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8.30. 전법활동가 법회, 평화재단 연구 세미나, 만일준비위원회 회의
“독도는 중요하다면서 왜 북한은 중요하지 않나요?”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가을이 다가오는 듯 새벽에 부는 바람이 차가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코스모스 잎의 분홍빛도 조금씩 진해져 갑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밭으로 향하는 길에 아침 해가 떴습니다.

스님은 오늘도 산 밑밭으로 가서 가지와 오이, 고추를 수확했습니다.

인도JTS 활동가 한 명과 필리핀JTS 활동가 한 명이 한국에 잠시 귀국했는데, 스님의 농사일을 도와주기 위해 두북 수련원을 찾았습니다.

“잘 왔어요.”

“스님, 무슨 일을 할까요?”

“한 명은 고랑에 떨어뜨려 놓은 가지를 바구니에 담아 주세요. 한 명은 빨갛게 익은 고추를 따주세요.”

“네.”

허리를 숙여 고랑을 나오면서 가지를 주워 담았습니다.


빨갛게 익은 고추도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꼭지를 가위로 자르고 바구니에 담았습니다.


고추를 따는 데에 시간이 많이 걸려서 스님도 고추 따는 일을 함께 했습니다.

인도와 필리핀에서 활동을 하다 보니 스님과 함께 농사일을 해보는 것은 더없이 소중한 경험입니다. 이것저것 궁금한 점을 스님에게 물어보며 고추를 땄습니다.

“고추에 병이 들었네요. 병든 부분은 가위로 잘라내고 멀쩡한 부분은 다 모아서 갑시다. 이것도 잘 말리면 고춧가루로 만들 수 있어요.”

병이 심하게 든 나무는 뿌리째 뽑은 후 빨갛게 익은 고추만 바구니에 가득 담아서 밭을 나왔습니다.

“가지와 오이는 서울 갈 때 가져가서 대중들에게 공양 올리세요.”

“네!”

“자, 이제 내려갑시다.”

수확한 채소를 바구니에 가득 담아 서울에 가져갈 것을 구분한 후 비닐하우스로 내려왔습니다.

“오늘도 수확을 많이 했네요. 수고했어요.”

비닐하우스에도 참외, 토마토, 호박, 고추가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두북 수련원 행자님들은 모두 고추 따는 일에 붙었습니다.


진딧물이 와서 제거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지만 이제는 고추가 싱싱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인도와 필리핀에서 온 활동가 두 명은 서울에 가져갈 참외를 수확했습니다.




트럭에 수확한 채소를 싣고 두북 수련원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수확물 대부분을 서울로 올라가는 차에 실은 후 9시부터 발우공양을 시작했습니다. 방금 밭에서 수확한 고추와 오이, 참외가 반찬으로 나왔습니다.


발우공양이 끝나고 인도와 필리핀 활동가들은 스님에게 삼배로 인사를 한 후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오전 10시부터는 전법활동가 법회를 시작했습니다. 화상회의 방에 전법활동가들이 모두 입장하자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어제 불교대학 입학생 모집이 마감되었습니다. 2천여 명이 불교대학에 입학하게 된 것을 함께 축하하면서 홍보 활동에 힘써준 전법활동가들과 지난 6개월 동안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진행해 준 진행자와 돕는이들을 특별히 격려했습니다.

이어서 세 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경전대학 수업을 돕고 있는 분인데, 슬픈 일을 당한 학생에 대해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수업을 진행할 때 어떤 마음으로 학생들을 대해야 하나요?

“경전대학 돕는 이로 활동하였습니다. 학생이 가족상을 당한 중에 마음이 힘든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수업에 참여하였습니다. 수업 후 개별적으로 위로하고 격려하고픈 마음이었지만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면 개별 소통하지 않는다는 매뉴얼에 따라 그냥 지나갔습니다. 제 마음이 학생의 감정에 끄달린 것인지 궁금해요. 학생들의 마음 상태가 수업 참여에 영향을 미침에도 불구하고 매뉴얼대로 한다는 것은 밀착관리와 거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다음에 이런 상황이 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질문드립니다.”

