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7.5 정토불교대학 인간 붓다 제10강
“지금 들어도 정말 감동적인 2600년 전 이야기”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연일 폭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도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농사일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텃밭에 먹기 좋게 자란 부추를 싹 벴습니다. 수확이 늦어지면 억세지기 때문에 때를 맞춰 수확해야 합니다. 이렇게 베고 나면 다시 보드라운 부추가 자라나는 효자 작물입니다.



부추를 다 베고 논으로 나갔습니다. 오늘 울력 장소는 꽃밭논입니다.

오늘은 두북 공동체 대중과 함께 피를 뽑았습니다. 양쪽 가장자리에서 각각 피를 뽑았습니다. 이 논에는 물을 다 빼서 피를 뽑을 때 흙이 많이 딸려오지 않았습니다. 또 흙을 물에 헹굴 필요도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물이 찰랑거리는 논에서 뽑는 것보다 쉬운 듯했으나, 딱딱한 땅에서 피를 뽑으니 팔이 더 아팠습니다.

“아니 이 논은 피가 별로 없는 줄 알았더니 여기도 피가 정말 많네요.”

어느새 스님의 작업복은 땀으로 흠뻑 젖었습니다.

스님과 행자가 지나가자 초록색으로 빽빽하던 논 사이에 흙이 보였습니다.


한 줄 끝까지 가고 피 뽑기를 마쳤습니다.

“밑밭에 수확을 해야 해서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겠어요. 며칠간 매일 해야겠네요.”

논 옆 수로에서 장화를 씻고 이번에는 밭으로 갔습니다.

먼저 아랫밭에 들러 옮겨 심은 들깨 모종이 잘 살아있는지 확인했습니다.

비가 올 때 심은 들깨 모종은 잘 크고 있었지만, 옮겨 심고 나서 해가 난 들깨 모종은 타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비가 올 때 다시 모종을 옮겨 심어야겠어요. 일기예보를 보고 작업합시다.”

밑밭에 가서 다 자란 작물을 수확했습니다.

“하루만 늦어도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려요. 때를 잘 맞춰서 수확해야 해요.”

무성한 잎 사이에서 잘 익은 가지, 오이, 호박, 토마토를 땄습니다.

밭을 한 바퀴 돌고 나니 채소 두 바구니가 나왔습니다.


농사일을 마치자 낮 기온이 35도를 오르내릴 정도로 햇살이 뜨거워졌습니다. 뙤약볕을 피해 낮에는 실내에서 업무를 보았습니다.

해가 저물 무렵 5시가 넘어서 스님은 다시 작업복을 입고 오후 울력을 시작했습니다.

비가 오면 들깨 모종을 심으려고 했지만, 비가 오지 않아 국화를 삽목했습니다. 무성해진 국화 줄기를 따와 다듬은 후 흙을 체에 걸러 모종판에 담고 국화 줄기를 하나씩 꽂았습니다. 두 시간 동안 3백여 개를 삽목했습니다. 국화 모종판은 그늘에 두고 물을 듬뿍 주었습니다.




울력을 마치고 서둘러 뒷정리를 한 후 방송실로 향했습니다. 저녁 8시부터는 정토불교대학 인간 붓다 제10강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화상회의 방에 학생들이 모두 입장하자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날씨가 많이 덥죠? 연일 폭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태풍이 온다는 예보가 있어서 기온도 떨어지고 비도 올 줄 알았는데, 태풍이 비껴 갔네요. 날이 너무 가물어서 태풍이 오는 것을 반길 정도입니다.

저도 요즘 날씨가 많이 더워서 새벽 녘과 해 질 녘에만 일을 할 수 있고, 그 외 시간에는 땀이 나고 현기증이 나서 일을 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폭염주의보가 내리면 시골에서는 낮에는 일하지 말라고 마을 방송을 합니다. 여러분도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웃음)

이어서 주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부처님이 계급이 높다고 교만한 사람들을 어떻게 깨우쳤는지에 대해 강의를 했다면, 오늘은 부처님이 차별받는 사람들을 교화한 사례에 대한 강의가 이어졌습니다. 스님은 지금 들어도 정말 감동적인 2600년 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부처님은 이미 2600년 전에 그 당시에 차별받는 사람들을 자비롭게 보살피며 그들을 깨우쳤습니다. 차별받는 사람들을 불쌍하게 여긴 것이 아니라 여성이거나 계급이 낮다는 것이 열등한 것이 아님을 깨우치게 해서, 그들이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부처님의 법은 남녀, 신분, 귀천에 관계없이 평등합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이 법은 적용이 될 수 있었습니다. 차별로 인해 고통받던 사람들이 어떻게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었는지 함께 살펴봅시다.

