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7.7 농사, 정토불교대학 인간 붓다 11강
“상대가 나에게 욕을 할 때 대응 방법”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도 연일 폭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더위를 피해 아침 일찍 농사일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텃밭에서 울력을 했습니다. 이른 봄부터 지금까지 잘 먹었던 상추, 들깨는 이제 억세지고 꽃대가 올라올 때가 되었습니다. 상추, 들깨를 다 뽑고 새로 심기로 했습니다. 뿌리째 뽑지 않고 낫으로 먼저 잎을 베고 난 다음 뿌리를 뽑았습니다. 이렇게 하면 잎에 흙이 튀지 않기 때문에 많이 씻어낼 필요가 없습니다.



뿌리까지 다 뽑고 나서 거름을 주고 밭을 뒤엎어 두었습니다. 사용했던 비닐은 다시 쓰기 위해 잘 말려두었습니다.

“땅을 뒤엎어 두었다가 오후에 채소를 심읍시다. 그동안 햇볕에 작은 풀뿌리들이 다 마를 거예요.”



다른 밭에 상추, 치커리, 쑥갓도 싹 뽑고 땅에 거름을 주고 뒤엎어 놓았습니다.




뿌리는 거름으로 만들고, 잎은 먹을 수 있도록 다듬었습니다. 수확량이 많아서 서울 공동체에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더덕밭에 다 자란 들깨도 뽑았습니다. 더덕 싹이 늦게 올라와서 들깨 모종을 심어두었는데, 들깨를 뽑고 나니 더덕 싹이 많이 올라와있었습니다.

“이제야 더덕밭이 되었네요.”


채소밭을 정리하면서 제 알아서 자란 맨드라미는 화분에 옮겨 심어주었습니다.


채소밭 정리를 하고 나니 울력을 마칠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아이고,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요. 밑밭에 수확을 해야 하는데, 얼른 다녀옵시다.”

스님은 빠르게 밑 밭으로 갔습니다.

밑밭에 도착하니 입구에서부터 토실토실 알맞게 자란 애호박이 보였습니다.

“이틀만 늦어도 작물들이 너무 익어 버려요. 제 때 따주어야 해요.”

밭을 돌며 다 자란 호박, 가지, 오이, 토마토를 땄습니다.


오늘은 특히 토마토가 많이 익어있었습니다.

“토마토는 대중 전체가 먹을 양이 되겠네요.”


늙은 호박은 잎은 무성한데 열매는 적었습니다. 수꽃을 꺾어 수정을 시켜주었습니다.

두 바구니 가득 채소를 수확하고 울력을 마쳤습니다.

낮에는 불볕더위를 피해 실내에서 업무를 보았습니다. 폭염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데다가 습도가 높아서 마치 인도에 있는 기분이 들 정도로 더위가 정말 심했습니다.

햇살이 점점 가시는 오후 5시부터 다시 울력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아침에 거름을 준 텃밭에 땅 아래까지 젖도록 물을 흠뻑 주었습니다.

적상추 씨앗을 상토와 잘 버무린 다음 호미로 골을 파고 씨앗을 솔솔 뿌려주었습니다. 흙을 덮고 물뿌리개로 물을 살살 뿌렸습니다.




밭 한 뙈기에는 고수를 심고 짚을 덮어주었습니다. 짚은 비닐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풀이 나는 것도 막고 수분도 머금어줍니다.




고수 밭 옆에는 말려 두었던 비닐을 다시 깔고 농사팀이 키우고 남은 상추 모종과 적상추 씨앗을 심었습니다.




“아얏”

모종을 옮겨 심는데 굶주렸던 모기들이 달려 나와 스님의 손이며 엉덩이며 온몸을 물었습니다.

“아이고, 간지러워서 안 되겠네요.”

스님은 모기향을 옆에 피워놓고 계속 모종을 심었습니다.

모종을 다 심고 물을 충분히 준 후 상토를 덮어주었습니다.



키가 높이 자란 들깨 모종도 옮겨 심고 물을 듬뿍 주었습니다.


남은 밭에는 치커리 세 줄, 열무 세 줄, 얼갈이배추 세 줄을 심고 물을 준 후 짚으로 덮어두었습니다.




어느덧 7시가 넘었습니다. 사용한 도구를 씻어 제자리에 둔 후 울력을 마쳤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8시부터는 정토불교대학 인간 붓다 제11강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이 화상회의 방에 모두 입장하자 먼저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연일 폭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요즘 농사일을 하는데, 아침저녁으로만 밖에 나가서 조금 일을 할 수 있고 낮에는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불볕더위가 심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지냈나요?”

