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7. 04. 23 경주 남산 순례 봄 불대 저녁반
부인의 잠자리 거부로 결혼 생활이 힘들어요

화창한 아침입니다. 오늘은 어제에 이어 봄 불교대학 저녁반과 청년들의 남산 순례가 있는 날입니다.
새벽기도 후 스님은 밭에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배추를 솎아주고 주변 정리를 한 다음 솎아낸 채소로 아침공양을 하였습니다. 공양 후, 간단히 도시락을 준비하여 남산으로 향했습니다.

불대생들이 법사님들과 남산 순례를 할 동안 스님도 남산의 새로운 코스를 답사하기 위해 새갓골로 갔습니다. 새갓골-봉화대-산정호수-이영재-통일암을 코스로 가면 불교대생들이 통일암에 도착하는 시간에 맞추어 ‘숲 속 너른마당’에서 불대생들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달래 물결이던 새갓골에는 진달래꽃이 지나가고 초록 잎들이 싱그러움을 더해주고 있었습니다. 초록잎들 속에서 드문드문 연달래 군이 기슭에 보이면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스님은

“나무를 보고는 진달래인지 연달래인지 구별하기가 좀 어렵지만 잎을 보면 진달래와 연달래의 차이를 확연하게 알 수 있어. 잎이 크고 동그스름한 것은 연달래, 작고 갸름한 것은 진달래야.”

라고 잎을 보고 연달래와 진달래를 구분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습니다.


작고 갸름한 것은 진달래 잎, 크고 동그스름한 것은 연달래 잎
▲ 작고 갸름한 것은 진달래 잎, 크고 동그스름한 것은 연달래 잎

스님은 대중들과 함께 이곳을 순례할 때 소요될 수 있는 시간을 예상해 보고 잘못 들 수 있는 길, 주의해야 할 지점도 알려주었습니다. 빠른 걸음으로 돌아보고 통일암으로 내려오니 10시 40분, 조금 여유 있게 도착하였습니다. 스님은 마침 주변 진평왕릉에서 모임을 하고 있는 경주불교학생회 동문회에서 뵙기를 청하여 잠시 다녀왔습니다.


11시쯤, 스님은 아침에 준비한 도시락으로 점심 공양을 한 후 들어오는 대중들을 맞이하였습니다.
용장골, 삼릉골, 포석골, 탑골, 봉화골의 다섯 코스로 나누어 순례를 한 대중들이 법사님과 함께 속속 도착하였습니다.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스님은 대중들 한 명 한 명을 다 악수하면서 반갑게 맞이하였습니다. 대중들은 놀라기도, 반가워하기도, 약간 긴장하기도 하면서 스님과 악수를 나눴는데 악수를 하고 나서는 대중들의 얼굴이 밝아져서 보고 있기만 해도 재밌고 좋았습니다.

대중들이 다 모이자, 지역별 인사를 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제주에서 세 분, 미국 휴스톤에서도 한 분, 총 네 분이 함께하여 더욱 뜻 깊었습니다.

제주에서 오신 세 분의 즉석 합창
▲ 제주에서 오신 세 분의 즉석 합창

인사를 나눈 뒤,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는데, 오늘은 부부관계가 어려운 거사님의 고민을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저는 아이가 둘 있고 결혼 15년차인데 아내와의 결혼 생활이 지금껏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아내는 대학 과 선배였고 저보다 한 살이 많습니다. 오랫동안 사귀다가 결혼했는데, 결혼함과 동시에 아내가 완전 딴 사람이 되었습니다. 매일 술을 마셔서 제가 퇴근하면 거의 늘 취해 있고, 늘 저에게 화가 나 있었습니다. 저와는 말도 않으려 하고 제 근처에 가까이 오지도 않으려 했습니다. 말을 걸면 화부터 내고, 왜 화가 났냐고 물어보면 화 난 거 없다고 말하지만 화는 이미 나 있었습니다. 어찌어찌 해서 아이는 둘 낳았지만 둘째를 낳고 나서는 아예 잠을 따로 자기 시작했습니다. 같이 자는 것을 일부러 피하는 모습도 많이 보였고, 그때부터 사실상의 별거가 시작됐습니다.

그러면서 사소한 것으로 화를 내고 한두 달씩 냉전으로 진행하는 생활을 10년 넘게 반복했습니다. 제가 ‘외롭다, 혼자 자는 게 무섭다’라고 해도 위로의 말은커녕 오히려 무시했습니다. 부부관계도 거절해서 제 자존심이 많이 상했고 상처를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육아 때문에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12년 동안 그러니 저도 더 이상은 요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제가 정신과 치료나 부부클리닉 상담이라도 받아보자고 권해도 화만 내고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이혼하고 싶다는 말은 한 적 없습니다.

