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3.13 3.1운동 100주년 기념 종합학술대회
“21세기에는 세계 문명의 중심이 아시아로, 그 중심에 통일 대한민국을 꿈꾸며...”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열린 3.1운동 100주년 기념 종합학술대회에 참석해 ‘3.1운동 미래 100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를 주제로 발제하고 토론하였습니다.

오늘 종합학술대회는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에서 준비한 마지막 행사입니다. 추진위에서는 지난 2월 말부터 각 종교별로 학술대회와 기념 사진전을 개최하고 지난 3월 1일에는 3.1운동 100주년 기념대회도 열었습니다. 오늘은 7대 종교와 시민사회 대표들이 모여 지난 학술대회를 총망라하고, 미래 100년을 준비하는 한국 종교의 역할과 과제에 대해 토론하였습니다. 발제자와 토론자로 참석하신 분을 포함하여 총 100여 명이 함께 했습니다. 오후 2시,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으로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어서 천도교 전 교령이자 추진위의 상임대표인 박남수 님의 인사말이 있었습니다.

“오늘 종합학술대회는 종단별 학술대회의 연구 성과는 물론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의 5년 활동을 바탕으로 3.1운동 100주년 이후 미래 100년의 큰 그림을 잡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정세균 국회의원은 글로써 환영사를 전했고, 한국복음주의협회 회장 김명혁 목사, 송구영 성균관 부관장, 도법스님도 축사를 해주었습니다.

이어서 본격적인 종합학술대회가 경동교회 박종화 원로목사님의 사회로 진행되었습니다. 시민사회를 대표하여 국민대 석좌교수 박인주 님이, 천도교를 대표하여 한양대 명예교수 윤석산 님이, 기독교를 대표하여 전 한성대 총장 윤경로 님이 발제를 하고, 불교를 대표하여 스님이 발제를 이어나갔습니다.

스님은 불교니 기독교니 하는 종교의 입장에서 말하기보다는 주제에 좀 더 충실하게 이야기하고자 한다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주제가 ‘3.1운동의 미래 100년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이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 20분 간 발표했습니다.

“미래를 얘기하려면 현재를 얘기해야 하고, 현재를 얘기하려면 과거를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과거를 돌아보며 3.1운동의 정신이 무엇이었는지 먼저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3.1운동 정신은 3.1운동 당일에 어디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 전 혹은 그 전 100년의 많은 사회적 이슈와 과제가 3.1운동에 녹아들어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3.1운동 이전 100년의 사회적인 이슈는 무엇이었을까요? 기존의 사회는 ‘왕도정치’를 하는 사회였습니다. 세상의 주인은 왕이고, 왕이 백성을 위해서 선정을 베푸는 게 ‘왕도정치’입니다. 주인은 왕이고, 백성은 선정을 베푸는 대상이죠. 이 ‘왕도정치’가 유사 이래 5000년 동안 내려온 사상이었어요. 그래서 왕은 하늘을 대신한다고 해서 천자(天子), 즉 하늘의 아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수천 년의 역사를 내려오면서 늘 백성을 위해 선정을 베풀겠다는 구호를 외치고 주장을 했지만, 현실의 왕들은 대부분 백성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자로 존재했습니다. 그게 가장 심했던 시기가 1800년대에 세도정치가 횡행하던 시기입니다. 이때 새로운 사상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왕이 나라의 주인이 아니라, 억압받고 있는 민(民)이 나라의 주인이 돼야 한다. 민은 그냥 왕이 선정을 베푸는 대상이 아니다. 민이 주인이 된다면 민을 억압하는 폭정의 악순환은 없어지지 않겠느냐?’

민(民)이 주인이 되는 세상은 지난 5000년 역사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세상이었기 때문에 이런 새로운 세상의 시작을 ‘개벽(開闢)’이라고 했어요. 세상이 새로 열린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수렴해서 체계화하신 분이 동학을 창시하신 최제우 대신사님이었고, 이분과 뜻을 같이 하셔서 대신사님이 이런 사상을 집대성할 수 있도록 숨겨주고 함께해주신 분이 불교의 혜월 선사님이십니다. 두 분은 남원의 교룡산성 덕밀암에서 같이 지내면서 뜻을 함께했습니다. 최제우 대신사님의 제자가 손병희 선생님이고, 혜월 선사님의 제자가 백용성 스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 분은 이러한 입장에서 3.1운동을 주도하셨어요. 그래서 3.1운동을 일으킨 정신세계의 중심에는 개벽사상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백용성 스님께서 주창하신 내용에 따르면, 개벽은 민(民)이 주인이 되는 세상입니다. 민(民)이 주인이 되고자 몸부림친 게 동학혁명이에요. 동학혁명이 성공했다면 ‘후천개벽(後天開闢)’이 일어났을 텐데, 이때 국내에서는 생각도 하지 못한 외세가 침략을 하는 바람에 동학혁명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바로 이 외세가 왕과 관료에 못지않은 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가로막는 더 큰 장벽임을 알게 된 겁니다. 그래서 ‘민중 해방’에 더해서 ‘민족 해방’이라고 하는 두 가지 과제가 제기되었습니다. 왕의 지배보다 더 강한 외세가 들어와서 이 거대한 혁명을 무산시켜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저항이 잠재되어 있다가 터져 나온 것이 3.1운동입니다.

