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6.17 해외 순회강연(1) 프랑스 파리
“자신감 있게 유학생활을 하고 싶어요.”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7월 3일까지 해외 순회강연이 열립니다. 스님은 비행기를 타고 프랑스로 이동하여 파리에서 첫 강연을 했습니다.

27년 전인 1992년, 스님은 미국 뉴욕과 LA에서 한국 교민을 대상으로 불교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1996년 북한 식량난이 심각해졌을 때 북한 난민을 돕고 식량을 지원하는 일에 집중한 시기를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매년 해외교민을 위한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2014년에는 전 세계를 돌며 115번의 강연을 하고, 유튜브 즉문즉설 시청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해외에서도 국내 못지않게 스님의 인지도가 높아졌습니다.

해외 순회강연은 매년 9월에 열렸지만, 올해부터 6월과 9월로 나누어져 행하게 되었습니다. 해외에 정토법당이 늘어나고 세계 4개 지구에서 정토행자 대회를 열기 때문입니다. 6월에는 유럽, 아시아, 호주지역에서 강연과 행자 대회를 할 예정입니다. 가장 먼저 강연이 열린 곳은 프랑스 파리입니다.

이번 해외 순회강연에는 해외 정토행자들과 나누기를 담당할 묘덕 법사님, 해외 상임법사인 선주 법사님, 생활을 담당하는 최말순 님, 스님의 하루를 작성할 김순영 국제국장이 동행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여 프랑스 파리로 가는 수속을 밟은 다음 배웅 나온 수행팀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수행팀에게 “가뭄에 농사를 잘 짓고 있으라”라고 당부한 후 출국심사대로 이동했습니다.

스님은 비행기 안에서도 틈틈이 자료를 보고 업무를 했습니다. 약 9시간 비행을 한 후 경유지인 모스크바 국제공항에서 입국심사를 하고 잠시 밖으로 나왔습니다. 스님은 비행기 값을 아끼려고 한번 갈아타는 러시아 항공을 이용하게 되었는데 마침 볼일도 있어 지인을 만나 1시간 30분 정도 미팅을 한 후 다시 3시간을 비행하여 드디어 프랑스 파리 국제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공항에 도착하니 파리 정토회의 서정화 님과 제네바에서 온 이선화 님이 마중을 나와 있었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한 후 파리 정토회 총무 소임을 맡고 있는 박지현 님의 집으로 이동했습니다. 도착하니 월요일 낮 12시였습니다. 한국과 시차가 7시간이므로 서초동 정토법당을 떠나 오늘 프랑스 파리 숙소까지 장장 20시간 30분이 걸렸습니다. 긴 여정이었습니다.

박지현 총무님과 이선화, 서정아 님이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이어 총무님이 준비해준 한국음식으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스님은 총무님에게 그동안 잘 지냈는지 안부를 물었습니다. 총무님은 잘 지냈다고 하며 어제까지 날씨가 별로 좋지 않았는데 오늘은 오랜만에 날씨도 아주 화창하다고 하였습니다. 가을 하늘처럼 깨끗한 하늘에 군데군데 하얀 뭉게구름이 떠있어 참 보기 좋았습니다.

강연 시간에 맞추어 강연장에 도착하니 많은 분들이 스님께 반갑게 인사하였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파리 정토회원들이 매주 모여 법회를 보는 장소라고 합니다. 정원이 아주 아름다웠습니다.

7시 사회를 맡은 주정미 님이 파리 강연장을 찾은 많은 분들을 환영하면서 해외 첫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환영 영상이 끝나자 스님은 바로 연단에 올라 파리 강연장을 찾은 분들께 인사하였습니다.

"파리 날씨가 좋네요. 유럽 강연은 도착하는 날 바로 하기는 어렵겠어요. 지금 한국 시간으로 새벽 2시예요. 그래도 4시는 돼야지, 2시부터 강의를 하려니까 목소리가 아직 안 나오네요."

