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7. 11. 22 즉문즉설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 다우홀
아들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엄마

배추를 씻은 어제에 이어 오늘은 김장의 하이라이트, 양념 버무리는 날입니다. 특히, 오늘은 24절기 중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이었는데 정말 눈이 올 것처럼 흐린 날씨라 더욱 추웠습니다.

문수팀 행자님들과 최보살님은 추운 날씨에도 양념 버무리기 준비를 아침부터 서둘렀습니다.
최보살님은 미리, 김치를 먹을 사람들을 고려하여 젓갈이 들어간 양념과 젓갈이 들어가지 않은 양념으로 구분하여 준비하였습니다.

문수팀 행자님들은 ‘양념은 너무 많이 버무리지 않는다, 배추 잎 두 장에 한 번 꼴로 김치 속을 넣는다, 마지막 배춧잎으로 포기를 잘 싼다’는 최보살님의 버무리는 방법을 설명 듣고 앞치마와 토시, 장갑으로 단단히 복장을 갖추고 ‘김장 양념 버무리기’를 시작하였습니다.

한창 버무리기를 하고 있던 오후 12시 50분, 어제 인천 강연을 마치고 서울에서 조찬모임을 가진 후 서울을 출발한 스님은 해외 일정을 마치고 한 달여 만에 한국에 입국한 선주 법사님과 함께 두북에 도착하였습니다.

스님도 김장 하는 일손을 도우려고 서둘러 내려오는 터라 점심공양을 하지 못해, 김장하던 식구들과 함께 늦은 점심 공양을 했습니다.

점심 공양을 마치고 스님도 토시와 앞치마, 고무장갑을 끼고 양념 버무리기에 나섰습니다.

“스님, 양념이 너무 많습니다.”
“스님, 김치 속을 너무 많이 넣습니다.”

스님은 행자님들에게 ‘양념 노하우’를 계속 안내(?)받으면서 양념버무리기가 점점 익숙해졌습니다.

스님은 한편으로, 선주 법사님에게 뿌리 부분에 붉은 선이 있는 배추와 배추 끝이 오그라들어 말라 버린 것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선주 법사님은 이미 지리산에서 몇 해 동안 농사를 지은 경험이 있는 터라, 배추를 살펴보고 사진을 찍어 주변의 배추 전문가에게 전화로 문의해보았습니다. 배추 끝이 오그라들어 말라버린 것은 ‘배추를 심었던 밭에 칼슘과 붕산 성분이 부족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하고, 뿌리에 붉은 선이 있는 것은 ‘병든 것이 아니라 원래 붉은 선이 있는 신품종이라고 했습니다.


스님은 선주 법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다행이다. 병든 배추인줄 알고 걱정했는데 병든 것은 아니었구나. 어쩐지 뿌리에 붉은 선이 있는 배추는 맛이 참 좋더라.”

하였습니다. 궁금했던 배추의 현상에 대해서 이유를 확인하니 마음도 가뿐했습니다.

스님은 저녁에 부산에서 강연이 예정되어 있어 일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서둘러 주변 정리를 하였습니다. 김장 김치를 저장할 수 있도록 작년에 뒤란 땅을 파서 묻어 두었던 독도 깨끗하게 닦고 김장에 사용하고 남은 무도 두 포대를 따로 챙겼습니다. 활동가들에게 스님이 직접 농사지은 무라고 맛보여 줄 것이었습니다.


또, 워싱턴 김순영 국장님이 보내준 전기톱으로 쌓여있던 땔나무들을 아궁이에 넣기 좋은 크기로 잘랐습니다. 충전식인 전기톱은 밧데리가 모자라 땔나무 정리를 시작하기도 전에 꺼져버렸습니다.

“땔나무를 가지런하게 해둬야 하는데, 지금은 안 되겠구나. 한 동안 두북에 내려올 수 없어서 주변 정리를 해둬야 하는데 시간이 없네.”

스님은 시간을 확인해가면서 바삐 움직였습니다.

4시, 스님은 최보살님께 젓갈을 넣지 않는 김치와 젓갈을 넣은 김치를 각각 부탁하였습니다. 내일 INEB 행사로 대만에 가는데, 참가하신 분들에게 ‘한국의 김장 김치’를 맛보여 드릴 참입니다.

1시쯤 두북에 도착한 스님은 3시간 반만에 다시 다음 일정인 부산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서울 공동체 식구들에게, INEB 손님들께, 활동가들과 나눌 무와 김치를 트렁크에 싣고 말입니다.

저녁 7시부터는 6.25 전쟁 시 임시정부로 사용했고, 부산지방법원이었던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에서 즉문즉설이 열렸습니다.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늦가을이 절정을 이루며 부산 시민들을 환영했습니다. 미래를 설계하는 청춘들의 상아탑인 대학교를 졸업하고도 한참 지났을 어른 600여 명이 캠퍼스에 모였습니다. 법륜스님의 행복 강연을 듣기 위해 부산 서부권 지역의 시민들이 찾아왔습니다. 포항 지진에 수능 연기로 분위기가 어수선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산 시민이 자리를 꽉 채워주었습니다. 참석하지 못할 100가지의 이유보다 꼭 참석 해야 할 간절한 한 가지의 이유로 밝은 분위기로 강연장을 메워 주었습니다.