똥군 니이다이의 출가

인도에서 천민은 가촉 천민과 불가촉천민으로 나뉩니다. 가촉 천민은 높은 계급과 접촉이 가능한 천민입니다. 집안일을 하는 하녀나 유모들이 이에 해당하고, 노예 계급인 ‘수드라’에 속했습니다. 비록 천민이긴 하지만 주인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이에 반해 불가촉천민은 계급 밖의 최하층민입니다. 시체를 화장하는 사람, 죽은 소를 처리하는 사람, 똥을 치우는 사람들이 이에 해당하고, 높은 계급과는 아예 접촉이 불가능했습니다. 불가촉천민은 브라만의 그림자만 밟아도 재수 없다는 이유로 죽여도 될 정도로 사람 취급을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사는 곳도 마을의 외곽에 따로 살았습니다. 지금도 인도에는 불가촉천민이 전체 인구의 20% 정도를 차지하고 있고 최하층 계급에 속합니다. 여러분들이 인도에서 윤간을 당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을 텐데, 이때 피해를 입은 여성의 대부분이 불가촉천민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중에 똥을 치우는 사람인 똥꾼은 천민 중에서도 제일 천한 취급을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느 날 부처님이 제자들과 길을 걷고 있었어요. 그때 어떤 사람이 똥지게를 지고 가다가 부처님 일행을 피해 숲길로 돌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마도 그 시대의 수행자는 브라만 출신이거나 적어도 바이샤와 크샤트리아 같이 높은 계급 출신의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똥꾼의 입장에서는 혹시 그들에게 냄새를 풍겨서 괜한 트집이 잡힐까 봐 두려워해서 그들을 피했을 거예요.

경전에 묘사된 바로는, 부처님께서 예지력으로 ‘저 사람은 비록 똥 치우는 일을 하고 있지만 깨우칠 수 있겠다’ 이렇게 파악하시고 숲길을 따라 들어갔다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똥꾼은 부처님과 마주치자 너무 놀라서 넘어지면서 똥물을 뒤집어썼고, 부처님의 옷에는 똥물이 튀었습니다. 당시 인도 사회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더러운 것을 상류층에게 묻혔다고 똥꾼을 죽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똥꾼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하고 부처님에게 빌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오물을 뒤집어쓴 니이다이를 일으켜 세운 후 냇가에 가서 옷을 빨도록 했습니다. 똥꾼은 냇가에 가서 옷을 빨고 돌아왔습니다. 부처님께서 ‘니이다이여, 옷이 어떻게 되었느냐?’ 하고 물으니, 니이다이가 ‘옷이 깨끗해졌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다시 부처님께서 ‘빨기 전에는 어떠했느냐?’ 하고 물으니, 니이다이가 ‘더러웠지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와 같이 본래 더럽거나 깨끗한 것은 없다. 설령 더러워졌다 하더라도 빨면 깨끗해진다. 마찬가지로 본래 귀한 것도 없고, 천한 것도 없다. 그러므로 천하다는 생각을 버리면 너도 해탈할 수가 있느니라.’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똥꾼 니이다이는 깨달음을 얻고 출가를 해서 훌륭한 수행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천민을 교화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어서 스님은 부처님이 바보 주리반특을 깨우친 이야기, 자식 잃은 여인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도록 하게 한 이야기, 유녀 연화색녀가 출가한 이야기, 거문고를 잘 타는 소나가 깨달은 이야기 등 여러 가지 교화 사례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살인자 앙굴리말라가 출가한 이야기가 펼쳐졌습니다.