스님은 가볍게 인사를 건넨 후, 살짝 잠긴 목소리로 먼저 즉문즉설에 대해 설명해주었습니다.

"즉문즉설에서는 제가 먼저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여러분의 어려움을 먼저 이야기하고, 그걸 소재로 대화를 해보는 겁니다.

'이 일이 꼭 미워할 일인가. 슬퍼할 일인가, 괴로워할 일인가'

이렇게 대화를 하다 보면 꼭 괴로워할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중생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어느덧 부처 가까이에 갈 수 있습니다.

즉문즉설의 가장 핵심은 자기가 느끼는 마음이나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어떤 이야기든 다 대화의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크고 작고, 옳고 그르고, 훌륭하고 저급한 대화가 따로 없어요. 내가 궁금해하고, 내가 괴로워하는 모든 것이 대화의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서두에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자기의 이야기를 꺼낼 때 주저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차 마시면서 친구에게 이야기하듯이 편안하게 이야기하면 됩니다. 강의가 아니라 대화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제가 어떤 답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에요. 사람들은 가끔 즉문즉설을 즉문즉답이라고 하는데 아니에요. 즉문즉답을 제일 잘하는 것은 한국에서는 네이버고, 외국에서는 구글입니다. (모두 웃음) 제가 네이버나 구글하고 경쟁하려는 것은 아니에요. 저는 답이 없는 인생살이에 대해서 어떤 게 조금 더 가기 편하고 쉬운 길을 같이 찾아보는 겁니다.

오늘 저와 나눈 대화는 이름과 얼굴은 제외하고 콘텐츠로 제작되어 공유할 수 있습니다. 즉문즉설은 법문이지 개인 인생 상담이 아니에요. 제가 인생 상담하려고 이 먼 곳까지 온 게 아니에요. 개인의 어려움을 소재로 진리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대화를 하는 것도 무료지만 여러분도 그 내용을 무료로 지혜롭게 살아가고자 하는 다른 사람들과 공유를 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이야기는 아무도 듣지 말아야 한다면 질문 자격이 없습니다. 사전 질문을 신청받는 이유가 개인정보 동의서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에요. 사전에 신청하신 분들과 대화가 끝나고 손들고 자유롭게 질문하신 분들은 나갈 때 개인정보 동의서에 동의를 해야 합니다.

오늘 이 강연은 자원봉사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몇몇 분 외에는 다 인터넷으로 공모해서 일일봉사로 참가해주신 분들입니다. 오늘 이 강연을 준비해준 모든 봉사자들에게 먼저 감사의 박수를 한 번 치고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박수)

한국시간으로 새벽 3시에 강연을 시작하니 스님도 약간 피곤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질문자들과 대화를 하면서 스님의 목소리는 점점 회복되었습니다. 오늘은 총 5명이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파리에 와서 공부하고 있는 유학생의 질문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자신감 있게 유학생활을 하고 싶어요

“저는 프랑스에서 취직을 하는 것이 제 장점을 살리고 유리할 것 같아서 파리로 유학을 왔습니다. 현재 학업과 인턴을 병행하고 있어요. 그런데 하는 일이나 사람, 주변 환경과 잘 맞지 않을 때마다 깊은 회의감이 듭니다. ‘아예 진로를 바꿔야 하나, 내가 왜 여기와 있지? 돌아가고 싶다’는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더 넓은 세상에서 활약하면서 경제적 자유와 자아실현을 이루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프랑스에 왔는데 이제는 제가 그 꿈을 이룰 수 있는지 의심이 돼요. 뭘 하면서 살아야 보람을 느끼고 만족을 하면서 살 수 있는지 방황하고 있습니다. 제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대범하고 자신 있게 유학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또 저는 부모님의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부모님은 ‘너는 잘할 거다’라고 늘 응원해주고 있어요. 저도 그 기대에 부응해서 보란 듯이 성공해서 호강시켜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런 부모님의 기대가 부담스럽기도 해요. 이런 부담도 좀 덜면서 제 인생 자체를 즐기고 싶은 생각도 듭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할지 좋은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질문자의 얘기를 요약해보면 세 가지입니다.

