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성북법당
미워하느라 애썼다, 내 마음아!

노원정토회 청년지원담당 진희수 님은 삼수 끝에 경전반을 졸업했습니다. 바쁜 교직생활을 하며 경전반까지 졸업할 수 있던 것은 든든한 도반들 덕분이라고 합니다. 정토회를 만나, 어머니에게 화내고 위협하던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것이 가장 큰 깨달음입니다. 오랜 시간 아버지를 미워한다고 애쓴 자신도 이제 위로할 줄 알게 되었다는 오늘의 젊은 주인공. 싱그럽고 지혜로운 수행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경기도 가평에서 진희수 님
▲ 경기도 가평에서 진희수 님

스님이 대단하면 얼마나 대단하길래

정토회와의 인연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어머니를 따라 다른 절에서 운영하는 템플스테이에 참여하였습니다. 제 나름대로는 깨달음을 얻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힐링을 위주로 하는 곳이어서 편하게 잘 쉬다 왔을 뿐, 별다른 감흥이 없었습니다. 그때 정토회를 다닌 적이 없는 한 도반님이, 청년이라면 정토회에서 운영하는 <깨달음의 장1>을 한번 꼭 다녀와 보라고 추천해 주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깨달음의 장>에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았습니다. 신청이 분 단위로 마감이 된다는 글이 많아서, 그나마 진입 장벽이 낮은 불교대학에 먼저 입학했습니다. 집과 가까운 중랑법당에 등록을 하였으나, 나중에는 청년 불교대학이 있는 구로법당에서 수업을 들었습니다.

2015년 동북아 역사 대장정 중 (앞쪽에서 세 번째 빨간 모자)
▲ 2015년 동북아 역사 대장정 중 (앞쪽에서 세 번째 빨간 모자)

불교대학 입학식 날, 나누기 시간이 기억납니다. 어머니가 절에 다녀서 불교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지만 불교의식은 익숙지 않았습니다. 법륜스님에 대해서 전혀 모르던 저는 나누기 시간에 하나 같이 ‘법륜스님 덕분에 왔다.’라는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스님이 대단하면 얼마나 대단하길래, 저러나?’ 하며 ‘이곳은 약간 이상한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님에 대한 선입견이 깨진 것은 그해 8월 동북아 역사 대장정을 다녀와서입니다. 8박 9일의 긴 일정을 스님과 같은 버스를 타며 생활했습니다. 이른 새벽부터 밤까지 청년도 힘든 일정을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모범을 보이는 스님의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진정한 리더란 저런 모습이구나, 내가 잘 모르고 편견을 갖고 있었구나.’하고 크게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스님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르고 있습니다.

2017년 성북 청년 가을불교대학 졸업 갈무리에서 (뒷줄 가운데)
▲ 2017년 성북 청년 가을불교대학 졸업 갈무리에서 (뒷줄 가운데)

아버지 미워하느라 애쓴 내 마음을 위로하다

자율학습을 마친 고등학교 3학년 주말 저녁, 집에서 전화가 와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암 투병 중인 외할아버지의 안부를 묻지 않는다고 아버지에게 서운한 점을 말했다가 아버지의 화가 폭발해 싸움이 커졌다고 했습니다. 그날 이후 한동안은 온 가족이 아버지가 잠든 후에 집에 들어가고, 아버지와 대화도 하지 않았습니다.

불교대학 특강수련 때, '부모님 감사합니다'라는 명심문으로 300배 참회기도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왜 내가 아버지에게 기도해야 하나.' 싶었습니다. 도반들을 따라 한 배 한 배 몸을 숙이면서, 화내며 어머니를 위협하던 아버지의 마음이 이해되었습니다. 또, 그 오랜 시간 동안 아버지를 미워하느라고 애썼던 저에게 미안한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외면했던 그때 제 마음도 보였습니다.

