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시애틀법당
시애틀법당을 지키는 푸른 갈색눈의 수행자

시애틀법당에 남다른 외모로 눈에 띄는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바로 오늘의 주인공인 크리스토퍼 비넘 님입니다. 그는 어떤 인연으로 시애틀 정토회에서 생김새와 언어가 다른 도반들과 함께 수행하게 되었을까요?

2019년 4월 7일

갖가지 꽃들이 세상을 바꾸기로 약속이라도 한 듯 화려한 색으로 온누리를 물들이기 시작한 2019년 봄, 시애틀법당에 조용히 나타난 한 백인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날이 처음이었지만, 그것은 쉽게 얻어진 만남도 우연한 발걸음도 아니었습니다. 불교다운 불교, 부처님의 가르침을 중심에 두는 불교 모임을 찾던 그가 긴 모색 끝에 마침내 정토회와 법륜스님을 알게 되어 스스로 찾아 나선 기대에 찬 첫 만남이었습니다. 크리스토퍼는 그날의 심정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과의 첫 데이트만큼이나 가슴 설렜다"고 회상합니다. '이 만남으로 좋은 관계가 계속될 수 있을까?' '앞으로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4월 7일 일요일이라는 그날의 날짜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시애틀 법당의 도반들이 반갑게 맞아 주고 여러 가지 배려해 주긴 했지만, 한국어 소통이 거의 불가능한 그가 한국어만으로 진행되는 법회에 참석해 함께 의식을 치르고, 법문을 듣고 나누기를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중국에 있을 때 배운 중국어에 힘입어 법문 중 한문으로 된 단어 몇 마디를 간간이 알아듣는 수준이니 그 고충이 어땠을까요? 모자란 현지어 실력으로 외국에서 살아가는 이민 1세대 도반들은 아마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겁니다.

그러면 크리스토퍼는 왜 거의 알아듣지도 못하는 법문을 들으러 꼬박꼬박 법회에 나온 걸까요? 어떻게 그 어려움을 견뎌냈을까요? 그 답을 찾기 위해서는 그의 인생에서 수십 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크리스토퍼 비넘 님의 이야기 입니다.

환경학교 참가상
▲ 환경학교 참가상 "오, 이런 기분 처음이에요."

미국 너머 세상으로의 관심

저는 워싱턴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곳 토박이입니다. 저의 아버지는 전형적인 미국인이고, 어머니는 피지에서 두 살 때 건너온 이민 1.5세대입니다. 그래서 외할머니와 이모를 통해 일찍부터 외국의 문화에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생 때에 1달간 독일에 교환학생으로 갔었고 또 피지에도 다녀왔는데, 그 이후 외국, 외국어, 그리고 외국 문자에 대해 높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종교적으로 아버지는 무관심했지만 고모 두 분은 열렬한 개신교 신자였습니다. 또 어머니와 이모는 범신론적인 뉴에이지 계열에 속해, 저는 어릴 때부터 다양한 신앙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탓인지 10살경 스스로 성경을 공부하면서 삶의 궁극적인 지침으로서의 성경 내용에 회의를 품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안주할 수 없어 이미 힌두교 경전, 이슬람 경전도 두루 찾아 읽었습니다. 그때 읽은 힌두 경전 중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경전이 나중에 알고 보니 가장 불교와 관련이 깊은 내용을 담은 《바가바드기타》와 《우파니샤드》였습니다.

불교와의 만남, 그리고 정토회

저는 졸업 후 전공 관련 일을 하다가, 평소 언어에 대한 관심도 살리고 중국어도 배울 겸 2004년부터 중국에서 3년 동안 영어를 가르쳤습니다. 그 후 3년 뒤 베트남에서 다시 3년 동안 영어를 가르치다 돌아왔습니다. 이때 경험한 아시아는 미국의 정체된 사회와는 전혀 다른 변화하는 사회였습니다.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이나 늘 웃음이 있는 법회가 좋은 크리스토퍼
▲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이나 늘 웃음이 있는 법회가 좋은 크리스토퍼

