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부천지회
심~ 봤다!

오늘 주인공인 김인화 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강한 톤의 목소리에 살짝 긴장했습니다. 하지만 인터뷰하면서 김인화 님의 여리고 편안한 모습에 저도 함께 편안해졌습니다. 그동안 긴장과 업식의 갑옷을 입고 전쟁하듯 살았다는 김인화 님의 마음은 얼마나 무거웠을까요? 정토회를 만나 가벼워진 부천지회 김인화 님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마음이 답답해서

초등학교 6학년이 된 아들이 어느 날 가출했습니다. 화만 내는 엄마와 살고 싶지 않다며 집을 나갔습니다. 서너 시간 후에 들어오긴 했지만 ‘이러다 아이가 나를 떠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절박한 심정이었습니다. 심리교육과 부모교육 등을 찾아다니다 2012년 힐링캠프에서 법륜스님 강연을 봤습니다. 스님 강연에 많은 위안을 받았지만, 강연만으로 해결되지 않아 2015년 광명법당 불교대학에 입학하였습니다.

2016년 경전대학 동기들과 죽림정사에서(맨 오른쪽이 김인화 님)
▲ 2016년 경전대학 동기들과 죽림정사에서(맨 오른쪽이 김인화 님)

제 어린 시절은 우울했습니다. 부모님은 경제활동으로 바빴고, 언니 오빠가 있었지만, 나이 차이도 나고, 동생을 보듬어 줄 여유가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족 모두 집안 업식으로 우울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오빠가 폭력적이었습니다. 엄마에게 말대답한다는 이유로 저에게 폭력을 가했습니다. 그런 오빠로부터 보호막이 되어주지 못하는 엄마에게 답답함이 차곡차곡 쌓이며 상처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20살 무렵 형부와의 말다툼이 결국 또 폭력으로 이어졌습니다. 외상이 있었지만, 엄마와 가족의 위로는 없었고 무관심한 엄마로 인해 또 다른 상처를 받았습니다.

2017년 광명법당 경전대학 갈무리
▲ 2017년 광명법당 경전대학 갈무리

결혼이라는 환상

연애 시절 남편은 제가 원하는 걸 모두 들어주는 자상하고 헌신적인 남자였습니다. 이 남자라면 부족한 마음을 채워줄 거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제 환상이었습니다. 연애 시절 자상하던 남편은 결혼 후 제가 원하는 걸 들어주지 않을 뿐 아니라, 부부 싸움을 하면 소리 지르고 불같이 화냈습니다.

저도 화가 났지만, 남편이 무서워서 참았습니다. 참았던 화가 어느 날 불쑥불쑥 튀어나오니 작은 일에도 크게 화를 내고, 그 화를 아들에게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화만 내는 엄마가 되었습니다. ‘이게 뭐지? 내가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인가?’라는 자책은 또 다른 괴로움을 만들었습니다. 결혼 전에는 가족에게 억울함과 답답함이 있었다면, 결혼 후에는 남편에게 섭섭함과 분노가 생겼습니다.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었다

불교대학 입학 전 법당에서 영상 봉사를 했습니다. 그때 법사님과 봉사자의 간담회 자리에서 법사님의 권유로 300배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절을 하는데 무언가 가슴에 콱 박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직감으로 그게 형부임을 알았습니다. 어린 나이의 저에게 형부는 예쁜 언니를 빼앗아 간 능력 없고 못생긴 아주 싫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형부를 계속 괴롭히고 있는 저를 봤습니다. ‘나이도 15살이나 어린데 비꼬는 말로 무시하고 상처 주는 말만 했으니 얼마나 내가 미웠을까? 그래서 형부가 쌓였던 감정을 통제할 수 없어 화를 냈구나’ 하고 이해했습니다. 분노로 가득 찼던 마음이 스르르 풀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형부와 화해했습니다. 오랫동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분노했는데, 있을 수도 있는 일이라고 인정하니 불편함은 사라졌습니다.

2018년 광명 철산역 앞에서 JTS 캠페인(맨 왼쪽이 김인화 님)
▲ 2018년 광명 철산역 앞에서 JTS 캠페인(맨 왼쪽이 김인화 님)

큰 산을 넘어가고 있다

1차 만일 10차 천일결사를 시작하면서 광명 법당 총무를 맡았습니다. 총무는 큰 산이었습니다. 새로운 업무도 버거운데 도반과 갈등도 심했습니다. ‘저 사람은 왜 말을 안 하지? 저 사람은 왜 나에게 협조를 안 하지?’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저를 무시한다는 생각으로 바뀌어 그 사람이 불편하고 싫었습니다.

나랑 상관없이 그 사람은 자기감정을 표현했을 뿐인데 상대의 감정표현에 많이 위축되고 흔들렸습니다. 저 스스로 총무라는 상을 가지고 있어 화도 못 내고, 그렇다고 내려놓지도 못하고 계속 참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도반과의 갈등도 힘든데 남편도 무서웠습니다. 남편은 종교에 트라우마가 있었고 교육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엄마의 지원이 필요한 고3 아들을 두고 법당에 자주 나가니 남편의 불만이 많았습니다.

