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8.4.28 정토불교대학 경주남산순례 주간반
“미세 먼지 때문에 괴로워요.”

오늘은 경주 남산 순례가 있는 날입니다. 새벽에는 쌀쌀했는데 아침이 되자 해가 났습니다. 화창하고 맑은 하늘에 오늘 순례가 기대되었습니다.

전국에서 모인 불교대학 주간반 학생들과 스텝, 약 800여 명이 남산의 봉화골, 포석골, 탑골, 삼릉골, 용장골 구간으로 분산하여 각 지역 담당 법사님들의 안내로 답사하고 통일암 숲속 너른마당으로 모두 모여 스님과 함께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스님은 오전 8시 50분 두북수련원을 출발하여 용장골로 올랐습니다. 내일 용장골의 안내를 맡은 희광 법사님과 함께 출발하였지만 희광 법사님이 다리가 불편한 것을 염려하여 지팡이를 내어 주고 천천히 올라오라 하였습니다. 20여분을 걸어 설잠교 즈음에 이르니 대중들이 스님을 만나 반가워 인사를 하였습니다. 가장 나중에 출발한 용장골 팀의 후미였습니다.

대중들과 인사를 가볍게 나눈 후, 조금 더 걸으니 용장사지 삼층석탑이 멀리 바라보였습니다. 스님은 삼층석탑을 우러러 바라보며 예배하였습니다.

조금 가파르지만 빠른 길을 택하여 이영재에 도착하였습니다. 이영재에서 통일암 숲속 너른마당까지는 30분 정도 걸렸습니다. 10시 30분, 숲속 너른 마당에 도착하니 스텝들이 사전에 준비를 마치고 각자 위치에서 뒷마무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빠르게 도착할 대중들을 고려하여 스님은 싸온 도시락으로 점심 공양을 하였습니다. 반찬은 미나리나물과 두릅 순을 데친 것, 초고추장입니다. 봉화 수련원에 갔을 때 직접 따고 씻은 두릅이었습니다.

가볍게 공양을 마치고 스님은 산에 오르지 못하고 먼저 이곳에 도착한 대중들과 인사를 나누고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대중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였습니다.

“다녀오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스님이 먼저 인사하며 손을 내밀자, 참가자들의 얼굴이 한껏 밝아지며 부끄러워하였습니다. 맞이하는 스님께 자신이 좋아하는 시라며 쪽지를 건네는 분, 불대생인 엄마를 따라온 아이들, 35년간 마셨던 술을 스님 법문 덕분에 단 하루에 끊었다며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시는 거사님 등 많은 인연들이 불교대학생이 되어 오늘 스님과 만났습니다.

텅 비었던 숲속 너른 마당이 불교대생으로 가득해지자, 스님은 인사를 마치고 무대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오후 12시 30분이 되었지만 늦게 도착한 몇몇 팀들이 아직 점심식사를 하고 있어서 막간을 이용해 노래자랑 대회가 열렸습니다. 스님이 “대중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노래 한 자락 할 사람은 앞으로 나오세요.” 라고 하자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달려나왔습니다.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여흥을 즐기고 있는 사이에 모두 점심 식사를 마쳤고, 1시부터 본격적으로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이 “평소 궁금했던 점이 있는 사람은 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 라고 하자 여기저기서 질문을 하러 앞으로 나왔습니다. 총 6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요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미세 먼지에 대한 질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스님께서 ‘공즉시색 색즉시공(空卽是色 色卽是空)’, ‘제법이 공하다’는 걸 모르면 번뇌가 생긴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런데 제가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잘 몰라서 여쭤 보려고 나왔습니다. 예를 들어 요즘 미세먼지가 심한데 저는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꼭 식물을 사고 싶은 욕구가 생겨요. 집에 식물이라도 둬서 공기가 정화되면 미세먼지를 좀 덜 마시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생기고, 아침에 일어나 창문 밖을 봤을 때 미세먼지가 심하면 한숨이 나오고, 또 공기가 좋은 날에는 기분이 좋아지고 그럽니다. 그게 고락(苦樂)에 빠지는 거 같은데 제가 미세먼지를 대할 때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모두 웃음) 모든 것을 쪼개고, 쪼개고, 쪼개면 미립자가 되고 그게 다 비어 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제가 이 미세먼지를 공하다고 생각하고, 괜찮다고 생각하면 정말 괜찮아지는 건지요? 그게 궁금합니다.”

