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5.10.17 정토불교대학 경주 남산 순례 (봄학기 주간반)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전국에서 모인 600여명의 정토불교대학 봄학기 주간반 학생들과 함께 경주 남산을 순례한 후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새벽 예불과 기도를 마친 후 곧바로 경주 남산으로 향한 스님은 용장골로 가서 아침 8시부터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 용장골

 

경주 남산은 서라벌의 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산으로 불리우게 되었습니다. 남산에는 43개의 골짜기가 있습니다. 유적이 없는 작은 골짜기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더 많습니다. 43개의 골짜기마다 절터나 탑, 무덤이 있거나 전설이 서려 있고, 모두 합치면 700여 종류의 유물, 유적이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인류가 보존해야 할 유산이라고 해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자연박물관입니다. 

 

정토회에서는 해마다 경주 남산을 순례하고 있는데, 남산의 골짜기를 다 순례할 수는 없어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두 골짜기를 하루 동안 순례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습니다. 오전에 한 골짜기를 올라갔다가 오후에 다른 한 골짜기를 내려오는 방식이였는데, 최근에는 순례하는 인원이 많아지면서 지금은 한 골짜기를 올라가고 오후에는 모두 통일암으로 모두 모여서 함께 대화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스님이 직접 모든 코스를 다 안내했는데, 최근에는 정토회 법사단이 골짜기 마다 흩어져서 각 지역별로 법사님들이 안내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전국에서 600여명의 정토불교대학 봄학기 주간반 학생들이 경주 남산에 모여 순례를 시작했습니다. 600여명은 각 지역별로 흩어져서 법사님들의 안내를 받았습니다. 먼저 서울, 제주 지역에서 온 정토불교대학생들은 칠불암 있는 봉합골로 올라가서 통일암으로 내려왔고, 경기 동부와 서부 지역은 용장골로 올라가서 용장사를 거쳐서 통일암으로 내려왔고, 전라, 충청 지역은 삼릉골로 올라갔다 통일암으로 내려왔고, 경북, 경남 지부는 포석정이 있는 포석골로 올라갔다가 통일암으로 내려왔고, 울산, 부산 지부는 부처골로 올라가서 통일암으로 내려왔습니다. 해마다 점점 늘어나는 순례 인원을 보니 앞으로 순례하는 골짜기를 대여섯 개 더 넓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법사님들이 모두 안내를 하기 때문에 스님은 안내를 하지 않고 용장골을 선택해서 대중들의 뒤를 따라 남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용장골에서 산행을 시작하면서 간단히 남산과 용장골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남산은 크게 금오산과 수리산으로 이루어져 있어. 수리산은 순우리말이고 한자로 하면 고위산(高位山)이야. 수리는 가장 높다는 뜻이야. 이 두 산 사이로 흐르는 골짜기가 용장골인데 거기에 용장사가 있었기 때문에 용장골이라고 불렀어. 용장사는 조선 초기에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이 오랫동안 은거한 곳이야. 김시습이 이 산 이름에 얽힌 이야기들을 소설로 쓴 것이 <금오신화>이지.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한문으로 쓴 최초의 소설이야. 학교 다닐 때 들어봤지? 그렇게 김시습이 머물렀던 곳으로도 유명한 곳이 이곳 용장골이야.”

 

이렇게 용장골에 대한 짧은 설명을 들은 후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은 혹시나 대중들이 스님을 보게 되면 환호를 하는 등 갑자기 소란스러워지고 그러면 법사님들이 안내를 하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에 산길이 아닌 계곡을 따라 오르는 등 대중들의 눈을 피해 조용히 산행을 하였습니다. 

