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6.2.5 (인도 31일째) 인도인 활동가 수련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인도인 활동가들과 함께 하루 종일 집중 수련을 했습니다. 

 

새벽 4시 30분, 오늘도 도량석 소리와 함께 일어나 새벽예불과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법당을 나오니 전정각산 너머로 그믐달이 지면서 날이 점점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발우공양을 함께한 후 스님은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는 대중들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하였습니다. 

 

 

 

우선 자연 채광을 최대한 활용해서 전기를 절약할 것, 학교 교문 앞과 탑터가 있는 성지 주위가 지저분한 경우가 많은데 당번을 정하든지 해서 항상 청소를 해줄 것 등을 이야기한 후 특히 인도인들과 일할 때는 문화를 존중해 주는 자세가 매우 중요함을 강조했습니다. 

 

“같이 살면 서로의 먹는 음식이나 생활 문화를 존중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한테 누가 와서 자기는 개고기를 좋아하니 같이 먹자고 하면 질겁할 사람 많잖아요. 그런 것처럼 인도 사람들은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안 먹어요. 그러니 한국에서 음식을 가져오더라도 소고기나 소가 그려진 라면, 소고기 스프 같은 건 안 돼요. 이미 가져와버린 건 어쩔 수 없이 우리끼리 먹더라도 가능하면 아예 가져오지 마세요. 지난번에 이야기 들으니까 애들이 한국 라면을 잘 먹었다가 나중에 소고기 스프가 든 줄 알고 다시는 한국 라면 안 먹으려고 했다는데, 그렇게 하지 않도록 하세요. 

 

 

거꾸로 한번 생각해봐요. 누가 와서 자기 식성이라며 개고기를 먹고 권하면 민감한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러니 소고기라면 같은 건 한국에서 성지순례 올 때도 가져오지 않도록 앞으로 꼭 공지해 주세요. 고추장에 소고기 넣은 것도 가져오지 않도록 하고요. 그것도 가져와서 밥에 비벼 맛있게 먹었는데 나중에 소고기 들었다는 걸 알고 질겁했다고 들었어요. 우리는 그저 웃으면서 ‘지금까지 잘 먹다가 왜 그러냐’고 놀리듯 넘겨버리지만 그건 굉장히 실례입니다. 

 

음식 문화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의 문화를 자꾸 거스르는 건 안 좋아요. 다른 사람들의 문화를 존중해야 합니다. 그 문화의 구성원들이 스스로 변화시킨다면 몰라도 우리 외국인이 와서 문화를 흐트러뜨리는 건 안 좋아요. 서양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우리의 전통문화를 우스갯거리로 만들고 제사 지내는 건 죄다 미신이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한 번은 웃고 넘어갔지만 앞으로는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한번 그런 경험을 하면 다시는 신뢰하기 어렵거든요. 

 

여기는 자이나교뿐 아니라 브라만 중에도 채식하는 사람이 많아서 채식 문화가 강합니다. 그러니 그런 걸 항상 존중해줘야 해요. 식성이 어떤지 늘 먼저 확인해서 그 사람한테는 그 사람의 식성에 맞도록 배려하는 걸 잊지 마세요. 여기 힌두문화는 일단 소고기를 안 먹으니까 그걸 꼭 지켜주세요. 나름대로 수천 년을 내려온 자기네 전통이 있는데 그걸 막 무시해버리면 안 돼요. 우리가 다른 문화에 속박 받을 필요는 없지만 그 문화를 존중해줘야 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외국인이 들어와서 남의 문화를 파괴할 수 있어요. 세월이 흘러서 자기들이 스스로 변화시키는 것은 괜찮지만 우리가 문화를 함부로 흩트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여기 계급차별이나 성차별 같은 것도 우리가 나서서 철폐해야 한다고 함부로 주장하면 안 돼요. 화장실 청소를 안 한다고 막무가내로 야단쳐도 안 됩니다. 우리가 먼저 청소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같이 하자, 화장실 청소를 직접 해도 괜찮다’ 이렇게 설명을 해줘야죠. 자기들은 부모 대대로 평생 내려온 습관이기 때문에 그걸 함부로 가볍게 여기면 안 돼요. 여기도 처음에 화장실 청소를 절대로 안 하려고들 하고, 화장실 청소에 참여한 애들이 집에 가서 야단맞는 일도 많았어요. 화장실은 더럽다고 해서 천민 중에서도 가장 낮은 천민이 청소해야 한다고 믿는 거예요. 계급 중에서도 제일 낮은 게 화장장에서 일하는 사람이고 그 다음이 화장실 청소하는 사람이에요. 그러나 우리가 먼저 다 같이 청소를 하면서 설득하니까 애들이 조금씩 따라하게 된 겁니다. 