지난 수업에서는 부처님이 교만한 사람을 어떻게 교화했고, 비굴한 사람을 어떻게 당당하게 해 주었는지에 대한 강의가 있었습니다. 오늘은 부처님이 남으로부터 비난을 받을 때 어떻게 대응을 했는지에 대한 강의가 이어졌습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브라만이 살고 있는 집에 걸식을 갔습니다. 수행자가 걸식을 갈 때는, 이 집은 부자니까 가고 저 집은 가난하니까 안 간다든지, 부잣집이니까 안 가고 가난한 집이니까 간다든지, 저 집은 비난하니까 안 가고 저 집은 환영하니까 간다든지, 이렇게 분별하면 안 됩니다. 걸식은 어떤 집이든 관계없이 차례대로 가야 합니다.

마침 부처님께서 걸식을 간 집이 스스로 신분이 고귀하다고 생각하는 브라만의 집이었습니다. 밥을 먹고 있던 브라만은 대문 앞에 서 있는 부처님을 보고 욕을 했습니다. 수행자가 걸식을 오면 보통은 먹던 음식의 일부를 한 숟가락이라도 주는 것이 예의인데, 이 사람은 기분이 나빠서 ‘사대육신이 멀쩡한 사람이 왜 일을 안 하고 얻어먹느냐’ 하고 욕을 했어요.

상대가 나에게 욕을 할 때 대응 방법

누구나 욕을 들으면 기분이 나쁘죠. 저 같으면 한 마디 할 것 같아요. ‘안 주면 되지 뭐 욕까지 할 거 있냐’ 이렇게 대꾸를 했을 겁니다. 그럼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이 ‘욕을 해서 죄송합니다’ 하고 사과를 할까요? 아니겠죠. ‘왜 아침부터 남의 집에 밥을 얻어먹으러 오냐. 얻어먹으러 오니까 내가 욕을 하지’ 이럴 것 아니에요. 그럼 제가 또 말하겠죠.

‘내가 언제 밥을 달라고 그랬냐. 그냥 여기 와서 서 있었지.’
‘왜 아침부터 남의 집 앞에 와서 서 있냐?’
‘집 앞에 서 있지도 못하냐?’

이렇게 입씨름을 하게 되었을 겁니다. 그럼 옆에서 다른 사람이 보고 이렇게 생각할 거예요.

‘저 두 사람은 오늘 처음 만났는데 저렇게 욕을 하고 싸우는 걸 보니 전생에 분명히 원수였을 거야. 그러니까 지금 또 저렇게 만나자마자 원수가 되지. 다음 생에도 또 원수로 만나겠네.’

이렇게 삼생이 악연이라고 평가가 됩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우리처럼 하지 않았어요. 브라만이 욕을 하자 그냥 빙긋이 웃으셨어요. 브라만은 ‘이번에는 왜 웃냐’ 하고 또 욕을 했어요. 그러자 부처님이 화제를 바꿔서 물었습니다.

‘가끔 당신 집에 손님이 옵니까?’
‘오지. 그런데 그건 왜 물어?’
‘올 때 선물을 가져올 때도 있습니까?’
‘있지.’
‘그 선물을 당신이 싫다고 안 받으면 누구 거요?’
‘그야 가져온 사람 거지. 그런데 그 얘기는 왜 해?’
‘당신이 나한테 욕을 선물했는데, 내가 웃으면서 받지 않으면 그 욕은 누구 거요?’

그때서야 브라만이 크게 깨우쳤습니다. 그래서 ‘죄송합니다. 어서 오십시오’ 하고 부처님을 집 안으로 모셔서 공양을 대접했습니다. 옆에서 이 모습을 본 사람은 어떻겠어요?

‘저 두 사람은 처음 만났는데 집 안으로 모셔서 음식을 대접하는 걸 보니 전생에 선연이었겠다. 그러니 이 생에 만나자마자 공양을 올리고 법문을 듣는구나. 그러니까 저 사람은 다음 생에도 저렇게 좋은 인연으로 만나겠다.’

이렇게 평가를 하겠죠. 그래서 상대가 욕을 할 때 한 번 웃으면 삼생의 업이 녹는다는 말이 있어요. 전생에 죄가 있어서 이 생에 원수가 되고, 전생에 원수라서 이 생에 원수가 되고, 전생에 좋은 인연이 있어서 지금 좋은 인연이 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상대가 나한테 욕을 할 때 내가 같이 욕을 하면 삼생이 악연이 되고, 상대가 욕을 하는데도 내가 한 번 빙긋이 웃으면 삼생이 선연이 된다는 거예요.

부처가 되는 길은 어렵지 않습니다. 상대가 욕을 할 때 거기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한 번 웃으면 돼요. 아주 쉽죠? 그런데 우리는 그럴 때 한 번 웃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누가 나한테 욕을 하면 마음이 이렇게 가죠.

