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8.12.4 과천시청 즉문즉설, 행복한 대화(30) 서울 마포(청년)
“수행을 한 지 1000일이 되는데, 아직도 행복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과천시청 초청으로 즉문즉설 강연을 한 후 저녁에는 서울 마포구에서 청년들을 대상으로 청춘 톡톡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오전에는 겨울을 재촉하는 조용한 겨울비가 내렸습니다. 스님은 오전 내내 평화재단에서 실무자들과 회의를 한 후 강연 장소로 이동하였습니다.

오후 3시, 과천에서 열린 즉문즉설은 과천시청의 초청으로 열렸습니다. 과천시청 대강당에는 과천 시장을 비롯하여 이백 여명의 시청 직원이 모였습니다.

“제가 이런 강의는 잘 안 합니다. 그 이유는 동일 집단은 대화가 잘 안돼요.” (모두 웃음)

예상과 달리 시작부터 웃음이 빵빵 터졌습니다.

“저는 질문이 없으면 5분 만에 끝냅니다. 질문이 없어서 5분 만에 끝낸 적도 있어요. 강사료를 안 받기 때문에 5분 만에 가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모두 웃음)

5분 만에 끝날 수도 있다고 하자, 곳곳에서 아쉬운 탄성이 새어 나왔습니다.

“자, 질문해보세요. 저기 손 드셨네요. 5분 만에 안 가겠네요.” (모두 웃음)

첫 질문자는 신입 직원이었습니다.

“사실 제가 신입인데 조직에 아직 적응을 잘 못하고 있습니다...”

첫 질문자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드러내 놓아서인지 질문이 계속 이어졌는데요. 두 사람이 동시에 마이크를 잡고 일어서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 스님의 다양한 콘텐츠를 누가 만드는지 궁금하다는 분의 질문과 스님과 대화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스님 동영상과 글을 매일 하루 하나씩 잘 받아보고 있습니다. 오늘 직접 뵈니까 굉장히 반갑고요. 그런데 스님의 글과 동영상이 매일 올라오는데 올려주시는 분이 누군지 궁금합니다. 특별히 고용하신 분이 있는지요?(모두 웃음) 스님이 직접 하시는지, 자발적으로 하는 분이 계신지 궁금합니다.”

“제가 직접 하느냐고요? 직접 안 합니다. 고용해서도 안 합니다.”

“그럼 어느 분이 매일 올립니까?”(모두 웃음)

“저기서 지금 카메라로 찍는 분 있죠? 저런 분들이 촬영하고 편집해서 올립니다. 고용해서 하는 게 아니에요. 정토회는 월급을 받고 일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우리는 수행자이기 때문에 사람을 고용하지 않습니다. 제가 기사를 고용하거나 저런 분을 고용한다면 제가 수행자가 아니고, 그 사람과 저와의 관계에서 제가 사업주고 그 사람은 직원이 되잖아요. 이런 관계를 떠나야 합니다.

그런데 신라시대에는 절에 노비가 있었죠. 봉건사회다 보니까 절은 말이 절이지, 승려는 절의 주인이고 밑에 일하는 노비가 있었어요. 그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어긋나요. 부처님은 노비를 많이 거느린 왕자였는데도 출가한 후에는 죽을 때까지 일체 노비를 부리고 살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드셨을 때 같은 수행자인 제자가 좀 도움을 준 정도였죠. 정토회도 같은 수행자들끼리 역할을 분담해서 할 뿐입니다.

그래서 글이나 동영상이 나오다가 안 나오다가 하는 건 봉사자가 있으면 나오고, 없으면 또 잠시 쉬고 안 나오는 일이 벌어져서 그래요.(모두 웃음) 정토회에는 그런 자원봉사자들이 많습니다. 영상을 만드는 것도 자원봉사, 글을 쓰는 것도 자원봉사예요. 더 많이 못 나오는 것은 자원봉사가 부족하기 때문이에요.(모두 웃음) 제가 예를 들어 오늘 열 명과 대화를 나눈다면 이중에 하나를 소개하고, 일주일 내내 한다고 하면 그중에서 골라서 일주일에 몇 번만 나올 수가 있습니다. 그걸 다 못 올리는 건 일할 사람이 부족해서 그래요. 그래서 여러분들도 재능이 있으면 자원봉사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모두 웃음) 저희는 전부 자원봉사로만 운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것은 언제쯤 올라옵니까?”(모두 웃음)

