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동해법당
술좋아하는 남편은 나의 부처님

엊그제 일이다. 가방을 뒤지던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이 종이를 내민다.

“엄마, 나 학교에서 편지를 썼는데, 선생님이 칭찬해주셨어.”

“그래, 그럼 우찬이가 읽어줄래?”

아들은 쑥스러워한다. 나는 편지를 읽어갔다.

‘아빠, 담배 피우지 마세요. 담배를 피우면 담배 바이러스가 생겨요. 그게 심하면 폐암에 걸릴 수도 있어요. 저는 아빠가 기침을 심하게 하는 게 담배 때문에 그런 거 같아요. 담배는 한번 피우면 멈추기 힘들지만 노력해보시면 멈출 수도 있어요. 아빠가 좋아하시는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해서 죄송해요.’

아들의 편지를 읽는 순간 부끄럽고 고맙고, 코끝이 찡해졌다. 나는 술, 담배에 절어 사는 남편을 내 입맛대로 고치고 간섭하려 했는데, 아들은 이런 엄마보다 아빠를 걱정하는 마음이 더 크구나 싶어 부끄러웠다. 게다가 아들은 아빠를 존중할 줄 아는 마음까지 내고 있었다.

아들은 유난히 아빠를 좋아한다. 아니, 남편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아빠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거의 다 들어주기 때문이다. 남편은 아들한테 최고의 아빠였지만 나한테는 아니었다. 날마다 술독에 빠져 집을 찾아오지 못하는 날이 잦은데다 집안의 소소한 일까지 결정권을 쥐고 있어 매사에 나를 지치게 했다. 죽지 않을 만큼 지쳤을 때, 나는 정토회를 만났다.

정토회 인연은 우찬이 덕분이다. 우찬이를 낳던 조산원에서 양윤덕 보살님을 만났고, 그 인연이 나의 삶을 조금씩 달라지게 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남편의 10개월간의 해외출장이 가장 행복했던 시간일 만큼 결혼생활이 원만하지 못했다. 스님의 법문에서 많이 나오는 술 먹는 남편에 대한 이해가 나한테는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었다. 심지어 나는 술 먹는 남편에 대한 법문을 듣는 것도 불편할 정도였다.

기도를 하면서 ‘모든 괴로움은 다 내 마음이 짓는 것입니다.’라고 했지만, 마음은 다 남편과 바깥을 탓하고 있었다. 그러다 큰아이가 학교 적응하지 못하고 분리불안이 심했다. 원만하지 못한 결혼 생활의 과보가 온 것이다.

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큰아이 놀이치료를 시작했다. 놀이치료와 더불어 다급해진 나는 서초동법당에서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도반들과 철야정진을 했다. 그러면서 내 안에 사랑 고파 병을 확인하게 되었고, 아이가 그렇게 좋아하는 아빠를 엄마가 미워했을 때 아이는 크나큰 상처를 받는다는 것을 절감했다.

기도하고 집에서 열린 법회를 하고, 틈틈이 법문 점검하는 봉사를 하며 정진했다. 그러면서 내 안에 어리석음과 사로잡힘과 엄청난 고집이 보였다. 남편의 고집에 진저리를 쳤지만 그런 남편 못잖게 고집 센 나를 도반과 열린 법회를 하면서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나라는 것을! 그래서 문제의식을 갖고 조금씩 실천해봤다.

2009년 가을 분당순회강연회에서 스님의 법문을 듣고 내 의견을 남편에게 말하는 방법부터 바꿔야겠다는 생각으로, ‘내 의견을 고집하지 않고 가볍게 말하기’를 연습해봤다. 연습 결과 나는 짠돌이 남편에게서 차를 한대 선물 받았다. 반신반의하며 얘기했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괜찮은 차를 선물 받았다. 스님의 법문 덕에 선물을 받았으니 법륜스님께 감사를 드려야겠다.

돌아보니, 나는 5년 전에 정토회를 만났는데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 기도를 했던 것 같다.

아니, 나는 하루도 빠뜨리지 않았다. 몸을 나투어 숙이지는 못했더라도, 나름의 기도를 하고 있었다. 교회 다니시며 기도하는 친정어머니 모습을 보고 자란 덕택이고, 내게 부처님인 남편 덕분이다.

가끔 벨소리를 못 듣고 잠자고 있던 나를 새벽 다섯 시에야 집에 들어온 남편이 혀 꼬부라진 소리로 깨운다.

“야, 너는 기도도 안하고, 여태껏 자고 있냐! 빨리 일어나!”

나는 부리나케 일어나 기도방석에 앉아 기도한 적도 있다. 예전 같으면 ‘너나 잘하세요.’하며 분별심이 올라왔을 텐데, ‘그래, 이런 당신이 있는데, 어찌 기도 시간을 놓칠쏘냐.’ 마음 바꿔 기도한다.

남편이 올해 4월 강원도 삼척으로 발령을 받았다.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남편과 떨어져 지내려 했지만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남편과 같이 가라’고 하신 법사님의 말씀에 따라 남편과 함께 삼척으로이사했다.

불법의 소중함을 맛본 나는 이삿짐도 풀지 않고 열린 법회를 열었다. 그런 나의 절박한 마음을 알았는지 남편도 내가 열린 법회를 여는데 흔쾌히 동의해 주었다. 귀한 법문 듣고, 내 마음을 나누는 행복한 시간을 결코 놓칠 수 없었다.

6월에는 제천 정토회의 지원으로 동해시에서 도반들과 법륜스님 순회강연을 치렀다. 그리고 강릉과 동해, 삼척에 열린 법회가 생기고, 강릉, 동해에 가을불교대학을 열어 도반들과 부처님 법을 열심히 공부하는 중이다. 강원도 지역에는 정토회가 알려져 있지 않았던 터라 몇 안 되는 도반이 더없이 소중하다. 아내와 이혼하고 홀로 두 아들을 키우며 기도하고 정토회 활동에 앞장서는 김규영 거사님,

법문 듣고 많이 편안해져 불교대학 사찰순례를 다녀온 후 황룡사지 터에 절을 세우고자 원을 세운 류춘순 보살님, 깨달음의장에 다녀와 새털처럼 가벼워졌다는 정복희 보살님은 수행에서 도반이 전부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실감케 해주셨다.

내가 정토회 활동할 수 있게 한 일등공신은 남편이다. 남편 덕에 내가 수행의 끈을 놓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남편은 불교대학 있는 날은 술 약속도 미루고 집으로 와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술집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더라도 아이들을 돌봐준다. 그런 남편이 지금은 더없이 고마울 따름이다.

‘천일’이라는 말이 새삼스럽다. 그냥 하루했을 뿐이고, 그 하루하루가 모아져 천일이 되었다. 돌아보니 내게 대견함이 느껴진다. 남편을 부처님으로 받드는 날까지 열심히 기도정진하고, 내 삶이 자유로워 행복한 수행자가 되는 원을 세워본다.

전체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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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영

남편이 부처님이다 라는 원을 세워 실천을 행하신 보살님의 기도 감동입니다 부지런히 행하면 낙숫물이 바위를 뜷듯이 저도 그냥 기도를 합니다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감사합니다

2021-01-31 06:05:38

대단하세요

남푠님을 부쳐로 만들고 싶으시다는......(^-^)
하~~~아~하~ 하~하~

2021-01-30 06: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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