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8.10.9. 행복한 대화 (4) 평택
“어머니 병간호, 제 삶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이 얘기를 듣고 저는 마음이 아팠어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열심히 사는 거예요. "

오늘 즉문즉설 강연에서는 윤리 도덕에 얽매이지 말고 무엇이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길인지 찾아가는 스님의 말씀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경기도 평택 남부문화예술회관에서 1000여 명이 넘는 시민들이 모인 가운데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강연장에 30분 일찍 도착한 스님은 무대 대기실에서 정장선 평택 시장님과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시장님은 3년 전 스님이 새해 첫날을 맞이하여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굴뚝 농성 현장을 방문했을 때 함께 떡국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한편 강연장에서는 30분도 전에 1, 2층 객석이 꽉 찼습니다. 사람들은 뒤에서 서서라도 보겠다며 물밀 듯이 강연장으로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강연장 안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사람들로 소란스웠던 장내는 스님이 등장하자 박수와 환호로 바뀌었습니다.

차담을 마치고 무대에 오른 스님은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 중에 돌아가신 분들이 많은데, 남은 분들이 모두 복직이 되었다” 면서 “수고한 시장님에게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며 참석한 시장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강사가 스님이긴 하지만 불교 얘기를 하러 온 건 아니에요. 종교를 떠나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좀 더 행복할 수 있을까?’ 이런 얘기를 함께 해보려고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왜 이런 자리를 마련했을까요? 7년 쯤 전에 카이스트 대학에서 학생 한 명이 자살한 일이 신문에 많이 났어요. 그 학생이 얼마나 외로웠으면 교수들도 많은데 얘기를 못하고 그랬을까... 안타까워서 조사를 해보니까 그때 우리나라 자살률이 세계 1위였어요.

그 때부터 저는 대학을 돌아다니면서 학생들과 학업, 취직, 연애, 결혼 등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지만 그 운동을 시작하고부터 몇 년 간은 자살률이 치솟다가 점차 정체되더니 다소 떨어졌어요. 저는 ‘아, 나도 좀 기여를 했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자족하고 있습니다. (모두 박수) 어쨌든 작게나마 사회 변화를 위해서 기여를 해보자는 뜻으로 이런 강연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강연에서는 아홉 명이 질문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중 아흔 살 어머니를 모시는 것이 힘든 72세 할머니와의 대화를 소개해드립니다.

“저는 72살이고 저희 어머니는 90살입니다. 제 집은 비좁아서 어머니를 동생 집으로 모시고 제가 어머니 병간호를 하고 있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어머니에게 요양원에 좀 가시자고 하니까 요양원에 가면 죽는 걸로 생각하시고 안 가시려고 해요. 이렇게 안 가시려는 어머니를 억지로 보내는 건 너무 불효인가 싶어서 결국 집에서 모시고 있어요.

하지만 저도 72살이고 제 삶이 있는데 어머니한테만 매여 있으니까 마음이 너무 괴롭고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겠어요. 스님, 이런 제가 불효한 자식일까요? 아니면 어떻게 해야 효도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효도한다는 소리 들어서 뭐해요?”

“우리나라 도의상 부모님을 가기 싫어하는 요양원에 억지로 맡기면 제 양심이 좀 바르지 못한 것 같아서요...”

윤리 도덕에 나를 맞추지 말고, 먼저 나를 보세요.

“‘효도를 하느냐 안 하느냐, 불효냐 아니냐’ 이런 관점은 옷에다 사람을 맞추는 것과 같아요. 옷을 지어놓고 거기다가 사람을 끼워 맞춰서 발을 자르고 머리를 자르는 거예요. 반대로 옷이 작으면 사람을 억지로 늘리는 것과 같다는 말이에요. 사람이 먼저고 사람에다가 옷을 맞춰야 하겠죠. 효라든지 불효라든지 하는 윤리도덕을 먼저 놔두고 거기다 나를 끼워 맞추려고 하니까 지금 힘든 거예요.