 

올라가는 길에는 먼 발치서 용장사곡 삼층석탑을 잠시 엿볼 수 있었습니다. 용장사지 삼층석탑은 용장사지 동편 능선 위에 자리하여 이 계곡 어디에서나 볼 수 있습니다. 이 석탑의 특이한 점은 하층기단이 없다는 점인데, 이 남산 전체를 하층기단으로 생각하고 조성했기 때문입니다. 신라인들의 자연과의 조화 방법을 잘 나타내 주는 탑입니다. 하층기단인 바위산이 8만 유순의 높은 수미산이라면 바위산 정상은 사왕천이 될 것입니다. 첫째 기단은 도리천이 되고, 그 위로 층층이 쌓은 옥신은 하늘나라 부처님 세계가 되는 것이죠. 

 


▲ 용장사지 삼층석탑

 

탑의 위용을 보면서 하늘나라 부처님 세계에 우뚝 솟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맑고 깨끗한 부처님의 세계를 자연과의 조화를 통해 그리고자 했던 조상님들의 신앙과 정열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습니다. 용장사지 삼층석탑을 본 후에는 계속 산행을 하여 9시 30분 무렵에 이영재를 지나 통일암으로 내려왔습니다. 

 


 

10시 30분에 통일암에 도착한 스님은 일찍 점심 식사를 한 후 11시 30분부터 통일암 입구에 서서 속속들이 도착하는 정토불교대학 학생들을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약 1시간 동안 도착한 모두에게 일일이 악수를 해주었습니다. 

 


▲ 통일암 입구에서 모든 학생들에게 악수를 해주고 있는 스님

 

한 명도 빠트리지 않고 악수를 해주는 스님을 보고 대중들은 “너무 감동이다”며 기뻐했고, 또 많은 분들이 “스님 손이 너무 보드랍다”며 좋아했습니다. 

 

통일암에 도착한 대중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서 각자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펴고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오전 내내 땀을 뻘뻘 흘리며 산행을 하고 난 후 먹는 밥이여서 그런지 아주 꿀맛이였습니다. 

 


▲ 점심 식사 시간

 

오후 12시 30분이 되었지만 늦게 도착한 몇몇 팀들이 아직 점심식사를 하고 있어서 막간을 이용해 노래자랑 대회가 열렸습니다. 스님이 “대중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노래 한 자락 할 사람은 앞으로 나오세요. 저와 같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라고 하자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달려나왔습니다. 

 


▲ 노래자랑대회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여흥을 즐기고 있는 사이에 모두 점심 식사를 마쳤고, 1시부터 본격적으로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즉문즉설을 시작하기 앞서 스님은 경주 남산 순례를 시작하게 된 취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경주 남산 순례는 정토회에서 최근에 시작한 게 아니라 제가 중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을 지도할 때부터,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35년 전쯤에 제가 20대 후반이던 때부터 늘 이 유적지를 순례하면서 우리의 신앙, 우리의 믿음을 다지는 계기로 삼았던 곳입니다. 

 


▲ 통일암

 

경주에는 왕궁을 중심으로 해서 주위에 황룡사, 분황사, 황국사 등 큰 사찰이 있었습니다. 이 사찰들은 궁중 사찰이거나 귀족들을 위한 사찰이에요. 불국사도 마찬가지고요. 그런 데 비해서 남산은 서민들의 신앙 도량이었습니다. 그래서 남산에 서려 있는 갖가지 신앙과 전설들은 서민들의 애환을 담고 있습니다. 소위 민중불교의 요람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래서 여기에는 원효 스님의 이야기도 있고, 대안 대사의 이야기도 있고, 민중불교의 애환이 많이 서려 있어요. 

 

큰 절에 가면 부처님이 멀리 있잖습니까? 황금빛 불상은 높은 단을 만들어서 그 위에 앉아 있고 우리는 멀리서 쳐다보면서 공경을 해야 해요. 또 신라시대에 일반 백성이나 천민은 아예 큰 절에 들어갈 수가 없었어요. 그런 곳에 비해서 이 남산의 부처님들은 누구나 다 가까이 가서 만져볼 수도 있고 친근한 부처님이었어요. 삼릉골로 올라가면 팔짱을 끼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불상도 있습니다. 

 

 


 

본래는 지금보다 훨씬 더 불상이 많았습니다만 조선시대에 유생들이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탄압하면서 수많은 불상의 목을 자르고 파괴했습니다. 그래서 경주박물관에 가보면 목 없는 불상이 수십개 있습니다. 