“꼭 이렇게 좋은 봄날, 이런 야외에까지 나와서 그런 얘기를 해야 되겠어요?(모두 웃음) 미세먼지가 기관지 건강에 나쁘다면 두려워하거나 걱정할 게 아니라 대비책을 세워야지요. 미세먼지가 심한 날은 마스크를 쓴다든지 하면 되지, 미세먼지가 있는 날은 기분이 나쁘고, 미세먼지가 없는 날은 기분이 좋다면 늘 희로애락에 빠져서 살아야 되잖아요. 질문자는 미세먼지가 두려우면 미세먼지가 없는 나라나 미세먼지가 덜한 쪽으로 이사를 가는 것도 방법이지요. 그런데 어차피 대한민국에 살 수밖에 없고, 지금 사는 지역에 살 수밖에 없다면 미세먼지가 심한 날은 마스크를 끼면 되고, 집에서 환기를 덜하면 되고, 공기정화기를 하나 사면 되지, ‘미세먼지를 공하다고 생각하고 마셔도 되느냐?’고 물을 건 아니에요.

‘공(空)’이라는 개념이 그런 게 아니에요. 공이라는 개념은 세 가지 개념인데, 원래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공의 개념은 정신작용에 대한 개념이에요. 이 세상은 첫째 물질적 존재, 둘째 물질을 기반으로 한 생명존재, 셋째 생명작용을 바탕으로 한 정신작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물질작용에 대해서 연구를 하는 게 오늘 날 우리가 말하는 자연과학, 물리학, 천문학, 화학, 이런 분야이고, 생명작용에 대해서 연구하는 게 생물학, 의학, 요즘 말하는 바이오에 대한 연구 등의 분야입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물질을 연구하신 것도 아니고, 생명을 연구하신 것도 아니고, 바로 우리의 정신작용, 즉 마음에 대해서 연구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부처님 당시에 우리 마음의 실체라는 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고 나만이 갖고 있는 그런 존재가 있다’는 생각이 보편적이었습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해서 ‘윤회나 내생’ 개념이 성립됐고, ‘하나님에게 벌 받는다’는 개념도 성립이 됐단 말이에요. 왜냐하면 그렇게 ‘불변하는 나만의 나’라는 실체가 있어야 그 ‘나’가 다음 생에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거나 개가 됐다가 소가 됐다가 한다거나 지옥에 갔다가 천당에 갔다가 한다는 말이 성립하지 않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바로 그런 부분을 깊이 연구하시다가 그런 영원한 존재라거나 나라는 실체가 존재한다는 건 사실이 아님을 깨달으신 거예요. 다만 우리가 그렇게 느낄 뿐이지 분석을 해보면 사실이 아닙니다.