그런 거 따지지 말고 먼저 자기 상태를 한 번 보면 질문자도 72살이니까 늙었잖아요. 질문자는 남한테 의지 안 하고 자기 몸만 건사해도 인생을 굉장히 잘 사는 거예요. 부모님을 안 돌봐도 질문자한테는 아무런 죄가 안 됩니다. 하나도 안 돌봐도 괜찮아요. 요양원에 보내는 것도 안 하고, 그냥 동생 집에 놔두고 질문자는 없어져 버려도 괜찮아요.(모두 웃음)

그러면 내가 죄인이냐? 죄가 아니에요. 요양원에 모시든, 집에 모시든, 간호를 하든, 간호를 안 하든 죄는 안 됩니다.”

“네. 스님”

질문자의 목소리가 한결 편안해지고 얼굴도 밝아졌습니다.

후회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런데 또 생각해 봅시다. 올 여름에 한 노스님께서 전화가 왔어요. ‘네가 바쁜 줄은 알지만 나 좀 보자’ 이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알겠습니다, 일주일 후에 가겠습니다’ 하고 약속을 했습니다. 저로서는 최대로 시간을 당겨서 일주일 후에 날짜를 잡았어요. 전화를 끊고 나서 그 스님께 무슨 일이 있는지 다른 데 알아보니까 암이시라는 거예요. ‘의사가 올해까지 살 수 있다고 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다음날 병문안을 갔어요. 그때 마침 외국에서 온 손님이 있었는데 이 손님을 차에 태운 채 바로 노스님께 갔어요. 그 손님한테는 절 구경하라고 하고(모두 웃음) 노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어요. 노스님은 정정하게 앉아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바쁜 사람 오라 해서 미안하다. 그런데 내가 죽기 전에 한 번 만나보려고 그랬다. 내가 죽은 뒤에 너도 문상 올 거 아니냐?’

‘아이고, 당연히 와야죠.’

‘그래, 내가 죽은 뒤에 네가 온들 내가 너 온 줄 알겠냐? 또 네가 온들 내가 어디 있는지 알겠느냐? 서로 모르는 거 괜히 오고가고 하지 말고, 나도 너 온 줄 알고 너도 나 있는 줄 아는 때에 한 번 보는 게 낫지 않겠느냐?’

큰스님 말씀이 맞아요, 안 맞아요?”

“맞습니다.”(모두 박수)

“그렇게 두 시간 얘기를 나누고 제가 가려고 인사드리니까 ‘그래, 이게 마지막이다’ 이러시는 거예요. 그 때가 6월이었어요. 연말까지는 사실 거라고 생각했으니 이제는 자주 가뵈야 되겠다고 생각해서 ‘또 오겠습니다’ 이러고 돌아왔어요. 그런데 돌아오고 3일이 지났을 때 신문에 부고가 딱 났어요. 제가 자칫 잘못해서 일주일 지난 뒤에 갔으면 돌아가신 뒤에 갈 뻔했잖아요. 그러면 누가 후회할까요? 제가 후회하겠죠.

저는 이렇게 후회하는 일을 예전에 한 번 했거든요. 제가 옛날이나 지금이나 항상 바빴어요. 그래서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듣고서야 집으로 갔습니다. 갔더니 누님이 제 손을 잡고 ‘아이고, 엄마가 너를 보고 싶어 했는데’ 그러는 거예요. 어머니가 ‘얘는 왜 안 오나’ 그러시니까 누님이 ‘걔는 바쁘잖아요’ 이랬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머니가 이러면서 돌아가셨다는 거예요.

‘아이고, 세상에 바쁘다 바쁘다 해도 내 죽는 것보다 더 바쁜 게 어딨노? 자기 하는 일은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되지만 내 죽는 거는 오늘 못 보면 내일 못 보지 않느냐’

이 얘기를 듣고 저는 마음이 아팠어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열심히 사는 거예요. 제가 조금 게으르면 어머니가 ‘너 이럴려면 그때 좀 오지’ 이러실 거 아니에요? 지금도 어머니가 오라고 하면 ‘바빠서 못 가요’ 할 정도로 살아야 제가 불효를 안 하는 거예요.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제가 노스님을 뵈러 가야 하나, 안 가야 하나’ 하는 걸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제가 노스님에게 간 것이 결과적으로 노스님을 위해서요, 저를 위해서요?”