“오늘 것은 나가기가 조금 어렵습니다. 요즘은 이렇게 대화를 나눈다고 다 내보내는 게 아니라 ‘내 얼굴이나 내 글이 나가도 좋다’라는 승낙을 당사자에게 받아야 하는 게 법이에요. 이걸 안 받고 그냥 내보내면 항의를 합니다. 그래서 공개된 자리에서는 질문을 하려는 사람에게 돈은 안 받는 대신에 ‘이게 공용으로 쓰여도 좋다’ 하는 확인을 반드시 먼저 받고 진행하거든요. 오늘 이 자리에서는 여러분들이 ‘내보내도 좋다’ 하면 그중에 가장 사람들에게 감동이 될 만한 내용을 다는 못 해도 하나 정도는 선정해서 내보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강의는 일일이 허락을 구하기가 어려워서 이런 강의를 잘 안 하려고 해요.

공개강의는 다릅니다. 제가 지난번에 여기 과천에서 공개강의를 했잖아요. 그런 건 다 자기가 원해서 오고 원해서 질문하기 때문에 질문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 동의서부터 작성해야 질문 권한이 있습니다. 그것도 수가 워낙 많아서 개중에서 추첨해서 하고요.

그런데 오늘처럼 동의서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촬영을 했다가는 나중에 어떤 질문을 편집해서 올렸는데 본인이 전화를 해서 ‘왜 내 얘기를 올렸냐’라고 항의해서 시빗거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은 안 그러지만 가끔 그런 데 민감한 분도 계신다는 얘기예요. 그래서 이게 올라갈지 안 올라갈지는 우선 그런 조건들이 갖춰져 있느냐를 보고 정합니다.

그래도 공적으로 보면 이렇게 올라오는 게 도움이 되죠?”

“네!”

“그래서 여러분들이 저한테 질문할 때는 ‘제가 이렇게 무료로 강의하는 대신에 당신도 우리의 대화를 공개하도록 허용해주세요. 우리가 공익을 위해서 이걸 하는 거지, 무슨 사익을 위해서 하는 건 아니잖아요? 대신에 얼굴은 안 나가도록 하는데 내용은 나갑니다.’라고 합의를 하는 셈입니다.

그렇게 동의를 받아 기록한 내용 중에서 우리가 보기에 개인의 사생활 공개가 좀 지나치다 할 때는 질문 내용을 조금 수정하거나 편집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스님의 즉문즉설이 워낙 알려져 있다 보니까, 배우자를 두고 다른 사람을 사귀면서 괴롭다는 고민도 공개적으로 질문합니다.(모두 웃음) 그런 질문에 제가 이렇게 대답했어요.

‘봐라, 하나도 감당하기 어려운 게 둘이 데리고 살려면 얼마나 힘드냐?(모두 웃음) 나는 하나도 감당 못해서 혼자 사는데 당신은 뭐가 좋다고 둘이나 사귀어서 머리가 아프냐.’

저는 그것이 도덕적으로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고뇌가 왜 생기느냐에 대한 대화를 하기 때문에 우리의 대화는 윤리적으로 접근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걸 자꾸 윤리나 도덕의 관점에서 접근해요. 즉문즉설에서는 ‘그가 어떤 짓을 했든 그가 왜 괴로워하며 그가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벗어날 수 있느냐’가 과제입니다.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게 과제지, 그가 윤리적으로 바른 사람이 된다는 게 대화의 과제는 아니에요.

그러니까 저는 오직 질문자를 위한 대답을 할 따름이지, 그런 질문이 세상에 유용하느냐를 따져서 대답을 하는 건 아닙니다. 서로 대화하는 관점이 이렇다는 거예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스님이 ‘정답’을 얘기한다고 하는데 그것도 잘못된 관점이에요. 인생에는 정답이라는 게 없습니다. 자기가 ‘정답이다’라고 한다면 그건 그 대답이 자기 마음에 들었다는 말이에요.(모두 웃음) 정답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그냥 대화를 할 뿐이에요.”