 

다음으로 많이 파괴된 것은 일제 강점기 때입니다. 일본 사람들이 남산에, 아무도 지키는 사람 없이 노지에 있으니까 옮길 수 있는 불상은 다 일본으로 반출을 시도하거나 자기 관사에 옮겨놓는 일이 많았어요. 그래서 탑과 불상들이 많이 파괴되었어요.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유적이 전혀 보호가 안 되었거든요. 그래서 남산사지 탑은 제가 불교학생회에 다닐 때 모금 운동을 해서 돈을 모아 시청에 주면서 그 밭을 사서 보호하라고 시청에 보호 요청하기도 했어요. 이런 문화재 보호운동을 중고등학교 다닐 때 했어요. 지금은 국립공원이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비교적 잘 보존되고 있고, 조금씩 조금씩 계속 무너진 것을 복원하는 중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논쟁이 많아요. 무너진 문화재를 그대로 두는 게 보존이냐, 그것을 복원시키는 게 보존이냐에 대해서는 문화계 사람들 사이에 견해차가 큽니다. 그래서 대다수가 탑재가 흐트러져 있어도 복원을 못 시키고, 절이 허물어져 있어도 절을 다시 세우지 못하고 폐허 상태 그대로 두어서 제대로 복원이 안 되고 있습니다. 

 


 

정토불교대학에서는 친목 도모 겸 학습도 겸해서 매년 이 순례를 하고 있어요. 코스가 몇 개든 여러분은 지금 그 중 하나밖에 못 가봤잖아요. 그러니 나중에 법당별로 또는 개인적으로 나머지 코스도 다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경주 남산은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민중 불교의 요람이라는 말씀이 가슴에 많이 와 닿았습니다. 정토회도 바른 불교, 쉬운 불교, 생활 불교를 표방하며 일반 대중들의 애환을 들어주며 누구나 쉽게 불교를 접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데, 이런 정토회의 취지가 바로 경주 남산에 깃든 민중불교 정신과 너무 닮아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평소 궁금했던 점이 있는 사람은 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 라고 하자 여기저기서 질문을 하러 앞으로 나왔습니다. 

 

총 6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정토불교대학을 입학하고 나서 아침마다 108배를 하면서 남편에게 참회 기도를 하고 있는데 아직도 남편에게 욕이 불쑥 튀어나오고 참회가 도저히 되지 않아서 어떻게 참회 기도를 해야 하는지 물었고, 두 번째 질문자는 아침마다 기도를 하기 위해 알람을 맞춰 놓는데 남편이 그것 때문에 불편해해서 기도 시간을 들쭉날쭉하게 되어 고민이라고 물었고, 세 번째 질문자는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거의 못받고 자랐는데 남편과 아들을 대하는 태도에도 많은 영향을 주는 것 같다며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네 번째 질문자는 이제 곧 대학을 졸업하게 되는데 어떻게 하면 인생의 중반기 계획을 잘 세울 수 있을지, 아기는 언제쯤 낳는 것이 좋은지 물었고, 다섯 번째 질문자는 같은 반 불교대학 학생들이 입학 후 점점 안 나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왜 불법이 잘 전해지지 않는지 궁금하다고 물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마지막 질문인 아이가 희귀병을 앓고 있어 고민이라는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아이가 둘인데 큰 아이가 많이 아픕니다. 현대 의학으로도 치료가 어렵다고 해요. 그래서 돈이 많이 들다 보니 애 아빠는 항상 바깥 일로 바쁘고, 그래서 친정 엄마가 와서 같이 도와주고 있는데, 처음에는 엄마가 와서 모든 걸 다 도와주니까 부담이 좀 덜어져서 좋았는데 어렸을 때 엄마 밑에서 자라던 제 모습이 애들 모습에서도 보이고 제가 어렸을 때 엄마가 제게 했던 말들이 애들한테 반복되는 게 보이면서 애들이 너무 안쓰러워요. 그래도 저 혼자서 모든 걸 다 짊어지기는 더 힘들어서 엄마에게 많이 의지하는 편입니다. 