'첫째,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프랑스 파리로 왔는데 적응이 쉽지 않다.
둘째, 이곳에서 성공하고 싶다.
셋째,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

제가 봤을 때 세 가지다 어렵습니다. 여기 살던 나무를 다른 곳에 옮겨 심으면, 아무리 뿌리를 잘 보존시켜서 옮겨 심어도 3년 동안은 자라지 않습니다. 그 나무가 자기 뿌리를 내리는데 3년이 걸립니다. 심자마자 죽는 경우도 있고, 뿌리를 내린 후에 1-2년 자라다가 3년 만에 죽는 경우도 있고, 작년에 열매까지 맺었는데 올해 죽는 경우도 있습니다.

볍씨를 뿌려서 싹이 트면 모내기를 합니다. 모내기를 한 후 2주 정도 지나면 노란 색깔이 파란 색깔로 변합니다. 시골에서는 그 벼를 보고 ‘아이고, 이제 사람 했네’라고 말합니다. 사람 했다는 말은 뿌리를 내려서 살게 됐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우리말로 ‘사람’이라고 해요. ‘살게 됐다, 이제 살았네’ 이런 얘기입니다. 적응을 하는 데는 반드시 시간이 걸립니다. 이 환경에 있다가 저 환경으로 가서 적응하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식물 중에 일 년 초는 2주 정도 시간이 걸리고, 1-2년 자란 작은 나무는 1-2년 정도 걸리지만, 5년생 정도 되는 나무는 3년 정도 시간이 걸립니다. 사람은 어떨까요?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더 걸리겠지요.

질문자가 한국에서 파리로 오면서 적응을 쉽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공짜로 먹으려는 겁니다. 언어에 적응해야 하고, 음식도 적응해야 하고, 사람도 새로 사귀어야 하고, 여러 가지를 익히는데 시간이 걸리잖아요. 그 기간 동안은 어려울 수밖에 없어요. 그걸 어려움 없이 극복하겠다는 생각이나 태도 자체가 잘못됐습니다. 잘못됐다는 것은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새로운 것을 만나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립니다. 자전거를 배운다면 한두 번 타보고 잘 탈거라고 생각하면 안 되고, 열 번 넘게 넘어질 각오를 해야 합니다. 운전을 배워도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걸리고, 피아노를 배워도 잘 치는 데까지 몇 년씩 걸립니다. 새로 익히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산에 오르면서 아주 편하게 오르겠다 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헛된 꿈을 꾸는 거예요. 여기 올 때 기본자세가 잘못됐습니다. 그래서 괴롭지요. 뜻대로 안 되니까요.

두 번째, ‘파리에서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도 오류예요. 질문자가 사물의 성질을 모르는 겁니다. 우리보다 선진국인 프랑스에서는 대부분 성공할 확률이 매우 떨어집니다. 그 이유는 여기가 우리보다 지적 수준이나 기술 수준이 높기 때문입니다. 환경이 다른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경쟁상대가 나 보다 지식이나 기술 수준이 높기 때문이에요. 질문자가 성공확률을 높이려면 인도나 베트남, 중국을 가야 됩니다. 아직 한국보다 개발이 덜된 국가에 가면 내가 한국에서 익힌 경험들로 약간 앞서 나갈 수 있어요. 거기에서 구멍가게를 하나 내도, 한국식으로 인테리어를 하면 그 사회에서는 5년 후 10년 후의 가게 모습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처음에 좀 어렵지만 금방 성공할 수 있는 거예요.