가볍고 재미있는 질문이었는데요. 부처님의 근본정신을 따르는 스님의 철학과 실천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 직원은 가끔 공무원을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는데 스님도 승려생활을 그만두고 싶은 적이 있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스님이 _“공무원 하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이 많은데 잘 된 일이다.”_라고 하자 한바탕 웃었습니다. 그리고 출가 후에 느꼈던 실망을 딛고 설립하게 된 정토회와 광주항쟁을 통해 눈뜨게 된 사회참여에 대해 이야기해주었습니다. 또 스님에게 큰 지침이 된 서암 스님과 도문 스님의 말씀은 청중들에게도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서암 스님은 불교를 개혁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는 법륜스님에게 이렇게 이야기하셨다고 합니다.

“여보게. 어떤 사람이 논두렁에 앉아서 마음을 청정히 하면 그 사람이 중이라네. 그곳이 절이야. 이것이 불교라네.”

도문 스님도 젊은 법륜스님에게 이렇게 말씀해주셨습니다.

“탑 앞의 소나무가 되어라.”

이후 스님은 불교를 모양과 형식에서 찾지 말고 나부터 실천하자고 결심하고 행동했다고 하였는데요. 스님의 지난 세월이 묻어나 더 깊이 있게 다가왔습니다.

감동과 웃음이 끊이지 않는 중, 한 분이 스님의 막힘없는 언변과 행복하신 모습이 부럽다며 어떤 덕목을 실천하면 정신이 맑아질지 묻기도 했습니다.

한분은 88세가 된 노모가 법륜스님을 무척 좋아하시는데, 스님의 사인을 받아오면 10만 원을 준다고 하였다며 사인을 해주실 수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스님은 강연이 끝나자마자 질문자를 찾아 사인을 해주었습니다.

이외에도 신입직원이 적응을 못해 질문하는 한편 퇴직을 앞둔 직원이 거처를 어디로 둬야 할지 질문했습니다.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해 죄송하다는 자식이 있는가 하면 편식하는 아이들이 고민이라는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성철스님이 쓰신 책에 ‘신은 없다’라는 구절이 맞는지 궁금하신 분, 소통이 무엇인지 궁금하신 분도 있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과 평화협정 체결, 남북의 교류에 대해 질문한 분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총 11분이 질문해주셨는데요. 공개 강연장 못지않게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예정된 시간을 넘어서까지 강연이 계속되었습니다.

스님은 “감사합니다!”라고 경쾌하게 강연을 끝낸 후, 다음 강연장인 마포중앙도서관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서울 청년들과 함께 한 즉문즉설

저녁이 되자 바람은 한층 차가워졌지만 스님의 즉문즉설을 듣기 위한 청년들의 발길은 일찍부터 마포중앙 도서관 6층 마중홀을 가득 메웠습니다. 400석의 자리가 순식간에 차고 사람들은 준비한 보조석과 바닥에까지 앉았습니다. 오늘 강연에는 총 600여 명이 함께 했습니다.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며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모습, 혼자만의 고민에 골똘히 젖어있는 모습, 스님을 소개하는 영상을 집중해서 보는 모습 등 강연 시작 전 청년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스님의 등장을 기다렸습니다. 이내 스님이 등장하자 강연장은 순식간에 환호와 박수로 가득 찼습니다.

무대에 오른 스님은 _“저녁식사하셨어요? 안 하신 분 손들어 보세요? 아직 안 하신 분은 강연 끝나고 집에 가서 드세요”라는 농담으로 말문을 열었습니다. 그런 후 “오늘 도서관에 사정이 있어 가능한 일찍 끝내 달라는 요청을 받았어요, 그래서 서론 생략하고 바로 질문을 받겠습니다.”_라고 하며 청년들과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총 7명이 스님에게 질문할 기회를 가졌는데요. 그중에서 1000일 동안 수행을 한 청년의 고민과 스님의 대화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스님이 말씀하시길 1000일을 수행하면 개인의 인생에 조금 변화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2016년 4월에 수행을 시작했고, 지난 9월 백일출가에 들어왔고, 이제 1000일을 15일 앞두고 있습니다. (모두 박수)

그런데 이렇게 막바지가 돼 가는데 백일출가를 진행하시는 법사님이 이러시는 거예요. ‘나를 바꾸려고 하는 것을 내려놓을 때 그때부터가 진짜 공부다.’ 이제 다 해 가는데 이걸 내려놓으라고 하니까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이게 무슨 말이냐고 두세 번 다시 물어봤지만 못 알아듣겠습니다. 이걸 내려놔봤더니 예전으로 다시 돌아가는 거예요. 제가 성격이 좀 예민하고, 불안하고, 가만히 있으면 우울해지는데, 저는 이걸 아직도 못 바꾸고 있어요.”

