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
첫 번째 선물, 두 번째 공부

서기남 님은 깨달음의 장을 통해 방문한 문경이 너무 좋아서 이곳의 사계절을 다 보겠다고 마음먹고, 두 번이나 바라지장에 다녀왔습니다. 글에서 바라지들의 새벽을 묘사한 부분과 공양간의 분주함 속에서 평화를 느꼈다는 부분에서 '아, 나도 꼭 한 번 바라지장에 가보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과연 서기남 님은 문경의 가을과 겨울을 다 보셨을까요? 아시는 분 계시면 댓글 부탁드리겠습니다.

바라지장 회향식을 마치고 나니 수련팀장님이 그 어느 때보다 더 환한 웃음을 띠며 다가오십니다. 그리고는 다정한 손길을 내밀며 “<월간정토>에 바라지장 소감문을 쓰면 어떨까요?”라고 물으십니다. 말씀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속에서 ‘아니오’가 올라옵니다. 다행히 ‘아니오’ 하려는 마음이 일어난 찰나 알아챕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마음, 나를 내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보입니다. “아, 예”라고 더듬거리며 대답했습니다.

서기남 님
▲ 서기남 님

첫 번째 선물

작년에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공부하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하던 중, 회원이 되어야 ‘깨달음의 장(이하 깨장)’에 갈 수 있다고 해서 일반회원에 가입했습니다. 깨장에 다녀와서 삶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은 터라 궁금했습니다. 3월에 깨장을 갔는데 수련원이 있는 문경이 참 좋았습니다. 산책하는 시간에 주변을 살피니 쑥이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하루하루 나무에 물이 오르고 경치는 더 근사해졌습니다. 문득 문경의 사계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깨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몸과 마음이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졌습니다. 아주 시원한 기분이었습니다. 그 가벼움의 실체가 궁금해져서 올해는 문경의 사계를 보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5월에 처음으로 바라지장에 참여하였습니다. 새벽 4시 목탁 소리에 일어납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천천히 대웅전으로 올라갑니다. 새벽빛이 어스름하니 저절로 지금 여기 내가 깨어서 걷습니다. 절을 하며 나를 버리고 내 고집을 버리는 연습을 합니다. 새벽 정진을 마치고 대웅전을 나서면 그림 같은 운무가 펼쳐집니다. 몸과 생각은 가볍고 마음이 충만합니다. 이 시간이 너무 감사합니다.

공양간의 일은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바라지 팀장님이 할 일을 배분해주었습니다. 몇 상자의 양송이를 다듬기도 하고, 땅콩을 까기도 하고, 깻잎의 개수를 세어 담기도 합니다. 가끔은 공양간에 정적이 흐르고 내 손에는 양송이의 질감이, 내 코에는 양송이의 향기만 느껴집니다. 생각이 멈춘 것 같기도 합니다. 알 수 없는 평화를 느꼈습니다.

바라지를 같이한 분들은 모두 처음 만났습니다. 저녁 프로그램 시간에 자신의 이야기를 나눠보니 나이도, 하는 일도, 사는 곳도, 정토회와의 인연도 모두 달랐습니다. 두 분의 도반이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내어놓았습니다. 덕분에 처음 만난 사람에게 느끼는 어색함이 사라졌습니다. 오랜 친구들처럼 서로 어울려 공양간이 돌아갑니다. 좋은 도반들과 자연 속에서 수행하고 일하고 봉사하며 쉴 수 있다니, 멋진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습니다.

바라지장에서 도반들과(맨 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서기남 님)
▲ 바라지장에서 도반들과(맨 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서기남 님)

마음공부하기 딱 좋은 바라지장

7월에 두 번째 바라지를 갔습니다. 이번에는 밥 담당이 되었습니다. 두툼하고 커다란 스테인리스 밥솥을 혼자 들면 ‘헉’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무겁습니다. 첫 번째 바라지장과 비교하는 마음이 자꾸 올라옵니다. 첫 번째 바라지장에서 “살면서 이렇게 지시를 많이 들은 것은 처음입니다. 제가 ‘예’를 잘 못해서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라고 말하며 웃었습니다.

이번에는 완전히 다른 마음이 일어납니다. 일에 대한 안내가 지시와 간섭으로 느껴집니다. 한마디 한마디에 욱하는 마음이 올라옵니다. 마음이 까칠해지고 꽁해집니다. 정신을 차리고 상대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지만 다시 꽁해집니다. 바라지장에 대한 상이 생기니 그것에 집착합니다. 목소리 톤까지 시비하는 마음이 올라옵니다. 다시는 바라지장에 오지 않겠다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3일쯤 지나자 ‘잘했다’라고 하지 않으면 비난으로 받아들이는 제가 보였습니다. 대부분 ‘그러려니’ 하는데 제가 유독 끄달리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제 마음을 알아채고 저를 도와주는 분도 보였습니다. 마음이 조금씩 부드러워집니다. 제가 시비하고 분별했던 사람이 우리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꽁했던 마음이 풀어지고 웃음이 나옵니다. 바라지장은 마음공부하기에 참 좋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역시나 또 가볍습니다. 다가올 문경의 가을이 궁금해져 다음 바라지를 또 기약해봅니다.


이 글은 <월간정토> 2023년 9월 호에 수록된 서기남 님의 바라지장 수행담입니다.

글_서기남(양천지회)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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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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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대웅전에서 간절한 새벽기도를 하고 감나무가 서 있는 풍경을 바라보며, 바라지장에서 내 마음을 적나라하게 보고 싶습니다.
올해는 꼭 가리라 살피고 있습니다. 도반님 글을 읽으니 의욕이 충만해집니다. 감사합니다

2024-04-25 16:36:08

이경혜

매 순간 깨어있는 기남님 수행담에 저를 반성해 봅니다.
학생도반의때 인연에서 이렇게 회원 도반의 인연으로 다시 만나게 되니 더 감사합니다.

2024-04-25 06:16:34

사공엽

저도 바라지장 한번 해 보고 싶어지네요. 대웅전을 나오며 운무를 꼭 보고 싶네요 ㅎ

2024-04-23 13:3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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