경상도가 고향이라 무뚝뚝하고 감정표현에 서툰 아버지는 일어나는 마음을 속으로 삭이는 수 밖에 몰랐던 것 같습니다. 미처 화를 참지 못하고 폭발한 그 일이 있은 후, 아버지는 말로 표현을 못했을 뿐 행동으로 미안함을 보였지만 제가 모른 척 했습니다. 매일같이 새벽 4시에 출근하며, 평생 식구를 돌보기 위해 살았던 아버지. 몹시 힘들었을 텐데 제가 너무 어머니 말만 듣고 있지 않았나 생각했습니다. 또 부모님이 싸울 때 남동생보다 제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조금 낫지 않았을까 하는 자책의 마음도 보았습니다.

한때 대화도 일절 하지 않고 지내던 아버지와의 관계는 어머니와 제가 <깨달음의 장>에 다녀오고서 차츰 좋아졌습니다. 지금은 부모님에게 애교도 부리고 늘 감사한 마음으로 지냅니다.

학창 시절에 저는 공부만 하던 조용하고 얌전한 아이였습니다. 저는 자신을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착한 딸’이라고 여겼습니다. 정토회 활동을 하고 수행하면서 지금은 제가 예민하고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인 걸 알았습니다. 제가 '착한 딸'이 아니라 부모님이 저에게 맞춰주고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해 준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업식으로 ‘다른 사람도 내 의견에 동의해주겠지.’라는 생각을 막연하게 가지고 상대를 대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정토회를 만나지 않았다면 몇십 년이 지나서 힘들게 알았을 것을 이렇게 스스로 알게 된 점이 저에겐 참 감사합니다. 미래에 제 업식 때문에 겪을 과보를 미리 피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2019년 4월 청년 경주 역사기행에서 (오른쪽에서 다섯 번째)
▲ 2019년 4월 청년 경주 역사기행에서 (오른쪽에서 다섯 번째)

그냥 해라, 잘하지 않아도 된다, 괜찮다

청년 정토회 활동을 하면서 저에게 가장 많이 힘이 되었던 말이 있습니다. ‘그냥 해라, 잘하지 않아도 된다, 괜찮다’입니다. 능력도 없으면서 잘하기를 바라던 제 업식에 학창 시절, 사회생활에서 ‘늘 실수하지 않아야 하고,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토회에서는 이런 부담과 강박이 없었습니다.

저는 일을 미루는 습관이 있습니다. 10개의 일을 주면, 잘하는 것을 우선하고 부담스러운 일들은 마지막에 가서야 겨우 하곤 했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잘하고 싶은데 아는 것이 없을 때 이런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7년간의 청년 정토회 활동으로 이제는 그냥 가볍게 시작합니다. 물론 잘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애쓰는 모습은 여전하지만, 이런저런 제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무엇보다 지금은 예전에 비해 가볍게 저를 대할 수 있어서 편안합니다.

2019년 구미 아도모례원에서 정일사 회향 뒤 곶감 만들기 울력 중 (맨 앞)
▲ 2019년 구미 아도모례원에서 정일사 회향 뒤 곶감 만들기 울력 중 (맨 앞)

아이들을 통해 배우는 긍정의 힘

저는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교사는 다양한 환경의 아이들을 많이 만납니다. 아이들은 담임선생님을 절대적으로 사랑해주고 믿고 따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저의 직업이 참 좋고 감사합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저는 오히려 아이들에게 더 많이 배웁니다. 특히 밝고 긍정적인 아이들에게서 삶을 대하는 태도를 많이 익힙니다. 남이 비꼬는 말을 들어도, ‘그래, 맞아. 내가 좀 그렇지.’하고 웃고 가볍게 넘기는 아이의 모습이 처음에는 놀라웠습니다. 저라면 날 무시해서 그런 게 아니냐고 생각했을 텐데 말입니다.

교사로서 저도 가끔 화가 날 때가 있습니다. 아이가 눈에 보이는 거짓말을 할 때와 다른 친구를 때리거나 피해를 줄 때입니다. 예전에는 그런 상황이 생기면 ‘내가 지도를 제대로 하지 못했나? 아니면 날 만만하게 보나?’라고 자책하곤 했습니다. 이제는 정토회에서 배운 대로 기준점을 잘 잡아, 규칙을 알려주는 것과 혼내는 것을 구분하니 아이들과의 관계도 편안합니다.