“지금 본인이 자기를 바꾸고 싶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바꾸고 싶다’ 하는 건 욕망이에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나는 돈을 벌고 싶다’라고 해서 10년 간 열심히 일했는데 돈을 못 벌었다면 ‘아, 나는 정말 돈하고는 인연이 없나 봐’ 이렇게 좌절하겠죠. 어떤 사람이 출세를 하려고 정치 활동을 10년간 열심히 했는데도 국회의원도 못 돼보고 시의원도 못 돼봤어요. 그러면 ‘아, 나는 안 되나 봐’ 이렇게 실망을 하겠죠.

어떤 스님이 선방에 들어가서 도를 얻겠다고 10년을 참선만 했어요. 그런데도 깨닫지를 못했어요. 그러면 이 스님도 어떻게 될까요? ‘아, 나는 도하고 인연이 없나 봐. 10년을 했는데도 깨닫지도 못하잖아’ 이렇게 실망하겠죠. 그렇다면 이 스님이 얻겠다는 이 도는 앞에서 얘기한 ‘돈 벌겠다’, ‘출세하겠다’ 하는 것과 같은 겁니다. 욕망의 대상일 뿐이에요. 이렇게 공부를 하기 때문에 괴로운 겁니다.

수행이라는 것은 지금 여기 깨어있는 것이기 때문에 하루를 하면 하루를 하는 만큼 좋고, 열흘 하면 열흘 하는 만큼 좋은 거예요. 10년을 참선을 했는데 도를 못 깨쳤다고 좌절한다면 그건 그냥 욕망을 10년간 쫓은 것에 불과합니다. 지금 질문자더러 ‘변화를 내려놓아라’ 하는 건 그런 뜻이에요. 질문자는 지금 자기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욕망을 쫓고 있어요. 지금 1000일이 다 돼 가는데 안 될까 봐 조마조마한 거예요.”

“예, 그렇습니다.”

질문자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힘없이 대답했습니다.

“1000일이 지났는데도 안 되면 ‘속았다! 거짓말이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지금 질문자가 3년간 해온 건 수행을 한 게 아니라 그냥 욕망을 쫓은 거예요. 욕망의 대상은 돈일 수도 있고, 도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고, 학문일 수도 있고, 자기 변화일 수도 있고, 여러 가지일 수 있겠죠. 한마디로 말해서 ‘집착을 놓아라’ 이 얘기예요.

욕망으로 구하는 도는 도가 아니에요. 다 그런 식으로 도를 구하기 때문에 수행을 10년 해도 갈수록 마음이 편안해지고 한가해지고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더 실망하고 좌절하고 절망하다가 ‘에이, 나랑 안 맞다. 때려치우자’ 하는 거예요. 정치하다가 안 맞다고 해서 ‘에이, 때려치우고 돈이나 벌자’ 이런 것처럼 ‘에이, 도 닦아봐야 안 될 건데 때려치워버리고 장가나 가버리자’ 이런 식이 되는 겁니다. (모두 웃음)

그건 도가 아니에요. 도하고 아무 관계없는 욕망의 대상을 그냥 도로 삼았을 뿐입니다. 해탈의 길은 욕망을 내려놓는 거예요. 그래서 백일출가 진행자가 질문자더러 그 욕망을 내려놓으라고 한 거예요.”

“도는 좀 어렵게 느껴지고요, 저는 행복하고 싶어요.”

“행복도 ‘행복하고 싶다’ 하면 그건 벌써 욕망이에요.”

“그러면 행복은 실체가 없는 것인가요?”

“행복은 실체가 없어요. 행복이 어디 실체가 있겠어요?”

“네, 그래서 저는 행복이란 내가 ‘이것이 행복이다’라고 이름하면 생겨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행복은 없어요. 질문자는 어떤 게 건강이라고 생각해요? ‘이게 건강이다’ 할 만한 게 뭐예요? 100미터를 12초에 뛰면 건강한 거예요? 턱걸이를 50번 하면 건강한 거예요? 팔굽혀펴기를 100번 하면 건강한 거예요? 질문자는 지금 건강에 이렇게 접근하듯이 행복도 그렇게 접근하고 있어요.