 

20년 동안 그런 게 굉장히 많았어요. 교육을 통해서 애들이 계급이 달라도 같이 어울리고, 남녀가 학교 안에서는 그래도 평등하게 되었어요. 이렇게 학교 안에서 똑같이 대우를 해주고 차별을 못하게는 하지만, 우리가 나서서 바꾸자고 막 주장하지는 말라는 겁니다. 그건 여기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즉 자연스럽게 부처님 가르침을 들으면서 변화하도록 해야 하니까요. 다만 우리는 이 안에서 차별하지 않아야 합니다. 

 

옛날에 여기서 천민 교사가 양민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라르푸르 사람들이 몰려와서 시위를 하고 난리가 났을 때 제가 마을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이 학교를 인도식으로 운영할까요, 한국식으로 운영할까요?’

‘인도식 운영과 한국식 운영이 어떻게 다릅니까?’

‘제가 인도 학교를 보니까 교사가 11시나 12시에 와서 2시간 정도 수업하고는 가버리고, 일주일에 3~4일 정도 문을 안 열던데요. 그렇게 인도식으로 운영할까요? 한국식은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수업하고, 교사도 학생도 수업에 빠지면 안 되게끔 운영합니다.’

‘한국식으로 운영해 주십시오.’

‘그런데 한국에서는 교사가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여부만 따지지, 그 사람의 계급이 무엇이고 성별이 무엇인지는 따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계급을 따지려면 인도식으로 운영을 하고, 여러분이 한국식으로 운영하기를 원한다면 계급을 따지거나 여자가 선생님 되는 걸 반대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해서 그 문제를 풀었어요. 주민들에게 ‘계급 차별은 나쁜 것이니 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한 게 아니라,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하자’라고 했을 때 ‘그러면 한국식으로 해달라’고 해서 해결이 된 겁니다. 

 

 

쁘리앙카가 들어올 때는 또 여기 천민들이 반대를 했어요. 왜 우리 천민들을 위해 학교를 지었는데 우리 동네 천민들을 놔두고 밖에서 브라만을 데려오느냐고 항의했습니다. 그때는 또 이렇게 설득했습니다.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가르쳐야지, 가르칠 수 없는 사람이 가르쳐서 되겠습니까? 여기 천민들은 아직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잖아요. 천민, 양민이 중요한 게 아니라 아이를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합니다.’ 

 

반대로 천민 교사를 채용하면 또 말이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이 동네 천민들을 위해서 지은 학교였는데 급식을 시작한 이후로 양민 아이들이 대거 몰려와서 학생의 상당수가 양민이 됐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천민 아이들은 많이 떨어져나가서 동네 아이의 절반도 학교에 안 오고 양민 애들이 학교를 주름잡게 되다 보니 이런 불상사가 생겼어요. 

 

이 지역은 혈연이나 가족주의가 굉장히 강해요. 교사 한 명이 문제가 있어서 선생 자격을 해고하니까 그 가문 전체 아이들이 학교를 다 안 나와 버렸어요. 원래 라르푸르 학생들이 여기에 제일 많이 다녔는데 그런 과정에서 라르푸르가 완전히 떨어져 나가서 이제는 라르푸르 학생이 하나도 없잖아요. 

 

그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여기까지 온 거예요. 그게 한 20년 됐으니 이제 학교 안에서는 밥도 같이 먹지만 아직도 다른 교사들과 같이 안 먹는 교사들이 있어요. 여기 예능 선생들이 주로 브라만, 우리로 치자면 양반이 많잖아요. 원래 높은 계급의 사람이 낮은 계급의 사람에게 물을 떠다 줄 수는 있지만, 낮은 계급이 높은 계급의 사람에게는 물을 안 떠주게 돼 있어요. 암베드카르 법무부 장관이 호텔에 식사하러 갔는데 서빙하는 사람이 브라만 출신이어서 서빙을 안 하고 거부해 버렸다잖아요. 