그러던 중 4년 전에 아내가 유방암에 걸렸습니다. 항암치료를 하고 5년 동안 호르몬 치료를 해야 하는데 여성 호르몬을 없애는 치료라고 합니다. 이렇게 4년이 지나서 아내는 부부관계가 불가능한 몸 상태가 되었습니다. 병에 걸리기 전부터 부부생활도 거의 없었고 잠도 따로 자고 대화도 거의 없어서 정도 별로 들지 않은 채 살아왔는데, 근래에는 집착도 많이 합니다. 그 동안 아내가 저를 대해왔던 태도에 제가 미워하는 마음이 자꾸 생깁니다. 다른 것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하고 이해한다고 해도 성적인 요구가 해소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원망이 생깁니다. 아내가 싫어지는 마음이 자꾸 드는데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할까요?”

“머리 깎고 스님이 되면 어때요?(청중 박장대소) 지금 딴 여자를 구한다면 아내하고 자식들이 아빠를 욕할 거예요. 그러니 지금 제일 좋은 길은 일단 머리 깎고 스님이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한 3년쯤 스님 생활을 하다가 어떤 여자의 꼬임에 빠져서 파계를 하고 나가면 돼요.(청중 웃음)

(청중에게) 지금, 심각한 문제죠?”

“네!”(청중 크게 대답)

“출가해서 스님이 된 것도 아니고 아직 젊은데 아내가 부부관계를 거부하면 서로 힘들겠네요. 그러면 이제 질문자가 자기의 입장을 선택하는 수밖에 없어요. ‘나는 부부관계를 꼭 해야 한다’, 이렇게 너무 고집할 필요는 없어요. 질문자가 나는 출가한 스님이다 하고 마음을 바꾸면 되잖아요.(청중 웃음) 현재 있는 가정을 지키는 선에서 그렇게 하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아내한테 솔직하게 얘기하는 거예요. ‘나는 아직 젊고 남자니까 부부관계를 하고 싶다. 내가 당신을 놔두고 다른 여자를 만난다면 죄의식이 들 텐데, 당신과는 해소가 안 되고 그러니 이혼을 하든지, 별거를 하고 내가 여자 친구를 사귀는 것을 허용해주든지, 아니면 당신이 조금 힘들더라도 가끔이라도 부부관계를 가져주든지 하면 어떻겠냐?’ 이렇게 한번 의논을 해보면 어때요? 지금껏 그런 말은 해봤어요? 하니까 아내가 뭐라고 해요?”

“생각하는 게 그거밖에 없냐고...”(청중 웃음)

“심리적으로 해석을 하자면 부인은 성에 대해 뭔가 부정적인 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네요. 과거에 성추행을 당했을 수도 있고요. 어쨌든 성에 대해서 부정하게 여길 만한 어떤 상처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성을 거부하는 것 같아요. 아니면 무성애자일지도 모릅니다.

사람에게는 성적 지향에 따라 네 가지 경우가 있어요. 첫 번째, 이성에 대해서 성적 호기심을갖는 이성애자입니다. 여러분들 대부분은 이성애자예요. 두 번째, 이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성적 호기심이 없고 동성에 대해서 성적 호기심이 있는 동성애자입니다. 세 번째가 이성이든 동성이든 양쪽 모두에게 성적 호기심이 있는 양성애자입니다. 네 번째가 이성이든 동성이든 아무런 성적 호기심이 없는 무성애자입니다.
이 성적 지향은 개인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성적 지향이 태어날 때부터 이렇게 태어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쪽으로 요즘은 나아가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 성적 소수자에 대한 이해는 부족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눈에 잘 띄지 않아서 그렇지 이런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수가 무성애자입니다. 무성애자는 성적 욕구가 없으니까 출가해서 스님이 되거나 신부가 되면 좋은 사람들이에요.(청중 웃음)

그런데 이런 사람이 결혼을 하게 되면 결혼 생활이 힘들어요. 여자가 이런 경우에 결혼을 하게 되면 남편이 굉장히 힘이 들죠. 본인은 성적인 호기심이 전혀 없으니까 상대를 성관계를 요구하면 귀찮을 수 있겠지요. 그리고 성적인 상대의 요구를 부정하게 여길 수 있어요. ‘왜 그런 짓을 해야 하느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어요.

또 남자가 그런 경우에는 아내가 힘들죠. ‘여자로서 취급을 못 받는다, 우리 남편은 나를 여자로 안 대해준다’ 이렇게 느낄 수 있겠지요. 그래서 따로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마음으로는 성 관계가 싫어도 육체적으로는 이상이 없기 때문에 아기가 생기고 외적인 부부 관계에는 이상이 없습니다. 이건 정신적인 문제니까요.

그래서 이 문제는 질문자가 찬찬히 부인을 관찰해봐야 해요. 아내가 무성애자이거나, 아니면 무성애자는 아니더라도 말 못할 성적 콤플렉스나 상처를 겪어서 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잠자리를 거부하는 것일 수 있으니까 잘 살펴보세요. 어릴 때 성추행을 당한 경험이 있거나 남자와의 관계에서 성병 같은 게 옮아서 성에 대해서 굉장히 불결하게 생각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요.