건강이란 안 아픈 게 건강한 거예요. ‘너 어디 아픈 데 있니?’라고 물었을 때 ‘없습니다’라고 하면 건강한 거예요. 아픈 데가 없으면, 애도 건강하고, 어른도 건강하고, 남자도 건강하고, 여자도 건강한 거예요. 팔이 하나 없는 사람도 ‘어디 아프니?’라고 물었을 때 ‘아니오’라고 하면 건강한 거예요. 팔이 하나 없다고 건강하지 않은 게 아니에요. 팔이 하나 없는 건 그냥 불편할 뿐이에요. 별달리 아픈 데가 없다면 건강한 사람이에요.

그런 것처럼, 진정한 행복은 괴롭지 않은 거예요. ‘괴롭니?’하고 물었을 때 ‘괴로울 일 없어요’라고 하면 행복한 거예요. 열반은 ‘괴로움이 없는 상태’를 뜻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추구하는 행복은 즐거움이에요. 그런데 즐거움은 반드시 괴로움이라고 하는 것과 의지해 있습니다. 즐거움이 있으면 반드시 괴로움이 있는 거예요. 즐거움과 괴로움은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인데, 이걸 잘라서 괴로움은 버리고 즐거움만 추구하겠다고 하는데, 이런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에 영원히 행복해질 수가 없는 거예요. 즐거움과 괴로움은 늘 이렇게 교체되는 거예요.

이걸 두고 부처님은 ‘윤회’라고 했어요. 사람이 죽어서 소 되고 말 되고 개 되는 건 힌두교에서 말하는 윤회이고, 붓다가 가르치는 ‘인생이 윤회한다’ 이 말은 즐거움과 괴로움이 늘 되풀이된다는 뜻이에요. 즐거움과 괴로움이 되풀이되는 고리를 끊어버리는 것이 해탈입니다.

즐거움과 괴로움은 욕망에 뿌리를 두고 있어요. 욕망이 충족이 되면 즐겁고, 욕망이 충족이 안 되면 괴로워요. 둘 다 욕망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욕망으로부터 내가 자유로워져 버리면 즐거울 일도 없고 괴로울 일도 없어져버려요. 이게 해탈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질문자는 ‘뭐가 괴롭니?’ 하고 스스로에 질문해봐야 해요. 항상 붓다의 질문은 이거예요.

‘괴롭습니다.’
‘뭐가 괴롭니?’

붓다의 가르침은 ‘고집멸도’입니다. 괴로움이 ‘고(苦)’예요. ‘뭐가 괴롭니?’ 이 말은 괴로움의 원인이 뭐냐는 거예요. 그게 ‘집(集)’이에요. 그 괴로움의 원인을 제거시키면, 다시 말해 집착을 놔버리면 괴로움이 소멸됩니다. 그게 ‘멸(滅)’이에요. 그게 열반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쉽게 잘 안 되고 또 되풀이되고 또 되풀이되니까 그것을 지속적으로 해나가야 합니다. 그게 ‘도(道)’예요. 그걸 꾸준히 체득이 될 때까지 해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행복하고 싶다’ 이렇게 접근하면 안 되고, 지금 괴롭다면 항상 ‘뭐가 괴롭니?’ 이걸 자기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시험 치는데 괴롭다고 한다면, 시험 치는데 왜 괴로워요? 사실은 괴로울 일이 없어요. 시험 치기 때문에 괴로운 게 아니라 합격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괴로운 거예요. 합격하고 싶다고 다 합격이 될까요? 실력이 돼야 합격이 되죠. 실력이 안 되면 떨어지는 건 당연하고, 다시 실력을 키우면 합격할 수 있는 거예요. 이렇게 분석해서 접근해 들어가야 해요. 질문자는 지금 천국에 가고 싶은 사람처럼 그냥 ‘스님이 3년만 있으면 행복해진다더라’ 하는 거예요. (모두 웃음)

이렇게 접근하면 안 돼요. 지금까지 질문자가 행복에 집착돼 있었기 때문에 ‘집착을 놔라’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살긴요, 밥 먹고 살죠. 저는 밥만 먹고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는데, 질문자는 왜 밥 먹고 사는 데 문제가 있어요?”