그래서 3.1운동의 정신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어요. 첫째, 외세에게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다는 자주독립의 정신입니다. 둘째, 민(民)이 주인이 되는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자는 대한민국 수립의 정신입니다. 독립만 생각한다면 멸망한 대한제국을 부흥하자는 운동을 하면 됐겠지만 그러지 않았어요.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것과 동시에, 그 나라는 후천개벽에서 말하는 민(民)이 주인인 새로운 나라여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호가 대한제국(大韓帝國)에서 대한민국(大韓民國)으로 바뀐 것은 선천(先天)이 후천으로 전환한 것과 같은 획기적인 변화였습니다. 3.1운동을 혁명이라고 한다면 이 부분이 혁명이지,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게 혁명적 관점은 아니라는 거죠.

그런데 민(民)은 그 구성이 굉장히 다양합니다. 사람마다 성향도 다르고, 종교도 다르고, 생각도 달라요. 그러나 이런 다양한 민이 함께 힘을 합치지 않으면 절대로 민이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3.1운동의 세 번째 정신은 민이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힘을 합쳐야 한다는 국민통합의 정신입니다.

그저 힘만 합치는 게 아니라 모두가 평등하게 참여토록 했습니다. 당시에 천도교는 교도가 300만 명에 달했고, 기독교는 개신교와 천주교를 합해서 신도가 29만 명이었습니다. 1917년 조선총독부 자료에 따르면 그중 개신교는 18만 명이었으며 장로교가 12만 명, 감리교가 5만 명이 좀 넘는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교세로만 보면 굳이 민족대표의 수를 각 종교별로 동일하게 할 필요가 없었어요. 3.1운동은 천도교만의 힘으로도 능히 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을 만큼 교세의 차이가 났습니다. 그러나 후천개벽은 모든 사람이 함께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3.1독립선언 방식에 대해 처음 논의할 때는 민족대표 33명을 천도교 11명, 기독교 11명, 불교 11명으로 나누었습니다. 평등하게 운동을 출발시키려고 한 것이죠. 그러나 진행 과정에서 인원수 조정 문제로 논란이 있었기 때문에 불교의 양보로 결국은 천도교 15명, 기독교 16명, 불교 2명으로 조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3.1운동을 주도한 것은 천도교가 했고, 확산시키는 데 기여한 것은 기독교의 힘이 컸고, 중간에 갈등이 생겼을 때 양보하면서 통합하는 데에는 백용성 스님과 한용운 스님을 비롯한 불교의 역할이 컸다고 봅니다. 셋 중 어느 하나도 빼놓을 수가 없었고, 어느 하나만 빠져도 제대로 되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3.1운동이라고 하는 새로운 나라를 만드는 씨앗이 뿌려졌습니다.

그렇다면 그 싹이 터서 자라게 된 것은 언제일까요? 씨앗을 뿌리기는 그때 뿌렸지만 그 씨앗이 살지 죽을지는 몰랐는데, 싹이 트기 시작한 것은 1945년 일제가 연합군에게 패망하고 우리가 광복을 맞은 때라고 할 수 있어요. 순수하게 우리의 힘만 갖고 나라를 되찾았으면 바로 자주독립을 이루고 민이 주인이 되는 대한민국을 수립할 수 있었겠지만, 연합군이 승리함으로 해서 일어난 결과였기 때문에 결국은 그 연합군에 의해 나라가 둘로 나눠지게 되었습니다. 승리한 자들이 전리품을 나눠가지듯 남북이 외세에 의해서 나눠졌고, 그들은 그들의 동조자를 각기 내세워 남북 양쪽에 정부를 만들었습니다. 그 와중에 우리는 단합하지 못하고 분열했기 때문에 결국은 그 외세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양쪽 정부와 국가권력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민이 중심이 돼서 세운 나라가 아닌 외세가 중심이 되고 거기에 일부 엘리트가 동조하면서 세운 나라가 남북 양쪽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들의 대립이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이어졌고, 지금까지도 분단된 상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북이 평화적으로 통일이 되어야 비로소 3.1운동 때 뿌려졌던 자주독립의 씨앗이 꽃피고 완성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주독립이라는 씨앗을 꽃 피우기 위해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과제는 첫째, 평화적 통일입니다. 그래서 헌법 전문에도 우리 국가의 목표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해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이루는 것’이라고 못 박혀 있습니다.