“그것은 자기의 본분이 아니에요. 그것은 학생의 사정입니다. 학생이 돈이 부족하다고 자기가 돈을 지원해주고, 학생이 지식이 부족하다고 자기가 대신 공부해주고, 학생이 슬퍼한다고 자기가 가서 위로해주고, 이런 행동은 자기가 그 사람에 대해서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태도입니다. 굉장히 위험하고 건방진 생각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것은 밀착관리가 아니에요. 남의 사생활에 관여하는 겁니다. 진행자와 돕는 이는 학생이 마음공부를 할 수 있게 기본적인 수업을 제공해 줄 뿐입니다. 학생들은 각자 자기 인생을 자기가 살아가는 것이고, 진행자와 돕는 이로부터 마음공부에 대한 도움을 조금 얻을 뿐이에요. 내가 그 사람의 인생을 다 해결해 준다고 생각하면 큰 잘못입니다.

그것은 밀착관리도 아니고 남의 인생에 간섭하는 거예요. 학생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 일시적으로 도와주겠다는 것은 세속적인 관점입니다. 모든 어려움을 자기 스스로 극복하고 자립하는 것이 수행이지 잠시 위로해주는 것이 무슨 수행이에요?

질문자는 수행을 안내해주는 사람이지 그 사람을 위로해 주는 사람이 아니에요. 법륜 스님은 인생 상담사가 아닙니다. 인생은 자기가 알아서 살지 제가 왜 상담을 해요? 저는 여러분이 인생의 고뇌에 대해 질문하면 해탈의 관점에서 몇 가지 문제 제기를 할 뿐입니다. 결과적으로 그런 대화를 통해서 자기 인생의 고뇌가 풀리기 때문에 인생 상담이라고 느껴질지는 몰라도 저는 어떤 사람에 대해서도 인생 상담을 하지 않습니다.

스님은 여러분의 고뇌를 소재로 해서 법문을 하는 겁니다. 어제도 어떤 남자분이 아내가 부부관계를 안 하려고 해서 힘들다는 질문을 했어요. 그분이 지금 괴로워하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그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뿐입니다. 부부관계를 하든지 안 하든지 혼자 사는 스님이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저는 그 문제로 인해서 생긴 괴로움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혼을 하든지, 바람을 피우든지, 부부관계를 하든 안 하든, 그것은 저와 아무 관계가 없는 일이고, 부처님의 가르침과도 아무 관계가 없는 일이에요.

전법활동가는 법을 전하는 사람이지 재정적으로 어렵다고 도와주고, 정신적으로 어렵다고 위로해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어떤 남자가 너무 외롭다고 하소연을 하면 같이 만나주기라도 할 거예요? 그건 아니잖아요. 전법활동가는 법을 전하는 사람이라는 입장이 분명해야 됩니다.

학생이 겪고 있는 괴로움이 수업에 방해가 될 정도이거나, 이것 때문에 수업을 포기할 정도라고 판단이 되면, 담당 법사님에게 알려야 합니다. 법사님에게 ‘이분이 아들이 죽어서 수업을 계속 못할 정도로 힘들어하는데, 법사님께서 좀 상담을 해주십시오’ 하고 말해야죠. 이것은 법사의 영역이지 전법활동가의 영역이 아니에요. 엄격하게 구분을 하지 못하면 정에 끌려서 학생들에게 휘둘리게 됩니다.

남의 어려움을 해결해주겠다는 생각은 굉장히 위험한 생각입니다. 여러분들은 할 일만 딱하고 더 이상 관여를 안 해야 됩니다. 기대치를 너무 높여 놓으면 여러분들이 다 부담을 안게 돼요.

인간관계를 맺을 때는 자신에 대해 선전을 너무 많이 해서는 안 됩니다. 법륜 스님이 훌륭하다고 너무 선전을 많이 해놓으면, 앞으로 법륜 스님과 원수질 일 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기대가 높아져 있어서 앞으로 실망할 일만 남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자신에 대한 선전을 적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 이롭습니다.

상대의 기대치를 자꾸 높이려고 하지 마세요. 높아진 기대치는 결국 나에게 부담으로 돌아옵니다. 학생들은 경전대학에 입학할 때 질문자에 대해 기대치를 하나도 안 가졌어요. 그저 불교 공부를 좀 하러 왔거나 인생 공부를 좀 하러 왔을 뿐이기 때문에 그것만 착실히 안내해주면 됩니다.

그가 혼자 살든, 결혼을 했든, 가족이 죽어서 슬퍼하든, 부도가 나서 힘들어 하든, 여러분이 그걸 해결해주려고 하면 자꾸 끌려가게 되는 거예요. 즉문즉설에서 부모가 자식에 대해 연연하면 스님이 아주 냉정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못 들어봤어요?