살인마 앙굴리 말라의 출가

“부처님께서 교화한 사람 중에는 희대의 살인자가 있었습니다. 그 사나이는 사람을 죽이고 손가락을 잘라서 염주를 만들어 목에 걸고 다녔어요. 그래서 손가락이라는 뜻의 ‘앙굴리’와 염주라는 뜻의 ‘말라’를 합쳐 ‘앙굴리 말라’라고 사람들이 불렀습니다. 앙굴리 말라의 출신지는 사위성이었다고 해요. 지금의 파키스탄 지역에 있는 탁실라로 유학을 떠났는데, 100명의 사람을 죽여서 손가락 1000개로 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걸면 살아서 하늘로 승천할 수 있다는 스승의 잘못된 가르침에 세뇌되어 이런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왕의 군대가 그를 잡아보려 했지만 워낙에 괴력을 가진 사나이여서 뜻대로 되지 않았어요. 스승의 잘못된 가르침으로 살인자가 된 앙굴리 말라는 자신의 고향인 사위성에서 100번째 살인을 한 후 하늘로 승천하고자 했습니다. 앙굴리 말라에 대한 소문이 퍼진 사위성에서는 집집마다 방울을 달아서 앙굴리 말라가 나타났다고 누군가 소리치면 방울을 흔들고 문을 닫아 걸기 바빴어요. 이렇게 치안이 혼란스러워지자 군대까지 배치해서 앙굴리 말라를 막으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이를 보다 못한 왕이 직접 1000명이 넘는 군대를 이끌고 앙굴리 말라를 잡으러 갑니다.

아들의 죽음을 예견한 앙굴리 말라의 어머니는 부처님께 찾아가 사정을 말하고 아들의 목숨을 구해달라고 울며불며 애원합니다. 여인의 얘기를 들은 부처님께서는 앙굴리 말라가 나타났다는 곳을 향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도망가면서 위험하다고 만류했지만, 부처님께서는 ‘여래는 두려움이 없다’ 하시면서 앙굴리 말라를 찾아 나섭니다.

부처님을 본 앙굴리 말라는 ‘사문아! 거기 섰거라’ 하고 칼을 들고 쫓아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처님께서는 가던 길을 그냥 천천히 걸어가셨어요. 앙굴리 말라는 아무리 빨리 달려도 천천히 걸어가는 부처님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참 후에야 부처님을 추월한 앙굴리 말라가 칼을 빼들고 부처님을 가로막으며 소리쳤어요.

‘멈추라는데 왜 멈추지 않는 거냐?’

그러나 부처님께서 편안한 얼굴로 대답했습니다.

‘나는 멈춘 지 오래됐다. 멈추지 않은 것은 바로 너다.’

그러자 앙굴리 말라는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부처님께서 계속 걸어가시면서 멈추었다고 하자 이해가 되지 않았던 앙굴리 말라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앙굴리 말라는 멈췄는지 안 멈췄는지에 대해 부처님과 논쟁을 하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상대의 관점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것이 바로 부처님의 대화법입니다. 그래서 앙굴리 말라가 부처님께 물었어요.

‘나는 이렇게 멈춰있고, 당신은 계속 걷고 있는데, 왜 당신은 멈추었다고 하고 나에게는 멈추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냐?’

부처님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남을 죽이고 때리는 악행을 멈춘 지 이미 오래되었다. 그런데 너는 아직도 악행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때 앙굴리 말라는 마치 악몽을 꾸다 깨어난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그래서 창칼을 버리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저를 위해 설법을 해 주십시오.’

부처님의 법문을 들은 앙굴리 말라는 깨달음을 얻고 제정신으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자신도 출가수행자가 되겠노라고 부처님께 요청합니다. 그러자 부처님이 대답했습니다.

‘오라, 비구여! 여기 좋은 법이 잘 설해져 있도다.’

이렇게 해서 앙굴리 말라는 출가수행자가 되었어요. 그런데 이 소식이 세상에는 빨리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왕은 민심이 흉흉해지자 앙굴리 말라를 직접 잡기로 했어요. 1000명의 군대를 이끌고 기원정사를 지나다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기 위해 정사 앞에서 무장을 해제하고 부처님께 인사드리러 기원정사로 갔습니다. 부처님께서 왕에게 묻습니다.

‘대왕이시여, 만약에 앙굴리 말라가 잘못을 뉘우치고 출가수행자가 되었다면 어떻게 하겠소?’
‘부처님, 그런 일은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어떻게 하겠소?’
‘그렇다면 그분께 절을 하고 공양을 올리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옆에 있는 한 비구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대왕이시여, 이 사람이 앙굴리 말라입니다.’

괴력을 가진 사나이로 소문이 난 앙굴리 말라가 눈앞에 있다는 사실에 왕은 벌벌 떨었어요. 부처님께 인사한다고 무장 해제한 상태라 왕은 더욱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왕을 안심시키며 ‘앙굴리 말라는 모든 악행을 멈추고 아힘사 비구가 되었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아힘사’는 인도말로 비폭력이라는 뜻이에요. 이미 한 사람의 훌륭한 수행자가 된 앙굴리 말라를 본 왕은 그 자리에서 인사를 하고 원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제공을 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하지만 앙굴리 말라는 아무것도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왕은 부처님께 감탄합니다.