둘째, 민(民)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세우는 것입니다. 1948년에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긴 했지만, 실제로는 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독재자가 나라의 주인이 되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1960년 4.19혁명, 1980년 5.18광주민주항쟁, 1987년 6.10항쟁, 2016년 촛불혁명에 이르기까지 민이 주인이 되는 과정이 오늘날까지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이것을 헌법 전문에서는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여 민주개혁을 하는 게 우리 국가의 목표’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에게 주어진 미래의 과제는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이 주인 되는 민주주의 발전을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종교와 이념이 다양한 사람들 모두가 뜻을 모아서 나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조금 속도가 늦어지더라도 견해가 다른 것을 조정하고 국민통합을 이뤄내면서 국정 과제를 달성해야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 됩니다.

100년 전 우리 선조들이 추구했던 자주독립, 민(民)이 주인 되는 나라인 민국 건설, 국민통합이라는 3.1운동의 세 가지 정신은 오늘날 우리가 평화적 통일을 이루고, 국민이 주인이 되는 대한민국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국민의 여론을 통합해가야 한다는 과제에도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미래 100년을 내다보면 어떨까요? 통일만 이루거나 우리나라만 발전하면 될까요? 3.1독립선언서에는 일본까지도 포용한 동양의 평화를 얘기했습니다. 이 정신에 따라 미래 100년을 내다본다면, 21세기 상반기에 한반도가 평화 통일이 되고, 적어도 21세기 중반기에는 한반도의 평화가 동아시아의 평화를 가져오고, 한반도의 번영이 동아시아의 공동 번영을 가져오는 동아시아 평화공동체를 이루고, 21세기 후반기에는 아시아가 세계 문명의 중심으로 발전할 수 있는 희망을 가져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 문명의 중심이 20세기에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동했듯, 21세기에는 아시아로 오게 되는 미래 100년의 꿈을 함께 그려보자는 겁니다. 그 중심에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으려면, 혼자서만은 안 되고 주변국과 함께 세계와 더불어 나아가는 대한민국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의 미래 100년, 새로운 100년의 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꿈을 향해서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과거 100년과 미래 100년을 망라하는 비전이 3.1운동의 정신에 담겨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만이 아니라 세계 문명을 바라보며 모두 힘을 합쳐 나가자는 스님의 제안에 모두 박수갈채로 공감했습니다.

네 명의 발제가 끝난 뒤 잠깐 휴식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은 텀블러에 차를 담아 마시며 참가자들과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시민운동의 과제를 발제해주셨던 박인주 교수님에게 다가가 적극 공감을 표했습니다.

“발제를 아주 잘하셨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시민활동이 자아만족에 그치거나 금방 권력에 기생하기 쉽죠. 사회를 바꾸려면 권력과 떨어져 있으면서 권력을 비판하고 바꾸는 역할을 해야지요.”

“스님께서 시민운동의 대 원칙을 딱 정리해서 말씀해주시네요.”

“교수님 발표에 다 나온 내용이었는데요." (웃음)

스님의 발제를 듣고 궁금한 것이 있었던 청년이 다가와 질문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어서 2부에서는 천주교, 원불교, 민족종교, 유교에서 토론문을 발표하였습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김홍진 신부님은 3·1운동을 외면하고 오히려 일제에 협력했던 천주교회의 과거를 반성하면서, "부끄럽고 부끄럽고 또 부끄러워 그저 송구할 따름"이라며 "민족 고난의 십자가를 함께 지지 못했던 '오욕의 역사'에 대해, 한국 천주교회 한 구성원으로서 사죄의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라고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습니다.

청중들은 신부님의 용기에 박수로 화답하였습니다.

신부님은 이어 "한국 천주교회는 조선시대 극심한 박해를 받아왔기에, '교회의 보존이라는 명분'에 의거해 일제강점기 하의 한민족 감정과 다른 행태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는 '회색빛 진단'은 결코 '합리화나 정당화될 수 없는 망언'이다"라고 하며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에서 미래 백 년의 희망을 찾는다고 발언하였습니다.