“저는 인생을 좀 잘 살고 싶어요. 좀 짧게 살더라도...”

“잘 살고 싶다고요?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거예요? 밥 먹고 사는 게 잘 사는 거예요. 밥 안 먹고 굶어보세요. 밥 먹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알게 됩니다. 한 번 아파 보면 건강한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알게 돼요.

노력하면 행복해지는 게 아니에요. 질문자는 지금 행복이 가득 차 있는데 욕망이 질문자를 지금 눈 어둡게 만들어서 행복한 줄 모르는 거예요. 질문자가 지금 행복한 줄 알려고 한다면 이제 재앙이 찾아와야 해요.”

“아...” (모두 웃음)

“눈을 다쳐버리면 ‘아이고, 눈만 보여도 행복하겠다’ 하고, 다리를 다치면 ‘아이고, 다리만 안 아파도 행복하겠다’ 하고, 몸에 병이 나서 병원에 누워 있으면 ‘아이고, 이렇게 아프지만 않아도 행복하겠다’ 하고, 밥을 못 먹는 상황이 되면 ‘아이고, 밥만 먹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하게 됩니다.

행복은 이렇게 이미 있는 거예요. 그런데 질문자는 지금 이걸 못 보고 딴 데를 쳐다보면서 지금 자기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이거든요. 엄격하게 말하면, 내가 노력하면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 나는 이미 행복한데 악몽을 꾸고 있는 거예요. 악몽에서 깨면 됩니다. 노력해서 깨달아서 부처가 되는 게 아니라, 나는 원래 부처인데 지금 중생 꿈을 꾸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 그 꿈에서 깨면 돼요.”

“어떻게 깨요?”

“그래서 무슨 꿈을 꿨냐고 물어보는 거예요. ‘괴롭다’ 하면 지금 그게 꿈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뭐가 괴롭니?’ 이렇게 물어보는 거예요. 질문자는 지금 뭐가 괴로운데요?”

“저는 평소 생활은 괜찮은데, 옛날 부모님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면 괴롭습니다.”

“질문자는 영화 화면에 나오는 사람 죽는 거 보고 우는 사람이에요. 영화를 보면 계속 눈물이 난다면, 해결책은 영화를 그냥 끄면 됩니다.”

“그런데 저는 부모님이랑 같이 있으면 그 기억이 자꾸 떠올라요. 그래서 부모님이랑 떨어져 있는 시간을 좀 늘리고 있어요. 한국에도 잘 안 들어오고, 지금도 한국에 들어왔다가 2주 만에 수련하러 가고요.”

“그건 임시방편이죠. 이 병이 치유되려면 부모를 늘 보는데도 그런 영상이 안 떠올라야 치유가 되는 거예요. 지금은 부모와 떨어져서 좀 연습을 해보고, 다시 부모한테 가 봐야 해요. 그래야 치유가 됐는지 안 됐는지 알 수 있잖아요. 또 떠오르면 ‘아이고, 치유가 안 됐구나’ 하고 또 좀 연습을 해서 부모를 만나야 해요. 그래서 부모님과 만나서 같이 살고 잔소리 들어도 아무렇지도 않을 때 ‘치유가 됐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치유를 하려면 가까이 가서 그걸 보면서 치유하는 게 제일 낫죠. 과거의 영상이 떠오르면 그때그때마다 영상을 꺼야 해요. 이런 영상들은 부모 때문에 생긴 게 아니라 내 속에 있는 과거의 기억이에요. 과거의 기억이 환영 속에 떠올라서 지금 나를 괴롭히는 거예요. 이걸 트라우마라고 해요. 지금 누가 질문자를 실제로 괴롭히는 게 아니라 트라우마가 질문자를 괴롭히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트라우마를 치유해야 해요. 우선 의사의 도움을 받아서 치유하는 방법이 있어요. 제가 얘길 해보니 질문자는 의사의 도움을 좀 얻어야 할 수준이에요. 혼자 하려고 하지 말고 의사의 도움을 조금 얻으면 훨씬 치료가 쉬워요. 병원에 가는 걸 그렇게 꺼릴 필요가 없어요. 만약 자가 치료를 하려면, 이런 영상이 떠오를 때 질문자가 계속 끄는 연습을 해야 해요.”