 

특히 이런 시골에는 계급의식이 굉장히 강해요. 우리가 그걸 굳이 따를 필요는 없지만, 그런 문화를 함부로 여기면 안 됩니다. 쁘리앙카도 여기 와서 봉사할 때 오빠가 가장 크게 화를 낸 것은 봉사하는 것 자체를 두고 그런 게 아니에요. 브라만인데 천민 아이들 목욕시켜주고 밥 먹여주면 집안 체면이 뭐가 되냐며 화를 내고 난리를 피운 거예요. 계급과 관련된 건 좋은 문화는 아니니까 굳이 우리가 따를 건 아니에요. 그렇다고 그걸 우리가 막 나서서 어떻게 할 것도 아닙니다. 교육을 받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스스로 변화되어 가는 거예요. 

 

 

음식 문화를 비롯한 다른 문화도 함부로 다루지 않아야 해요. 생활을 같이 하려면 서로 존중해야 하잖아요. 우리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여기서 살면 우리도 모르게 소위 ‘갑질’을 하게 되어 있어요. 모르게 생겨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항상 유의해서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평등하게 한다며 업무를 제대로 진행시키지 않거나 하면 안 돼요. 업무는 엄격하게 원칙대로 진행하되 나머지는 배려하고 조심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문화 존중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스님이 이렇게 강조한 것은 그만큼 우리가 이곳에서 간과하기 쉽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어서 아침 8시 30분부터는 스님과 인도인 활동가들의 수련이 시작되었습니다. 인도인 활동가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포함해 부처님에 대해, 학교 운영에 대해, 마을 개발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고 하루 종일 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풍성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우선 스님은 어제 도보로 전정각산에서 보드가야까지 다녀오면서 시간이 부족해 보드가야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못했다며 그 부분부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어제 보드가야 지역에서 부처님과 관련된 이야기를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보드가야 자체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못 했어요. 그래서 오늘 보드가야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수자타의 공양을 받아 건강을 회복하시고 수행에 대해서도 중도를 발견하셨기에 이제는 좀 더 집중해서 정진을 할 생각이었습니다. 네이란자라강을 건너서 강 서편으로 가니 한 그루 큰 핍팔라나무(보리수)가 있는데 아주 그늘이 좋았어요. 부처님은 이곳에서 정진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마침 옆에서 어떤 목동이 풀을 베고 있었습니다. 풀이름을 물어보니 ‘쿠스’라고 해서 그걸 한 아름 얻어다가 나무 밑에 깔았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핍팔라나무를 서쪽으로 등지고 동쪽을 바라보고 앉으셨어요. 우선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코끝에 집중해서 들숨을 들숨으로 알아차리고 날숨을 날숨으로 알아차렸습니다. 바깥의 소리에도 신경 쓰지 않고, 몸의 어떤 감각에도 신경 쓰지 않고, 머릿속에서 과거의 생각이나 미래의 걱정 같은 것도 모두 내려놓고, 다만 코끝에 마음을 집중해서 숨이 들어오고 숨이 나가는 자연 상태의 호흡에만 깨어 있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앞으로 어디를 가든, 언제든, 자리를 잡고 앉아서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한 후에 눈을 지그시 감고 마음을 코끝에 딱 모아서 숨이 들어가고 숨이 나오는 것을 다만 알아차리는 연습을 하세요. 그러면 시간이 아침이든 점심이든 저녁이든 관계없이, 장소가 보드가야든 둥게스와리든 한국이든 미국이든 관계없이 다만 살아 있는 한 생명의 호흡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조용히 명상에 들었습니다. 긴장하지도 않고, 나태하지도 않고, 졸지도 않고, 이런저런 생각도 하지 않고, 다만 호흡에 깨어있었습니다. 편안한 가운데 아주 분명한 알아차림을 유지했어요. 이게 말이 쉽지, 우리가 해보면 잘 안 됩니다. 졸거나, 머릿속에서 옛날 생각이 자꾸 떠오르거나, 미래의 이런 저런 생각이 들거나, 몸의 감각에 신경을 쓰거나, 바깥의 소리에 신경을 쓰거나 해서 집중이 잘 안 됩니다. 또 집중을 하려고 신경을 곤두세우면 몸과 마음이 긴장됩니다. 긴장이 된다는 것은 편안한 상태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게 말은 쉽지만 실제로 해보면 우리는 이렇게 혹은 저렇게 치우치기가 쉽습니다. 

 

명상 이야기는 지금 길게 하기 어려우니 다음에 할게요. 어쨌든 부처님은 그렇게 깊이 정진을 할 때 이런 마음을 가졌습니다. 

 

‘내가 이곳에서 깨달음을 얻기 전까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겠다.’