그래서 ‘제행무상(諸行無常)이요, 항상 한 것, 영원한 것은 없다. 제법무아(諸法無我), 즉 나라고 할 만한 실체가 없다’고 말씀하신 거예요. 그게 철학적인 본질이에요. 이것을 대승불교에서는 공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우리가 그것을 깨닫게 되면 더 이상 괴로울 일이 없는 거예요. 괴로움이라는 것은 상(想)에 집착하기 때문에 생기는 건데, 바로 그 상에 대한 집착이라는 것은 그런 실체를 인정할 때 생기는 거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자연과학에 적용해도 잘 들어맞는다는 거지, 부처님께서 자연과학을 연구하셨던 건 아니에요. 자연과학에도 똑같이 영원한 것이 있고, 물질의 실체가 있다, 이런 것이 옛날의 물질관(物質觀)이었습니다. 그러나 물질에 대한 연구를 거듭 한 끝에 오늘날 물질관이 달라졌습니다. 과거에 물질에서 ‘물(物)’의 본질, 즉 물의 근본알갱이가 뭐냐 했을 때 과학자들은 ‘분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건 불변하는 성질을 가졌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것을 더 분석해 보니까, 분자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번에는 원자는 불변하는 거라고 했는데, 원자를 더 연구해 보니까 원자는 또 소립자로 구성이 되어있었고, 소립자는 또 쿼크로 이루어져 있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물질의 실체도 공하다, 즉 실체가 없다는 거예요. 물질작용이 없는 게 아니라 실체가 없어서 인연 따라 모이고 흩어지는 것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우리의 생명작용도 마찬가지예요. 옛날에는 개는 개 종자가 있고, 콩은 콩 종자가 있고, 토마토는 토마토 종자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하느님이 이 세상을 만들려면 종자별로 다 만들어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다윈의 진화설이 나와서 ‘시간에 따라 종이 변해 가는 것’이라고 하니까 기존의 종자설에 반대되니까 처음에 저항이 많았던 거예요. 그런데 생물들이 왜 진화를 하는지 그 진화의 원인에 대해 사람들이 몰랐어요. 그래서 ‘가만 내버려두면, 세월이 흐르면 저절로 변하는 거냐? 말이 안 된다.’ 해서 더 연구를 하다 보니까 돌연변이설이 나왔고, 돌연변이가 왜 일어나는지 연구하다 보니까 ‘종자의 근본은 유전자다.’ 하는 이론도 나오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설계도가 바뀌면 종자가 달라진다는 거지요. 그래서 오늘날은 물질을 합성할 수 있는 것처럼 생명도 새로운 종을 합성할 수가 있게 됐죠. 그렇게 조작을 하면 다른 제3의 생명이 나올 수 있게 된 거예요.

그래서 감자 따로, 토마토 따로인 것 같지만 적당하게 감자와 토마토의 유전자를 조작하면 위에서는 토마토가 열리고, 뿌리에는 감자가 달리는 생명이 만들어지는 게 가능해졌어요. 과학적으로도 종자의 실체는 없다는 게 되니까, 부처님의 말씀은 마음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물질에도, 생명에도 적용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불교는 과학’이라 하지만 그게 부처님께서 과학을 연구했다는 뜻은 아니에요. 다만 우리가 무아(無我)를 설명할 때 과학적 사실을 빌려서 설명하는 건데, ‘제법이 공하기 때문에, 물질이 공하기 때문에 우리 몸이 공하다고 생각하면 우리 몸에 아무 이상이 없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질문자가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부처님의 원래 말씀에 따르면 ‘크다, 작다’가 물질의 본질인 것처럼 우리가 착각하고 있다는 거예요. 보통 ‘이건 큰 거고, 이건 작은 거 아니냐? 크니까 크다고 하고 작으니까 작다고 하는 것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는데, ‘크다, 작다’는 것은 물질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들의 인식, 정신작용에 있는 거예요. 즉 어떻게 비교하느냐에 따라서 하나의 존재를 우리가 ‘크다’ 또는 ‘작다’고 인식하게 된다는 거죠. 160센티미터인 사람이 180센티미터인 사람과 같이 있을 때는 작은 사람으로 인식이 되고, 140센티미터인 사람하고 같이 있으면 크다고 인식이 되는 것이지, 본래 160센티미터인 사람은 큰 사람도 아니고, 작은 사람도 아니에요. 그냥 그 사람일 뿐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큰사람, 작은 사람이라고 말할 뿐인 거예요. 그래서 그건 객관이 아니라 주관을 말하는 게 됩니다.

