어차피 제게 묻는다는 건 벌써 어느 쪽을 선택하든 별 차이가 없다는 뜻이니까요.

‘제가 이혼을 하면 좋을까요, 안 하면 좋을까요?’ 이러는 사람은 지금 이혼하려는 마음과 안 하려는 마음이 반반이라서 물었겠죠? 90퍼센트쯤 하는 게 좋겠다고 결론 났다면 저한테 묻지 않고 혼자 결정했을 거예요. 이혼하고 싶은 생각도 가끔 있지만 아직도 이 남자가 좋다면 그런 경우 역시 저한테 안 물어요. 그래서 이혼 할지, 안 할지, 그 결정이 어렵지 않다는 말이에요.

남의 문제는 더 쉬워요. ‘몰라요!’라고 하면 돼요.(스님 웃음, 청중 웃음) ‘나도 몰라. 내 인생도 내가 모르는데 그걸 어떻게 알아?’ 이러면 돼요. 예를 들어 딸이 남자친구를 사귀어서 ‘엄마, 내 남자친군데 좀 봐 줘.’ 이러면 ‘몰라!’라고 하면 돼요.

‘에이, 엄마는 그래도 살아봤잖아.’
‘그래도 네가 같이 살 남잔데 내가 어떻게 알아?’
‘그래도 엄마, 좀 봐 줘.’
‘내가 남자 보는 눈이 있으면 너희 아버지 같은 사람을 만났겠니? 그러니 나한테는 묻지 마.’(청중 웃음)
이렇게 하면 되는데 ‘그 친구는 관상이 어떻다, 키가 어떻다, 얼굴이 어떻다’ 이런 식으로 나서서 간섭하니까 시끄러워요. 그러니까 남이 묻는 말에는 무조건 ‘아이고, 잘 몰라’ 이러세요. 정말 모르잖아요. 알아요, 몰라요?”

“몰라요.”(청중 대답)

“그래요, 정말 모르는 거예요. 질문자가 아까 ‘맞는 답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이라고 했는데, 애초에 스님은 맞고 틀리는 것과는 아무 관계없이 대화하는 거예요. 대화하면서 질문자가 생각하기에 ‘스님 말이 맞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질문자가 이혼하고 싶다면 저하고 얘기하다 이혼하는 게 낫겠다고 스스로 결론을 내리는 것이고, 안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자기 스스로 결론 내리는 거예요. 자기가 결론을 내니까 스님 말이 맞는 것 같이 느껴지는 거예요. 저는 하라거나 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는데 자기 혼자 ‘스님이 하지 말라고 했다’, ‘스님이 하라고 했다’ 이렇게 결론 내고 무릎을 치는 거예요.”(청중 웃음)

“스님 말씀은 세상에 정답은 없고 자기가 선택한 것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씀이시죠?”

“그래요.
여러분, 사는 게 쉬워요, 어려워요?”

“어려워요.”(청중 대답)

“어려워요? 토끼보다도 못하고 다람쥐보다도 못하네요.(청중 웃음) 산에 가보면 다람쥐도 잘 살고 토끼도 잘 살아요. 그런데 다람쥐나 토끼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 왜 못 살까요?
그러면 하나 더 물어볼게요. 사는 것과 죽는 것 중 어느 게 더 쉬울까요?”

“...”(청중 웅성임)

“내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잖아요. 이 상태에서는 내가 사는 게 쉬울까요, 죽는 게 쉬울까요?”

“사는 게 쉬워요.”(청중 대답)

“그래요. 죽으려면 지금 밧줄 구하러 가야 해(청중 웃음), 높은 곳에 줄 매야 해, 거기에 목 걸어야 해, 주위에서 말리면 말리지 말라고 해야 해, 일이 엄청나게 많아요. 수면제 먹고 죽으려면 그것도 쉽지 않아요. 수면제 구해야 해, 약국 한군데에서 많이 구하면 의심을 사니까 두 알씩 여러 약국을 다니면서 구해야 하잖아요. 또 먹고 의식을 잃었다가 나중에 보면 누가 병원에 싣고 가서 치료했을 수도 있어요. 죽은 줄 알았더니 안 죽고 살아 있는 일이 엄청나게 많다니까요.(청중 웃음) 그런데 사는 건 아무 일이 없어요. 밧줄 구하러 가지 않아도 되고, 약 구하러 가지 않아도 되고요. 그래서 사는 게 쉬우니까 사는 거예요.

