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8.10.10. 대구 정신건강축제, 행복한 대화 (5) 상주
“시한부 선고 받은 어머니,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겠어요.”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가 완연한 가을을 느끼게 하는 하루였습니다. 오늘 스님은 조금 특별한 장소를 찾았습니다.

‘2018 정신건강 축제’ 중 대구 범어대성당에서 정신건강을 주제로 ‘마음행복 토크콘서트’가 열렸는데요. 국민들의 행복도를 높이기 위해 전국을 다니며 즉문즉설 강연을 해 온 스님이 강연자로 초청을 받았습니다. 정신건강 축제는 정신 건강의 중요성을 알리고 정신 질환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제정된 ‘10월 10일 정신건강의 날’을 기념하는 문화 축제입니다.

성당에 들어서니 가장 먼저 예수님 상이 손을 들어 반겨 주십니다. 영남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서완석 교수의 소개로 스님이 무대에 오르자 300여 명의 청중들이 박수와 환호로 스님을 맞이했습니다. 강연은 즉문즉설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1시간 30분 동안 총 3명이 질문했는데요. 그 중 “왜 행복해야 하는지?” 라는 한 청년의 질문에 스님은 “그런 생각은 행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면서 행복이 무엇인지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행복은 무엇일까요?

“육체적으로 건강하다는 것을 어떤 것을 말해요? 100미터를 10초 만에 뛰어야 건강한 거에요? 아니에요. 아프지 않은 것이 건강한 거에요. 빨리 달리는 사람이든 천천히 달리는 사람이든, 한국 사람이든 일본 사람이든, 힘이 있는 사람이든 힘이 없는 사람이든, 아프지 않은 것이 건강한 겁니다. 육체적으로 건강하다는 것은 아프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마찬가지로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것은 괴롭지 않은 것을 뜻해요. 자기가 자기에게 ‘너 괴롭니?’ 라고 물어보고 ‘별로 안 괴롭다’ 라고 대답이 나온다면 질문자는 행복한 거예요. 정신적으로 건강한 겁니다. 그렇지 않고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어떤 일에 대해서 매일 화를 내거나, 슬프거나, 외롭거나 한다면 행복하지 않은 것이고요.

그런데 질문자는 지금 행복이라는 것을 육체적인 건강을 파워로 생각해서 달리기를 몇 초에 달려야 한다는 식으로 정신 건강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매일 즐거운 것이 행복한 것이에요? 즐거움이 있으면 반드시 괴로움이 따라옵니다. 즐거움을 추구하면 영원히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아이를 낳아서 너무 행복하다면 앞으로 반드시 아이 때문에 괴로울 일이 생깁니다. 어떤 남자를 만나서 너무 좋고 즐거우면 반드시 그 남자 때문에 괴로움이 생깁니다. 그 남자가 다른 여자를 쳐다만 봐도 괴롭고, 그 남자가 죽으면 더 괴롭습니다. 그러나 ‘이 남자가 너무 좋다’ 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 남자가 죽든지, 그 남자가 다른 여자를 쳐다보든지 나에게 아무런 괴로움을 주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즐거움을 추구한다면 괴로움은 반드시 동반될 수밖에 없어요.

이 고리에서 벗어나려면 괴로움을 버리고 즐거움만 추구할 게 아니라 괴로움과 즐거움을 모두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즐거움을 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에 영원히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거예요. 수행 자체는 하나도 어려운 것이 아니에요. 수행은 자연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괴로운 이유는 자연적이지 않은 비정상적인 생각을 하기 때문이에요. 비정상적인 생각에는 세 가지가 있어요. 첫째, 탐욕 즉 과한 욕심입니다. 둘째, 성냄 즉 내 주장이 옳다고 고집하는 것입니다. 셋째, 어리석음 즉 거꾸로 알거나 모르는 것입니다.

괴로움과 즐거움은 정반대 현상이지만 그 뿌리는 모두 욕구입니다. 욕구는 누구나 다 갖고 있습니다. 욕구의 특성은 한 번 충족된다고 해서 절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욕구대로 따라가면 과보를 받고, 욕구를 억제하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여기서 벗어나는 길은 욕구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담배가 피우고 싶다면 피울거냐 말거냐 고민하지 말고, ‘피우고 싶어 하는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겁니다. ‘피우지 말아야지!’ 라고도 하지 말고, ‘피워야지!’ 라고도 하지 말고, 다만 ‘담배를 피우고 싶어 하는구나’ 알아차릴 뿐입니다. 화가 날 때도 ‘지금 화가 나는구나’ 이렇게 알아차리는 겁니다. 그러면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알아차리면 스트레스도 안 받고 과보도 안 받습니다. 이런 연습을 계속 해나가면 점점 괴로움이 없는 상태로 나아가게 됩니다.