‘자식이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어도 내가 구할 수 없을 때는 둘이 같이 빠져 죽는 것이 나아요? 혼자라도 사는 것이 나아요?’

이렇게 냉혹하게 얘기하잖아요. 그러니 그 학생이 힘들다는 것에 대해서는 너무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이 문제로 수업을 그만둘 가능성이 있겠다고 판단이 되면, 단지 수업 진행자로서 고려를 해야 되는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내 일이 아니니까 법사님한테 ‘이 분이 지금 중도 포기하려고 하니까 법사님이 조금 체크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하고 알려주기만 하면 됩니다.

진행자가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면 안 돼요. 여러분들은 학생들의 인생에서 아주 작은 부분에 도움을 줄 수 있을 뿐이지 그 사람의 인생을 도와줄 수는 없어요. 나는 타인에게 아무것도 도와줄 수가 없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친구가 병원에서 암으로 죽어 가는데 뭐라고 위로를 해야 할까요?’ 이런 질문을 하는 분들이 가끔 있는데, 자기가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고민을 하는 거예요. 나는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습니다. 죽는데 뭘 해결할 수가 있겠어요? 그 사람을 위해서 병문안을 가는 것이 아니에요. 그 사람이 죽기 전에 내가 한번 보고 싶어서 가는 겁니다. 자꾸 남을 위한다는 생각을 하면 큰일 납니다. 병문안을 가더라도 ‘아이고, 아파서 어쩌냐’ 이런 말은 위로가 전혀 안 됩니다. ‘옛날에 학교 다닐 때 참 재미있었지’ 이런 얘기가 오히려 위로가 될 수 있다면 될 수 있어요.

밥이 필요하면 밥 한 끼 사주는 것은 할 수가 있잖아요. 손잡아주는 것은 할 수 있잖아요. 그 이상 뭘 하려고 하니까 자꾸 머리가 아픈 거예요. 다른 사람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작다는 것을 늘 알고 있어야 여러분들의 인생이 편안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야죠. 여러분들이 뭘 해결할 수 있겠어요?

‘수업을 진행하는 것 정도는 내가 할 수 있지’

이렇게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을 한정시켜 놓아야 수업 진행을 가볍게 할 수 있습니다. 너무 잘하려고 하면 부담만 커지고 내가 힘들어져요. 조금만 도와줘도 학생들에게는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조금만 도와줘야 실제로 도움이 되지 너무 많이 도와주려고 하면 오히려 도움이 안 돼요. 약도 많이 먹으면 독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설령 그 사람의 인생이 좋아졌다면 이 법을 만나고 실천해서 자기가 변한 것이지 내가 도와줘서 좋아진 것이 아니에요. 법륜 스님이 법문을 잘해서 그 사람이 좋아진 것이 아닙니다. 법문을 들은 것을 계기로 해서 자기 스스로 자각을 해서 좋아진 거예요. 법륜 스님이 법문을 해서 좋아진 것이라면 그 법문을 들은 모든 사람이 좋아져야 되잖아요. 그런데 왜 어떤 사람은 좋아지고, 어떤 사람은 안 좋아질까요? 그 이유는 스스로의 자각을 통해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너무 사람들에게 집착하면 안 됩니다. ‘수업에 참석하든지 말든지 나는 모르겠다. 네 인생은 네가 살아라’ 이렇게 외면하는 것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학생들이 수업에 충실하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역할만 하면 됩니다. 결석하면 전화해서 확인해보는 정도만 하면 돼요. 그런 학생이 다시 마음을 낼 수 있는 정도의 역할만 여러분들이 하시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학생들에게는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부담으로 솔직한 나누기를 주저했던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잘나 보이고 싶은 욕심인 걸까요?
  • 전법활동가를 신청하고도 불교대학 입학생이 적어 진행자를 못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도 좋고, 전법활동가들도 성장할 수 있는 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을까요?

마지막으로 질문자의 소감 한 줄을 듣고 나서 법회를 마쳤습니다.

스님은 잠시 휴식을 한 후 곧바로 오후 1시부터 2차 만일준비위원회와 온라인 간담회를 시작했습니다. 오늘도 9월 온라인정토회 정식 출범을 앞두고 여러 가지 준비사항을 점검하고, 스님의 조언을 들었습니다.