 

또 얼마 전에 셋째를 임신했는데 제가 우울증 약을 먹고 있던 터라서 애에게도 영향이 갔을까봐 낙태를 했어요. 몸조리를 하느라 기도며 정진도 끊어지고 생활이 뒤죽박죽이 되었어요. 다시 마음을 다잡고 시작하고 싶은데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어머니의 고마움을 생각해서 ‘어머니, 낳아주고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해 보세요. 어릴 때는 내가 몰라서 그렇게 상처를 입었지만, 커서 보니까 내가 원하는 것을 해주지 않은 부분이 있긴 해도 객관적으로 보면 결국 어머니가 나를 키워준 것이니 감사한 거예요. 세상 누구도 나를 키워주지 않았잖아요. 나를 키워줬다는 고마운 요소가 더 크단 말이에요. 그걸 알아야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치유됩니다. 

 


 

머리로 이해는 되지만 마음에는 ‘나를 제대로 보살펴주지 않았다’ 이런 게 무의식적으로 까르마로 형성되어 감정이 일어나니까 ‘어머니, 감사합니다. 낳아주시고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이걸 자꾸 절하면서 반복해야 합니다. 이렇게 자꾸 암시를 주면, 처음에는 의식에서 시작되었지만 계속 반복하는 가운데 무의식에까지 영향을 줘서 원망하던 마음이 점점 작아지는 쪽으로 바뀌고, 억지로 하던 기도가 어느 순간에는 ‘아, 정말 고마우신 분이구나’ 하고 가슴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사실은 복잡한 이야기가 아닌데 우리의 사고방식이 굉장히 이기적입니다. 질문자의 아이가 지금 아파요. 아이가 아프다는데 좋아할 엄마는 없습니다. 그런데 질문자가 아이의 병이 나으면 좋겠다고 한다고 그게 나아져요? 아이가 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현실의 아이가 나아지지 않으면 아이를 낫게 하려는 어머니의 노력은 강화될 것이고, 그게 안 되면 안 될수록 자기 인생은 좌절할 거예요. 현대의학으로 치유가 안 되는 병을 갖고 있는데 그걸 치유하려면 결국은 부처님이나 하느님한테 매달려야 될 거 아니에요? 그게 기복이에요. 그건 수행이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어머니한테 의지해서 해결해야 하고, 어머니한테 의지하다 보니 어머니의 이야기나 행동을 자꾸 보게 되고, 그러면 질문자의 옛날 상처가 또 떠올라요. 

 

내 아이가 장애인이라고 하면 많은 부모들이 이 사실을 싫어합니다. 아이를 낳은 엄마가 아이를 싫어하는데 그 아이를 이 세상에서 누가 돌보려 하겠어요? 애를 낳은 엄마도 싫어해서 버리는데 왜 애도 낳지 않은 수녀님이 그런 애를 한 명도 아니라 여러 명을 모아놓고 보살펴요? 좀 모순 아니에요? 

 

그러니까 지금은 부모가 없어요. 그냥 인물 잘 생기고 공부 잘 하고 말 잘 듣는 애는 부모 뿐만 아니라 남들도 다 좋아해요. 이웃집 아줌마도 ‘아이고, 공부 잘 하더라. 예쁘더라. 말도 잘 듣더라’하고 좋아해요. 그러니 지금 엄마는 없고 이웃집 아줌마만 있는 거예요. 인물도 못났고 장애인에다가 공부도 못하고 말도 안 들어서 온 세상 사람이 ‘아이고, 저런 인간은 그냥 죽어버리지 왜 사냐’ 이렇게 이야기하더라도 제 엄마라면 ‘그래도 너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 너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생명으로 태어난 모든 존재는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 이렇게 대해줘야 합니다. 이게 부처님이 ‘모든 생명은 불성을 갖고 있다’라고 하신 이야기잖아요. 이것은 엄마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안 그러면 무엇 때문에 엄마라 그러겠어요? 이건 엄마가 없어서 생기는 문제예요.