그러니 그걸 찬찬히 살펴서 솔직하게 얘기를 해보세요. 면박을 듣더라도 솔직하게 얘기해야 해요. ‘여보, 나는 스님도 아니고 신부도 아니라서 머릿속에서 그런 생각이 떠나지를 않는다. 별거나 이혼을 해서라도 이 문제를 합리적으로 처리하고 싶다’ 이렇게요. 부부 관계를 부정하면 이혼의 사유가 됩니다. 그렇다고 ‘아내가 나쁜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다만 이것은 이혼 사유가 된다는 걸 알아두세요.
애들은 몇 살이에요?”

“중학교 1학년과 초등학교 4학년입니다.”

“그러면 이제 질문자가 선택을 해야 해요. 자녀를 둔 부모로서의 의무를 다 하려면 아이가 만 18세, 19세가 될 때까지 뒷바라지를 해야 해요. 지금 아이들이 초등학교 4학년과 중학교 1학년이니까 그때까지 가정을 유지시켜서 아이들에 대한 의무를 다하든지, 아니면 아주 어린애도 아니고 이 정도 컸으니까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질문자가 부인한테 생활비와 양육비 다 지원해주는 조건으로 별거나 이혼을 해서 문제를 풀든지, 아니면 스님이 됐다고 생각하고 그냥 살든지, 자기 인생의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자기의 요구가 정당하다고 해서 그걸 반드시 해소 해야 하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 질문자의 그 요구가 나쁘거나 부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부인이 거부하더라도 얘기를 하세요. 질문자는 지금 부부 관계가 없어 불편하지만 부인이 지금 성적으로 상처가 있거나 무성애자라면 질문자가 불편한 줄을 모를 수 있어요. 그러니까 그런 아내를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그런 아내를 이해하라고 해서 꼭 그런 아내를 위해서 살라는 건 아니에요. 서로 다르다는 걸 알고 그 다름 위에 자기 인생을 설계해야 한다는 거예요.”

“네.”

“여기서 두 가지를 생각해 봐야 해요. 예를 들어 결혼을 해서 사는 부부 중에서 아내가 이렇게 무성애자라든지 특별한 성향이라면 아내에게는 성관계를 갖지 않을 권리가 있어요, 없어요?

“...”(청중 침묵)

“성관계를 갖지 않을 권리가 있어요. 결혼했기 때문에 반드시 부부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주장이 옳은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런 것을 거부하면 이혼 사유가 됩니다. 그러면 이혼을 해주는 게 좋아요. 각자는 각자의 성향을 지킬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의 요구를 다 못 받아들이는 것은 이혼 사유가 되니까 이런 때는 이혼을 하고 친구로 지내는 게 서로를 위해 훨씬 더 좋다고 말할 수 있어요. ‘결혼을 했기 때문에, 혹은 아내이기 때문에 부부 관계를 의무적으로 가져야 한다’, 이렇게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즉문즉설을 마치자 염불사지로 가서 회향식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어제와는 달리 내려갈 때 혼잡하지 않도록 내려가는 길 안내를 상세하게 하고 스님이 선두에서 다시 한 번 안내하였습니다.

염불사지에서 전체 대중이 간절하게 발원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발원의 시간 후, 스님은 다시 한 번 행사준비를 위해 애쓰신 대중들을 소개하여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코스를 안내해 주신 법사님들께도, 길잡이를 해준 지역 준비단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사회를 한 법륜스님에게도, 순례하느라 걷고 웃고 앉아서 졸기도 한 스스로에게도 박수를 보내자고 스님이 멘트를 하자 대중들이 웃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역별로 단체 사진을 왁자지껄하게 찍었습니다.
파란 하늘에 밝은 햇살이 더 없이 좋은 하루였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임혜진 손명희 정란희 조태준

전체댓글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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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부부관계에 문제가 있다고 배우자를 공개하는 심리는 결국
난 지금 외롭다고 공개 구애하는 거잖아요. 이면에는‥

2017-04-29 10:13:33

김지혜

지혜로운 말씀 감사합니다

2017-04-27 19:05:03

구애

성적인 부분을 쉬쉬하고 겉으론 무관한 것 처럼 행동하면서 뒤로 지저분한 짓을 하는게 문제죠. 이제 우리사회도 꺼내서 이야기할 수준이 되었다고 봅니다.

이렇게 꺼내서 이야기를 해 주신 덕분에 미래세대는 이런 문제에 대해 더 공개적이고 깊이 있게 이해하고 고민할 수 있게 될 것 입니다.

5년이면 그동안 힘드셨겠네요. 성적인 부분이 먹고 자는 문제처럼 안하면 죽는건 아니지만, 만족이 안되면 계속 집착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막상 해소가 되면 오히려 무관심해지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많은 연구를 통해서 봐도 성관계가 부부의 친밀함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로 이혼 하기도 쉽진 않은 것 같네요. 저라면 일단 애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는 최소한 같이 살고 그동안은 그냥 자위 등으로 해소하면서 살 것 같습니다. 아내가 옆에 있어서 그렇지 원래 결혼을 안 하고 혼자사는 사람을 생각하면 어쩌면 큰 문제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성적인 불만족으로 오는 아내에 대한 내 감정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아내의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여도 다른 측면에서 연민하고 사랑할 부분도 있을 겁니다.

2017-04-26 23: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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