‘지금은 부처가 되는 것도 싫다. 욕하는 게 더 낫다’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고 우리 모두가 지금 각자 이렇게 사는 것은 하나님이 벌을 줘서도 아니고, 전생에 죄를 지어서도 아니고, 사주팔자를 잘 못 타고난 것도 아니에요. 자기가 순간순간 잘한다고 한 행동의 결과로 여기까지 온 거예요. 나를 여기까지 오도록 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 때는 욕하는 게 낫다’, ‘이 때는 성내는 게 낫다’ 이런 자기 판단에 의해서 여기까지 온 거예요. 자기 운명은 자기가 만들어 가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 내 운명을 이렇게 만들어놓고 남 핑계를 대고 남 탓을 합니다.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 나라 저 나라로 쫓겨 다니느냐

욕이나 비난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부처님과 그 제자들을 아예 배척한 경우도 있었어요. 부처님 당시에 아주 아름다운 처녀가 있었습니다. 워낙 아름다워서 각 나라의 왕자들과 장자의 아들들이 서로 혼인을 하려고 청혼을 했어요. 장자는 지금 말로 하면 재벌입니다. 청혼한 사람들이 전부 내로라하는 집안의 아들들이지만, 이 여성이 보기에는 다 고만고만하게 보여서 이 중에 누구를 선택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계속 결정을 못 하고 나이가 혼기를 넘어가려고 하는 즈음에 이르렀는데, 이 도시에 부처님이 오시게 되었습니다.

이 여인은 부처님이 훌륭하시다는 얘기를 듣고, 직접 가서 설법을 듣고는 푹 빠졌습니다. 부처님을 보니까 진짜 남자 중에 남자이고 장부 중에 장부였어요. 지금까지 자기가 만난 내로라하는 남자들도 부처님과는 비교가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혼 같은 건 잊어버리고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봉사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여인은, 얼굴도 못 생겼고 신분도 낮고 나이도 많아서 소위 말하면 자기가 볼 때는 무시할 만한 어떤 여성에게 부처님이 자기한테 하는 것과 똑같은 태도로 대하시는 것을 보고 마음이 상했습니다. 자기는 지금까지 부처님이 자기한테만 특별히 잘해주신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까 하찮은 사람한테도 자기와 똑같이 친절하게 대하시는 거예요. 부처님이 자기에게 잘해주긴 하지만 그것이 특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동안 부처님이 자신에게 실망할 만한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는데도 마음이 섭섭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법문 듣는 재미도 떨어져서 절에 가는 횟수도 점점 줄어들던 차에 이웃 나라 왕자가 청혼을 해서 시집을 갔습니다. 부처님은 이런 사실을 모르셨겠죠. 그리고 몇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부처님과 제자들은 이 나라 저 나라로 옮겨 다니는 유행을 했는데, 어느 날은 왕비가 된 그 여인이 있는 나라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그 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감동해서 부처님을 칭송하게 됐습니다. 결국 왕비도 이 사실을 알게 됐어요. 왕비가 어느 날 궁성 내에서 산책을 하다가, 궁녀들 몇 명이 모여서 재미있게 얘기하는 것을 보고 무슨 얘기인가 궁금해서 가까이 가 뒤에서 들어봤어요. 궁녀 한 사람이 궁 밖에 나갔다가 부처님을 만나서 설법을 듣고는 감동해서, 자기가 들은 얘기를 궁녀들에게 하는 거였어요. 궁녀들은 그 얘기를 귀 기울여 듣고 또 감동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왕비가 얘기를 들어보니까 자기가 옛날에 존경하고 따랐던 부처님 얘기였어요. 자기가 시집오고 얼마 있다가 왕이 죽자, 왕자였던 자기 남편이 새로운 왕이 되었고 자기는 왕비가 되어서 아무 부러울 것 없이 잘 살고 있었는데, 궁 안에서 이런 일이 생긴 거예요.

왕비는 기분이 나빴어요. 한 때는 부처님을 완전히 자기 것처럼 여기면서 존경하고 시봉을 했는데, 저 하찮은 궁녀가 부처님을 마치 자기 사람인 것처럼 칭찬하는 것이 싫었어요. 그래서 남편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이 궁 안에 주인이 누굽니까?’
‘누구긴 누구요. 나지.’
‘제가 볼 때는 당신이 주인이 아닌 것 같아요.’
‘무슨 소리요?’
‘궁녀들의 마음이 당신한테 있지 않고, 성 밖에 있는 어떤 수행자에게 향해 있습니다.’

왕도 기분이 팍 나빠져서 물었어요.

‘도대체 무슨 소리요?’
‘궁녀들이 몸은 다 여기 두고 있지만, 마음은 궁 밖에 있는 어떤 수행자에게 가 있어서 전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좋아합니다. 그러니 이 사문의 법문을 듣지 못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요?’