그런데 이제 병이 나든 늙었든, 죽을 때가 돼서는 또 죽는 게 쉬울까요, 사는 게 쉬울까요? 죽는 게 쉬워요. 그래서 죽는 거예요. 그때 그걸 죽지 않고 살려고 하면 산소호흡기 달아야 해, 링거 꽂아야 해, 일이 엄청나게 많아요. 그래서 병원비가 많이 나오는 거예요.(청중 웃음)

그러니까 사는 건 어려운 게 아니에요. 쉬우니까 사는 거예요. 물이 낮은 데로 흘러가듯, 우리가 지금 살아 있다는 건, 사는 게 쉬워서 사는 거예요. 쉬운 대로 살죠. 이게 다 여러분들이 너무 복잡하게 생각해서 그런 거예요. 생각이 복잡하지 사는 건 쉬워요. 아무 일도 아니에요.

이 세상에 ‘내 남자’, ‘내 여자’가 정해져 있을까요? 정해져 있지 않아요. 같이 살면 내 남자고 내 여자예요. 그런데 마치 그게 정해져 있는 것처럼 착각들을 해요. 그러니까 눈을 맞추고 서로 고르고 일주일이든 열흘이든 3년이든 사귀어보고 결혼하나, 그냥 남자 여자 줄 세워서 짝을 짓거나, 아무 차이가 없어요.(청중 웃음)

조선시대에는 결혼할 때 상대방 얼굴도 못 보고 부모가 짝지어주는 대로 그냥 살았지만 그래도 다 살아졌어요.

이처럼 이런 문화도 있고 저런 문화도 있어요. 제가 전 세계를 다 돌아다니면서 보면, 다 그렇게 태어나서 그렇게 알고 그렇게 지내면 그게 곧 진리예요. 우리가 보기엔 무슬림이 이상한 것 같죠? 자기들은 태어나서부터 그런 풍습 속에서 살기 때문에 그렇게 사는 거예요. 인도 가서 힌두교도들 하는 거 보면 이상해 보이죠? 그 사람들은 그렇게 태어나서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거예요. 원래 무언가가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그렇게 형성이 되면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게 형성된 것 이전으로 돌아가 버리면 아무것도 없어요. 여러분들이 그런 범주 안에 갇혀서 너무 복잡하게 사는 것뿐이에요.”

“아, 감사합니다.”(청중 박수)

질문은 약간 모호하게 시작했지만 누구나 살면서 가지게 되는 바람이라고 할까요? 내 인생에서 생기는 선택에 대해서 뭔가 확신을 가지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그 지점을 스님께서 짚어 주었습니다.
강연을 듣고 나오는 몇몇 사람들에게 반응을 물어보았는데 ‘결정은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 책임을 져야한다’는 스님의 말씀이 마음에 많이 남는다는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스님은 강연 장소의 사정 상 9시까지 꼭 마쳐야 해서 마지막 질문자와는 깊이 대화하지 못하고 간단하게 마무리 하는 것을 아쉬워하며 강연을 준비한 자원봉사자들을 격려하고 봉화수련원으로 출발하였습니다. 봉화수련원으로 달려가는 동안 스님은 “봉화에는 과실수를 심어야겠다.” 하였습니다. 내일은 봉화수련원에서 뵙겠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임혜진 손명희 정란희 조태준

전체댓글 12

0/200

고경희

모르면서 늘 아는척 하는게 병이고, 돈은 빌리고 안갚는 방법을 연구하느라^^ 고생이 많습니다. 정신차려봅니다 ()

2017-07-15 09:33:27

^^^^

[...원래 무언가가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그렇게 형성이 되면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게 형성된 것 이전으로 돌아가 버리면 아무것도 없어요. 여러분들이 그런 범주 안에 갇혀서 너무 복잡하게 사는 것뿐이에요.”] 스님의 태국어판 깨달음도 멋지네요^^마지막마무리 글올리신 분의 말씀에서,결정은 아무렇게나 해도된다 라고,참석하신 분이 말씀하셨다는..아무렇게나..는 아닐것입니다..어느쪽이든 반반에서 오십보 백보일때를 말하는 경우이겠죠.무조건 어느쪽이든 '아무렇게나'결정하라는 의미는,스님의 말씀의 바른 해석은 아닐것이라 느껴져요^^

2017-04-23 02:00:50

차혜숙

감사합니다~^^

2017-04-21 16: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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