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7. 03. 30 행복한 대화_중랑구민회관 편
아픈 아이와 문제 아이, 어떻게 교육해야 할까요?

스님은 서울공동체 대중들과 예불, 천일결사를 하고 발우공양에 참석하였습니다. 대중공사 시간에 스님은 주말에 있는 공동체 봄나들이 프로그램을 직접 소개하였습니다.

“.... 일기예보를 보았는데 비가 온다고 해요. 우산과 간단한 우비도 준비하는 게 좋을 것 같고요. 비를 맞아가면서 꽃구경을 할 건 아니지만 어차피 어렵게 잡은 시간이니까 다들 업무 마무리를 잘 하고 와서 비가 많이 오면 화전이라도 구워 먹고 휴식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네요. 저녁은 칼국수를 먹을까 해요. 저녁을 먹고 다 같이 모여서 개인적인 어려움이나, 수행하면서 궁금한 것, 부서에서 일 하면서 이야기 나누고 싶은 것 등,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합시다...”

스님이 직접 안내하는 봄나들이, 꽃구경, 칼국수 등등의 단어에 대중들은 와글거리며 웃었습니다. 비 때문에 꽃구경이 어렵더라도 마음을 가볍게 가지고 갈 수 있을 것 같아 한결 부담이 덜어지는 듯합니다. 스님은 외부 약속이 있어 대중공사를 마치고 곧 일어섰습니다.

아침부터 시작된 일정은 중간 중간 회의나 다른 미팅으로 재단에서 오후까지 이어졌는데 4시경, 반가운 손님이 오셨습니다. 스님과 30년 인연이신 한의사 박선생님이 스님 건강 검진 차 진맥하러 오랜만에 평화재단에 오셨습니다. 진맥 겸 담소의 시간을 가지고 박선생님이 재단을 나서려고 하자 스님은

“자, 우리도 사진 한 장 찍읍시다. 이렇게 나이 들어가니까 더 늙기 전에 사진 한 장 찍어야지.”

허허 웃는 웃음이 정겨운 사진이 담겼습니다.

저녁 5시가 되자 필리핀 민다나오 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돌아온 김수, 이정자 부부 정토행자와 남궁영임 보살님, 총 세 분과 JTS 정영미 사무국장님이 스님께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스님과 세 분은 다과를 나누며 필리핀 농사 이야기를 즐겁게 나누었습니다.

“필리핀은 땅이 많이 질어서 배추, 무가 잘 안 되더라고요. 열무가 잘 되는 편이고요. 일주일이면 솎아먹고 20일이면 열무김치가 가능합니다. 한약물을 물에 묽게 타서 비료로 주기도 하고 농약대신 막걸리를 물에 타서 줬더니 벌레도 없어지고 좋아졌어요, 스님.”

“땅이 진 곳은 고구마가 아마 잘 될 거예요. 알라원은 산이 높아서 구름이 산에 막혀 비를 뿌리고 가는데 우리가 센터를 지을 때 그 생각을 미처 못 해서 경치가 좋다는 생각만 했지 비가 많을 것을 예상을 못했어요. 일하기는 좀 힘들지요...”

올 7월에 다시 필리핀 민다나오 JTS센터로 다시 가기로 했다는 김수, 이정자님은 필리핀에서 기도하고 일하는 생활이 참 좋다하였습니다. 스님은 중랑구민회관에서 ‘행복한 대화’ 강연이 있어 곧 자리를 접고 강연장으로 출발 하였습니다

강연장에 도착하니 로비가 좀 좁아보였는데 접수와 홍보를 하고 있던 스텝과 참가자들이 스님을 보자 “와~ 스님 안녕하세요.” 하며 즐겁게 반응하였습니다.
7시가 되어 강연이 시작되고, 1층과 2층으로 나누어진 객석에 꽉 들어찬 참가자들이 스님이 무대에 등장하자 격한 환호와 박수를 보냈습니다.

스님은 “환영의 인사가 뜨겁습니다.” 하며 함박웃음을 보였습니다.
오늘 진행된 ‘행복한 대화’는 영상질문을 포함하여 10개의 대화가 소개되었습니다. 그 중에 자녀 교육에 대한 질문이 연이어 있었는데 부모의 대응과 마음가짐에 대해서 잘 알 수 있을 것 같아 두 개의 질문을 함께 소개합니다.