그러니까 ‘다 마음이 만드는 것이다’라는 건 ‘병이 있다고 하면 있고, 없다고 하면 없다’는 뜻으로 마음이 만들었다는 게 아니고, ‘내가 열등한 존재다, 나는 우월한 존재다’라는 게 마음의 작용이라는 얘기예요. 그 사람은 그 사람일 뿐이에요. 그 사람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서 나쁜 사람으로 인식되기도 하고, 좋은 사람으로 인식되기도 하니까 객관적으로 나쁜 사람, 좋은 사람이라는 건 없고, 우리가 느낄 때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라고 느끼는 것뿐이라고요. 그러니까 그 실체를 우리가 이해하게 되면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라는 분별, 즉 좋은 사람이라고 집착하고, 나쁜 사람이라고 싫어하는 이 감정의 상태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 실제의 세상, 실제의 존재를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질문자가 미세 먼지를 예로 든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전혀 다른 얘기입니다. 미세 먼지가 건강에 나빠도 어쩔 수 없이 피할 수 없으면 미세 먼지를 좀 맞고 건강이 나빠지는 결과를 받아들이면 되고, ‘나는 다른 것보다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면 미세 먼지 방지책을 스스로 세우면 돼요. 그 방지책으로는 첫째, 미세 먼지가 적은 나라로 이사를 가든지, 미세 먼지가 적은 곳으로 이사를 가는 방법이 있겠고, 둘째, 이곳에 살 수밖에 없다면 미세 먼지를 방지할 수 있는 마스크를 끼든지, 집안에 공기청정기를 하나 구비하든지 하는 대책을 세우는 게 중요합니다. 셋째, 미세 먼지가 덜 발생하도록 환경 정책을 바꾸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그냥 미세 먼지를 두려워하는 것은 수행이 아니라는 거예요.”

“인도에서 축구경기를 한 날 미세 먼지가 엄청 심했다고 해요. 그때 인도인과 동남아시아 계열의 국가가 같이 축구를 했는데 동남아시아 선수들은 계속 구토를 했고 인도인들은 ‘왜 저러냐?’면서 계속 보기만 했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건 어떤 차이에서 오는 걸까요?”

“그건 적응의 문제지요. 우리 몸에는 적응력이라는 게 있습니다. 우리가 만약 무균상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되면 우리 몸에는 외부 병원균에 대해 적응하는 면역력이 없겠지요. 그래서 이런 사람은 세균이 있는 외부 세상의 물이나 공기를 마시게 되면 바로 병이 들겠지요. 그런데 어릴 때부터 그런 세균 속에서 살다 보면 어릴 때 죽든지, 안 죽고 살아남으면 면역력이 생겨서 그런 것에 대해서 거뜬해요. 그러니까 똑같은 물을 마셔도 면역력이 있는 사람은 설사를 안 하고, 면역력이 없는 사람은 설사를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꼭 균만 그런 게 아니에요. 인도 대륙 전체가 석회암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인도는 물에 석회가 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물을 보면 겉으로는 아무 표가 안 나는데, 하루쯤 물을 받아서 놔두면 밑에 하얗게 석회 가루가 가라앉아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어요. 그래서 보통 3일쯤 놔뒀다가 마시면 됩니다. 그것을 태어나서부터 먹었던 사람은 아무 문제가 없는데, 우리처럼 그런 물을 마시지 않았던 사람들이 마시게 되면 거의 죽을 듯이 설사를 하게 됩니다. 이건 식중독과는 성격이 다른 문제입니다. 그런 고비를 넘기면 그 다음부터는 면역력이 생겨서 그런 물을 마셔도 돼요. 여러분들 ‘물갈이’라고 들어봤어요? 우리나라 안에서도 자기가 살던 지역이 아니라 다른 지역의 물을 마시게 되면 지역별로 달리 들어 있는 무기질 때문에 거기에 적응이 된 사람이 마시면 괜찮은데 적응이 안 된 사람은 반응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러니까 인도에서 태어났어도 그런 미세먼지 속에서 못 견딜만 한 사람은 벌써 죽었지요. 그리고 거기에 적응을 해서 몸이 이미 그것을 이겨낸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그런 미세먼지를 마시고 그래도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는 썩은 고기를 먹으면 배탈이 나는데, 짐승들은 썩은 고기도 먹잖아요. 우리도 만약에 어릴 때부터 먹을 게 없어서 쓰레기장에 있는 썩은 고기를 계속 주워 먹었는데도 안 죽고 살았다면 계속 썩은 걸 먹어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러니까 동남아 사람들은 적응이 안 돼서 그랬던 거지요. 예를 들어 태국 같은 나라는 기후대로 보면 열대우림에 속해서 숲이 무성하고 비가 자주 옵니다. 그래서 먼지가 별로 없어요. 그런데 인도는 열대 중에서도 사바나기후로 건기와 우기가 뚜렷한 날씨입니다. 그래서 건기가 되면 기온이 엄청나게 오르고 먼지가 엄청나게 많이 납니다. 그런 데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인도 아이들은 유아사망률이 매우 높습니다. 우리 수자타아카데미가 있는 동네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거의 절반이 죽었어요. 그런데 거기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후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멕시코시티에서 축구경기를 하면 멕시코 사람들은 아무 문제가 없는데 우리 축구선수들은 헐떡거리며 뛰지도 못하고 10분만 되면 다 뻗어 버립니다. 멕시코시티가 고산지역이기 때문에 산소가 희박해서 그런 거예요. 그 지역에서 늘 살던 사람들은 이미 거기에 적응해서 폐활량이 커져있지만 우리는 산소가 풍부한 데서 살았기 때문에 거기 적응이 안 되어 있어서 가서 뛰면 바로 숨이 차서 쓰러지는 겁니다.