이틀 뒤면, 제가 맡은 아이들의 졸업식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추억을 많이 만들지 못해서 아쉬움이 크지만 제가 조금씩 성장하도록 도와준 아이들에게 문집을 선물로 주려고 합니다. 절 믿고 잘 따라와 준 아이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1년간 여러분 덕분에 참 행복하고 고마웠어요. 사랑해요. 휘봉초 606! 코로나 끝나면, 마스크 벗고 꼭 만나자.’

2019년 졸업한 경전반 갈무리 후 도반들과 (맨 앞줄 왼쪽)
▲ 2019년 졸업한 경전반 갈무리 후 도반들과 (맨 앞줄 왼쪽)

경전반 삼수생이 청년지원 담당자가 되어

2015년 동북아 역사대장정을 마치고, <깨달음의 장>에 다녀왔습니다. 천일결사 입재도 하고, 봉사를 시작하면서 경전반 졸업은 쉽지가 않았습니다. 경전반 삼수생 꼬리표를 달고, 2019년에 졸업을 했습니다. 함께 했던 노원정토회 청년 도반들 덕분입니다.

제가 속해 있는 노원청년정토회는 올해로 4년 차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노원청년정토회의 자랑은 착한 청년 도반들 그 자체입니다. 노원정토회에는 청년 모둠이 따로 구성되어 있어서, 청년들끼리 얼굴 볼 시간이 많습니다. 자주 만나니 나누기도 진솔하게 할 수 있고 친구에게도 못한 속 깊은 이야기도 가볍게 할 수 있습니다. 수행을 열심히 하는 도반들이 많아서 수행 습관을 기르기도 참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즐겁고 재미있는 일들이 가득합니다. 매년 크리스마스에는 송년 모임도 하고, 철야정진을 하면서 새해맞이도 함께 합니다. 망설이지 말고, 일단 한번 와 보세요.

대중부와 세대 차로 인한 소통의 어려움은 없습니다. 요새 유행하는 ‘라떼라면 말이야’를 아직 경험하지 못 했습니다. 법당의 모든 분이 ‘청년’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들 예뻐해 주고, 챙겨줍니다. 일상이 바쁘다 보니, 법당의 일을 많이 돕지 못해 오히려 청년들은 늘 감사한 마음이고 미안한 마음입니다. 도반들이 법당을 항상 듬직하게 지키고 있어, 저에게 정토회는 놀이터이자,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지지해 주는 넓디넓은 울타리입니다.

노원정토회 청년부 온라인 송년회 모습 (맨 윗줄 두 번째 빨간 모자)
▲ 노원정토회 청년부 온라인 송년회 모습 (맨 윗줄 두 번째 빨간 모자)


주인공과의 인터뷰 전, 나이 차가 많아서 잘 소통할 수 있을지 긴장되고 걱정스러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첫인사를 나누고 인터뷰 소감을 묻는 말에, 수행 후 변화를 자랑하게 되어 뿌듯하고 감사하다고 하여 저의 걱정은 저만치 사라졌습니다. 심지어 청년활동을 홍보할 때는 ‘저도 청년반으로 가고 싶어요!’라고 외치고 싶었습니다. 불안과 혼돈의 코로나 시대를 살지만, 정토회 청년 진희수 님을 만나고 나니 앞으로 펼쳐질 정토회의 새로운 백 년이 창창하게 보이는 듯했습니다. 주인공의 바람대로 청년부가 나날이 발전하길 응원합니다.

글_김명옥 희망리포터 (노원정토회 성북법당)
편집_강현아 (수성정토회 수성법당)


  1.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전체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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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각

희수법우님 멋지네요^^ 앞으로도 화이팅!!

2021-07-15 10:47:31

일광명김민지

경전반 졸업하셨네요!축하합니다.ㅎ
19년 8월 문경에서 함께 해서 즐거웠습니다. 나이많고 많이서툰 저에게 잘알려주고 잘한다고 칭찬해주던 말한마디에 순간 어린시절로 돌아간듯 아이가되어 많이설레였어요ㅎㅎ 언젠가 또 만나뵈어요.

2021-01-30 23:37:58

이종미

고맙습니다!

2021-01-30 01: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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