논의할 내용이 많아서 준비한 안건을 모두 다루지 못하고 회의를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오후에 미리 약속한 다른 회의가 있어서 일단 회의를 멈춥시다. 다른 회의를 하고 나서 다시 돌아올게요. 4시 30분에 회의를 이어서 해도 될까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는 사이 또 다른 화상회의 방에 입장했습니다. 오후 2시 30분부터는 평화재단 기획위원들과 상근활동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대한민국 미래 30년 비전’을 주제로 세미나를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같은 주제에 대한 두 번째 세미나 시간입니다.

첫 번째 시간에 스님이 모두 발언을 한 것에 이어서 평화재단 활동가들이 추가 질문을 했습니다. 대한민국의 국가 발전 전략을 세우기 위해서 환경 정책, 통일 정책, 경제 정책, 외교안보 정책, 사회문화 정책은 각각 어떠해야 하는지 다양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그중 한 명은 궁극적으로는 통일이 안 되어도 좋다는 입장을 갖는 것에 대해 스님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했습니다.

통일이 안 되어도 좋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최근에 영토의 통합을 전제로 하지 않는 두 개의 국가를 전제로 한 통일 방안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젊은 세대들은 현실적으로 이익이 되는 합리적인 통일을 이야기합니다. 궁극적으로는 통일이 안 되어도 좋다는 입장을 갖는 것에 대해 스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통일을 영토 통합이나 정치 군사적 합병에 국한하여 생각한다면 그것은 근대적인 개념의 통일에 불과합니다. 통일이란 한민족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방안으로 접근해야 해요. 생활 공동체, 경제 공동체, 정치 공동체를 만드는 과정이 통일입니다. 이때 정치적으로 통합을 할 것인지, 각각 독립적으로 유지할 것인지는 서로 합의하면 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반도의 평화입니다. 통합의 수준은 상대가 원하는 정도로만 해도 됩니다. 이렇게 하면 평화도 유지할 수 있고, 통일 비용을 걱정할 만큼 경제적 부담이 많이 발생하지도 않습니다.

현실 가능한 통일 방법

상대가 원하는 통일의 방법에 대해서는 반대하고, 상대가 원하지 않는 통일의 방법으로 자꾸 밀어붙이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겁니다. 우리가 통합하고자 하는 상대방인 북한의 의사와 관계없이 우리 주장만 하고 있으면 통일이 실현되기 어려울 거예요. 북한의 속 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대외적으로는 통일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통일을 하자고 하면 됩니다. 다만 북한은 현 체제를 유지하면서 통일을 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도 우리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통일하기를 원합니다. 서로 통일을 원하지만 자신들의 체제를 없애는 통일은 하지 않겠다고 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하나의 체제를 이루는 통일은 어렵습니다.

그럼 현실 가능한 통일 방법은 무엇일까요? 현재로는 각각의 체제가 유지되는 상태에서 협력관계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나아간다면 사실상의 통일에 준하는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남녀가 결혼할 때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남녀가 만날 때 처음부터 서로 결혼하자고 하거나 결혼하지 말자고 하지 않잖아요. 서로 좋은 만큼 친구로 지내다가 상대가 원하는 만큼 관계가 발전합니다. 상대가 결혼하자고 하면 결혼해서 살고, 상대가 동거하자고 하면 동거해서 살고, 상대가 친구로만 지내자고 하면 각자 집에 살면서 만나면 됩니다. 그런데 통일을 우리가 원하는 방법대로만 하려는 것은 상대를 내 맘대로 하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북한과 통일을 하면 우리에게 손해가 되니까 통일을 하지 말자는 생각은 무책임한 생각이에요. 이산가족 문제를 비롯해 민족 통합의 문제는 경제적인 손익만으로만 계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우리가 북한을 없앨 수 있거나, 북한과 상관없이 지낼 수 있거나, 그런 게 아니잖아요. 남한과 북한이 서로 적대적 관점에서 벗어나면 상호 이익을 꾀할 수 있는데, 서로 자기 식대로만 하려고 하니 긴장도만 높아지는 거예요.