 

그러니까 질문자는 아이의 병을 치료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자기가 바라는 대로 하려는 데 사로잡혀 있어요. 이게 장애라면 장애에 맞게 요구를 해야 된단 말이에요. 정상인이 100이라는 능력을 갖췄다면 이 아이는 장애가 있기 때문에 80의 능력 밖에 없단 말이에요. 80인 아이에게 자꾸 100이 되기를 요구하면 이 아이는 소위 열등의식을 갖게 됩니다.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서 스스로 열등의식을 가져도 엄마는 80에 기준해서 ‘너는 잘 하고 있어. 네가 지금 걷는 것만 해도 굉장한 거야, 하느님의 축복이야’ 이렇게 늘 격려를 해야 해요. 감사할 줄 알아야 하고요. 

 


 

그리고 때가 되어서 명을 다하면 기꺼이 보내줄 줄 알아야 해요. 그 불치병을 억지로 끌어안고 90살이고 100살이고 사는 게 좋아요? 또 그런 선천적 질병을 갖고 있는 사람은 살 권리가 없습니까? 밥 먹이고 뭐 해봐야 돈만 많이 들지 비효율적이라고 해서 갖다 버려야 해요? 우리는 그걸 갖다버리려고 하거나 100살이고 1000살이고 살도록 하려 들거나, 이 두가지만 생각합니다. 둘 다 잘못된 거예요. 어떤 장애가 있더라도 생명을 가진 사람은 생명답게 살 권리가 있는 거예요. 그리고 나는 그렇게 될 때까지 보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5살이든 10살이든 20살이든 자기 명이 다하면 기꺼이 보내줘야 할 것 아니에요? 기독교 신자라면 이제는 하늘나라에 가서 장애 없는 편안한 생활을 가져야 할 것이고, 불교인이라면 다시 몸을 받을 때는 건강한 몸을 받아서 살아야 할 것 아니에요? 그 상태로 계속 오래오래 사는 게 뭐가 좋다고 그 난리를 피우느냐는 말이에요. 그렇게 우리는 늘 극단에 치닫습니다. 하나는 ‘이렇게 살면 뭐 하냐, 비효율적이다’라고 생각하거나, 또 하나는 ‘그래도 오래만 살아라’ 라고 하죠. 둘 다 잘못된 거예요. 

 

장애가 있지만 그래도 이 아이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잖아요. 그리고 나는 부모로서 이 아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데까지 도와주는 거고, 또 그 아이가 내일이든 모레든 자연히 명을 다하면 기꺼이 좋은 곳에 가도록 보내줘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왜 울 일이에요? 운다고 그게 해결이 됩니까? 질문자의 심정은 이해가 돼요. 그런데 그걸 갖고 우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란 말이에요. 

 

그러니 제가 보기에는 불교신자들이 기독교신자보다 신앙심이 훨씬 뒤떨어져요. 기본적으로 부처님은 이치에 맞게 살도록 가르치지만 현실에 있는 불교 신자들은 거의 99%가 기복입니다. 욕망을 충족시키는 게 부처님의 은혜라고 생각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전생에 죄가 많아서 장애인이 되었다’고 해요. 전생에 죄가 많아서 장애인이 되었다면 장애가 나쁘다는 거잖아요. 장애가 징벌이라는 이야기잖아요. 그거야말로 차별 아니에요? 어떻게 장애가 징벌이에요? 무슨 죄를 지었는데요? 그건 징벌의 결과가 아니라 자연스러움이에요. ‘장애가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람 역시 행복할 권리가 있고 그를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 이게 부처님의 가르침이란 말이에요. 제가 무슨 종교, 무슨 종파든 전혀 차별을 두지 않고 대하는 이유는 불교신자 중 부처님의 가르침의 특색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불교신자라는 게 저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어떻게 장애인을 전생에 지은 죄의 결과라고 봐요? 그건 차별이에요. 