 

그렇게 정진에 들어가서 1주가 지나고, 2주가 지나고, 3주가 지나고, 4주가 지나고, 이렇게 7주 가까이가 되었어요. 그 때 마음속에서 어떤 번뇌가 일어났는데, 그것을 경전에서는 ‘마왕의 유혹’이라고 표현했어요. 첫째, 마왕이 세 딸에게 명령합니다. ‘저놈이 지금 욕망을 버리려고 하니 저놈의 욕망을 부추겨서 수행을 포기하도록 만들어라.’ 그래서 아름다운 세 신녀가 부처님 앞에 나타난 거예요. 부처님 앞에서 춤을 추면서 ‘고타마여, 우리의 아름다운 몸을 보소서. 젊을 때 오늘같이 따뜻한 봄날에 젊음을 만끽하는 게 좋소. 이렇게 수행을 하다가 죽어버리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소?’ 이렇게 앞에서 유혹했습니다. 여러분들 같았으면 수행이고 뭐고 포기하고 갔겠죠?(모두 큰 웃음)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이미 모든 욕망으로부터 떠났기 때문에 가만히 그들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잘 채색된 항아리에 똥만 가득한 것들아!’(모두 웃음). 

 

잘 채색된 항아리라는 것은 욕망이 충족되었을 때 얻어지는 즐거움을 말합니다. 안에 똥만 가득하다는 것은 그 욕망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 우리에게는 괴로움이 온다는 것을 말해요. 얼른 보면 즐거움 같지만 사실은 그게 괴로움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세상에는 괴로움과 즐거움이 있는데, 우리의 욕망이 충족되면 즐거움이 생기고 충족되지 않으면 괴로움이 생깁니다. 세상이라는 것은 우리 바람대로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으니까 괴로웠다가 즐거웠다가 괴로웠다가 즐거웠다가 할 수밖에 없어요. 

 

이것을 불교에서는 윤회라고 합니다. 힌두교에서는 태어나고 죽고 태어나고 죽고 하며 돌고 도는 것을 윤회라고 해요. 그러나 부처님은 그런 나고 죽는 것의 반복이 아니라 괴로움과 즐거움이 반복되며 돌고 도는 것을 윤회라고 해요. 우리가 즐거움을 추구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자동으로 따라와서 돌고 돌 수밖에 없는 겁니다. 

 

우리가 바라는 즐거움이라는 것이 사실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반드시 괴로움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즐거움과 괴로움이 따로 있다고 생각해서 괴로움은 없고 즐거움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즐거움만 100퍼센트 있는 게 아까 말한 자재천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즐거움만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괴로움과 즐거움은 동전의 양면처럼 늘 같이 돌게 되어 있어요. 우리는 즐거움을 추구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항상 함께 따른다는 거예요. 그러니 즐거움이 곧 괴로움이라는 걸 꿰뚫어 알아버리는 게 ‘일체가 고(苦)’인 줄 아는 겁니다. 

 

 

너무 어려운 이야기인가요?(모두 웃음) 이게 사실은 수행의 핵심이에요. ‘야, 이 채색한 항아리에 똥만 가득한 것들아!’ 이 말을 다시 생각해 봅시다. 아름다움을 즐거움이라고 한다면, 더럽다는 것은 괴로움을 상징합니다. 그러니까 즐거움이 곧 괴로움이라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붓다는 즐거움이 괴로움인 줄 알기 때문에 즐거움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손가락으로 여인들을 가리키자 아름다운 여인들이 갑자기 노파로 바뀌어 버렸어요. 그러자 그들이 부끄러워서 도망가버렸습니다. 

 

그건 뭘 의미할까요? 젊고 아름다운 여인은 즐거움을, 늙고 추한 노파는 괴로움을 말합니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니까 아름다운 여인이 노파로 바뀌었다는 것은 즐거움이 곧 괴로움이라는 것을 꿰뚫어 알았다는 거예요. 다시 말해 즐거움이 부처님을 유혹할 수 없다는 이야기예요. 부처님의 내면에 있던 욕망의 뿌리가 그때 완전히 뽑혀 없어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모든 게 우리 동네에서 있었던 옛날 이야기입니다. 둥게스와리, 보드가야, 가야 디스트릭트, 비하르주, 힌두스탄 평원, 이런 걸 우리가 알아야 해요. 너무 많이 공부했나요? 머리가 아프죠?”