남북 간에 전쟁 위험만 없어지면, 북한이 개방될 수 있고 투자 개발지로 떠오를 수도 있습니다. 그 덕분에 남한은 투자 확대라는 호재를 누릴 수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중국 안에 투자하면 생산비는 저렴하지만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그 대안으로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국이 투자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세계 경제의 중심이 아시아로 옮겨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도 세계 GDP에서 아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어요. 앞으로 미국이나 유럽이 아시아에 투자할 만한 곳이 어디일까요? 일본은 안전하긴 한데 오히려 자국보다도 생산비가 더 비싸고, 대만은 중국과 갈등이 생겨서 안전성이 한국보다 낮고, 베트남은 인프라가 부족하고 기술력도 떨어집니다. 이런 시기에 북한 리스크만 없다면 고급 기술력이 필요한 제품을 생산하기에는 한국만 한 곳이 없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우리나라 경제에는 호재인데, 만약 북한이 투자처가 된다면 완전히 대박이 나는 거예요.

독도는 중요하다면서도 왜 북한은 중요하지 않나요?

젊은이들은 이렇게 이익이 많은 통일을 왜 안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데 실행하지 않는 것은 바보들이나 하는 행동입니다. 사람도 살지 않는 독도에 대해서는 서로 갖겠다고 일본과 싸우면서, 면적이 12만 제곱킬로미터이고 인구가 2천5백만 명이나 되는 북한과는 통일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바보 중에 바보라고 할 수 있어요.

다만 이런 엄청난 이익을 가져올 통일을 우리 방식대로 하려고 하면 전쟁이라는 위험부담이 있으니, 위험부담을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남아 있습니다.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서 미국이 원하는 이익을 과감하게 주고, 대신 한반도에 대한 우리의 이익은 보장해주도록 하는 시도가 필요합니다.

저는 대한민국 정부가 이런 과감한 시도를 하지 않는 게 늘 안타깝습니다. 야당의 협조가 필요하다면 국내 정치에서 상당 부분의 이익을 떼어주며 협력을 얻어야 하고, 일본의 협조가 필요하면 일본의 요구를 들어주더라도 북한과 통일을 이루는 게 낫다고 봅니다. 이렇게 통일이라는 목표가 분명해야 하는데 목표가 분명하지 않다 보니 과감한 시도를 못하는 것 같아요.

통일이라는 분명한 목표

그런데 북한은 언제 붕괴될지 모르는 위험도 가지고 있고 체제 유지가 장기화될 수도 있는 예측불허의 체제입니다. 우리는 북한의 이런 불확실성을 늘 감안해야 됩니다. 북한이 내일 붕괴되더라도, 아니면 현 체제가 30년 이상 유지된다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큰 혼란이 없는 정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박근혜 정권과 이명박 정권은 북한이 곧 망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정책을 폈는데, 북한은 망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실패한 정책이었던 겁니다. 반대로 북한에 유화적인 진보 정권은 북한이 영원히 유지될 것이라는 가정 하에 정책을 펴는데 이것도 올바른 정책이 아닙니다.

우리가 북한과 통일을 하느냐 안 하느냐를 논하기 전에 우리 국민의 안전과 국가 발전을 꾀하기 위해서 북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북한과 통일하면 무슨 이익이 있겠냐는 생각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그럼 무엇 때문에 러시아가 동토인 시베리아를 장악했겠으며, 일본은 못 사는 조선에 무엇 때문에 철도를 깔고 투자를 했겠습니까? 남의 나라에도 투자를 하는데, 나중에 통일이 될 자기 나라에 투자를 안 한다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지요. 자기 나라에 투자하는 걸 문제 삼는 건 뭔가 잘 모르고 있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현 상황을 직시한다면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어요.”

계속 이어지는 질문에 대해 대답을 다 하고 나니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제가 다른 회의가 있어서 오늘은 여기까지 합시다.”

“정말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시간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평화재단 연구 세미나를 끝내고, 잠깐 화장실만 다녀온 후 곧이어 4시 30분부터는 낮에 진행했던 2차 만일준비위원회와 화상회의를 이어갔습니다. 여러 가지 쟁점들에 대해 스님이 조언을 한 후 회의를 마쳤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에는 원고 교정과 여러 가지 업무들을 처리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아침에 농사일을 한 후 하루 종일 두북 수련원을 찾아온 손님과 인근 지역 산책을 다녀올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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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

통일에 대한 개념
자리잡은것 같아 감사합니다.

2021-09-09 06:20:02

김정희

스님의 말씀을 들으니 통일에 대한 관점을 잡게 됩니다.

2021-09-05 10:28:30

해탈지

우리 국민의 안전과 국가발전을 위해서는 꼭 통일이 필요하다는 말씀 들으니 완전한 통일이 아니더라도 우선적으로 필요한 부분부터라도 시작해야 함을 알겠습니다.

2021-09-04 22:5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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