불교에 대한 관심은 계속되었습니다. 정토회를 만나기 전에 시애틀 지역의 중국계 사찰 두어 군데에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부처의 가르침에 대한 갈증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지나는 길에 눈의 띈 시애틀 정토회 법당의 간판을 유심히 보고 기억해 두었습니다. 인터넷에서 시애틀 정토회의 홈페이지와, 법륜스님의 존재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정토회를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언어의 장벽을 넘어

저는 한글을 쓰고 읽을 수는 있지만 한국어로 대화를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닙니다. 그런 제가 법회 시간에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저는 법회에 참석하기 전에 유튜브에서 영어 자막이 달린 스님의 동영상을 미리 공부하고 옵니다. 물론 같은 내용은 아니지만 스님의 법문에 일관성이 있어서 도움이 됩니다. 동영상을 보면서 한국어도 배우고, 가끔씩 알아듣는 어휘를 통해 법문의 개괄적인 내용을 짐작합니다. 그래서 법회에 참석해 도반들과 함께 법문을 듣는 것이 제게는 큰 동기가 됩니다. 아마 이 세상에서 법륜스님의 법문에 가장 집중하는 사람이 바로 제가 아닐까합니다.

25년째 하고 있는 명상 수행 덕분에 스님의 말씀 중 ‘습관’, ‘욕심’, ‘음식’이라는 단어는 놓치지 않고 알아듣습니다. 영어로는 어쩔 수 없이 문화적 선입견이 가미되어 오히려 한국어로 더 의미있게 느껴지는 단어가 몇 개 있습니다. 바로 ‘기도’, ‘욕심’이 그 예입니다. 현대 사회, 특히 서양은 너무도 분열되고 양극화되어 있어 단어도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이해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님은 이미 2천 600여년전에 중도를 설파하셨는데 그 지혜에 대해 현대의 미국인은 무지할 따름이니 안타깝습니다.

이 연등이 부처님의 지혜처럼 모두의 마음을 밝히기를
▲ 이 연등이 부처님의 지혜처럼 모두의 마음을 밝히기를

“제이슨 고마워요!”

정토회에 나온 첫해에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에 세 번 직접 참석했습니다. 그중 두 번은 멀리 동부의 메릴랜드까지 날아가 참석했습니다. 한 번은 외국인 대상의 강연이었는데, 다양한 인종이 참가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날 제이슨 님의 통역을 들으며 그때까지 희미한 전등으로 간신히 구석을 비춰보다가 모든 장막이 걷힌 듯한 통쾌함을 느꼈습니다. 제가 제이슨 님에게 얼마나 고마움을 느끼는지 제이슨 님 본인은 결코 모를 겁니다.

코로나 대유행으로 행사가 온라인으로 전환한 덕분에 저와 같은 외국인에게는 스님을 접할 기회가 더 많아졌습니다. 온라인과 유튜브로 즉문즉설을 들으면 우리가 처한 환경이나 문제가 서로 흡사하기에, 내가 질문한 게 아니더라도 스님이 내 질문에 답을 주시는 것 같습니다.

정토회 행사 영어 안내는 제게 맡기세요
▲ 정토회 행사 영어 안내는 제게 맡기세요

봉사로 나를 보며 주인이 되어갑니다

저는 정토회와 인연을 맺은 후 곧 법당에서 많은 시간을 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애틀법당 도처에는 워싱턴주의 공적 1호라고까지 일컬어지는 블랙베리가 봄부터 가을까지 무성하게 자랍니다. 블렉베리는 미관을 해칠 뿐 아니라 날카로운 가시로 안전을 위협하기 일쑤입니다. 저는 특히 이 잡초를 제거하는 데에 많은 일을 했습니다. 법회 날에는 누구보다 늦게까지 남아 일했을 뿐 아니라 법회가 없는 평일에도 혼자 나와서 블랙베리를 제거하곤 했습니다. 자르면 다시 자라고 뿌리를 뽑으려 하면 부러져 오히려 증식하는 블랙베리를 보면 공부가 됩니다.