“저에게는 초등학교 4학년 딸아이가 있습니다. 최근에 아내가 학교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했는데 선생님에게서 아이가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말을 듣고 속상해해서 질문을 드리려고 합니다.

선생님 말씀으로는 아이가 말수가 적고 친구들과의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되지 않아서 또래 모임에 쉽게 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앞으로 더 심각해질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아이가 고학년이 되면서 학교생활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말씀도 덧붙이면서 걱정을 하셨습니다. 이럴 부모로서 아이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조언을 구하고 싶습니다.
아이가 학교에 가기 싫어하거나 다른 어려움을 겪으면 그저 지켜봐야만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럴 때 부모가 어떻게 하는 것이 아이를 도와주는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행여 아이가 학교에서 왕따라도 당하면 부모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우선 선생님께 고마운 마음을 가지셔야 합니다. 내 아이인데도 선생님이 그런 문제를 먼저 알아보고 조언해 주셨으니까요.”

“네, 저희도 알고 있는 문제이긴 했습니다.”

“치료는 해보셨나요?”

“치료하려고 노력은 했는데 잘 안 되었어요.”

“아이가 만약 눈이 하나라도 안 보이거나 팔이 하나 없다고 해도, 그런 장애를 가진 아이도 인생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지요?”

“네,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요. 장애가 있으면 그런 장애를 감수하고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가면 됩니다. 만약 성격적 장애가 있다면 성격적 어려움을 감수하고 살아가면 되고, 신체적 장애가 있다면 신체적 어려움을 감수하고 살아가면 되고, 지능적 장애가 있으면 그로 인해 생기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살아가면 됩니다. 어떤 경우에도 행복하게 살아가면 돼요.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지요?

아이가 대인관계를 어려워하는 것 같은데, 이미 발생한 문제니까 왜 그렇게 되었는지 원인은 크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가 더 중요해요. 그러니까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동심리나 아동발달을 다루는 곳에 아이를 데리고 가서 진찰을 한 후, 아이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파악하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 일정 기간 동안 꾸준한 상담과 치료를 통해서 정상화되기도 하고, 때로는 발달장애가 있기 때문에 상담과 치료 후에도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80퍼센트 정도의 회복을 기대할 수 있는 경우도 있어요. 설령 후자의 경우라고 해도 속상하거나 할 필요가 없고, 아이에 대한 기대 수준을 거기에 맞추면 됩니다.”

“저희도 치료를 하면서부터 저희들과의 대화도 나아져서 6, 70퍼센트 정도는 회복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반응도 조금 느린 편이다보니 또래 아이들과의 대화는 여전히 어려운 것 같습니다.”

“집에서는 부모가 아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알기 때문에 배려해서 대화를 하잖아요. 반면 또래 아이들은 그 부분에 대해 잘 모르니까 배려를 해주기 어려울 거예요. 그런 경우에 아이는 대화를 하는 데 있어서 더 긴장을 하게 되겠죠.”

“네. 그렇지 않아도 친구들과 대화를 하는 데 있어서 긴장을 많이 하고, 열등감도 생긴 것 같습니다.”

“우선 학교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압박감을 집에서 지속적으로 풀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아이에게 자꾸 격려를 해주어야 해요. 만약 한 쪽 눈이 안 보이는 아이가 그것에 대해 열등의식을 가지면, 부모는 같이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도 두 눈 모두 안 보이는 것에 비하면 얼마나 다행이니’ 하고 계속 격려를 해주어야 해요. 그럴 때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서 다른 아이들처럼 되기를 바라거나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속상해 하는 것은 부모의 욕심이지 아이에 대한 사랑이 아닙니다.

아이에 대한 사랑은 설령 아이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아이의 삶을 그 자체로 존중해주는 거예요. 그리고 아이는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그런 현실과 주어진 조건 속에서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니 부모는 치료를 통한 도움을 주는 동시에 항상 아이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아이가 처한 조건을 수용해주어야 합니다.