오늘 행사가 ‘정신건강 축제’인데요. 정신이 가장 건강한 상태는 괴로움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러니 ‘내가 지금 건강한가?’ 라고 묻지 말고, ‘너 지금 아프니?’ 라고 물어야 하듯이 ‘내가 지금 행복한가?’ 라고 묻지 말고, ‘너 지금 괴롭니?’ 라고 물어야 합니다. 아프지 않으면 건강하듯이 ‘너 지금 괴롭니?’ 라고 물었을 때 ‘괴롭지 않다’ 한다면 행복한 겁니다.

‘행복해야지!’ 결심한다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내가 어떤 상태인지를 점검해서 병이 난 부분이 있으면 원인을 규명해서 치료해야 합니다. 아이 때문에 괴롭다면 ‘아이가 왜 문제인가?’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공부를 안 하는 것이 문제라면 ‘공부는 아이가 하는데 왜 엄마인 내가 괴롭냐?’ 이렇게 점검을 해봐야 합니다. 성적만 조금 떨어졌지 건강하다면, 아픈 아이보다는 훨씬 낫잖아요. 공부를 꼴찌 한다는 것은 그래도 학교를 간다는 거예요. 학교를 가야 꼴찌를 할 것 아닙니까. 학교 안 가는 아이에 비해서는 괜찮은 아이예요. 다만 내가 원하는 대로 좀 안 되었을 뿐이지 아이는 지금 이대로도 괜찮습니다. 그러니 공부를 안 하는 것은 개선할 사항이지 괴로워 할 사항은 아님을 알 수 있잖아요. 이런 방식으로 괴로움이 없는 상태로 나아가면 우리의 정신도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두 박수)

이 외에도 인터넷에서 확산되는 청소년들의 자해 행동에 대해 엄마들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아이들을 바로잡아야 할지, 자녀가 학교에서 놀림을 당하는데 그냥 참으라고 해야 할지 너도 대응하라고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는 엄마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스님은 “아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주는 것 보다 아이의 다친 마음을 먼저 보고 어루만져 주는 것이 중요하다” 라고 말하며 자녀들의 정신 건강을 위한 엄마의 역할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었습니다.

발상의 전환을 가져오는 재치 있는 답변에 청중들 사이에서는 자주 웃음이 터져 나왔고 시종일관 유쾌한 분위기였습니다. 강연을 마친 스님은 저녁 7시에 상주에서 열리는 행복한 대화 강연을 위해 바쁜 걸음을 옮겼습니다.

스님은 강연이 시작되기 전, 우석여고 교장 윤종수님, 경산여고 교장 손병철님, 성신여중 교감 안창기님, 우석여고 행정실장 한진태님, 성신여중 교사 유재흥님과 요즘 학생들이 줄어드는 추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창 밖에는 어둠이 깔리고, 학생들은 야간자율학습을 하기 위해 종종걸음으로 오가고 있었습니다.

학교 앞 병성천에 노을이 길게 드리워지고 강연시간이 다가오자 목도리와 겨울 점퍼를 입은 시민들이 삼삼오오 강연장으로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예천과 대구에서 휴가를 내고 온 젊은 연인, 상주에서 온 부부 등 남녀노소 다양한 시민들이 보조 의자까지 꽉 채워 450여명이 자리했습니다. 7시가 되어 스님이 등장하자 모두들 큰 박수로 반가움을 대신했습니다.

상주에서는 총 5분이 질문을 했습니다. 정치인과 높은 집값을 비판하는 시민, 공교육에 불만이 많아 홈스쿨을 하고 싶은 어머니, 앞집에서 나는 냄새로 남편과 갈등이 심하다는 50대 여성, 어머니가 난소암 말기 판정을 받고 슬픈 아들, 범부중생이 단박에 깨닫는 법이 궁금한 분의 질문과 대화가 있었습니다. 또, 스님의 책을 읽고 사별한 남편에 대한 원망을 내려놓고 행복하게 살게 되어 감사하다고 인사만 하신 분도 있었습니다.

그 중 어머니가 암 말기 판정을 받고 때때로 올라오는 슬픈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 본 아들과의 대화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질문자의 이야기에 함께 콧등이 찡해졌습니다.

시한부 선고 받은 어머니, 슬픈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나요?

“얼마 전 어머님께서 난소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3개월 정도 살 것 같다고 하십니다. 처음에는 많이 힘들고 하루에 몇 번이고 울고 했습니다. 이런 저의 마음을 살펴보니 어머님 보다는 제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엄마 죽고 나면 어떻게 살지’, ‘내가 몸이 아프면 누가 간호해 주지’ 하는 생각들이요. ‘나도 그저 그런 인간이구나’ 또 ‘인간이 이렇게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금은 현 상황을 받아들이니 마음이 한결 편합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게 아니라 어머니와 같이 정리할 시간이 주어졌다는 것이 감사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쩌다 한 번씩 올라오는 슬픈 감정과 무력감이 저를 힘들게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제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어머니가 곧 돌아가시는데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겠어요. 눈물이 나면 좀 울면 되지요. 그래도 이런 슬픈 감정은 내 문제이지 엄마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내 문제임을 알면 완전히 슬픔에 빠지지는 않게 되지요.

