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시애틀법당
인생의 풍미를 더해주는 양념을 얻어갑니다

〈깨달음의 장> 그 소중한 경험의 현장에서 깨달음의 첫걸음을 떼기 위해 넘어져 가며 뒤뚱뒤뚱 걸음마를 배우는 수련생들! 수련에 지친 그 미래 부처들의 몸과 마음을 위로해 주는 양식을 만들기 위해 뒤편에서 정성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바라지들입니다. 오늘은 지난 10월 말 시애틀 법당에서 진행된 〈깨달음의 장〉 수련에서 봉사한 바라지 중 특별히 눈에 띄는 두 분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이번 수련에는 20명의 수련생이 깨달음의 길을 향한 눈물과 웃음, 회한과 희망이 교차하는 감정의 롤러코스터와도 같은 수련을 모두 무사히 마쳤습니다. 그 기간 동안 매일 5명 이상의 바라지들이 수련생들의 양식을 준비하는 일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바쁜 일상 가운데 짬을 내서 반나절만 참여한 분부터 4박 5일의 수련 기간 내내 봉사한 분까지 총 13명의 인원이 이번에 바라지의 역할을 해냈습니다.

그중 오리건주 포틀랜드 열린법회의 이화숙 님과 캐나다 밴쿠버 법당의 장민용 님의 바라지 경험을 나누어 봅니다. 두 분은 모두 이곳 워싱턴주가 아닌 먼 곳에서 기꺼이 와 주었는데, 공교롭게도 작년 5월 이곳 시애틀 법당에서 〈깨달음의 장〉을 함께 마친 수련 동기이기도 합니다. 두 분에게 1. 바라지를 지원한 동기나 계기가 무엇인지, 2. 실제로 해 보니 사전에 기대했거나 예상한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3.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하나 꼽는다면 어떤 것인지, 4. 바라지를 하며 가장 좋았던 점과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는지, 5. 앞으로 바라지 봉사를 고려하는 희망자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 주고 싶은지 등을 질문했습니다.

그날의 법당은 아름다웠다!
▲ 그날의 법당은 아름다웠다!

바라지를 향한 왕복 600km의 대장정, 이화숙 님

이화숙 님은 이번 바라지 중 지리적으로 가장 먼 곳에서 왔을 뿐 아니라 수련 기간 내내 법당에서 수련생들과 함께 지낸 유일한 바라지이기도 합니다. 이화숙 님의 이야기입니다.

“포틀랜드 열린법회를 통해 정토회와 인연을 맺은 지 5년째입니다. 작년 봄에 바로 여기 시애틀 법당에서 〈깨달음의 장〉을 마쳤습니다. 수련하면서 선배 도반들이 정성껏 차려주신 음식을 대하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때〈 깨달음의 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지금 제가 받은 것을 다음에 꼭 되돌려 주는 의미 있는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이번에 그 기회가 와서 기쁘게 바라지로 참가했습니다.

사전에 특별한 기대나 예상을 하진 않았고 그저 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왔습니다. 막상 와서 다른 도반들과 함께 주어진 일을 하다 보니 그분들의 정성과 노고에 저절로 감동하고 감사한 마음이 솟아납니다. 5일 동안 바라지로 일하며 겪은 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모르던 사람들과 새로운 인연을 맺은 것입니다. 바라지로서 음식을 준비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게 느껴진 것이 바로 그 부분이었습니다. 저는 인생에 풍미를 더해 주는 중요한 양념이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전업주부 30년 차로 요리 경험이 짧지 않은데, 이번에 바라지로 일하면서 가족을 위하는 정성과 사랑으로 음식을 준비하는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뿐 아니라 다른 바라지들로부터도 그런 마음이 느껴져 쉽게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좋았던 점은 바로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입니다. 물론 음식에 대해서 새로운 것들을 많이 배운 점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정해진 시간 내에 적지 않은 분량의 음식을 만들어 때맞추어 내려니 긴장하게 되고, 그 일을 며칠 계속하다 보니 몸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인내와 정성을 마음이라는 그릇에 담는다고 생각하면서 해냈습니다.

앞으로 바라지 활동을 생각하는 분들에게 보탬말을 준다면 수련생들이 바로 부처님이니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그냥 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본인이 시간만 낼 수 있다면 부담 가질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공양간 앞에서 포즈를 취한 바라지들. (왼쪽 두 번째 이화숙 님, 오른쪽 끝 장민용 님)
▲ 공양간 앞에서 포즈를 취한 바라지들. (왼쪽 두 번째 이화숙 님, 오른쪽 끝 장민용 님)

평균보다 훌쩍 큰 키에서 오는 활달한 인상과는 달리 소녀처럼 얌전하고 다소곳한 태도와 음성으로 인터뷰에 응해 주신 이화숙 님은 며칠씩이나 집을 떠나 바라지를 하는 것에 대해 남편과 아들들이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지지해 주어서 다행이었다며 밝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다음에도 여건이 허락한다면 또 하고 싶다는 의욕을 밝혔습니다. 가족들이 엄마 없이 남자들끼리 며칠 동안 밥해 먹느라 쉽지만은 않았겠지만, 이화숙 님이 바라지 일을 통해 배우신 새로운 요리 실력을 몇 번 선보이면 아마 다음에 또 가족들이 적극적으로 보내려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바라지 이후 한 달 남짓 시간이 지난 현재 삶의 변화를 느끼는 부분이 있는지 묻는 희망리포터의 추가 질문에 딱히 변화랄 건 없지만 요리를 통해 사람에게 음식이 소중함을 더욱 실감하게 되었고 바라지를 하며 맺은 좋은 인연과 추억이 삶의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작년 〈깨달음의 장 〉경험이 한동안 생활의 길잡이가 되었듯 바라지장의 경험 또한 인생이란 식탁에 큰 일품요리 하나로 자리매김할 것 같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음 나누기란 결국 사랑인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이렇게 하는 거 맞죠? 맞을거야! (오른쪽에서 두 번째 이화숙 님)
▲ 이렇게 하는 거 맞죠? 맞을거야! (오른쪽에서 두 번째 이화숙 님)