치료를 하는데 있어서도 더 이상 나아지지 않는데 아이를 정상화시키려고 여기 저기 너무 데리고 다니면 오히려 그 과정에서 아이에게 열등의식이 생겨날 수 있어요. 그러니 전문가나 의사선생님과 상담을 하면서 전문가의 의견으로 아이가 80퍼센트 정도 회복이 가능할 것 같다고 하면, 그런 아이의 조건을 부모가 얼른 받아들여야 해요. 그렇지 않고 욕심으로 치료를 하려고 하면 오히려 상처를 입을 수 있어요.

그리고 전문가의 의견을 들은 다음, 일반적인 학교에서 생활이 가능한지 아니면 다른 특수교육지원을 해주는 학교에 다녀야 하는지도 알아보세요. 만약 일반적인 학교생활은 가능하다고 하면, 새 학년이 시작될 때 늘 담임선생님을 찾아가서 아이에 대한 설명을 드리고 배려를 해달라는 부탁을 할 수 있겠죠. 그러면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 싶으면 선생님이 주변 친구들에게 아이가 말하는 속도가 조금 느린 편이니 배려를 해주는 게 어떻겠냐고 설득할 수도 있어요.

아직 우리사회에서는 아이가 장애가 있으면 주변 친구들이 놀리는 경향이 남아 있어요. 얼굴이 검거나 다문화 가정에서 자라도 놀림감이 되곤 해요. 아직 그런 문화적인 부분에 있어서 시민의식의 교양이나 교육이 많이 다루어지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장애 아이를 놀리거나 하는 것은 부모의 영향이 큽니다. 그러니 아이들만을 나무랄 수도 없어요.

이런 걸 보면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장애가 있는 친구들을 함께 배려해가면서 지낼 수 있도록 아이들을 지도하는 교육도 필요하고, 가정에서도 주변에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을 어떻게 바라볼 지 부모들의 인식 변화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질문자도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학부모 모임에 나가서 다른 부모들에게 양해를 구할 수도 있겠죠.”

“그렇지 않아도 그 부분을 생각했었는데, 제 아내가 학교 선생님을 하던 사람이어서 그런지 다른 학부모들에게 아이의 문제를 밝히는 것을 조금 꺼려하는 부분도 있더라구요. 한편으로는 필요하다고 느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밝혀서 좋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건 그리 긍정적인 방향이 아니에요. 아이가 잠시 동안 어려움을 겪는 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데, 있는 그대로 밝히고 수용하는 편이 낫죠. 그저 덮어두고 말하지 않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잖아요. 대신 다른 사람들에게 무조건 양해해주고 배려해달라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한쪽으로는 치료에 힘쓰고 동시에 환경 개선을 조금씩 한다는 측면에서 주변 사람들이 배려를 해줄 수 있는 거예요.

그 중 부모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의 장애에 대해 속상해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흔히 장애가 있는 아이가 태어나면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저런 아이가 태어났나’ 하고 한탄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 말을 가만히 보면 그 아이의 장애가 죄의 과보라는 뜻이잖아요? 그런 생각이 아이에게 상처가 되고, 그 생각 자체가 상당한 인권 침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 중에 피부가 검은 것은 죄의 과보가 아닙니다. 다만 피부 빛깔이 다를 뿐이에요. 그런 것처럼 장애도 불편할 뿐이지 열등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단지 불편함으로 받아들이면 그 다음에는 그 불편함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그에 필요한 기술이 개발됩니다. 눈이 잘 안 보이면 안경을 만들고, 소리가 잘 안 들리면 보청기를 만들고, 팔 다리가 불편하면 의수, 의족을 만듭니다. 이렇게 불편한 부분은 기술적으로 보완되는데 반해 이것을 열등함으로 받아들이면 다른 사람을 증오하거나 자학 증세를 보이는 등의 방향으로 흘러가기가 쉽습니다.