 

태어남에 의해서 형성된 것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게 부처님의 가르침이에요. 장애아가 태어났다면 엄마는 이렇게 말해야 해요. ‘장애를 가졌지만 너는 너대로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 엄마는 네가 사는 만큼, 네가 할 수 있는 만큼 해주겠다.’ 

 


 

아이를 일반 학교에 집어넣어서 다니게 만들겠다는 것은 부모의 지나친 욕심이에요. 그건 아이를 괴롭히는 거예요. 그러니 전문가와 상담을 해서 이 아이가 어느 정도까지 훈련을 하고 치료를 받으면 회복이 가능한지를 파악한 뒤 거기에 맞게끔 나아가야죠. 그걸 무리하게 낫게 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 욕심을 그만 부리고 그 아이에 맞게 의사의 처방에 맞게 하는 게 필요해요. 지적장애인도 오랫동안 사랑으로 재활훈련을 하면 못 걷던 사람도 조금은 걸을 수 있어요. 인지능력이 없는 사람도 많은 연습을 하면 인지능력을 약간이나마 키울 수 있어요. 그렇다고 정상으로 돌아오는 건 아니에요. 조금 나아지는 것이죠. 

 

그러나 부모가 욕심을 내면 아이가 열등한 존재로 자꾸 생각되게 됩니다. 그러나 본래 걷지는 못했는데 이제 보니까 그래도 조금 한 발 뗄 수 있으니 ‘하하하, 잘 한다’ 이렇게 박수 쳐줘서 아이가 행복해 하도록 해야 해요. 한 발 뗄 수 있다는 것으로 행복하고, 약간 몸을 흔들 수 있다는 것으로 행복하고, 눈도 못 맞추다가 이제 눈을 맞출 수 있게 된 것으로 행복하다는 거예요. 그 아이에게는 그게 행복인데 그 아이가 우리처럼 되기를 원한다면 그건 영원히 불가능해요. 

 

그래서 우리가 지나친 욕심을 내면 안 됩니다. 그건 자식에 대한 집착이고 자기 욕망에 대한 집착이지 사랑이 아니에요. 사랑이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놓아두고 그 사람이 존중받도록 하는 게 사랑이에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부모든 자식이든 전부 다 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야기예요. 남편도 내 마음에 안 든다, 자식도 내 마음에 안 든다고 하는데 어떻게 세상이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돼요? 꿈도 야무지죠. (청중 웃음) 

 


 

항상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기뻐야 합니다. 장애를 갖고 있어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어요. 이게 중요한 거예요. ‘장애아가 있는 이런 환경에 처한 나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해야 이 권리를 누릴 수 있나? 아, 사물을 이렇게 보면 되겠구나. 이 아이를 가진 것을 나에게 복이라고 본다면 나도 행복할 수가 있다.’ 이걸 배우는 게 불법이라는 거예요. 이걸 깨우쳐주는 게 부처님의 가르침이에요. 그런데 ‘나는 이러저러해서 불행할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영원히 불행해요. 이따 내려가다가 넘어져서 한쪽 다리가 부러지거든 ‘남산에 가서 기도하고 가는데 왜 다리가 부러지냐. 부처님을 믿어봤자 아무 영험이 없네.’ 이러면 자기를 부정하는 거예요. 그럴 때는 안 부러진 다리를 잡고 ‘와, 기도했더니 하나만 부러지고 하나는 안 부러졌구나.’ 이래야 해요. (청중 웃음) 

 

두 다리가 다 안 부러지고 하나만 부러진 게 기도한 공덕이고 남산 산행한 공덕이고 스님 법문 들은 공덕이라고 여기세요. 어차피 일은 똑같이 벌어졌잖아요. 한쪽 다리가 부러진 상태에서도 나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 이거예요. 