국경 넘은 사랑의 바라지? 일식 조리사 장민용 님

이번 바라지에 참가한 두 명의 남자 중 한 명인 밴쿠버 법당의 장민용 님. 장민용 님은 캐나다에서 국경을 넘어 참가했습니다. 흔히 사랑엔 국경이 없다고 하는데, 이분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사랑하는 여인이 수련생으로 참가했고, 장민용 님은 그 사랑을 따라 국경을 넘은 셈이니까요. 게다가 장민용 님은 직업이 일식 요리사이니 바라지 중에서도 여러 가지로 특별히 눈에 띄는 존재였습니다. 칼을 갈아달라는 요청을 받고 이리저리 시도하고 있던 다른 남자 바라지분이 장민용 님이 도착하자마자 반가워하며 칼 가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 저도 작년 바로 이곳에서 〈깨달음의 장〉을 졸업했습니다. 그때 나온 음식을 보고 많은 감동과 감사를 느꼈는데 그것을 일부라도 회향하고 싶어 바라지를 자원했습니다. 그리고 수련자로 참여한 여자친구를 비롯한 〈깨달음의 장〉 후배 도반들에게 조금이나마 음식으로 격려해 주고 싶은 마음과 요리사로서 작게라도 기여하고픈 마음도 바라지를 한 동기라고 하겠습니다.

오기 전에 미리 기대하거나 짐작한 것은 따로 없었습니다. 저로서는 처음 해보는 일이었는데 좋은 배움과 수행의 기회가 되고 제가 쓰임이 되면 좋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임했습니다. 겸손하면서 돕고 쓰임이 되고자 하시는 동료 바라지 도반들의 따뜻한 마음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개성이 다른 여러 바라지들이 한데 협동해서 모자이크 붓다를 이루는 모습을 보는 게 감동적이었고, 채식 재료만으로도 훌륭한 음식들을 탄생시키는 과정에 함께 참여했다는 사실이 행복합니다.

바쁜 일정과 새벽에 국경을 넘는 탓에 전날 잠을 잘 자지 못하여 첫날 맑은 정신으로 임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습니다. 반면에 음식이 감동적이었고 그 음식을 준비하며 선배 바라지 도반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 것도 좋았습니다. 묵언 등으로 분위기가 엄숙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자유로워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도반들과의 마음 나누기도 좋았습니다. 장차 바라지 봉사를 고려하는 분들에게 소임이 곧 복이라는 말씀을 해 드리고 싶습니다. 소임을 통해 자기 공부를 많이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 공양을 드리는 마음으로 수련자들과 동료 바라지 도반께 봉사하듯 임하면 더 행복한 수행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마음으로 전을 부치며 밝게 웃는 장민용 님
▲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마음으로 전을 부치며 밝게 웃는 장민용 님

일식 조리사라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푸근하고 선량한 느낌이 인상적인 장민용 님에게 혹시 요리사이기 때문에 다른 바라지보다 특별히 어려웠거나 좋았던 점이 있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장민용 님은 전문성이 쓰임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도리어 여러 도반님의 정성과 채식 요리의 비결들을 배워서 좋았다고 겸손하게 답했습니다. 그리고 공양간에 도구가 약간 부족한 것 같아 앞으로 주방을 개비할 때 전문가로서 도움을 드릴 수 있기를 바란다는 희망도 밝혔습니다. 예를 들어 주방에 구비해 두면 좋은 도구나 향신료 등에 대해 조언할 수 있고 나아가 좋은 식자재를 고르는 법 등도 정리해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라지를 하고 난 후에 삶의 변화를 느끼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이에 장민용 님은 음식을 하는데 공양을 준비하듯 전보다 더 정성과 사랑을 담아 하는 습관이 생겼고 음식을 만드는 것도 수행의 일부라는 점이 더욱 마음에 다가온다고 했습니다.

끝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수련생이기 때문에 특별한 마음이 있지는 않았는지 묻는 희망리포터의 짓궂은 질문에는 부처님께 드리는 공양을 짓는다는 마음으로 임했기에 특별한 마음은 없었고 단지 연인을 비롯해 모든 수련생이 잘 깨닫고 삶이 더 가벼워지시길 바라는 마음이었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낙엽 밟는 소리 사라락 사라락~가을을 즐기며 경내를 산책중인 바라지들!
▲ 낙엽 밟는 소리 사라락 사라락~가을을 즐기며 경내를 산책중인 바라지들!

글_하주홍 희망리포터(시애틀법당)
편집_박승희 (해외지부)

전체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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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연

좋은 인연입니다(_)
깨장을 다녀온 사람은 압니다^^
얼마나 정성스런 음식을 대접 받았는지^^ 얼마나 감동스러웠는지^^
고맙습니다^^

2019-12-03 21:27:21

이현주

수련기간 내내 정성으로 내어 온 음식을 감사히 먹었습니다. 먹기 전에 눈으로 먼저 놀라고 숙연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외국에서 혼자 밥 해 먹으면서 엄마가 차려주셨던 밥상을 떠올리곤 했는데, 엄마에게 고맙다는 말을 못한게 못내 아쉽습니다. 바라지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2019-12-02 17:20:40

무량덕

멋진 가을날씨처럼 바삭하고 화창하고 투명한 도반님들 마음이 느껴집니다. 감사합니다

2019-12-02 16:3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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