“나를 위해서요.”

나를 위한 선택

“네, 병문안 가서 제가 좋았어요. 질문자가 이제 결정을 해야 해요. 효니 불효니 그런 거 따지지 말고,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질문자가 생각할 때 ‘아이고, 잘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신다 해도 우선 내가 살아야지 어떡하나’ 이런 마음이 든다면 어머니를 안 돌봐도 죄가 안 돼요. 그런데 돌아가셨다고 했을 때 ‘아이고, 내가 조금 더 돌볼 걸. 내가 그것도 못 했네’ 이런 마음이 든다면 후회가 오래 가요. 후회가 오래 가는 게 나아요, 조금 돌보는 게 나아요?(모두 박수)

질문자가 이제 거기에서 결정하는 거예요. 그런데 ‘아무리 돌아가신다 해도 전적으로 돌보는 건 난 못하겠다.’ 이럴 수도 있어요. 그러면 죄의식이 안 든다는 거예요.

질문자가 너무 힘들면 어머니는 놔두고 자기 인생 사세요. 그렇더라도 나중에 후회 안 할 만큼은 가끔 가봐야 하겠죠. 질문자는 ‘나는 한 번씩 가서는 안 되고 전적으로 붙어 있어야 후회가 안 되겠다’ 이럴 수도 있어요.

‘그렇게 한 번씩 가는 게 낫겠느냐? 전적으로 붙어 있어야 후회가 안 되겠느냐? 아예 안 가도 후회가 안 되겠느냐?’ 이건 질문자가 결정하면 돼요. 효니 불효니 따질 필요가 없어요.”

“어머니를 억지로라도 요양원에 모셔도 되겠습니까?”

“돌볼 사람이 없다면 그 길 밖에 없잖아요. 다만 그건 질문자 혼자 결정하면 안 되고 동생들과 의논해서 결정해야 해요. ‘나는 못 한다. 그러니까 어떻게 할래?’ 동생들도 요양원에 모시자 하면 요양원에 모시면 돼요.”

“그런데 요양원에 모셔 봤더니 어머니 살이 막 빠지고 정신이 더 없어지는 것 같아서...마음이 아파서 안 되겠더라고요.”

“그러면 집으로 모셔야죠.”(모두 웃음)

“집으로 모시니까 제 생활이 전혀 안 돼요.”

“그러면 요양원으로 모셔야죠.(모두 웃음과 박수)

‘스님이 말장난하나?’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금 질문자처럼 그러면 아무것도 못 하는 거예요. 요양원에 모신다 하면 그 결과로 나타나는 모든 걸 감수해야 해요. 내일 돌아가신다 해도 내가 후회를 안 해야 해요. ‘나는 하는 만큼 했다. 더 이상은 나도 살아야 하니까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리고 돌아가셔도 ‘잘 돌아가셨다. 살 만큼 사셨다’ 이렇게 딱 정리를 하는 것이 해탈의 길이에요. 이게 괴로움이 없는 길입니다.

반면 그렇게 했을 때 내가 후회할 것 같으면 혼자서 여행 좀 다니다가 나중에 괴로워하는 것보다는 지금 조금 돌보는 게 나한테 더 낫다는 거예요. 어머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내가 어떤 선택을 할 거냐는 문제예요. 지금 질문자가 그걸 딱 결정해서 선택하면 돼요.”

“네, 고맙습니다.”(모두 박수)

인생을 살면서 경우는 다르지만 다 겪는 문제여서인지 청중들 모두 질문자가 된 듯 함께 답하고 함께 웃었습니다.

고비 고비 넘어 대 성공!

오늘 강연장에는 멀리 제주도에서 온 70대 할머니도 계셨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가난하여 이 집 저 집에서 자란 할머니는 길거리에서 칼을 맞기도 하고 교통사고로 두 번 죽었다 살아났으며 집에 도둑도 여러 번 들고 남의 집을 불로 다 태우기도 했답니다. 할머니는 어릴 적부터 왜 이런 불운한 삶을 사는지 궁금하다고 질문했습니다.