 

이렇게 자신을 행복하게 가꾸어나가야 행복이 오지, 행복이 주어지는 게 아니에요. 그건 제가 드릴 수 없어요. 여러분들이 행복하면 그건 여러분들이 만든 거예요. 부처님은 세상이 이렇게 되어야 한다, 저렇게 되어야 한다를 가르친 게 아니라 각자 누구나 다 행복할 권리가 있고 행복할 수 있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그러니 행복하게 사십시오. 그래도 불행하게 살고 싶다면 그건 자기가 원해서 하는 거니까 어쩔 수 없어요. 여러분들이 어떤 상황에서든, 애가 아프든, 결혼을 했든 못 했든, 누가 죽었든, 그건 이 세상에서 늘 있는 일이잖아요. 어떤 상황, 어떤 경험이 찾아와도 우리는 행복할 권리가 있어요. 그 권리를 여러분들이 찾고 누리라는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은 일체중생이 다 부처다, 즉 불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건 누구나 다 자유로워질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네, 감사합니다.” 

 

누구든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스님의 목소리는 더욱더 커졌습니다. 스님의 간곡한 목소리에 모두들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하고 나니 어느덧 2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이렇게 즉문즉설 시간을 마치고 이어서 염불사로 내려갔습니다. 염불사는 신라 시대 때 이곳에서 염불을 하면 서라벌 전체에 그 소리가 울려퍼졌다는 곳입니다. 

 

염불사에는 동탑과 서탑 두 개의 탑이 있는데, 탑 앞에 선 스님은 간절한 마음으로 발원 기도를 했습니다. 대중들도 차례대로 도착하여 스님의 발원 기도를 가슴에 새기며 함께 기도 했습니다. 

 

“오늘 주간반 정토불교대학생 600여명은 경주 남산 불적지를 순례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되새겼습니다. 부처님과 부처님 가르침의 자취와 수행승들의 흔적이 남아 있어 온 인류가 보전해야 할 유산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경주 남산 불적지를 다섯 골짜기로 올라가 설명도 듣고 기도도 하고 참배도 하고 명상도 하면서 좋은 날씨를 만끽하며 도반 간에 우애도 나누고 부처님에 대한 믿음도 견고히 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이해도 더욱 깊이 하면서 수행의 시간을 보내고 마지막으로 서라벌 온누리에 부처님을 부르는 염불 소리가 울려퍼졌다는 염불사에 모여 오랫동안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며 간절히 발원하였습니다. 

 


▲ 염불사

 

부처님 법 만나기 전에는 다른 사람들을 탓하며 괴로워하고 원망하며 살았는데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 나서 이 모든 괴로움이 나의 어리석음으로 비롯되었음을 알게 되었고 이 어리석음을 깨우친다면 나도 부처님 같이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렇게 부처님 가르침에 귀의하여 무릇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고 결과가 있으면 반드시 원인이 있을 것일진대 미워하고 원망하는 것은 자신의 지은 바 인연을 모르는 탓이니 지은 바 인연의 과보를 기꺼이 받아들인다면 미워하고 원망할 일 또한 없음을 알게 되었고,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기 나름대로는 자기가 옳다고 생각되어 자기가 태어나고 배우고 경험한 그 습관에 빠져서 저렇게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할 뿐이지 굳이 나를 미워해서 나를 괴롭히려고 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하오니 이 세상에 그 누구도 미워할 일이 없고 나무랄 일이 없음을... 다만 나와 다르고 그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을 이해하게 되어 내 속의 화가 사라지고 괴로움이 눈 녹듯이 녹아내려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오니 기쁨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하오나 또 경계에 부닥쳐 이 기쁨은 온데간데 없고 타인을 탓하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나를 자책하고 하느님을 원망하고 전생을 탓하고 사주팔자를 탓하며 또 좌절하고 절망할 때가 있을진대. 그럴 때 부처님이시여. 보살님이시여,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어 저희를 깨우치고 격려하고 경책하여 원래 부처님 가르침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저희를 보살펴주소서. 

 

부족하지만 한발 한발 나아가 마침내 부처님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세세생생 끊임없이 정진할 것을 발원하옵나니 제불보살님들은 저희의 이 발원을 증명하여 주시고 천룡팔부 신중님들은 저희의 이 발원이 성취될 수 있도록 옹호하여 주시오소서. 