원불교, 민족종교, 유교에서도 당시 적극적으로 3.1운동에 동참하지 못한 점을 안타까워하며, 미래 100년을 어떻게 함께 준비해나갈지 발표하였습니다.

발표에 이어 미래 100년을 위한 ‘한국 종교의 역할과 과제’를 주제로 자유롭게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회자는 답보다 문제를 나열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며 여러 의제를 던졌습니다. 참가자들도 다양한 의제와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세계적 미션은 뭘까요? 세계사적 흐름에 참여를 해야 합니다.”

“정치적 위기, 경제적 위기는 누구나 압니다. 그런데 도덕적 위기, 윤리적 위기를 종교는 방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아름다운 이야기만 할 것이 아니라 위기를 위기라고 진단하고 헌신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남북문제만큼 어려운 남남갈등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요? 우리 안의 냉전을 풀 수 있는 비무장지대를 종교인들이 마련해야 합니다. 극단적 보수, 극단적 진보로 무장되어 있는 사람들이 무장해제를 하고 대화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서로 화합하고 갈등을 해소하고 같이 가야 할까요? 최소공배수를 무엇으로 둬야 할까요? 3.1운동 정신에 그 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청중석에서도 다양한 의견과 제안이 있었습니다. 이 모임을 지속해줄 것, 3.1운동을 3.1혁명으로 개칭할 것, 청소년과 시민 교육에도 힘써줄 것에 대한 요청이 있었습니다. 한 역사학 전공자는 열정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밝히며, 종교인들이 더 큰 역할을 해주기를 요청했습니다.

“오늘 학술대회가 앞으로 백 년의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분수령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각 종교에서 발표해주셨지만 자유, 상생, 평화의 이념은 모든 종교에 들어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과거 백 년 전 종교인들은 굉장히 용감했습니다. 감옥에 가고 죽기까지 각오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종교인들은 너무나 비겁하고 존재감이 없어졌습니다. 종교인들이 사회의 목탁이 되려면 훨씬 더 역할을 해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 스님이 답변을 하였습니다.

“종교에 대해서 많은 비판도 해주시고 격려도 해주신 것에 대해 먼저 감사 말씀드립니다. 그런데 3.1운동 당시에는 천도교든 불교든 개신교든 어떤 종교도 사회의 지배세력이나 지배 이데올로기는 아니었습니다. 일반 백성들처럼 굶어 죽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억압받는 상황에 있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종교를 지켜냈다는 것은 정의감이나 저항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런 종교인들이 앞장을 섰기에 국민들의 지지가 있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오늘날 대한민국 종교인들의 도덕성이 일반 국민들과 비교해서 평균적으로 낫다고 할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불교라면 스님들이, 기독교라면 목사님들이, 천주교라면 신부님들이 일반 국민들의 평균 수준만 한 도덕성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재물에 대한 집착이나 명예에 대한 집착을 비교했을 때 국민들의 평균 수준보다 확실히 낫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까? 오히려 부와 명예와 지위를 비롯한 세속적인 것들을 더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다수잖아요.

첫째, 이런 상황에서 사회 발전을 위해 무언가를 하자고 할 때 종교인들이 과연 적극적으로 동참하겠느냐는 겁니다.

둘째, 동참한다고 하더라도 그 일이 국민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요? 저는 종교인들이 동참하는 것도 어렵고, 일부 동참을 하더라도 국민들에게 공감을 얻기는 더욱 어렵다고 봅니다. 그래서 종교가 사회변화를 주도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종교부터 먼저 정화하자고 생각할 수 있겠죠. 과연 종교를 정화하기가 쉬울까요, 대한민국을 정화하기가 쉬울까요? 불교를 예로 들어 솔직히 말씀드리면, 불교계를 정화하는 것보다는 대한민국을 정화하는 게 훨씬 더 쉬울 것 같습니다. (모두 웃음)

지금 종교계가 조금씩 개선되고 있지만, 그건 사회가 변화하니까 종교계도 따라서 변화하는 것이지, 종교계가 좋아져서 사회가 좋아지는 현상이 아니지 않나 싶어요. 예를 들면, 남녀 차별이나 권위주의가 종교 내에서 우선 평등성을 확보해서 사회로 퍼져나가는 게 아닙니다. 사회가 민주화되니까 종교 안에서도 이런 차별성이 조금씩 없어지고 있는 거예요.