그러니 어떤 경우에도 이것을 열등함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 것은 죄의 과보가 아닙니다. 흔히 ‘하느님이 나만 미워하나봐, 천벌을 받았나봐,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나’하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그 생각 자체가 인권 침해적 사고방식입니다. 피부가 검은 아이도 행복할 권리가 있고, 여자 아이도 행복할 권리가 있고, 장애가 있는 아이도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니 부모도 아이가 처한 조건에 맞게끔 아이에게 요구해야지 그 이상으로 기대하면 안 됩니다. 그런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아이는 스스로 열등의식을 갖게 됩니다. 그럴 때 부모는 그런 아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어야 해요.”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자기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조금 부끄러워하는 것 같은데…”

“그런 경우에는 전문가와 상담을 통해서 자기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는 훈련을 지속적으로 할 필요가 있어요. 우리가 개나 말도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지속적으로 훈련시키는데, 사람도 익숙하지 않은 것을 하려면 연습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대신 그런 훈련을 하는 과정에서 부모가 욕심을 내서 속도를 올리려고 하면 아이는 부모가 원하는 만큼 못 따라올 수 있으니까 그 부분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니 아이를 사랑한다면 무엇보다 아이를 존중하고 격려하고, 지금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도록 꾸준히 연습하는 환경을 만들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청중 박수)

바로 뒤이어 또 한 어머니가 질문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데 있어서 부모님의 마음가짐이 중요함을 알 수 있었는데요, 함께 실어봅니다.

“저에게는 중학교 2학년 딸이 있습니다. 딸이 지난 방학동안 한 여자 아이와 부쩍 친해졌는데 그 아이는 학교에 잘 다니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번 달에는 딸이 그 여자 아이와 외박하기 시작하더니 음주, 흡연, 절도까지 시작했습니다. 저는 너무 속상하고 또 대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상담 센터에 데리고 가서 치유해주고 싶은데 정작 본인은 전혀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문제의식도 전혀 없어 보입니다. 대체 정신력이 강한건지, 뻔뻔한 건지, 수치심이 없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질문은 딸이 이번에 2학년이 되면서 그 여자 아이와 같은 반이 되었다고 하는데, 어떻게든 그 둘 사이를 떼어놓으려고 하면 이사를 가야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딸은 전학은 싫다면서 버티고 있습니다. 비록 그 아이 말고 다른 친구들도 모두 지금 다니는 학교에 있으니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면 적응을 잘 못할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딸의 자율성을 어디까지 허용해야할지 잘 모르겠고, 부모로서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아이를 지켜봐야 할까요?”

“그 아이는 누가 낳았나요?” (청중 웃음)

“제가 낳았습니다.”

“누가 키웠어요?”

“제가 키웠습니다.”

“그럼 누구를 닮았을까요?”

“저를 닮았나 봐요.” (청중 웃음)

“그래요. 그러니 질문자도 잘 사는 것처럼 그 아이도 잘 살 거예요. (질문자 웃음) 우선 그렇게 긍정적으로 봐야 해요. 딸아이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고, 질문자가 어느 날 비행청소년을 데리고 와서 키우는 것도 아니잖아요.”

“네.”

“아이가 공부를 안 하는 것은 나쁜 행동은 아니지요?”

“네.”

“그런데 남을 때리거나 죽이거나 해치는 것,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뺏는 것, 남을 성추행하거나 성폭행하거나 괴롭히는 것, 그리고 거짓말하거나 술에 취하는 것은 나쁜 행동에 속합니다. 왜냐하면 그 누구에게도 남을 해치거나 괴롭힐 권리는 없기 때문이에요.

내가 공부를 하지 않고, 잠을 자는 것은 나에게 손해를 끼칠지는 몰라도 남을 해치는 것은 아니잖아요. 이렇게 스스로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어리석은 행동은 혼낼 것이 아니라 깨우쳐주어야 합니다. 그러니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은 본인에게 손해가 있음을 깨우쳐주어야 해요.

반면 남에게 해를 끼치는 나쁜 행동은 중지시켜야 합니다. 딸아이가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절도를 하는 것은 이미 나쁜 행동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런 행동은 내버려두면 아이에게도 문제가 되고 나중에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아이와 대화를 해서 멈추어야 합니다. 무조건 혼내거나 아이를 때려서 교화할 것이 아니라, 이런 행동이 지속되고 남에게 피해를 주면 나중에 감옥에 들어가게 될지도 모른다고 아이에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행여 다른 사람을 때리면 폭행죄로 감옥에 들어가게 되고, 다른 사람에게 욕설을 하거나 사기를 쳐도 그에 상응하는 처벌이 따르잖아요. 그러니 그런 일이 있을 때 부모가 학교에 가서 선생님이나 다른 학부모에게 대신 빌어서 해결을 해준다고 문제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딸아이가 직접 처벌을 받는 게 낫습니다. 그건 자식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자식의 잘못된 부분을 고쳐서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예요.