얼음 속에도, 뜨거운 물속에도 다 거기서 살아가는 생명들이 있듯이 적응이 되면 그렇게 살기도 하고, 적응이 안 되면 못 사는 거지요. 그러니까 인도 사람들은 미세 먼지가 많은 환경에 적응이 돼서 아무렇지도 않았던 거지, 무슨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서 그랬던 건 아니에요.”

“네. 감사합니다.”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하고 나니 어느덧 3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이렇게 즉문즉설 시간을 마치고 이어서 염불사로 내려갔습니다. 염불사는 신라 시대 때 이곳에서 염불을 하면 서라벌 전체에 그 소리가 울려퍼졌다는 곳입니다.

염불사에는 동탑과 서탑 두 개의 탑이 있는데, 탑 앞에 선 스님은 간절한 마음으로 발원 기도를 했습니다. 대중들도 차례대로 도착하여 스님의 발원 기도를 가슴에 새기며 함께 기도 했습니다.

사홍서원을 끝으로 순례를 모두 마쳤습니다. 스님과 대중들은 단체 사진을 찍기 위해 통일전 주차장까지 다시 걸어내려왔습니다. 길가에 핀 연두빛 잎들이 봄의 정취를 더해 주었습니다.

통일전 앞에 모인 대중들은 지역별로 스님, 법사님과 함께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모두들 “오늘 너무나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며 기뻐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스님은 대중들이 버스에 올라타는 모습을 보고 두북으로 향했습니다. 내일은 전국에서 정토불교대학 저녁반을 다니고 있는 1000여 명의 대중들과 경주 남산 순례를 할 예정입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정병욱, 권명순, 정란희

전체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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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나

내가 그것을 좋아서, 싫어서 집착하고, 밀어내는 작용이 있을 뿐
그 자체가 나쁘고 좋고는 없는 것이다. 그저 오래된 내 습에의해
좋고 싫고 그래서맞다, 틀렸다 생각하고 느낄 뿐
오늘도 내 인식에 흐름을 잘 살피고 그것은 오직 내 인식체계이지 절대적가치가
아님을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2018-05-04 09:34:12

선광

감사합니다.

2018-05-03 07:28:37

임무진

일체유심조'가 인식작용을 얘기하는 것임을 새삼 깨닫습니다. 좋다, 나쁘다 하는게 사물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내 업식에 의한 느낌으로 인해 일어나는 생각임을 알아차립니다. 괴로움이 없습니다.

2018-05-02 15:3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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