어느 날 교통사고가 나서 갑자기 죽으면 이런 감정을 풀 시간이 없게 됩니다. 암투병을 한다는 것은 3개월이든 6개월이든 내가 어머니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는 겁니다. 또한 어머니와 정을 뗄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고요. 죽음이라는 헤어짐을 준비해야 하는 겁니다. 그러니 슬퍼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지금의 시간을 오히려 소중하게 간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슬픔이 올라오고 눈물이 난다는 것은 내가 그 순간 죽음에 사로잡힌 거예요. 늪에 빠진 것과 같아요. 정신 작용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거죠. 그리고 ‘엄마가 죽으면 나는 어떻게 살지’ 하고 걱정이 되는 이유는 질문자가 어릴 때 형성된 무의식이 작동해서 어린 아이 생각에 질문자가 사로잡히기 때문입니다.

질문자는 스무 살이 넘었잖아요. 스무 살이 넘었으면 자기 인생은 자기가 살아야 하는 거예요. 엄마가 없으면 어떻게 살까 걱정하는 것을 ‘유아 심리’ 라고 합니다. 유아적 사고방식에 질문자가 사로잡혀 있는 겁니다. 누구나 이런 심리를 가질 수 있어요. 볼펜을 하나 잃어버려도 섭섭한데 어떻게 같이 살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슬프지 않겠어요. 그러나 슬픔에 빠지는 것은 자기의식 속에 빠지는 것입니다.

가끔가다가 욱하고 올라오는 슬픈 감정은 그렇게 큰 일이 아니에요. 연말까지 하루에 한 번씩 슬프다고 해도 이제 백 번 밖에 안 남았어요. 눈물 좀 흘리면서 살아도 괜찮아요. 그러나 근본적으로 들어가면 눈물을 흘릴 일은 아니라는 겁니다. 본인 수준에서는 순간순간 사로잡힐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러나 그 사로잡힘마저도 내가 나를 수용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박수)

“우리는 세상에서 원하는 일이 많이 있죠. 그런데 원하는 게 다 이루어지지 않아요. 여러분들이 원하는 것도 이해가 되고, 원하는 것이 안 이루어져서 힘든 것도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조금만 정신 차리고 보면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 질 수는 없어요.

여러분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은 이루어져야 한다고 움켜쥐고 있기 때문에 지금 좋은 조건에 있는데도 불만인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울 때 ‘과연 울 일인가?’ 생각해봐야 해요. 슬퍼할 때도 ‘이게 슬퍼할 일인가?’ 생각해봐야 해요. 요즘 들어서 암이 많이 발생하는 걸까요? 아니면 많은 사람들이 오래 살게 되니까 생긴 병일까요? 오래 살아서 생긴 병이에요. 만약 대부분의 사람들이 60세에 죽는다고 치면 암으로 죽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대부분 80살~90살까지 살다 보니 암으로 죽는 사람이 대다수가 된 거에요. 젊어서 암에 걸렸다면 특별한 일이겠지만 나이 들어서 암인 것은 자연스러움에 들어가는 거예요.

어떤 분은 저한테 ‘스님, 요즘 주위에 돌아가시는 분들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이렇게 말하는데, 주위에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은 본인이 나이 들었다는 뜻입니다. 나이가 들면 자연히 주위에 죽는 사람이 많아져요. 부모, 형제, 친구들이 죽으니까요. 나이가 어린 사람이 주위에 죽을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갑자기 무슨 불행이 찾아와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니에요. 그럴 때는 ‘아. 내가 나이가 들었구나’ 이렇게 생각해야 해요. 여름에도 잎이 떨어지지만 어쩌다가 한두 개 밖에 안 떨어져요.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면 ‘가을이 왔구나’ 이렇게 알아야 합니다. 특별히 슬픈 일이 아니에요.”

웃고 즐기는 사이 어느덧 밤 9시가 넘었습니다. 스님은 먼저 스스로 행복하고 자립하는 삶을 넘어서 남을 도울 줄 아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으로 강연을 마무리했습니다. 400여명의 시민들은 강연이 시작할 때보다 더 밝아진 모습으로 밀물같이 밀려나갔습니다.

내일은 김해에서 즉문즉설 강연이 이어집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리포터 추성미, 전현숙 사진 유종훈, 김창연 녹취 김윤진

전체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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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사람들을 향한 ,불법의지혜에 바탕하신,합리적이신 위로가,생의 힘든 순간,많은 도움이됩니다~시한부판정을 받으셨드래도,기운잃지마시고, 사람의 생명은 알수없으니 정성껏 어머닐 보살펴 드리시면 좋겠어요~저도 비슷한처지이지만ㅠ

2018-10-14 15:56:31

야초박선희

자연스레 사는 것, 촌스레 사는 것. 이것이 곧 행복 !!
촌 님들 화이팅!!

2018-10-13 07:39:46

송미해

"아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주눈 것 보다 아이의 다친 마음을 먼저 보고 어루만져 주는 것이 중요하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아이의 마음을 읽고 헤아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18-10-12 20:4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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