‘세존이시여, 위대하십니다. 저는 1000명의 군대를 이끌고 갔어도 그를 못 잡거나 그를 잡았다 해도 죽이는 것밖에 못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한 명의 군인도 없이 그를 조복하고 또한 그를 훌륭한 수행자로 만들었습니다. 이건 정말 이 세상에서 일어날 수 없는 기적과도 같은 일입니다. 여래는 위대하십니다.’

앙굴리 말라가 출가 승려가 되었다는 소문이 퍼진 다음부터는 더 큰 문제가 일어났어요. 누가 앙굴리 말라인지 모르니까 이튿날 스님들이 탁발을 나가자 마을 전체가 방울을 흔들고 문을 다 닫아버렸습니다. 스님들은 탁발하러 갔다가 비난만 잔뜩 받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살인자가 승려가 되었다는 소문 때문에 승려는 모두 살인자 취급을 받았고, 사람들은 더욱더 두려움에 떨게 된 거예요.

저는 한 생명도 해친 바가 없습니다

어느 날 앙굴리 말라가 탁발을 하러 갔는데, 어떤 집에 한 여인이 아기를 낳고 있었어요. 그때 갑자기 누군가 방울을 흔들며 앙굴리 말라가 나타났다고 외쳤어요. 그 소리에 아기를 낳던 산모가 놀라서 기절을 해버렸습니다. 앙굴리 말라는 부처님께 찾아가서 자신으로 인해 산모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상황을 얘기했어요. 그러자 부처님께서 앙굴리 말라에게 다시 그 집으로 가서 이렇게 말하라고 합니다.

‘저는 이 세상에 태어난 이래로 한 생명도 해친 바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앙굴리 말라가 출가한 이후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고 보신 겁니다. 앙굴리 말라는 산모에게 다시 가서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이래로 한 번도 살생한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그 여인은 정신을 차리고 순산을 했습니다.

앙굴리 말라가 이제 더 이상 괴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사위성에 널리 퍼졌습니다. 그러나 사람들 사이에 두려움과 분노는 끊이지 않았어요. 이튿날 앙굴리 말라가 걸식을 하러 나오자 사람들은 도망을 가지 않고 돌멩이를 쥐고 앙굴리 말라를 죽이자며 돌을 던졌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부처님이 왔을 때는 이미 앙굴리 말라가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어요. 부처님께서 앙굴리 말라에게 어떠한지 묻지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는 편안합니다. 저는 후회가 없습니다.’

앙굴리 말라는 이미 아라한과를 증득했기 때문에 편안하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앙굴리 말라가 눈을 감자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가 저지른 악행은 크다. 그러나 그가 깨닫고 베푼 선행은 더 커서 그 악행을 덮고도 남는다.’

앙굴리 말라의 교화 얘기는 부처님의 위대함을 표현한 사건이기도 하지만 승단에서 엄청난 비난과 저항을 받기도 했던 사건입니다. 이런 일이 오늘날에 일어난다면 어떨까요?

이런 일은 부처님처럼 아무런 편견 없이 지금 그 사람이 어떤지를 보아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이렇게 부처님께서 차별받는 사람들과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편견을 내려놓고 당당해질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만하지 말라 겸손해라. 비굴하지 말라 당당해라. 수행자는 교만해서는 안 된다. 겸손해야 한다. 또한 수행자는 비굴해서도 안 된다. 당당해야 한다.’

사람 취급을 못 받던 천한 사람들이 부처님 법을 만나 깨달음을 얻고, 천하에 누구 앞에서도 비굴하지 않고 당당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는 얘기는 오늘날 들어도 감동적입니다.”

훈훈한 감동을 뒤로하고 마지막으로 스님이 이번 주 수행 연습 과제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학생들은 교실별로 화상회의 방에 모여 마음 나누기를 이어나갔습니다. 방송실을 나오니 밤 9시가 훌쩍 넘어 있었습니다.

내일은 아침에 농사일을 한 후 오후에는 찾아온 손님들과 미팅을 하고, 저녁에는 수행법회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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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박영정

소중한 법문 감사합니다 ! 오늘도 성불하세요

2022-09-19 06:42:44

박철성

생생명경 법문 감사히 받습니다..
고맙습니다..🙏

2022-07-12 12:33:10

홍자원

합장_()_
귀한 법문 감사합니다

2022-07-11 20: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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