선진국에 와서 성공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여기 올 때는 이미 한국에서 똑같은 노력을 했을 때 한국보다 성공할 확률이 떨어진다고 알고 있어야 되는데, ‘한국에서 경쟁하는 게 힘들어서 여기 와서 쉽게 성공을 하겠다’는 관점이 잘못된 겁니다. 적은 노력으로 성공하고 싶으면 우리보다 기술과 지식수준이 떨어지는 쪽으로 가는 게 쉽습니다. 중소도시에서 사는 학생이 아무리 공부해도 1등을 못한다면 서울로 이사를 가야 공부를 잘할 수 있을까요, 지방으로 가야 잘할 수 있을까요? 지방으로 가야 잘할 수 있는 거예요. 지방 작은 도시로 가면 노력을 안 해도 금방 1등 할 수 있는 거예요. 만약 대구에서 5등을 하는 학생이 1-20만 명 정도 사는 작은 도시로 이사를 간다면 금방 1등을 할 수 있겠지만, 서울 강남으로 가면 중간하기도 어려울 거예요. 그래서 두 번째도 관점을 잘못 잡았습니다.

여기서는 남을 이겨야 얻는 상대적 성공을 추구하면 어렵습니다. 한국에서는 막 경쟁해서 이기려고 조급하게 사는데, 여기서는 경쟁을 딱 포기하는 마음을 내야 돼요. 여기에서는 기본적으로 사회보장제도가 되어있기 때문에 밥 굶을 일은 없잖아요. 그러니까‘내가 얼마나 여유를 갖고 편안하게 사느냐’ 이것을 성공의 척도로 삼아야 합니다. 돈의 액수라든지 유명세라든지 이런 것을 목표로 잡았다면, 질문자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목표를 잘못 잡은 거예요.

미국이나 캐나다에 이민을 가서 한국처럼 죽기 살기로 24시간씩 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살면 한국에서 살아도 성공할 거예요. 그 사회의 장점을 살려서 주 4일이나 5일만 근무하고 주말에는 여유 있게 여행도 하고 월급 받으면 3~40프로는 세금으로 내면 돼요. 그러면 노후에 다 돌아오니까요. 그 사회가 갖는 장점을 고려해서 이민을 해야 하는데, 전혀 엉뚱하게 접근합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뛰어나고 싶고, 일확천금을 노린다면 프랑스로 오면 안 됩니다. 중국도 벌써 늦었습니다. 베트남이나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이런데로 가야 합니다.

전 세계로 강연을 다니기 전에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에 사는 한국사람들은 그 나라가 부자 나라니까 사는 게 괜찮겠지. 브라질이나 과테말라나 베트남 같은 곳은 교민들도 형편이 조금 어려울 거다’

그런데 현장에 가보니 전혀 달랐습니다. 독일이나 영국, 프랑스, 노르웨이, 스웨덴 이런 선진국에는 대부분 노동이민을 왔습니다. 투자이민을 온 것이 아니고 요. 그래서 이사회에서 막 열심히 해서 돈을 버는데, 그 사회에서는 대부분 하층이었어요. 사는 집도 작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물론 의사나 몇몇 성공한 사람들이 있지만요. 강연장도 작은 것을 빌려서 합니다.

그런데 과테말라에 갔더니, 전부 리무진을 갖고 와서 태워주고 제 방도 5성급 호텔로 예약하고 강연 자체를 5성급 호텔에서 했어요. 저녁식사 때는 정부 관리까지 데리고 나왔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사람들은 전부 투자이민을 온 거예요. 베트남의 호찌민이나 하노이에 가도 그렇습니다. 한국사람이 그 나라에 가서 상류층으로 살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스님에 대한 접대도 자기들 식으로 하는 거예요. 인도네시아 가면 공항에서부터 벌써 경찰들이 와서 무슨 외국의 국가원수 모시듯이 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 부모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도 결코 좋은 것이 아니에요. 제가 미국 가서 얘기를 해보면 한국 젊은이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아시아권 대부분이 다 그래요. 베트남에서 온 한 학생도 자기 형제들은 다 고등학교도 못 다닐 형편인데 자기는 공부를 잘한다고 온 집안이 자기한테만 투자를 해서 미국 유학까지 보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 와서 살아 보니까 부모의 은혜를 갚아야 하고, 온 가문의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것이 심리적 부담이 되어서 하고 싶은 도전을 못하고 있었어요. 베트남에서는 돈 버는 것만 목적이 었는데, 미국에 와서 자유롭게 살아 보니까 다른 세상이 보이잖아요. 그런데 거기로 못 가는 거예요.