남편의 반대로 법당에 가지 못할 때는 억울하고 무기력했습니다. 힘들고 괴로웠던 제가 정토회 활동을 하면서 행복해졌고 세상을 위해 좋은 일까지 하는데, 왜 불만을 품는지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온라인 정토회로 바뀌면서 방에서 회의하고 있으면 남편은 밖에서 소리를 질러 저를 불안하게 했습니다. 어느 순간 방문을 부수고 들어올 것 같은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소임을 이어 갔고, 남편은 불만을 이어갔습니다.

2019년 광명법당. 입재식 축하 공연(왼쪽에서 두 번째가 김인화 님)
▲ 2019년 광명법당. 입재식 축하 공연(왼쪽에서 두 번째가 김인화 님)

남편의 화해

남편은 본인의 외갓집과 인연을 끊고 살았습니다. 남편이 외삼촌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갈등이 생겼고,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이후 외삼촌과 외가 식구들을 보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어릴 때 함께 살았던 외가 식구들과 시어머니까지 서로 불편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시댁 식구들이 남편 눈치를 보는 상황이 종종 발생했습니다. 남편을 예뻐했던 95세의 시외할머니는 남편을 보고 싶어 했지만 만나지 못했습니다. 저는 시외할머니가 그렇게 돌아가시면 남편 마음에 후회가 남고 무거울 것 같았습니다. 오랫동안 남편 마음을 살피다가 작년 가을에 말을 꺼냈습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장례식장에 가는 것보다 살아계실 때 얼굴 한번 뵙는 게 어때? 당신을 많이 보고 싶어 할 거야” 정말 가볍게 제안했는데 남편은 바로 수락했고 시외할머니 집에 찾아갔습니다. 할머니는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우리 손주가 왔다고 몇 번을 반복해서 말하던 할머니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고 눈물이 납니다. 그렇게 남편도 저도 하나의 숙제를 풀었습니다.

2023년 시외할머니집에서(맨 오른쪽이 김인화 님)
▲ 2023년 시외할머니집에서(맨 오른쪽이 김인화 님)

심(心) 봤다

2023년 연말 명상을 끝내고 깊은 우울감이 있었습니다. 도반에게 불편한 마음, 회의와 활동에 참여하기 싫은 마음, 비교하면서 오는 자책이 심했습니다. 살짝 숨겨왔던 마음이 수면 위로 떠 올라 명상할 때 드러났습니다. 도반 관계가 힘들다는 마음이 생기면 나누기를 했습니다. ‘모든 감정은 나쁘고 좋은 것이 없고, 그 순간 그렇게 느낄 뿐이구나’라는 것을 알고 받아들이며 스스로 인정했습니다. 이 계기로 타인의 감정도 나쁘고 좋은 것이 없음을 알아 인간관계가 훨씬 더 가벼워졌습니다.

최근 일입니다. 매일 같은 옷을 입는 저에게 남편이 “거지 같은 옷 좀 버려”라고 말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나를 무시한다.’라는 생각에 화가 났을 텐데 ‘아~ 저 사람은 이걸 싫어하는구나, 상대의 감정이 그렇구나!’라고 느끼니 화가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이후 남편과 도반이 불편한 마음을 표현할 때 ‘상대는 불편했구나! 하기 싫었구나!’ 하며 상대의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2023년 강화도 역사기행, 부천지회 도반들과(맨 오른쪽이 김인화 님)
▲ 2023년 강화도 역사기행, 부천지회 도반들과(맨 오른쪽이 김인화 님)

제 한 생각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정말 심(心)봤습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보지 못하고, 제 생각대로만 살아 어리석고 불안했던 삶이 정말 가벼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수행하고 봉사했던 저에게 온 큰 선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행하고, 봉사하고, 보시하는 정토행자의 삶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남편은 여전히 불평불만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조금은 낮아지고 편안해졌습니다. 오늘도 저는 개인 법당으로 들어가 수행 정진합니다.


김인화 님에게 서원을 물으니, 아들과 남편이 불교대학에 입학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모든 사람이 조금이라도 빨리 정토회를 만나서 편안한 마음으로 살기를 서원한다고 합니다. 김인화 님은 가족과 모두에게 행복을 전하는 진정한 정토 행자가 아닐까요? 어렵게 얻은 김인화 님의 지혜를 저는 3시간의 인터뷰로 배웠습니다,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글_이삼월 희망리포터(강원경기동부지부 남양주지회)
편집_윤정환(경기인천서부지부 안양지회)

전체댓글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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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착심

김인화님~ 수행담이 잔잔히 마음에 와닿습니다
연꽃향이 주변에 널리 퍼지는 듯 감동입니다

2024-04-19 19:00:47

이치남

마음편안해 지심을 축하드립니다ㆍ

2024-04-05 17:32:30

평정심

심 보심을 축하드립니다~

거지 같은 옷 좀 버려~ㅋㅋㅋ

2024-04-02 18:3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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