현재의 종교는 교단 안에서는 권위를 갖고 있지만 사회 변화를 위한 리더십은 더 이상 갖고 있지 않다고 봐야 오히려 정확한 진단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종교가 아직도 사회 변화를 주도할 수 있다는 시각은 종교에 대한 지나친 기대나 믿음이라고 봐요.

그렇다고 종교가 사회 변화에 필요 없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종교 안에서도 사회 변화를 생각하고, 종교 본연의 가르침을 지향하고, 평화와 평등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종교와 종교 사이의 벽을 넘어 힘을 합치면 길이 있어요. 종교라는 겉모습보다는 정의와 진리라고 하는 측면에서 서로 결합하여 어떤 사회적인 이슈를 풀어나가고, 그 이슈를 각자 자기 교단 안에 확산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에요. 오히려 교단 안에서는 문제를 낮은 수준으로 제기하고, 사회에는 더 큰 수준으로 이슈를 제기하는 방식이 현실적입니다. 이슈를 제기하기가 사회보다 교단 안이 훨씬 더 어렵습니다.

그리고 교단 내의 저항이 거셀 수밖에 없는 현실적 이유를 이해해야 합니다. 천도교는 3.1운동 당시 교도가 300만 명이었지만, 교단 전체가 3.1운동을 한 결과로 지금 그 세력이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잖아요. 그런데 그때 천주교는 3.1운동을 안 했기 때문에, 또 기독교나 불교는 일부 개인들만 참여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성장하게 된 겁니다. (모두 웃음)

불교도 마찬가지예요. 불교도 백용성 스님과 만해 스님이 참여했으니까 그나마 체면을 덜 구겼지, 실제로 불교 전체를 보면 대부분이 친일 세력이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래서 지금 불교가 살아난 거예요. 이게 현실입니다. 거기에 순응한 사람이 지금 살아남아 있고, 거기에 순응하지 않은 사람은 해산당해서 다 없어졌어요. 시대의 흐름에 저항하면 세력이 약해집니다. 그렇게 교단을 유지해 온 사람들이 교단의 주류 세력인데, 어떻게 교단을 설득하겠어요?

그런 면에서 볼 때 자꾸 종교 내에 교단 차원에서 접근하는 건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봅니다. 오히려 사회적인 정의를 실현해서 우선 국민의 지지를 먼저 확보하고, 그것이 교단 안에 영향을 주도록 하는 게 더 빠른 길이 아닐까 해요.”

스님의 생각에 청중들도 박수로 공감을 표했습니다. 마칠 시간이 지났지만 토론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습니다.

김명혁 목사님은 “법륜스님의 불교를 정화하기가 더 어렵다는 겸손한 고백을 들으며 많은 감동을 받았다”며 “고난과 박해받는 것을 기뻐하며 함께 달려 나가면 좋겠다.”라고 뜻을 모았습니다.

박인주 님은 “중요한 것은 저는 사회적 실천이라고 생각한다. 사회 변화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의 작은 실천이 누구에게는, 조그마한 사회변화를 이루었을 것이다. 3.1운동기념사업회가 이대로 끝내지 말고 사회적 실천을 해나가면 좋겠다.”라며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 기대를 밝혔습니다.

각 종교인들과 참가자들은 자신을 돌아보고, 사회를 돌아보며, 어떻게 함께 100년을 준비해 나갈지 깊이 있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예정된 시간보다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아쉽지만 토론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다시 모여서 이 운동체를 발전시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우리 계속 자아비판을 하면서 나갑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화석이 될 수 있어요. 운동체가 되어야죠. 3.1운동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 미래지향형입니다. 오늘 모임은 이대로 마치더라도, 3.1운동의 정신을 계속 이어나갑시다.”

이로서 5년 전 스님을 비롯한 각 종교인들이 주축이 되어 시작한 3.1운동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의 마지막 행사가 끝이 났습니다. 행사는 비록 끝이 났지만, 종교인들은 다시 새로운 100년을 다짐했습니다.

스님은 참석한 종교인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며 이야기를 더 나눈 후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부처님 출가재일을 맞이하여 기념 법문이 있을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24

0/200

정명데오

"신부님은 3·1운동을 외면하고 오히려 일제에 협력했던 천주교회의 과거를 반성하면서, "부끄럽고 부끄럽고 또 부끄러워 그저 송구할 따름"이라며 "민족 고난의 십자가를 함께 지지 못했던 '오욕의 역사'에 대해, 한국 천주교회 한 구성원으로서 사죄의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라고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20-03-31 07:54:37

운창해

-()()()-

2019-04-10 17:30:04

임규태

감사합니다!!!^_^

2019-03-26 23:45:37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