 

“아니오, 재미있어요.”(모두 웃음) 

 

이 외에도 스님은 법당 안쪽 벽면에 그려진 부처님의 일생에 대해서도 주욱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법문을 마치면서는 앞으로 스님처럼 이렇게 붓다 담마를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인도인 활동가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일러주었습니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여러분들이 지금은 잘 모르지만 5년이나 10년 뒤에는 그 중요성을 알게 될 거예요. 여러분들이 여기서 10년까지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10년 이후부터는 법을 전하는 ‘담마 티처’가 되어야 해요. 외국인들이 오면 여기 숲에서 강의하고, 명상도 가르치고, 옷도 수행자 옷을 갖춰 입고 구루 역할을 해야죠.(모두 웃음) 

 

 

몸만 치료해주지 말고 마음도 치료해줘야 합니다. 지금은 몸이 아픈 사람이 많지만 앞으로 경제가 좋아지면 잘 사는데도 불구하고 마음이 행복하지 못한 사람이 인도에도 많아질 겁니다. 마음 치료가 큰 과제가 될 거예요. 앞으로 10년, 20년 후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될 때를 여러분들이 대비해서, 지금 20대니까 40살이 넘으면 그런 사람이 돼야 해요. 머리도 허옇고, 수염도 허옇고, 옷도 수행자복을 입고, 나무 밑에서 이렇게 법문을 하면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 감동해서 귀의한다고 할 거예요. 돈 벌려고 막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돈이 들어와요.(모두 웃음) 

 


 

그러니 어디 가서 돈 벌려고 그렇게 너무 애쓰지 마세요. 지금은 조금 가난해도 여기에 좀 오래 있으면 달라집니다. 지금은 아이들을 가르치지만, 10년쯤 뒤에는 한국 같은 데 가서 불교 공부 더 하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서 붓다 담마를 가르쳐야 합니다. ‘내 친구는 취직해서 5,000루피 버는데, 10,000루피 버는데’ 이렇게 생각하면 여기 일 못해요. 지금 조금 어려워도 우리의 미래를 생각해야 합니다. 알았죠?”

 

“예스!”(모두 웃음, 박수)

 

스님의 이야기에 모두 가슴을 설레여 하며 크게 박수를 쳤습니다. 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조금씩 변해가는 인도인 활동가들의 모습은 많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어서 점심 식사 시간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수련에 참여하러 들어왔기 때문에 점심은 간단히 라면을 끓여 먹어습니다. 아침에 발우공양 때 스님이 말씀하셨듯이 “오늘은 라면을 먹을 건데 소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채식 라면이니 마음껏 드세요” 라고 알려주자, 인도인 활동가들은 즐겁게 라면을 먹었습니다. 

 


 

 

오후에는 학교 운영과 마을 개발 전반에 대해서 함께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떻게 힘을 모아 학교를 더 나은 모습으로 만들어갈지, 마을 개발은 우선 무엇부터 시작해 볼 수 있을지 다양한 아이디어가 제안 되었고, 스님은 각각에 대해 때론 더 큰 그림을 그려주기도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특히 둥게스와리가 어떤 변화를 겪게 될지에 대해서 말씀하신 부분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이곳은 사실 다 공원으로 만들어야 해요. 지금은 난장판이잖아요. 여기 오면 정말로 조용히 명상하고 담마 공부하고 갈 수 있도록 해야 해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땅을 자꾸 외부 사람에게 팔아버리면 나중에 이걸 전부 장사꾼이 차지해버리게 됩니다. 땅값이 오르면 좋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비싸져 버리면 우리가 도로 살 수가 없으니까요. 우리가 팔 수도 있고 살 수도 있어야 하는데, 땅값이 너무 높아져버리면 팔 때는 좋지만 다시 사는 건 불가능해집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20년 전부터 했는데 제 말이 벌써 현실화되기 시작하고 있어요. 

 

그래서 여기 마을마다 땅을 많이는 못 사더라도 값 쌀 때 우리가 조금씩이라도 사놔야 해요. 앞으로 우리가 협동조합 같은 걸 만들면 창고도 지어야 하고 사무실도 만들어야 해요. 마련해둔 땅이 있어야 시설도 짓고 우리가 새마을운동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리가 생기고 외부 사람이 자꾸 들어오면 이 지역은 발전할지 몰라도 그 주인이 우리가 아니라 외부 사람입니다. 주인이 우리가 아니면 발전을 해도 우리에게 이익이 오기 어렵고, 우리는 오히려 쫓겨나게 됩니다.”