50명의 부산지역 행복학교 봉사자들이 환한 미소와 친절한 말씨로 강연장을 찾아온 청중들을 맞이합니다.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합니다. 시간이 다 됐는데도 강연좌석이 조금 비어있어 약간 긴장했지만, 강연 시작과 함께 바로 다 채워지고 뒷자리에 서서 관람할 정도로 열기가 넘쳤습니다. 끝날 때까지 자리의 이동이 없을 정도로 최고의 집중을 보인 최적의 강연이었습니다. 총600명이 참석했습니다.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나왔습니다.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는 저에게 삶의 희망을 걸었습니다.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의대를 가라고 합니다. 저는 그 정도 능력이 안 되었고, 아버지는 의대에 못 들어간 것에 대해 실망을 하다가 술로 세월을 보내다 얼마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결혼을 했지만 27년 동안 연상녀를 만나며 나름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갑자기 연상녀에게 새로운 남자가 생겨 헤어지자고 합니다. 이 현실을 감당하기 힘든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나이가 들면서 자신감이 떨어지고 자꾸 위축됩니다. 주위에서는 ‘덩칫값도 못한다’고 합니다. 우울증세까지 나타나는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행복이 무엇인지 정의를 내려주십시오. 어떡하면 스님처럼 현명하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아들의 결혼식을 카톡을 보고 확인했습니다. 7년 전부터 같이 살지 않았지만 약간 서운한 마음이 듭니다.”
“20살 대학생입니다. 가정형편이 어렵고, 왕따를 당하는 등 어려운 시절을 보내서 그런지 부정적인 생각이 강합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스님은 육식하면 안 되는지, 종교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 중 결혼의 의미를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된 5번째 질문을 소개하겠습니다.

“아들이 지난 주에 결혼을 했는데, 저는 그 사실을 카톡 사진을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아들하고는 따로 살았어요?”

“네, 지난6년 동안 따로 살았어요.”

“왜 따로 살았어요?”

“제가 빚이 생기고 몸이 아프니까 남편이 이혼을 하자고 해서 결국 제가 친정으로 쫓겨났어요.”

“빚은 질문자가 진 거예요?”

“네.”

“어쩌다가 빚이 생겼어요?”

“저는 남편한테 생활비 한 번 받아본 적이 없어요. 평소 생활도 모두 제가 번 돈으로 했어요. 그러다가 투자를 잘못하는 바람에 집이 어려워졌어요. 아마 남편은 집도 없어질까봐 걱정을 한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질문자 나이가 몇인데 친정을 찾아요?”

“(질문자 웃음)”

“그냥 월세방 하나 얻어서 살면 되지 어쩌다 친정으로 가게 되었어요?”

“아버지도 혼자 계셔서 친정으로 오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저는 작년에 와서 27년 다니던 공무원 직에서 명예퇴직을 하게 되었어요.”

“공무원 하던 사람이 무슨 돈을 그렇게 크게 잃을 일이 있었어요?”

“제가 투자를 잘못한 것도 있고, 친척 오빠한테 떼인 것도 있고 그래요. 돈을 잃는 문제가 생기다보니... 그렇게 작년에 명예퇴직을 하게 되었는데 그 일이 있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남편은 술병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아들하고는 얼마 전에 카톡을 하게 되었는데, 거기 올라오는 사진들을 보면 애인이 있는 걸 자연스레 알게 되잖아요. 그래서 여자 쪽에서 엄마를 만나보자는 이야기는 안 하더냐고 물었더니 되려 ‘그러면 결혼 안 할 수도 있어요’ 라고해요. ‘나도 외롭지 않으려고 에어비앤비 다니면서 외국에서 온 친구들 사귀고 있어’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 뒤로는 카톡에 말이 없어요.”

“그 이야기는 누가 한 거예요?”

”제가 했어요.”

“아들한테요?”

“네.”

“아들한테 그런 이야기를 왜 해요?”

“(질문자 웃음) 나는 잘 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 나는 숙박도 잘 하고 사람들도 잘 사귀고 있다는 뜻으로요. 그러다가 지난주에 카톡을 보게 되었는데 결혼식을 성대하게 올린 사진이 있었어요. 그 사진을 보고 당장 ‘힘찬 출발을 축원한다, 문제가 있으면 찾아 와도 좋지만 스스로 해결하면 더 좋지’라는 축하메시지를 보냈어요. 동생들한테도 같이 축하 메시지를 보내자는 말도 했어요.