왕은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설법을 못 듣게 하고, 더 나아가서는 공양 올리는 것까지 금지시켰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부처님의 설법도 듣지 말고 부처님에게 공양도 올리지 말라고 국가에서 명령을 내린 거예요. 그러자 부처님을 환대하고 공양을 올리던 사람들도 갑자기 냉소적이 되었습니다. 아난다가 이 사실을 알고 부처님께 청했습니다.

‘이 나라의 왕이 부처님과 수행자들을 배척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 나라를 떠나서 다른 나라로 가면 어떻겠습니까?’

그러자 부처님께서 웃으면서 물었습니다.

‘아난다여, 만약에 우리가 다른 나라로 갔는데 그 나라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겠소?’
‘그럼 또 다른 나라로 가죠.’

‘아난다여, 혹시 그 나라에서도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그럼 또 다른 나라로 가죠.’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했습니다.

‘아난다여, 너는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 나라 저 나라로 쫓겨 다니느냐? 그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문제이고, 나는 거기에 영향을 받지 않고 내 갈 길을 간다.’

이렇게 부처님은 반대하거나 비난하는 것에 전연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그렇다고 두려워하거나 저항하지도 않으셨고, 맞대응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건 그들의 문제니까 그들이 하는 대로 두고, 나는 내가 할 일을 한다는 자세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을 비난하거나 배척해도 부처님은 거기에 응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사건들을 통해서 부처님의 명성은 더욱더 빛이 났고, 결과적으로는 교단의 결속력이 더욱더 커졌습니다. 이런 사건들은 당시에 부처님과 승단에 많은 피해를 주었지만, 부처님은 이런 사건에 전혀 흔들림이 없었고, 오히려 그것이 전화위복이 되어서 불법이 더욱더 널리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부처님과 출가수행자들의 명성은 더욱 높아져 갔습니다.

상대가 나에게 쓰레기를 주었다면

남의 비난을 들었을 때 여여하게 있기가 쉽지 않죠. 살다 보면 터무니없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억울하고 분하고 잠 못 이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서로 싸우고 원수가 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그들이 준 욕설에 내가 응대하는 것은 그 선물을 받는 것과 같고, 내가 거기에 응대하지 않는 것은 그 선물을 돌려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이 내게 욕설을 했다는 것은 그들이 나한테 말 쓰레기를 준 것과 같고, 그 쓰레기를 주었다고 그들을 욕하는 것은 그 쓰레기를 집 안에 간직하고 있으면서 때때로 열어보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보통 오늘 우리들의 인생입니다. 그러나 그 선물이 말의 쓰레기라면, 첫째, 받지를 말든지, 둘째, 받더라도 열어보니 쓰레기이면 쓰레기통에 버리면 됩니다. 그걸 애지중지 간직하고 매일 열어보면서 ‘이 나쁜 놈! 나한테 쓰레기를 주다니’ 이렇게 열을 내는 것은 바보 같은 짓입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예요. 누군가가 나를 비난하거나 욕을 하면 그 쓰레기를 받지 말고 돌려주든지, 이미 받았으면 쓰레기통에 넣어버리고 내 갈 길을 가면 됩니다. 오늘 부처님의 이야기를 통해 이런 교훈을 얻으면 좋겠습니다.”

이 외에도 부처님의 다양한 교화 사례가 이어졌습니다. 자신의 가족과 제자가 출가하자 대중들이 노래를 지어서 상가를 비난한 이야기, 부처님을 모함하려고 거짓 임신을 한 여인, 사람을 살해하고 누명을 씌운 이교도, 반역을 일으키고 부처님을 살해하고자 한 제자 등 부처님과 승가 공동체가 모함과 비난을 극복해 낸 여러 이야기들이 마치 영화처럼 주욱 펼쳐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이 이번 주 수행 연습 과제를 내어준 후 생방송 수업을 마쳤습니다. 학생들은 교실별로 화상회의 방에 모여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내일도 아침에 농사일을 하고, 낮에는 업무를 보고, 해 질 녘에는 농사일을 하고, 저녁에는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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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

감사합니다
쓰레기 받지도
지니지도 않겠습니다
쓰레기통에 버리겠습니다

2022-07-21 08:34:02

김영란

쓰레기처리를 잘 하도록하게습니다. 감사합니다.

2022-07-18 13:34:36

구름이가린달빛

친언니에게 입에도 담지 못할 폭언을 40년동안 들었습니다. 더이상은 안되겠다 싶어 고소를 하기로 마음 먹었는데...글을 읽다보니 폭언에서 벗어날수 있는 방법이 뭘까 다시 생각해봅니다..가족에게 받은 폭언은 마음도 뇌도 다치게 했습니다. 문자로 음성으로 증거가 남아있는데도 그런말한적이 없다 그러는 가족을 보면 두번 상처받지만..

2022-07-18 02:2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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