지원을 받는 것은 일시적으로 좋은데, 첫째 장기적으로는 자생력을 떨어트리고 두 번째 그 기대에 부응하려다가 창의력을 발휘하고 도전하는 일에 장애가 됩니다. 기대를 갖고 있으면 실패할까 두렵기 때문에요. 그런데 우리 같이 아무 지원받은 적도 없고 바닥에 살던 사람은 어떤 일이 있으면 도전을 쉽게 합니다. 실패해 봐야 맨몸이고, 원래 출발할 때 맨몸으로 시작했으니까, 안돼 봤자 죽지만 않으면 본전입니다. 죽으면 그만이고요. (웃음) 그러니까 어떤 일이든지 쉽게 시작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 지원을 받으면, 일시적으로 좋지만 그건 마치 온실의 화초와 같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자생력을 떨어트리고 부담 때문에 어떤 도전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질문자가 도움을 실컷 받고 여기서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다고 하면 그건 배은망덕한 거예요. 그래서 자발적으로 지원을 끊어야 됩니다. 부모가 실망해서 끊으면 서로 원수가 되잖아요. 그러니 ‘자발적으로 지원을 끊고, 자생력을 키우고, 그다음에 도전을 해본다’는 관점을 가지는 게 좋습니다.

스님이 질문자가 잘못됐다는 얘기만 했는데, 그러면 어느 쪽으로 가야 되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그건 제가 할 얘기가 아니에요. 질문자가 지금 이렇게 왔는데 제가 ‘너 어디 가니?’ 물으니까, ‘서울이요’ 이랬어요.

‘이거 서울 가는 길 아니다. 부산 가는 길이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예요. 서울 가는 길은 자기가 찾아가야 되는 거예요. 스님이 서울까지 데려다줄 수는 없습니다. 다만 서울 가겠다고 하는데, ‘서울 가려면 길을 잘못 들었다’ 이렇게 얘기해줄 수는 있습니다.

질문자가 한 얘기를 정리해 보면, 세 가지 길 다 약간 헛 다리를 짚었습니다. 옮겨 심으면 당연히 어려운 거예요. 쉽게 적응할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2년이나 됐는데 여기서 자유롭게 적응이 안 된다’ 이런 생각을 버려야 해요. 프랑스 말을 못 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 들 여야 말을 할 수 있는 거예요. 잘하려고 하는데 잘 못하니까 입이 닫혀서 말이 안 나오거든요. 내가 한국사람인데 어떻게 불어를 잘해요? 그냥 단어만 죽죽죽 연결해서 손짓 발짓해 가면서 겨우 소통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빨리 느는 거예요. 잘하려고 하니까 더 더딥니다.

그리고 여기서 어려운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됩니다.

‘그래도 뭐 2년에 이 정도 적응했으면 됐네. 언어가 부족하다 하지만 길 묻고 밥 사 먹는 거정도는 할 수 있다. 2년 만에 이 정도면 됐다’

이렇게 자기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생활을 해야 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성공할 생각을 하지 말아야 됩니다. 성공할 확률은 매우 낮아요. 심리적 부담은 엄청나고요. 그러니 ‘여기서 밥만 먹고살면 된다’ 관점을 이렇게 딱 가져야 돼요. 그리고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려면 엄청나게 불행하게 살아야 돼요. 불행하게 살 각오를 하면 괜찮아요. 그런데 행복하게 살려면, 기대에 부응하기 어렵다고 판단이 들면 지원부터 먼저 끊어야 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제가 이 나이 들도록 부모님의 지원에 의존해서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제가 좀 어렵더라도 먹고사는 것은 자립해서 살겠습니다.’