그런 아들은 올해 32살인데, 아이가 유머러스하고 사람들한테도 잘하는 편이에요. 고모부 회사에서 크레인 운전을 하고 있는데… 저는 크게 문제가 없는 것 같기도 한데, 결혼식과 관련해서는 다른 사람이 스님께 한 번 여쭤보라고 해서 질문 드리게 되었어요.”

“주변에서 물어보라고 했다고요?”

“네.” (청중웃음)

“숙박 잘 하고 사람도 사귀면서 잘 지내는데 뭘 물어볼게 있어요?”

“…”

“오늘 사연을 말씀하셨는데 그 중 어떤 점이 가장 마음에 걸려요?”

“일반적으로 그래도 결혼식같이 큰 일이 있으면 혼자 있는 엄마라도 그 자리에 모시지 않나, 엄마가 결혼식에 가지 않았다는 것이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조금 그럴 수 있잖아요.”

“결혼식은 나를 위한 거예요, 아들을 위한 거예요?”

“아들을 위한 거죠.”

“그러면 아들을 위해서 결혼식에 오라고 하면 가면 되고, 가지 않는 게 아들을 위해서는 더 좋다고 하면 아들을 위해서 안 가면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지금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보면 결혼식은 질문자를 위해서 하는 것 같아요.(청중 웃음)

아들의 결혼식은 아들을 위한 거잖아요? 그러니 참석하는 게 아들한테 좋다고 하면 바쁘더라도 참석 해야 하고, 참석하지 않는 게 아들한테 더 좋다고 하면 아무리 가고 싶어도 안 가는 게 좋아요.

결혼식은 아들의 행복을 축하하는 자리예요. 아들 입장에서는 혼자 계시는 어머니라서 그랬을 수도 있고, 또 집안의 사정을 상대방에게 다 알리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 사정을 다 알리면 여자 쪽에서 반대할지도 모른다고, 똑똑한 아들이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서 결정했을 거예요. 그러니 엄마한테 이야기를 하고 못 오게 하면 섭섭해 하실 것 같으니 그냥 알리지 않고 결혼을 했다, 고 생각하면 결혼하는데 나한테 도움을 청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잘 된 일입니다.

막상 참석한다고 해도 남편은 작년에 돌아가셨으니 옆에 빈자리를 두고 거기에 앉아있기도 조금 그렇잖아요. (질문자 웃음) 그러니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들더라도 ‘잘 된 일이다’하고 생각할 일이에요. 그리고 다른 사람이 여기에 대해 뭐라고 하면 ‘엄마가 집을 나와 있으니까 그렇게 했나보다’하고 생각하면 되죠.

여기서 핵심은 결혼식을 어디까지나 아들을 위한 것이지 나를 위한 자리가 아니라는 점이에요. 그러니 가는 게 아들한테 좋으면 가고, 안 가는 게 아들한테 좋으면 안 가는 거예요. 아들의 결정을 믿어야죠. 아들이 생각했을 때 내가 안 가는 게 더 좋다고 판단했으면 그게 맞는 결정이라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좋아요. 질문자를 위한 결혼식이었으면 섭섭할 수 있지만 아들을 위한 결혼식이잖아요. 질문자는 자기 남자를 구해서 결혼할 생각을 해야지 왜 남의 결혼식에 가려고 해요? (질문자 웃음)

아들이 결혼을 하든 말든 그건 아들의 일이지 질문자가 관여할 일이 아니에요. 혹 부러우면 이제 남편도 돌아가셨으니 남자친구를 사귀면 되지, 섭섭해 할 필요는 없어요. (청중 웃음과 박수)”

“(힘찬 목소리로) 네, 알겠습니다!” (청중 박수)

강연이 정리하면서 스님은 닫는 말씀을 했습니다.

“1960년 당시 국민소득이 1인당 100불이었는데, 지금은 3만 불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경제적 상황이 300배나 좋아졌는데, 과연 300배나 행복해졌는지 되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전에는 인생의 목표가 권력을 잡는 것이라 생각했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는 미래는 ‘얼마나 행복하냐’가 인생의 최고 가치가 될 것입니다.”

오늘 강연을 기록한 사하정토회 희망리포터 조재범입니다. 내 주머니 속에 있는 행복을 발견하지 못한 채 찾으러 떠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조금만 미소를 지으면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음을 오늘도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에서 확인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강연장을 찾았습니다.

행복은 다른 사람의 시선 속이 아니라 바로 나의 마음에 있습니다.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입니다. 좀 더 나답게, 자유롭게 살았으면 합니다. 충분히 그럴 자격이 주어졌으니까요. 모두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조재범, 조태준, 김사문, 문수팀

전체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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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희

아들의 결정을 믿어야죠~ 맞습니다^^

2017-11-26 09:11:31

정지나

감사합니다. 스승님^^

2017-11-25 15:24:09

묘각심

기록해주신, 사하 정토회 담당자분도 멋지시고 또한 감사드립니다.우리는 모자이크 붓다입니다.^^

2017-11-25 11: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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