“저는 지금 ‘살아있는 것이 행복이다’ 그렇게 계속 생각해요.”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돼요. ‘행복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돼요. 법륜 스님은 ‘나는 행복하다!’ 이렇게 생각할까요? 아무 생각이 없어요.” (모두 웃음)

“그러면 어떻게 해야죠?”

“영상이 떠오르면 고개를 흔들고 끄면 돼요. 부모를 봤을 때 부모와의 갈등이 떠오르면 그건 지금 환영에 불과한 거예요. ‘아, 이건 환영이다’ 하고 고개를 흔들고 책을 보든지 밖에 나가서 운동을 하든지 목욕을 하든지 하세요. 그 영상을 자꾸 보면 습관이 되어서 이 영상에 자꾸 자신이 사로잡히게 됩니다. 이미 다 지나간 얘기예요. 과거 영상을 보면서 계속 되풀이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 감사합니다.” (모두 박수)

스님에게 질문을 했던 청년에게 찾아가 스님과 대화를 나누고 난 소감을 물었습니다.

“가슴이 후련해졌습니다. 스님이 ‘그래서 뭐가 괴로운데?’라고 물으셨을 때 부모님 생각이 날 때마다 불편한 것이 떠올라서 얘기했고, 스님이 ‘스위치를 꺼라’라고 하시니까 정신이 번쩍 차려졌어요. 스님이 알려준 스위치를 끄는 방법이 간단했고, 그렇게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홀가분해졌어요.”

청년은 한 결 마음이 가벼워졌다며 웃음을 보였습니다.

그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 절친이라고 믿었던 친구가 제 물건을 몰래 가져갔어요. 앞으로 이 친구와 친구로 계속 지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중학교 이후 외국에서 유학을 해서 외국 친구들이 많습니다. 그 친구들을 보면 굉장히 잘 살고 있는데도 다른 사람에게 ‘갑질’이라는 것을 하는 것을 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같은 자본주의 사회인데 유독 왜 한국에서는 ‘갑질’이 많은가요?
  • 어려서부터 엄마에게 정서적 학대를 받아 대인관계 기피증, 불안장애, 우울증을 앓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편안해질 수 있을까요?
  •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된다고 하면 남한 청년과 북한 청년들이 미래 한반도의 주역이 될 텐데, 어떻게 북한 청년들과 함께해야 할까요?
  • 지방대학에서 그림을 전공하다가 미래가 불안해서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뭘 해도 불안한데 어떻게 해야 불안한 마음을 편안하게 할 수 있을까요?
  • 제가 여자인데 여자가 좋아요. 옆에서 저를 험담하는 소리와 저를 부담스럽게 보는 시선을 느끼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화를 주고받다 보니 어느덧 약속한 2시간이 훌쩍 흘렀습니다. 모든 질문자의 질문을 다 들어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한 채 마지막으로 스님은 청년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당부했습니다.

“사회 제도적인 측면에서 청년들의 삶에 관심을 갖고 제반 사항을 구축해 나가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청년들 스스로가 현실에 안주하는 삶보다는 현재에 감사하며 도전하고 연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개인에게도 한반도에도 미래가 있습니다.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면서 때로는 세상을 변화시켜 가면서 자생력을 지닌 청년들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감사의 박수로 청년들은 스님의 말씀에 화답했습니다.

강연의 마친 스님은 오늘 강연을 준비한 청년 정토회 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이어서 강연을 들으러 온 백일출가 행자님들과도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 행자 한 분이 “스위치를 끄자”라고 외치자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내일은 남양주에서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 강연이 이어질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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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명

수시로 보고 되돌아 올수 있어서 참 좋네요... 스님께 많이 감사합니다. 올려주신 자원봉사자법우님들께도 다시한번 감사 말씀 드리고 싶어요. 나날이 행복하셔요.

2019-01-13 13:55:56

이지은

진정한 행복은 괴롭지않는 것이다~!!

2019-01-02 09:13:50

이순덕

잘 들었습니다 항상 놓치고 알아차리지 못한 것을 다시 스위치를 켜 주시는 법문입니다 나의 업식이 소멸될때까지 다만 할뿐입니다

2018-12-10 21: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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