이렇게 지원부터 먼저 끊어줘야 부모의 기대가 옅어지고, 내가 자유롭게 내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부모의 지원을 받는 대신 부모의 기대에 부응한다는 것은 부모의 노예가 되는 길이예요. 노예로 풍요롭게 살지, 가난하지만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지는 자기 인생의 선택입니다.”

“제가 어떻게 성공하고 싶다든지, 뭔가 잘하고 싶다든지 하는 것은 제가 다시 생각해 봐야 된다는 말씀인 거죠? 여기서 저만의 경험이나 노하우를 쌓아서 한국에 돌아갈 수도 있는 거 고요. ”

“그렇지요. 스스로 평가를 해보면 됩니다. 자기 기질에 따라 다르거든요. 한국에는 너무 체면을 차리는 문화가 있어서 남 눈치를 보고 살다가, 프랑스에 오니까 눈치를 좀 덜 봐도 되는 자유로움이 있잖아요. 하지만 다른 사회에 적응해야 된다는 어려움이 있는 거예요. 이걸 극복하고 내가 여기서 경험한 것들을 한국에 가서 적용하면 오히려 대박이겠다 하는 감도 생길 거 아니에요? 찻집을 하나 내더라도, 한국에서 찻집 내는 방식은 이러이러한데, 내가 프랑스의 어떤 걸 보니까 이거를 한국 가서 하면 좋겠다. 한국에서는 늘 똑같은 것만 보니까 뭐가 부족한지 잘 모르는데 이건 먹히겠다.’ 하는 아이디어가 생겨서 돌아가는 길도 있고요.

‘나는 한국 가서 눈치 보고 사는 거 내 체질에 도저히 안 맞다.’ 이러면 여기에서 사람들을 숲 속에 나무처럼 보고 살아도 돼요. 여기서는 내가 누군지 알아주는 사람이 없잖아요. 한국에서는 안 알아주면 온갖 심리적 부담이 되고요.

자기가 삶을 선택하는 겁니다. 왕이 되는 게 더 좋은 사람도 있고, 그래서 스님 하다가 왕 하는 사람도 있고, 부처님처럼 왕위를 버리고 길거리에서 살 지언정 도를 구하는 게 더 좋은 사람도 있고요. 어떤 길을 갈 거냐는 자기 선택입니다. 어디를 가도 공짜는 없습니다. 공짜로 먹으려고 하면 괴로움이 따르죠. 뜻대로 안 되니까요.

한 3년 있다가 한국에 갔을 때, 낭비했다고 생각하시면 안 돼요. ‘나는 파리에 가서 3년 살아 봤다’ 이거 굉장한 자부심이잖아요. ‘내가 젊은 시절에 그래도 파리에 가서 3년 살아 봤고 세느강변도 걸어 봤다. ’라는 것도 굉장한 경험이에요.

큰 고통도 인생에 큰 도움이 된다는 거예요. 여기서 살고 있을 때 상처가 남아서 한국에 가면 멀쩡하게 살다가도 파리 생각만 하면 기분이 팍 나빠진다면 트라우마예요. 다른 일 하다가도 파리 생각만 하면 ‘아 그때 고생은 좀 했지만 좋았지’ 이렇게 추억으로 남기느냐. 상처로 남기느냐는 자기 선택이에요.”