지금 질문자가 이야기를 한 부분들에 있어서는 우선 딸아이와 함께 청소년 심리 상담을 하는 게 필요해 보입니다. 전문가가 아이를 만나보고 어떤 치료가 필요한지 알아봐야 해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엄마가 아이에게 화를 내면 안 돼요. 아이가 이렇게 된 데에는 질문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책임의식을 느껴야 합니다.

아이가 이런 행동을 하는 데에는 심리적 불안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원인이 질문자가 아이의 아빠와 갈등이 있었든지 질문자가 심리적 불안이 있었든지, 어떤 이유로든 아이는 심리적 불안을 느끼는 겁니다. 그러니 질문자에게도 책임이 있는 문제예요.

그러니 우선 질문자에게 책임의식이 필요합니다. 죄의식을 가지라는 것이 아니라, 자꾸 아이를 문제 삼지 말고, 자기를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지금 정도라면 아이도 상담 치료가 필요한 정도입니다. 아이가 상담 치료를 받겠다 받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에 연연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이를 위해서 무조건 데리고 가서 치료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잘 설득해보세요.

어떤 경우에도 아이를 야단치거나 때리면 안 돼요. 우선 설득을 해보고, 어떻게 설득해도 잘 안 된다 싶으면 ‘너를 위해서 이 문제는 강제로라도 할 수밖에 없다’고 분명한 태도를 보이세요. 필요한 치료의 정도에 따라서 지금 다니는 학교에서는 도저히 해결이 안 되겠다 싶으면 이사를 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고 하잖아요? 아이를 위해서는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이사를 가야 합니다.

이사를 간다고 꼭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사한 곳에 가서 또 비슷한 친구를 만나서 지금과 같은 행동을 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치료하는데 격리가 필요하다면, 치료와 격리를 동시에 하는 거예요. 그러니 상담 등을 통해서 치료부터 먼저 해보고, 치료만으로는 부족하다 싶으면 과감하게 격리도 시행할 수밖에 없어요. 아이를 이대로 방치하면 범죄에 빠질 수도 있으니까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나쁜 친구를 사귀었기 때문에 딸아이가 이런 행동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입니다. 오히려 그 친구에게는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딸아이에게는 이런 기질이 이미 잠재해 있었고, 기회를 만나서 분출되었을 뿐이에요. 그 친구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저 친구 때문에 우리 아이의 문제가 조기에 발견되었다’라고 생각하고 그 친구를 원망할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관점을 가지고 해나가시면 좋겠습니다.

첫째, 질문자가 기도를 하셔야 합니다. 천주교 식으로 표현하자면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탓이로다’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둘째, 아이를 치료해야 합니다. 셋째, 기도와 치료로도 충분하지 않다면 과감하게 이사라는 선택을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가능하면 아이와 대화를 통해서 설득하고 해결하는 게 좋아요. 그러나 아이가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정 설득이 안 된다면 강제로라도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해요. 하지만 설득이 안 된다고 해서 어떤 경우에도 때리거나 화를 내서는 안 됩니다. 다만 아이를 위해서 질문자가 해야 하는 행동을 결단력 있게 행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렇게 하는 과정에서 아이가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가면 그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만약 질문자가 때려서 아이가 나가면 그건 질문자의 책임이지만 아이가 스스로 집을 뛰쳐나가면 그때는 굳이 찾으러 다닐 필요는 없고 스스로를 돌이키며 기도만 하고 있으면 됩니다. 이 세상일은 내가 다 책임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부모로서 책임을 질 수 있는 부분은 끝까지 책임을 지되 그 이상은 부모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질문자는 딸이 지금처럼 말썽피우는 게 좋아요, 머리 깎고 스님 되는 게 좋아요?” (청중 웃음)

“후자요.”

“후자가 나을 것 같아요?”

“네.”