 

또한 특별히 발원하나니 오늘 이 순례에 동참한 대중 일동들 이 순례 공덕으로 갖가지 재앙이 물러나고 나날이 정진의 깊이가 깊어질 수 있도록 있도록 하옵시고 또한 이 공덕을 먼저 돌아가신 조상 영가님들께 회향하오니 모든 영가님들 왕생극락하옵소서. 

 


 

또한 순례 공덕을 내가 태어난 이 나라 이 민족에게 회향하오니 이 공덕으로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이 없는 평화가 도래하고, 나아가 남북이 하나 되는 통일조국의 성취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천지신명이여, 가호하여 주옵소서.”

 

스님의 발원 기도 속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전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이루고자 하는 간절한 염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발원 기도를 마친 후 다함께 오늘 남산 순례를 마무리하는 회향식을 했습니다. 먼저 스님은 오늘 순례를 안내한 법사님들을 모두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곳곳에 배치되어 길 안내를 비롯해 행사 전체를 총괄하고 주관한 대구경북 지부의 자원봉사자들을 대중들에게 소개한 후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 오늘 경주 남산 순례를 안내해 준 정토회 법사단

 

그리고 용성조사님의 유훈 10사목을 알려주면서 그 중에 하나인 경주 남산을 잘 가꾸어라는 유훈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알려주면서 오늘의 순례가 어떤 공덕이 있는지 다시 한 번 강조해 주었습니다. 

 


▲ 회향식

 

사홍서원을 끝으로 순례를 모두 마쳤습니다. 스님과 대중들은 단체 사진을 찍기 위해 통일전 주차장까지 다시 걸어내려왔습니다. 염불사에서 통일전으로 가는 길에는 양 옆에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어 탄성을 자아내었고, 누렇게 익은 벼와 황금 들판도 가을의 정취를 더해 주었습니다. 

 


▲ 코스모스

 


▲ 누렇게 익은 벼

 

통일전 앞에 모인 대중들은 지역별로 스님, 법사님과 함께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모두들 “오늘 너무나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며 기뻐하는 표정이었습니다. 

 


▲ 통일전 앞에서 지역 별로 기념사진 촬영 (광주전라 지부 학생들과 함께)

 

스님은 대중들이 버스에 올라타는 모습을 보고 울산 두북으로 향했습니다. 저녁에는 법사님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같이 한 후 오늘 경주남산순례에 대한 평가회의를 하면서 내일과 다음주 주말에도 계속 이어질 순례를 어떤 방식으로 더 개선할 수 있을지 의논하였습니다. 

 


 

내일은 전국에서 정토불교대학 저녁반을 다니고 있는 1000여명의 대중들과 경주 남산 순례를 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저녁 7시부터는 부산대학교에서 김제동씨와 함께 청춘콘서트를 할 예정입니다.

 

※ 법륜 스님과 함께하는 '인도 성지순례' 참가자 접수가 시작되었습니다.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인도의 10대 성지를 내 발로 직접 밟아보고 그 감흥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아래 배너에서 직접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전체댓글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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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다

감자 찐 것이 속속들이 잘 익었다 처럼 쓸 때 속은 순우리말 안이란 뜻입니다

스님의하루 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이 오류를 너무 반복해 보게됩니다

2015-10-23 10:55:31

가나다

스님 법사님들 글써주신분 감사합니다

속속 도착했다고 써야합니다
연이어란 뜻이고 한자 이을속자 두번 씁니다
속속들이 잘 인ㄱ었다

2015-10-23 10:52:10

수월성

스님 감사합니다 일상에서 부처의마음으로 산다는게 이렇게 쉽고도 어럽슴다 항상스님말씀을 선 지식으로삼고 하루를삽니다 처음 부처님을 우러러본 그때처럼 한발작씩 부처님 법을 배우고 있읍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요 .

2015-10-22 07: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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