이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은퇴하고 전원생활을 하고 있는 어머니가 우울증으로 힘들어하세요. 어떻게 하면 어머니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 39살 된 언니가 6살, 10살 된 어린아이들을 두고 최근에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강인 했던 어머니가 너무 힘들어하시는데, 멀리 있는 제가 어떻게 도와드릴 수 있을까요?
· 남편이 정신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다가 같이 입원해서 치료를 받던 여성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남편이 그 여성과 같이 살고 싶다고 하는데 저는 여전히 남편을 사랑해요. 어떡하면 좋을까요?
· 어떻게 하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게으르지 않게 살 수 있을까요?

봉사자 24명을 포함하여 약 150여 명이 참가한 오늘 강연은 시종 진지하고 집중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5명이 질문하였는데 모두 개인 질문이라 그런지 보통 때보다 더 집중된 분위기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강연장에는 국제결혼을 한 커플인지 외국인들도 간간히 눈에 띄었습니다.

2시간 20분 동안 강연을 마친 스님은 책 사인회를 마치고 강연장을 찾은 분들과 인사하며 같이 사진을 찍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유튜브 즉문즉설 동영상에 불어자막을 번역해주는 봉사를 하고 있는 윤혜정, Frank Vautier님이 찾아와서 스님과 반갑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또, 프랑스 인근의 유럽 여러 나라에서 스님을 뵙기 위해 찾아온 사람도 많았습니다.

스님은 강연을 준비해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수고했다고 격려해주었습니다. 강연장 밖으로 나오니 이미 밤 11 시가 다 되어가지만 백야현상으로 인해 한국의 저녁 6-7시처럼 훤하게 밝았습니다. 산책하면 참 좋을 것 같은 풍경이었지만 아쉬움을 뒤로하고 숙소로 향했습니다.

프랑스 파리는 박지현 님이 프랑스 파리로 이사를 오면서 2007년에 처음 즉문즉설 강연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오늘 강연장을 찾은 분들께 소감을 물어보니 한분은 너무 감동을 받았고 행복하다고 하면서 울먹였습니다. 한국에서 여행을 왔다가 강연에 참석하신 분은 스님의 강연을 처음 들었는데 말씀이 너무 새롭고 좋았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또한 이번 강연에는 정토회원뿐만 아니라 일일봉사로 참여한 분들도 있었습니다. 봉사를 한 소감을 물어보니 “강연장을 찾은 분들에게 좋은 시간이 된 것 같아 너무 뿌듯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봉사자들은 파리에서 열린 최근 3번의 강연 중에 오늘 강연이 가장 집중되고 좋았다고 했습니다. 청중도 스님이 질문자와 대화를 하며 괴로움을 해소하는 과정을 따라가느라 시종일관 진지한 분위기였고, 방송 음향시설도 좋아 더 집중이 잘되었다고 기뻐하였습니다.

강의를 마치고 나니 숙소로 돌아와 과일과 샌드위치로 요기를 하고 오늘 하루를 마쳤습니다. 시계를 보니 밤 12 시가 가까웠습니다. 한국과 시차가 7시간이니 어제 한국을 출발해서 강연을 마치기까지 총 31시간의 긴 하루를 보냈습니다 다 길에서 나서 길 위에서 열반하신 부처님처럼 스님도 늘 길 위에서 행복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돈을 절약하기 위해 직항 비행기가 아닌 경유지를 거치는 값싼 비행기를 타고, 경유지에서는 또 잠깐 틈을 내어 필요한 미팅을 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살아계실 때 우리가 어떻게 수행정진을 해야 하는지 행동으로 가르쳐주신 것처럼 스님도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몸소 보여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내일은 런던에서 유럽지구의 불교대학 졸업식과 수계식을 하고 저녁에는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런던에서 뵙겠습니다.

전체댓글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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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여러 봉사자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_^

2019-07-18 21:22:53

정지나

내 선택에 결과만이 있을뿐 지금 여기
그리고 다시 선택
가볍게 다시,시작입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2019-07-07 06:50:16

지혜승

고맙습니다.

2019-06-24 10:3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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