“칼 맞고, 교통사고 나고, 도둑 들고.... 어쩌고 저쩌고 해서 힘들었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그런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결국 지금 살아있어요, 죽었어요?”

“지금 살아있어요.”(모두 웃음)

“고개를 올라갔다 내려갔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지만 결국 산을 넘어왔다는 것이 중요한 거예요. 질문자는 대 성공을 했습니다. 그 고비를 넘기고 살았습니다.”(모두 박수)

청중들도 다함께 박수로서 할머니의 삶을 축하해주었습니다. 이어진 질문에서 가수의 꿈을 꾸다 사기를 당하고 자신감을 잃은 청년이 스님과의 대화 중 청중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큰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 외에도 중학교 2학년 아들이 내일이 시험인데도 컴퓨터 게임만 하고 공부를 안 한다며 괴로워하는 엄마, 정토불교대학에 입학 후 자주 내면을 바라보게 되는데 눈물이 계속 쏟아져서 고민인 40대 남성, 대인공포증을 앓은 지 8년째인데 남에게 미움 받은 것에 대한 상처를 극복하고 싶다는 30대 여성, 도박 중독에 빠진 아버지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지 고민인 20대 여성, 결혼 5년 차에 남편이 바람을 피웠는데 이혼을 할지 말지 고민인 30대 여성, 홀로 차례를 지내는 친정 엄마를 위해 명절마다 친정과 시댁을 번갈아 가겠다고 하니 가족들이 반대해서 고민인 30대 여성 분까지 오늘도 다양한 인생 고민이 대화의 주제가 되었습니다.

특히 오늘은 윤리 도덕에 얽매이지 말고 무엇이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길인지 찾아가는 스님의 말씀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스님은 강연을 마치며 오늘 참석한 모든 분들이 행복해지길 다시 한 번 기원해 주었습니다.

“재미있었어요?”

“네!”

“인생은 첫째, 재미가 있어야 해요. 그런데 재미만 있고 유익하지 않으면 문 열고 나가서 허전해요. ‘뭐 들었지?’ 이렇게 돼요. 유익했어요?”

“네!”

“재미가 있다는 말은 지금 좋다는 것을 말하고, 유익하다는 말은 나중에도 좋다는 것을 말해요. 인생은 지금을 위해서 미래를 희생해도 안 되고, 미래를 위해서 지금을 희생해도 안 됩니다. 그런데 도덕주의자는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희생할 때가 많고, 쾌락주의자는 현재를 즐기다가 미래를 희생할 때가 많습니다.

수행은 현재도 좋고 미래도 좋아야 해요. 어떤 일을 하든 지금 행복해야 해요. 오늘처럼 강연을 듣는 것도 행복하고, 강연을 하는 것도 행복하고, 강연을 위해 봉사하는 것도 행복해야 합니다. 이런 삶은 미래에도 우리에게 큰 자산이 됩니다.

행복한 게 잘 안 된다면 행복학교에 한 번 입학해 보시면 좋겠어요. 4주 만 다니시면 금방 변할 수 있습니다. 관점만 바꾸면 행복할 수 있거든요. 여러분 모두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내일은 상주에서 즉문즉설 강연이 이어집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리포터 장미애 사진 남용우 녹취 손명희

전체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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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화

저누 지금도 행복하고 미래도 행복할 방법을 찾았습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오래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2018-10-21 08:37:19

정지나

지금,행복하기! 감사합니다!!! 꾸벅^^

2018-10-18 17:52:11

^^^^

아~그렇게 소중하신 스님의 시간을 우리가 강연장에서 누리고있었군요ㅠ강연으로 자살방지도 하시고,깨달음의 길로 사람들 이끄셔 수많은 사람의 가치관을 바꾸시고,그 무거운 통일의 문도 여시구요ㅜ제나이 70되도록 저도 고생만하신 불쌍하신 어머닐 간호할 수 있었음 좋겠네요ㅠㅠ

2018-10-13 23: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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