 

스님의 우려에 모두가 공감을 했습니다. 이렇게 둥게스와리 마을의 미래에 대해 늘 걱정하고 챙겨주는 스님이 있어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외에도 인도인 활동가들은 평소 궁금하던 것을 마음껏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대화는 오후 3시까지 계속되었습니다. 

 


 

특히 얼마 전 주니어 교사들 중에 한 명이 노트북을 훔쳐가는 일이 발생해서 주니어 교사들 전체를 학교를 그만두게 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러다보니 교사 수가 부족해져서 남은 스텝들이 수업을 대신 하느라 과부하가 되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 오랜 시간 토론이 있었습니다. 

 

더 이야기할 주제가 많았는데 마쳐야 할 시간이 되어서 내일 아침 일찍 한번 더 모여서 마저 이야기를 하기로 하고 모두 운동장으로 나갔습니다. 

 

오후 3시에는 옆 마을인 두르가푸르와 자그디스푸르에서 청년들과 함께 축구 시합을 했습니다. 며칠 전부터 스님이 ‘학교 스텝팀 vs 마을 청년팀’ 이렇게 축구 시합을 하면 누가 이기냐고 물었을 때 서로 자신들이 이긴다고 자신했기 때문에, 오늘은 친목을 도모할 겸 실제 경기를 해보기로 한 것입니다. 

 


 

양팀 선수들이 모두 입장하자 스님이 공을 들고 와서 서로 인사시킨 후 너무 과열 경쟁을 하지 말 것을 당부했습니다. 자칫하면 싸움이 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인도인 스텝들에게는 스님이 ‘저주는 것이 더 낫다’고 귀뜸해 주기도 했지만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모두 이기려고 각오를 다지는 모습이었습니다. 스님이 하늘 위로 공을 던지자 드디어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서로 실력이 비슷해서 전반전과 후반전 모두 팽팽한 접전을 벌였는데, 결국은 1대 1로 비긴 상태에서 경기를 마쳤습니다. 

 

 

스님은 양팀을 모두 격려해주며 참가한 선수들 모두에게 비누 세트를 선물로 하나씩 나눠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내년에는 상품을 더욱 푸짐하게 준비할 테니 더욱 재미있게 해보자”며 환하게 웃음을 지었습니다. 청년들도 함께 즐거워하면서 1년 동안 열심히 연습하겠다는 다짐을 보였습니다. 둥게스와리의 드림팀이 구성되면 이제 가야지역 전체 리그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두게 되는 날이 곧 올 것 같습니다. 

 

 

그리고 친선 경기를 한 기념으로 다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오늘 축구 시합으로 인해 학교 스텝들과 마을 청년들은 한층 더 가까운 사이가 된 것 같습니다. 

 

 

축구 경기가 끝나고 다시 법당에 모여 잠깐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은 주니어 교사들의 복귀 문제에 대해 내일 아침 일찍 한번 더 모여서 더 의논하자고 한 후 인도인 활동가들 모두에게 선물과 용돈을 나눠주었습니다. 

 

 

저녁 7시부터는 한국인 활동가 전체가 모여서 회의를 했습니다. 내일 스님이 한국으로 돌아가시기 때문에 오늘은 각 파트별로 건의할 점을 모두 이야기하면서 전체적으로 크게 결정할 것들을 의논했습니다. 많은 논의 사항들이 제기 되면서 회의는 3시간 30분 동안이나 계속 되었습니다. 

 

 

내일은 오전 8시부터 9시 30분까지 인도인 활동가들과 한 차례 더 모임을 가진 후 10시에는 수자타아카데미를 출발해 보드가야에 들러 지역 인사 분들을 찾아뵌 후 오후 2시 비행기로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내일을 끝으로 스님은 31일 동안의 인도, 스리랑카 방문 일정을 모두 마치게 됩니다. 

 

▼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는 인도 불가촉 천민 마을 둥게스와리 아이들을 위해 수자타아카데미를 설립하고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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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영

고2딸을둔 40대주부입니다 공부안하고 노는일에 3년째 빠져있고 외박은 밥먹듯이 합니다 남편이없어 혼자감당하기가 힘들어 이제는제가 포기하려구합니다

2016-06-13 09:45:54

정현

스님 감사합니다. 바쁜 일정 모두 소화하시느라 애 많이 쓰셨습니다. Welcome to Korea! :)

2016-02-09 11:39:11

박노화

좋은일 많이하시는 스님 존경 합니다 항상건강하세요 고맙습니다 ~ ~ ~

2016-02-08 06:3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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