“그러면 엄마의 자세가 아니에요. (청중 웃음)

저희 어머니가 가끔 다른 형제들이 애를 먹인다고 할 때 저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절에 들어와서 살았으니까 한 번도 속 썩인 적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언젠가 형들 때문에 어머니가 속상해 하셔서 ‘어머니, 저는 속 썩인 적이 없죠?’하고 여쭈어보았는데, 어머니께서는 ‘아무리 속을 썩인다고 해도 너만큼 속 썩인 사람이 어디있냐’라고 하셨어요. (청중 웃음) 부모에게는 아들이 속세를 떠나 절에 들어간 것만큼 속상한 게 없는 거예요.

그런데 질문자는 이렇게 아이가 애를 먹이느니 절에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질문자는 지금 자기 귀찮은 것만 생각하지 아이를 위하는 마음이 별로 없어 보여요.”

“애를 먹이느니 절에 들어갔으면 좋기 보다는 제가 극단적으로 안 좋은 경우를 상상하면 그것보다는 낫지 않겠나… 그리고 스님의 길은 고달프고 힘들지만 거룩한 길이잖아요.”

“남의 자식이 그 길을 걸을 때는 거룩해 보여요. (질문자와 청중 웃음) 그런데 자기 자식이 그 길을 걸으면 그리 거룩해 보이지 않아요. 그러니까 질문자가 엄마의 자세가 아니라는 거예요. 이렇게 이야기를 해주는데도 본인 스스로 엄마의 마음자세가 없다는 것을 계속 고백하시네요. (청중 웃음)

스님이 이야기를 딱 들어보면 ‘엄마의 자세가 부족하구나. 아이가 엄마로부터 진정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아이가 느끼기에 엄마가 자기를 귀찮아하지 자기를 위한 진정한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있어요. 아이가 감동받을 요소가 없어요. 그런 상태에서는 아이의 치유가 어렵습니다.

그런 마음 자세를 가지고 있으면 질문자가 아무리 겉으로 ‘나는 너를 사랑해’라고 말을 해도, 아이의 심리 저변에는 ‘나를 위하는 게 아니라 나를 귀찮아하는구나’하는 마음이 깔려 있는 거예요. 질문자가 아이를 위해서, 아이의 치료를 위해서 감동할 만큼 희생을 해야 아이가 치료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청중 박수)

아이를 키우는 것은 키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를 먼저 가꿔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좁은 로비에서 책 사인회가 열렸는데 길게 늘어선 줄 사이에서 대화를 나누는 두 분의 어머님이 보여 끼어들어보았습니다.

“오늘 스님과의 대화중에 어떤 내용이 마음에 좀 남으세요?”

“아, 연구하라는 말씀이 마음에 많이 남았어요. 남편이랑 관계에서 기분 나쁘거나 한 것은 그냥 ‘속상한 거’였거든요.... 스님 말씀처럼 ’연구‘할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을 못 해본 것 같았어요. 일을 잘해보고 싶을 때 이런 때는 일을 어떻게 할까 ‘연구’하는데 남편이 왜 그러는지, 내가 어떻게 하면 남편이 좋을지 ‘연구’한다고 생각은 한 번도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요. 신선했어요.”

“지난 번 다른 지역 강연에도 저는 다녀왔는데 오늘이 더 활기 있고 재밌고 스님께서도 다양하게 이야기를 많이 해 주신 것 같아요.”

두 어머님은 자연스럽게 느낀 점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사인회가 끝나고 스텝 단체 사진을 찍는 순서가 되었습니다. 좁은 로비에 자리 잡고 서 있다가 전체가 사진에 담기지 않자 입구 계단으로 모두 나와 섰습니다.
한밤중에 건물 앞에서 단체로 ‘화이팅’을 외치며 깔깔 웃어도 기분이 좋은 밤입니다.

전체댓글 8

0/200

송 춘심

..너무 모르고 사는것 같음니다...~! ㅋ

2017-08-30 12:48:07

고경희

남의 자식 일때와 내 일일때는 다름을 압니다. 그것이 엄마의 자세이군요. 내안의 귀찮음이 있는지 잘살핍니다.

2017-08-04 10:28:44

조정

고맙습니다.덕분입니다._()()()_

2017-04-02 05:5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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