2021년 1월 3일, 새내기 천일결사자가 되다

정토회에 다니면서 알게 된 천일결사에 많은 흥미를 느꼈습니다. 오랫동안 수행해 온 사람으로서 저도 진작 천일결사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언어 장벽과 제 신체적인 문제로 망설여 왔습니다. 제 성격상 일단 시작하면 무리해서라도 꼭 108배를 완수하려고 애쓰다 증상을 악화시킬 것 같아 코로나 대유행이 끝나면 병원에 다니며 본격 치료를 받은 후로 천일결사를 미루고 혼자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영어 사용자를 위해 입재식을 열어 주시는 데다, 제 형편에 맞추어 해도 된다는 도반의 격려에 힘입어 1월 3일 영어 입재식에 참여하여 천일결사자가 되었습니다.

입재식은 정말 좋았습니다. 특히 스님의 법문과 참석자의 질문에 즉석에서 해 주신 답변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스님의 지도가 제게 방향을 잡아 줍니다. 나 자신을 너무 심각하게 대하는 습관이 있는 저에게 가벼운 마음으로 행하라고 강조하시는 스님의 조언이 꼭 필요했습니다. 첫 번째 목표는 내가 자유롭고 행복해지는 것이고, 남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그다음이라는 말씀에 완전히 공감합니다. 내가 자유롭고 행복하지 못하면 아무리 남을 도와도 그 부족함이 채워지지 않습니다. 앞으로 이 두 가지 목표의 우선순위를 꼭 명심하겠습니다.

정토회에서의 중도를 경험합니다

“한국어를 잘 몰라서 도반들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므로 말 대신 그들의 행동에 더 초점을 두게 됩니다. 도반들이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관찰합니다. 그건 마치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같습니다. 도반들과 함께함으로써 제가 찾던 담마가 제게 더욱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정토회와 인연을 맺은 지 1년이 훨씬 넘었습니다. 지금 돌아 보면 참 좋습니다. 오랫동안 저는 ‘nightstand Buddhist’(부처의 가르침이 좋아서 불교 책을 읽고 불상을 곁에 두고는 있지만 불교를 종교로서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이었는데, ‘좋은 생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간혹 잘못 이해할 수도 있어요.

정토회에 처음 왔을 때는 제가 뭔가 특별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 있었어요. 그런데 정토회에서 배우고 수행하면서 자세가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사회문제, 환경문제에 관한 저의 관심을 유지하면서도 이 사회의 양극화 현상에서 좀 자유로워졌음을 느낍니다. 전에는 속세를 초월한 수행자와 과민한 사회운동가 사이에서 고민했다면, 이제는 그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게 아니라는걸,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면서도 웃으며 가볍게 살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전에 책을 통해 중도를 배웠지만 이제 정토회를 통해 그것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제 제2차 만일결사를 앞두고 본격적인 외국인 전법 활동이 시작되면 크리스토퍼의 활약이 더욱 기대됩니다. 본인도 그 역할을 위해 도반들과 더욱 협조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힙니다. 코로나 대유행 이후의 세상을 위해 시애틀법당을 지키고 있는 푸른 갈색눈의 수행자 크리스토퍼. 이제 막 새내기 천일결사자가 된 그는 알고 보면 새로운 만일을 준비하는 시애틀의 꿈나무이기도 합니다.

글_하주홍 희망리포터(북미 서부정토회 시애틀법당)
편집_행자의하루 편집팀(홍보국)

전체댓글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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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외국어를 극복해보고 싶다는 용기가 저도 생기네요
고맙습니다

2021-01-31 08:02:36

공덕품

거리는 먼 이국이지만 도반님의 수행담은 아주 가깝고 친근합니다. 성불하십시오~^^

2021-01-29 05:48:20

자재왕

정토회! 세계 전법의 시대가 눈 앞에 도래하였음 봅니다. 위대하신 스승님 제자가 된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2021-01-28 13:4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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